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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학원 덜 보내고 세뱃돈이며 기타등등 삥뜯어 만든 알토란 같은 비자금 500만원을 불릴 생각에 들떴건만 12개월 복리에 어쩜 10만원 좀 넘게 붙니. 그것도 세금우대 받아서 말이야. 한달에 만원꼴도 안 된다. 그래도 그게 어디야, 나름 이자율 제일 높은 저축은행 찾아가 예치하고 치약이나 물티슈 같은 선물은 없냐고 물었다가 창구 직원에게 개무시당했다. 기업들이 사내 유보금으로 쌓아둔 돈이 500조~600조원 된다는데 시중에 돈은 안 돌고, 돈 좀 있다 싶으면 바닥을 기는 이자율이라도 마이너스 아닌 게 어디냐며 꾸역꾸역 쟁여둔다. 이 와중에 빚내어 집 사라니. 이 무슨 외계어인가. 집 판 사람은 그 돈 풀어 펑펑 쓴다는 보장 있나. 빚 갚거나 쟁여두겠지. 이재용 부회장님이 중국에다 양을 두배로 튀겨 발주(했다는 소문이 무성)한 통에 똥값된 삼성 제습기나 한대 장만하려나. 그러고 보니 올해는 장마철에 비도 없네. 돈도 땅도 말랐다.
음모론조차 씨가 마른 시대에 간만에 나온 음모론이
[김소희의 오마이 이슈] 부총리가 부동산 업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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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10년=포털 웹툰 10년
웹툰 10년이란 말 뒤에는 현재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웹툰의 형태가 포털 사이트를 통해 구축된 것임이 함축돼 있다. 웹툰은 곧 포털 웹툰이었고, 포털이 제시한 질서와 생태계가 곧 웹툰의 전부이다시피 했다. 이를 바꿔 말하면 포털 사이트 바깥에서 웹툰이 아마추어 레벨을 벗어나 상업적 성과를 내며 생존에 성공한 경우는 근 10년 사이엔 전무하다시피 했다는 이야기도 된다.
웹툰을 주요 콘텐츠로 내세운 포털은 많게 잡아도 다음, 네이버, 파란, 야후 등 네곳 정도였고 그나마도 야후가 2012년 12월31일, 파란이 2013년 7월31일 서비스를 종료했다. 여기에 2012년 5월 네이트가 만화 서비스를 출판만화의 온라인판 게재 기조에서 웹툰 중심으로 전환하면서 포털 웹툰은 다음, 네이버, 네이트 3사 체제로 정리된다. 결국 이 세 회사에 웹툰 자체가 달려 있다시피 한 셈이었다. 게다가 2009년 말 아이폰 정식 수입 이후 앱스토어에 만화 플랫폼을 정착시
지각변동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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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 문을 연 레진코믹스는 네이버, 다음의 양대 포털이 어쩔 수 없이 방치했던 틈새를 성공적으로 공략, 웹툰의 유료화를 정착시켰다. 하지만 숫자가 말해주는 그간의 성과보다 더 놀라운 건 앞으로 계속될 성장세다. 레진코믹스의 성공은 돈 내고 볼만한 웹툰, 어른들을 위한 질 높은 웹툰을 공급한다는 단순하고 당연한 철학에서 출발한다. 레진코믹스의 김창민 CP(Chief Producer)에게 보여준 것보다 보여줄 것이 더 많은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물었다.
-6월17일이 딱 1주년이었다. 기념파티와 함께 그간의 성과를 데이터로 발표했는데 놀랍더라.
=그땐 회원 수를 110만명이라고 발표했는데 그사이 또 130만명으로 늘었다. (웃음) 100만명 정도까지는 특별한 마케팅 없이 콘텐츠와 입소문으로 달려온 것 같다. 얼마 전부터 투자를 받으며 본격적으로 마케팅을 시도하고 있고 그만큼 가속도가 붙는 중이다. 일곱명으로 시작한 회사 식구가 열일곱명으로 늘어나는 동안 매달 10% 이상
차별화된 콘텐츠로 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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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투니드(TOONEED)는 올레마켓 웹툰의 NPC(Non Player Character, 롤플레잉 게임에서 플레이어에게 퀘스트를 제공하거나 도움을 주는 캐릭터)같은 존재다.” 투니드는 ‘만화(TOON)의 필요(NEED)’란 뜻으로 박철권 대표가 임시로 만들어놓은 상호명이다. 올레마켓 웹툰 사업은 KT가 진행하고, 웹툰 프로듀싱 업무는 투니드의 박철권 대표가 돕고 있다. 박철권 대표와 투니드의 세명의 PD가 신인 작가 발굴 및 작품 기획 개발, 연재에서 완결까지의 작품 프로듀싱을 담당한다. 이후의 상품화 작업과 홍보 마케팅에 관한 자문까지도 투니드의 몫이다.
-올레마켓 웹툰이 7월17일이면 첫돌을 맞는다.
=여기까지 오는 데도 정말 힘들었다. 작가들 모아서 작품 런칭하기까지 두달밖에 안 걸렸으니까. 그때 살이 8kg이나 빠졌다. 여름에 시작했으니 땀 닦느라 가방에 아예 수건을 넣고 다녔다. 손수건이 아니다. (웃음) 올레마켓 웹툰 1주년은 손에 수건 감고 다니며 동분서주한
신인 작가 프로듀싱에 집중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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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국내 최초로 지금과 같은 형태의 웹툰 시장을 개척한 다음 만화속세상은 밀도 있는 서사와 탄탄한 캐릭터를 강점으로 성장해왔다. 국내 첫 웹툰 유료화 서비스 런칭, 웹툰 PPL, 페이크 다큐멘터리 방식의 웹툰 연재(<광해이야기>) 등의 다양한 시도도 멈추지 않았다. 9년째 다음 웹툰을 책임지고 있는 박정서 편집장은 “남들이 하지 않는 이상한 짓거리를 끊임없이 해온 게 나름의 성장 동력”이라며 ‘영업 비결’을 밝혔다. 또 한 가지 영업 비결은 작가의 권익 보호다.
-다양한 형식의 웹툰 플랫폼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시장을 이끌어온 입장에서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나.
=네이버나 다음은 십년이 넘는 기간 동안 투자를 해서 이제야 조금씩 결과물을 보고 있다. 우리가 실험해온 데이터를 바탕으로 신진 플랫폼들은 더욱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지 않겠나. 당장의 성장에만 급급한 게 아니라 시장 자체에 대한 고민을 함께할 수 있는 내실있는 업체들이 등장하기를 바란다.
-올
가장 깨끗한 플랫폼이라고 자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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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6월23일 네이버 웹툰 서비스가 시작됐다.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현재, 하루 평균 네이버 웹툰 이용자 수는 1만명에서 620만명 수준으로 늘었고, 네이버 웹툰의 누적 조회수는 292억건에 이르렀다. 김준구 네이버 웹툰 셀 리더는 네이버 웹툰이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가 “스타급 작가의 작품과 신진 작가들의 작품이 꾸준히 나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좋은 작품이 독자들을 자연스럽게 끌어당겼다는 얘기다. 조금은 겸손한 얘기. 그렇다면 좋은 웹툰이 세상의 빛을 보기까지 네이버는 어떤 역할을 했을까. 네이버 웹툰 작가들의 휴대폰 단축번호 1번 자리를 꿰차고 있는 김준구 셀 리더에게 물었다.
-네이버 웹툰의 10년을 함께했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사실 10년이라는 지표보다 더 보람차고 기분 좋았던 것은 웹툰 작가들이 계속 성공했다는 것 때문이었다. 데뷔하고 차를 산 작가가 “웹툰 덕에 차 샀어요”라며 시승하러 왔을 때, 새로 산 외제차를 타고 고향 할아버지 산소
지난 10년, 작가들의 성장과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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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의 역사가 10년이 넘었다. 많고 많은 작품들 가운데 어떤 작품을 봐야 할지 고민한다면 하나의 해법을 제안한다. 강풀, 곽백수, 굽시니스트, 양영순, 윤태호, 정다정, 주호민, 하일권 등 인기 만화가에게 추천할 만한 최고의 웹툰을 꼽아달라고 부탁했다.
강풀의 추천작
윤태호 <미생>
“(윤)태호 형과 워낙 친해서 <미생>을 꼽는 게 그런데 그래도 역시 <미생>. 태호 형이 <미생> 한다고 했을 때 이거 망한다고 말렸었다. 처음엔 진짜 ‘바둑’만화인 줄 알았다. <미생>은 사실 특별할 게 없는 이야기다. 평범한 회사원이 주인공인 평범한 이야기. 요즘 대부분의 웹툰이 흥미 위주로 창작되고 있다. 나 역시도 그렇고 기발한 발상, 특별한 소재에 치우쳐 있는데, 좋은 이야기는 소재에서 머물면 안 된다. 윤태호 작가는 <미생>을 통해 자신의 내공을 보여줬다. 또 <미생>만큼 타깃층이 명확한 만화가 있을까. 20
아직도 장그래가 누군지 모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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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10년이 훌쩍 지났다. 아니 고작 10년이다. 하나의 가능성에 불과했던 웹툰이 만화 시장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하는 덴 그 정도면 충분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웹툰의 역사를 되짚어 오늘의 웹툰을 만들어낸 보석 같은 순간들을 찾아봤다. 재밌어도 재미없어도 그저 만화 한편, 하지만 그 시간 우리를 웃기고 울렸던 소중한 이야기들. 재미나고 신기한 순간들 속에서 언젠가 당신에게 미소를 선물했던 당신만의 웹툰을 떠올려보시라.
일상툰에서 스토리툰으로
웹툰 이전의 웹툰들이 있었다. 간단한 스토리에 플래시 형식의 애니메이션이 더해진 웹애니메이션 <마시마로>(2000)나 개인 홈페이지에 만화일기 형식으로 연재하며 귀차니즘을 유행시킨 일상툰 <스노우캣>(1999), 해산물을 의인화한 성게군, 불가사리군 등 캐릭터들의 생활을 그린 캐릭터툰 <마린블루스>(2000). 캐릭터를 바탕으로 유머와 일상을 짧은 이야기 형식으로 보여준 이들 작품은 주로 개인 홈페이
‘엄친아’라는 말의 유래를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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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코믹스(comics), 일본에 망가(manga)가 있다면 한국에는 만화(manhwa)가 있다. 이들은 흔히 만화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별반 구분 없이 소비되지만 조금만 파고들어보면 각기 다른 결을 지닌 독립 장르라 봐도 무방하다. 탄생부터 성장과정까지 다른 문화적 배경이 녹아들어 있어 사실상 대체 불가능한 역사적 단어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현재 한국의 웹툰을 여느 인터넷 만화와 구분지어야 하는 이유다. 웹(web)과 카툰(cartoon)의 합성어인 웹툰은 이제 단순히 웹을 기반으로 서비스되는 만화의 의미를 넘어섰다. 웹툰이라는 말에는 웹툰이 공급되는 환경, 다양한 장르와 다채로운 문법들, 소비자들의 이용 형태까지를 아우르는 개념을 포괄하고 있다.
2003년 다음의 ‘만화속세상’ 코너에 정식으로 연재를 시작한 이래 웹툰은 포털을 중심으로 성장해왔다. 초기엔 포털 사이트의 서비스 유인책으로 시작했지만 2005년 최대 규모의 사용자를 확보하고 있던 네이버가 웹툰 서비스를 본격화하
웹툰, 어디까지 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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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세상은 만화가 될 것이다. 그리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스마트폰의 등장과 함께 웹툰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웹툰 전문 플랫폼이 속속 생기고 있는 요즘 더이상 유료 웹툰이 어색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른을 위한 웹툰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탄생으로부터 10여년이 지난 지금, 변화의 바람 한가운데에서 풍성하게 피어나는 중인 웹툰의 이모저모를 살펴본다. 웹툰 시즌2, 출발이다.
진격의 웹툰 시즌2 ST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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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타 디지털은 <반지의 제왕> <아바타> <호빗> 등으로 ‘영상 혁명’을 이뤄냈다는 평을 받은 디지털 그래픽 스튜디오다.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의 CG 및 모션 캡처를 담당한 웨타 디지털은 이번에도 ‘라이브 퍼포먼스 캡처’라는 신기술을 선보인다. 웨타 디지털의 임창의, 최종진 선임 조명기술감독(Senior Lighting Technical Directors)이 지난 6월27일 한국을 방문해 웨타의 기술력, 웨타에서의 생활에 대해 들려줬다.
-웨타 디지털에 들어가게 된 계기는.
=임창의_한국에서는 모팩 등에서 10년 정도 FX 일을 했다. 런던의 더블 네거티브에서 FX기술감독으로 근무하고 있을 때 <아바타> 작업에 너무 참여하고 싶어 웨타 디지털에 들어갔다. <아바타> 작업을 하면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아바타>를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지원했다. 원래 계획은 웨타에서 2년 일하고 다시 더블 네거티브로
그래픽에 혼을 불어넣는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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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혹성탈출>(1968) 이후 6편까지 만들어지고, 팀 버튼의 <혹성탈출>(2001)을 거쳐 루퍼트 와이어트의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2011)이 만들어지기까지, 이 장구한 시리즈는 ‘진화한 유인원’과 ‘멸종 위기의 인류’의 거대한 대결을 그려왔다. 전편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에서 치명적인 바이러스 ‘시미안 플루’가 세상을 휩쓴 뒤 10년, 급속도로 진화한 유인원들은 도시를 떠나 그들만의 사회를 이루었다. 유인원과 인류는 서로 각자의 삶을 살아도 될 테지만, 전력을 필요로 하는 인간과 그 인간들에 대한 복수를 꿈꾸는 일부 유인원의 존재는 필연적인 전쟁을 불러일으킨다. 루퍼트 와이어트로부터 메가폰을 넘겨받은 맷 리브스를 비롯해 많은 것이 뒤바뀐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을 전격 해부하고, 개봉에 맞춰 한국을 찾은 ‘웨타 디지털’의 한국인 스탭 임창의, 최종진과 만나 시각효과에 관한 얘기도 들었다.
유인원이 드디어 총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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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즈 다이어리]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 50년 후 리메이크 된다면?
[헌즈 다이어리]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 50년 후 리메이크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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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감독
2014 <좋은 친구들> <남자가 사랑할 때>
2012 <미쓰Go> <청출어람> <뒷담화: 감독이 미쳤어요> <신세계>
촬영팀
2010 <박쥐>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부당거래> 외 다수
유억 촬영감독은 대뜸 ‘콘티 무용론’부터 내놨다. <좋은 친구들>을 찍으면서 그는 배우의 동선이나 카메라의 위치가 콘티대로 가야 한다는 생각을 버렸다고 한다. “왜 선수들이 필드에 나가면 예측을 뛰어넘어 움직이는 게 있지 않나. 어떻게 찍을지 현장에서 정리한 경우가 많았다.” 5개월 넘는 프리 프로덕션 기간 동안 공들인 콘티를 가볍게 ‘무시’할 수 있었던 건 이도윤 감독과의 약속 때문이었다. “과도한 카메라 움직임은 지양하고 최대한 덤덤하게 있는 그대로 찍자고 했다.” 그 약속대로, <좋은 친구들>의 카메라는 인물보다 먼저 움직여 관객이 미리 상황을 예측하게 만들
[STAFF 37.5] 콘티대로 찍어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