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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4년, 날아가는 새마저 얼어붙는 추운 겨울에 잭이 태어난다. 불행하게도 얼어붙은 심장을 가졌던 잭은 결국 태엽 시계를 심장에 이식하는 큰 수술을 받는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이제 잭에게는 평생 지켜야 할 세 가지 규칙이 주어진다. 첫째, 시곗바늘을 만지지 말 것. 둘째, 화를 내지 말 것. 셋째, 사랑에 빠지지 말 것. 그러나 소년으로 자란 잭은 우연히 아카시아를 만난 뒤 사랑을 느끼고, 결국 생명을 잃을 위기에 빠진다.
<쿠크하트: 시계 심장을 가진 소년>은 독특한 감수성의 애니메이션-뮤지컬 영화이다. 밴드 ‘디오니소스’의 리더인 마티아스 말지외가 자신이 직접 그린 그래픽노블과 직접 만든 음악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 속 세계는 현실과 환상이 서로 자연스럽게 스며든 곳이다. 그런데 그 세계는 머리 둘 달린 사람과 귀로 날아다니는 사람이 등장하는 등 밝은 조화로움보다는 불균질하고 어두운 기괴함이 더욱 도드라지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럴수록 대비를 통해 돋보
순수한 사랑이 만들어내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분위기 <쿠크하트: 시계 심장을 가진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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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동안 다니던 보험회사에서 실직한 민수(김범준)는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재취업 면접 자리에서 번번이 무시당한다. 그와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 수진(배정화)은 민수가 직장을 잃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 대출을 받아 카페를 차릴 꿈에 부풀어 있다. 수진이 자신에게 거는 기대에 부담감을 느낀 민수는 실직 사실을 고백하지만 수진은 노발대발하며 당장 헤어지자고 소리친다. 그런데 수진의 동생 현우(전범수)가 어느 날 민수를 찾아와 큰돈을 만질 기회가 생겼다며 자동차 절도를 제안한다. 오랫동안 보험회사에서 근무하며 자동차와 교통법규 등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던 민수는 범죄자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에 괴로워한다.
<살인재능>은 <풍산개>(2011)를 연출했던 전재홍 감독의 신작이며, 2014년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부문에 초청된 바 있다. 김기덕 감독 영화 등에서 오랜 단역 생활을 하던 배우 김범준이 살인마 민수 역을 맡았고 연극 무대에서
평범했던 한 남자가 살인마로 거듭나는 과정 <살인재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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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나 아닌 다른 누군가가 사나? 갑자기 이 모든 게 증발한다면? 그때 난 어쩌지?” 피아노 앞에서 곡을 만들던 브라이언(폴 다노)의 나직한 독백이 <러브 앤 머시>의 시작을 알린다. 브라이언은 1960년대 전세계적인 밴드로 이름을 알린 그룹 비치 보이스의 리더로 승승장구 중이다. 하지만 그의 이 고백에는 뮤지션으로서의 근본적인 궁금증, 고민, 불안이 응축돼 있다. 매번 여름용, 서핑용 음악만 만들어내는 데 지친 그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사운드를 찾아간다. 악기의 미세한 음질의 차를 놓치지 않고, 강아지 울음소리부터 사람의 목소리까지 채집해가며 전설의 앨범 《Pet Sounds》를 완성하고 싶다. 그사이 그는 알 수 없는 환청에 시달리기까지 한다.
한편 영화는 1960년대의 브라이언에서 20여년의 시간이 흐른 뒤의 브라이언(존 쿠색)의 모습을 수시로 교차편집해 보여준다. 중년의 브라이언 곁에는 주치의 유진(폴 지아마티)이 버티고 서 있다. 그는 브라이언에게 지금
예술가 브라이언 윌슨의 중요한 시절을 눈과 귀로 들여다보다 <러브 앤 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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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공룡 미르가 다정한 티라노사우루스 부부 제스타와 세라 사이에서 태어난다. 미르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 세라는 추락사고로 실종된다. 아버지 제스타마저 발드와의 격투 끝에 사망하며 미르는 고아 신세가 된다. 미르는 아버지의 복수를 다짐하며 발드 무리를 찾아간다. 하지만 죽을 고비만 간신히 넘긴 채 낯선 공간에 떨어진다. 빨간 열매 나무 근처에 다다른 미르는 아픈 어머니를 위해 열매를 모으는 훌쩍훌쩍(스피노사우루스)을 만나 교류한다. 훌쩍훌쩍과 헤어진 뒤에는 앞을 못 보는 겁쟁이 키라리(포포사우루스)를 만나 친구가 된다.
<고녀석 맛있겠다>는 티라노사우루스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미야니시 다쓰야의 그림동화 시리즈다. 이중 두 에피소드를 엮은 애니메이션이 2010년 제작된 바 있다. <고녀석 맛나겠다2: 함께라서 행복해>는 일본에서 제작한 첫 번째 에피소드에 이은 두 번째 에피소드로 국내 제작사 작품이다. 9권의 원작 시리즈 중 7, 8권에 해당하는
단순한 이야기 속에 담긴 강한 메시지 <고녀석 맛나겠다2: 함께라서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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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부터 귀여움이 푹발한다. <미니언즈>는 <슈퍼배드> 시리즈의 스핀오프작으로, 규모의 볼거리보다 확실한 캐릭터 창출로 성공한 신흥 애니메이션 제작사 일루미네이션의 신작이다. 차별화된 외모, 치명적인 귀여움, 어설픈 사악함으로 무장한 미니언들은 <슈퍼배드> 관객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아왔다. 그동안 시리즈의 조연으로 등장하며 강력한 신스틸러로 부각된 미니언이 본격적인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미니언즈>는 귀요미 악당들에 대한 팬심이 만들어낸 영화라 봐도 과언이 아니다. 작품은 지난 7월10일 북미 개봉해 오프닝 스코어 1억1천만달러를 기록, 역대 애니메이션 오프닝 스코어 2위를 기록하며 흥행세를 이어가고 있다. <슈퍼배드> 시리즈의 피에르 코팽이 연출을 맡았고, <슈렉>의 스핀오프작인 <장화신은 고양이> 시나리오에 참여한 브라이언 린치가 각본을 맡았다. 록의 전성기인 1960년대 미국과 영국을 오가는 만큼 비틀스,
귀요미 악당들에 대한 팬심이 만들어낸 영화 <미니언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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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 와이프>
제작 영화사 아이비젼 / 감독 강효진 / 출연 엄정화, 송승헌, 김상호, 라미란, 서신애 / 배급 메가박스(주)플러스엠 / 개봉 8월13일
변론만 맡았다 하면 승소는 100% 보장이다. 매력적인 외모에다 똑소리나게 싱글 라이프까지 즐길 줄 아는 그녀는 변호사 연우(엄정화). 그런 그녀의 장밋빛 인생에 느닷없이 대반전의 먹구름이 낄 줄 누가 알았겠나. 갑작스레 교통사고를 당한 연우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 이 소장(김상호)을 만난다. 그는 연우에게 딱 한달 동안 연우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인생으로 살면 원래 그녀의 삶으로 돌아가게 해주겠다는 달콤하고 살벌한 제안을 해온다. 일단 살고 봐야겠다는 생각에 연우는 이 소장의 말을 따르지만, 눈을 떠보니 그녀는 연우로서의 삶과는 180도 다른 상황에 놓이게 된다. 구청 공무원이자 과하다 싶을 정도로 자상해 되레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남편 성환(송승헌)과 두명의 자식까지 둔 전형적인 가정주부,
[Coming Soon] 잘나가는 싱글 변호사, 아줌마가 되다 <미쓰 와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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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벌써 열 번째 시네바캉스다.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는 7월28일(화)부터 8월30일(일)까지 ‘열 번째 휴가: 2015 시네바캉스 서울’을 진행한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앨프리드 히치콕의 <나는 결백하다>, 잉마르 베리만의 <모니카와의 여름> 등 총 17편의 영화를 상영할 예정이다. 또한 같은 기간 동안 ‘알랭 카발리에 회고전’(공동주최 대안영상문화연구소 아이공)과 ‘작가를 만나다: 영화라는 모험’(공동주최 한국영상자료원)도 함께 열린다. 영화사의 고전은 물론, 최근 더 큰 주목을 받고 있는 동시대 프랑스 감독의 영화와 한국 감독들의 대표작을 동시에 만날 수 있는 기회이다.
이번 상영작 가운데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영화는 복원을 통해 최적의 상태를 되찾은 작품들이다. 먼저 올해 칸국제영화제에서 처음으로 공개한 호금전의 <협녀>(1971) 복원판은 필름의 흠집 제거와 바랜 색감을 되살리는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다. 지금까지 주인공들의 창백한
[영화제] 당신의 여름을 영화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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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7일(금)부터 9일(일)까지 3일간 열리는 제17회 정동진독립영화제(주최 강릉씨네마떼끄, 한국영상자료원)는 최근 만들어진 주목할 만한 한국 독립영화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매력을 갖고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영화제의 ‘메인 상영관’은 작은 초등학교 운동장이며 입장료는 무료, 모든 작품은 영화제 기간 동안 단 한번만 상영된다. 단순히 작은 규모라고 지나치기엔 그 신선한 개성에서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영화제이다. 이번에 만날 수 있는 장•단편을 포함한 24편의 영화 목록 역시 놓치기 아쉬운 흥미로운 작품들로 채워져 있다.
정동진독립영화제는 전통적으로 소수의 장편영화만을 초청해왔는데, 그 작품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것도 소소한 즐거움 중 하나이다. 올해는 김수빈 감독의 <소꿉놀이>(2015)와 윤성호, 강경태, 이옥섭, 구교환 감독의 <오늘영화>(2014)가 이름을 올렸다. 먼저 김수빈 감독의 <소꿉놀이>는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감독의 결혼
[영화제] 바다도 보고 영화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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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모 신문사 기자가 ‘이혐’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이혐? 우리 사회에 그런 문제 제기가 있었던가? 나는 당연히 이성(理性)혐오인 줄 알고, 근대성 운운했다가 그의 표정을 보고 당황했다. 그가 말한 ‘이혐’은 여성혐오 vs 남성혐오를 합친 이성(異性)혐오였던 것이다!
이럴 땐 어디서부터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일단, 혐(嫌)자에 이미 ‘계집 녀’가 들어가 있잖아요.” “노/사, 흑/백, 이성애/동성애처럼 남성과 여성은 대칭적인 개념이 아니에요. 남성혐오는 가능하지 않아요.” “여혐은 여성으로 상징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이고요, 인류 문명의 전제는 남성 숭배(penis envy) 문화예요, 여아 낙태나 여성에 대한 폭력을 보세요.” 나도 모르게 ‘강의’를 하고 있었다.
근대 서구에서 페미니즘의 시작은 자유주의(“양성평등”)였다. 여성도 경제적 자립을, 참정권을, 성적 결정권을… 이것은 자유주의 페미니즘(liberal feminism)도 아니고 그
[정희진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여혐, 남혐, 이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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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 채널의 개국 이후 일반인 가족 문제 솔루션 프로그램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적이 있었다. 출연자들의 감정이 극단으로 치달을수록 눈물을 흘리고 포옹하는 화해 장면은 드라마틱해진다. 그리고 선정적인 갈등을 반복해 소비하다보면 이에 따르는 피로나 감동을 가공된 TV쇼의 부산물이라 냉소하게 되고, 문제 상황에 순응하는 단계가 온다. 그렇게 문제 제기 능력과 신뢰를 잃은 솔루션 프로그램이 더이상 이목을 끌지 못하던 즈음, 전문가도 없고 이렇다 할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는 KBS2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가 등장했다. 고민의 원인을 제공한 쪽이 방청석에 앉아 확신에 찬 궤변을 늘어놓다 방청객의 반응을 피부로 느끼고 한발 물러설 기회를 얻는 정도로 의미가 있다고 여겼던 이 프로그램은 전문가와 해결책이 반드시 필요한 고민, 즉 치료를 요하거나 범죄로 분류될 법한 사연을 끌어들이며 위태로워졌다.
관찰카메라를 통해 부모와 사춘기 자녀의 갈등을 들여다보고 의견대립을 조율하는 SBS
[유선주의 TVIEW] 진짜 괜찮은 거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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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유스>(2015)
<러브 앤 머시>(2014)
<노예 12년>(2013)
<프리즈너스>(2013)
<루퍼>(2012)
<믹의 지름길>(2010)
<나잇 & 데이>(2010)
<괴물들이 사는 나라>(2009)
<데어 윌 비 블러드>(2007)
<미스 리틀 선샤인>(2006)
<잭과 로즈의 발라드>(2005)
<테이킹 라이브스>(2004)
<L.I.E>(2001)
<더 뉴커머스>(2000)
“우린 프로야. 알 만한 뮤지션들과 다 해봤어. 시내트라, 딘 마틴, 엘비스, 필 스펙터, 샘 쿡. 전부 다! (중략) 그런데… 너는…. 이것만 알아둬. 넌 천부적이야.” 새 음반 작업에 마음이 심란했던 20대 캘리포니아 청년은, 당대 최고의 뮤지션들과 작업해본 세션맨(그는 레킹크루의 드러머 할 블레인이다)의 칭찬을 듣고 그제야 수줍게
[폴 다노] 웬만한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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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2014 <신의 선물>
2013 <뫼비우스>
2012 <피에타>
2012 <가족시네마>
2011 <풍산개>
2011 <홈 스위트 홈>
2010 <대한민국 1%>
2007 <아름답다>
살인이란 재능을 지닌 자가 정말 존재할까. 끔찍한 상상이다. 전재홍 감독의 <살인재능>은 누군가가 만약 살인재능이라는 걸 타고난다면 그 사람은 어떤 과정을 거쳐 자신의 재능을 깨닫게 될지를 상세하게 기록하듯 찍어낸 영화다. 직접 각본을 쓴 전재홍 감독은 저주와도 같은 재능을 깨닫게 되는 살인마 민수 역할로 배우 김범준을 캐스팅했다. “내가 이런 중요한 역할을 맡아도 괜찮을지” 거듭 고민했던 김범준은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추격자>의 지영민(하정우) 이상으로 강렬한 캐릭터”인 민수에 본능적으로 끌렸다. 오랫동안 김기덕 필름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했던 그에게 첫 주연작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who are you] 새로운 물꼬를 터뜨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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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공연 의상을 제작해온 코스튬하우스 브랜드 ‘티렐리’의 50년 역사를 담은 책 <티렐리 50: 꿈의 옷장>(Tirelli 50: The Wardrobe of Dreams)이 화제다. 이 책은 움베르토 티렐리가 1964년 브랜드를 차린 이후 TV쇼, 연극, 공연, 영화 등을 위해 제작한 의상들을 정리하여 엮은 것이다. 움베르토 티렐리는 페데리코 펠리니의 <카사노바>, 마틴 스코시즈의 <순수의 시대>,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1900년>, 세르지오 레오네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제임스 카메론의 <타이타닉>, 팀 버튼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웨스 앤더슨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등에 참여한 100여명의 의상디자이너를 위해 의상을 제작했다. 티렐리의 의상들은 <순수의 시대>의 의상디자이너 가브리엘라 피스쿠치, <잉글리쉬 페이션트>의 앤 로스 등 15명의
[로마] 펠리니의 <카사노바>부터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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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주부였던 리카(미야자와 리에)는 은행에서 일을 시작한 뒤 우연한 계기로 고객의 돈을 횡령하기 시작한다. 요시다 다이하치 감독은 리카의 범행 방법을 보여주는 데 무게를 두는 대신 그녀가 왜 수천만엔을 횡령하게 되었는지 그 내면을 묘사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종이 달>에서 중요한 질문은 ‘어떻게’가 아니라 ‘왜’이다. 감독은 여기에 답하기 위해 두 가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나는 리카의 현재 서사이고 다른 하나는 어린 시절 리카가 기부금을 내기 위해 돈을 훔친 일화를 다룬 과거 서사다. 영화를 보고난 뒤 다음과 같은 질문이 떠올랐다. 과거 서사는 왜 필요한가. 과거 서사를 통해 리카가 어렸을 때부터 돈을 훔치는 데 스스럼이 없었음을 알 수 있고, 따라서 리카의 범행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부적절한 것 같다. 가장 손쉬운 이 답변은 현재 서사의 존재 이유와 상충한다. 한쪽에서 “리카는 왜 그랬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동안 다른 한쪽에서 “리카는
[박소미의 영화비평] 그녀는 왜 훔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