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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루멧 감독의 <영화를 만든다는 것>의 목차는 가십이 떠다니는 분장실에서 던질 만한 질문들로 만들어진 것 같다. 시나리오- 작가들은 꼭 필요한 존재인가? 스타일- ‘사랑’ 다음으로 가장 많이 오용된 단어. 배우- 배우가 부끄러움을 탄다는 것이 정말 가능한가? 프로덕션 디자인과 의상- 페이 더너웨이는 정말 열여섯 군데에서 같은 치마를 입고 있는가? 그중 ‘배우’ 부분은 이렇게 시작한다. “배우에 대한 선입견은 일단 제쳐두자. 멍청하고, 바보 같고, 버릇없고, 개런티가 지나치게 높고, 성적으로 문란하며, 자기중심적이고, 신경질적 등등….” 아, 루멧 감독님, 누구한테 맺히셨나요? 하지만 농담같이 시작된 이 챕터는 루멧의 배우론(<밤으로의 긴 여로> <12인의 성난 사람들> <네트워크>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 같은 영화들에서의 배우 연기를 떠올려보라)을 근사하게 펼쳐 보인다. “삶을 훌륭하게 모방할 줄 아는 배우가 많다
[도서] 시드니 루멧 감독의 배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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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봄이 되면, 제주도로 향하던 여객선 한척이 가라앉고 그 배에 타고 있던 사람이 전원 구조되었다는 뉴스를 처음 보며 가슴을 쓸어내리던 어느 오전이 떠오른다. 뉴스 속보의 ‘전원구조’라는 말에, 하던 일로 돌아가면 되겠다고 생각했던 마음은 이후 죄책감이 되어 납처럼 가라앉았다. 뒤이어 아주 이상한 일들이 연이어 벌어졌고, 아무것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시간이 흐른다. 잊지 않겠다는 이들을 위해 <세월호, 그날의 기록>이 쓰였다. 독자적 조사의 결과가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기록과 자료를 분석하고 이해하고자 노력한 결과이며, 세월호 도면, 침몰에 이르는 시간의 상세한 타임라인(세월호에서 온 카카오톡이며 통신 기록으로 만들어낸), 출동 주도 세력, 항로, 세월호 선장과 선원(2016년 2월 기준의 재판결과 포함), 해경 지휘와 교신 담당자들, 청해진해운과 세월호 인허가 및 관리감독 기관까지 표가 실렸다.
표 이후에는 1부 ‘그날, 101분의 기록’과 2부 ‘왜 못 구했나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공적 기록으로 재구성한 4월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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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 이후 미국 군인의 파병은 대개 일관된 상황과 관련되어 있다. 상대편 국가의 지도자(와 국민)는 미 제국으로부터 해방되고자 혁명전을 치른다고 생각하는 반면, 정작 전쟁에 뛰어든 미군은 정치적 측면에 무지하다. 혹은 관심이 없는 척해야 한다. 그들은 누군가의 결정에 따라 전쟁을 수행할 따름이다. 그러한 상황이 잘 드러난 작품은 리들리 스콧의 <블랙 호크 다운>(2001)이다. 소말리아 내란에 끼어든 병사들은 하나같이 “나는 정치에 대해 모른다”라고 말한다. <블랙 호크 다운> 개봉 당시, 나는 영화는 물론 모가디슈에서 벌어진 작전 자체에 반감을 느꼈다. 내 기본적인 생각은 ‘집안싸움에 이웃 아저씨가 주먹질로 개입하면 곤란하다’는 것이었고, 영화가 소말리아의 민중을 조지 로메로 영화의 좀비처럼 그리는 게 불편했다. 얼마 후 한국 장교들의 인터넷 포럼에서 내 표현을 비웃는 글들을 보게 되었다. 그들은 나를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기자라고 판단했으며 마치 비전문
[이용철의 영화비평] 원치 않는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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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 3세인 오미보 감독은 오사카예술대학에서 영상학을 전공한 뒤 오바야시 노부히코 감독 아래서 5년간 연출부 생활을 했다. 장편 데뷔작 <사카이 가족의 행복>(2006)으로 가족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사춘기 소년 츠구오의 성장기를 그렸다. 이케와키 지즈루가 열연한 세 번째 장편 <그곳에서만 빛난다>(2014)는 절망 속에 놓인 채 나름의 빛날 자리를 탐색하는 서글픈 가족의 초상을 담은 영화로, 감독에게 제38회 몬트리올국제영화제 최우수감독상을 안겼다. 지속적으로 가족의 해체와 결속을 말해왔던 오미보 감독은 <너는 착한 아이>로 주변에까지 눈을 돌린다. 치매 노인 아키코(기다 미치에)는 고통스러운 전쟁의 기억을 품은 채 늙어간다. 신임 교사 오카노(고라 겐고)와 남몰래 아이를 학대하는 젊은 엄마 미즈키(오노 미치코), 미즈키의 활기찬 이웃 오오미야(이케와키 지즈루)는 어른으로서 현재를 살아가는 중이다. 그리고 그들과 같은 시간을 공유하는 어린이들이 있
[people] 가족이라는 영원한 화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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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어수선하고 일이 안 풀릴 때 운세를 보면서 미래를 점치게 된다. 할 수만 있다면 아마 이 세상도 자신의 운세를 점쳐보고 싶지 않을까 한다. 세상의 미래를 예견하는 작은 기록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미래는 한눈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지나쳐버린 것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데 있다고, 이 기록들은 말하는 듯하다. 독립다큐멘터리 영화축제, 인디다큐페스티발2016이 3월24일(목)부터 31일(목)까지 8일간 롯데시네마 홍대입구에서 열린다. 따끈한 국내신작전 31편을 포함해 총 55편의 작품이 관객을 기다린다. 신작전 총평을 통해 이미 사적 다큐멘터리의 강세가 예고된 가운데 올해 포럼기획전에서는 ‘포스트-멜랑콜리아’라는 제목으로 동시대 사적 다큐멘터리와 에세이 필름의 경향을 짚어본다. 사적 다큐멘터리의 범람은 어쩌면 ‘사적’이라는 말에 내포된 기존의 구분법 자체를 무화하는 흐름은 아닌가. 포럼을 통해 이에 대한 반성적이고 생산적인 사유가 전개되길 기대한다.
[영화제] 한국 다큐의 초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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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토비 중학교의 입학식 날, 지역 수영 클럽의 에이스 하루카(시마자키 노부나가)를 향해 수영부를 비롯한 각종 부서의 러브콜이 쏟아진다. 하루카는 수영부 활동에 흥미가 없지만 부활동이 필수인 학교 특성상 친구들에게 떠밀려 큰 뜻 없이 수영부에 가입한다. 초등학생 때부터 함께 수영을 해온 하루카의 소꿉친구 마코토, 수영 클럽 활동으로 실력을 다져온 아사히, 수영부 부장 나츠야의 동생 이쿠야도 함께 수영부 활동을 시작한다. 각자 주 종목이 다른 넷은 팀을 이뤄 사노 중학교와의 혼계영 시합에 참가할 예정이다. 팀원간의 호흡이 무엇보다 중요한 혼계영 종목이지만 네 신입생은 성격도 실력도 수영에 대한 태도도 제각각이다.
총 2권으로 이뤄진 동명의 원작 소설 중 주인공들의 중학생 시절을 담은 2권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원작 소설은 <프리!>(1기 2013년, 2기 2014년)라는 제목의 TV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된 바 있다. <프리!>는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하고
스포츠 애니메이션이 취하는 공식 <하이 스피드!-프리! 스타팅 데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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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영국, 보수적인 여학교에 다니는 리디아(메이지 윌리엄스)와 아비(플로렌스 퓨)는 단짝이다. 하지만 내성적이고 조용한 리디아는 자유분방한 성격에 인기가 많은 아비가 한편 부럽기도 하다. 얼마 후, 아비가 갑작스럽게 리디아의 곁을 떠나게 되자 혼자 남겨진 리디아는 이유 없이 자꾸만 기절하는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내 이 증세는 리디아의 학교 친구들과 교사에게까지 번져간다.
<폴링>은 ‘보수적인 학교-반항적인 여고생’이라는 조합에 사춘기 소녀들의 불안정한 정신과 육체를 더해 더없이 완벽한 미스터리 공간을 만들어낸다. 학교에서 발생하는 ‘집단 기절’ 현상은 ‘분신사바’ 주문의 변주처럼 보인다. 하지만 영화는 미스터리를 파헤치기보다 몽환적으로 오컬트적 감수성을 전시하는 데 더 많은 공을 들인다. 이때 소녀들이 전염병처럼 경험하는 기절 현상은 일종의 의식에 가깝다. 이 의식을 통해 소녀들은 친구의 상실을 받아들이고, 성적으로 성숙해가는 자신의 몸을 받아들인다
‘1969년, 영국’ 학교에서 발생한 미스터리 현상 <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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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가을걷이에 한창인 숲속 마을. 나무 상자를 더덕더덕 기운 수제 자동차를 몰며 소란을 피우는 자가 있었으니 바로 개구쟁이 까마귀 깜이(남도형)다. 보잘것없는 카트를 타면서도 상상 속에서는 이미 최고의 레이서다. 마을 공동 양식을 관리하는 오소리 아줌마는 그런 깜이가 못마땅하다. 깜이가 카트를 몰다가 양식 보관 창고에 충돌하는 사고를 내자 참다 못한 오소리 아줌마는 ‘이기적인 아이’라며 깜이를 꾸짖는다. 깜이는 블랙베리 잼을 꺼내려다 설상가상 식량 창고를 무너뜨려 식량을 강으로 흘려보내는 실수를 저지른다. 때마침 마을에 나붙은 카트 경기 공고를 본 깜이는 우승상금으로 식량을 모을 요량으로 출전을 결심한다. 무쇠 다리 에디(서원석)와 만능 정비사 프랜시(김경희)가 깜이를 돕는다.
이 애니메이션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자동차 경주라는 명확한 경쟁구도를 소재로 하면서도 딴전을 피우듯 경주를 홀대한다는 점이다. 그사이 드러나는 것은 대조적인 두 친구의 유사성이다. 깜이는 레이싱을
숲속을 달리는 개구쟁이 친구들 <붕붕 달려라 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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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피틀 영화사의 총괄 제작자 에디 매닉스(조시 브롤린)는 어떠한 문제도 해결해내는 실력자다. 영화사의 대규모 영화 <헤일, 시저!>의 촬영이 진행되던 중에 주연배우 베어드 히트록(조지 클루니)이 사라지는 사건이 벌어진다. 으레 있던 잠적이라고 여기지만 스스로를 ‘미래’라고 칭하는 납치단은 거액을 요구한다. 에디의 신경이 곤두서 있는 사이, 감독 로렌스 로렌츠(레이프 파인즈)는 액션스타 호비 도일(엘든 이렌리치)의 발연기에 짜증을 내고, 인기 여배우 디애나 모란(스칼렛 요한슨)은 계속 스캔들을 일으킨다.
<헤일, 시저!>는 50년대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을 향한 애정으로 가득하다. 당시를 배경으로 삼은 영화는 웨스턴, 싱크로나이즈, 뮤지컬 등 50년대 인기 장르의 컨벤션을 모범적으로 구현한다. 역대급이라 할 만한 배우진은 모두 각자의 캐릭터를 능수능란히 소화해 코언 형제 특유의 지독한 유머를 마음껏 늘어놓는다. 그럼에도 <헤일, 시저!>의 주인공은
코언 형제 특유의 지독한 유머 <헤일, 시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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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명의 젊은이가 무리지어 거리를 내달린다. 그들은 ‘잘못한 것도 없는데’ 경찰을 피해 달리고 있고, 흩어져 도망치던 중 한명이 뺑소니를 당한다. 꽤나 전형적인 청춘영화처럼 보이던 <글로리데이>는 돌연 컴컴한 밤 길바닥에 피 흘리고 쓰러진 이를 비추면서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제 막 스무살이 된 용비(지수)는 해병대로 입대하는 상우(김준면)를 위해 친구들과 여행을 계획한다. 입대 하루 전 용비는 엄마의 눈초리를 피해 몰래 빠져나온 재수생 지공(류준열), 실력은 한참 떨어지지만 아버지 ‘빽’으로 대학 야구팀에 입단한 두만(김희찬), 홀로 남겨질 할머니에게 차마 입대 소식을 말하지 못한 상우와 함께 포항으로 떠난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가운데, 그들은 한밤중에 남편에게 구타당하고 있는 여자를 도와주다가 격렬한 몸싸움에 휘말리게 된다.
혈기 넘치는 친구들의 좌충우돌 소동극과는 거리가 멀다. 여행지에 도착해 바다 앞을 뛰어다니는 짧은 순간을 제외하고, 온통 어느 것 하
청춘이 직면한 어둠을 비추다 <글로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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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교사 오카노(고라 겐고)는 반 아이들이 일으키는 고약한 말썽과 부모들의 무례한 태도에 매일매일이 힘겹다. 교사로서의 사명감도 자꾸만 희미해져 가던 어느 날, 방과 후에도 집에 가지 못하고 학교에 혼자 남아 있는 소년을 발견하고 다가가 말을 건다. 엄마가 일하러 간 오후, 새아빠와 함께 지내야 하는 소년은 집에 돌아가기가 무섭다. 엄마가 두려운 소녀도 있다. 사람들에겐 상냥하기 그지없는 미즈키(오노 마치코)는 어린 딸에겐 더없이 가혹한 엄마다. 하지만 또래 아이를 키우는 이웃집 친구 요코(이케와키 지즈루)를 알게 되면서 미즈키의 마음은 점점 더 복잡해져만 간다.
재일동포 3세 오미보 감독이 만든 <너는 착한 아이>는 ‘아동학대’라는 민감한 소재를 담고 있지만 이 소재로 이목을 끌어보려는 못된 야심이 없는 보기 드문 영화이다. 이 영화에는 아동학대가 일어나는 원인을 무리하게 이해하려는 시도도, 처벌의 잣대를 들이대 심판하려는 태도도 없다. 대신 오미보 감독은 최선
상처받은 이들을 따뜻하게 끌어안는 행위 <너는 착한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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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닉> Chronic
감독 미셸 프랑코 / 출연 팀 로스, 사라 서덜런드 / 수입•배급 씨네룩스 / 개봉 4월14일
죽음을 앞둔 환자들을 헌신적으로 돌보는 호스피스 간호사 데이비드(팀 로스)는 환자의 삶에 자신의 삶을 이입하고 환자의 아픔을 곧 자신의 아픔으로 치환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런 데이비드의 태도가 지나치다고 생각한 환자의 가족은 그의 행동을 오해하고 그가 환자를 학대했다며 고소한다. 직장을 잃은 데이비드는 지인의 소개로 다시 호스피스 간호사로 복귀하지만 새로 맡은 환자는 그의 과거를 이용해 감당하기 힘든 요구를 한다. <다니엘과 안나>(2009), <애프터 루시아>(2012), 두편의 영화로 칸국제영화제가 주목하는 이름이 된 미셸 프랑코는 호스피스 간호사의 시선으로 삶과 죽음을 이야기한 <크로닉>으로 제68회 칸국제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했다. 애초 호스피스 간호사는 여성 캐릭터로 그려질 계획이었으나 <크로닉>의
[Coming Soon] 제68회 칸국제영화제 각본상 수상작 <크로닉> Chron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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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수록 멋있어지는 배우를 꼽으라면 가장 앞줄은 당연히 조지 클루니의 몫이다. 해마다 ‘섹시한 남자’ 순위를 꼽을 때 빠져본 적이 없는 그는 아무리 망가뜨려도 망가지지 않는 배우 중 한명이다. <오! 형제여 어디에 있는가?>(2000), <번 애프터 리딩>(2009), 신작 <헤일, 시저!>까지 코언 형제와 만날 때면 허당기 넘치는 바보 연기를 주로 해왔지만 그럼에도 그의 아우라는 좀처럼 흐트러지지 않는다. 아무리 멍청해도 섹시한 건 섹시한 것, 아니 때론 멍청할수록 더 섹시해지기도 하는 법이니까. 이 모든 이미지는 <NBC>의 메디컬 드라마 <ER>(1994)에서 닥터 로스 역을 맡은 순간부터 시작됐다. 33살의 그저 그런 조연배우였던 조지 클루니는 이 역할로 한순간에 ‘가장 섹시한 의사’로 거듭나며 늦깎이 스타덤에 올랐다. 물론 그 후 영화계에서도 순항한 건 전적으로 그의 재능이지만, 한쪽 입꼬리만 살짝 올리던 닥터 로스
[메모리] 미소는 늙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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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에 성장기를 보낸 내가 가장 많이 들은 말은 곧 21세기가 온다는 것이었다. 대한민국은 강대국이 되고 누구나 충분히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말. 성차별이 사라질 거라는 말도 많이 들었다. 첨단기술에 대한 낙관론도 있었다. ‘21’은 마법과도 같은 숫자였다. 그때가 오면 모든 문제가 일시에 사라지기라도 하는 양 당시의 어른들은 새로운 시대가 올 거라고 말했다. 나는 대충 흘려들으면서도 때가 되면 그 말대로 될 거라고 생각했다. 마법처럼.
그리고 21세기가 되었다. 수없이 많은 일들이 있었다. 긍정적인 일들은 별로 생각나지 않는다. 날짜 탓인지 5년 전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떠오른다. 시간이 흘렀음에도 이 일은 우리에게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생선이 테이블에 올라올 때마다 어떤 사람들은 잊지 않고 방사능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린다. 한창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가 진행 중일 때, 나는 이 글을 어떤 내용으로 채울 수 있을지 궁금했다. 섣불리 낙관할 수는 없었지만 단상
[한유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밝은 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