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보, 우리 이민 가자.” 올해 초, 회사를 그만두고 학업을 다시 시작한 아내를 졸랐다. 아내가 이유를 물었다.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늙어서 회사를 그만두면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답도 없는 데다가 이놈의 나라는 더이상 희망이 없다고 대답했다. 아내는 “언제 나라 걱정 했냐”면서 “어디로 가고 싶냐”고 물었다. 유럽의 많은 청년들이 창업을 하기 위해 향하는 기회의 땅, 독일 베를린이 먼저 떠올랐다. 그 얘길 기다렸다는 듯 아내의 잔소리가 속사포처럼 나왔다. “기회의 땅? 거기서 뭐 먹고살 거야? 김밥천국? 김밥 말 줄 알아? 내가 요리하면 된다고? 서빙은? 네가 하면 된다고? 독일어는? 독일어 배울 거라고 얘기한 지가 언젠데.” 음, 실패다, 작전 변경. 아내가 유학을 갈 코스타리카로 조타수를 돌렸다. 전 국토의 80%가 국립공원인 데다가 커피농사가 국가의 주요 산업이라고 하니 그거라도 배워서 살면 괜찮겠다 싶었다. 미국 중산층의 상당수가 은퇴하면 가장 가고
[도서] 외국 생활도 만만치 않다
-
<범죄의 재구성>(2004)과 <타짜>(2006), <도둑들>(2012)은 프로페셔널 범죄자들이 모여 계획을 짜고 목표를 탈취하는 강탈영화(Caper Film)의 틀 안에서 인물간의 치정과 배신을 펼쳐놓은 작품들이다. 돌이켜보면 이점은 사뭇 의아함을 자아낸다. 능숙한 이야기꾼으로서의 재기를 인정받아왔지만 정작 최동훈의 필모그래피 면면을 들여다보면 영화의 내러티브 자체는 고전적인 필름누아르, 하드보일드 문학의 자장을 벗어나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이야기 자체를 독창적으로 만들어내는 작가라기보다는 전통적인 틀 안에 머물면서 그 안의 인간 군상으로부터 재미를 이끌어내는 연출가에 가깝다.
관계-사이(間)의 영화 - 최동훈, 혹은 하워드 혹스
독립군 요원의 암약을 그린 <암살>(2015)에서도 이러한 최동훈 영화의 특징은 반복된다. 소집된 독립군 일원은 친일파 사업가 강인국(이경영)을 표적으로 삼아 연대하나, 내부 배신자에 의해 위기에 처한
[조재휘의 영화비평] 시대극으로서는 아쉬운
-
제11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개막작인 김대현 감독의 <다방의 푸른 꿈>은 이난영이 부른 노래의 제목을 빌린 영화다. 해방 전후 최고 스타였던 가수 이난영이 자신의 딸들과 조카를 데리고 만든 국내 최초의 여성 보컬그룹 김시스터즈의 성공기를 그린 다큐멘터리다. 다수의 독립 단편영화를 연출하고, 일찍부터 단편영화 배급 활로를 개척한 김대현 감독이 극영화 <살인의 강>(2010), 다큐멘터리 <한국번안가요사>(2012)에 이어 만든 세 번째 장편이다.
-한국 현대사의 비극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 어떻게 하다 근대음악사로 옮겨갔나.
=분명한 주제만 잡는다면 다큐멘터리를 찍는 게 극영화를 만드는 것보다 완성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대중문화사가 정치•사회적인 맥락에서만 다뤄진 데 대한 아쉬움도 있었다. 실제로 근대음악사를 조명한 다큐멘터리도 많지 않았고, 음악 다큐멘터리가 주로 인디밴드에 대한 걸로 편향되는 경향에서 벗어나고 싶단 마음도 있었다.
-그
[people] 번안가요에 대한 관심이 근대음악사까지
-
영화
<대호>(2015)
<암살>(2015)
<우는 남자>(2014)
<베를린>(2012)
<도둑들>(2012)
<마이웨이>(2011)
<고지전>(2011)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태극기 휘날리며>(2004)
드라마
MBC <로드 넘버 원>(2010)
액션영화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소품이 바로 총이다. 특히 <암살>에서 총은 또 하나의 주인공이나 다름없다. 등장인물 모두가 캐릭터 성격에 부합하는 총을 들고 싸우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고로, 현장에서 총기를 관장하는 스탭의 임무 또한 막중해진다. 최근 한국영화 감독들이 시나리오에 총을 등장만 시켰다 하면 일단 총기 담당 이주환 실장을 섭외한다. 감독이 원하는 총기를 수소문해 촬영장 배우들 옆에 어떻게든 갖다놓는 것이 이주환 실장의 일이다. 최동훈 감독 역시 그를 만나 영화에 반드시 등장
[STAFF 37.5] 총이 곧 시대와 인물이다
-
-
“김상진 영화의 서사적 원형에는 꼰대들에 대한 반항이자 아웃사이더들에 대한 애정이라는 ‘정치성’이 자리잡고 있다.”(영화평론가 변성찬, <씨네21> 472호) “<주유소 습격사건>(1999)의 주인공들이 주유소를 터는 이유, ‘그냥’이라는 태도는 그 이후 한국 갱스터 코미디물들에 반영되어 있다.”(영화평론가 달시 파켓, <씨네21> 688호) 자신만의 스타일로 한국형 코미디의 한 전형을 만들어낸 김상진 감독이 돌아왔다. 이번에는 고교 동창생인 세 남자가 30대 초반이 돼 벌이는 3일간의 일탈기, <쓰리 썸머 나잇>(2015)이다. 기존 체제를 비틀어 코믹하게 풀어내던 전작들과 비교하면 훨씬 가벼워진 설정으로 편안한 웃음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게 감독의 설명이다. 장르영화 시장이 급속도로 붕괴되고 있는 지금의 한국영화계에서 코미디물로 한 우물을 파고 있는 그의 복귀가 반가우면서도 아쉽다. 그가 대표로 있으면서 <광복절특사>(2002)
[김상진] 코미디로, 아주 끝까지
-
흔히 ‘실험영화’라 뭉뚱그려 부르는 영화들은 사실 매우 다양한 결들을 갖고 있다. 오는 8월6일(목)부터 14일(금)까지 열리는 제15회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이하 ‘네마프’)은 각 영화들이 실제로 어떤 형식들을 사용하는지에 대한 각양각색의 사례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올해 네마프는 지난해 세상을 떠난 하룬 파로키 감독의 <노동의 싱글숏>(2011~14)을 시작으로 인디스페이스, 미디어극장 아이공 등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특별히 ‘알랭 카발리에 회고전’은 8월8일(토)부터 12일(수)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이뤄진다.
이번에 만나는 총 113편의 상영작 중 인상적인 건 영화가 만들어진 지역의 구체적인 문제를 다룬 작품들을 전면에 배치했다는 점이다. 이 작품들은 단순히 ‘선과 악’, ‘좌와 우’의 프레임을 사용하는 걸 넘어 현실과 직면한 문제들이 내포하는 복잡한 맥락을 드러낸다. 먼저 개막작인 <노동의 싱글 숏>은 하룬 파로키 감독이 안트예 에만과
[영화제] 낯설고 설레는 인간을 만나는 순간
-
제17회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가 8월5일부터 12일까지 8일간 CGV신촌아트레온,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열린다. 이번 영화제는 임금 체불과 관련된 논쟁과 영화진흥위원회 예산 삭감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딛고 시작됐다. 공모를 통해 선정된 올해의 슬로건 ‘keep on going’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영화제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다짐이 담겼다. 총 41개국 188편의 영화가 상영되며 개막작은 <주온>을 만든 시미즈 다카시 감독의 <마녀 배달부 키키>(2014)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만든 동명 애니메이션을 실사화한 것이다. 키키는 마녀 엄마와 평범한 아빠 사이에서 마녀가 될 가능성을 안고 태어난다. 13살이 된 키키는 마녀가 되기로 결심한다. 마녀가 되기 위해서는 1년간 홀로 낯선 곳에서 살아야 한다. 키키는 고양이 지지를 빗자루 뒤에 태우고는 모험을 떠난다. 우여곡절 끝에 오소노의 베이커리에 당도한 키키는 그곳에서 배달 업무를 맡는다. 우편물을 받아들었을 때 사람들이 짓
[영화제] 십대의 눈으로 본 세상
-
미국 첩보기관 IMF의 요원 에단 헌트(톰 크루즈)는 작전 수행 도중 의문의 단체에 납치당한다. 자신을 공격한 단체가 미지의 테러조직 '신디케이트'임을 직감한 그는 정체 모를 의문의 여인 일사(레베카 퍼거슨)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다. 이 소동을 알 길 없는 CIA와 미국 정부는 IMF를 해체시켜버린다. 아무런 소속 없이 하루아침에 CIA의 위험인물로 간주된 에단은 신디케이트 조직과 CIA 양쪽으로부터 모두 추적당하는 신세가 된다. 그로부터 몇 개월 뒤, 돌연 사라졌던 에단이 갑자기 나타나 전략 요원 브랜트(제레미 레너)와 IT요원 벤지(사이먼 페그), 그리고 해킹 요원 루터를 오스트리아와 영국 등지로 불러모은다. 신디케이트 소탕 작전은 에단의 지휘 아래 비밀리에 진행되지만 어디선가 또다시 나타난 의문의 여인 일사가 에단 일행을 방해하기 시작한다.
영화는 고전적인 첩보 스릴러 장르의 향취를 그대로 재현해내면서도 액션영화로서의 매력 또한 포기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톰 크루즈는 실제
미지의 테러조직 신디케이트 소탕 작전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
-
광역수사대 형사 서도철(황정민)은 중고차 불법 매매 사건을 처리하고 한숨 돌리던 차에, 알고 지내던 화물 트럭 운전사인 배 기사(정웅인)의 어린 아들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배 기사는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하청업체로부터 밀린 임금도 받지 못하고 해고 통지를 받고, 부당 해고에 항의하기 위해 본사인 신진물산 앞에서 1인시위를 벌이다 신진물산의 기획실장인 조태오(유아인)의 눈에 띄어 변을 당한다. 아내에게 문자를 남긴 채 신진물산 건물에서 투신자살을 시도했다는 배 기사의 사정을 알게 된 서도철은 이 사건이 힘없는 노동자의 단순 투신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챈다. 자신의 재력과 권력을 믿고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재벌 3세 조태오와 그의 오른팔 최 상무(유해진)는 돈으로 사건을 조용히 덮으려 하지만,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며 목에 핏대 세우는 서도철은 오 팀장(오달수), 미스 봉(장윤주), 왕 형사(오대환), 윤 형사(김시후) 등 광역수사대 식구들과 함께 사건을 끝까지 물고
윤리와 도덕을 상실한 특권층을 향해 퍼붓는 통쾌한 액션 <베테랑>
-
명탐정 코난과 괴도 키드가 고흐의 그림을 두고 대결을 벌인다. 영화는 2차대전 당시 일본 효고현 아시야 시에서 불에 타 사라진 고흐의 <해바라기>를 기적적으로 다시 발견했다는 가상의 설정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어김없이 괴도 키드가 나타나 그림을 훔치겠다는 예고를 한다. 코난은 키드의 범행에 대비하던 중 다른 범죄자의 존재를 눈치채고, 동시에 아시야의 <해바라기>를 둘러싼 슬픈 사연이 드러난다.
<명탐정 코난>의 19번째 극장판인 <명탐정 코난: 화염의 해바라기>는 코난과 괴도 키드의 대결을 다시 한번 그린다. 하지만 시리즈의 팬이라면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결정적인 순간 코난과 괴도 키드는 공통의 목적을 위해 힘을 모으고, 결과적으로 영화는 두 사람의 각기 다른 매력을 동시에 부각하는 전략을 취한다. 또한 이 과정에서 코난과 키드, 여주인공 란과의 삼각관계를 암시하는 등 앞으로도 두 라이벌의 흥미로운 관계는 계속 이어질
고흐의 그림을 두고 벌이는 코난과 괴도 키드의 대결 <명탐정 코난: 화염의 해바라기>
-
파리 출신의 세련된 여인 셀레스틴(레아 세이두)은 시골에 있는 랑레르 부부의 집에서 하녀로 일하게 된다. 자존심 강한 셀레스틴에게는 음흉한 속내를 감추려고도 않는 변태적인 랑레르(에르베 피에르), 신경질적인 랑레르 부인, 무뚝뚝한 집사 조제프(뱅상 랭동) 등 그곳의 모든 것이 혐오스럽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갑작스런 어머니의 부고로 의욕을 상실한 셀레스틴은 랑레르 부부의 집에도 그럭저럭 적응해가고, 어느 날부터인가 조제프의 수상쩍은 행동을 눈여겨보기 시작한다.
옥타브 미르보가 쓴 동명의 소설을 장 르누아르, 루이스 브뉘엘에 이어 브누아 자코가 세 번째로 영화화한 작품이다. 전작 <페어웰, 마이 퀸>(2012)에서 그랬듯 브누아 자코는 주요 사건들을 관객과 주인공 앞에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셀레스틴도 마을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대해 여인네들이 떠들어대는 풍문을 전해듣거나 그저 어림짐작할 뿐이다. 셀레스틴의 과거사도 잦은 플래시백을 통해 관객 앞에 슬쩍 던져놓는다. 별
현대적 뉘앙스와 특유의 스타일로 사회의 모순을 꼬집다 <어느 하녀의 일기>
-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라프 시몬스가 합류한다. 오랫동안 수석 디자이너였던 존 갈리아노가 반유대주의 발언으로 해임된 이후 디오르는 질 샌더에서 남성복을 디자인하던 시몬스를 디오르의 새 얼굴로 불러들인 것이다. 미니멀리스트인 시몬스는 8주 뒤의 오트 쿠튀르 컬렉션에서 갈리아노 특유의 실험적이고 낭만적인 디자인이 지배하던 디오르에 새바람을 불어넣어야 한다는 책임을 안게 된다. 시몬스는 낯선 크루, 경험 없는 모델과 일하며 혁신적인 컬렉션을 완성해야 한다는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그런 와중 창립자 디오르의 오리지널 디자인에서 영감을 얻어 컬렉션을 준비한다.
감독 프레데릭 청은 <발렌티노: 패션계의 마지막 황제>(2008), <패션 여제, 다이애나 브릴랜드>(2010) 등 지속적으로 패션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왔다. 그는 시몬스에게서 창립자 디오르가 회고록 <크리스티앙 디오르와 나>를 통해 밝혔던 “디자이너 디오르와 자연인 디오르 사이
디올의 오트 쿠튀르 컬렉션 준비 과정을 담은 패션 다큐멘터리 <디올 앤 아이>
-
아일랜드 감독 이반 캐바나는 가족을 모티브로 한 힘 있는 드라마와 독창적인 호러를 오가며 필모그래피를 구축해왔다. 그 두축이 만난 듯한 새 영화 <더 커널> 역시 그의 솜씨가 여실히 드러난 작품이다. 영상자료원에서 일하는 데이빗(루퍼트 에반스)은 낡은 필름을 보다가 자신의 집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에 대해 알게 된다. 아내의 외도를 참지 못하고 일가족을 살해한 100년 전 사건. 이에 사로잡힌 데이빗의 두려움이 커지던 와중, 아내 앨리스(한나 훅스트라)의 외도를 목격한 그는 전율한다. 다음날 연락도 없이 사라졌던 아내가 집 근처 냇가에서 익사체로 나타나고, 경찰은 데이빗을 범인으로 의심한다. 데이빗이 필름에서 본 사건에 더 가깝게 다가갈수록 그의 집과 아들 빌리(캘럼 히스)를 둘러싼 이상한 기운은 커져만 간다.
<더 커널>은 흔한 호러들처럼 단도직입적인 공포와 거리가 멀다. 이야기의 무게를 심리 추리극과 호러 사이에 절묘하게 걸친 채 극을 진행한다. 필름 속 사
힘 있는 드라마와 독창적인 호러의 만남 <더 커널>
-
일본 고교 야구의 성지 고시엔 입성을 위해 땀 흘리던 가와고에 고교 야구부는 돌연한 사건으로 인해 출전을 포기한다. 28년 후, 사건의 원인이었던 노리오의 딸 미에(하루)가 당시의 주장 사카마치(나카이 기이치)를 찾아와 야구부 출신의 사회인들이 출전하는 마스터스 고시엔의 참여를 제안한다. 사카마치는 바로 거절하지만, 미에의 지친 모습을 보며 오랜 오해로 만나지 못한 딸을 떠올린다. 그는 옛 동료들을 만나며 야구를 향한 마음이 식지 않았음을 깨닫고 마스터스 고시엔 출전을 결심한다.
고시엔은 고교생의 기운찬 모습과 스포츠의 박진감을 동시에 구현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일본영화의 대표적인 소재로 자리매김했다. 학창 시절 꿈을 접었던 중년들이 주인공인 <어게인: 끝없는 도전>(이하 <어게인>)은 이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고시엔 영화의 관습을 고스란히 비껴간 채 진행된다. 28년 전 사연으로 돌아가는 신들은 고교 야구 선수들이 마운드를 뛰어다니는 모습이 아닌, 사랑하
학창 시절 꿈을 접었던 중년들 다시 꿈의 무대에 서다 <어게인: 끝없는 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