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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영화제 데일리 마지막 9호를 작업하며 이 글을 쓰고 있다. 풍성하고 즐거운 만남이 올해도 변함없이 이어졌고 <씨네21> 또한 영화제와 함께 스무살을 맞은 해라 그 기분이 더 특별했던 것 같다. 하지만 영화제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데일리 사무실로 비보가 날아들었다. 데일리 후반부를 책임진 신두영 편집기자에게 서울로부터 “차 좀 빼달라”는 한 낯선 남자의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빨리 KTX 타고 가서 차 빼줘야 하는 거 아니냐”는 손홍주 사진부장의 걱정까지, 그렇게 이런저런 에피소드와 함께 영화제가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물론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의 주차 문제여서 굳이 ‘서울행’을 할 필요는 없었음도 밝혀둔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 특집을 보면 알겠지만, 올해 부산은 그야말로 화려한 게스트들의 성찬이었다. 지난해에 이어 특집호 커버를 장식한 탕웨이를 비롯해 하비 카이틀, 나스타샤 킨스키, 소피 마르소, 나가사와 마사미 같은 배우들은 물론 허우샤오시엔, 지아장
[에디토리얼] 부산에서 띄우는 첫 번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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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코/펑크 밴드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리더 나잠 수가 애니메이션 <안녕, 전우치! 도술로봇대결전>(이하 <안녕, 전우치!>)의 음악감독으로 데뷔했다. 술탄 오브 더 디스코는 2006년 파격적인 아라비아풍 컨셉과 흥 넘치는 립싱크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인디신의 이단아로 등장한 밴드다. 멤버 보강을 거치며 2010년 발매한 EP 《그루브 오피셜》부터 라이브 밴드로 변화한 그들은 2013년 정규 1집 앨범 《The Golden Age》를 통해 1960~70년대 레트로풍의 음악색을 본격적으로 드러냈고, 2014년에는 한국 뮤지션 최초로 영국 최대 음악페스티벌인 글래스톤베리페스티벌에 초청되기도 했다. 독보적인 색채의 음악과 ‘똘기’로 무장한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리더 나잠 수는 어떤 사람일까. 공연에서 보여준 이미지와는 딴판으로, 얼굴에서 장난기를 지워내고 단정한 재킷을 갖춰 입은 그를 붕가붕가레코드 사무실에서 만났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공연 당시 술탄 오브
[trans × cross] 한국 대중음악 퍼즐의 한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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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변호사다. 셰프부터 의사, 건축가, 형사 등을 두루 맡아온 ‘전문직’ 전문 배우 이선균이 <성난 변호사>로 돌아왔다. 드라마 <파스타>에서 샘 킴 셰프에게 직접 칼 쓰는 법과 요리를 배웠고, <하얀 거탑>과 <골든타임>에선 수술을 참관하며 의학지식을 익혔던 그는 이번 <성난 변호사>에선 재판을 참관하는 데서 나아가 교회 설교, 각종 홈쇼핑 및 토크쇼를 섭렵했다. 그렇게까지 한 이유는 “뛰어난 언변으로 법정을 압도하는 변호사 ‘변호성’ 캐릭터를 제대로 소화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새로운 옷을 입고 관객과 마주할 준비를 마친 이선균을 만났다.
<성난 변호사>의 변호성은 ‘이기는 게 정의’라는 신념하에 돈 냄새 나는 사건만 맡아 일사천리로 해결하는 능력 있는 변호사다. 제목만 보면 본격적인 법정 드라마 같지만, 이 변호사는 발로 뛰어야 하는 사건에 맞닥뜨리고 급기야 구르고 깨지며 몸을 혹사시킨다. 가히 <
[이선균] 스펙트럼을 넓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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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때 가장 듣기 싫은 말 1위가 “너 요새 뭐하니?”였단다. 청춘이란 곧 청년실업(혹은 3포)이란 공식이 생리가 되어버린 작금이기 때문이겠지만, 사실 영화인들에게 저 생리란 경기를 타지 않는 생의 사실이다. 공상하고 궁상 떨고 꿈꾸는 게(때로는 악몽이지만) 직업인 영화인들은 몇번의 명절을 지나도 철들지 않는 철부지 어린이나 같기 때문이다. 철부지가 직업병이라. 그걸 다시 되새기고 싶었을까. 추석날 나만의 성장영화들을 다시 꺼내보며, 차례상 배추전을 팝콘 대용으로 처먹었던 나는 여전히 철부지인가?
가출하고, 장례 지내고, 귀가하기
먼저 성장영화는 가족영화가 아니다. 성장영화에서 가족은 언제나 분열적으로만 등장하며, 성장을 임무로 하는 어린이 주인공에 대해 으레 적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스탠 바이 미>에서 아버지는 주인공에게 “형 대신 네가 죽었어야 했어”라고 말한다. <굿 윌 헌팅>에서 주인공에게도 적이란 자신을 학대하던 아버지였고, 나아가 자신을 멸
[곡사의 아수라장] 대지에서 하늘로 내리는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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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관 감독이 <조금만 더 가까이>(2010) 이후 오랜만에 장편 <최악의 여자>(가제, 제작 인디스토리)로 관객과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최악의 여자>는 어떤 관계 속에 있느냐, 어떤 사람과 만나느냐에 따라 같은 사람도 다르게 행동한다는 점에 착안한 멜로드라마다.
-여주인공 은희가 세명의 남자들과 얽히고설키며 내적인 갈등을 겪는다는 영화의 내용은 어떻게 구상하게 됐나.
=<조금만 더 가까이>의 은희(정유미)와 현오(윤계상)의 에피소드를 연장시켜봤다. <최악의 여자>는 하루라는 한정된 시간 동안에 인물들이 갈등하는 이야기다. 서로가 어떤 관계이냐에 따라 동일 인물도 상대에게 다른 면모를 보이기 마련인데 그걸 영화로 풀면 재밌겠더라. 여기에 거짓말을 하다가 궁지에 몰리게 되는 여자의 이야기를 같이 엮어봤다.
-<조금만 더 가까이>는 단편들을 엮은 옴니버스물이다. 그래서인지 이번 작품이야말로 긴 호흡으로 찍는
[씨네스코프] 과연 최악의 여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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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가헌 갤러리요? 저도 어디 있는지 모르는데, 알 수 있을 거 같아요. 팔로, 팔로 미….” 은희는 서울의 모든 풍경이 낯선 료헤이를 이끌고 골목길로 접어든다. 경쾌한 걸음으로 나아가는 두 사람 앞에 어떤 길이 펼쳐질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촬영하다가 담고 싶은 순간들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웃음)” 김종관 감독이 자신의 스틸 카메라로 이와세 료와 한예리의 한때를 찍어둔다. 그러다 또 모르잖나. <최악의 여자>의 포스터 컷이 이 순간 탄생할지도.
은희 덕에 료헤이가 무사히 도착한 이곳은 료헤이의 책 출간 기념회장. ‘안 팔리는’ 소설가 료헤이는 등 뒤에서 곧 자신을 부를 출판사 담당 편집자 규환(김준범)과의 어색한 만남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촬영장도 서촌, 숙소도 서촌. 아침에 일어나면 까치가 정말 귀엽게 울어요. 서촌이 제2의 고향 같습니다. 하하하.” 쉬는 시간, 서촌 예찬에 즐거워하던 이와세 료. 하지만 촬영에만 들어가면 소설가 료헤이로
[씨네스코프] 서촌에서 펼쳐지는 세 남자와 한 여자의 연애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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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식이 열리고 있는 영화의 전당.
개막식 사회를 보고 있는 송강호와 마리나 골바하리. “(개막식 공연을 보고) 한국 전통 공연을 처음 보았는데 매우 아름답고, 성악과의 앙상블이 훌륭하다.”(마리나 골바하리) “국악과 성악의 아름다운 조합처럼 다양한 영화가 어우러진 부산국제영화제가 되길 기원한다.”(송강호)
“베를린과 부산은 오랜 시간을 함께했습니다. 부산이 처음 출발할 때 김동호 집행위원장님께서 베를린에 오셔서 많은 노하우를 받아가셨던 기억이 납니다.” 한국영화공로상을 수상한 베를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부문 빌란트 쉬펙 집행위원장.
개막작 <주바안>팀.
<산하고인>의 지아장커 감독, 배우 자오타오, 장역(오른쪽부터).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을 받은 스튜디오 지브리 스즈키 도시오 대표.
중국영화 <나쁜 놈은 반드시 죽는다>(감독 손하오)에 출연한 손예진.
<화려한 샐러리맨> <세 도시 이야기> 등 두
[씨네스코프] 스무살의 영화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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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토피아> Zootopia
감독 바이런 하워드, 리치 무어 / 목소리 출연 지니퍼 굿윈, 제이슨 베이트먼
디즈니의 55번째 애니메이션. 동물낙원 주토피아의 토끼 주디 홉스는 경찰이 되지만 강한 동물들 사이에서 열등감을 느낀다. 영화는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사건 해결에 매진하던 중 여우 닉 와일드를 만나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주먹왕 랄프>의 리치 무어 감독과 <라푼젤>의 바이론 하워드 감독이 공동 연출을 맡아 기대를 모은다. 유명 가수 샤키라도 가젤 역으로 목소리 출연을 한다. 2016년 3월4일 북미 개봉예정. 내년 2월경 국내에서 먼저 개봉한다.
[WHAT'S UP] 디즈니의 55번째 애니메이션 <주토피아> Zooto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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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렉트로닉 댄스가 기존의 주류 음악들을 뒤흔들고 있다. 밴드들이 신시사이저를 탑재하기 시작했고 힙합 아티스트들도 하우스 히트곡 하나 정도는 갖고 있다. 주류로 올라간 일렉트로닉 댄스는 변화를 주도하는 동시에 변화를 ‘당하고’ 있다. 디스클로저의 2집 앨범 《Caracal》은 이에 대한 훌륭한 예시다.
일단 이 앨범은 클럽뿐만 아니라 일반 팝 팬들을 위해서도 만들어졌다. 멤버 가이 로렌스는 앨범 발표 전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이번 앨범에는 클럽 음악이라고 할 만한 곡은 없습니다. 물론 클럽 음악에 영향받은 곡들이죠. 댄스 비트를 쓰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전부 <Latch>나 <White Noise>처럼 완전한 팝 구조를 가진 곡들입니다.” 주류 시장에서도 통할 만한 대중적 팝의 요소를 강조했다는 뜻이다.
참여한 보컬들도 글로벌급 슈퍼스타들이다. <Noctural>에는 위켄드가, <Magnets>에는 로드가, <Hol
[마감인간의 music] 일렉트로닉 댄스의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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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사도> 비운의 왕세자
[정훈이 만화] <사도> 비운의 왕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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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먼 남도에서 상경하여 박봉으로 소문난 업계에서도 평균을 밑도는 월급을 받으면서 어찌된 일인지 서울 시내 다가구 주택 소유주가 된 동료가 있었다. 서울 생활 20년, 그에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절대 지갑을 열지 않아 ‘이 첨지’(첨지라고 하면 왠지 얄밉게 들려서 이 첨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던 출판사 디자이너 이씨는 열살 어린 부하 직원이 커피를 사러 가면 어떻게 알았는지 컵을 들고 따라가 절반을 갈취했고, 평일엔 구내식당에서, 주말엔 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했으며 부족한 단백질은 법인카드를 쓰는 야근 저녁이나 회식에서 3인분을 한꺼번에 먹으면서 보충했다.
그는 일도 열심히 했다. 월급이란 어차피 노는 이에게나 일하는 이에게나 공평한 것, 그러니 회사 일은 대충 하거나 부하 직원에게 떠넘겼고, 그렇게 남는 시간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늦게까지 회사에 남아 법인카드로 저녁을 먹곤 했다. 그러다가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하고 놀러 나가기 전에 옷 갈아입으러 돌아온 사장에게 들키면
[김정원의 도를 아십니까] ‘성실한 나라의 리처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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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870년 콜로라도로 배경이 명시돼 있긴 하지만, <슬로우 웨스트>의 서부는 시공을 초월한 이민자들의 혹성처럼 보인다. 스코틀랜드에서 사랑과 희망을 찾아 콜로라도까지 온 열여섯 소년 제이(코디 스밋 맥피)는 아일랜드 혈통의 현상금 사냥꾼, 프랑스어로 노래하는 아프리카인, 북구에서 온 굶주린 가족, 독일계 지식인과 차례로 조우한다. 이들 대부분은 생존 이외 삶의 의미를 잊은 지 오래다. 한편 이 영화의 실제 로케이션은 뉴질랜드-중간계다. 낯선 별에 떨어진 순진한 영혼은 실망을 견디며 순례를 계속한다. 광각으로 집채만 하게 찍힌 버섯에 다가가는 소년을 올려다보는 숏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삽화 같다. 이 희한한 서부극이 자연스레 환상성을 끌어들이는 순간 중 하나다.
09/09
<사도>는 스스로 택한 역사적 소재의 어떤 부분이 호소력을 발휘하는지 상세히 살펴 착실하게 극화했다. 흔히 사극의 필수 구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부자상혐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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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2015)으로 일대 군상극을 벌인 마블 스튜디오는 또 다른 어벤져스 멤버들을 소개하며 전열을 재정비한다. <앤트맨>(2015)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세계에 간만에 등장한 단독 히어로영화다. 코믹스 원작에서의 앤트맨은 어벤져스 초창기 멤버이자 과학자로 울트론을 창조할 만큼 비중 있는 캐릭터였으니 도리어 영화화가 늦은 편이지만, 영화 버전으로 새롭게 각색된 <앤트맨>은 점차 매너리즘의 징후를 보이는 마블 슈퍼히어로영화에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는 데 성공했다. 회장 케빈 파이기의 지휘 아래 마블이 2019년까지의 장기적인 마스터플랜을 공개한 가운데, <앤트맨>은 앞으로 있을 마블 슈퍼히어로영화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를 점검할 수 있는 척도가 될 것이다.
혼성(hybrid) 장르영화로서의 <앤트맨>
첨단의 테크놀로지를 활용하는 미래형 활극이지만 공교롭게도 <앤트맨>의 바탕에
[조재휘의 영화비평] 끝없이 확장되는 마블의 퍼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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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기묘한 영화를 한편 꼽으라면 두말할 것 없이 <무서운 집>이다. 양병간 감독의 <무서운 집>은 지난 7월30일 단관 개봉 이후 온라인을 시작으로 컬트 팬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뉴타입 호러’를 표방한 이 영화를 두고 조롱과 찬사를 넘나드는 아슬아슬한 반응들이 쏟아진다. <클레멘타인> 등 역대 망작과 비교하며 ‘나만 당할 수 없다’는 심정으로 평점 9점을 주는 사람도 있고, 전복적인 상상력과 만듦새에 진심으로 찬사를 보내며 호응하는 이들도 있다. 평단의 호의적인 반응이나 블로거들의 심도 깊은 해석도 간간이 들려온다. 이 무시할 수 없는 목소리들의 근원이 장르 전복이건 꼴찌에 대한 위안이건 일탈에 대한 동경이건 사실 상관없다. 분명한 것은 <무서운 집>이 만들어낸 모종의 영화적 에너지가 사람들에게 어떤 감흥을 준다는 사실이다. 다양성, 진정성, 전복적인 화법 등 그것을 뭐라 부르건 간에 <무서운 집>이 퍼트리는 오묘한
[people] 호러를 찍었는데 코미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