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다보면 별일이 다 있어요. 나는 이 말을 좋아한다. 참 좋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가장 좋은 말인지도 모르겠다. 다른 그 어떤 말보다도, 이 말은 가장 어른스럽게 세상을 포용하고자 하는 태도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살다보면 별일이’까지는 그것 참 내 기준에서는 도무지 용납하거나 이해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며 고개를 가로젓는 듯하지만, 이내 ‘다 있어요’라며 어찌됐든 앞의 말을 껴안아 어루만지며 화해하려 애쓰는 것 말이다.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것투성이다. 그렇다고 내가 경험해보지 않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것이 곧 비정상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왜냐하면 살다보면
별일이 다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이 참 좋은 말이 가장 아름답게 쓰인 영화 가운데 하나를 골라보았다.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2007)다. 라이언 고슬링이 주연을 맡지 않았다면 훨씬 현실적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영화 속의 라이언 고슬링은 대단히 망가져 있으니 대충 용납해보기로 하자.
[허지웅의 경사기도권] 별일이 다 있다니까요!
-
[정훈이 만화] <마션> 삼시세끼 - 화성편
[정훈이 만화] <마션> 삼시세끼 - 화성편
-
‘왜?’는 감각보다 이성을 작동시키는 질문이다. 동기나 결과가 이성보다 감각에 호소하는 것일 때, 왜라는 질문은 설 자리를 잃는다. <맨 온 와이어>(2008)에서 세계무역센터 건물 위를 외줄로 건너는 일에 대해 제기된 ‘왜’라는 질문은 무력하다. 곡예사 필리프 프티는 ‘이유는 없다’는 말로 일단 자신의 행위를 보고, 느낄 것을 호소한다. <맨 온 와이어>는 한계와 아이디어, 기술이 만나 예술이 된 경우다. 한계에 도전하는 것은 인간의 감각적 본성이다. 한계가 곧 도전의 이유다. <에베레스트>(2015)에서도 이와 비슷한 문답이 등장한다. ‘왜 산에 가느냐’는 누군가의 물음에 등반가들은 ‘산이 거기 있으니까’라고 답한다. <맨 온 와이어>는 주인공의 노력과 줄타기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면서 왜 그의 행위에 이유가 필요 없는지를 납득시킨다. 그러나 <에베레스트>는 질문이 빠진 자리에 마땅히 보여줘야 할 것들을 보여주지 않는다.
상황
[김소희의 영화비평] 영웅도 없이, 스펙터클도 없이
-
시각효과(VFX) 하면 떠오르는 영화들이 있다. 사람들의 뇌리에 특수효과는 아직 <쥬라기 공원>(1993)의 충격과 <아바타>(2009)의 경이로움으로 남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영화산업은 찍는 영화에서 그리는 영화로 넘어간 지 오래다. CG는 그간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걸 보여주는 차원을 넘어 현실을 좀더 정교하고 경제적으로 구현하는 유용한 도구로 자리잡았다. 세계적인 시각효과 감독 중 한 사람인 토머스 호튼이 부산국제영화제와 미국영화협회(Motion Picture Association, 이하 MPA)가 공동 주최하는 제4회 BIFF-MPA 필름 워크숍의 강연과 멘토링을 위해 부산을 찾았다. MPA는 해마다 여러 전문가를 초빙해 영화학도에게 교육의 기회를, 실무진에겐 교류의 장을 제공하고 있다. 올해 초청자 중 한 사람인 토머스 호튼은 <킹스 스피치>(2010)의 시각효과를 담당했고 TV드라마 <다빈치 디몬스>로 왕립텔레비전협회상
[people] 현실을 더욱 현실답게 보여주는 기술
-
-
거의 20년이 다 되어가지만,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을 말할 때 <식스 센스>(1999)는 빠지지 않고 따라온다. 샤말란 감독은 이후 <언브레이커블>(2000), <싸인>(2002), <레이디 인 더 워터>(2006), <해프닝>(2008) 등의 미스터리 호러 장르를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 산하에서 꾸준하게 만들어왔고 상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두었다. <라스트 에어벤더>(2010)와 <애프터 어스>(2013) 이전까지는. 이 두편으로 아마 가능한 혹평이란 혹평은 모두 들었을 샤말란이 다시 그가 가장 자신있어하는 장르로 돌아온다. 2015년 샤말란 감독이 내놓은 두편의 영화 중 한편인 <더 비지트>다. 감독의 이름을 제외하면 익숙한 스타의 이름은 찾아보기 힘든 이 영화는 생전 처음 조부모를 찾아간 남매가 조부모의 집에서 겪는 이상한 일들을 그려낸 영화로, 9월 중순 미국에서 개봉해 조용히 호응을 이끌
[people] “이 영화의 장르는 파운드 푸티지 장르의 사촌 격”
-
정재영은 이미 <우리 선희>(2013)에서 선희(정유미)의 상대역 재학으로 홍상수 감독과 한 차례 인연을 맺었다. 그때 문수(이선균), 최 교수(김상중)와 함께 ‘선희의 남자’들 중 한명으로 등장한 것과 달리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에서는 영화감독 함춘수로 분해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역할은 달라졌지만, 늘어진 청바지도 그대로고 스타일링이라고는 모르는 부스스한 머리도 그때나 진배없이 익숙하다. 정재영은 홍상수 감독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많은 남자, 영화감독들 중 하나지만 연기의 톤은 조금 다르다. 김상경, 유준상, 이선균이 뻔뻔하거나 엉뚱한 속성으로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웃음을 주었다면, 그는 ‘이렇다 할’ 무언가로 특징지워지지 않는데, 웃음기를 제거한 그 사실적인 모습이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 새롭게 관객의 집중을 요구하는 지점이다.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는 1부와 2부가 ‘틀린그림찾기’의 A, B컷처럼 연속 구성되는 독특한 이야기다.
액션/리액션
-
악마는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1980년 미국, 어느 작은 마을의 경찰서에 사건 신고가 들어온다. 안젤라(에마 왓슨)가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것이다. 브루스 형사(에단 호크)는 즉시 용의자를 조사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는 자신의 행동을 기억조차 못한다. 이에 브루스는 ‘퇴행(리그레션) 최면’ 요법을 시도하는데, 그 결과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진다. 이 사건이 악마 숭배자들에 의한 조직 범죄일 가능성이 드러난 것이다.
<디 아더스>(2001), <씨 인사이드>(2004) 등을 연출했던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감독의 신작 <리그레션>은 악마 숭배와 최면이란 소재를 다루는 스릴러영화다. 둘 다 매우 자극적인 소재이지만 감독은 단순히 사건을 선정적으로 묘사하기보다 80년대 미국 사회의 우울한 그림자를 드러내는 데 더 큰 비중을 둔다. 즉 악의 끔찍함을 직접적으로 그리기보다는 ‘악마’를 부를 수밖에 없었던 시대와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내면을 포착하는
악마는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리그레션>
-
무명 사진작가 데니스(로버트 패틴슨)는 아직 ‘스타’가 되기 전의 제임스 딘(데인 드한)이 가진 독특한 매력을 먼저 알아본다. 흔한 홍보 사진에 지쳐 있던 데니스는 제임스 딘을 찾아가 특별한 사진을 찍어보자고 제안하고, 두 사람은 즉흥적으로 짧은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이 여행에서 우리가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는 제임스 딘의 어떤 이미지들이 만들어진다.
<모스트 원티드 맨>(2014)을 연출했던 안톤 코르빈 감독의 <라이프>는 제임스 딘의 인생 중 아주 짧은 시기에 집중한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제임스 딘의 화려한 인기나 갑작스러운 죽음과 같은 극적인 사건이 아니라 그의 비교적 덜 알려진 평범한 모습을 그린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영화는 조카와 책을 읽거나 술에 취해 잠든 모습과 같은 소박한 일상에 주목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제임스 딘의 평범하고 다양한 모습과 그 아래 숨은 내면을 능동적으로 상상하게 한다.
또한 감독은 데니스와 제임스 딘과의 관계에도 주목하며
제임스 딘의 평범하고 다양한 모습 <라이프>
-
영생불사는 인간의 욕망 가운데 가장 보편적이고 절실한 것 중 하나다. 이왕이면 영원한 젊음까지 곁들여. 그 욕망의 가장 성(聖)스러운 차원에서 종교가, 속(俗)스러운 차원에서 뱀파이어와 그 후손들이 자리잡고 있다. ‘영원한 젊음’의 변주로 생산되는 판타지들의 연속선상에 있는 <아델라인: 멈춰진 시간>은 보부아르의 <인간은 모두가 죽는다>의 여성판 하이틴로맨스 버전 정도인 듯하다. 남편을 잃은 뒤 딸과 함께 살아가던 아델라인(블레이크 라이블리)은 어떤 ‘전기적 충격’으로 인해 29살이라는 생물학적 나이에 갇히게 된다. 굳이 ‘갇혔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그녀가 그 젊음을 축복이 아닌 재앙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딸이 친구처럼 보이게 되는 시점부터 그녀는 자신의 정체를 감춰야만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고, 결국 10년을 주기로 신분을 바꿔가며 이곳저곳을 떠돌면서 살아가게 된다.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맺으면 안 되는 본인의 상황 때문에 ‘연애’는 언감생심이다. 하지만
영원한 젊음에서 포착해낸 서사 <아델라인: 멈춰진 시간>
-
비밀정보국 TIA의 멍청한 국장(마리아노 베난치오)은 세계 최대 악당 지미(가브리엘 체임)의 횡포에 맞서 엄청나게 튼튼한 금고를 사무실에 들여놓는다. 국장이 금고를 들인 이유는 번번이 악당 지미에게 비밀 문서를 뺏기는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번에도 지미는 건물 외벽을 부숴 아예 금고를 통째로 헬기에 매달아 훔쳐 달아나는 데 성공한다. 이에 격분한 국장은 자기보다 더 멍청해 보이는 슈퍼 스파이 듀오 모타델로(카라 엘레할데)와 필레몬(얀프리 토페라)에게 지미가 훔쳐 달아난 극비 문서를 되찾아오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런데 모타델로와 필레몬은 자신들이 검거했던 위험한 괴물 크런처(빅토르 모니고트)가 탈옥하는 바람에 크런처와 지미를 동시에 쫓아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슈퍼 스파이: 수상한 임무>는 제29회 고야상 애니메이션 부문 최우수작품상과 각색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지적인 만능 스파이와는 전혀 다른 두 주인공이 사건을 해결하기는커녕 점점 더 상황을 악화
탄탄하게 짜여진 슬랩스틱 코미디 <슈퍼 스파이: 수상한 임무>
-
<트랜스포터> 시리즈는 일종의 액션 ‘포르노’처럼 자동차 성애자/액션 덕후들을 동시에 만족시킬 만한 액션 신들을 점층적으로 강도를 더해가며 나열하는 구성을 취해왔다. 이 시리즈에서 ‘서사’는 그저 ‘액션’을 도울 뿐이었다. 다양한 감독들이 메가폰을 잡은 전편들에서 주인공 ‘프랭크 마틴’이 준수하는 세 가지 규칙 ‘계약 내용을 변경하지 말 것, 이름을 밝히지 말 것, 운반물을 열어보지 말 것’만큼 지켜졌던 룰이 있다. ‘제이슨 스타뎀은 기용할 것, 캐릭터를 심화하지 말 것, 아주 신박한 액션 신을 삽입할 것.’ 덕분에 관객은 서사에 신경 쓸 필요 없이 고가 차량이 가슴 떨리는 흠집은 물론 심장 내려앉는 완전파손조차 두려워하지 않고 펼쳐내는 고강도 레이싱과 스타뎀의 육체가 현현하는 놀라운 액션 퍼포먼스에만 집중하면 되었다.
<트랜스포터 리퓰드>에서는 전편들의 ‘싼마이’ 기운을 털어내고 ‘제임스 본드’류 고품격 시리즈를 꿈꾸는 뤽 베송의 욕심이 보인다. 에드 스크
재충전된 새로운 시리즈 <트랜스포터 리퓰드>
-
어느 날 남철웅(손호준)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는다. 결혼을 앞둔 여자친구가 살인범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했다는 것이다. 한편 살인범을 체포한 형사 이상원(성동일)은 갈 곳이 없어진 살인범의 딸 정현(김유정)을 입양해 키운다. 그리고 10년이 흐른 뒤, 정현과 철웅은 공교롭게도 제자와 선생의 관계로 만난다. 둘은 서로의 비밀을 숨긴 채 서로 교감하며 가까워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소한 계기로 이들의 관계가 밝혀지고 만다.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철웅, 상현, 정현은 과거보다 더욱 힘든 시간을 보내고 결국 각자의 방식으로 안식을 찾으려 한다.
박은경, 이동하 감독이 공동 연출한 장편 데뷔작 <비밀>은 기구한 운명으로 엮인 사람들의 복잡한 갈등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이는 영화다. 살해당한 애인을 잊지 못한 남자의 비뚤어진 복수심은 살인자의 딸에게 향하고, 살인자의 딸 역시 자신의 친아버지를 체포한 양아버지에게 복잡한 감정을 가진 채 자신만의 어둠을 키운다. 또한 ‘그 사건’
기구한 운명으로 엮인 사람들 <비밀>
-
뉴욕 출판계에서 유능한 편집자로 일해온 윌 에이텐튼(대니얼 크레이그)은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한다. 사랑스러운 아내와 두딸과 함께 지내며 소설 집필에 전념하기 위해 교외에 작은 집을 마련하지만 그를 경계하는 마을 사람들의 분위기가 어딘가 심상치 않다. 집 안팎에서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고, 정체불명의 사람이 주위를 배회하는데도 주민들이나 경찰관은 윌 가족에게 닥쳐오는 위기에 도통 관심이 없다. 5년 전 이 집에서 일가족 살인사건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 윌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사건의 실체에 다가가기 시작한다.
영화는 호화로운 캐스팅을 자랑한다. 자상하고 능력 있는 출판사 편집인이자 가정적인 작가인 윌 역에 대니얼 크레이그가, 그의 사랑스러운 아내로 레이첼 바이스가, 이들 가족을 의혹의 눈길로 관찰하는 이웃집 여인으로 나오미 와츠가 나섰다. 대니얼 크레이그와 레이첼 바이스는 이 영화를 계기로 커플이 되어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다. 감독은 <
미스터리한 집에서 벌어지는 의문의 사건들 <드림하우스>
-
<미션스쿨>을 제작하고 연출까지 맡은 강의석 감독은 고교 시절 교내 종교 자유 투쟁을 벌인 바 있다. 그는 제적에 이어 퇴학까지 당하고도 끝까지 국가인권위원회에 청원해 퇴학 무효 소송을 냈고 대법원 승소를 이끌어냈다. 영화는 당시 강의석 감독이 학교 내 종교 자유 문제에 맞서 단식투쟁을 하면서 외롭게 홀로 버티고 버텨냈던 자신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대학 입시 준비가 한창인 고3 수험생 교실이 한 학생 때문에 시끄럽다. 지금 학교에서는 학생회장 바울(이바울)의 무단 점거 방송으로 인해 퇴학을 시킬지 말지 결정해야 하는 상황. 바울이 방송반 마이크에 대고 전교생이 듣는 가운데 교내 종교 자유 보장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학교쪽은 바울에게 입학 당시 썼던 서약서를 들이밀며 기독교재단 학교로서의 정체성을 인정하길 강요한다. 하지만 바울은 성적을 빌미로 한 반강제적인 교리 배우기와 찬송가 부르기 등의 몇몇 잘못된 관행을 시정해달라고 요구하길 굽히지 않는다. 이에 학교쪽은
홀로 어른들의 세상에 맞서 싸우는 과정 <미션스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