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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이름과 앨범 이름 모두 사람들을 당황시키는 쪽에 가깝다. 솔직히 나도 ‘이게 뭐지?’ 하면서 그냥 지나칠 뻔했다. 하지만 앨범을 중간 정도 들었을 때 확신했다. 이거, 물건이구나. This is a thing.
세속에 얽매이지 않는 것, 불완전함의 부각이라는 의미를 지닌 와비사비룸은 에이뤠, 제이플로우, 장유석으로 구성된 힙합 그룹이다. 그리고 와비사비룸의 두 번째 EP인 《물질보다정신》은 요즘 발매된 그 어떤 한국 힙합 앨범보다 확고한 정체성과 색깔을 지니고 있다. 비록 이 앨범에 담긴 그들의 메시지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나 앨범 내내 유지되는 그들의 선명하고 각 잡힌 태도가 주는 쾌감을 거부하기란 아무래도 어렵다.
앨범의 프로덕션은 탄탄하다. 전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섞이고 변하기 전’의 힙합을 연상하게 하면서도, 프로듀서만의 기운과 변칙을 군데군데 더해 신선함을 불어넣는 솜씨가 놀랍다. 수준의 차이는 늘 이런 미묘한 부분에서 결정된다. 랩 역시
[마감인간의 music] 밥말리처럼 나도 원초적인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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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림 셔틀콕> 全力扣殺
감독•각본 곽자건, 황지형 / 촬영 관지요 / 음악 하타노 유스케 / 편집 허위걸 / 출연 정이건, 하초의, 정중기, 사군호, 양한문, 임민총, 유호룡 / 수입•배급 싸이더스 / 제작연도 2015년 / 상영시간 107분 / 등급 12세 관람가
라우단(정이건)은 악명 높은 은행강도였지만 지금은 동네 한량으로 소일하며 지낸다. 라우단은 출소 후 마음잡고 새 삶을 살아보려 배드민턴 클럽을 결성하고 신입단원을 찾아다닌다. 어느 날 배드민턴 천재였지만 과격한 성정을 이기지 못하고 폭력을 휘둘러 배드민턴계에서 추방된 가우사우(하초의)가 이들의 연습장을 방문하고 엉겁결에 이들의 코치를 맡게 된다. 주변의 조롱과 멸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배드민턴의 꿈을 불태우는 이들은 급기야 대회에 출전하기로 결심한다.
케이블TV 시장에서 유난히 잘 먹히는 장르들이 있다. 코미디도 그중 하나다. 가볍게 접근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겠지만 의외로 괜찮은 결과물을 접하긴
[케이블 TV VOD] 최초 개봉작 <소림 셔틀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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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인턴> 미래 인터내셔널
[정훈이 만화] <인턴> 미래 인터내셔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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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는 바람 불면 날아갈 것처럼 연약한 50대 남자 선생님이 있었다(학교가 산에 있어서 산바람이 너무 세면 휘청거리기는 했다, 진짜로). 피골이 상접하고 창백하고 피부가 처지고 기운이라고는 없어서 폐병 걸린 일제시대 지식인처럼 보였던 (근데 왜 지식인들은 동서를 막론하고 하나같이 폐병에 걸리는 걸까) 그분에겐 반전이 하나 있었으니…. “얘들아아아아! 장조로 선생이 서른아홉살이래애애!”
세상살이 험한 걸 몰랐던 소녀들은 경악했다. 뭐라고? 그럼 우리도 20년만 더 살면 저렇게 되는 거야? 아니지, 다른 사람들은 멀쩡한데 대체 어떻게 살았길래 조로 선생만 이 모양으로 늙은 거야!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미스터리는, “조로 큰딸이 우리 학교 3학년이라고 하지 않았어?” 아버지는 서른아홉인데 딸은 열아홉, 우리 혹시 일제시대 즈음에 살고 있는 건가. 소문을 물고 돌아온 우리 반 제비양이 취재한 바에 따르면 진상은 이랬다. 아들 귀한 가문의 5대 독자로 태어난 조로군은 대
[김정원의 도를 아십니까] 조선시대 왕은 왜 빨리 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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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노벨문학상을 받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참전했거나 전쟁을 목격한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아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100만명이 넘는 여성이 전쟁에 가담하여 싸웠다. 하지만 그들 중 그 누구의 이름과 얼굴도 기억되지 못한다. 이 책은 전쟁에 참전했던 200여명의 여성들의 이야기를 모은 책이다.
[도서] 2015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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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고 <박사가 사랑한 수식> 같은 느낌을 받을지도 모르겠지만, 전혀 아니고, 그야말로 수학에 대한 책이다. 미국 수학협회로부터 오일러 도서상을 받은 이 책은 “실패를 서술하고 어떻게 세상이 돌아가는지를 알아내는 방식”으로서의 수학을 탐구하고 있다. 구소련 출신의 저자 에드워드 프렌켈은 부계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없었고 미국으로 떠나 수학과 과학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는 인물이다.
[도서] 미국 수학협회 오일러 도서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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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와 한국 건축 사회를 연결해 돌아본 이종건 교수의 비평집. ‘스티브 잡스로 읽어보는 작금의 건축의 향방’이나 ‘우리 건축 사회에는 사고가 그립다’를 비롯해 ‘욕과 장자연 사건과 폭압적 정부, 비대화적 상상력’ 등 전문분야인 건축을 기반으로 사회적 이슈에 대한 생각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글을 만날 수 있다. 이종건의 에세이집 <인생거울>도 함께 출간되었다.
[도서] 이종건 교수의 건축 비평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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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자서전‘씩이나’ 읽을 때는 당연히, 그의 한평생이 궁금할 정도로 좋아하거나 존경하거나 호기심이 있어야 할 텐데, 가토 슈이치의 자서전 <양의 노래>를 읽으면서는 그렇지 않다는 당혹감을 먼저 느꼈다. 그의 책이라면 <가토 슈이치의 독서만능>과 <번역과 일본의 근대>를 읽긴 했지만 자서전을 살 정도로 궁금하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그런데 이 책, 재미있다. 1919년에 태어난 가토 슈이치가 도쿄대 의학부 박사학위를 취득한 게 1943년의 일. 1951년부터 프랑스로 건너가 연구를 계속했는데 1958년 아시아 아프리카 작가회의 참가를 계기로 의업을 접고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기 시작했고, 반전 사회운동에 앞장섰다. 그리고 이 책은 20세기 중반에 여러 나라를 여행하고 공부하며 글을 쓴 일본인의 사생활을 알 수 있는 기록물로 뛰어나다. 일반화할 수 있는 기록은 전혀 아닐 테지만.
일단 일본이라는 나라의 경제력과 문화 수준을 알 수 있는 대목들이 여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가토 슈이치의 사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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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샤츠는 <할리우드 장르의 구조>에서 서부극은 자신들이 옹호하는 농민들의 생활방식에 말로만 경의를 표한다며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할리우드 버전의 옛 서부는 역사와 관련이 없듯 농사와도 거의 관련이 없다. 비록 전원적 가치관과는 많은 관련이 있을지라도 말이다.” 토미 리 존스의 영화는 서부극들이 지워버린 그 지점에서 시작한다. <더 홈즈맨> 속의 서부는 척박한 농토이며, 주인공들은 농부이다. 그들이 사는 곳엔 이상적인 공동체로서의 마을도 없고, 타파해야 할 제도나 부패한 관료 혹은, 타락한 자본가조차 없다. 그들에게 가장 혹독한 적은 자신들을 둘러싼 자연이다. 이 작품의 갈등은 ‘선/악’ 같은 인위적인 이념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니라 자연과 문명이라는 원초적인 대립에서 발생한다. 그러므로 그 투쟁의 결말에는 전통적인 내러티브가 선사해왔던 영웅적인 승리 대신에 생존과 소멸 같은,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이 존재한다.
세 여자가 서부에서 언어를 상실한
[김지미의 영화비평] ‘서부’는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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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26일 만에 600만 관객을 돌파한 <사도>의 또 다른 주역은 음악이다. 전통 선율과 오케스트라의 만남으로 영화 속 정서를 고양시킨 <사도>의 음악 중, 단연 빛나는 것은 경문을 담아낸 ‘옥추경’과 ‘조상경’. 도입부에서부터 북소리, 징 소리와 함께 ‘나무아미타불’을 외워 혼을 쏙 빼놓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영화에서 소경박수 역을 연기한 배우 정해균 본인이다. 법사에게 수개월간 가르침을 받고 자나 깨나 경문을 외운 그는 현장과 녹음실에서 직접 연주와 노래를 했고, 이는 발매된 음원에도 고스란히 담겼다. 정해균은 <내가 살인범이다>(2012)의 변태적 살인마 제이, <신의 한 수>(2014)의 야비한 하수인 아다리 등 특색 있는 역할로 눈도장을 찍은 배우다. 연극판에서 잔뼈가 굵은 그는 한국적 색채의 공연을 주로 선보이는 극단 여행자의 간판 배우이자 부대표이기도 하다. “연기와 무속은 비슷한 데가 있다. 연기는 순간적으로 몰입해 자신에게
[people] 무속인의 신력과도 닮은 연기 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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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포털 사람인이 기업 인사담당자 500여명을 대상으로 신입사원 공채 이력서 평가 기준을 조사했다. 인사담당자들은 이력서에서 가장 주요하게 평가하는 것으로 사진 및 기본 인적 사항(28.8%)이라고 답했으며, 보유기술 및 교육 이수사항(22.9%), 자격증 보유 여부(11.3%) 등이 그 뒤를 이었다. 보유기술과 교육 이수사항, 자격증 보유라고 답한 인사담당자의 답변을 합치면 34.2%가 증명서를 중시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영어 점수나 자격증 같이 노력만 하면 누구나 가질 수 있고, 대다수가 기본 스펙으로 장착하고 있다고 여기는 인증서를 인사담당자들은 여전히 중요하게 평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력서에 ‘저는 문서 처리에 능하며, 일을 빨리 배우고 조직 적응력이 뛰어납니다’라고 기술해도 그대로 믿고 평가하기란 힘들다. 인사담당자들이 여전히 증명서와 자격증을 중시하는 이유다. 때문에 모든 취업 준비생들이 자격증을 하나라도 더 취득하기 위해 시간을 쪼개 공부하는지도 모른다. 자
[국가공인 행정관리사 자격증] 입사 후 미래까지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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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는 불량촌 재개발을 어떻게 했나요?”
“이것을 어떻게 필리핀 마닐라 슬럼(infomal settlement) 정비에 응용할 수 있을까요?”
어둠이 내려앉은 캠퍼스의 한 강의실에서 토론이 한창이다. 피부색도, 국적도, 나이도 다르지만 수요일 저녁마다 모여 머리를 맞대는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모두 서울시립대학교 국제도시과학대학원생이라는 것.
일반적인 건설 분야나 해외 건설을 담당하는 전문가를 육성하는 대학원은 많이 있다. 그렇지만 2012년 설립한 서울시립대학교 국제도시과학대학원은 산업화와 도시화를 동시에 이룩한 한국의 경험을 해당 분야 종사자들과 외국 공무원들에게 체계적으로 교육한다. 이곳에서 교육은 토목, 건축, 설비 등 전통적인 건설 분야는 물론 새로운 도시가 왜 필요한지, 어떻게 건설할 것인지를 살피는 기획, 구상, 설계, 재원 조달, 시공, 운영 및 관리까지 도시사업 전반을 포함한다. 도시라는 특화된 분야를 중심으로 해외진출과 교류협력을 도모한다는 점에서 국
[서울시립대학교 국제도시과학대학원] 달콤한 우리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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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슬로우 비디오>
2013 <결혼전야> <끝과 시작>
2012 <어떤 시선> <내 아내의 모든 것> <무서운 이야기>
2011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2009 <오감도>
2008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2007 <열세살, 수아>
<서부전선>에서 가장 인상적인 공간을 하나 꼽으라면 탱크의 내부다. 단순 소품과 배경 이상의 역할을 담당하는 이 탱크는 촬영을 위해 특수 제작됐다. 사실 탱크의 외형이 특별할 건 없다. 반면 탱크 내부는 영화적 공간으로 창조됐다. 전경란 미술감독은 “<퓨리>에 질 순 없다”는 마음으로, 세트팀, 특수소품팀과 머리를 맞대 탱크 내부 세트를 제작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차 부대 이야기를 그린 <퓨리>(2014)의 사실적 미술이 전쟁의 공포를 극대화했다면 <서부전선>의 미술은 좀더
[STAFF 37.5] 드러나지 않으면서 분위기를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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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베테랑>에서 황정민이 내뱉은 저 대사는 부산국제영화제 강수연 공동집행위원장이 실제로 했던 말이다. 오래전, 류승완 감독이 한 영화인 모임에 참석했다가 강수연이 한 말이 재미있어 대사로 활용한 것이다. 저 대사만큼 강수연 위원장이 올해 영화제에 임하는 각오를 잘 표현해주는 말이 있을까 싶다. 지난해 <다이빙벨> 상영 때문에 부산시와 갈등을 겪어오다가, 지난 7월6일 열린 부산영화제 조직위원회 임시총회에서 공동집행위원장으로 위촉된 그녀다. 강수연은 영화제 초창기인 1998년부터 지금까지 영화제 집행위원으로 활동하며, 국내외 영화인과 영화제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부산으로 내려가기 일주일 앞둔 지난 9월14일, 부산국제영화제 서울사무실에서 강수연 공동집행위원장을 만났다. 영화제를 코앞에 둔 까닭에 강수연은 “무척 떨린다”고 말했다.
-오전에 서울극장 고은아 사장(서울극장 고 곽정환 회장의 아
[강수연] 손님에서 구원투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