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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우 웨스트>의 상세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더 홈즈맨>의 주인공 힐러리 스왱크는 서부극 전통에 충실하게, 밭을 힘겹게 쟁기질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반면 공동각본가 겸 감독이자 주연인 토미 리 존스는 프레임 안으로 굴러떨어지듯 입장한다. 그의 캐릭터 떠돌이 조지 브릭스(토미 리 존스)는 주인이 비운 집을 무단 점거했다가 마을 주민들이 굴뚝에 폭약을 투척하자 내복바람으로 뛰쳐나온다. 얼굴을 뒤덮은 검댕은 특유의 깊은 주름을 우스꽝스럽게 부각시키고 떡진 성긴 머리칼에서는 김이 피어오른다. 많은 출연작에서 이 배우가 보여준 하늘이 두쪽 나도 미동 없는 ‘마이 웨이’의 화신 같은 모습과 사뭇 대조적이다. 평소 존스가 긍지와 책임감을 안고 세태를 말없이 한탄하는 인물을 연기했다면 <더 홈즈맨>의 그는 척박한 세상과 더불어 적당히 미치고 야비해진 노인네다.
09/28
소년은 스코틀랜드에서 대양을 건너 신대륙의 콜로라도에 도착한다. 그의 이름은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아무렴, 꼬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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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전문 서점 오 봉 로망과 이 서점을 만들고 지켜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둘러싼 미스터리물이다. 좋은 소설을 팔고 읽는 문화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2015년 아카데미 프랑세즈 대상을 받은 로랑스 코세의 책. 책 속에 등장하는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에 대한 언급이 눈길을 끈다.
[도서] 서점 '오 봉 로망'을 만들고 지켜나가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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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보즈웰, 샬럿 브론테, 찰스 다윈,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앨리스 제임스, 다니엘 파울 슈레버, 마르셀 프루스트, 글렌 굴드, 앤디 워홀의 사례를 통해 심기증(‘마음의 병’이나 ‘건강염려증’이라고 불리기도 하는)이라는 상상 혹은 실재의 질병이 우리 몸을 상대로 어떤 정치를 펴나가는지, 정신과 일상, 주변 사람과의 관계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분석한다.
[도서] 심기증이라는 상상 혹은 실재의 질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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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살인의 현장에 남겨진 ‘모든 것이 F가 된다’는 수수께끼의 메시지. 그 의미는 무엇이며 범인은 누구일까.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진 모리 히로시의 <모든 것이 F가 된다>가 재출간되었다. 이 책을 비롯해 사이카와 교수와 모에가 등장하는 ‘S&M’ 시리즈가 계속 출간될 예정이며 <차가운 밀실과 박사들>도 이번에 함께 선을 보였다.
[도서] 살인 현장에 남겨진 수수께끼의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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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션>에는 책 <마션>에 없는 장면이 몇 있다. 에필로그라고 볼 수 있는 장면들이 특히 그렇다. 내게 가장 깊게 남은 장면은 바로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의 시간이 새로 1일부터 흐르는 엔딩이었다. 이상한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리들리 스콧은 그 장면을 위해 이 영화를 찍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우리의 삶은 일렬로 길게 늘어선 시간축을 기차 타고 이동하듯 일직선으로 흐르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물론 늙어가는 과정에 한해서라면 그 한결같은 일직선상에 우리는 놓여 있다- 즉, 우리는 결코 어제보다 젊어지지 않을 것이다). 경험은 시간을 분절한다. 우리에게는 수없는 ‘첫날’이 있다. 에필로그의 장면들. 마르티네즈는 다시 화성탐사선에 올랐다. 두 번째 여정의 첫날. 조한슨과 베크는 아이를 낳았다. 그들은 아이와 함께 수없는 처음을 맞이하리라. 어떤 경험이든, 우리를 이전과는 다르게 바꾸어버리고, 그리고 이후의 삶은 우리를 수많은 ‘처음’으로 데리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모두는 결국 죽을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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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각지를 돌며 진행된 촬영은 어땠나. 힘들지는 않았나.
=전혀. 이 영화는 지금까지 내가 촬영한 어떤 현장보다 즐거웠다. 로마와 나폴리 아말피 해변 그리고 런던 전역을 돌았던 시간을 결코 잊지 못할 것 같다. 지금이니까 할 수 있는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마치 행복한 휴가를 보내고 온 느낌이다. (웃음)
-도대체 일리야 쿠리야킨은 어떤 사람인가.
=확실히 그는 파티를 좋아하진 않는다! (웃음) 외골수라고 해야 할까. 그는 스스로 즐길 줄도 모르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즐기며 인생을 사는지에도 관심이 없는 남자다. 그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은 오직 일뿐이다. 내 주변에 이런 친구가 있다면… 글쎄? 지치고 지겨울 것 같다. (웃음)
-그러니까 정말 일리야와는 정반대의 성향을 지닌 나폴레옹 솔로를 연기해보고 싶은 마음은 없었나.
=일리야라는 인물을 ‘연기’하는 것은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근사한 슈트를 입은 채 아름다운 여성들 사이에 있는 나폴레옹을 연기한 헨리 역시 나름
[현지보고] 아미 해머, 가이 리치 감독은 ‘쿨한 것’에 대한 직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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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도 더 된 고전 TV시리즈물의 주인공을 연기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있나.
=사실 나는 내가 미래에 맡게 될 배역에 대해 많이 생각하지 않는 편이다. 지금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기에도 벅차다! (웃음) 나폴레옹 솔로는 정말 매력적인 캐릭터라서, 어떤 배우라도 포기하기 쉽지 않은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그는 ‘절대적’이 아님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이 영화는 지금까지 나의 배우 인생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슈퍼맨과 스파이 중 현재는 스파이에 좀더 애정이 간다는 것인가.
=쉽지 않지만 지금은 그렇다. 그가 좀더 인간적이어서라고 해야 할까. 클라크 켄트에 비해 나폴레옹은 자아정체성에 대한 고민도, 나보다 타인을 위하는 마음도 필요없는 평범한 인간이면서, 자신만을 위한 삶도 즐길 줄 아는 인물이라고 생각된다.
-<맨 프롬 U.N.C.L.E.>과 같이 유난히 스타일리시하고 유머가 가득한 영화에서 당신을 보는 것이
[현지보고] <맨 프롬 U.N.C.L.E.> 헨리 카빌, 슈퍼맨 보다 스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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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23일, 런던 시내 한복판에 자리잡은 클라리지스 호텔에서 <맨 프롬 U.N.C.L.E.>의 기자 간담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가이 리치 감독을 비롯해 주연배우 헨리 카빌, 아미 해머와 알리시아 비칸데르, 엘리자베스 데비키 등이 참여했다. <맨 프롬 U.N.C.L.E.>은 냉전 시대 미국의 CIA 특급요원 나폴레옹 솔로(헨리 카빌)와 소련 KGB의 최정예 요원 일리야 쿠리야킨(아미 해머)이 우라늄 폭탄을 만들어 터트릴 계획을 가진 악당 빅토리아(엘리자베스 데비키)에 맞서 본의 아니게 협업을 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첩보 액션물이다. 이야기는 빅토리아가 폭탄을 만들기 위해 나치의 과학자였던 개비(알리시아 비칸데르)의 아버지를 납치했음을 알게 된 나폴레옹과 일리야, 동독에서 자동차 수리공으로 일하던 개비의 극적인 만남으로 시작한다. 극 초반, 나폴레옹과 일리야가 서로를 죽이기 위해 보여준 자동차 액션 신은 많은 기자들 사이에서 간담회 내내 회자되기도
[현지보고] 가이 리치 감독 헨리 카빌, 아미 해머 주연의 <맨 프롬 U.N.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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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다이노>는 <인사이드 아웃>을 보며 흘렸던 눈물이 마르기도 전에 연이어 공개되는 디즈니 픽사의 16번째 작품이다.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는 올 11월에 개봉이 예정되어 있어(한국 개봉 2016년 1월7일) 픽사로서는 한해에 2편의 영화를 개봉시키는 최초의 사례로 기록되기도 할 것이다. 개봉 시기야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현재까지 공개된 <굿 다이노>의 프로덕션 이미지 스케일은 개봉 시기와 영화의 완성도가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강조하는 듯 보인다. 15분 분량의 하이라이트 영상을 최초로 공개한 <굿 다이노>의 홍콩 프레젠테이션 행사도, 스튜디오가 이 영화에 얼마나 총력을 기울였는지를 증명해 보이는 시간이었다.
지난 9월25일 홍콩 침사추이에 위치한 UA 아이스퀘어 시네마 아이맥스관에 300여명의 전세계 미디어 관계자들이 <굿 다이노>의 최초 공개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기 위해 아침 일찍 모였다. 이날 발표를 맡은 픽사의 짐 모
[현지보고] <굿 다이노>, 15분 분량 하이라이트 영상 최초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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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소수민족 타밀족은 완전독립을 목표로 오랫동안 무력 투쟁해왔다. 그리고 지난 2009년 ‘타밀타이거’라 불리는 반군이 정부에 항복했고, 내전은 끝난 듯 보였다. <디판>의 이야기는 타밀타이거 출신의 전직 군인 디판이 스리랑카 내전에서 패하고, 유럽으로 망명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시작된다. 좀더 쉽게 망명자 권한을 얻기 위해서 그는 ‘가짜 가족’을 만들어낸다. 알지 못하는 여인이 그 여정에 동참하고, 전쟁 탓에 부모를 잃은 소녀가 그들의 딸이 된다. 이윽고 프랑스에 도착해서 세 사람은 파리 외곽의 레지던시에 머물며 본격적으로 가족 행세를 한다. 그렇게 ‘진짜 행복’을 찾으려는 디판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프랑스 리얼리즘의 현재
난민을 다루는 많은 다른 영화들처럼, <디판> 역시 자신들의 땅을 떠난 이민자들이 새로운 곳에서 환대받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그런 점에서 프랑스에서의 첫 모습, 길거리에서 2유로짜리 장난감을 판매하는 주인공의 행색은
[이지현의 영화비평] 그것은 ‘진짜 행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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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성 고운 앙리를 보고 있으면 관객의 마음에도 어느덧 하나둘씩 긍정의 불이 켜지기 시작한다. 마르탱 탈보 감독의 장편 데뷔작 <앙리 앙리>(2014)는 순수한 주인공의 영향으로 모두가 행복해지는 결말을 맞는 현대적인 동화다. 전구 고치는 데 뛰어난 기술을 가진 긍정적인 주인공 앙리, 괴팍한 피클 장인, 손금을 읽는 시각장애인 극장 매표원, 대가족을 거느린 남자 등 인물들이 이뤄가는 캐릭터 플레이도 흥미롭다. 마르탱 탈보 감독에게 앙리의 여정에 관해 궁금했던 점을 서면으로 물었다. 감독은 멀리 프랑스에서 따뜻하고 자상한 답장을 보내왔다.
-빛을 만들어내는 주인공은 어떻게 떠올렸나.
=어느 노동자들을 촬영한 다큐멘터리에서 전구 교체 작업을 하는 남자를 보았다. 밤에만 일하기에 아무도 그의 존재를 모르지만 사람들의 삶에 빛을 가져다주는 그의 작업이 내겐 근사해 보였다.
-프로덕션 디자인은 마치 앙리의 눈에 비치는 세계를 시청각화한 것처럼 아기자기하다. 영화의 전체적인
[people] 내 영화를 보는 동안만이라도 웃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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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스 과랄디의 느슨한 재즈가 걸맞은 특유의 단조로운 세계 때문이었을까? 20세기의 고전 애니메이션들이 속속 3D로 재현되는 와중에도 찰스 슐츠의 <피너츠> 3D는 오랫동안 감감무소식이었다. 하지만 곧 기다림은 끝난다. 작품 탄생 65주년을 맞는 올해 12월, <아이스 에이지>와 <리오> 시리즈의 블루스카이 스튜디오가 제작한 <스누피: 더 피너츠 무비>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연출은 <호튼>(2008), <아이스 에이지4: 대륙이동설>(2012)의 스티브 마티노가 맡았다. 이번 작품을 통해 “변치 않는 우정을 그리고 싶었다”는 그의 말은, 감독의 전작들이 지녔던 미덕이 갖가지 캐릭터들이 나누는 우정을 구현하는 데에서 비롯됨을 떠올리게 한다. 원작자 찰스 슐츠가 <피너츠>를 통해 스누피와 찰리 브라운뿐만 아니라 라이너스, 루시, 샐리, 페퍼민트 패티, 마시, 픽펜, 우드스톡 등 많은 캐릭터들에게 고유의 생명을 불
[people] “3D의 입체감 위해 오케스트라처럼 접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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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후드>를 보고 나서 <웨이킹 라이프>를 다시 봤다. <웨이킹 라이프>는 <보이후드>의 최초의 시작점 2002년으로부터 몇년 전에 이미 만들어진 영화지만 <보이후드>의 엔딩에서 새로 시작하는 주인공의 이야기 같기도 하다. <웨이킹 라이프>의 회상 신에 <보이후드>의 처음처럼 어린 소년이 주인공으로 나오는데, 반갑게도 주인공 소년과 대화를 나누는 소녀로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딸 로렐라이 링클레이터가 나온다(로렐라이는 <보이후드>에서 메이슨의 누나로 출연, 12년의 성장사를 같이 보여줬다). 그녀는 영화 시작에서 <웨이킹 라이프>의 주인공과 미래를 점찍는 게임을 하고 주인공 소년에게 “꿈은 운명이다”라는 점괘를 준다. 그리고 소년은 고단한 10대의 성장사를 담은 <보이후드>의 시기를 지나며 수많은 상실을 겪고 <보이후드>의 엔딩이자 <웨이킹 라이프>의 시작점
여행자의 시점에서 영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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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비포(before)여야만 했을까? ‘비포’ 시리즈로 불리는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 <비포 미드나잇>을 다시 보고 든 의문이다. 텍스트를 재독한 결과가 제목에 대한 단상으로 귀결되었다는 사실을 설명하기에 앞서, 한 가지 전제부터 밝혀야겠다. 어떤가 하면 나는 두번의 반복은 우연일 수 있지만, 세번 이상의 반복은 우연이 아니라고 믿고, 그 이유를 해명해야 한다고 믿는 쪽이다. 예컨대 영화 제목에 ‘~전에’라는 뜻의 비포가 거듭해서 쓰이고 있다면, 특정한 전치사가 내포한 시제의 문제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비포를 고수하는 리처드 링클레이터는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리는 감독처럼 보인다. 그는 끝을 출발점으로, 시작을 종결점에 두고 시간을 사유한다. 반대의 경우였다면 제목에 비포 대신 애프터(after)가 사용되어, 이 영화들은 어쩌면 우리에게 애프터 시리즈로 알려졌을지도 모른다. 가령 비포 시리즈의 첫 번째
그는 비포를 포기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