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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러울 것 없던 사이먼(제이슨 베이트먼)과 로빈(레베카 홀) 부부는 유산으로 아이를 잃은 후 평온을 되찾기 위해 조용한 교외로 이사하기로 결심한다. 이사한 첫날, 부부는 우연히 남편 사이먼의 고등학교 동창 고든(조엘 에저턴)을 만나 짧은 인사를 나누게 된다. 그다지 반가워하지 않는 사이먼의 태도와 달리 고든은 부부의 집에 선물을 보내거나 로빈이 혼자 지내는 낮 시간에 집에 찾아와 집안일을 도와주기도 한다. 하지만 로빈은 어쩐지 고든의 호의가 불안하고 의심스럽기만 하다.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시달리던 로빈은 직접 고든을 조사하기 시작하고, 그 끝에서 예상치 못한 이야기와 만나게 된다.
완벽해 보이는 부부, 새롭게 이주한 조용한 동네, 불쑥 등장하는 낯선 인물, 숨겨진 과거. 이 네개의 조건만으로도 어렵지 않게 서너편 이상의 영화들이 떠오른다. 하지만 호기롭게 <더 기프트>는 한번 더 이 네장의 ‘카드’를 받아든다. 대신 스릴러 장르의 기본 규칙을 뒤틀어 긴장을 만들어나
서서히 빠져드는 불안감 <더 기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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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소시즘은 한국영화에서 그리 대중적인 소재이자 장르가 아니다. <검은 사제들>은 그러한 선입견과 장애물을 영리하게 돌파해가는 영화다. 오프닝에서 구마(사령을 쫓아내는 가톨릭 예식), 부마자(사령이 깃든 사람), 12형상(장미십자회에서 일련번호를 붙여 분류한 사령들) 등 낯선 용어들을 속도감 있게 설명하고 나면, 이후 영화는 소녀의 몸에 깃든 사령을 쫓아내기 위해 장엄구마예식을 행하는 한명의 사제와 또 한명의 보조사제 이야기에 오롯이 집중한다. 평범한 여고생 영신(박소담)은 교통사고를 당한 후 정신이상 증세를 보인다. 김 신부(김윤석)는 영신의 몸에 장미십자회에서 쫓는 12형상 중 하나가 깃들어 있는 것을 알게 되고, 교단의 무관심과 비협조 속에서 힘들게 소녀를 살리기 위한 예식에 매달린다. 한편 과거의 트라우마로 신학생이 된 최 부제(강동원)는 예식의 사전 준비를 담당할 보조사제로 선택된다. 신학교의 학장은 최 부제에게 김 신부를 돕는 동시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감
선입견과 장애물을 영리하게 돌파해가는 영화 <검은 사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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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슨 피크> Crimson Peak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 / 출연 톰 히들스턴, 제시카 채스테인, 미아 바시코프스카, 찰리 허냄 / 수입•배급 UPI 코리아 / 개봉 11월26일
팀 버튼의 영역으로 발을 내딛은 기예르모 델 토로라 해야 할까. 고딕 로맨스 장르의 기운을 물씬 머금은 델 토로의 신작 <크림슨 피크>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집안이 반대하는 남자와 사랑에 빠진 한 여자가 주인공이다. 소설가 지망생인 그녀의 이름은 이디스(미아 바시코프스카). 그녀는 영국 귀족 토마스(톰 히들스턴)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와 함께 영국으로 떠난다. 그런데 이디스 부부가 머물게 된 대저택 크림슨 피크에서 실체를 알 수 없는 존재들과 환영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델 토로는 이 영화가 ‘유령 들린 집’으로 대변되는 헌티드 하우스 장르에 경의를 바치는 작품이 될 거라고 말한 적이 있다. 로버트 와이즈의 <더 헌팅>(1963)
[Coming Soon] 팀 버튼의 영역으로 발을 내딛은 기예르모 델 토로 <크림슨 피크> Crimson Pe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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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16일 저녁, 롯데시네마 월드타워 슈퍼플렉스G관 상영에 맞춰 극장을 찾은 박찬욱 감독을 만났다. 박찬욱 감독은 요즘 신작 <아가씨>의 촬영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15년이 지난 지금 <공동경비구역 JSA>는 그에게 어떤 작품으로 남아 있을까.
-개봉 당시 연속 9주 박스오피스 1위를 하며 한국영화의 흥행 기록을 새롭게 썼다. 앞선 작품에서는 체감하지 못했던 반응이었다.
=살았구나 싶었다. (웃음) 세 번째 작품을 만든 것도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는데 그것까지 망하면 끝인 상황이었다. 걱정이 컸는데 결과 보고 안도가 되더라. 한창 젊을 때였고 기분이 좋아 배우들이랑 술을 많이 마셨다. 무대인사, 행사도 많아서 정말 매일 어울려서 술 마신 기억밖에 안 난다.
-<공동경비구역 JSA>는 명필름의 제안을 받고 시작된 프로젝트였다.
=조영욱 음악감독이 친한 친구였는데, 그때 그는 명필름과 <접속>(1997)의 음악작업
“<공동경비구역 JSA> 없었다면 지금과는 다른 인생 됐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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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은 배우 이영애가 “군복과 잘 안 어울리는 배우”라서 소피 역에 어울렸다고 말한다. 한국계 스위스인이며 군 정보단 소령인 소피는 사건수사를 위해 파견되어 판문점에 온다. 진실을 끌어내기 위해 내키지 않은 일을 하는 임무를 부여받는데, 그 불편함이 ‘안 맞는 옷을 입혀놓은 것 같은’ 이영애의 모습과 어우러졌다.
“난 지금도 강호씨가 동생 같지 않고 형같이 느껴진다.” 박찬욱 감독은 배우 송강호가 천진한 장난기와 더불어 형처럼 기대고 싶은 믿음직스러움을 동시에 가진 배우라고 이야기한다.
“왜 이병헌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박찬욱 감독은 당시 영화계에서 흥행작이 없었던 이병헌을 주연으로 내세웠다. “평범한 남자를 원했다. 난 이병헌이 평범하게 느껴졌다. 굉장한 미남이라는 생각은 안 들지만 건강한 느낌이 좋았다.” 이병헌은 박찬욱 감독이 <삼인조> 때부터 함께하고 싶어 하던 배우였다. 이병헌이 신뢰한다는 PD에게 직접 찾아가기도 할 정도로 이병헌과의 작
대한민국이 잊지 못할 명작 15년 만에 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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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선
1988년생. 단국대학교 공연영화학부 졸업. 2007년 KBS 홈페이지 광고로 데뷔했고, 장편영화는 <소통과 거짓말>이 첫 작품이다. <독살미녀 윤정빈>(2013), <늦게핀 꽃>(2014), <민중의 적>(2014), <정의란 무엇인가>(2015)에서 이현정 연출가와 함께 일했고, 김예나 연출가와 <당신은 지금 고도를 기다리고 있습니까?>(2013), <도시 속 마피아>(2014), <작당모의>(2015),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2015) 등을 작업했다. 이승원 감독과는 연극 <사랑한다면 이들처럼>(2012)에서 처음 만났다. 지금은 잠시 숨 돌리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주원
1976년생. 부산예술대학교 연극과 졸업 후 곧바로 <난타>(2001)로 데뷔. <경남창녕군길곡면>(2008∼2009)과 이승원 감독이 연출한 <
연기와 아르바이트 사이에서 길을 잃지 않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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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호선 안국역 1번 출구로 나와 풍문여고를 돌아 높은 담장과 느티나무 그늘을 따라 정독도서관까지 하늘하늘 걸어가다보면, 왼쪽에 아트선재센터가 나온다. 그 건물 뒤편께에 살았다는 서태지는 <소격동>을 통해 80년대 기무사와 녹화사업의 기억을 더듬었다지만, 98년 아트선재센터가 개관하면서부터 지금까지 17년 동안 꾸준히 그 길을 걸었던 나에게 소격동은 중요한 독립예술영화관이 있는 동네다. 희한하게 아트선재센터에 볼일이 있을 땐 항상 10여분 일찍 도착한다. 기어이 근처 구멍가게에서 싸구려 캔커피를 사들고 담배 한대를 피워야 직성이 풀리는 알다가도 모를 속내. 어쩌면 점점 낯설게 변해가는 소격동 풍경을 바라보며, 한때 그곳에 범람하던 영화적 욕망, 극장 바깥으로 쏟아져나와 왁자지껄 수다를 떨던 그 많은 사람들의 흔적을 주워섬기는 건지도 모르겠다.
98년 퀴어영화제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열린 곳이 바로 그곳이다. 전국의 선남선녀 변태들이 소식을 듣고 득달같이 몰려들었다. 99년
[이송희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나의 소격동이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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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과 추석 시즌에 단골로 걸리던 영화가 있었다. 해마다 1, 2, 3… 시리즈를 만들어내며 연휴 극장가를 떠들썩하게 했던 영화들 말이다. 크리스마스 시즌에도 있었다. <나 홀로 집에> 시리즈라든지, 최근에는 <러브 액츄얼리>가 그 범주에 들어가겠다. 모바일과 PC로 비선형적 시청이 일상화된 2015년에도 그 시즌의 영화나 단골 프로그램들은 존재한다. MBC의 <아이돌 육상 대회>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중에서 올 타임 페이버리트로는 성룡 영화를 비롯한 소림 무술영화가 빠질 수 없다.
그 성룡과 소림사를 전면에 내세우며 명절 특집 파일럿으로만 SBS에서 방송되던 ‘소림사판 <정글의 법칙>’ <주먹 쥐고 소림사>가 20부작 정규 편성에 나섰다. 족장(여기서는 사형이 되겠다) 김병만을 필두로 하여 이미 명절에 소림사에 다녀온 장미여관의 육중완이 함께하고, 남녀 제자들이 남소림사와 북소림사로 나뉘어 제자 수련을 받는다. <정글의
[김호상의 TVIEW] 소림사가 시작한 무한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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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2015 <아가씨>
2015 <검은 사제들>
2015 <스틸 플라워>
2014 <들꽃>
<들꽃>의 오디션 현장. 박석영 감독은 정하담에게 <들꽃>의 하담이 돼, 가출 소녀들인 하담과 은수(권은수)가 어렵게 모은 돈을 말없이 들고 나간 수향(조수향)의 뺨을 때려보라고 말했다. 그런데 정하담의 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중에서야 그녀는 “사람을 때려본 적이 없다. 도저히 누굴 때린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고 극중 하담도 그랬을 거라고 생각했다. 상대방을 살짝 치기만 했는데도 그 느낌이 너무 이상해 결국 눈물이 났다”고 이유를 전했다. 연기 경력이 전무한 신인배우라면 어떻게든 오디션 과제에 집중해 합격부터 하고 싶었을 거다. 하지만 정하담은 생각에 앞서 감정이 이끄는 대로 반응했다. 철저히 계획된 기술적인 연기와는 한참 거리가 먼, 거의 본능에 가까운 정하담의 리액션이었다. 그런 정하담이 “이상하게도 마음에 걸렸던
[who are you] 거짓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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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중국 영화시장은 빠르게 변하는 트렌드로 점점 더 예측이 어려워지고 있다. 지난 10월1일부터 일주일간 이어진 중국의 최대 성수기, 국경절을 맞은 중국 극장가 역시 이변으로 가득했다. 애초에는 <로스트 인 타일랜드>에 이어 제작된 속편 <로스트 인 홍콩>, 유덕화 주연의 실화 스릴러 <세이빙 미스터 우>, 그리고 중국의 유명 판타지 소설을 영화화한 루촨 감독의 판타지 어드벤처물 <구층요탑>의 삼파전이 예상되었다. 세 영화 중 가장 먼저 개봉한 <로스트 인 홍콩>은 이변 없이 9월 말에 60%에 육박하는 점유율을 보이며 10월 중순에는 약 16억위안을 기록해 전작의 흥행을 넘어섰다. 그러나 기대작이었던 <세이빙 미스터 우>는 평론가들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10% 점유율을 겨우 유지하며 10월 말까지 2억위안에도 못 미치는 성적에 머물고 말았다. <구층요탑>의 경우 7억위안 정도를 벌어들여 세 작품 중 가장
[베이징] ‘3무’ 저예산 코미디영화의 깜짝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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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들리 스콧의 필모그래피에서 <마션>(2015)은 참으로 희한한 작품이다. <마션>의 기이함은 (역설적이게도)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 모험극의 정석을 철저히 따르는 ‘평범성’에 있다. 이 작품의 방점은 화성에 홀로 남겨져 살아남고자 온갖 노력과 지혜를 짜내는 마크 월트니(맷 데이먼)의 분투, 그를 살리고자 방책을 강구하는 나머지 대원들과 나사(NASA)의 인력들,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각각 나뉘어 찍혀 있다. <필사의 도전>(1983)이나 <아폴로 13호>(1995), <스페이스 카우보이>(2000) 등 우주 비행사들의 모험과 역경을 다룬 여러 SF 드라마를 통해 익숙해진 장르의 컨벤션을 <마션>은 충실히 재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미션 투 마스>(2002)의 공간에서 펼쳐지는 <캐스트 어웨이>(2000)의 생존담. 우주복과 우주선, 나사의 관제탑은 어김없이 등장하며, 고난과 역
[조재휘의 영화비평] 우주와 맞선 인간의 숭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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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츠>의 만화가 오쿠 히로야의 신작 <이누야시키>(오경화 역, 대원씨아이 펴냄)는 외계인에 의해 육체를 로봇으로 바꿔치기 당한 노인과 소년의 이야기다. 가공할 외계 기술이 집약된 기계 육체는 둘에게서 ‘인간’을 빼앗아간 대신에 ‘신’에 가까운 능력을 준다. 노인 이누야시키는 자신의 가공할 능력을 자각하자 이를 약자를 돕는 일에 사용하려 하지만, 소년 히로는 충동적으로 남용한다. 결국 선과 악으로 대립하게 될 둘의 상황을 흥미진진하게 따라가던 단행본 4권의 한 지점에서, 나는 예기치 못한 울컥하는 기분을 느꼈다.
친구 히로의 악행을 막기 위해 이누야시키를 찾아낸 안도는 그가 불치병이나 암 환자들을 치유하는 모습을 목격한다. 기적을 행하는 이누야시키를 진정한 ‘히어로’라 부르며 눈물을 흘리는 안도. 병원을 몰래 빠져나오던 둘을 입구에서 기다리던 의료진 몇명이 가로막는다. 절대 비밀을 지키겠다는 그들은, 이 병원에 다른 난치 환자들도 많다며 둘을 다시 병원으로
[박수민의 오독의 라이브러리] 동기가 아닌 태도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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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인천다큐멘터리피칭포럼으로부터 출발한 인천다큐멘터리포트(이하 인천다큐포트)는 2014년 국내 프로젝트에 국한되지 않고 아시아까지 영역을 확장한 후 올해 드디어 두 번째 행사를 치른다. 감히 단언컨대 첫걸음은 성공적이었다. 비교적 신생 프로젝트지만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 건 다변화하는 다큐멘터리 시장의 시대적 요구에 정확히 부합하는 방향성과 함께 완숙하고 매끄러운 진행 덕분일 것이다. 이같은 순조로운 출발에는 인천다큐포트를 이끌어가고 있는 프로그래머들의 명확한 구상과 탄탄한 역량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다큐멘터리 관련 분야에 오랜 기간 몸담아온 강석필, 김원중, 조지훈 3인의 프로그래머는 “한국 다큐멘터리 시장의 변화와 시대의 요구를 감지하고 물꼬를 트기 위해 인천다큐포트를 시작했다”고 입을 모았다. 비록 상황이 어렵고 힘들지라도 다큐멘터리는 여전히 한국영화에서 가장 역동적인 영역 중 하나다. 3인의 프로그래머에게 인천다큐포트의 방향과 한국 다큐멘터리의 미래에 대해 물었다
다큐멘터리의 창작자, 투자자, 방송, 극장 관계자가 서로를 알게 하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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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트네이션은 미군 주둔국을 가리키는 단어다. 한국에서 이 단어가 가지는 함의는 간단치 않다. 한반도의 역사, 나아가 동북아시아의 지정학적 정세는 물론이고, 여성과 이주, 노동에 대한 문제까지 광범위하게 내포한다. 이고운 감독은 미군 주둔을 둘러싼 시스템의 최말단에 있는 기지촌 여성을 중심에 두고 시스템의 이면을 파헤치려 한다. 방송 다큐멘터리 제작자로 출발한 감독은 “해외 취재를 다니면서 ‘한국인이 제일 나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전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한국의 성매매 산업을 실감하면서 ‘왜 이렇게 됐을까’라는 의문과 불쾌감이 다큐멘터리 제작으로 그녀를 이끌었다.
기지촌 여성을 위한 여성단체 ‘두레방’과 인연을 맺으면서 그녀의 계획은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미군기지에서 일하는 필리핀, 러시아 여성들을 대상으로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기지촌 여성들과 인연을 맺고 그녀들을 찍었다. 그러다 다큐멘터리를 찍기로 한 여성들이 돌연 촬영 거부를 선언하면서 찍었던 분량을 모두 날
“왜 이렇게 됐을까”라는 의문과 불쾌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