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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바람/ 별/ 시. 이토록 서정적인 단어를 쓰는 것조차 금기시되던 시대가 있었다. ‘이런 세상에서 시를 쓰길 바라고, 시인이 되길 원했던 게 부끄러워’ 자신을 질책하고 스물여덟해, 짧은 생을 마감했던 시인 윤동주. 식민조국에서 시인은 언어를 빼앗기고, 신념을 버릴 것을 강요당했다. 이준익 감독이 흑백사진 속 해사한 얼굴과 아름다운 시로 박제된 시인 윤동주를, 타인과의 관계로 얽히고 실질적인 선택의 고민에 휩싸였던 20대 청년으로 육화했다. 영화 <동주>는 충무로에서 문학작가를 소재로 한 흔치 않은 작품이자, 시대극의 필요조건이라 여겨지는 프로덕션을 간소화했다는 점에서 독특한 시도다. 효과적인 소재의 구현을 위해 상업영화의 제작방식 대신 저예산 제작을 선택했다는 그의 변을 들어보았다.
-윤동주는 외적 투쟁을 하지 않은 시인이란 점에서 일제강점기의 공기를 담기에는 드라마가 다소 부족한 인물로도 보인다. 영화의 출발부터 넘고 가야 할 취약점으로 작용했을 텐데.
=맞
[이준익] “제일 안 좋은 건 시도하지 않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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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공유씨, 누구도 선뜻 하지 않는다는 정통 멜로를 하신다는 건가요? <용의자>(2013) 이후 3년 만의 만남. 이 질문이 제일 먼저일 수밖에 없다. 스릴러가, 액션이, 블록버스터 사극이 판을 점령하는 충무로에서 정통 멜로는 고사 위기에 처한 그런 시대다. 소설 <도가니>가 영화화되어 사회적 파장까지 번진 데도 공유가 그 가치를 ‘공유’해준 덕이 크다. 같은 맥락에서, 주춤했던 정통 멜로는 공유라는 구세주를 만난 셈이 되는 걸까. “내가 뭐 독립투사도 아니고. <도가니>(2011)도 거창한 대의를 가지고 한 건 아니지만, 내가 좀 그런 게 있다. 약간 반발심 같은 거. (웃음) 멜로가 장사가 안 되니 안 만들어 희귀한 때이고, 그에 대한 안타까움이 늘 있었다. 이렇게 참여하는 것이 어느 정도의 시도는 될 수 있겠다. 좋은 결과가 나온다면 멜로 장르가 좀더 만들어지는 계기가 될 수도 있는 거고.”
<남과 여>의 기홍은 공유의 표현에 따
[공유] 이 뜨거운 사랑의 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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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관해서라면, 마땅히 전도연에게 물어야 했다. 스크린의 전도연은 사랑의 기척을, 감정의 행간에 묻어둔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예민하게 읽어내려왔다. “인간은 다 복합적이지 않나. 시나리오를 읽을 때면 활자로는 드러나지 않는 인물의 마음을 느끼게 되니까 그걸 또 표현해보고 싶고. 관객도 함께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면서.” 사랑을 온전히 믿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사랑이라는 게 있을까. 그런데도 영화로든, 책으로든 ‘사랑이 있다’는 걸 확인하고 싶다. 그래서 계속 좇게 된다.” 확신은 없지만 어딘가에 있을 신기루 같은 사랑으로의 출구를 향해 전도연은 무수한 두드림을 이어왔다. 그래서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다. “지금까지 나는 사랑이라는 한 가지 이야기에 꽂혀 그것만 말해온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장르나 인물이 처한 상황 때문에 내가 변신한 것처럼 보여도 결국 내가 한 이야기는 사랑이었다 .”(한 예로 <피도 눈물도 없이>(2002) 때도 전도연은 액션
[전도연] 그렇게 끝없이 사랑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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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 감독의 정통 멜로드라마 <남과 여>(2015, 개봉 2월25일)는 제목부터 눈을 훔친다. 군더더기 하나 없이 깔끔한 두개의 어절을 보고 있자면 조사를 사이에 두고 남자와 여자가 마주 보는 듯하다. 나란히 서 있는 모양일 수도 있겠다. 그것이 무엇이 됐든 ‘남과 여’라는 이 짧은 말은 짐작보다 훨씬 많을 그와 그녀의 말들을 상상하게 만든다. 낯선 땅 핀란드에서 우연히 만난 상민(전도연)과 기홍(공유)은 서로에게 맥없이 빠져든다. 그리고 그들은 서울이라는 일상의 공간에서 재회한다. 그럼 이제 이 남자와 이 여자는 어떻게 되는 걸까. 멜로극의 주인공으로 만나 처음 호흡을 맞춘 전도연과 공유에게 <남과 여> 속 남자와 여자의 미래에 대해 물었다. “멜로 장르에서 어쩌면 감독보다 더 의지하게 되는 게 상대배우다. 전도연 선배와 함께한다면 내가 인위적으로 뭘 더 만들지 않아도 자연스레 기홍의 캐릭터에 녹아들 수 있을 것 같았다”는 공유, “나는 감정이 극명하게 드러
[전도연, 공유] 같은 방향의 사랑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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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스 어헤드> Miles Ahead
감독 돈 치들 / 출연 돈 치들, 이완 맥그리거, 이마야치 코리네알디
1979년 뉴욕, 오랜 공백기를 지낸 마일스 데이비스(돈 치들)는 <롤링 스톤>의 기자 데이브 브릴(이완 맥그리거)과의 인터뷰를 통해 지난 커리어를 되짚어본다. 그리고 첫 번째 아내 프랜시스 테일러(이마야치 코리네알리)를 사랑했던 순간들을 떠올린다. 재즈사의 거대한 이름 마일스 데이비스의 전기영화. 영화의 제목은 그가 1957년 발표한 동명 앨범 제목에서 따왔다. 데이비스 특유의 쇳소리까지 재현해낸 배우 돈 치들이 영화의 연출과 각본까지 맡았다. 4월1일 북미 개봉.
[WHAT'S UP] 재즈사의 거대한 이름 마일스 데이비스의 전기영화 <마일스 어헤드> Miles Ah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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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년여 전부터 힙합그룹 가리온과 <모두의 마이크>를 주관•진행하고 있다. <모두의 마이크>란 재능 있는 신인 래퍼를 발굴하기 위한 프로젝트로서 랩을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무대에 오를 수 있다. 그리고 무대에서 재능을 발휘한 래퍼에게는 실질적인 혜택을 제공한다. 이 글에서 소개할 만수는 <모두의 마이크> 시즌2의 (압도적인) 우승자다. 약속한 대로 우리는 그에게 더 콰이엇과 작업할 기회를 마련해주었고 그 결과물이 이렇게 세상 밖으로 나왔다. 만수는 ‘트렌드의 선봉에 서는’ 타입의 래퍼는 아니다. 그러려고 했다면 일단 이름을 이렇게 지었을 리가 없다. 하지만 만수는 가진 게 많은 래퍼다. 정공에 가까운 꽉 찬 랩 플로, 좋은 전달력, 듣는 이를 ‘빵’ 터지게 하는 재치, 무엇보다 <모두의 마이크>에서 드러났듯 강렬한 무대 장악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래퍼로서의 장점을 딱 하나만 꼽는다면 역시 ‘진솔함’이다. 자기고백적인 태도와 서
[마감인간의 music] 누군가를 알아가는 기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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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쿵푸팬더3> 쿵후판다
[정훈이 만화] <쿵푸팬더3> 쿵후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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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의 처음
최근 고전의 초판본을 그대로 살린 책들이 베스트셀러의 상위를 차지하고 있다. 김소월의 <진달래꽃>과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를 발간한 출판사 소와다리가 이번엔 백석의 <사슴> 초판 복각판을 내놓는다. 1936년 당시 100부만 제작돼 그 모습조차 구경하기 힘들었던 전설적인 시집 <사슴>을 애초의 그 모습 그대로 소장할 수 있게 됐다. 부지런한 독자들에게 부록으로 나무펜과 펜촉을 사은품으로 제공하는 초판본 <사슴>은 사전예약만으로 인터넷 서점 베스트셀러 1위에 올라섰다. 예약을 서두르자.
문소리를 무대에서 만나다
김영하의 장편소설 <빛의 제국>이 무대에 오른다. 서울로 남파된 스파이가 모든 걸 정리하고 평양으로 귀환하라는 지령을 받은 후 벌어지는 24시간을 그린 <빛의 제국>은 한반도의 역사와 개인의 문제를 서늘하게 써내려간 소설이다. 지난해 객석점유율 95%를 기록
[culture highway] 응답하라, 누벨바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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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단점이 있지만 <로봇, 소리>는 특수효과가 어디까지나 이야기에 봉사하도록 통제한 드문 한국 SF다. 진화한 인공지능 무인 위성 ‘소리’는, 이 영화의 구경거리가 아니라 가장 사려 깊고 독창적인 캐릭터이며 극중 누구보다 주체적으로 운명을 개척한다. 나아가 쿨레쇼프 효과(?)를 활용한 연기로 <아이언 자이언트>의 감동을 재현하는 돋보이는 배우이기도 하다. CG 대신 실물 로봇을 캐스팅한 효과는 훌륭하다. 소리의 흠집난 패널에 아침 햇살이 떨어지는 장면만으로도 수고가 아깝지 않다. “보호는 고마운 것입니까?” 감정을 덜어낸 간략한 명제로 구성된 소리의 화법은, 대화하는 법을 몰랐던 해관(이성민)을 한 발짝씩 각성으로 이끌어간다. 홀로 남은 소리가, 전동 휠체어를 굴려 도시의 밤거리를 돌돌 가로질러가는 대목은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답다. 질주하는 자동차, 지치고 취한 사람들 사이를 지나다 문득 멈춰 길고양이에게 고개를 돌리는 소리는 마치 지상을 여행하는 천사 같다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폴링 인 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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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토드 헤인즈는 <캐롤>(2015)의 도입부에서 데이비드 린의 1945년 작품 <밀회>의 도입부를 정확하게 재연한다. <밀회>를 떠올려보자. 기차역 카페 귀퉁이에 알렉(트레버 하워드)과 로라(셀리아 존슨), 두 남녀가 앉아 있다. 우연히 지나가던 여성이 여주인공 로라를 발견하고 다가와 친숙하게 말을 건다. 로라와 남자가 약간 당황해 하지만 그런 그들의 표정에 숨은 절박함에는 무관심한 듯 여자는 수다를 멈추지 않는다. 그 여정이 그들의 마지막 만남인 줄 알았더라면 여자는 차마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상황을 깨달은 알렉은 자리를 먼저 뜨면서 로라의 어깨 위로 손을 지그시 얹는다. 그가 떠나고 정신을 잃었던 로라는 기운을 차려 집으로 돌아온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녀가 집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이다. 교외의 아담한 집에서 자상한 남편과 귀여운 두 아이가 그녀를 반긴다. 로라는 “이곳은 내 집이고 당신은 내 남편이며 내 아이들은 2층
[이용철의 영화비평]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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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근현 감독이 <번개맨>으로 돌아왔다. <번개맨>은 1999년부터 현재까지 EBS <모여라 딩동댕>을 통해 어린이들 사이에서 인기 캐릭터로 자리잡은 ‘번개맨’을 주인공으로 한 특수촬영물(이하 특촬물)이다. TV방송뿐 아니라 이미 공개방송과 뮤지컬을 통해 번개맨은 열성적인 어린이 팬층을 두텁게 확보해왔다. 영화는 사랑스러운 조이랜드와 하늘을 날고 싶어 하는 천진한 소녀 한나(루나) 등을 보호하는 번개맨(정현진)을 통해 꿈과 희망이라는 단순하지만 확실한 메시지를 전한다. 1980년 5월 광주민주화항쟁 때 상처 입은 이들이 펼치는 응징의 기록 <26년>(2012), 한 예술가의 번민을 풀어낸 <봄>(2014)이라는 감독의 전작들과 비교해보면 <번개맨>은 확실히 새로운 선택지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의 개봉(2월11일)을 앞둔 조근현 감독을 만나 어떤 이유로 이 작업에 참여하게 됐는지와 <번개맨>을 만들기까지의 과정
[people] 딸에게 부끄럽지 않은 작품을 만들려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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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부대 요원 출신의 용병 웨이드 윌슨(라이언 레이놀즈)은 취향과 장난기마저 똑 닮은 바네사(모레나 바카린)를 만나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하지만 “행복은 광고처럼 짧은” 법. 말기 암 선고를 받은 웨이드는 비밀 임상실험에 참여하며 재기를 노린다. 극한의 고문으로 이뤄진 실험 후 웨이드는 암을 치료할뿐더러 무한한 재생 능력을 얻으며 불사의 존재가 된다. 하지만 동시에 부작용으로 호러영화에 어울릴 법한 외양을 갖는다. 스스로 슈트까지 지어 입고 ‘데드풀’이 된 웨이드는 자신을 고문한 자를 찾아 제대로 복수한 뒤 당당히 바네사 앞에 나서려 한다.
데드풀의 가장 큰 매력은 슈퍼히어로의 전형과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데드풀은 갖가지 수단으로 적을 죽이는 잔혹한 액션 마니아지만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캐릭터 시계를 애용하는 천진난만한 어른이다. 그는 울버린에 버금가는 힐링 팩터 능력에다 뛰어난 무술 실력까지 갖췄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도 농담을 멈출 줄 모르는 수다쟁이다. 영화는 다
괴짜 슈퍼히어로 데드풀의 무한 매력 <데드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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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는 닭보다 알이 더 많은 농장에서 수탉으로 자라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지만 특유의 소심함에 특별한 면모를 보여주진 못한다. 어느 날 빌리와 친구들이 사는 농장이 팔릴 위기에 처하고, 농장의 아저씨 수탉이 이를 해결하기 위해 챔피언 썬더와의 대결을 결정한다. 결투를 신청하러 치킨 파이터 마을로 들어서고, 경기 주관자의 갑작스러운 제안으로 빌리가 경기에 출전하게 된다. 자신 없는 빌리는 포기하려 하지만, 친구들의 응원을 받아 자기만의 기술을 훈련한다.
<빌리와 용감한 녀석들: 치킨 히어로>(이하 <치킨 히어로>)는 2012년부터 한국에서 개봉되고 있는 <빌리와 용감한 녀석들> 시리즈의 일환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와 관련이 없는 멕시코 애니메이션이다. (스페인어로 알을 뜻하는) 우에보 카툰에서 제작한 <치킨 히어로>는 닭과 알을 내세워 소심한 주인공 빌리가 점차 성장해나가는 과정을 그린다. 군더더기 대사들로 채운 초•중반부를 지나면 빌리가
소심한 닭 빌리의 챔피언 도전기 <빌리와 용감한 녀석들: 치킨 히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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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개맨(정현진)은 어린이들의 꿈과 희망을 지켜주려고 오늘도 하늘로 날아오른다. 조이랜드의 조이랜드 극장 역시 번개맨의 호위 아래 어린이들을 위한 공연을 준비한다. 공연의 주인공인 한나(루나)를 비롯해 시침(이수완), 뭉치(한승현), 주크(김보선), 박스(이재윤) 등이 춤과 노래를 신나게 연습 중이다. 한나는 소망이 있다. 언젠가 번개맨처럼 하늘을 날아보는 것이다. 그런 한나를 꼬드겨 번개맨을 위협하려는 자가 있다. 자신 대신 아이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번개맨이 마음에 들지 않는 잘난마왕(송욱경)이다. 잘난마왕은 자신의 요원인 나잘난(이봉균)과 더잘난(박중금)을 앞세워 한나를 블랙홀에 빠뜨리려 한다. 그럼 분명 한나를 구하러 번개맨이 올 테고 그때를 노려 번개맨을 공격할 속셈이다. 번개맨의 힘의 원천인 번개 파워를 잃게 하는 게 그의 목표다. 게다가 잘난마왕은 이미 희망의 땅 우정랜드까지 파괴한 상태다.
<번개맨>은 1999년부터 현재까지 EBS 어린이 프로그램 <
번개맨은 오늘도 하늘로 날아오른다 <번개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