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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행> 시사가 있던 하루 전 ‘여름 블록버스터 변칙 개봉’ 기사가 먼저 쏟아졌다. <돼지의 왕>(2011), <사이비>(2013) 등의 독립애니메이션을 연출하고 극장 상황 때문에 개봉까지 애를 먹은 <카이: 거울 호수의 전설>(2016)을 제작한 연상호 감독으로서는 양가적인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연상호 감독은 이런 상황에 대해 “두 골룸이 서로 마주보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대화를 나누고 싶은 심정이다”라고 한다. 115억원이 투입된 좀비 액션 블록버스터 <부산행>은 연상호의 전작에서 그렇게나 멀리 떨어져 보이는 작품이다. 더불어 ‘실사영화 같은’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왔던 연상호 감독이 실사영화를 만들었을 때 일어날 법한 모든 근심과 우려, 기대가 한곳으로 수렴된 작품이기도 하다. 그 점에 대해서는 액션과 서사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꽤 근사한 결과물이 나왔다. 앞서 칸국제영화제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되
[스페셜] 힘 있고 단단하게 살아남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 연상호 감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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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행>을 보고 가장 먼저 든 질문 하나. 어째서 감독 연상호는 <부산행>을 자신의 첫 번째 실사영화의 자리에 올렸을까. 애니메이션을 연출해온 연상호 감독은 그간 실사영화를 만들어보겠다는 계획을 꾸준히 밝혀왔다. 무엇보다 연상호표 애니메이션을 본 관객이라면 몸서리치게 섬뜩한 그의 애니메이션 속 사실적인 드라마에 놀라며 이런 이야기가 실사의 세계에서 펼쳐진다면 어떨까를 상상해봤을 것이다. <사이비>(2013)나 <서울역>(2015, 8월 개봉예정)의 리메이크가 논의되기도 했지만 연상호의 선택은 <부산행>이었다. 올해 초 <씨네21>(1037호)과의 신년 인터뷰에서 그는 “재난 상황에서 빚어질 드라마, 유머, 액션이 모두 담겼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호흡으로 달려가는 목적성이 분명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부산행>은 연상호의 바람들이 응축된 결과물임이 틀림없다. KTX 기차에 정체불명의 바이러
[스페셜] <부산행>의 어떤 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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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의 왕>(2011), <사이비>(2013) 등 문제적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온 연상호 감독이 첫 번째 실사영화 <부산행>(2016, 개봉 7월20일)을 만들었다. <부산행>은 제69회 칸국제영화제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돼 평단의 호평을 이끌며 올여름 최고의 기대작으로 떠올랐다. 영화는 부산행 KTX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바이러스가 퍼지면서 공포에 휩싸이는 인물 군상을 적나라하게 그려나가는 블록버스터다. 인간의 두려움과 공포심이 부른 악(惡)에 대한 연상호의 탐구는 이번에도 계속된다. 괴생명체의 등장 앞에서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이는 인간들은 과연 어떤 선택을 이어갈까. 선택 이후에 이들은 좀더 나은 다음을 기약할 수 있을까. 작은 규모의 애니메이션 작업을 이어오던 연상호 감독에게 순제작비 85억원의 <부산행>은 분명 거대한 도전의 장이었을 것이다. 그 시도의 영화 <부산행>에 대한 리뷰의 글을 먼저 실었다.
[스페셜] 살아남기 위해 달린다 - 최악의 상황과 군상의 실체를 속도감 있게 전하는 연상호 감독의 첫 실사영화 <부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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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형외과나 체중감량 업체의 거리 광고에서 우리는 ‘before & after’의 대조 이미지를 본다. 광고 속 모델의 면과 선이 매끄럽게 바뀌면 인생도 반질반질해질 것처럼 유혹한다. 요즘 스마트폰 카메라는 촬영 단계에서부터 얼굴을 인식해 피부를 밝고 곱게 보정해준다. 사진은 SNS에 올라 ‘좋아요’를 부른다. 사진관에서 증명사진을 찍으면 요구하지 않아도 기미, 주근깨, 뾰루지를 없애주는 것은 물론 턱선을 갸름하게 매만진 뒤 인화해준다. 전자제품의 버튼은 미끈한 터치패드로 대체되고 있다. 기업 디자이너와 엔지니어들의 공통된 고민은, 어떻게 하면 두드러지는 선을 없애고 매끄러운 제품 표면을 만들어낼 것인가로 모인다. 솔기 하나 없는 천의무봉의 선녀 옷을 원하는 욕망은 선과 면을 최소화한 디자인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진다. 거칠고 복잡한 내부는 매끈한 표면 아래 숨는다. 원래 있던 것(before)은 욕망하는 것(after)에 가려진다.
매끈한 것들 사이에서 발견한 균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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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형국의 영화비평] 상실로 드러나는 진실 <데몰리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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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있지만, 영화 감상에 방해되기보다는 오히려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관객은 주인공이 자신의 차에 바이닐(LP)을 ‘한가득’ 싣고 어디엔가 도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렇다. ‘한가득’이다. 마치 주인공의 컬렉션처럼 리처드 링클레이터가 감독한 영화 <에브리바디 원츠 썸!!>에는 음악이 한가득 담겨 있다. 1960년 7월30일생. 영화 속 시간적 배경은 1980년. 과연, <스쿨 오브 락>(2003)의 감독답게 그는 음악이라는 프리즘을 경유해 자신의 20대를 향한 헌사를 바친다. 따라서 절대 방심하지 말 것. 이 영화에서 짧든 길든 흘러나오는 음악만 30곡이 훌쩍 넘는다. 그것도 모조리 역사에 흔적을 남긴 히트곡이니 음악광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선택은 없을 것이다.
놀고 놀고 또 놀고
대략의 줄거리를 먼저 살펴본다. 주인공 제이크는 대학 신입생이자 야구 선수다. 대학 생활의 부푼 꿈을 안고 이제 막 기숙사 건물에 도착한
[배순탁의 영화비평] 잠시 일상의 스위치를 끄고 <에브리바디 원츠 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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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쁘면 이쁘다고 미리 말해줬어야지. 당황스럽잖아.” <아가씨>에서 하녀 숙희(김태리)는 아가씨 히데코(김민희)를 만나 이렇게 혼잣말을 한다. 이미 전날 저녁, 처음 저택에 들어온 숙회는 아가씨의 갑작스런 비명에 깨어나 그녀를 다독거리며 자장가까지 들려주었다. 하지만 그녀를 정면으로 바라본 것은 처음이다. 그러고는 깜짝 놀란다.
숙희의 입에서 튀어나온 ‘예쁘다’는 말은 이상한 표현은 아니다. 아가씨는 예쁘다. 우리는 이를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숙희의 독백이 흥미를 끄는 것은 그녀가 예쁘다는 것을 당황스럽다며, 미리 알지 못했다는 것과 연결시키는 대목이다. 그녀는 아가씨가 예뻐서 놀란 것이 아니라,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놀란 것인가? 이는 하녀로 위장 잠입해 아가씨의 돈을 갈취하려는 백작(하정우)과의 치밀한 공모의 허점을 드러내는 것인가? 아니면 그녀의 숨겨진 욕망을 드러내는 것인가? 어떻든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내가 흥미를 느끼는 것은 ‘예쁘다’는 표현
[김성욱의 영화비평] 아가씨는 예쁘다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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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지않은 장래에 예술이란 개념은 중2병의 하위 장르가 될지 모르겠다. 1% 귀족들 외에 모두 개돼지일 뿐인 야만적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이 어쩌고 하며 고민하는 걸 들켰다간 현실 인식이 매우 떨어진다는 진단을 받는다. 완전무결한 예술이란, 일기는 일기장에 쓰고 그 일기장을 불에 태운 다음 내가 뭔가를 썼다는 사실을 깨끗이 잊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적어도 자신은 지킬 수 있다. 무엇으로부터? 창밖의 미친 세계와 매정한 타인으로부터. 그러나 야망을 가진 인간은 이불 밖은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세계로 나가고야 만다. 겨우 글을 쓸 줄 안다는 한줌의 재능만을 가지고서, 인간은 과연 세계의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는가? 이 재능에 문학적 감성과 회화적 감각이 더해지고, 게다가 그 성격에 완벽함에 대한 강박까지 있다면? 영화를 택해 감독을 꿈꾸어볼 것. 그것은 능히 한 기업을, 한 사업을 망하게 할 수 있다. 내 일기장이 아니라 남의 돈을 불태울 수 있다. 자본주의 시대 예수가 되는 일
[박수민의 오독의 라이브러리] 혼자서 치른 마이클 치미노 추모 회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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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른 안드레센을 다시 ‘만난 건’, 그러니까 그의 생사를 확인한 건 올 초 열린 스웨덴 예테보리국제영화제에서였다. ‘호텔 페티시’임을 자처하는 크리스티안 페트리 감독은 다큐멘터리 <더 호텔>(2016)을 통해 무려 10년간 전세계의 오래된 호텔을 다니며 호텔이 가진 의미를 되짚어보는 투어를 한다. 몇 백년 된 일본의 온천장이나 <전망 좋은 방>(1985)의 배경이 된 이탈리아 피렌체의 호텔 같은 곳이 등장하니 참으로 고상한 투어가 아닐 수 없다. <베니스에서의 죽음>(1971)에서 쇠약해진 작곡가 구스타브 아센바흐(더크 보가드)의 심장을 뛰게 만든 타지오를 연기한 비에른 안드레센은 페트리 감독이 10년간 만난 다큐멘터리의 인물 중 한명이었다. 캄캄한 극장 안에서 나는 타지오를 향해 ‘사랑한다’, ‘누구한테도 그렇게 미소를 짓지 말라’고 절규하던 구스타브 교수마냥 탄식을 보냈다.
차기작 소식보다 비행기 사고, 약물중독으로 이미 유명을 달리했다는 루
[이화정의 다른 나라에서] 탐미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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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운동화 중 어느 것이 낳나요?” 웹사이트 게시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질문이다. 철자법이 틀린 건 그렇다 치고 의미 전달 자체도 애매하게 변질되어버린다. 하지만 우리는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간혹 바로잡아주는 댓글에는, ‘빡빡하게 굴지 말라’ 등의 답들이 수두룩하게 달린다. 그렇다고 우리말을 곱게 쓰고, 철자법을 맞춰 쓰자는 운동을 시작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나친 줄임말과 신조어 속에 세대간의 대화조차 통하지 않는 2016년 한국에서는, 소통을 위한 우리말에 대한 관심이 조금은 더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KBS1의 <안녕 우리말>은 공중파 방송에서 만들어야 할 적합한 콘텐츠 중 하나로 보인다.
무엇보다 주요 타깃층인 청소년을 위해 주인공을 아이돌 걸그룹 걸스데이의 민아로 설정했다. 3분 남짓한 시간에 풀어내는 이야기와 언어들이 요즘 10대, 20대들이 살아가면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도 콘텐츠의 접근성을 높인다. 바른말의 상징과
[김호상의 TVIEW] <안녕 우리말> 착한 프로그램의 존재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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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키메> のぞきめ
감독 미키 고이치로 / 출연 이타노 도모미, 시라이시 슌야 / 수입·배급 브릿지웍스 엔터테인먼트(주) / 개봉 8월
죽음을 부르는 눈을 피해 창틈, 하수구 구멍, 서랍 틈 등등 틈과 구멍을 보이는 족족 테이프로 봉하기 시작하는 유타로. 하지만 미처 막지 못한 틈새로 노조키메의 저주가 시작된다. 유타로의 처참한 죽음을 본 방송국 리포터 미시마가 의문의 죽음을 불러오는 노조키메의 정체를 찾아나선다. ‘엿보는 눈’이라는 뜻의 노조키메(のぞきめ)는 ‘엿보는 여자’로 의미가 변화되어 한 마을의 무시무시한 괴담으로 전해져왔다. J호러 미스터리의 거장 미쓰다 신조의 원작 <노조키메>를 바탕으로 완성한 미스터리 호러물. <링> <주온> <검은 물밑에서> 같은 J호러의 토대가 된 원작을 발간한 가도카와 호러 문고의 명성을 등에 업은 기대작이다.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데서 오는 불안감을 바탕으로 구축한 ‘시선의
[Coming Soon] 미처 막지 못한 틈새로 노조키메의 저주가 시작된다 <노조키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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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바다를 끼고 펼쳐지는 제18회 정동진독립영화제가 공식 초청작을 발표했다. 다큐멘터리 2편, 애니메이션 4편 등을 포함한 총 23편이다. 가족 단위의 관객이 많이 찾는 야외 영화제답게 올해도 가족영화들이 눈에 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함께 보며 얘기 나누기 좋은 애니메이션 <어릿광대 매우매우씨> <붉은 실 이야기> <Man Up> <피아노와 아이> 등이 대표적이다. 올해 인디포럼 공동 개막작으로 선정됐던 이나연 감독의 <못, 함께하는>을 비롯해 김태용 감독의 <그녀의 전설> 등은 쉽게 말할 수 없는 가족간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강석필 감독의 다큐멘터리 <소년, 달리다>(2015),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투쟁을 다룬 이란희 감독의 <천막>(2016), 구교환·이옥섭 감독의 <플라이 투 더 스카이>(2015), 배우 문소리의 연출작 <최고의 감독>(2015) 등도 눈여
[인디나우] 제18회 정동진독립영화제 공식 초청작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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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한 당신> 최윤필 지음 / 마음산책 펴냄
많은 인간은 인생의 전성기라고 부를 만한 것을 지나 한참을 더 살고 죽는다. 어떤 죽음은 먼지를 뒤집어쓴 추억들을 세계적으로 소환하지만, 어떤 죽음은 쉽게 잊힌다. <한국일보> 최윤필 기자의 <가만한 당신>은 부고를 모은 책이다. 대중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해도 특정 분야의 전문가이거나 사회적으로 반향을 불러일으킨 사건의 주인공들의 경우,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여도 부고를 싣고 기리는 영미 저널리즘의 특성을 한국식으로 반영한 글이다. 이 책의 놀라운 특징은, 유명한 사람들의 부고는 싣지 않았다는 것, 페미니즘과 동성혼 법제화, 흑인 인권운동 등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세상을 바꾸고자 한 사람들을 중심에 두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종일관 차분하게, 그들의 삶과 세상에 대한 기여, 그리고 죽음을 적었다. 이 풍진 세상에서 약자를 위해 싸우는(혹은 언론 권력의 치부를 드러내거나 세계가 보는 가운데 추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이 풍진 세상에서 약자를 위해 싸우는 당신들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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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소원이라고 부를 만한 것 중에 그림책 만들기가 있다. 오랫동안 책을 끼고 살아온 내게 그림책은 책의 물성을 가장 완벽하게 구현하는 방법이다. 종이, 인쇄, 텍스트의 배치법과 컬러, 그야말로 책의 모든 디테일을 만끽하는 독서다.
<여우와 별> 코랄리 빅포드 스미스 지음 / 사계절 펴냄
코랄리 빅포드 스미스의 그림책 <여우와 별>은 지난해 런던으로 여행갔던 때, 내가 들렀던 ‘모든’ 서점의 가장 좋은 자리에 놓였던 작품이다. 코랄리 빅포드 스미스는 영국 펭귄북스의 디자이너로, ‘펭귄 하드커버 클래식’ 시리즈를 디자인했고, 나는 오로지 그 표지가 좋아서 이미 가지고 있는 책을 다시 사기도 했으니 <여우와 별>에 매혹된 것은 놀랄 일도 아니다. 깊고 어두운 숲속에 여우가 살았다. 겁 많은 여우에게 친구는 오직 하나, 별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별이 사라졌고, 여우는 별을 찾아나선다. 하지만 줄거리는 <여우와 별>에 대해 말할 수 있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모든 디테일을 만끽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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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앤드 데이브 니드 웨딩 데이츠 <Mike and Dave Need Wedding Dates>
감독 제이크 시맨스키 / 출연 안나 켄드릭, 잭 에프런, 애덤 드바인
사고뭉치 형제 마이크와 데이브는 여동생의 웨딩 파티를 쑥대밭으로 만든다. 부모는 형제가 차분해졌으면 하는 바람에 그들에게 여동생의 하와이 결혼식에 짝을 데려오라고 명령한다. 둘은 급한 마음에 TV 토크쇼에 출연한다. 하와이에 가고싶어 하던 두 여자는 방송을 본 뒤 두 남자에게 접근한다. 대책 없는 네 남녀의 코미디 소동극이다. <나쁜 이웃들> 시리즈의 앤드루 제이코헨과 브렌던 오브라이언이 각본을 맡았다.
[해외 박스오피스] 미국 2016.7.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