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률 감독의 모든 영화들을 지배하는 키워드 중 하나는 ‘죽음’이었다. 그의 영화에는 모든 인간이라면 숙명적으로 맞이해야 할 육체적 죽음이 있었고, 이주민(민족 혹은 노동자)들에게 가해진 돌연하고도 부조리한 죽음들이 있었다. 죽음에 대한 그의 묘사가 달라진 건 아마도 감독의 한국 생활 이후일 것이다. 특히 <풍경>(2013)과 <경주>(2014)에서부터 <필름시대사랑>(2015)을 거쳐 이번 영화 <춘몽>까지, 한국에서 제작된 이 영화들 속 죽음들은 육체의 물리적 소멸이나 서사적 사건이라기보다는, 추상적이고 시적인 방식으로 사유되고 묘사되는 죽음들이다. 그에게 영화란 꿈의 언어와 흡사한 것이고, 동시에 그것은 죽음을 사유하는 언어이다.
죽음과 영화
<경주>에서 시작해보자. <춘몽>과 흡사 거울처럼 마주보고 있는 이 작품에서 서사의 작인은 ‘죽음’이었다. 선배의 돌연한 죽음으로 경주를 방문한 한 남자의 이틀을 기록하고
[정지연의 영화비평] 영화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실험하고 보여주는 장률의 <춘몽>
-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오랜 시청자로 자극적인 재연 화면과 극화된 사건을 소비하는 입장에선 종종 저 장면이, 저 묘사가 필요한지 불필요한지를 고민할 때가 있다. ‘살수차 9호의 미스터리-백남기 농민 사망사건의 진실’ 편에서 고 백남기 농민이 무시무시한 위력의 물대포에 맞는 장면을 반복 재생할 때도 그랬다. 몸이 덜덜 떨리는 와중에 이것은 도에 지나친 것이 아닐까, 반복은 어떤 필요인가를 의심했었다.
방송은 백남기 농민 사건 청문회 중, ‘결과가 사망이었다고 해서 무조건 사과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강신명 전 경찰청장의 발언과 그가 근거로 삼는 살수차 사용과 훈련이 적법했다는 주장. 그리고 사인을 병사로 기재한 백선하 서울대 교수의 의견을 근거로 삼아 부검을 주장하는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의 발언 사이사이에 이 근거들을 뒤집는 관련자들의 증언과 정교하게 재연한 살수차의 위력 실험 결과를 나란히 배치했다. 프로그램 도입부에서 유족 백민주화씨는 말했다. “진실을 숨기
[유선주의 TVIEW] <그것이 알고 싶다> 그 재연을, 지지하며
-
형
제작 초이스컷픽쳐스 / 제공·배급 CJ엔터테인먼트 / 감독 권수경 / 출연 조정석, 도경수, 박신혜 개봉 11월30일
세상에 이런 형제도 있다. <맨발의 기봉이>(2006)를 연출한 권수경 감독의 신작 <형>은 15년 동안 연락 없이 살던 형제가 우연한 계기로 다시 만나게 되는 이야기다. 사기전과 10범의 형 두식(조정석)은 국가대표 유도선수인 동생 두영(도경수)이 경기 도중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가석방을 계획한다. 우여곡절 끝에 1년간의 보호자 신분으로 가석방된 두식은 동생을 돌보기는커녕 그의 삶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 뿐이다. 우선 가장 궁금한 건 조정석과 도경수의 콤비 플레이다. 조정석의 능청스러운 연기와 도경수의 강직한 이미지가 어떤 방식으로 시너지 효과를 낳을지 기대해봐도 좋을 듯하다. <7번방의 선물>을 집필한 유영아 작가가 시나리오를 맡았다.
[Coming Soon] 남보다 못한 형제의 예측불허 동거가 시작된다 <형>
-
사진 촬영도 척척, 묻는 말에 대답도 척척, 신은수는 똘똘하다. 연기 경력이 전혀 없는 생짜 신인이라는 사실을 깜빡할 정도다. 지난겨울, 남양주촬영소 촬영장에서 <가려진 시간>을 찍는 엄태화 감독을 잠깐 만난적 있다. 그는 자신의 히든카드인 신은수를 두고 “강심장”이라고 표현했다. 카메라가 돌아가면 긴장을 전혀 하지 않는 모습이 신인답지 않다는 뜻이었다. 그 말은 어른 같다는 얘기가 아니다. “긴장을 잘 안 하는 편인가보다. 그런데 인터뷰는 해본 적이 없어서 전날 밤에 매니저 언니와 예상 질문을 만들어 연습했다”고 해맑게 웃는 모습이나 “운동하기 싫어하고 TV 앞에 앉아 <짱구는 못 말려> 시리즈를 즐겨”보기 때문에 스스로를 “게으름형”에 속한다고 소개하는 모습은 또 영락없는 14살 소녀다. 어쩌면 때묻지 않은 순수함이 한달 동안 진행된 오디션을 3차까지 모두 통과해 300 대 1이라는 경쟁률을 뚫고, 수린 역을 꿰찰 수 있었던 비결인지도 모른다.
그녀가 연
[커버스타] 연기의 맛 - 신은수
-
-
“20대였더라면 선택이 더 빨랐을 거다.” 강동원이 말했다. 영화 <가려진 시간>은 작품에 대한 취향이 명확한 그에게도 쉬운 선택지가 아니었다. 우선 ‘물리적 시간’이 마음에 걸렸다. “시간 속에 오랫동안 갇혔던 소년이 홀로 어른이 되어 또래 소녀 앞에 나타난다는 설정이다보니, 아무래도 더 젊은 20대 배우가 연기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 거다.” 하지만 엄태화 감독은 <검사외전>의 촬영지였던 부산까지 내려가 강동원을 설득했다. 엄태화 감독이 아닌 다른 누구라도 그러했을 것이다.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를 넘나들고, 소년과 어른이 경험하는 시간대를 폭 넓게 보여주어야 하며, 진실을 말하는 순간에도 모호함을 잃지 않는 인물을 연기할 수 있는 배우를 떠올렸을 때, 강동원은 여전히 가장 먼저 생각나는 선택지다. <M>(2007)과 <전우치>(2009), <초능력자>(2010)와 <검은 사제들>(2015) 등 강동원이
[커버스타] 정지된 시간 - 강동원
-
소년이 사라지고 소녀는 그를 기다린다. 엄태화 감독의 신작 <가려진 시간>이 11월16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숲속 어스름한 동굴에서의 믿을 수 없는 사건으로 언제까지나 함께할 것 같았던 단짝 친구는 서로 다른 시간의 타래에 갇히게 된다. 불현듯 어른이 되어 나타난 소년을 소녀는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 비련의 소년 소녀를 연기하는 두 배우에 주목할 만하다. 올해 그 누구보다 빠른 속도로 자신의 시간을 확장해나가고 있는 배우 강동원과 지금 막, 배우로서의 시간을 시작한 신인배우 신은수의 현재를 들여다보자.
[커버스타] 영화의 시간 속으로 - <가려진 시간> 강동원과 신은수
-
올해 2월29일로 잠정 휴관에 들어갔던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이 내년 3월 재개관을 준비 중이다. 그에 앞서 강릉씨네마테크가 기획전 ‘새로운 다양성영화를 보다’로 관객을 찾는다. 11월5일부터 11월20일까지 매주 토·일 열리는 이번 기획전에는 시의성 짙은 다큐멘터리와 화제의 극영화들이 두루 상영된다. 10월27일 관객수 10만명을 돌파한 최승호 감독의 <자백>, 마이클 무어의 <다음 침공은 어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태풍이 지나가고>가 눈에 띈다. 장현상 감독의 <사돈의 팔촌>, 박석영 감독의 <스틸 플라워>, 이소현 감독의 <할머니의 먼 집> 등 화제의 한국 독립영화를 다시 볼 수 있다. 올해 서울프라이드영화제 상영작인 <파리 05:59>(감독 올리비에 뒤카스텔, 자크 마르티노)와 앨프리드 히치콕의 영화세계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 <히치콕 트뤼포>(감독 켄트 존스)도 있다. 관객과의 대화도
[인디나우]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 재개관 앞두고 ‘새로운 다양성영화를 보다’ 기획전 개최
-
-지아장커 감독이 <서유기>를 바탕으로 한 영화를 기획 중이다
=<서유기> 중 수도승들이 여자들이 지배하는 나라를 방문하는 에피소드를 영화화한다. 그의 제작사인 패뷸러스 엔터테인먼트와 상하이 필름그룹이 함께 제작한다.
-피터 잭슨 감독이 SF블록버스터 <모털 엔진>을 연출한다
=필립 리브가 쓴 동명의 영국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핵 전쟁 뒤 자원을 놓고 싸우는 세력간의 갈등을 그린 이야기로 <반지의 제왕>과 <호빗>의 각본가 프랜 윌시와 필리파 보엔스가 함께 각본을 쓴다.
-워너브러더스가 로알드 달의 소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캐릭터 윌리 웡카로 영화를 만든다
=<해리 포터>의 제작자 데이비드 헤이먼이 제작하고, <마이펫의 이중생활>의 사이먼 리치가 각본을 쓴다. 윌리 웡카의 초기 모험들을 다룰 예정이다.
[댓글뉴스] 지아장커 감독 <서유기> 바탕으로 한 영화 기획 外
-
[정훈이 만화]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수상한 파란 집의 비밀
[정훈이 만화]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수상한 파란 집의 비밀
-
내 동생은 캐나다 어학연수 중에 만난 남자와 결혼했다. 그 남자는 허세와 잔소리가 심하고 말이 많은 경상도 남자였다. 이쯤 되면 짐작할 거다. 영어 배우러 간 캐나다에서 1년 동안 한국말을 얼마나 많이 하며 살았을지.
한국에 돌아온 동생에게 나는 영국 출장에서 녹음한 인터뷰 파일을 건넸다. “한국어로 번역해서 풀어줘, 빵 사줄게.” 옆에는, 나한테는 틈틈이 삥을 뜯으면서 동생한테는 1년 연수 비용을 대준 엄마도 있었다. 동생은 당황했다. 하지만 몇분쯤 듣더니 갑자기 얼굴이 밝아졌다. “이거 영국식 영언데? 나는 미국 영어 배워서 못 알아들어.” 머리를 굴리기는 했다만 동생아…. “그 사람 미국 사람이야, 영국에서 만났을 뿐. 그리고 너 억양이 이상해. 캐나다에서 영어는 못 배우고 경상도 말만 배워왔구나.” 동생은 울면서 언니가 괴롭힌다고 엄마한테 이르러 갔다.
그 몇달 후 제부는 취직은 하지 않고 1년간 미국식 영어를 배웠으니 이제 영국식 영어를 배우러 영국에 가야겠다고 했다
[김정원의 도를 아십니까] 사기꾼의 도(道)
-
커리어로 따지면 업계 최고라 부를 만하다. 호주 출신의 VFX 슈퍼바이저 마크 반덴 베르겐의 필모그래피를 한번 살펴보자.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 테크놀로지와 예술의 아름다운 결합이었던 <트론: 새로운 시작>, 조지 밀러의 걸작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와 <호빗> 시리즈의 문을 닫는 <호빗: 다섯 군대 전투>까지, 그의 필모그래피는 VFX 전문가들이 한번쯤 꿈꿔봤을 법한 꿈의 프로젝트로 가득하다. 이 영화에서 정확히 어떤 작업을 했냐고? 반 덴 베르겐의 설명을 직접 듣는 게 좋겠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에서 합성 슈퍼바이저를 맡았다. 합성 슈퍼바이저라 하면 특수효과를 위해 따로 촬영한 이 장면과 저 장면을 하나의 결합된 장면으로 만들어주는 VFX 전문가를 뜻한다. 영화에서 두프 워리어가 연주를 하며 불꽃을 내뿜는 장면을 예로 들어보자. 그 장면의 합성을 맡았었는데, 기타에서 나오는 불꽃은 진짜 불꽃이 아니었
[스페셜] 예술과 기술의 마스터가 될 때까지 ─ VFX 슈퍼바이저 마크 반 덴 베르겐
-
제2의 스탠 윈스턴을 꿈꾼다. 테크니컬 스튜디오 셀의 4년차 특수분장사 박영무는 “<에이리언>(1979), <터미네이터>(1984), <로보캅>(1987) 등을 보며 아주 어린 시절부터 무조건 특수분장 일을 하리라 결심했다”는 할리우드 키드다. 취미도 언제나 그림 그리기나 SF 만화와 영화를 찾아보는 일 또는 프라모델 조립이었다고 한다. 박영무 특수분장사는 1985년,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 출생해 그곳에서 쭉 자랐다. 2008년엔 연변대학 촬영학과를 다니다 중퇴하고 베이징으로 가 컴퓨터그래픽을 공부했다. “특수분장사가 되고 싶었지만 중국엔 전문적인 영화 특수분장 회사가 없었기 때문에 일단 현장으로 들어가야 했고, 그러기 위해선 영화 공부가 먼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학교를 떠나 현장에 뛰어든 박영무 특수분장사는 할리우드에서도 활발히 활동한 중국 최고의 특수분장 전문가 칼 왕나이펑 아래서 특수분장 기술을 배웠다. 기본적인 기술도 기술이지만 무엇보다 “
[스페셜] 현실적인 특수분장을 잘하고 싶다 ─ 특수분장사 박영무
-
“귀화한 지 5년이 넘었는데 여전히 다들 내가 외국인인 줄 안다. 여기서 17년째 살고 있는데 아직도 어디서 왔냐, 한국어 할 줄 아냐고 한다. 이젠 그만 좀 물어봤으면 좋겠다. (웃음)” 본명은 마붑 알엄, 몇년 전 한국인 아내의 성을 따라 이씨로 성을 바꾼 이마붑 대표는 지난해 11월에 유럽영화와 서남아시아영화를 수입·배급하는 회사 M&M 인터내셔널을 차렸다. <반두비>의 이주노동자 청년 카림으로 더 잘 알려진 그는 사실 특집 제목과 달리 엄연한 한국인이다. <나의 친구 그의 아내>에 외국인 인부 역할로 출연한 인연으로 신동일 감독과 친구가 되었고 그때만 해도 이마붑 대표는 자신이 배우로 쭉 활동하게 될 줄은 몰랐다. 신동일 감독이 <반두비>에 출연할 배우를 찾는 일을 돕고 시나리오도 함께 살피는 일을 하던 중 섭외가 쉽지 않아 힘겹게 12kg을 감량하고 직접 출연했다고 한다.
배우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의 전공은 경영이다. 방글라데시
[스페셜] 다문화 사회의 면면을 보여주겠다 ─ 수입·배급사 M&M 인터내셔널 대표 이마붑
-
<명량>과 <대호>, <동주>와 <해어화>, 그리고 <밀정>. 일본 출신 배우 다케다 히로미쓰의 필모그래피는 화려하다. 최근 몇년 새 일제시대 혹은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한 주목할 만한 한국영화의 풍경 속에는 늘 그가 있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역할로 출연했는지 단번에 생각나지 않는다고? 그럴 수도 있다. 비중 있는 일본인 캐릭터는 한국 배우가 연기하는 경우도 많으니까. 다케다 히로미쓰가 맡은 배역에 약간의 첨언을 하자면 <명량>에서 그는 배우 조진웅이 연기한 일본 무장 와키자카의 수하로 출연했다. <대호>에서는 조선 호랑이를 사냥하려는 일본 고관 마에조노(오스기 렌)를 보필하는 부관 역할을 맡았고, <동주>에는 시인 윤동주(강하늘)가 수감된 후쿠오카 교도소의 간수장으로 등장한다. <해어화>에선 일본군을 죽인 서연희(천우희)의 거처를 수색하는 일본군 헌병 장교로, <밀정&g
[스페셜] 국적 넘어서는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다 ─ 배우 다케다 히로미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