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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성추행하는 남자에겐 니킥을 꽂고, 꽉 막힌 고속도로에서 얌체 운전을 하는 운전자를 끝까지 쫓아가 한마디 하는 여자. 법원에 미니스커트 차림으로 들어섰다가 손가락질을 받자 이내 시위하듯 부르카로 갈아입고 나오는 여자. 20대 중반의 젊은 신입 판사 박차오름은 인터넷에선 ‘미스 함무라비’로 통한다. 법관의 고정관념을 깨부수는 옷차림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식의 태도 때문이다. 하지만 박차오름 판사가 해석하는 함무라비 법전의 의미는 조금 다르다. “평민이나 노예가 귀족이나 힘 있는 사람의 털끝 하나만 실수로 건드려도 목이 날아갈 수 있었던” 고대에, “피해와 동일한 만큼의 처벌만 허용한다는 것은 사람들의 복수를 엄청나게 제한한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편견, 권위 따위에 굴하는 법이 없는 박차오름 판사와 서울중앙지법 44부 판사 동료들은 서로를 거울삼아 성장해나간다.
<미스 함무라비>는 문유석 작가가 2015년 봄 <한겨레>에 연재했던 소
[도서] 씨네21 추천 도서 <미스 함무라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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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의 유명 정치평론가 애너벨 크랩은 ‘아내’를 이렇게 정의한다. “집 안 여기저기 쌓여가는 무급 노동을 더 많이 하려고 유급 노동을 그만둔 사람.” 작가는 ‘아이가 있는 두 부모 가족’의 경우 이 노동자의 존재는 여성임이 당연시되고 남성의 전유물로 인지되는 현실을 지적하며 <아내 가뭄>의 서두를 연다. 불평등한 가사 노동의 현실을 요목조목 짚어내는 이 책에서 많은 사례는 어린 자녀 셋과 전일제로 일하는 남편을 두고 역시나 ‘일하는 엄마’로 살아가는 작가 본인의 경험담에서 비롯한다. 일하는 시간이 불규칙한 탓에 어린이집을 보낼 수가 없자 저자는 자녀를 안고 식탁 앞에 서 원고를 쓰고, 아이를 일터에 데리고 다니며 ‘현대의 철인5종경기’를 펼친다. 그런 그에게 일상처럼 따라오는 질문들이 있다. “어떻게 그 모든 일을 다 해요?”, “피곤하지 않으세요?”, “애들은 누가 봐요?” 역시나 “여러 가지 일을 묘기에 가깝게 해내”는 남편에겐 아무도 그런 질문을 하지 않는다.
작
[도서] 씨네21 추천 도서 <아내 가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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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문호 이반 투르게네프는 인간을 두 종류로 나누었다. 햄릿 아니면 돈키호테다. 그가 본 돈키호테는 이상에 대한 애착에 사로잡혀 있고 그 이상을 위해서라면 어떤 고통도 견딜, 심지어 목숨까지 희생할 각오가 돼 있는 인물이다. 반면 햄릿은 분석적이고 꼼꼼히 따지는 태도와 자의식의 상징이다. 그외에도 독일의 대문호 괴테, 실존주의의 선구자 니체,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프로이트 등 숱한 지성인들은 <햄릿>에 대해 저마다의 주석을 달았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은 이처럼 시대별로 수많은 비평과 분석을 덧입으며 고전 중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해왔다. 창비세계문학 시리즈의 50번째 작품 <햄릿>에는 <햄릿> 속 캐릭터와 극적 장치들에 대한 고전적 비평이 실린다.
부록이 아무리 탄탄해도 가장 중요한 건 본문이다. 역자는 주요 판본 중 하나인 해럴드 젱킨스가 편집한 <아든 셰익스피어: 햄릿>에 다른 판본의 내용을 종합해 원문을 풍부하게 구성했
[도서] 씨네21 추천 도서 <햄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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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다.” 햄릿의 가장 유명한 독백에는 다음과 같은 대사가 뒤따른다. “어느 쪽이 더 장한가. 포학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마음으로 받아내는 것, 아니면 환난의 바다에 맞서 무기 들고 대적해서 끝장내는 것?(후략)” 최근 <햄릿>의 새로운 번역본을 내놓은 설준규 박사는 뒤따르는 이 대사들을 토대로 저 유명한 문장을 새롭게 해석했다. “이대로냐, 아니냐, 그것이 문제다.” 단지 삶과 죽음에 대한 문제뿐 아니라 현 상태를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할 것인지의 갈림길에서 나온 질문이라는 게 번역자의 생각이다. 올해의 마지막 북엔즈에는 ‘이대로냐, 아니냐’ 하는 절체절명의 질문 앞에서 보다 근본적인 삶의 변화를 모색하길 택한 책 다섯권이 꼽혔다.
셰익스피어 문학의 정수 <햄릿>의 주인공 햄릿은 문학사상 가장 유명한 캐릭터 중 하나다. 햄릿은 억울하게 독살당한 선왕의 복수를 위해 거짓으로 미친 체한다. 그 과정에서 사
[도서] 씨네21 추천 도서 - 변화를 이야기하는 책 다섯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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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문제로 촉발된 최근 독일 사회의 갈등과 고민은 유머로 승화하기에 녹록지 않은 소재다. 그럼에도 이 문제를 풍자적으로 담아낸 가족 코미디 영화 <하르트만 가족에게 오신 걸 환영합니다>(Willkommen bei den Hartmanns)가 올 연말 독일영화계에서 승승장구 중이다. 이 작품은 개봉 한달 뒤에도 박스오피스 2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영화는 각 세대의 여러 유형을 대표하는 인물들이 얽히고설키는 모습을 보여준다. 종합병원에서 주임의사를 맡고 있는 초로의 가장 리하르트 하르트만(하이너 라우터바흐)과 전직 교사였던 그의 아내 앙겔리카(젠타 베르거)는 뮌헨 부자동네의 고급 단독주택에 살고 있다. 앙겔리카는 남편 리하르트에게, 난민에게 세를 주자고 제안한다. 자녀들이 독립한 뒤 더욱 넓어진 집에 활력을 불어넣는 도전을 해보려는 것이다. 노부부는 적합한 난민 세입자를 선택하기 위해 면접을 거쳐 나이지리아 출신의 디알로를 들인다. 그러나 하필 이때 장성한 아들
[베를린] 가족 코미디 영화 <하르트만 가족에게 오신 걸 환영합니다> 흥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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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많은 전통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의 전통은 ‘저항의 영화’, 강력한 권력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이해를 담아내는 영화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올해 칸국제영화제에서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2006)에 이어 <나, 다니엘 블레이크>로 두 번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켄 로치의 수상 소감은 흡사 정치연설에 가까웠다. 심사위원장인 조지 밀러의 발표와 함께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무대에 오른 켄 로치는 “이 상을 받는 게 이상합니다. 우리에게 이 영화의 영감을 준 이들은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부유한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라는 말로 포문을 열었다. 그는 ‘신자유주의’로 불리는 경제정책이 세상을 위험하게 만들었고, 그 결과 수많은 사람들이 잔혹한 빈곤과 내핍에 시달리게 되었음을 피력하며 영화예술의 책무가 무엇인지 상기시킨 것이다.
올해로 81살이 된 켄 로치 감독은 지난 2014년에 연출한 <지미스 홀>이 자신의 마지막 극영화라
[정지연의 영화비평] 저항의 멜로드라마 <나, 다니엘 블레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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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싸움이 잠시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더 큰 싸움의 시작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를 지치게 만들고, 분노하게 만들고, 광장으로 나아가게 만든 그것이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몇년 전 유행하던 힐링과는 다른 의미로 지금 우리에겐 위로가 필요하다. 옆을 보면 손 잡아주는 사람이 있고, 뒤를 돌아보면 같이 눈을 맞춰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삶에 힘을 준다.
이 지면에 올렸던 JTBC의 <말하는 대로>가 도심 곳곳의 이른바 ‘스피커스 코너’로 머리를 따뜻하게 만들었다면, 연남동에 새로 개업한 tvN의
<인생술집>은 인생의 이야기들로 감성을 건드릴 준비를 하고 있다. (그다지 새롭진 않지만 능숙한) 신동엽, 김준현, 탁재훈이 호스트로 게스트들을 기다린다. 이들은 실제로 술을 마시며 서로에게 기대고, 서로의 이야기를 섞어낸다. 첫 번째 게스트는 배우 조진웅. 초면인 이들이 어색함을 깨나가는 시간을 방송이 담아내는 건 다소 답답
[김호상의 TVIEW] <인생술집> 위로가 필요한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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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킹
제작 우주필름 / 감독 한재림 / 출연 조인성, 정우성, 배성우, 류준열, 김의성, 김아중 / 제공·배급 NEW / 개봉 2017년 1월
“태수야. 안 보이니? 내가 역사야. 이 나라고.” <더 킹>의 예고편에서 보는 이들을 사로잡는 건 이 은밀한 목소리다. 중요한 건 서울대 합격이나 사시 패스가 아니고, 성공을 위한 지름길은 따로 있음을 암시하는 은근한 유혹. <더 킹>은 그야말로 비선 실세가 정국을 뒤흔든 최근 대한민국의 현실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손에 쥐고 싶었던 태수(조인성)는 우여곡절 끝에 권력의 설계자 한강식(정우성)을 만나게 되고, 그의 도움으로 승승장구한다. 하지만 정권이 교체되는 시기, 새로운 판을 짜며 기회를 노리던 이들 앞에 예상치 못한 위기가 닥친다. 가장 기대되는 건 <쌍화점>(2008) 이후 8년 만에 스크린으로 복귀한 배우 조인성이 구현해낼 권력의 이면이다. ‘비선 실세’로 분한 정우성과
[Coming Soon] 스크린에서도 활약 하는 '비선 실세' <더 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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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김우빈이 연기하는 박장군은 <마스터>의 브레인이다. 어떻게 하면 수억, 수조원의 돈을 자기 주머니로 빼돌릴 수 있을까만 궁리하며 산다. 장군은 진현필(이병헌)이 운영 중인 원네트워크의 전산실장 직함을 달고 그의 돈세탁을 도맡고 있다. 하지만 매번 딴주머니를 차려는 못난 습관 탓에 자신의 앞날을 수렁으로 밀어넣는 어리숙한(?) 구석도 있다. 장군이 진현필의 수조원대 비자금 중 “소박하게 500억원만” 가로챌 것을 궁리하며 친구 경남(조현철)과 또 다른 작당을 벌인 덕분에 장군은 진현필과 “그 윗대가리들”을 소탕하려는 지능범죄수사팀장 김재명(강동원)의 비밀의 ‘말’이 되고 만다. “그렇게 순진한 건 장군이가 아직 어려서 그런 걸까? (웃음) 일할 때 지능적이고 계산적이라고 해서 실생활에서까지 그럴 것 같진 않았다. 천재인 듯하면서 허당인, 현실에 있을 법한 바보이기도 하다. 그렇게 평소엔 잔뜩 풀어져 있다가도 할 일을 해야 할 땐
[커버스타] 타고난 설계자처럼 - <마스터> 김우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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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원은 2016년 달력에 ‘일 또 일’이라고 새겨넣기라도 한 걸까. 올해 개봉작만 무려 세편. 장르, 캐릭터 어느 하나 겹침이 없다. <검사외전>에선 사기의 귀재로, <가려진 시간>에선 소년과 성인의 경계에 선 비감 어린 인물로, 그리고 이번엔 <마스터>의 ‘마스터’다. 그는 지능범죄전담수사팀 김재명 형사가 돼 범죄사기단 원네트워크의 진 회장(이병헌)뿐 아니라 이 사회의 최고위층을 싹 갈아엎으려 한다. 김재명은 일당을 타진하기 위해 전체 판을 짜는 마스터 중의 마스터다. 강동원은 “현실이 워낙에 답답하지 않나. 김재명의 추적이 상당히 통쾌했다. 사기단을 쫓는 방식이 지나치게 현실적이지 않은 점도 오락영화의 미덕으로 보였다”며 <마스터>를 선택한 이유를 설명한다.
목표지향적 인간 김재명은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단조로워 보일 캐릭터인 만큼 미세한 변화를 주는 것, 강동원이 해결해야 할 과제였다. “이 정도로 정직한 캐릭터는 또 처
[커버스타] 쉼 없는 질주 - <마스터> 강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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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끝까지 이해할 수 없는 남자. <마스터>의 진현필에 대한 이병헌의 첫인상이었다. “나쁜 짓을 하는 악당들에겐 보통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과거의 전력이나 배경이 있다. 그런데 진현필은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악역이더라.” 그의 말대로 범죄사기집단 원네트워크의 회장 진현필은 명분 있고 과거 있는, 사연 많은 악당들과는 거리가 있는 인물이다. 그를 움직이는 건 오로지 더 많은 부를 축적하고 싶은 순수한 욕망이다. “처음부터 나쁜 생각으로 기업을 일으킨 사람이다. 이렇게 연민도 이해도 되지 않는 인물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박창이 이후 처음이었던 것 같다.” 이해할 수 없는 악당에게 자기만의 논리를 부여하는 것. 이는 <마스터>에 참여하는 순간부터 조의석 감독과 함께 가장 고심한 문제였다고 이병헌은 말한다. 그리고 그들의 고민은, 영화 속 진현필의 대사에 그대로 녹아들어 있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얘기는 이미 20세기에 끝났어.
[커버스타] 더 대담하게 - <마스터> 이병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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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로 봐도 스타, 우로 봐도 스타다. 강동원과 이병헌, 김우빈을 한 영화에서 만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12월21일 개봉하는 조의석 감독의 신작 <마스터>는 동시대 가장 열정적으로 활동 반경을 넓혀가고 있는 이 세명의 스타 남자배우들이 한 화면 속에 놓인다는 것만으로도 그 결과물이 어떨지 기대감을 자아내는 작품이다. 지난 12월12일 언론시사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마스터>의 모험은 성공적이다.
냉철한 경찰(강동원)과 희대의 사기꾼(이병헌), 이 둘 사이를 오가는 전략가(김우빈). 달라도 너무 다른 캐릭터로 분한 세 배우는 각자의 색깔을 잃지 않으면서도 극의 조화를 깨뜨리지 않도록 절묘한 연기의 합을 선보인다. 이들은 <마스터>라는 무대 위에서 어떻게 따로, 또 같이 신명나게 연기했나. 그 뒷이야기를 전한다.
[커버스타] 그들이 사는 세상 - <마스터> 이병헌·강동원·김우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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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관객 1만명을 돌파하며 역대 최다 관객 참여율을 기록한 서울독립영화제2016이 12월9일 수상작을 발표하며 폐막했다. 대상은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다큐멘터리 <노후 대책 없다>에 돌아갔다. 펑크밴드 스컴레이드의 멤버인 이동우 감독이 직접 카메라를 들고 기록한 펑크밴드 이야기는 “열악하기 그지없는 한국 펑크신을 자기연민 없이 해학의 리듬으로 묘파해낼 뿐만 아니라펑크 역사와 사회·정치적 맥락까지도 잊지 않고 두루 꿰어낸 그 단단한 결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는 평을 받았다. 최우수작품상은 이지원 감독의 <여름밤>, 우수작품상은 김일란·이혁상 감독의 다큐멘터리 <공동정범>이 받았다. 심사위원상은 백종관 감독의 <순환하는 밤>과 김지현 감독의 <무저갱>이 나란히 수상했다. 새로운 선택상은 남연우 감독의 <분장>, 새로운 시선상은 강민지 감독의 <천에오십반지하>에 돌아갔다. 앞으로 주목해야 할 독립영화 배우에게
[인디나우] 이동우 감독의 <노후 대책 없다>, 서울독립영화제2016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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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풍론도> 疾風ロンド
감독 요시다 데루유키 / 출연 아베 히로시, 오쿠라 다다요시, 오오시마 유코, 무로 쓰요시
초미립자 탄저균이 비밀리에 배양된다. 그중 일부로 가공할 만한 생물 병기를 개발한 구즈하라는 완성품을 설산에 숨겨둔다. 연구원 구리바야시 가즈유키(아베 히로시)는 대재앙을 막기 위해 이를 수거할 임무를 맡는다. 그는 스노보드 마니아인 중학생 아들과 일본의 설산을 뒤지기 시작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서스펜스 소설을 영화화했다. 일본의 전설적인 록밴드 비즈(B’z)가 주제가를 불렀다.
[해외 박스오피스] 일본 2016.12.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