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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올리비에 다한 / 출연 마리옹 코티야르, 장 피에르 마틴, 제라르 드파르디외 / 제작연도 2007년
수능을 치르던 교실은 왜 그렇게 차가웠던지, 그 안의 난로 열기는 왜 그렇게 숨이 막혔던지. 열아홉에서 스물이라는 나이의 무게를 느끼며 ‘어른’이라는 명사를 동사로 체감해나가던 즈음에 만났던 영화들이 있다. 여전히 지금의 내게 힘이 되는 영화, 올리비에 다한 감독의 <라비앙 로즈>(2007)를 내 인생의 영화로 소개하려 한다.
<라비앙 로즈>는 전설적인 가수 에디트 피아프의 파란만장했던 삶, 그녀의 절망과 고통, 사랑과 예술, 희망의 끝을 그려낸다. 영화는 현재와 과거의 장면이 뒤섞이며 죽음을 코앞에 둔 피아프가 자신의 일생을 다시 한번 마주하고 복기한다. 잘 정리가 되지 않아 보이는 신의 배열은 영화를 즉각적으로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되기도 하는데, 이 표현방식은 오히려 안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던 불안하고 변덕스러웠던 그녀의 생을 꼭 닮은 배열이기
전여빈의 <라비앙 로즈> 오직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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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이드 러너 2049>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러빙 빈센트>의 도로타 코비엘라 감독은 화가 출신으로 “영화를 그리고 싶었다”고 한다. 공동감독 휴 웰치먼은 대담하게도 장편 프로젝트를 제안했고, 반 고흐 화풍으로 초당 12프레임, 6만5천여장의 유화를 그리는 애니메이션 작업에 4천명이 지원했다. 평생 기다려온 작품이라고 달려온 60대, 편도 항공권만 사서 무작정 날아온 젊은이들, 안식년까지 내고 응모한 미대 교수도 있었다. 125명의 애니메이터 가운데 애니메이션 경력자는 5명뿐이었다. 더글러스 부스, 시얼샤 로넌 같은 유명 배우들이 캐스팅에 응한 이유 하나는 반 고흐 화풍으로 그려진 본인의 초상화를 얻는다는 특전이었다. 생전에 유대감에 목말랐던 불행한 화가는 록 스타 같은 존재가 돼 있었다. <러빙 빈센트>의 제목은 ‘사랑하는 빈센트로부터’라는 뜻이지만 “빈센트를 사랑하여”로 해석해도 틀리지 않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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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들리 스콧의 <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사랑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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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크림과 빗소리>는 74분의 러닝타임이 단 하나의 숏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게 보이게끔 찍은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다. 이 영화를 만든 마쓰이 다이고는 현재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젊은 감독 중 하나다. 40여명의 배우 및 스탭과 10일간의 리허설을 거친 후 단 이틀 만에 <아이스크림과 빗소리>의 촬영을 마쳤다는 그를 만났다.
-연극 형태로도 제작 가능한 구성을 갖고 있다.
=우리는 원래 영화에서 묘사됐던 것처럼 영국의 극작가 사이먼 스티븐의 <모닝>을 무대에 올리려고 했다. 프로덕션에 참여했던 어떤 ‘어른들’이 수익성이 불분명해 제작이 취소됐다고 통보했다. 이 말을 직접 현장에서 전해주지도 않더라. 그래서 이 경험을 녹여낸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단 하나의 컷으로 영화를 찍었다. 도전적인 촬영 방식을 선택한 이유는.
=일방적인 공연 취소로 인한 분노에서 시작한 작품이다. 예술작품뿐만 아니라 예술작품 밖에서 어떤 일이
[도쿄국제영화제③] 마쓰이 다이고 감독 -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는 청춘의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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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회 도쿄국제영화제는 ‘일본영화의 뮤즈들’로 선정된 안도 사쿠라는 예쁘장하기보다는 평범한, 특히 <백엔의 사랑>(2014)에서는 못생겨 보여야 하는 여성을 연기해왔다. 그동안 매스미디어에서 ‘뮤즈’는 사전적 의미보다는 빼어난 아름다움이 작품 안팎에서 강조되는 여성에게 상투적으로 주어지는 수식어였다. 때문에 그를 일본영화계를 대표하는 뮤즈라 선언한 것은 영화제가 생각하는 뮤즈의 속성을, 젊은 여배우의 역할을 대변한다. 안도 사쿠라가 출연한 <가족의 나라>(2012), <0.5mm>(2014) 두편이 상영된다. 올해 영화제에서는 뮤즈로 선정된 것에 들뜨거나 진지하게 반응하기보다는 “그냥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말하는 그와 만났다.
-30주년 기념 특별전 ‘일본영화의 뮤즈들’ 중 일원으로 선정됐다.
=배우로서 일이 많아지고 바빠질수록 겸손해지게 되는데, 그렇게 매번 겸손해하는 것도 사실 매우 쑥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이제는 “뭐, 좋다.
[도쿄국제영화제②] 배우 안도 사쿠라 - 일본에서 살아가는 여성의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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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나라>(2012)의 양영희 감독이 배우 안도 사쿠라와 함께 <가족의 나라> 관객과의 대화(GV) 자리에 참석하기 위해 30주년을 맞은 도쿄국제영화제를 찾았다. 그는 북송사업의 일환으로 세 오빠를 북한으로 보낸 가족사를 다큐멘터리 <디어 평양>(2006), <굿바이, 평양>(2009) 그리고 극영화 <가족의 나라>에 담아냈다. 개인적 이유로 작품 활동을 쉬다 최근 차기작 촬영에 들어간 감독은 아직 영화로 풀어내지 못한 이야기가 많다고 전했다.
-지난해 <키네마준보>에 실린 최동훈 감독과의 대담이 마지막으로 접한 근황이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오사카에 계시는 어머니가 갑자기 편찮아지셨다. 그래서 도쿄에 있는 내가 매달 오사카에 가서 어머니를 모시느라 정신이 없었다. 최근에는 어머니를 보살피면서 일도 병행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서 차기작을 찍고 있다. <디어 평양>이 아버지에 대한 다큐멘터
[도쿄국제영화제①] 양영희 감독 - 어머니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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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주년을 맞은 도쿄국제영화제에 불청객이 찾아왔다. 지난 주말 태풍 사올라가 도쿄 한복판에 상륙한 것이다. 하지만 비가 쏟아지고 강풍이 몰아치는 궂은 날씨에도 영화제가 열리는 롯폰기 힐스 일대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개성 있는 코스튬을 입은 시민들이 밤낮없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핼러윈 시즌이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올해 영화제가 새로운 사람의 ‘유입’을 겨냥한 축제의 분위기를 띤 이유가 크다. 올해 도쿄는 일본·중국 합작을 개막식에서 대대적으로 공개했고, 특별히 동남아시아권 영화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주요 부문에 대중적인 작법으로 만든 상업영화를 내세웠고, 젊은 인기배우들을 한데 모아 특별전을 열었다. 지난 10월 25일부터 11월 3일까지 롯폰기 힐스에서 열린 제30회 도쿄국제영화제의 이모저모를 전한다.
20년 전 도쿄국제영화제는 <타이타닉>(1997)을 인터내셔널 프리미어로 상영했고 제임스 카메론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레드카펫을 밟았다. 개봉 시기에
제30회 도쿄국제영화제 ① ~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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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 역사상 펼쳐진 성 대결에서 빌리 진 킹이 남자 선수에게 이긴 최초의 여자 선수는 아니다. 테니스 성 대결의 역사와 더불어 영화가 중요하게 다룬 실존 인물과 사건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빌리 진 킹
전직 여자 세계 랭킹 1위의 테니스 선수. 39개의 그랜드 슬램 타이틀을 거머쥔, 테니스 명예의 전당(1987년) 멤버. 여자테니스협회와 여성 스포츠재단 설립자, 성 평등과 사회 정의를 위해 투쟁한 선구자. 빌리 진 킹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테니스 선수 중 한명이자 유능한 사회운동가다. 1943년 캘리포니아 롱비치에서 태어나 11살 때 테니스를 시작한 그녀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테니스 역사를 바꾸어놓기 시작했다. 킹이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건 1961년 윔블던에서 최연소(20살)로 여자 복식 우승자가 되면서부터다. 그녀는 공격적인 플레이로 유명했는데, 킹의 빠르고 강한 공은 상대 선수를 완전히 압도할 정도의 위력이었다고 한다. 1973년, 55살의 남자 테니스
빌리 진 킹을 비롯한 ‘남성 vs 여성’ 대결의 역사와 관련 인물·단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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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착륙 이후 사상 최고의 시청률. 1973년 9월 20일,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 위치한 애스트로돔 경기장에 전세계 9천만명의 이목이 집중됐다. 29살의 여자 테니스 챔피언, 빌리 진 킹과 55살의 전직 남자 테니스 챔피언 보비 리그스의 경기를 보기 위함이었다. 이날의 대결은 단순히 두 선수의 커리어와 명예를 사수하기 위한 투쟁이 아니었다. 이건 ‘여자는 침대와 부엌에 머물러야 한다’고 주장하던 남성우월주의자와 ‘여자와 남자는 동등한 입장에서 대우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던 페미니스트의 대결이기도 했다. 테니스 코트 안에서의 승패가 테니스 코트 바깥의 사회적 분위기를, 나아가서는 시대정신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빌리 진 킹과 보비 리그스의 경기는 그야말로 ‘세기의 대결’이었다. <빌리 진 킹: 세기의 대결>은 바로 이날의 승부를 향해 달려가는 영화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기 앞서, 1973년 미국의 시대적 풍경이 어떠했는지를 짚고 넘어가는 게 좋을
<빌리 진 킹: 세기의 대결> 테니스로 세상을 바꿀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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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혁의 필모그래피가 새로이 추가될 수 없다. 그 사실만으로도 안타깝고 슬프다. 영화를, 연기를 사랑했던 배우 김주혁은 우리가 기억해야만 할 좋은 영화들을 남겼다. 다음은 <씨네21> 기자들이 가장 아끼는 김주혁의 장면들이다.
김성훈 기자의 <청연>(2005)
술을 잘 마시지 못해 입에 거의 대지 않는 김주혁은 유독 <청연>에서 만취한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다. 그가 연기한 한지혁은 박경원(장진영)의 택시에 올라타자마자 곯아떨어졌고, 그 다음날 박경원이 모는 택시를 다시 불렀을 때도 만취해 있었다. 박경원이 그에게 “비너스(술집)에 자주 가시나봐요”라고 묻자 그는 “우울할 때마다 가요”라고 대답하고, 박경원은 “매일 우울하신가봐요”라고 말한다. 중의원이 되기 위해 자신을 입대시킨 아버지에 대한 원망, 일찍 세상을 떠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등으로 인한 그의 우울한 얼굴이 영화 내내 아른거린다. 그럼에도 박경원과 함께 있을 때 그의 얼굴은 가장 환하
[김주혁 추모] 우리가 기억하는 김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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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혁은 영화에서 노래를 꽤 불렀다. 기가 막히게 잘 불렀다는 게 아니라 몇번 불렀다는 얘기다. 신기하게도 영화는 그의 노래를 중간에 끊지 않고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들려줬다. 그의 무덤덤하면서도 담백한 노래는 몇 마디 인상적인 대사보다 영화가 얘기하고자 하는 바를 그대로 전해줬다. 그런데 이제 와 생각해보니 공교롭게도 그 노래들은, <광식이 동생 광태>에서 최호섭의 노래인 <세월이 가면>,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이하 홍반장)에서 각각 김광석과 유재하의 노래인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와 <그대 내 품에>다. 어쩜 그리도 떠난 그를 떠올리게 하는 곡들인지. 당연히 원곡보다야 못하지만 이상하게 그의 노래는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었다. 그래서 아마도 카메라는 그로 하여금 영화에서 그 노래들을 꼬박 다 부르게 했을 것이다. 그리고 꽤 한동안 그 노래들이 입가를 맴돌 것 같다. “세월이 가면
[김주혁 추모] 더없이 든든했던 배우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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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서울프라이드영화제는 ‘연대는 희망이다’라는 캐치프레이즈로 11월 2일(목)부터 8일(수)까지 7일간 CGV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에서 열리는 비경쟁 퀴어영화제다. 올해는 전세계 30개국 70여편의 작품이 상영된다. 개막작으로 선정된 로뱅 캉피요 감독의 <120 비츠 퍼 미니트>는 올해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작품으로 90년대 초반 프랑스 파리에서 제대로 된 치료제 없이 에이즈로 죽어가는 자신과 동료들을 살리기 위해 정부와 제약회사에 대항하여 투쟁한 ‘액트업’(정부의 에이즈 대책 강화를 요구하는 단체) 활동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폐막작으로는 영화제의 제작 지원 제도인 ‘프라이드 필름 제작 지원’을 받은 김창범 감독의 단편 <두 밤>, 이은경·이희선 감독의 <셔틀런>, 홍유정 감독의 <프리버드> 등 세편이 상영된다.
프로그램은 다섯개의 섹션으로 구성되는데 ‘핫 핑크 섹션’, ‘스페셜 프라이드 섹션’, ‘코리아 프
2017 서울프라이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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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독일영화의 최고 전성기를 담당했던 우파(Ufa)영화사가 100주년을 맞았다. 우파영화사 세트장이 자리했던 베를린과 포츠담에서는 전시회, 회고전, 학술대회 등 기념행사가 연달아 열리고 있다. 이미 베를린 예술영화극장 바빌론이 9월 한달 동안 우파영화사 영화 100여편을 선정해 상영했다. 또 9월 25일엔 독일 대통령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와 독일 영화인 4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독일 우파 100주년 기념식도 열렸다. 현재 포츠담 영화박물관에서는 전시회와 상영회가 열리고 있고, 베를린 영화박물관에서도 11월 전시회 일정이 잡혀 있다. 독일 프랑스 합작 공영 방송국 <아르테>에서는 우파영화사 100주년 기념 특집 영화들을 방영하고, 방영된 영화들을 인터넷에도 제공하고 있다. 우파영화사 영욕의 역사를 다룬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들이 12월 초 방영 예정이다. 한편 독일 역사박물관에서 지난 5월에 열렸던 우파영화사 관련 학술회의가 12월에도 열린다.
우파영화사는 독
[베를린] 1차대전 독일 프로파간다로 시작된 영화사의 과거와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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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내용과는 별 상관이 없지만 <잇 컴스 앳 나잇>(2017)이라는 제목에 대해서 한마디 하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원제인 ‘It Comes at Night’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기본적인 단어들로만 이루어진 명쾌하고 으스스하고 우아한 제목이다. 무엇보다 이 제목은 아무런 장애 없이 한국어로 말끔하게 번역될 수 있다. 그런데 수입사에서는 이 간단한 작업을 하지 않고 <잇 컴스 앳 나잇>이라는 괴상한 제목을 붙여버린다. 쉬운 단어라고 해서 한글 표기도 그러라는 법은 없다. ‘comes’는 쉬운 단어지만 ‘컴스’라고 쓰면 어색할 뿐이다. 물론 기억하기도 어렵다. 수많은 잠재 관객이 이 영화의 제목을 감당하지 못하고 포기했을 가능성이 높다. 도대체 못 볼 수 없는 문제인데 어떻게 이 제목으로 극장 개봉까지 온 것일까. 모를 일이다.
본론으로 들어가자. <잇 컴스 앳 나잇>이라니 이 영화는 십중팔구 호러이거나 스릴러다. 제목만 본다면 호러
호러의 규격을 배반한 <잇 컴스 앳 나잇>이 공포를 야기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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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외자녀를 집에 들인 남편과 이혼하지 못하는 재벌가 막내딸 김정혜(이요원)와 자식이 학교폭력에 휘말린 재래시장 생선장수 홍도희(라미란), 가정폭력 피해자인 중산층 전업주부 이미숙(명세빈). 부암동에 사는 세 여자가 복수 품앗이를 위해 모임을 결성했다. ‘부암동 복수자 소셜 클럽’이라는 거창한 이름은 짓자마자 ‘복자클럽’이라 줄어들었고, 대책 없이 모여서 제일 먼저 한 합의는 ‘법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의 복수가 좋겠다는 거였다. tvN <부암동 복수자들>은 복수를 전면에 내걸고 있지만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자신과 주변을 갈아넣는 눈먼 복수자가 주인공인 드라마와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일반적인 복수극이 돌이킬 수 없는 무언가를 앗아간 대상에게 억울함을 터뜨리다 악인과 닮아가고 누군가의 희생이 있어야 뒤늦게 치유되는 흐름이라면, 복자클럽 멤버들은 지키고 보호하고 싶은 것들이 있어서 조심스럽다. 또한 이들은 상처 입은 각자의 존엄을 회복하기 위해 제일 먼저 자신들을 돌본다. 생
[TVIEW] <부암동 복수자들> 나, 우리,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