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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루스 네가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건 그녀의 눈망울이다. 어떤 악의도 찾아볼 수 없는, 맑고 깊은 눈. 루스 네가의 눈매는 제프 니콜스의 신작 <러빙>의 드라마를 납득 가능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데 일조한다. 백인과 흑인의 결혼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던 1960년대의 미국 버지니아주, 백인 남자 리처드 러빙과 사랑에 빠진 밀드레드는 그녀가 어떤 일들을 경험하게 될지 알지 못한다. 한밤중에 불현듯 현관문을 박차고 들어와 부부의 아늑한 보금자리를 위협하는 백인 경찰에 대한 공포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랑할 수밖에 없는 남편에 대한 애틋함, 도망치거나 회피하지 않고 인종차별에 맞서겠다는 결연함. 이처럼 다양한 맥락의 감정들이 루스 네가의 얼굴에 떠올랐다 사라진다. 실존 인물인 밀드레드 러빙이 조용하고 차분한 여성이었던 까닭에 무척이나 절제되고 섬세한 결의 연기를 보여줘야 했던 루스 네가에게, 많은 것들을 담고 있는 듯 보이는 그녀의 눈매는 강력한
[who are you] 다양한 감정을 담은 눈빛 - <러빙> 루스 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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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17일 강원도 강릉시에서는 지자체 차원에서 독립영화 정책의 비전을 발표하는 드문 자리가 마련되었다. 강릉시가 발주한 ‘독립영화도시 강릉조성 연구용역’(이하 연구용역)에 대한 결과를 공유하고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하는 자리로서 독립영화단체, 전용관, 영화제, 미디어센터의 주요 실무진과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창작자들이 두루 모였다. 앞서 강릉시는 2016년 12월 지역을 독립영화도시로 브랜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첫걸음으로 18년째 개최되어온 정동진독립영화제의 예산 증액과 2016년 2월 휴관한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이하 신영)의 재개를 위한 극장 임대료 지원을 확정하였다. 이에 따라 신영은 오는 3월을 목표로 재개관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신영 휴관은 영화진흥위원회의 예술영화전용관 사업 중단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관련 사업이 현 정국에 블랙리스트와 연관되어 있음을 추적하면, 문화·예술계 파행이 소도시 관객의 향유권에까지 영향을 행사할 정도로 구체적이었음을 알 수
[한국영화 블랙박스] 강릉시, 독립영화 정책을 위한 비전 발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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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파도2>(2007) 개봉 당시 배우 김지영을 인터뷰한 적 있다. 아마도 지금의 젊은 관객에겐 주로 감초 캐릭터 같은 ‘엄마’로 기억될 것이다. <라이터를 켜라>(2002)의 봉구(김승우) 엄마, <나의 결혼원정기>(2005)의 만택(정재영) 엄마, <아들>(2007)의 강식(차승원) 엄마, <해운대>(2009)의 만식(설경구) 엄마, <도가니>(2011)의 인호(공유) 엄마, <서부전선>(2015)의 영광(여진구) 엄마가 바로 그다. 그처럼 오래도록 화려한 주연으로서의 삶을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그 이전 1970~90년대에 이르기까지 주로 임권택, 김수용 감독의 작품들에서 사실감 넘치는 연기를 선보이는 인상적인 조역으로 작품을 빛냈다. 요즘 배우로 예를 들자면, 거침없고 개성 넘치는 라미란 배우 같은 느낌이랄까. 거의 모든 영화가 후시녹음으로 만들어지던 당시 환경으로 보자면, ‘대사’가 아닌 ‘말’을 하
[추모] 현실을 연기한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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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캐릭터로는 더 할 얘기가 없어 여성주인공을 내세웠다”, “영화를 보는 동안 지루할까봐 그런 음악을 쓰는 것일 뿐”, “영화감독에게는 무엇보다 체력이 가장 중요하다” 등 B무비의 거장 스즈키 세이준은 남다른 상상력과 특유의 ‘쿨’한 태도로 영화계의 기인(奇人)으로 통했다. 자신의 영화 <살인의 낙인>(1967)을 리메이크한 <피스톨 오페라>(2001)로 베니스국제영화제에 초청됐을 당시 원작과 달리 여성주인공을 내세운 이유, 록음악과 일본 전통음악을 흥미롭게 뒤섞은 사운드트랙, 오랜 영화계 생활을 해오면서 영화감독이 지녀야 할 덕목에 대한 질문에 위와 같이 답했다. 뿐만 아니라 알베르토 바르베라 집행위원장으로부터 <피스톨 오페라> 상영 전 감사패를 받고는 ‘손이 풀려’ 감사패를 떨어트리는 해프닝을 연출했는데, 심지어 영화 상영 도중 그 트로피를 가슴에 꼭 안은 채 숙면을 취하기도 했다. 귀엽게도(?) 세계적인 거장이 자기 영화 상영 때 졸았으니 이
[에디토리얼_주성철 편집장] 스즈키 세이준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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률필름
장률 감독의 차기작 <좋은 날>에 박해일, 문소리, 박소담이 캐스팅됐다. 두 남녀가 목포의 한 여인숙에 머물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 박해일과 문소리는 연인으로, 박소담은 여인숙 딸로 등장한다. 4월 크랭크인 예정이다.
CGV
CGV용산점이 3월2일부터 7월까지 약 4개월간 리뉴얼 공사에 들어가 운영을 잠정 중단한다. 용산구 아이파크몰 내에 위치한 CGV용산점은 시설 정비를 통해 글로벌 랜드마크 시네마로 거듭나겠다는 목표다. CGV용산에서 가까운 곳으로는 CGV여의도·영등포·명동·명동역씨네라이브러리가 있다.
레드피터
배우 박정민이 연상호 감독 신작 <염력>(가제)에 출연한다. 우연히 초능력을 얻게 된 어느 평범한 남자의 이야기로 류승룡, 심은경이 먼저 출연을 결정했다. 영화는 4월 크랭크인 예정이다.
[인사이드] 장률 감독 차기작 <좋은날>에 박해일, 문소리, 박소담 캐스팅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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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연대 주최, 한겨레신문사 후원으로 문화정책의 대안 모색을 위한 연속 토론회가 진행 중이다. 2월22일 세 번째 자리로 ‘문화산업 지원정책의 과제와 새로운 패러다임’이 열렸다. 영화, 대중음악, 만화, 게임, 애니메이션, 융합콘텐츠 분야 패널들이 참석했다. 이원재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소장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문화산업 정책에 있어서 규제할 것은 규제하지 않고 과도한 중앙 집중화를 해온 게 핵심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발제자로 나선 최승훈 한국대중문화예술산업총연합 정책자문역은 “범정부 차원의 국정농단 및 적폐 청산 작업과 별개로 문화행정의 농단과 블랙리스트 진상 조사단 운영과 백서 발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블랙리스트 문제 해결이 대중문화예술인의 창작과 표현의 자유가 제도적으로 확장되는 결과로 반드시 이어져야 한다”며 “청소년 유해 매체물 제도의 폐지, 자율 등급 분류제도 도입” 등을 제시했다.
영화 분야 패널로 참석한 스푼 엔터테인먼트의 전영문 프로듀서는 “
[국내뉴스] 문화정책 대안 모색 연속 토론회 네 차례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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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들의 로망이 담긴 영화다. 만화 좋아하냐고? 안 좋아하는 남자가 있을까. (웃음)” SF 만화 같은 세계관을 그려낸 <조작된 도시>의 오규택 미술감독은 “취향에 딱 맞는 영화라 신나게 작업했다”고 말한다. 오픈마인드로 “최대한 재미있게” 영화에 접근했다는 그는 세트와 소품에 “벤츠 엔진을 마티즈에 박고, 컴퓨터 팬으로 드론을 만드는 등 철없는 생각들”을 많이 반영했다. “리얼리티와는 맞지 않더라도 기발하고 만화적인 발상이 중요했다. 감독님께서도 흔쾌히 오케이해주시더라. (웃음)”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해야 하는 한편, 비현실적인 것은 현실처럼 보이게끔 디자인하는 것도 오규택 미술감독의 과제였다. “모든 디자인엔 이유가 있어야 했다. 영화상에는 나오지 않는 부분도 이유들을 설정해놔야 어색함이 없으니까.” 이를테면 권유(지창욱)가 갇히는 특수 교도소는 개미굴처럼 지하 속에 만들어진 설정으로 통제실과 연병장, 복도와 계단 설계도면을 만들었고, 밑으로 내려갈수록 광량이 다르다
[영화人] <조작된 도시> 오규택 미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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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의 초상화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도 독일 화가 티슈바인이 그린 그림일 것이다. 괴테가 흰색 망토 모양의 긴 겉옷을 걸치고, 로마 근교를 배경으로, 그리스 로마의 신처럼 비스듬히 누운 듯 포즈를 잡고 있는 그림이다. 괴테의 오른쪽 옆에는 신화를 조각한 돌이 있고, 가운데 약간 뒤로는 제국의 폐허인 기원전 1세기의 건축물 ‘메텔라의 묘지’(Mausoleo di Cecilia Metella)가 보인다. 신고전주의 그림답게 전체적으로 편안하고 안정돼 보이며, 문호 괴테는 조화로운 자연의 주인공처럼 전면에 강조돼 있다. 작가 괴테와 화가 티슈바인은 친구 사이였고, 로마 인근을 여행할 때는 길동무였다. 두 예술가 모두 로마의 찬양자였는데, 이들이 로마만큼이나 애정을 갖고 방문한 곳이 바로 로마 근교의 ‘카스텔리 로마니’(Castelli Romani)다. 그림의 맨 뒤, 야트막한 산 주변에 형성된 14개의 작은 도시들을 합쳐 부르는 이름이 카스텔리 로마니다.
로마 근교의 전원 풍경
[한창호의 트립 투 이탈리아] ‘카스텔리 로마니’ - 로마 근교 전원도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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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너무 쉽게 접하고, 음악에 금세 질리기 쉬운 요즘 다시 찾아 들을만한 노래를 부르는 음악가를 만난다는 건 축복이다. 캐나다 토론토 교외에서 자란 싱어송라이터 대니얼 시저가 부르는 R&B 음악은 곳곳에 부드러운 여운이 느껴진다. 2016년 10월 발표한 최신곡이자 싱글 음반 <Get You>에 달린 익명의 댓글은 그의 음악을 듣고 느낀 감정을 압축한 두 단어였다. ‘부드럽고 독특하다.’(smooth and unique)
알려진 바로 그는 복음음악 가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교회와 신앙이 공기처럼 스며든 삶은 그에게 자연스러웠다. 데뷔 초기 발표한 EP 음반 《Pilgrim’s Paradise》(2015) 수록곡 <Violet> 뮤직비디오에 나온 성가대 신과 교회 시퀀스 역시 경험에서 우러났다. 그러나 그의 터전에서 그와 또래 친구들에게 신앙이란 흔들리는 믿음이었다. 또 다른 그의 대표곡 <Death & Taxes>는 믿음에 관한
[마감인간의 music] R&B 본연의 아름다움 - 대니얼 시저, 《Pilgrim’s Parad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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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500만명 넘으면 감독님과 다시 꼭 인터뷰해요.” 조인성이 1089호 커버 촬영 당시 <씨네21>에 건넨 말이다. 약속대로 한재림 감독은 손익분기점을 넘긴 이 스코어에, 조인성은 출연작 중 가장 높은 흥행기록에 감사했다. 연출과 연기에 호평도 많았고 쓴소리도 있었다. 그럼에도 <더 킹>이 두 사람의 필모그래피에서 전혀 새로운 도전이었다는 자부심은 대단했다. 지난 1월18일 개봉 이후, 촬영부터 지금까지 긴장했던 그 시간들을 내려놓은 둘을 만나, 그때는 못했던 그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흥행이라는 시장 앞에 놓인 감독의 길과 배우의 길, 그 흥미로운 대화로 초대한다.
-이제 IPTV 개봉을 앞두고 있다. 극장 스코어로 보면 초반 흥행세에 비해 조금 아쉬운 선에서 멈췄다는 생각도 든다.
=조인성_ 나는 굉장히 만족스런 스코어라고 생각한다. 이것보다 안 들었다면 불편했겠지만 이 정도면 합리적이다. 한재림 감독님 필모그래피로만 보더라도 <관상>(
[씨네 인터뷰] <더 킹> 한재림 감독, 배우 조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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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당한 사람들> The Beguiled
감독 소피아 코폴라 / 출연 엘르 패닝, 콜린 파렐, 커스틴 던스트, 니콜 키드먼, 앵거리 라이스
미국 남북전쟁 시기, 부상을 입고 숲속에 고립된 북부군 장군 존(콜린 파렐)은 길을 지나던 남부의 10대 소녀에게 가까스로 구출된다. 소녀는 여자 기숙학교에 존을 데리고 간다. 존이 학교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존을 향한 여성들의 애정도 깊어진다. 소녀들의 질투와 기만은 존을 향한 집착으로 이어진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제라르딘 페이지가 출연했던 돈 시겔의 1971년작을 리메이크했다. 다만 소피아 코폴라 감독은 영화보다는 토머스 P. 컬리넌의 원작 소설 <A Painted Devil>에 중심을 두었다고 한다. 미술에 앤 로스, 의상에 스테이시 버닷 등 소피아 코폴라 감독과 오랫동안 호흡을 맞춘 제작진이 참여했다. 6월30일 북미 개봉예정.
[WHAT'S UP] 소녀들의 질투와 기만은 한 남자를 향한 집착으로 <매혹당한 사람들> The Begui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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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모처럼 전시를 보러 갔다. 마침 살이 에일 듯 극강 한파가 기승을 부린 날이라 이만저만 귀찮은 게 아니었지만 흔치 않은 건축 전시라 흥미가 동해 온몸을 칭칭 동여매고 집을 나섰다. 엄밀히 말하면 건축 전시가 아니라 ‘건축가의 삶展’이라 할 수 있겠다. 현대건축의 아버지라는 르코르뷔지에의 전시였는데, 들어가자마자 그의 장례식부터 보여줬던 전시 구성은 꽤 신선했다. 그가 자신의 장례식에 쓰일 음악을 생전에 선곡해놓았다는 음악이 전시관 곳곳에서 흘러나왔는데 척박한 내 클래식 상식 중에도 가장 애정하는 곡이 끼어 있어 반가웠다.
사실 그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아파트를 처음 ‘발명’했다는 정도만 사전에 알고 갔는데 현대건축의 아버지라는 칭호는 인생 대부분 공격만 당하다가 말년이 되어서야 겨우 얻어낸 훈장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건축가보다는 화가가 되고 싶었고 당대 최고의 화가 피카소에게 콤플렉스를 느낀 자였다. 모든 예술가들이 모인다는 파리에 젊은 나이에 와서 그는 실패를
[노덕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단순하게, 존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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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영화관 사회적협동조합은 문화 소외 지역에 영화관을 짓고 운영해오고 있다. 2010년 11월 전북 장수에 1호점 한누리시네마를 연 것을 시작으로 2016년에 19번째 작은영화관 뚜루가 강원도 철원에 터를 잡았다. 올해 4월엔 전남 완도에 20번째 작은영화관이, 5월엔 강원도 정선에 21번째 작은영화관이 들어설 예정이다. 작은영화관 사업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자리잡게 한 김선태 이사장을 만났다.
-작은영화관 사회적협동조합은 어떻게 시작했나.
=2005년쯤, 디지털시네마 기술을 개발하는 벤처기업을 만들었다. 그 시절 영화를 자주 보러 다녔는데 아직도 영화가 필름으로 상영되는 것을 알고 ‘왜 아직도 필름이지?’라는 호기심이 생겼다. 디지털시네마 시스템이 극장에 도입되면 운영 경비가 대폭 줄어들어 작은영화관 운영이 가능할 것 같았다. 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삼성건설에서 일했는데, 건축도 알고, 디지털시네마 기술도 알고 있으니 ‘그럼 영화관을 지어볼까?’ 하는 생각을
[people] 김선태 작은영화관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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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로 만나는 <캐롤>
<캐롤>의 팬들이여, 결집하라. 소장가치 높은 <캐롤>의 굿즈들과 함께 한정판 블루레이 패키지가 출시된다. 플레인아카이브에서 출시되는 이번 <캐롤> 블루레이 한정판은 굿즈 구성품에 따라 풀슬립, 스퀘어 슬리브, 디럭스 박스 세트 총 3종으로 구성된다. <씨네21> 김혜리 기자의 음성해설과 감독, 배우, 제작진 등 15인의 인터뷰, 배우와 제작진의 영화 비하인드 스토리, 촬영현장 스케치, 관객과의 대화 영상이 공통적으로 수록된 한편, 각 패키지의 사양에 따라 에세이북과 포스터, 엽서, 미니영화카드, 포토북, 각본집 등이 풍성하게 제공된다. 2월23일 오후 4시부터 프리오더 시작.
정훈이가 말한다!
<씨네21>에 실리는 <정훈이 만화>. <야매공화국 10년사>는 영화에 대한 농담 섞인 상상만큼이나 시사를 풍자하는 통렬함으로도 인기 높은 그가,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culture highway] 블루레이로 만나는 <캐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