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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겨울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왔던 시민들은 각자의 움직임이 모여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봤다. <1987>은 대통령 탄핵을 성사시킨 현재의 승리가 제법 겹치는 역사를 그린다. 1987년 1월, 대통령 직선제를 위해 시위하던 22살 대학생 박종철(여진구)이 고문 중 사망한다. 사건을 덮기 위해 박 처장(김윤석)은 졸속으로 시신 화장 처리를 시도하지만 최 검사(하정우)는 검찰이 경찰에 휘둘릴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를 거부한다. 목적이 뻔히 보이는 정부의 보도지침을 따르기 원치 않는 윤 기자(이희준)는 ‘물고문 중 질식사’라는 사망 원인을 단독 보도하고, 교도관 한병용(유해진)은 수감 중인 해직 기자(김의성)의 비밀 서신을 전달한다. 민주화운동의 성공 가능성에 회의하던 연희(김태리)는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진상 규명 시위 현장에 의도치 않게 휘말린다.
6월 민주항쟁의 본질을 정확히 이해한 플롯이다. 주연급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지만 주도적으로 사건을 은폐하는 박 처장 외
<1987> 1987년 1월, 22살 대학생 박종철이 고문 중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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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파라>만의 첫 오리지널 스토리가 등장했다. <프리파라>는 2014년 일본에서 발매된 게임과 애니메이션을 시작으로 2015년부터 국내 TV시리즈로 방영 중이다. 세 번째 극장판인 <프리파라 모두의 동경♪렛츠고☆프리파리>는 일본에서 2016년에 개봉했던 작품이 조금 늦게 찾아온 경우인데, 기존에 다뤄지지 않았던 새 이야기를 접할 수 있어 팬들의 관심을 모은다. 파라주쿠의 라라와 일행은 전세계적으로 규모가 가장 큰 파리의 프리파리가 어둠의 기운에 잠식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교통수단마저 끊긴 먼 파리에서 생명력을 잃어가는 동료 파루루를 무사히 구하는 것이 이번 극장판의 미션이다. 프리파라의 세계는 기본적으로 춤과 노래의 퍼포먼스로 굴러간다. 각자의 개성이 뚜렷한 10대 초반의 여자아이들이 각 지역의 프리파라에서 자신만의 카드를 통해 화려한 아이돌로 변신한다. 예기치 않은 폭발 사고로 인물들이 제각기 제리제 거리, 피집트, 팔프스 등 세계 각지
<극장판 프리파라 모두의 동경♪렛츠고☆프리파리> 위기에 처한 파루루를 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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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지망생 헌(이관헌), 은(김강은), 준(성호준), 경(서원경) 등 4명의 인물이 연극 <사중주>의 주역 미래(김소희)가 이끄는 연기 워크숍에 참석한다. 훈련 내용은 이렇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짜장면과 짬뽕이 손바닥 위에 있다고 상상하고 손을 움직이기, 앞사람은 뒷사람을 믿고 편하게 뒤로 넘어지고 뒷사람은 앞사람을 배려하면서 지탱하기, 상대의 움직임을 거울처럼 따라 하기, 짝을 지어 상황에 따른 즉흥연기 펼치기 등이다. 이후 미래는 참가자들에게 새로운 미션 하나를 준다. 현이라는 인물의 일기를 바탕으로 각각 시기를 분담해 현의 삶을 살아보라는 것이다. 현의 삶인지, 배우들 각자의 경험인지, 극인지, 삶인지 혼란한 이야기들이 뒤섞인 채 펼쳐진다.
연기 워크숍을 소재로 삼은 <나의 연기 워크샵>은 연극에서 출발한 안선경 감독이 자신의 뿌리를 더듬은 작품처럼 보인다. 그러나 단순히 워크숍을 기록하는 것을 넘어서 기록하는 매체의 특성을 세심하게 고려하면서 영화는
<나의 연기 워크샵> 어제의 당신은 누구였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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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뉴욕에 처음 도착한 루비(키넌 캠파)는 예술학교에서 무용을 전공하는 신입생이다. 뛰어난 실력으로 장학금까지 받고 입학한 그녀지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던 어느 날 루비는 지하철역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살아가는 조니(니콜라스 갈리친)를 만나 그의 매력과 뛰어난 음악성에 호기심을 느낀다. 우연한 계기를 통해 가까워진 두 사람은 라이벌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현악·무용 대회에 함께 참가하기로 한다. 너무 다른 개성을 가진 두 사람은 과연 멋진 무대를 선보일 수 있을까?
팽팽한 긴장 또는 극도의 흥분을 뜻하는 <하이 스트렁>은 클래식 음악과 발레 그리고 팝 음악을 접목시킨 뮤지컬영화로 실제 무용수 출신의 신인배우 키넌 캠파와 <라라랜드> 등에 출연했던 유명 댄서 미즈노 소노야가 출연해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이 영화의 특징은 발레와 클래식 음악 그리고 스트리트 댄스를 결합한 시도에 있다. 물론 <스텝업> 시리즈 등에서도
<하이 스트렁> 발레와 클래식 음악 그리고 스트리트 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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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외의 낡은 집. 작곡가 C(케이시 애플렉)와 M(루니 마라)의 일상은 C의 사고사로 흩어진다. <고스트 스토리>의 시작은 이 지점이다. 시체안치실에 누워 있던 C의 영혼은, M의 추도 이후 깨어나 그들이 함께 살던 집으로 돌아온다. C의 영혼이 늘 곁에 있지만 M은 이 사실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비네팅 처리된 1:33의 화면비율. 유령이 점거한 연인의 집은 적막하고 쓸쓸하다. 카메라는, 이 영화의 압도적 순간이라 칭해야 할 4분여의 롱테이크로, M이 토할 때까지 파이를 구겨넣는 장면을 목도한다. M이 슬픔에 겨워 누워 있을 때도, 바삐 어딘가로 뛰쳐 나갈 때도, 시간이 흘러 새로운 연인과 키스를 나눌 때도 마찬가지다. 이 공간을 유영하는 시선은, 언제나 이 시공간에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는 C의 존재다. C가 마침내 집(M)을 떠날 때도 C의 사랑은 그렇게 공간에 묶여 있고 그래서 처연하다. 새로 이 집에 이사온 남자는 ‘삶의 유한함’과 그럼에도 영속되는 예술의
<고스트 스토리> 유령이 점거한 연인의 집은 적막하고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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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도발적인, 감각적인, 섹슈얼한. 프랑수아 오종 감독의 작품에 자주 붙는 수식어들이다. <두 개의 사랑>은 그 모든 수식어를 동원해야 마땅한 작품이다. 알 수 없는 복통으로 산부인과를 찾은 클로에(마린 백트)는 의사로부터 통증이 심리적인 문제인 것 같다는 얘기를 듣고 정신과 전문의 폴(제레미 레니에)을 만난다. 폴과 마주 앉은 클로에는 전에는 사진 모델 일을 했고, 현재는 밀로라는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고, 자신이 엄마의 하룻밤 사랑으로 태어났으며, 뭔가 결핍된 것처럼 마음이 허전하다는 고백을 늘어놓는다. 허물없이 이야기를 하고 그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는 관계는 곧 사랑으로 발전한다. 클로에와 폴은 동거를 시작하고, 그 과정에서 폴에게 쌍둥이 형제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클로에는 자신의 과거를 들려주지 않는 폴에 대한 의심으로 쌍둥이 형인 정신과 의사 루이(제레미 레니에)를 만나러 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폴과는 너무도 상반된 루이를 욕망하게 된다. 폴과는 사
<두 개의 사랑> 은밀한, 도발적인, 감각적인, 섹슈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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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코르넬리우 포룸보이우 / 출연 마리시아 안드레스쿠, 테오도르 코반 / 제작연도 2006년
1988년 겨울, 5공 청문회가 열렸다. 그해의 기억을 소환한 드라마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지만, 내게 1988년의 기억은 청문회만이 또렷하다. 7살에 불과했으니 텔레비전에 나와 엄숙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젓던 군인들이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른다. 마찬가지로 무지렁이 같은 차림으로 중계 카메라 앞에 주눅 들어 앉아 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무엇을 뜻하는지도 몰랐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작은 화면으로 그것을 바라보던 어른들과 그들이 풍기던 분위기였다. 그곳은 광주였고, 할머니가 하던 함바집의 작고 두툼한 텔레비전 앞이었다. 그들은 화를 내다가 중얼거리다가 차갑게 돌아섰다 다시 돌아와 술잔을 기울였다.
<그때 거기 있었습니까?>는 1989년 독재자 차우세스쿠를 쫓아낸 루마니아의 혁명을 다룬 영화다. 그러나 혁명의 드라마틱함은 자료화면처럼 스치듯 지날 뿐이다. 남은 건 사람들
서효인의 <그때 거기 있었습니까?> 지속되는 우리의 삶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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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터슨>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패터슨>의 패터슨(애덤 드라이버)이 통근하는 시인이라면 아내 로라(골쉬프테 파라하디)는 재택 종합예술가다. 특히 로라의 열정은 페인팅에 집중된다. 방 벽부터 도시락에 넣는 귤껍질까지 그의 캔버스니 말 다 했다. 흑백을 편애하는 로라의 과감한 화풍은, 색과 패턴이 대범한 핀란드의 디자인 브랜드 마리메코를 연상시키는가 하면 짐 자무시 감독의 흑백영화 사랑이 변형된 결과 같기도 하다. 실존 아티스트 가운데 로라에게 영감을 줬을 법한 인물은 장 뒤뷔페. ‘아르 브뤼’ (Art Brut)의 옹호자였던 뒤뷔페는 훈련받은 프로 예술가보다 어린아이나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 등 소박한 정신이 자발적으로 그린 그림이 위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로라가 그린 반려견 마빈의 초상 중 한점이 유난히 뒤뷔페풍이다. 뒤뷔페의 이름은 영화 말미에 언급도 된다. 아마추어 예술을 예찬하는 <패터슨>과 어울리는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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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일기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아마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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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인조(박해일)는 신하들이 보는 앞에서 청나라의 칸(김법래)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노주한 스틸 작가는 당시 현장에 대해 “배우들끼리 감정이 흐트러질까봐 서로 말도 안 하고 황동혁 감독도 말없이 지켜보기만 했을 정도로 긴장감이 감도는 촬영현장이었다”고 말한다. 미술팀의 숨은 노력이 담긴 세트를 포함해서 배우 박해일의 연기가 당시의 치욕적인 역사적 순간을 영화적으로 잘 담아낸 장면이었다. 미술 세트 양옆으로 대신들이 늘어서 있는 모습도 더 넓게 담을 수 있었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칸 일행이 올라선 미술 세트만 앵글 가득히 들어오도록 찍었다. 노주한 스틸 작가는 “영화의 의미가 한 장면에 담긴 것 같았다. 내가 딱 소화할 수 있는 컷이었다”고.
<싱글라이더>
극중 재훈(이병헌)이 아내 수진(공효진)이 머무는 호주의 집을 몰래 찾아가서는 자신 없이도 화목하게 잘 지내고 있는 모습을 훔쳐보는 장면이 있다. 영화에서 배우 이병헌과 공효진이
B컷으로 보는 2017 한국영화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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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의 작업이다. 그리고 배우나 스탭들이 노력해 만들어낸 그 많은 공동 작업의 결과들이 극장에 걸린다. <씨네21>은 한 해 동안 극장에서 관객과 만난 영화들의 면면을 되돌아보면서 그동안 여러 이유로 공개되지 않았던 미공개 촬영현장 스틸컷을 매년 살펴보고 있다. 해당 사진을 한장 한장 훑어보면서 현장 스틸컷을 촬영한 작가들과 일일이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개봉 당시에는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영화의 새로운 매력을 또다시 발견하기도 한다. 올 한해 관객을 울고 웃게 만든 <더 킹> <청년경찰> <박열> <범죄도시> <특별시민> <택시운전사> <싱글라이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꿈의 제인> <남한산성> <석조저택 살인사건> <여배우는 오늘도> <장산범> 이상 13편의 영화 촬영현장을 다시금 살펴
B컷으로 보는 2017 한국영화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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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환이 돌아왔다. 다행히 이번엔 비교적 빠른 복귀다. 언제나 차기작이 기대되는 감독 1순위인 그도 어느덧 장편 데뷔 14년차에 접어든 만큼 크고 작은 변화들이 눈에 띈다. 무엇보다 기발하고 창의적인 상상에 더해 원숙미가 물씬 느껴지는 안정적인 연출이 돋보인다. 1987년의 이야기를 이제야 영화화한다는 것도 놀랍지만 이토록 기본에 충실한 연출을 장준환 감독이 선보였다는 것도 놀랍다. 그간의 변화에 대해 묻자 “중심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단단한 답이 돌아왔다. 믿음직하다.
-먼저 축하드린다. 언론시사 후 반응이 좋다.
=<씨네21>에서 그렇게 말씀해주니 믿음이 간다. 기자시사에서 보는 반응과 일반시사에서 관객이 보는 반응이 다를 수 있을 것이다. 원래 기자들은 싸늘하지 않나. (웃음) 긴장이 많이 되어야 하는데 아직은 모르겠다. 일단 같이 일한 스탭이나 배우들, 무엇보다 그 당시 실존 인물들과 유가족들에게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민주화 투쟁을 한 분들과 유가족
<1987> 장준환 감독 - 현실을 목도하는 힘과 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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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아니, 시작이 아닌 끝이라고 해야 할까. 1987년 모두가 뜨거웠던 그해 여름 시민들로 가득 찬 광장은 “호헌철폐 독재타도” 여덟 글자로 물들었다. 1979년 12·12 사태로부터 무려 8년, 전두환 독재정권에 의해 짓밟힌 민주주의에의 열망이 들불처럼 타오를 불씨가 된 건 젊은 청년의 꽃같은 목숨이었다. 남영동 어두운 구석에서 스러져간 박종철군 고문 살인과 정부의 은폐 조작을 규탄하는 목소리들은 전국 각지에서 메아리쳐 6월10일 민주 헌법을 쟁취하기 위한 범국민대회가 성사됐다. 그리하여 부당한 군부정권은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한 6·29 민주화선언을 통해 무너진다. 아름다운 이야기다. 시민의 힘으로 일궈낸 승리의 기억이라 해도 좋겠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이후 김대중, 김영삼 두 후보의 통합이 불발되고 직선제를 통해 전두환 정권의 계승자인 노태우 정권이 들어선다는 것을. 1987년의 함성은 끝나지 않을 어둠에 대한 복선이었을까 아니면 미완일지
<1987>, 우리 모두 뜨거웠던 그해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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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지난 11월 말 개봉한 <인 더 페이드>(aus dem Nichts)가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올랐다. <인 더 페이드>는 <미치고 싶을 때>로 2004년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금공상을 수상했던 터키계 독일인 파티 아킨 감독의 작품. 주인공 다이앤 크루거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다니는 카메라는 폭발 직전의 감정선을 잡아낸다. 이 작품은 <미치고 싶을 때>의 감정 과잉을 연상시킨다. 다이앤 크루거는 이 영화로 올해 칸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인 더 페이드>는 독일의 치부를 드러내는 실화가 소재다. 2011년 11월, 은행 강도 사건을 통해 신나치 테러조직이 세상에 드러나는 사건이 있었다. 테러범 두명은 도주 중 자살했으며, 2000년부터 2007년에 걸쳐 무고한 외국인 아홉명을 살해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신나치 테러조직 국가사회주의지하조직(NSU)의 실체에 전 독일이 충격에 빠졌는데, 이후 테러조직원 베아
[베를린] 독일의 민낯 드러내는 신나치 테러조직 실화 다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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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젠베르크는 전자를 관찰하는 현미경을 생각했다. 아주 작은 전자를 관찰하기 위해서는 파동이 짧은 빛이 필요한데, 파동이 짧은 빛은 에너지가 커서 이 빛(광자)이 전자와 충돌하면 전자는 임의의 방향으로 튕겨나간다. 즉 전자를 정확히 관찰하려 하면 전자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만약 전자를 변화시키지 않기 위해 파장이 긴 빛을 쏘게 되면 우리는 정확한 전자의 위치를 관찰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우리는 변화된 전자 혹은 희미한 전자를 관찰할 수밖에 없다. 정확한 대상을 관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것이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다.
이 불확정성 원리는 코언 형제의 주요 테마 중 하나다. 코언 형제는 그의 영화 중 <시리어스맨>(2009)과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2002)에서 불확정성 원리를 명시적으로 언급한 바 있다. 특히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에서 불확정성 원리는 변호사가 주인공 에드(빌리 밥 손튼)의 무죄를 설파하기 위한 장광설의 주요 논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변증법 <세 번째 살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