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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즈맨 레이(마이클 키튼)가 밀크셰이크용 멀티 믹서를 들고 다니며 홍보 멘트를 유창하게 읊는다. 전국을 떠도는 노력에 비해 그의 판매 실적은 영 신통치 않다. 비서 준(케이트 닐랜드)으로부터 한곳에서 6개의 믹서를 주문받았다는 말을 듣고 그가 의심스럽다는 반응을 보인 것도 당연하다. 이상한 이끌림에 먼 길을 달려 주문처로 가봤더니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진다. 사람들이 창구에서 주문하면 순식간에 음식이 포장되어 눈앞에 나타나는 거다. 기존의 드라이브인 레스토랑 시스템에 비춰볼 때, 이것은 천지개벽에 가까운 혁신이다. 공동점주인 맥(존 캐럴 린치)과 딕(닉 오퍼먼) 형제의 안내로 주방을 가까이서 보게 된 레이는 가게의 시스템에 더 깊이 매료된다.
전세계적 패스트푸드 업체인 맥도널드의 실제 탄생 스토리에 바탕을 둔 <파운더>는 패스트푸드점이 한 블록 건너 하나씩 있는 지금과는 너무 다른 풍경의 1950년대 황금시대로 관객을 안내한다. 맥도널드 형제가 시스템을 확정하기
맥도널드의 실제 탄생 스토리 <파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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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알폰소 쿠아론 / 출연 샌드라 불럭, 조지 클루니 / 제작연도 2013년
어느 겨울날, 패딩을 입고 바닥에 누워 눈을 감으니 그곳은 산소도 중력도 없는, 나의 숨소리만 들리는 우주 같았다. 종종 마음 둘 곳 없고 방향조차 잡을 수 없는 막막한 시간을 마주한다. 그 순간은 지독히 춥고 고독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온전히 홀로 존재하는 이 순간이 축복이 되기도 한다. 마치 <그래비티> 속 샌드라 불럭이 고난의 시간 속에서 우주 속을 떠다니다 방황하던 자신의 마음을 마주하고 삶의 의미, 사랑 혹은 신일지도 모르는 자신을 붙들어줄 중력을 찾는 것처럼 말이다. 고립무원의 고독을 마주하고 있는 이에게 이 영화는 깊은 위로와 용기를 주리라 생각한다..
정유미 감독. 작가. 단편애니메이션 <나의 작은 인형상자> <먼지아이> <연애놀이> 등을 연출했고 이를 책으로도 엮어 출간했다. 한국 작가로는 최초로 볼로냐 라가치상을 2년 연속 수상했다.
[내 인생의 영화] 정유미의 <그래비티> 고독이자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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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드 오브 마인>의 ‘무대’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몇달 후의 덴마크 서해안의 지뢰밭이다. 해방된 덴마크군은 독일 포로의 손으로 독일이 매설한 220만개의 지뢰를 해체한다는 ‘인과응보’ 정책을 세운다. 누구보다 독일을 증오하는 라스무센 대위(롤랜드 묄러)는 본인이 지휘할 지뢰 해체 부대가 아직 성년도 안 된 소년들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안다. 이 영화는 대부분의 시간을 민가라고는 한채뿐인 망망한 해변에서 보낸다. <소나티네>의 그것처럼 하늘과 바다는 가혹하게 푸르다. 종일 백사장에서 죽음을 어루만지던 소년들은 해가 지면 빗장 질린 오두막에 갇힌다. 툭 터진 자연은 폐소공포증의 극장이 된다. 종전으로 찾아온 해방은 곧 인간성의 해방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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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거니 뒤서거니 국내 개봉한 <러빙>과 <히든 피겨스>는 1960년대 초 미국 버지니아, 웨스트버지니아주를 배경으로 역사를 진전시킨 널리 알려지지 않은 한 걸음을 다룬다. 당사자들의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해방과 훼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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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 윤여정을 비롯해 정유미, 이서진, 신구. 나영석 PD는 이들을 이끌고, 사람들이 이들을 유명 배우가 아닌 그저 ‘불고기’라는 한국 음식을 하는 초보 식당 운영자로 여길 수 있는 발리의 외딴섬으로 향했다. 손님이 많아도, 없어도 늘 전전긍긍하는 ‘유사가족’이 꾸리는 tvN <윤식당>은 동시간대 최고인 시청률 11.3%를 기록하며 프로그램만큼은 (영업실적 상관없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일단 나영석 PD는 영화 <카모메 식당>이 제시한 슬로 라이프를 그리고 발리로 갔지만, 영업 시작 이후 생활이 된 ‘윤 사장’의 경영 마인드가 더해지면서 윤식당의 모양새도 달라졌다. 나영석 PD는 편집하느라 지금 제일 바쁜 시기를 보내는 중. 지난 2월 발리의 롬복섬에서 돌아온 후 배우 윤여정과 나영석 PD가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였다. 2013년 <꽃보다 누나>(이하 <꽃누나>)에서부터 이어져온 두 사람의 인연을 천천히 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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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윤식당> 윤여정, 나영석 PD와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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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홍상수의 세계를 구현해온 두 남자, 김형구 촬영감독과 박홍열 촬영감독이 함께 작업한 영화다. 1부를 찍은 박홍열 감독은 영화에 직접 출연하며 역대급 신 스틸러로 등극하기도 했다. 누군가는 홍상수 영화의 카메라는 다 비슷하다고 말하지만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서 나란히 붙은 1부와 2부를 연달아 보면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다. 다만 우리는 아직 그 미묘한 차이를 정확히 말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김형구, 박홍열 촬영감독에게 도움을 청했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2004)부터 <극장전>(2005), <해변의 여인>(2006), <북촌방향>(2011),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2012)까지 함께해온 김형구 촬영감독과 <하하하>(2009), <옥희의 영화>(2010), <다른 나라에서>(2011),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201
[스페셜] <밤의 해변에서 혼자> 김형구 X 박홍열 촬영감독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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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은 지난 3월 31일 세계 최대 인터넷 기반 TV 스트리밍 서비스 사업자 넷플릭스가 최근 발표한 사용자 조사를 인용해 선호 프로그램의 장르가 지역별로 다르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넷플릭스가 지난 2016년 10월부터 올해 3월까지 영국 내 자사 서비스 이용자들의 스트리밍 서비스 구매 현황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지역에 따라 선호하는 특정 장르가 선명히 구분된다는 것이다.
코미디 쇼는 영국 북부의 스코틀랜드와 웨일스에서, 판타지 드라마는 중부 지역 사람들에게 특히 인기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넷플릭스가 2013년 첫 시즌을 선보인 정치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와 레프트 뱅크 픽처스와 소니픽처스 텔레비전이 넷플릭스를 위해 만든 영국 엘리자베스 2세의 생애를 다룬 드라마 <더 크라운>을 선호한다면 런던에 거주할 가능성이 크다. 같은 드라마 장르라도 북아일랜드에서는 법정 드라마인 <수츠>와 <굿 와이프>
[런던] 지역별로 다르게 나타난 선호 프로그램 장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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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관람하기 전 참고한 <투 러버스 앤 베어> 후기들은 유독 곰에 관해서만은 할 말이 많지만 애써 줄인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관람 후에야 이런 반응의 이유를 즉각 이해했다. <투 러버스 앤 베어>의 난감함은 곰이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는 데서 비롯된다. 영화 정보에 곰 목소리 담당 배우 정보가 버젓이 나와 있으니 딱히 스포일러는 아닐 것이다. 물론 실사영화에 말하는 곰이 등장했대도 놀랄 일은 아니다. <패딩턴>(2014)에서 인간처럼 옷 입고 말하는 곰을 만난 바 있으며,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라이프 오브 파이>(2012)처럼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결합해 인간과 가림막 없이 자리한 맹수를 그리기도 했다. 그러나 인간화된 동물이 등장할 때 영화 자체의 성격이나 장르가 그에 맞춰 판타지나 애니메이션, 아동물 등으로 조종되거나 분류된다면 <투 러버스 앤 베어>는 이와 달리 장르 특정이 불가능한 리얼리즘 영화로 굳건히 남는다
[김소희의 영화비평] <투 러버스 앤 베어>와 함께한 특별한 북극 탐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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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에 사랑에 빠진 남녀가 있다.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밤의 해변에서 둘은 결혼식을 올린다. 부부가 된 후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는 건 여자다. 무명배우인 남편은 아내의 지지와 조언에 힘입어 극본가로 진로를 바꾸고 승승장구한다. 남자는 인생의 반전을 만들어준 아내를 당연히 운명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침묵해온 여자는 생각이 다르다. 두 인간이 걸어온 세계가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소설은 남자와 여자의 생애를 기준으로 두 부분으로 나뉜다. 1부 ‘운명’은 남편 로토의 시점에서 쓰여진 얘기다. 로토는 플로리다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부모와 고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다. 아버지의 죽음 후, 잠시 탈선에 빠지지만 연극에 눈을 뜨며 다시금 생의 의지와 자존감을 되찾는다. 대학에서의 마지막 연극을 올리던 날, 주인공 햄릿을 연기하던 로토는 아내를 만난다. 한편 2부 ‘분노’는 아내 마틸드의 시선에서 진행되며, 1부에서 부부가 마주한 비극의 전모를 드러낸다. 오렐리는 4살 때 부모에게
[도서] 씨네21 추천 도서 <운명과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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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척 외롭게 자랐고, 가물가물한 기억까지 떠올려본다면 모든 성적인 것에 극도로 불안을 느꼈다.” 소설 <눈 이야기>는 16살 소년의 고백으로부터 시작한다. 해변의 외딴 별장에 머물던 소년과 그의 먼 친척 시몬은 둘 사이에 사물 하나를 놓고 그것을 이용해 손 하나 닿지 않고 서로를 극한의 흥분상태로 이끈다. 이후 “밀접하고 의무적인” 애정관계로 묶인 둘은 정신병원, 투우장, 성당을 오가며 금기를 위반하고 성에 탐닉하기 시작한다. 그런가 하면 <하늘의 푸른빛>은 부르주아 청년 트로프만의 방탕한 여정을 따라간다. 그는 유럽 전역을 떠돌며 새로 만난 여성들과 통음하고, 성욕에 매몰돼간다. 두 작품 모두에서 주인공들이 행하는 변태적 성행위와 엽기적인 폭력의 끝엔 죽음이 도사리고 있다.
관능적인 이미지들로 감각을 자극하는 에로티시즘 소설과는 성격이 다르다. 두편에서 묘사된 광기 어린 성적 행위들은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저주의 작가’로 불리던 작가 조르주 바타유
[도서] 씨네21 추천 도서 <눈 이야기>, <하늘의 푸른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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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작가와 무명작가 사이에 ‘유령작가’가 있다.” <고스트라이터즈>는 글로 타인의 미래를 설계하는 ‘유령작가’들의 이야기다. 이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글을 대신 써주는 대필작가와는 다르다. 타고난 신기로 앞날을 예견하는 무당과도 다르다. 유령작가는 대상에 대한 철저한 취재를 바탕으로 앞으로 일어날 일들의 디테일을 제시한다. 4년 전, ‘안 쳐주는’ 문학상으로 등단한 김시영은 유명 소설가 이카루스의 대필작가로 지내고 있다. 어느 날, 마약과 무면허 음주운전으로 나락에 떨어진 연예인 차유나가 재기를 도와달라며 그를 찾아온다. 차유나는 김시영에게 세계 곳곳에서 암약하는 유령작가들의 존재를 일깨워준다.
<고스트라이터즈>는 글이 곧 무기가 되는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소설, 시나리오, 방송 극본, 웹 소설 등 장르는 달라도 글로 먹고사는 이들이 등장해 펜으로 서로의 운명을 좌지우지한다. 판타지적 설정을 기반으로 하지만 이들이 나누는 대화는 문단의 생리를 지극히 사
[도서] 씨네21 추천 도서 <고스트라이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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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머릿속엔 아몬드 두알 크기의 기관이 있다. ‘편도체’라 불리는 이곳은 외부의 자극에 따라 적절한 감정을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 두려움도, 불안도 생존에 있어선 필수적인 감정이다. 윤재는 편도체가 고장난 18살 소년이다. 남들의 눈물, 웃음의 이유를 알지 못한다. 소년에겐 “감정이라는 말도, 공감이라는 말도 그저 막연한 활자에 불과하다”. 윤재의 ‘할매’와 엄마는 아이에게 감정을 가르친다. 희, 노, 애, 락, 애, 오, 욕. 일곱 글자를 집 안 곳곳에 “가훈처럼 혹은 부적처럼” 붙여놓고, 상황에 맞는 감정과 반응을 예습시킨다. 하지만 사회와 그를 이어주는 유일한 두 존재는 윤재의 생일에, 끔찍한 사고로 죽거나 식물인간이 된다. 그에게 남겨진 건 엄마가 운영하던 조그만 헌책방뿐이다.
소문은 경험보다 힘이 세다. 또래 사이에서 윤재는 ‘사이코패스’, 혹은 괴물 같은 아이로 통한다. 애써 들여다봐주는 이 없는 무심한 생활 속에서 그는 또래 소년 이수를 만난다. ‘곤이’ 라는 별
[도서] 씨네21 추천 도서 <아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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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의 꽃이 만개했다. 저마다 다른 장르적 쾌감을 안겨주는 다섯편의 소설이 4월의 북엔즈에 함께 꽂혔다. <아몬드>는 태어날 때부터 감정을 느낄 수 없는 18살 소년의 뭉클한 성장담이다. 몇몇 대목에서 액션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고스트라이터즈>는 펜으로 사람의 운명을 결정짓는 유령작가들의 대결을 그린 판타지 소설이다. <눈 이야기>와 <하늘의 푸른빛>은 ‘사드의 적자’로 통하는 프랑스 철학자, 조르주 바타유의 에로티시즘 소설로 성에 탐닉하는 소년과 청년의 여정을 따라간다. <운명과 분노>는 아내를 운명으로 여긴 남자와 분노를 품고 살아온 그 아내의 비밀을 풀어내는 소설이다.
손원평 작가의 첫 장편 <아몬드>는 공감 불능의 사회에서 감정 또한 배우고 익혀나가는 것임을 말한다. 주인공 소년은 감정 없이 태어난 인간이다. 할머니와 엄마를 잃고 고아가 된 그에게 감정을 알려주는 건 같은 반 친구들과 윗집 어른이다. 편견에
[도서] 씨네21 추천 도서 - 골라 읽는 재미 쏠쏠한 4월의 신간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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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이용해서 사욕을 채우는 도적을 ‘법비’(法匪: 법을 악용하는 무리)라고 합니다.” 소신 판결을 하던 판사 이동준(이상윤)은 자신을 회유하려는 거대 로펌 ‘태백’의 대표 최일환(김갑수)의 제안을 거절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법비 최일환은 동준의 판사 재임용 탈락을 사주하고 그를 태백의 변호사로 끌어들인다. SBS <귓속말> 1회. 자신의 집무실로 향하는 긴 복도를 병마용갱처럼 꾸며놓고, 방문객을 들이기 전 시계나 휴대폰 등을 풀게 하는 보안절차로 위세를 자랑하던 최일환의 악취미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불멸을 꿈꾸던 중국 황제의 무덤을 모사한 집무실에 들어앉아 대대손손 노비였던 아버지의 낡은 사진을 품고 있는 늙은 권력자의 콤플렉스에 골몰하다 피식 웃으며 놓여난 것은 4회에 등장한 자장면 덕분이었다. 태백이 배후에 있는 방산비리를 추적하다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간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애쓰는 주인공 신영주(이보영)가 들렀던 중국집. 그녀 앞에 놓인 자장면 그
[유선주의 TVIEW] <귓속말> 흠… 이 구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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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노운 걸> The Unknown Girl
감독 장 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 / 출연 아델 에넬, 올리비에 보나드 / 수입·배급 오드 / 개봉 5월 3일
<언노운 걸>은 제목만 들어서는 리암 니슨 같은 배우가 등장하는 스릴러영화일 것 같지만 언제나 인간의 윤리의식에 대해 깊은 탐구를 보여주는 다르덴 형제의 신작이다. 아닌 게 아니라 지난해 칸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됐을 때에 전작과 다르게 스릴러적 요소가 있다는 점이 화제가 됐다. 전도유망한 의사 제니(아델 에넬)가 일과 후에 인턴으로 일하는 줄리앙(올리비에 보나드)을 혼내다가 누군가가 병원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무시하고 만다. 제 딴에는 선배 노릇을 하겠다며 벌인 행동인데 그로 인해 벌어진 어마어마한 사건의 연속 앞에서 제니는 매 순간 죄책감을 안고 어떤 선택을 해나가야만 한다. “도덕적 죄의식을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다르덴 형제의 말처럼 이 영화는 관객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심
[Coming Soon]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심판자 <언노운 걸> The Unknown Gir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