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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보통 ‘집사’라고 불린다)들이 퍼트린 고양이에 대한 전설이 몇개 있다. 1. 고양이는 언제든 액체로 변신할 수 있다(도대체 거긴 어떻게 들어갔나 싶은 곳에 숨어 있음). 2. 고양이는 천하무적 밀당 천재다. 3. 고양이와 한번도 안 살아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살아본 사람은 없다. 4. 고양이의 파괴 본능은 집사가 소중히 여기는 물건 앞에서 특히 발휘된다. 5. 고양이는 하루 20시간은 잠만 자고(부럽다!) 4시간 정도 활동하는데 그 시간은 집사가 눈 좀 붙여보려는 늦은 밤이다. 그때 활기찬 활동을 시작한 고양이는 잠든 집사의 배를 우다다다 즈려밟는다. 이렇게 고양이의 특성을 백만스물하나 정도 열거할 수 있지만 팔불출 짓은 이쯤에서 그만해야겠다.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내 고양이의 예쁨이 너무 황홀해 각종 고양이 굿즈의 노예가 될 것이고 고양이를 키우지 않는 사람이라면 ‘랜선집사’가 되어 남의 고양이 사진과 영상을 저장하며 그 쓸쓸함을 달래는 게 요즘의 세
씨네21 추천도서 <고양이 식당> <식빵 고양이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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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직장을 그만두고 잠시 쉴 때였다. 모임에서 나를 소개하다 멈칫했다. 나를 기자라고 소개해도 괜찮은 걸까? 이름 앞에 붙던 소속이 사라지자 내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어졌다. 수많은 ‘나’들은 이렇듯 어딘가에 소속되어 누군가의 무엇으로 호명된다. 엄마의 딸, 어느 초등학교 몇 학년 몇반, 어느 대학의 학생, 회사의 모 대리 등등, 관계맺음으로써 생기는 이름이고 어디에 소속되면서 부여받는 직함이다. 그렇다면 그 모든 나는 누구일까. <후아유>는 영국 남자와 결혼해 두딸을 낳아 영국과 한국을 오가며 생활한 저자의 이야기이며, 그가 활동가로서 북한이주민, 결혼이주 여성을 연구하며 겪었던 체험과 고민에 대한 에세이집이다. 이 책을 단순히 다문화 가정과 소수자들에 대한 성찰이 빛난다, 라고 정리해도 좋겠지만 더 놀라운 지점은 곳곳에서 발견되는 자기반성적인 사례들이다. 서울대 출신의 연구자이자 다정한 친구들과 가족에 둘러싸여 살았던 저자는 영국에서 살 때 그동안 나를 설명해주던
씨네21 추천도서 <후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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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때면 인간이라는 존재가 참으로 단순하게 이루어졌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니, 햇빛에, 온도에, 바람에 따라 이렇게 기분이 널을 뛰다니. 날씨가 좋다는 것만으로도, 햇볕이 따스하다는 것만으로도 한껏 마음이 부풀고 보드라워지니 신기한 노릇이다. 봄에는 외출 인파가 늘어나 책 판매는 더 저조하다는데, 해빙기라도 온 듯 4월 북엔즈에는 평소보다 더 많은 권수의 책들이 꽂혔다. 독특한 세계관의 추리로 한국에서도 인기 있었던 일본 드라마 <TRICK2>의 각본가 오타 아이(시즌2의 에피소드3에 참여했다)의 첫 장편소설 <범죄자>는 일단 분량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 소설집이다. 그러나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처럼 이 소설 역시 사건이 정교하고 밀밀해 몰입을 더한다. 유희경의 새 시집 <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도 봄과 어울리는 시집이다. 시인의 전작 <오늘 아침 단어>의 쓸쓸한 낭만성을 사랑했던 독자라면 이번 시집 역시 마음을 움직일 시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4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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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판석 PD와 정성주 작가가 함께한 드라마들을 되짚어보면 전작에서 해결되지 않은 숙제를 다시 풀어나가는 흐름이 보인다. JTBC <아내의 자격>에서 김태오(이성재)의 전 부인 홍지선(이태란)은 입시비리에 연루되어 감옥에 가지만 풀려나도 다시 그 세계로 돌아갈 것이라고 했었다. <밀회>는 홍지선과 유사한 인간이었던 오혜원(김희애)이 과오를 바로잡고자 감옥에 간다. SBS <풍문으로 들었소>는 <아내의 자격>에서 ‘슈퍼 갑’이었던 법조계 혈맥과 <밀회>의 재벌가를 ‘을의 반란’으로 풍자했다. 숙제는 아직 남아 있었다. <아내의 자격> 마지막 회, 윤서래(김희애)의 전남편인 방송사 기자 한상진(장현성)은 직장 내 성추행이 문제가 되어 퇴사한다. 회사의 여성노동자모임은 그가 자의로 회사를 그만두는 좋은 그림을 만들어준 사측에 항의하고 한상진을 형사고발했다. 7년 전엔 그걸로 후련했는데 지금은 성추행 피해자인 분장사가 인사 벽보
[TVIEW]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굳은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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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리맨> Early Man
제작 아드만 스튜디오 / 감독 닉 파크 / 목소리 출연 에디 레드메인, 톰 히들스턴, 메이지 윌리엄스, 닉 파크 / 수입 퍼스트런 / 개봉 5월 3일
평화로운 석기시대, 엉뚱발랄한 얼리맨들이 마을을 이뤄 살고 있다. 호기심도 용기도 넘치는 소년 더그(에디 레드메인)와 베스트 프렌드인 멧돼지 호그놉과 함께 모험을 즐기지만 능력에 비해 마음만 앞서 매번 사고를 일으킨다. 어느 날, 세계 정복을 꿈꾸는 청동기 왕국의 대장 누스(톰 히들스턴)가 쳐들어와 순식간에 마을을 점령해버린다. 마을을 해방시키고 싶은 더그는 누스에게 인류 최초의 빅매치를 제안한다. 더그는 승리를 위해 청동기 왕국의 구나(메이지 윌리엄스)를 코치로 영입해 급조된 팀의 훈련을 시작한다. <윌레스와 그로밋>(1989), <치킨 런>(2000)을 제작한 클레이애니메이션의 명가 아드만 스튜디오의 신작이다. 개성 만점의 얼리맨들의 슬랩스틱이 작열하는 가운데 에디
[Coming Soon] <얼리맨>, 작열하는 개성 만점 얼리맨들의 슬랩스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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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커스> Blockers
감독 케이 캐넌 / 출연 존 세나, 레슬리 만, 이크 바린홀츠, 캐서린 뉴턴, 제랄딘 비스와나탄
딸들의 첫 섹스를 막겠다는 고루한 일념 속에서 미첼(존 세나), 리사(레슬리 만), 헌터(이크 바린홀츠)가 졸업파티에 잠입해 비밀 작전을 펼친다. 딸들은 매번 부모보다 한 발짝 앞서 있고, 10대들보다 더 들뜬 어른들은 성숙한 부모 되기의 성장통을 겪는다. 한바탕 저속하게 웃긴 뒤 다정한 터치를 곁들이는 것도 잊지 않는 섹스 코미디. <피치 퍼펙트> 시리즈를 쓴 케이 캐넌의 연출 데뷔작이다.
[해외 박스오피스] 미국 2018.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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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램페이지> 실험 중이던 고릴라가 탈출해 서울로 향하고 있습니다
[정훈이 만화] <램페이지> 실험 중이던 고릴라가 탈출해 서울로 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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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스필버그의 <더 포스트>를 보다가 리처드 닉슨에 대해 다시 떠올렸다. 닉슨은 언제나 흥미롭다. 아무런 자산 없이 노력과 좌절 끝에 혼자 힘으로 최고 권력의 중심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특유의 피해의식과 적을 대하는 방식 때문에 임기가 계속될수록 괴물이 되어갔다. 그는 자신이 받아 마땅한 사랑과 보상을 빼앗겼으며, 이는 공정하지 않기 때문에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자신에 관련된 가능한 세상의 모든 대화를 녹음하고 복수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스캔들을 무마하기 위해 공작과 거짓말을 반복했다. 거짓말을 가리기 위해 더 큰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거짓말이 이어졌다. 결국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임했다.
닉슨은 미국 대중문화의 유력한 캐릭터 중 하나다. 닉슨을 다소 입체적으로 다룬 올리버 스톤의 <닉슨>이나 론 하워드의 <프로스트 VS 닉슨> 정도를 제외하면, 영화 속의 그는 언제나 악당이었다. 역사의 평가가 이미 완료되었기 때문이다. 닉슨이
[허지웅의 경사기도권] <더 포스트>를 보며 다시 생각한다, 영화가 사랑한 악당 닉슨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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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스드 투 킬>
Dressed to Kill / 감독 브라이언 드 팔마 / 1980년
브라이언 드 팔마만큼 오마주나 레퍼런스를 기꺼이 수용하는 감독도 없을 것이다. 흔히 그의 이름 앞에 “모방”이란 수식어가 따라붙지만 브라이언 드 팔마는 과거 작가들의 스타일을 수용하며 자신의 호흡으로 새로움을 창조하기에 이른다. 특히 <드레스드 투 킬>에서 그는 자신이 광팬임을 밝힌 앨프리드 히치콕의 <싸이코>에 대한 오마주이자 장 뤽 고다르,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등의 영향을 드러낸다. <드레스드 투 킬>은 양성을 가진 정신과 전문의 엘리엇(마이클 케인)의 환자 케이트(앤지 디킨슨)의 살해를 둘러싸고, 목격자인 리즈(낸시 앨런)가 결백을 증명하려 나서는 스릴러. 자신의 인격을 여성인 보비가 지배하면 여인들을 습격하는 살인마로 변모한다.
<드레스드 투 킬>을 대표하는 장면 중 하나는 영화 초반, 엘리엇이 케이트를 엘리베이터에서 처참히
[영화가 사랑한 영화들⑨] <드레스드 투 킬> <용호풍운> <어셔가의 몰락>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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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레이드>
Charade / 감독 스탠리 도넌 / 1963년
“히치콕이 만든 적 없는 최고의 히치콕 영화.” 스탠리 도넌 감독의 <샤레이드>를 수식하는 가장 멋진 한줄 소개가 아닐까 싶다. 케리 그랜트와 오드리 헵번의 신명나는 애드리브 연기로도 유명한 이 영화는 스파이 스릴러, 스크루볼 코미디, 멜로 등 여러 장르 요소의 장점을 아우른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난데없이 등장하는 충격적인 살해 장면, 아이가 해맑게 물총으로 장난치는 익살스러운 장면, 미행을 따돌리기 위해 위장을 하는데 누가 봐도 귀엽고 눈에 띄는 지방시 드레스와 스카프, 그리고 화룡점정인 선글라스로 얼굴만 가린 모습 등이 영화의 종잡을 수 없는 온도 변화를 대변한다. 어느 날 갑자기 시체로 돌아온 남편의 모든 것이 가짜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즉 ‘너무 많은 것을 모르는 여자’와 미스터리로 똘똘 뭉친 ‘너무 많은 이름을 가진 남자’가 돈가방을 추적하고 사랑에 빠지고 범인의 실체에 다가서다 위기
[영화가 사랑한 영화들⑧] <샤레이드> <이탈리안 잡> <몬티 파이튼의 성배>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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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장>
La Piscine / 감독 자크 드레이 / 1969년
작열하는 태양과 이국적인 풍경, 보기 좋게 그을린 근사한 외모의 부르주아들과 기저에 흐르는 미묘한 긴장감. 자크 드레이 감독의 <수영장>은 <태양은 가득히>(1960)와 더불어 여름을 배경으로 우아한 스릴러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모든 영화감독들에게 귀감이 되는 작품이다. 당대 유럽영화계의 스타배우, 알랭 들롱과 로미 슈나이더가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프랑스 남서부의 여름 휴양지에서 펼쳐지는 네 남녀의 은밀하고도 위험한 관계맺음에 주목하고 있다. 작가 장 폴(알랭 들롱)과 그의 연인 마리안(로미 슈나이더)은 친구의 고급 빌라에서 낭만적인 여름휴가를 보내고 있는 중이다. 평화롭던 그들의 일상은 마리안의 전 남자친구이자 음반 프로듀서인 해리(모리스 로네)가 딸 페넬로페(제인 버킨)와 함께 빌라를 찾으면서 점점 위태로워진다. 여름의 열기 속에서 다시 가까워지는 마리안과 해리, 진짜 해리의 딸
[영화가 사랑한 영화들⑦] <수영장> <시체들의 새벽> <행잉록에서의 소풍>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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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제70회 칸국제영화제 초청작인 홍상수 감독의 장편영화 <클레어의 카메라>가 4월25일 개봉일을 확정하고 메인 포스터, 메인 예고편 등을 공개했다. <클레어의 카메라>는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취미를 가진 음악 선생님 클레어(이자벨 위페르)가 칸영화제 출장 중 부정직하다는 이유로 회사에서 쫓겨난 영화배급사 직원 만희(김민희)를 우연히 만나 그녀의 사정에 공감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클레어의 카메라>는 칸영화제 상영 이후 ‘아무 것도 아닌 만남들과 우연, 대단할 것 없는 일상의 궁색함으로 인간관계와 그들의 깊은 모순을 와 닿게 만든다’(<르몽드>), ‘반짝이는 일탈들과 놀라운 우연의 일치로 가득한, 할리우드 클래식 영화들과 필적할만한 작품’(<뉴요커>)등 유럽을 비롯한 미국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다. 또 프랑스의 명배우 이자벨 위페르와 김민희의 첫 만남으로 관심을 모았다.
지난 9일 공개된 &l
4월25일 개봉하는 홍상수 감독 <클레어의 카메라> 메인 예고편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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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North by Northwest / 감독 앨프리드 히치콕 / 1959년
“첩보스릴러 장르에 한정해서 말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태초에 히치콕이 있었다.” 브래드 버드 감독은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2011) 인터뷰 중 태어나서 처음으로 감독으로 인지한 사람이 앨프리드 히치콕이었다고 고백했다. 브래드 버드는 그 기억을 되살려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의 옥수수밭 추격 장면을 두바이 사막의 모래폭풍 속으로 옮겨와 헌사를 바쳤다. 사실 첩보액션영화에서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의 흔적을 발견하지 않는 게 더 어려운 일이다. ‘히치콕의 첫 번째 007 영화’라는 농담이 농담으로 들리지 않을 만큼 007 시리즈를 비롯한 숱한 첩보액션 영화가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에 빚지고 있다. 평원에서의 쌍엽기 추격 장면은 <007 위기일발>(1963), <레이더스>(1981)에
[영화가 사랑한 영화들⑥]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선셋대로> <윌로씨의 휴가>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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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회>
Brief Encounter / 감독 데이비드 린 / 1945년
기차 시간이 임박한 어느 찻집. 복잡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남녀의 앞에 눈치 없는 친구가 끼어들어 대화가 중단된다. <밀회>의 초반에 나오는 이 장면은 매주 목요일에 찻집에서 만나며 불륜 관계가 된 로라와 알렉의 사연이 플래시백으로 그려진 후 후반에 재등장하며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토드 헤인즈 감독의 <캐롤>(2015)은 영감을 얻은 작품에 오마주를 바치는 탁월한 방식을 보여준다. 감독은 원작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 “이것은 <밀회>와 비슷한 이야기”라고 생각했고, <밀회>와 같은 방식으로 이야기를 각색하며 테레즈와 캐롤의 대화가 제3자의 방해로 중단되는 유사한 오프닝을 만들었다. <밀회>의 불륜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인물이 <캐롤>의 동성애를 눈치채지 못하는 인물로 대응됨으로써 50년대 당시의 보수적 시대상을 보다 분명하게 드러낸다
[영화가 사랑한 영화들⑤] <밀회> <빌리 엘리어트> <분홍신> 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