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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아름다운 외모에 가려져 있던 개성이 공적으로 드러난다.”(이지현) <미쓰백>의 한지민은 올해 한국영화계에서 가장 괄목할 만한 배우의 변신을 보여준다. 미디어가 선호하는 부드러운 여성상에 잘 어울리는 생김새가 한겹의 베일일 뿐이었다는 새로운 자각을 안긴다. 가정폭력의 피해자이자 범죄자로 낙인 찍힌 채 살아온 무뚝뚝한 인물, 그리고 비슷한 처지의 어린아이에게 함께 살아내자고 손을 내미는 인물 백상아는 한지민을 통해 비로소 양면의 진실함을 갖는다. “건조하고 낮은 목소리로 내뱉는 욕설, 독기와 불안이 서린 눈빛이 어우러지면서 불과 몇 장면 만에 기존에 알고 있던 배우의 모습이 더이상 떠오르지 않는다.”(황진미) 한지민은 “평소 아동학대 이슈에 관심이 많았기에, 어느 날 새벽녘에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이 영화는 무조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대중에게 익숙한 기존의 이미지로 인해 “백상아 캐릭터가 흐리게 보이지 않을지 걱정했던 것도 사실”이라며 주연배우로
[2018년 총결산⑥] 올해의 여자배우 - <미쓰백> 한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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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에 좋은 선물을 주셔서 감사하다. <1987>뿐만 아니라 <암수살인>까지 두편 모두 의미 있는 작품이었다. 그 작품들로 선정되니 더욱 기분이 좋다.” 김윤석의 소감대로 <1987>과 <암수살인>은 “서로 다른 두 얼굴을 김윤석만의 표정과 호흡으로 완벽하게 표현한”(주성철) 작품이다. <1987>에서 그가 연기한 박 처장은 “개인이 아닌 사회적 악인으로서 한국영화에서 본 적 없는 악역”(송형국)이었다. “모두 가벼워지고 있을 때 김윤석의 눈은 점점 더 무거워지고 있다. <암수살인>의 엔딩에서 그(김윤석이 연기한 김형민)가 ‘어디 있노?’라고 말할 때를 보라, 그는 죽은 자에게 그렇게 말을 거는 사람”(이용철)이다. 김윤석에게 <1987>과 <암수살인>은 각기 다른 의미를 가진 작업이다. <1987>은 “1987년을 보냈던 사람으로서 잊을 수 없는 과거의 흔적”으로 “투자받기 어려운 상
[2018년 총결산⑤] 올해의 남자배우 - <1987> 김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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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의 거리로 우리를 데려다주는 영화”(이화정)라는 말처럼 장준환 감독의 <1987>은 수많은 역사 속 광장을 거쳐왔던 관객에게 남다른 감동을 안겨준 영화다. 그에 화답하듯 각종 연말 시상식을 휩쓸고 있는 데 대해 장준환 감독은 “너무 벅차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특히 그에게 <1987>은 “영화를 만들면서 이렇게 행복할 수 있을까, 이런 기회가 다시 올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과정과 결과가 좋았던 영화”로 기억될 것이다. “이렇게 아름답고 기적 같은 일들이 있었다는 것에 대해서 무용담의 추억팔이에 그치지 않고 <그날이 오면>이란 노래처럼 우리가 정말 그날을 위해서 가고 있는지, 운동화 끈은 잘 묶였는지, 현재의 우리를 돌이켜보는 시간이었으면 좋겠다는 의미”에서 개봉 이후 그 어느 때보다 관객과의 대화 행사에 열정적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아직은 <1987> 이후 장준환 감독의 다음 관심사가 어디로 향할지는 미정이다. 하지만 “&
[2018년 총결산④] 올해의 감독 - <1987> 장준환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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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나왔을 때 반응이 좋지 않았고, 체감상으로도 비판적이어서 (수상)예상도 기대도 전혀 안 했는데….” 올해의 영화와 올해의 감독, 2관왕을 차지했다는 소식을 전하자, 이창동 감독은 허허 웃으며 “의외”라고 말했다. <버닝>은 미스터리한 일을 겪는 종수(유아인), 해미(전종서), 벤(스티븐 연) 등 세 청춘을 통해 이창동 감독이 바라본 젊은 세대와 지금 세계를 그려내는 이야기다. 그것은 이창동 감독이 “오랫동안 쭉 해왔던 고민을 탐색하고 모색한 결과”로, “영화적인 경험을 통해서 세상과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싶었던 작품”이다. <씨네21> 또한 그가 이 영화를 만든 의도와 조응했다. “소설을 이미지화하는 방식, 메타포로 스릴러를 폭발시키는 방식은 귀한 논의 대상이다. 이 영화가 이창동 감독이 지금껏 시도한 가장 영화적인 결과물이라는 데에는 의심이 없다.”(김소미) “그의 작품은 늘 한 시대의 조류를 몇 걸음씩 앞서갔는데 이번엔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만큼
[2018년 총결산③] 올해의 감독 - <버닝> 이창동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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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한국영화는 시대와 조응하는 목소리들로 채워졌다. 항상 자신의 영역과 시간대에서 영화와 공명하는 홍상수 감독의 신작들을 별개로 하고 나면 거의 대부분의 영화들이 과거 아픈 시대를 반추하거나 현재진행형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이야기들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살아남은 아이> <공동정범>처럼 다소 직접적인 접근은 물론이고 <버닝> <1987> <공작> 역시 각자의 방식으로 오늘의 한국에 화답하는 작품들이 고른 지지를 받았다. 그에 따른 결과 중 하나로 평자들의 지지가 확연하게 갈린 것도 특징이다. <씨네21> 기자들은 3위를 차지한 <1987>에 손을 들어준 데 반해 평론가들은 대체로 <버닝>에 지지를 보냈다. 2위를 차지한 신동석 감독의 <살아남은 아이>는 거의 모든 필자들의 고른 지지를 받아 신인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으로는 드물게 올해의 영화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왕성한
[2018년 총결산②] 올해의 한국영화 총평, 6위부터 10위까지의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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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한국영화 1위 <버닝>
한국영화에서 ‘논쟁적’이라는 표현은 사라진 지 꽤 오래됐지만 <버닝>을 둘러싼 다양한 반응들은 차갑게 식은 한국영화 한복판에 새삼 불씨를 지폈다. 호평 일색인 해외 반응과 달리 국내 평단과 관객은 <버닝>에 대한 극명한 온도차를 보였는데, 기성세대의 잣대로 젊은 세대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지적부터 미국 신인 독립영화감독들이 만든 영화보다 못하다는 다소 공격적인 평가도 나왔다. 어쩌면 찬사 일색이 아니라는 점이 도리어 현시점 이 영화의 가치를 증명하는지도 모른다. 긴 침묵을 깨고 돌아온 이창동 감독은 “모두 망각했거나 자본의 간섭에 겁을 먹고 퇴각해버린, 이야기 자체를 대담하게 실험한 드물고 귀한 시도”(김영진)를 했고, 그 결과 요 몇년간 경색된 한국영화라는 껍질에 균열을 낼 만한 자극을 남겼다. <버닝>은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기 위해 자신에게 익숙한 것을 벗어던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영화다. 작가의 시선에서
[2018년 총결산①] 2018 한국영화 베스트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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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좋아하는 영화라는 게 가능할까. 만약 존재한다고 가정하면 그런 이유로 나는 도저히 그 영화를 좋아할 수 없을 것 같다.” 올해 초 <카이에 뒤 시네마>의 평론가 뱅상 말로사는 <씨네21>과의 만남에서 2017년의 영화를 꼽아달라는 부탁에 이렇게 말했다. 2018년 <씨네21> 올해의 영화를 꼽는 와중에 문득 그 말이 떠올랐다. 해마다 통과의례처럼 베스트영화를 선정하고 정리해보는 건 영화들에 점수를 매기고 줄을 세우기 위함이 아니다. 오히려 그 정반대의 가치, 이를테면 발굴과 소개를 위한 작업이다. 어쩌면 한해 동안 감히 영화를 ‘평가’해온 일에 대한 반성문이라고 보는 편이 적절할 것 같다. 2018년 <씨네21>이 선정한 올해의 영화에는 29명의 평론가와 기자들(장병원, 정성일 평론가는 외국영화 베스트에만 참여)이 함께했다. 평자들은 올해 자신을 뒤흔든 영화들에 대한 소중한 기록들을 보내왔다. 이 리스트는 혹여 이 영화들을 놓쳤을지
<씨네21> 기자들과 평론가들이 뽑은 2018년 올해의 영화, 영화인 ① ~ 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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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과 노래, 그중에서도 특히 흘러간 대중가요와 팝송은 강형철 감독의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본 재료다. 그의 네 번째 장편 <스윙키즈>라는 제목에서 이미 알 수 있듯, 이번에는 배경에 삽입되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음악을 전면에 내세우는 영화를 택했다는 점에서 기대 반 우려 반의 심정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전쟁과 춤의 조합이라니. 한국전쟁 당시 거제 포로수용소는 누가 봐도 춤과 노래와는 가장 거리가 먼 곳임에 틀림없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의 영화에서 삶과 음악은 늘 가까우면서도 이질적인 조합을 시도하고 있다. 전쟁통에도 심지어 포로수용소에서도 꿈을 꿔보겠다며 춤바람에 빠져든 군인들을 통해 강형철 감독이 이번에는 과연 어떤 삶의 유형을 보여주려 하는 것일까. <스윙키즈>라는 흥미로운 기획의 시작과 방향에 대해 직접 만나 물었다.
-장훈 감독의 추천을 받아 뮤지컬 <로기수>를 접했다고 들었다. 뮤지컬의 어떤 점이 마음을 사로잡았나.
=평소 내가
[2018 겨울 블록버스터 한국영화④] <스윙키즈> 강형철 감독 - 춤을 추며 절망과 싸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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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난이도를 상, 중, 하로 나누자면 강형철 감독의 신작 <스윙키즈>는 단연 상에 해당된다. 1950년대 한국전쟁 당시 이데올로기의 격전기였던 거제 포로수용소를 고스란히 재현해야 했고, 가격이 비싸고 사용 허가를 받기 까다로운 음악을 무려 10곡이나 확보해야 했으며, 1950년대의 공기와 빛을 카메라에 담아내야 했기 때문이다. 영화를 제작한 이안나 안나푸르나필름 대표가 “대충 만들 거면 아예 안 하는 게 낫다”고 말한 것도 그래서다. 이안나 대표, 김지용 촬영감독, 박일현 미술감독으로부터 2017년 10월부터 2018년 2월까지 총 84회차 진행된 <스윙키즈> 제작기에 대해 들었다.
Just Music
유명한 곡일수록 비싸다. 부르는 게 값이다. 강형철 감독은 자신이 콕 집은 음악만큼은 영화에 써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감독으로 유명하다. 이번 영화에서 사용된 곡은 총 10곡이다. 비틀스의 <Free as a Bird>를 포함해 데이비드 보위의
[2018 겨울 블록버스터 한국영화③] <스윙키즈> 제작기 - 이안나 프로듀서, 김지용 촬영감독, 박일현 미술감독에게 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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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게 찍었다.” 우민호 감독은 몸은 힘들지만 <마약왕>이 배우와 스탭 모두가 만족한 현장이었다고 말한다. 지난해 10월 장장 6개월간 100회차 촬영을 마친 <마약왕>은 1970년대 초 부산 지역에 실재했던 거대 마약 유통 사업의 중심에 있던 ‘마약왕’ 이두삼(송강호)의 10여년간의 행적을 그린 시대극이다. 이두삼의 성공과 몰락 과정은, 부패한 70년대 대한민국의 모습 그 자체다. <내부자들>(2015)의 700만 관객에 감독판인 <내부자들: 디 오리지널>(2015)의 200만 관객까지 더하는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우민호 감독에게 <마약왕>은 어떤 작품이었을까. 차기작인 <남산의 부장들>의 부산 촬영으로 한창인 우민호 감독을 잠깐 짬이 난 틈에 만났다.
-다시 또 한편의 청소년 관람불가(이하 청불) 영화로 연말 개봉을 기다린다.
=<내부자들> 이후에 청불 영화는 만들지 말아야지 했는데 뜻대로 안 되더
[2018 겨울 블록버스터 한국영화②] <마약왕> 우민호 감독 - 파멸의 인물을 통해 보여준 부패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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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초, 부산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마약왕의 존재는 시대의 격동 속에서 태어난 돌연변이와 같았다. <마약왕>은 배우 송강호의 압도적인 부피감이 만들어낸 인물 이두삼을 통해, 오로지 그 시절에만 가능했던 성공과 몰락을 그린다. 제작진에겐 일반적인 고증으로 대체할 수 없는, 소위 ‘마약왕’만의 세계를 상상하는 일이 주요 과제였다. 김진우 프로듀서의 말대로 “한 남자와 시대의 흥망성쇠라는 방대한 소재를 어떻게 러닝타임 안에 다 담아낼 것인가” 하는 문제는 쉽지 않다. 이들은 이두삼이 거머쥔 화려한 부와 내면의 분절을 드러내는 거대 별장을 꾸몄고, 누구보다도 빠르게 서양식 문화를 즐겼을 이두삼의 세계에 현대적인 컬러감을 불어넣었다. 시대극을 새롭게 만드는 데에는 그 어느 때보다 공들인 상상력이 필요할 터, 그 과정의 세부를 듣고자 김진우 프로듀서, 고락선 촬영감독, 그리고 조화성 미술감독에게 <마약왕>의 제작기를 물었다.
1. 흑과 백의 밀실
거대한 사업
[2018 겨울 블록버스터 한국영화①] <마약왕> 제작기 - 김진우 프로듀서, 고락선 촬영감독, 조화성 미술감독에게 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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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눈에 띄는 한국영화 기대작들이 겨울 블록버스터 시장에서 정면 승부를 벌인다. 우민호 감독의 <마약왕>은 1970년대를 마약 사업으로 풍미한 남자를, 강형철 감독의 <스윙키즈>는 한국전쟁 당시 포로수용소에 갇힌 탭댄스의 신동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이름만으로 장르가 된 송강호의 묵직한 누아르, 그리고 세대교체에 도전장을 내미는 도경수의 댄스 도전기, 어느 하나 놓칠 수 없는 연말의 볼거리다. 만들어지는 과정부터 심상찮았던 두 대작을 촬영, 미술, 음악, 로케이션 등을 망라해 제작기 형태로 살폈다. 우민호·강형철 감독 또한 긴 인터뷰로 영화에 대한 단단한 자신감을 전해왔다.
2018년 겨울 블록버스터 한국영화 <마약왕> VS <스윙키즈> ① ~ 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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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팩트)과 진실. 저널리즘에 바탕을 둔 기사와 에세이의 차이는 무엇일까. 화려한 캐스팅이 눈에 띄는 뉴욕 브로드웨이의 새로운 연극 <더 라이프스팬 오브 어 팩트>는 정확하고 윤리적인 사실과 작품성을 위한 문학적 사실 왜곡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난 9월부터 공연을 시작한 이 작품은 지금까지 약 900만달러의 박스오피스 수익을 올리며 화제가 되고 있다. 연극은 16살 소년이 라스베이거스 카지노 호텔 전망대에서 투신자살한 뒤 이 사건을 다루고자 하는 사람들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다. 편집장 에밀리는 재능 있는 작가 존의 에세이로 시들해진 매거진의 인기를 단박에 올릴 수 있는 기회를 노린다. 팩트 체크를 맡은 담당자 짐은 15장 분량의 에세이가 어떻게 팩트를 왜곡하고 있는지를 지적하는 파일을 만든다.
사실과 진실 사이에서 격렬하게 공방전을 벌이는 이 연극은 팩트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는 현 미국 사회에서 시의적절한 작품이라는 호평을 받고 있다. 케
[뉴욕] 뉴욕 브로드웨이 연극 <더 라이프스팬 오브 어 팩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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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출연 존 카메론 미첼 제작연도 2001년
질풍노도의 중학교 2학년 시절, 나는 한창 만화책에 빠져 있었다. 하굣길에는 늘 대여점에 들러 대여섯권의 만화책을 빌렸고,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는 엑스재팬과 디르 앙 그레이 같은 비주얼록 음악이 흘러나왔다. 가방에는 여의도 중소기업전시장에서 열리던 서울코믹월드에서 심혈을 기울여 산 코팅 굿즈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고, 이런 모든 행위는 나의 존재를 증명해주는 하나의 의식과도 같았다.
그 무렵, 나는 동아리 활동 시간에 코스프레 동아리 부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곳은 내가 듣도 보도 못한 온갖 서브컬처의 통로였다. 매주 선배들이 들고 온 CD를 리핑해서 나눠 듣거나 신간 만화책 이야기를 하며 ‘덕질’을 할 수 있는 오아시스 같은 곳이었다. 하루는 선배가 재밌는 영화를 한편 빌려왔다며 VHS 테이프를 비디오데크에서 틀었다. 커튼을 친 교실에는 햇빛이 조금씩 새어나오고 있었고, 왁스칠을 마친 나무 바닥 냄새가 먼지 냄새와 뒤엉켜 올라
[내 인생의 영화] 마민지 감독의 <헤드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