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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작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다. 안 좋은 의미일지언정 ‘문제작’이란 호칭이 붙으면 호기심이 생기기 마련. 국제 영화제에서, 혹은 일반 상영관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기자, 평론가나 관객이 중도 퇴장해 문제작이 된 작품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아래 언급된 작품들이 자신의 기준에서 문제작이었는지 아니었는지 직접 판단해보시길!
“역겹고 불쾌하다”는 평을 받은 영화들
살인마 잭의 집
감독 라스 폰 트리에 | 출연 맷 딜런, 브루노 강쯔, 우마 서먼 | 개봉 2019.02.21
작년 칸 국제영화제 최고의 문제작. <안티크라이스트> <님포매니악> 등 극단에 선 작품들을 탄생시켜온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신작 <살인마 잭의 집>은 상영 시작 후 20여 분 만에 100여 명 이상의 관객이 야유를 보내며 중도 퇴장한 작품으로 남았다. 극 중 등장하는 아동 살해와 시체 유기, 여성의 신체를 도려내고 그를 장난스럽게 대하는 행위에 수많은 관객들이 불쾌함을 표하
영화 보다 응급실행? 상영 중 관객이 중도 퇴장했던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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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프랑스 정부의 유류세 인상 세제 개혁안 발표로 촉발된 ‘노란 조끼’ 시위. 특정 지도세력 없이 전국적으로 번져나간 이 시위는 젊은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의 지지도를 곤두박질시켰다. 도대체 프랑스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해답은 노란 조끼 운동이 촉발되기 2개월 전, 앙굴렘 프랑스어권 영화제에서 작품상을 수상한 주디스 데이비스 감독의 <혁명이 나에게 남긴 모든 것들>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68항쟁에 참여했던 활동가 부모 밑에서 태어난 앙젤(주디스 데이비스). 그녀가 8살이 되었을 땐 이미 동베를린에 맥도날드가 들어서기 시작했고, 이념으로 똘똘 뭉친 철저한 공산주의자였던 어머니는 가족과 이념을 동시에 버리고 깊은 산속 마을로 들어가버렸다. 성인이 되어 도시 계획가가 된 앙젤은 몇몇 지인들과 함께 소규모 토론 모임을 만들고 ‘정의’와 ‘시민 의식’의 회귀에 대해 격렬한 논쟁을 시작한다.
이렇게만 보자면 한없이 무겁고 지루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지
[파리] <혁명이 나에게 남긴 모든 것들>, 프랑스 시민 의식에 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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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변영주 / 출연 나눔의 집 할머니, 이용수 / 제작연도 1995년
대학교 2학년 때였던 거 같다. 당시 활동하던 동아리에서 통일 문제를 두고 의견들이 오가던 중, 선배들이 주한미군 범죄 사진전을 열자고 했다. 주한미군에 의한 범죄를 근절하고 불합리했던 한미주둔군 지위 협정에 문제를 제기하자는 취지였다. 전시물 중에는 미군에게 잔인하게 살해된 기지촌 여성 윤금이씨의 살해 당시 모습을 담은 사진도 있었다. 전시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학내 여성위원회에서 활동하는 이가 격분해 찾아와서는 당장 사진을 철거하라고 했다. 당시에는 그가 왜 그렇게 분개하는지, 무엇이 문제라는 것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이후 페미니즘을 만나고 나서야 그가 분노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재현의 윤리에 대한 고민이 필요했던 것이다. 고통스러운 상황을 해결하고자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고통을 이용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는 것, 고통을 전시하는 것은 의도와 달리 오히려 정반대의 화학작용을 일으키기도
[내 인생의 영화] 강유가람 감독의 <낮은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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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마와 싸우는 환자의 병상 에세이에 ‘좋아요’를 누르는 일은 위로 이상의 의미를 갖긴 어렵다. 그가 온몸으로 겪은 신체적 고통을 타인이 감히 공감할 수 있을까. 오히려 공감은 감정의 영역으로 올 때 쉬워진다. 실연, 낙담, 절망 등 사람들은 자신이 겪은 감정에 대해서는 쉽게 ‘나도 안다’고 생각한다. 레슬리 제이미슨의 <공감 연습>은 타인의 감정과 신체의 고통에 대해 ‘안다’고 말하기 전에 ‘나는 사실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대신 나는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며 당신이 치유되기를 소망한다는 표시를 하는 것이 상대에 대한 ‘공감’ 기술이다. 감정으로만 여겼던 공감을 신체에 빗대 설명하는 것이 제이미슨 에세이의 독특함이다. 의료 배우(medical actor)로 일하며 질병을 연기했던 경험, 거식증과 자해 행위, 모겔론스병을 취재하며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등은 쉽게 ‘공감’을 운운하는 여타의 에세이에서 읽을 수 없는 직간접적 체험이다. 게다
씨네21 추천도서 <공감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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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형법 39조는 책임 능력이 없는 사람은 흉악범죄, 심지어는 살인을 저질러도 벌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한민국 형법 10조(심신장애인에 대한 형법 총론)와 같은 논란을 낳는 법조문. <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의 후속작인 이 소설은 형법 39조가 일으킨 사건의 후폭풍으로 시작한다. 개구리를 잡듯 사람을 사냥하는 범인에게 붙은 개구리 남자라는 이름. 그런데 개구리 남자는 형법상의 책임뿐 아니라 민법상의 책임까지 피했는데, 민법 제712조와 713조에서는 책임 능력이 없는 사람은 치료비나 위자료 등의 손해배상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규정해서다. 그런데 사건이 일어나고 열달이 지나, 정신과 의사인 오마에자키 교수의 집이 폭파된다. 집 안에는 축구공보다 더 큰 크기의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다시, 개구리 남자 사건이 시작됐다.
나카야마 시치리는 2009년 <안녕, 드뷔시>로 제8회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 대상을 받으며 데뷔했다. 이때 수상작과 함께
씨네21 추천도서 <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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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작부인>은 일본을 대표하는 영화평론가 하스미 시게히코의 장편소설이다. 작가 스스로도 ‘쓰고 싶은 대로 써내려 갔다’고 설명할 만큼 이 소설에는 영화적 장치가 가득하다. 영화광인 고등학생 지로와 정체불명의 중년 여성 백작부인이 주인공이고, 영화를 사랑하는 주인공의 특성 덕에 아주 다양한 고전영화의 이름이 직접적으로 언급된다. 또한, 따로 영화 제목이 언급되지 않더라도 특정 영화를 떠오르게 만드는 장면들 역시 여러번 등장한다. 소설의 배경은 2차 세계대전 중 기이하게 밝은 에너지가 충만했던 일본이다. 백작부인은 성적으로 자유분방하고 요염한 중년 여성이고, 지로라는 어린 남성을 성의 세계로 인도한다.
고급 창부, 전쟁 스파이, 첩의 소생…. 백작부인이라는 명칭 외에는 어떤 설명도 없는 이 여성을 둘러싼 추문은 다양하고 그녀는 이 추문을 이용해 남성을 자신의 뜻대로 주도한다. 성행위와 성기를 지칭하는 다양한 단어들이 쉴 새 없이 출현하고,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지
씨네21 추천도서 <백작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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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로서 편하게 읽기만 할 때에는 몰랐다. 작가들이 픽션을 쓸 때에는 이야기에 구조부터 만든다는 사실을. 그러니까 소설이란 하나의 튼튼한 건축물이고(물론 부실공사된 소설도 있지만), 그 건축물은 구조를 만들기부터 시작해 점차 살을 붙여나가 완성된다. 그러니 건축물에 설계도가 있듯이 소설에 지도가 있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 책을 읽기 전 나의 오해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설명하다 말이 길어졌다. 솔직히 <소설&지도>를 소설의 구조를 지도로 그린 책인 줄 알았다. 하지만 <소설&지도>는 이야기의 구조보다는 진짜 소설 속 공간의 지도를 그림으로 표현한 책이었다. 물론 그 역시 재미있는 시도이고 지도와 그림으로 문학을 만나는 것은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가 ‘월리를 찾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월리 찾기에 매번 실패했지만 다행히 <소설&지도>에서는 길을 잃지 않고 수월하게 성의 미로(<햄릿>)에서 해방구를 찾았으며,
씨네21 추천도서 <소설&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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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론을 책으로 공부해 완전 정복하는 일이 가능이나 할까. 영화 공부는 비전공자에게는 시작부터 지치는 일이다. 그 많은 영화를 어떤 기준으로 선별해 볼 것이며, 영화를 둘러싼 기술과 산업은 누구에게 배울 것인가. 그 과정에서 영화 취향을 배제하고 공부로만 접근할 경우 금방 지쳐서 그토록 사랑하던 영화를 증오하게 될지도 모른다. 영화 관련 학과 전공자가 아니라면 영화 공부를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지’ 어려운 일이다. 물론 감독이 되고 싶은지, 제작자나 프로듀서를 꿈꾸는지 혹은 배우나 카메라 감독, 비평가를 준비하는지에 따라 공부의 접근법은 달라진다. 그럼에도 모든 시작이 그렇듯 영화 역시 입문서로 첫발을 뗄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북스의 <시네 클래스>는 그 제목만큼이나 군더더기 없이 영화에 접근하는 편리하고 친절한 입문서다. 목차만 훑어봐도 이 영화 입문서가 얼마나 간명하게 영화에 대해 알려주려 애썼는지 알 수 있다.
스토리텔링, 연출, 카메라와 컴퓨터, 편집, 사운
씨네21 추천도서 <시네 클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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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다를 가엽다고 읽는다.”
가벼운 것은 쉽게 날아가고 흩어지고 사라진다. 박소란의 시 <가여운 계절>은 가볍다를 가엽다고 읽으며 시작한다. 가벼운 것과 가여운 것이 가없이 뒤섞인다. “허공에서 길 잃은 구름처럼 새처럼 가여운 것이 있을까 하고”, “플라타너스의 바랜 옷자락을 붙들고 선 저 잎새는 어제보다 오늘 더 가엽고”. 하지만 아니다 그 둘이 섞이는 게 아니다. 가벼운 것을 가여운 것으로 읽었을 뿐이다. 행을 따라 뒤로 가니 “조금도 가엽지 않은 것,/ 가엽다를 가볍다로 읽어야 한다”에 가닿는다. “위층에서 걸어내려오는 너의 인사는 깃털 같다/ 내게서 황급히 멀어지는 네가/ 나는 가볍다”.
박소란의 시는 인간 아닌 타자와의 관계를 이야기할 때 서늘한 온도의 목소리를 구사하고, 그것은 오싹하다. <손잡이> 역시 그런 시 중 하나다. “마치 사랑을 하는 사람들처럼” 그녀가 잡은 것을 그가 잡는다, 그가 잡은 것을 그녀가 잡는다. 손잡이를 잡는다. “문의
씨네21 추천도서 <한 사람의 닫힌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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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절기> <니나 내나> <당신의 부탁>을 쓰고 그린 이동은(글)과 정이용(그림)의 신작 그래픽노블 <요요>. 이동은 감독의 글을 <씨네21> 가장 마지막 페이지에 자리한 ‘디스토피아로부터’ 지면에서 읽어온 독자라면 영화 소식만큼이나 반길 신작 그래픽노블 소식이다. 던지면 제자리로 돌아오는 요요처럼 눈을 뜨면 특정 날짜, 특정 시간을 반복해 살아가는 주인공이 있다. 고시원과 택시 안에서 하루가 시작되면 월요일인데 일요일 같은 세상에 던져진 두 주인공이 등장한다. 희진은 고시학원 문이 닫힌 데 당황하고 경호는 불 꺼진 사무실에 놀란다. 그리고 알게 된다. 지금은 ‘어제’다. 어제가 반복되고 있다. 당황한 경호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전화를 건 희진은 “어제 우리… 만난 것 맞죠?”라고 묻는다. 두 사람은 소개팅을 했고, 두 사람만 ‘정상’이다. 혹은 비정상이거나. 어떻게 살아도 그 자리로 돌아오는 그들은 각자 살아가다가 6개월이 지나
씨네21 추천도서 <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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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에 대해선 쉽게 안다고 말하면서 남들은 나에 대해 조금도 모른다고 여긴다. 타인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저 사람은 저게 다일 거야’라고 판단하면서, 자신에 대해서는 ‘나는 열심히 하지 않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건 또 어떤가. ‘사람에게 좀더 상냥하게 대해야지, 타인을 쉽게 재단하지 말아야지’라고 매번 다짐하면서도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그럴 때마다 책이라도 펼쳐본다. 상처를 주지도, 받지도 않고 남의 마음에 다가서는 데 독서 말고 달리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2월의 <씨네21> 북엔즈는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간과하기 쉬운 타인의 마음에 대해 고민하는 책을 시작으로 문을 연다. 박소란 시인의 시집, <한 사람의 닫힌 문>은 내내 누군가를 가여워한다. 타인을 가여워하는 마음은 동정과는 다르다. 가여워하고 안쓰러워하고 그리워함으로써 우리는 그 사람이 되어볼 수 있다. 영화를 공부하고 싶거나, 영화에 대해 좀더 알고 싶은 초보자를 위한 입문서 <시네 클래스>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2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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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거의 모든 이야기는 남자의 것이고, 그중에서도 멍청하고 혈기 왕성한 10대의 성장담은 사내아이들의 전유물이다. 식욕과 성욕이 넘쳐나고, 숨 쉬듯 욕설을 내뱉으며, 생각 없이 덜컥 사고를 치고, 무엇보다 ‘예쁘지 않은’ 여자아이들은 어디에 살고 있을까? 넷플릭스에 따르면 북아일랜드 데리에 있다고 한다.
영화 <블러디 선데이>(2002)로부터 20년이 넘게 흐른 1990년대, 데리의 정치적 상황은 여전히 암담하다. 등굣길 다리 위에는 폭탄이 놓여 있고, 거리에는 늘 무장한 군인들이 서성이며, 피크닉을 떠난 가족의 차에는 탈주자가 숨어든다. 그러나 16살 에린(시얼샤-모니카 잭슨)과 친구들에겐 그게 문제가 아니다. 매사에 엄격하고 진지하면서도 괴팍한 어른들의 통제하에 살아가느라 돌아버릴 것 같은 소녀 넷, 그리고 정치적 이유로 가톨릭 여학교의 유일한 남학생이 된 잉글랜드 출신의 소년은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게 해줄 특별한 무언가를 고대하며 끊임없이 소동을 일으킨다. 이
[TVIEW] <데리 걸스>, 10대 성장물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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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제작 사나이픽처스, 영화사 월광 / 감독 박누리 / 출연 류준열, 유지태, 조우진 / 배급 쇼박스 / 개봉 3월
부자가 되는 상상은 달콤하다. <돈>에서 업계 1위 동명증권에 입사한 20대 신입사원 조일현(류준열)에겐 특히 그렇다. 하지만 현실은 실적 0원의 초보 브로커일 뿐. 빠르고 거칠게 돌아가는 증권가의 생리를 체감하며 의기소침해질 찰나, 주식시장의 판을 짠다고 알려진 일명 번호표(유지태)가 그의 앞에 나타난다. 출신도 능력도 평범했던 청년은 그렇게 번호표와 손을 잡고 초고속 인생 역전 길에 오른다. 값비싼 옷, 의기양양한 태도, 돈으로 만든 화려한 왕관을 쓰고 제왕적 즐거움에 빠진 주인공의 변화는 <돈>이 선사하는 주요 쾌감 중 하나다. 이윽고 불법적인 결탁을 눈치챈 금융감독원의 노련한 에이스 한지철(조우진)이 압박을 가하면서 일현은 성공 뒤에 따라오는 어두운 그림자까지 차례로 맛본다. 여의도 증권가의 세부를 꼼꼼히 묘사하려는 의지
[Coming Soon] <돈>, 부자가 되는 상상은 달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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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SKY 캐슬>은 그간 마땅한 자리가 주어지지 않았던 중년 여성 배우들에게 기회가 주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단번에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대본 이상으로 풍부한 감정의 결을 담고, 다채로운 해석의 여지를 열어준 배우들의 열연은 <SKY 캐슬>이 첫회 시청률 1.7%에서 최고 시청률 23.8%로 막을 내리며 파란을 일으킨 원동력이었고, 그 중심에는 염정아가 연기한 한서진이 있었다. 가난한 집 딸로 자란 과거를 부끄러워하는 그에게 자식은 무조건적 애정의 대상이자 욕구 실현의 대리자다. 딸 예서(김혜윤)를 서울대 의대에 진학시키기 위해 고용한 입시 코디네이터 김주영(김서형)이 가져올 파장을 걱정하지만 결코 자신의 욕망을 꺾지 않는다. 다소 논쟁적이지만 한국의 중년 여성들이 가진 어떤 심리를 흥미롭게 보여준 이 캐릭터는 사실 염정아가 늘 해왔던 일의 연장선에 있다. 허구의 존재를 연기한 <장화, 홍련>(2003)으로 중요한 분기점을 맞이했지만
<SKY 캐슬> 염정아 - 역할의 이면, 연기하기도 재밌고 보기에도 매력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