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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이춘연 씨네2000 대표를 떠나보내며. 김동호, 안성기, 이명세, 박찬욱, 류승완, 김병우 등 영화인들이 기억하는 이춘연
김성훈 사진 백종헌 오계옥 2021-05-13

이춘연 씨네2000 대표 부고

“젊은 영화인들의 대부 역할을 하던 그가 돌연 세상을 떠난 건 영화계로서 큰 손실이다.”(김동호 강릉국제영화제 이사장) 좌중을 휘어잡는 ‘큰 형님’의 입담은 언제나 영화계를 한데 묶는 구심점이었다. 1990년대 말 신철, 심재명, 차승재 등과 함께 기획 영화 시대를 본격적으로 연 프로듀서이자 영화계의 대소사를 손수 챙겼던 ‘큰 바위 얼굴’ 이춘연 씨네2000 대표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71살. 영화계의 말에 따르면 지난 5월11일 이춘연 대표는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회의를 마치고 서울시 방배동 자택으로 들어가다가 심장마비로 쓰러진 채 발견돼 서울 보라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사망했다. 사망 전날까지 차기작을 준비하고, 전주국제영화제, 영화 <아들의 이름으로> 시사회에 참석하는 등 활발하게 일을 한 까닭에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영화계에 큰 안타까움과 충격을 남기고 있다.

영화 제작에도 스크린쿼터 연대 운동 등 현안에도 앞장서

1950년 전라남도 신안에서 태어난 그는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뒤 1976년 극단 현대를 창립해 7년 동안 연극 기획자 겸 배우로 활동했다. 그러다가 1983년 영화 제작사 화천공사(대표 박종찬)에 입사하면서 영화 경력을 시작했다. 화천공사에서 <바보사냥>(감독 김기영, 1984), <과부춤>(감독 이장호, 1983)을 기획했고, 그 능력을 인정받아 1987년 황기성사단에 기획제작담당상무로 스카우트돼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감독 강우석, 1989), <성공시대>(감독 장선우, 1988),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감독 김성홍, 1990) 등 여러 영화를 기획, 제작했다. 1994년 그는 김성홍 감독과 제작사 성연엔터테인먼트를 차려 영화 <손톱>(감독 김성홍, 1995년)을 기획, 제작해 흥행에 성공시킨 뒤, 1995년 유인택 대표의 기획시대와 합쳐 지금의 제작사인 씨네2000을 설립했다. 그가 이끈 씨네2000은 <지독한 사랑>(감독 이명세, 1996), <3인조>(감독 박찬욱, 1997), <미술관 옆 동물원>(감독 이정향, 1998), <여고괴담> 시리즈, <황진이>(감독 장윤현, 2007), <체포왕>(감독 임찬익, 2010), <더 테러 라이브>(감독 김병우, 2013) 등 여러 영화를 기획, 제작했다.

<더 테러 라이브>

“<여고괴담> 시리즈 같은 프랜차이즈 영화를 제작한 기획력과 많은 신인감독 및 신인배우들을 발굴해낸 선구안이 두루 뛰어났던 제작자다.” 심재명 명필름 대표의 평가대로 이춘연 대표는 메시지가 분명하고 젊은 감각을 갖춘 장르영화를 주로 제작했다. <미술관 옆 동물원>과 <여고괴담> 시리즈는 여성을 주요 등장인물로 내세운 기획으로, 시대를 앞서간 영화였다. 특히 <여고괴담> 시리즈는 학교 폭력이라는 사회 비판적인 소재를 호러 장르로 다룬 이야기로, 신인감독과 신인배우(특히 여배우)들을 배출하는 프랜차이즈물로 자리 잡았다. 삼성영상사업단, 대우 등 대기업이 한국 영화산업에 막 진출한 1990년대 말, 그를 포함해 신철, 심재명, 차승재 등 젊은 프로듀서들이 일으킨 새바람은 한국영화가 산업화가 되는 발판이 된 동시에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류승완 등 젊은 감독들이 대거 등장하는 토양이 되었다.

제작자로서 그는 감독과 프로듀서가 자신의 역량과 개성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는 판을 잘 깔아주기로 유명했다. 씨네2000 초창기 작품인 <지독한 사랑>을 연출한 이명세 감독은 “시간이 지날수록 이춘연 대표가 얼마나 좋은 제작자인지 실감하고 있다”며 “<지독한 사랑>은 부산국제영화제가 출범되기 전에 부산국제영화제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부산 다대포항에서 로케이션 촬영을 진행했었다. 그때 이 대표님은 감독인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다 들어주려고 노력했고, 힘들어할 때마다 옆에서 감싸주었다”고 떠올렸다. <3인조>를 연출한 박찬욱 감독은 “<3인조>를 만드는 과정에서 항상 감독의 편이 되어줬고, 감독에게 요구할 때 상처 받지 않도록 매우 조심해서 말씀하시곤 했다”며 “퇴근할 때 이춘연 사장님이 직접 운전해 집까지 태워다주셨던 기억이 생생하다. 덕분에 차 안에서 이런저런 대화들을 많이 나눴었다”고 떠올렸다. <더 테러 라이브>를 연출한 김병우 감독 또한 “이 대표님으로부터 영화 작업뿐만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자세와 태도,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법 등 많은 것들을 배웠다. 이춘연 대표님은 내게 큰 스승이자 은인”이라고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지독한 사랑>

이춘연 대표는 자신이 제작하는 영화가 아니더라도 재능 있는 젊은 감독들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3인조>의 연출부 막내, <여고괴담> 연출부로 이춘연 대표와 인연을 맺은 류승완 감독은 “데뷔작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2000)를 찍을 때 이 대표님이 필름값에 보태라고 돈을 좀 챙겨주셨다. 나중에 영화가 성공하니 이 대표님이 ‘그때 돈을 더 많이 줬어야 돌려달라고 할 수 있는데 애매하게 돈을 줘서 달라고 하기도 뭣하다’고 농담하시곤 했다”고 떠올렸다. “젊은 영화인들이 이춘연 대표님을 찾아와 결혼식 주례를 부탁”(전려경 전 씨네2000 프로듀서)하는 것도 “그가 연출부, 제작부와 스스럼없이 어울리고 잘 챙겨준 덕분”(류승완 감독)일 것이다.

“그는 언제나 한국영화계의 맏형이었다.”(배우 안성기) “영화계 일이라면 누구보다 먼저 발벗고 나서서 대통령이고 장관이고 할 것 없이 직언했었다.”(김동호 강릉국제영화제 이사장) “이 대표님은 자신의 에너지를 한국영화계에 쏟아부었고, 정작 자신의 제작사인 씨네2000에는 30, 40% 정도만 쓰셨다.”(전려경 프로듀서) 여러 영화인들의 증언대로 이춘연 대표는 한국영화계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일을 직접 챙겼고, 덕분에 그의 사무실은 ‘오며 가며, 사랑방’이었다. 그가 이끌었던 단체인 영화인회의는 한미투자협정 저지와 스크린쿼터 연대 운동, 스크린독과점 등 영화산업의 여러 구조적 문제나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압사 사건 같은 한국 사회의 여러 문제에 대해 영화인들간의 연대를 도모하고, 영화계의 목소리를 냈었다. 부산국제영화제를 포함해 국내 여러 국제영화제, 시사회 등 행사에 참석해 재기 넘치는 유머가 섞인 입담을 뽐내곤 했다.

박찬욱 감독은 “이춘연 사장님은 어딜가도 계셔서 몸이 대체 몇 개인가 싶었다”며 “영화계에 좋은 사람들이 많지만 이춘연 사장님이 특별하고 희귀한 존재였던 건 양립하기 어려운 특징들을 모두 갖춘 분이라는 사실이다. 친구 같은데 어른이고, 아주 유머러스한데 필요할 때는 권위가 있고, 막후 조정자인데 얼굴 마담이었다. 또 신세대와 구세대 사이에서, 좌파와 우파 사이에서, 메인 스트림과 인디펜던스 사이에서, 자본과 아티스트 사이에서, 영화 산업과 영화제 사이에서 영화계와 정부 및 정치권 사이에서 교량 역할을 했던 유일무이한 존재셨다”고 말했다.

“폼 잡지 말고” 끝까지 현장에서

연극배우 출신답게 그는 2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한 베테랑 배우이기도 하다. <아라한 장풍대작전>(감독 류승완, 2004)에서 국회의원을, <다찌마와 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감독 류승완, 2008)에서 신무기를 개발하는 남 박사를, <부당거래>(감독 류승완, 2010)에서 경찰청장을, <경주>(감독 장률, 2013)에서 묘지기를, <더 테러 라이브>에서 대통령 목소리 등을 연기했다. 류승완 감독은 “이춘연 대표님은 연기를 잘하신다. 씨네2000의 김세진 상무님은 이춘연 대표님의 중앙대 연극영화과 1년 후배인데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했고 연기도 잘한다. 그래서 이 두분이 작품이 들어갈 때마다 연출부 인물 담당에게 배역을 따내기 위해 경쟁을 한다(웃음)”며 “<여고괴담> 때 교감과 수위 역할이 있었는데 두분이 서로 교감 역할을 하기 위해 연출부에 탕수육을 사주면서 자신의 연기 세계가 더 깊고 뛰어나다고 경쟁을 펼친 적 있다”고 전했다.

“<돌려차기>는 너무 돌려차서 내가 맞은 영화고, <체포왕>은 오히려 내가 체포됐던 영화다. (웃음)” 재기 넘치는 그의 입담을 이제는 들을 수 없다. 생전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제작자로서 은퇴를 생각해본 적 있나”라는 질문에 대해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카메라 앞에서 장렬히 전사할 때까지 걸맞은 역할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왔는데. (웃음) 나름대로 적응 노력도 해왔다. 후배 프로듀서가 33살이라고 치면, 난 그 나이에 무슨 생각했나. 그때 사장이 영감처럼 쓸데없는 말을 해서 힘들었다면 나는 말 줄여야겠구나. 철없이 사는 게 중요하다. 폼 잡지 말고. 내 얼굴 봐라. 가만 있어도 ‘어’ 하면 폼 잡는 외모다. 현장에서 내 의견과 다른 주장이 나와도 ‘옛날에는 말이지~’라고 안 하려고 한다. 그게 아무런 도움이 안되거든. 후배들에게 농담하는 것도 그런 노력 중 하나다.” “안 스타~ 하며 유머를 던지는 그가 너무나 그립다”는 안성기의 말대로 유머를 던지며 활짝 웃는 그가 오랫동안 그리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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