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창간 30주년 특별 연재 ‘시네마 오디세이: 21세기 영화란 무엇인가?’의 마지막 키워드는 ‘미래의 이야기(들)’다. 영화 매체에 관한 이야기, 영화가 다루는 이야기, 영화의 형식을 두고 꺼내는 이야기, 21세기 영화가 무엇인지 규정하는 지금의 연재까지, 우리는 영화를 말하며 온갖 이야기의 방식을 탐색할 수밖에 없다. 연재의 첫 이야기꾼은 일본의 영화평론가 하스미 시게히코였다. 영화의 오래된 미래를 일찍이 예견했던 장뤼크 고다르의 <영화의 역사(들)>를 중심으로 하여, 2000년 5월 칸에서 발표한 그의 전언은 ‘영화의 죽음’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에 여전한 자극을 주었다. 이번 차례는 국내에서 장뤼크 고다르에 관해 궁금하다면 가장 먼저 그 이름을 찾을, 이윤영 영화학자 겸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의 몫이다. 그간 영화 매체에서 쉬이 접하기 어려웠던 그의 고다르 연구를 만날 기회다. 하스미 시게히코의 고다르론에 이어, 이윤영 교수는 1967년 이전 고다르의 ‘픽션 영화’라 할 수 있는 초기작들을 논하며 영화적 픽션의 정체를 살피고, 미래의 픽션을 예견한다. 과거와 미래가 무수히 얽히는 이곳에서 다시금 장뤼크 고다르라는 이름이, 영화를 두고 펼쳐지는 미래의 이야기(들)가 드러난다.
픽션의 구심력과 원심력
고다르의 초기 영화들과 (미래의) 픽션 영화
장뤼크 고다르가 남긴 어록은 풍요롭다. 그의 말들은 대개 경구(驚句)의 형태로 유통되는데, 어떤 문장에는 고다르라는 인장이 단단히 박혀 있어서 굳이 저자의 이름을 밝힐 필요가 없을 정도다. “트래킹(카메라 움직임)은 도덕의 문제다.” 이 말은 “도덕은 트래킹의 문제다”라는 뤼크 물레의 말을 뒤집은 것으로, 어떤 순간에는 카메라가 움직이는지 아닌지, 움직인다면 어떻게 움직이는지가 도덕의 문제로 제기된다는 뜻이다. 물론 이 말의 전제는 카메라 움직임이 특권적 기법이라는 것이다. 고다르의 경구 중 아마도 다음 말이 가장 유명할 것이다. “이것은 올바른 이미지가 아니다. 단지 이미지일 뿐이다.” 프랑스어 ‘juste’는, ‘올바른’이라는 뜻의 형용사와 ‘단지’라는 뜻의 부사로 모두 쓰이는데, 문장에서 단어의 위치를 옮기는 것만으로 확연히 다른 뜻이 나온다. 이 말은 또 다른 경구를 불러온다. “내 영화에 피는 없다. 단지 빨강이 있을 뿐이다.”
영화란 무엇인가, 영화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 영화가 어떠해야 하는가 등에 대해 고다르만큼 큰 목소리로 말한 감독도 드물다. 그는 영화를 개봉하거나 영화제에 참석할 때마다 수많은 기자, 평론가와 오랫동안 인터뷰했고,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에 기꺼이 출연해서 말했으며, 1968년에는 미국의 많은 대학을 순회하면서 강연을 했다. 1940년대 출생한 미국의 젊은 시네필 세대, 즉 폴 슈레이더, 마틴 스코세이지, 조지 루커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브라이언 드 팔마 등이 이때 고다르의 강연을 듣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는 늘 진지하지만 도발적으로 말하고, 때로는 독설도 서슴지 않는다. 고다르의 어법은 상대의 말을 뒤집어서 반박하고 언어유희를 적극 활용하는 것인데, 그의 경구들은 번뜩이는 인식을 담고 있어서 한번 들으면 쉽게 잊히지 않는다. 촌철살인의 경구는 고다르만의 무기였다.
고다르의 인장이 찍힌 문장 중에는 그의 영화에 대사로 나온 것도 있고, 그가 직접 비평의 형태로 쓴 것도 있다. <작은 병정>(1963)의 주인공은 베로니카(아나 카리나)의 사진을 연달아 찍으면서 이런 대사를 한다. “사진은 진실이야. 영화는 초당 24개의 진실이야.”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인디아>(1959)에 대해 고다르가 한 말은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영화 전체로 확장되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 “(이 영화의) 이미지 하나하나가 아름답다. 그 자체로 아름다워서가 아니고, 참된 것의 광채가 우러나기 때문이다.” 고다르가 로베르 브레송에 대해 쓴 말은, 브레송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후 이 감독의 이름과 떼어내기 힘들게 되었다. “도스토옙스키가 러시아 소설이고 모차르트가 독일 음악이라면, 브레송은 프랑스영화다.” 그가 이십대에 쓴 비평문 중에서는 다음 문장이 살아남았다. “미장센이 응시라면, 몽타주는 심장의 박동이다.”
그렇다면 픽션에 대해서는? 그는 이렇게 말한다. “다큐멘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이고, 픽션은 바로 나에게 일어나는 일이다.” 고다르는 다큐멘터리와 픽션을 나누는 데 완강하게 반대하지만, 관객의 수용 태도에 따라 두 가지를 구분한다. 관객은 다큐멘터리와 달리, 픽션을 자기에게 일어나는 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런 말들의 함의가 정확히 무엇인지, 하나의 말이 혹시 그가 이전에 한 말과 모순되는 것은 아닌지 등에 대해 그에게 이의를 제기해도 아무 소용이 없었을 것이다. 고다르는 직관적으로 어떤 말을 던질 뿐, 차분하게 이를 해명하는 것은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한 특정 시기의 고다르, 예컨대 말년의 고다르가 결론에 해당하는 답을 주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고다르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미래의) 이야기는 어떠해야 하는가? <영화의 역사 (들)>(1988~99) ‘3A’에 나오는 말처럼 “영화가 무엇보다 생각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면, 픽션 영화에도 사유를 담을 수 있는가? 대안적인 내러티브란 무엇인가?
그러나 감독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할 때는, 그가 아무리 말을 잘하는 감독이라도 그의 작품들을 세심하게 살펴봐야 한다. 답은 사실 그가 한 말에 있다기보다 그가 만든 영화들 속에 있기 때문이다. 고다르는 60년 가까이 창작 활동을 이어갔는데, 그의 영화를 전체적으로 조망해보면 1968년을 전후해서 확연한 단절을 느낄 수 있다. 이 시기는 그가 장피에르 고랭 등과 ‘지가 베르토프 그룹’을 결성한 시기다. 이후에 그는 에세이 영화의 길을 전면적으로 개척하고, 고랭과 결별한 이후에는 안마리 미에빌과 그 여정을 이어간다. 그런데 에세이 영화는 철학적이고 정치적인 주제를 본격적으로 다루면서 무엇보다 파편적이고 불연속적인 이미지, 영상과 절연된 소리 등을 사용한다. 따라서 픽션 영화에서 상당히 멀어지고 현대미술과 아주 가까워진다. 그는 이후에 몇몇 영화- <만사형통>(1972),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인생)>(1979), <마리아에 경배를>(1985), <포에버 모차르트>(1996) 등- 에서 가끔 픽션 영화로 돌아가지만, 늘 본격적인 픽션 영화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따라서 고다르의 픽션 영화, 즉 관객이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나에게 일어나는 것”으로 느끼는 영화는, 그의 초기 영화, 즉 1967년 이전 영화들에서 찾아야 한다. 이 시기에 <네 멋대로 해라>(1959), <비브르 사 비>(1962), <경멸>(1963), <국외자들>(1964), <결혼한 여자>(1964), <미치광이 피에로>(1965), <내가 그녀에 대해 알고 있는 두세 가지 것들>(1967) 같은 영화들이 쏟아져나온다. 고다르의 초기 영화에는 첫 장편영화 <네 멋대로 해라>부터 전통적인 픽션 영화에 수렴되는 구심력과 여기서 벗어나려는 원심력이 강하게 충돌하는 양상이 나타난다. 이 시기 고다르의 영화들에서는 두 힘의 팽팽한 긴장을 느낄 수 있다. 따라서 (미래의) 영화에서 어떤 형태로든 픽션 체제가 유지되는 한, 무시할 수 없는 참조 지점이 된다.
이 시기 고다르 영화들을 검토하면 몇 가지 지침을 끌어낼 수 있다. 먼저, 비평가이자 시네필 출신인 고다르는 자기 영화를 만들 때 다른 영화들에서 출발한다. 이 말은 현실에서 직접 출발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즉 자신이나 다른 사람이 직접 경험한 일에서 영화의 소재를 찾거나 이야기를 끌어내지 않고, 자신이 인상 깊게 본 영화들- 대개는 미국 장르영화- 이나 소설들에서 이야기를 끌어낸다. 이것이 <네 멋대로 해라>를 미국의 저예산 영화 제작사 모노그램 픽처스에 헌정한 이유다. <알파빌>(1965)은 SF영화에, <여자는 여자다>(1961)는 뮤지컬에 기대고 있고, 뮤지컬의 잔재는 <국외자들>과 <미치광이 피에로>에도 인상적으로 나온다. 따라서 ‘경험을 전달하는 방식’으로서 이야기는 고다르의 이야기와 거리가 멀다.
그러나 만약 여기서 그쳤다면 그의 영화는 여느 장르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 고다르는 독창적인 상황을 만들어낸다. 장르영화는 대개 극적상황을 만들어내고 사건을 핍진성 있게 재현해서 관객을 몰입시킨다. 따라서 고다르의 영화가 장르영화에서 출발한다는 말은, 진부하고 뻔한 이야기를 선호하며 총격전, 배신, 살인, 섹스, 매춘 같은 사건들이 일어난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는 이런 사건들을 그럴듯하게 재현하지 않는다. 장르영화에 익숙한 관객은 <비브르 사 비>의 마지막 총격전, <미치광이 피에로>의 ‘액션’ 장면들, <중국여인>(1967) 끝의 암살 장면을 보고 실소를 머금게 된다. 고다르는 내러티브 상황만을 전달하는 데 만족하고, 재현에 핍진성을 부여하는 데 아무 관심이 없다. 일반적으로 장르영화에서는 사건이나 ‘액션’이 전개되는 순간이 중심에 놓이고 극적 사건이 전개되지 않는 순간들은 평가절하된다. 그러나 고다르는 이 위계를 전도시킨다. 그는 장르영화가 지나가는 상황이라고 생각하는 일상적 순간들에 더 오래 ‘머무르고’, 그 순간의 묘사에 공을 들인다. 따라서 이런 순간에 인물들이 말하고 표정을 짓고 노래하고 움직이는 장면들은 생동감이 넘치며, 파리의 거리와 프랑스 곳곳에서 찍은 장면들은 현실의 단면을 즉석에서 도려낸 것처럼 생기가 가득하다.
나아가, 고다르는 진부하고 뻔한 이야기를, 진부하고 뻔한 방식으로 찍지 않는다. 이야기를 관습적으로, 매끄럽게 전달하면 관객에게 어떤 사유도 남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픽션 영화에는 영화산업이 정한 ‘규칙들’이 엄격하게 통용된다. 카메라는 별다른 동기 없이 움직이면 안된다, 배우가 카메라를 쳐다보면 안된다, 픽션의 시간은 불가역적으로 앞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한 동작을 보여주고 이후 다른 숏에서 같은 동작을 다시 보여주면 안된다, 배우의 대사를 말이 아니라 자막으로 처리하면 안된다, 일상적 장면을 음화 화면으로 제시하면 안된다, 하나의 숏은 처음이나 끝을 잘라낼 수 있지만 중간 부분들을 잘라내면 안된다…. 현장에서는 지금도 이런 ‘규칙들’이 통용되는데, 이에 따르면 마치 영화를 찍는 순간순간마다 ‘올바른’ 이미지가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올바른 이미지가 아니다. 단지 이미지일 뿐이다”. 이 경구는 <동풍>(1970)에 중간 자막으로 나오는 말인데, 이렇게 명확히 정식화되기까지 오랜 시행착오를 겪는다. 고다르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영화를 다르게 찍으려고 하며, 이를 통해 ‘올바른’ 이미지의 권위를 빼앗고자 한다. 실제로 고다르의 초기 영화들을 자세히 보면 앞 문단에서 우리가 ‘안된다’고 묘사한 ‘규칙’을 위반한 순간들을 모두 찾을 수 있다. 이때마다 그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봐 봐, 이렇게 해도 소통이 되잖아.” 물론 고다르 또한 자신이 제시하는 이미지가 “올바른” 이미지가 아니라 “이미지일 뿐”이라는 점을 받아들인다. 요컨대 올바르다고 통용되던 강력한 상투형이 파괴되면서 표현에서 광범위한 자유와 새로운 소통 가능성이 생겨난다.
이 시기 고다르의 영화에서 가장 큰 도전은 픽션 영화에서 실제 작가가 직접 말하고자 하는 시도다. 픽션(소설, 영화, 만화 등)의 근본적 전제 하나는 실제 작가와 서술자(내포 작가)의 명확한 분리다. 이야기는 드러나 있든 숨겨져 있든 서술자가 관장해야 하고, 실제 작가는 픽션에서 직접 말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픽션의 일인칭 ‘나’를 실제 작가와 혼동하면 안된다는 사실은 전문 지식이 아니라 상식에 속한다. 그러나 <국외자들> <내가 그녀에 대해 알고 있는 두세 가지 것들>에서 고다르는 픽션의 서술자 '곁'에서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으로 직접 말한다. 전자의 영화에는 조심성이 꽤 남아 있지만, 후자의 영화에는 픽션의 서술자를 무력화시킬 정도로 많이 말한다. 금기의 위반은 또 다른 위반을 불러온다. 이른바 소비의 시대에 범람하는 이미지들, 광고판, 잡지, 상품 이미지, 책 표지 등이 영화에 인서트 형태로 끼어드는데, 이런 인서트는 서사의 진행과 무관하기 때문에 서술자가 아니라 실제 작가가 개입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용의 문제가 있다. 픽션 영화에 인용이 나오는 경우는 드물다. 일반적으로 인용은 에세이(논문, 저작)에 특화된 것이다. 그러나 고다르의 픽션 영화는 수많은 인용으로 가득 차 있다. 앞서 지적한 소비사회의 이미지들뿐만 아니라 고전 회화 및 현대 회화, 고전음악과 대중음악, 사진, 만화 등이 자유롭게 인용된다. 이런 시청각적 인용들은 영화를 찍을 당시의 이미지 환경을 증언하기도 하고, 픽션의 특정 상황에 대한 논평처럼 쓰이기도 한다. 또한 등장인물이 책을 낭송하는 장면은 고다르의 영화에서 전혀 낯설지 않다. 예컨대 <미치광이 피에로>에서 페르디낭(장 폴 벨몽도)은 <미술사>에서 엘리 포르가 벨라스케스를 기술하는 장면을 낭송한다. (이 책은 이후 <영화의 역사(들)>에서 다시 낭송되지만(4A), 이번에는 완전히 다르게 ‘인용’된다. 배우 알랭 퀴니가 이 책의 대목들을 길게 낭송하는데, 그것은 엘리 포르가 렘브란트의 회화를 기술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정작 ‘렘브란트’라는 단어는 들을 수 없는데, 이는 고다르가 ‘렘브란트’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이를 ‘영화’라고 바꿔 읽으라고 주문했기 때문이다. 이런 작업을 통해 그전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관점 하나가 생겨난다.)
인용을 통해 픽션의 세계는 확연히 넓어지고 사유의 색채가 강화된다. 더욱이 고다르는 영화에 한번도 나온 적이 없던 인용을 만들어낸다. 이 시기 고다르 영화에는 당대의 중요한 지식인들이 직접 출연하는데, 철학자 브리스 파랭(<비브르 사 비>), 영화감독 새뮤얼 풀러(<미치광이 피에로>), 영화비평가이자 감독 로제 린하르트(<결혼한 여자>), 철학자 프랑시스 장송(<중국여인>)이 그들이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카메오 출연이 아니다. 고다르가 이들에게 자기가 쓴 대사를 주지 않고 이들이 자기 말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고다르는 픽션의 등장인물이 지식인들과 대화하는 상황을 만들고,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이들이 관심이 있는 주제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이렇게 이들과 등장인물의 대화뿐만 아니라 이들의 답변, 표정, 몸짓까지도 픽션 영화에 고스란히 기입한다. 영화에서만 가능한 이런 인용은 일종의 직접인용으로서 픽션 영화에 전례 없는 지적인 차원을 도입한다.
요컨대, 1967년 이전의 고다르는 이런 대답을 줄 것 같다. (미래의) 이야기는 픽션이 안정적으로 구축되어 효율적으로 전개되는 곳이 아니라, 픽션 자체의 정체성이 흔들릴 정도로 픽션의 구심력과 원심력이 강하게 충돌하는 곳에서 생겨날 것이다. 그럴듯하게 지어낸 이야기를 실감나게 하려고 애쓰기보다, 이제는 관례가 된 표현 방식을 고집하기보다, 픽션 내부에서 픽션 자체를 벗어나는 강력한 원심력을 만들어내야 한다.
P.S. 2022년 10월 초, 고다르가 세상을 뜨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임재철 선생이 나를 찾아오셨다.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고다르 회고전을 여는데 강의를 하나 해달라는 것이었다. 아마도 임재철 선생이 아니었다면 수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전에도 그 이후에도 임 선생은 별다른 용건 없이 내 성암관 연구실에 불쑥 찾아와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고 가셨다. 영화에 대한 광범위한 지식과 지적 호기심의 측면에서 나는 한국에서 임 선생 같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고다르와 아도르노는 그에게 각별한 존재였다. 우리는 꽤 의견이 달랐지만, 그런 만큼 대화는 흥미로웠다. 수취인은 이제 읽을 수 없지만, 이 글은 임재철 선생을 생각하며 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