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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재미있는 영화를 마냥 즐길 수 없고, 위트 있는 농담을 들어도 마음껏 웃을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이 ‘병’이 아니라 여자라면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당혹스러움과 불편함의 감정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가디언스 오브 갤럭시 VOL.2>의 드랙스가 멘티스에게 “너같이 비쩍 마른 몸매는 내 취향이 아니야”라고 말할 때, 여성 관객은 이게 그저 할리우드영화 속 지질한 마초 캐릭터의 섣부른 착각이라 생각하며 웃어넘겨야 하는 걸까? <씨네21> 이다혜 기자의 신작 에세이 <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는 그럴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말해주는 책이다. 이 에세이집은 18년차 영화주간지 기자이자 예리한 감각의 북 칼럼니스트로 활동해온, 그러나 그 이전에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이 모든 것들을 경험해온 글쟁이의 ‘페미니즘적 책 읽기’다. 왜 수사물 장르의 미드 속 남자주인공을 각성시키는 건 여성 캐릭터의 죽음인 건지, 소설 &
[도서] 여자니까, 여자라서, 여자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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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스 페어’라는 록페스티벌이 있었다. 1997년부터 99년까지, 여성 뮤지션들이 무대에 섰다. 제목의 ‘릴리스’는 누구일까. 홀로코스트 증언문학의 상징인 이탈리아 프리모 레비의 단편집 <릴리트>에서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다. 최초의 여자. 아담의 첫 번째 부인. 단편 <릴리트>는 릴리트와 관련된 비공식적인 신화를 언급한다. <창세기> 1장27절.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그리고 다음 장에서, 신이 아담을 만들고, 그에게서 갈빗대를 빼내 여자를 만들었다고 되어 있다. 혹시 두 여자가 같은 사람이 아니라면? 하와가 아닌 릴리트에 대한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유대인 수용소, 25번째 생일을 같은 날 맞은 두 남자가 비를 긋다 역시 비를 피하는 여자를 발견한다. 그녀로부터 릴리트의 신화가 다시 이야기된다. 릴리트는 구전과 비전으로 전해지는 인물인데, 그중 하나는 이런 사연이다. 신은 진흙을 빚어 하나의 형상, 골렘(유대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최초의 여성이 상징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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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즐기는 클래식
비발디의 <사계>를 두눈으로 즐겨보자. 3D 미디어 아트와 클래식, 현대무용이 결합한 공연, <비발디아노-거울의 도시>가 5월 10일부터 13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다. 체코에서 시작된 ‘비발디아노’는 지난 2년간의 투어를 통해 유럽 전역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번 공연은 비발디아노 오리지널 공연팀의 아시아투어를 여는 공연이다. 섬세한 영상과 정교한 조명디자인, 압도적 스케일이 함께하는 공연을 통해 비발디 음악들을 오감으로 만끽해보자.
너는 이미 지르고 있다, PS4 <드래곤 퀘스트 로토 에디션>
<드래곤 퀘스트XI: 지나간 시간을 찾아서> 발매를 기념해 플레이스테이션4의 특별 에디션 버전이 출시된다. 7월 29일 출시되는 <드래곤 퀘스트 로토 에디션>은 특별 디자인된 PS4와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의 열한 번째 작품 <드래곤 퀘스트XI: 지나간 시간을 찾아서>
[culture highway] 지옥에서 왔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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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초현실 #강렬함 그 자체
미라와 피라미드가 아닌, 이집트의 20세기 예술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다. 4월 28일부터 7월 30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예술이 자유가 될 때: 이집트 초현실주의자들(1938-1965)> 전시가 열린다. 유럽에서 시작된 초현실주의가 이집트로 전파된 과정, 이집트 초현실주의를 이끈 ‘예술과 자유 그룹’에 대한 조명, 이집트 초현실주의자들의 사진 실험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마블과 캡콤의 콜라보레이션!
마블 엔터테인먼트가 캡콤과 함께하는 대전 격투게임 <마블vs.캡콤: 인피니트>의 첫 번째 스토리 트레일러를 공개했다. <록맨> 시리즈의 시그마와 <어벤져스>의 울트론은 인피니티 잼의 힘을 이용해 하나로 결합, ‘울트론 시그마’로 변신하고 이에 대항하기 위해 마블과 캡콤의 영웅들이 모인다. 공개된 영상에는 헐크, 토르, 캡틴 아메리카, 로켓 라쿤 등 마블의 영웅과 춘리, 록맨X, 스트
[culture highway] 6년 만의 내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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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과 공산주의는 둘 다 세계화에 대한 응답이었다.” 예일대학교 사학과 교수인 티머시 스나이더의 <폭정>은 정치 질서가 위태로운 21세기 초, 20세기로부터 배우는 교훈 20가지를 담고 있다. 20가지의 교훈과 그 설명을 짧고 묵직하게 담아냈는데, 특히 나치즘이 어떻게 사람들을 현혹시켰는지를 중점적으로 다루며 현재의 서구 사회를 진단하고,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들에게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전한다.
민주주의의 유산이 자동적으로 우리를 폭정의 위협으로부터 지켜주지 않는다는 단언으로 시작한 뒤 첫 번째 교훈으로 ‘미리 복종하지 말라’를 꺼낸다. ‘예측 복종’이라고 부르는 이 현상은, 1938년 초, 독일에서 권력을 장악한 히틀러가 오스트리아를 병합하겠다고 위협하고 오스트리아 총리가 그에 굴복한 뒤 벌어졌다. 오스트리아 나치는 유대인들을 붙잡아 거리에 새겨진 독립국 오스트리아의 상징을 지우게 했다. 나치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은 그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았고, 유대인 재산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역사에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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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이 덕들이여, 서두르면 복이 와요
전세계 200여명의 작가들이 참여하는 피겨 축제 ‘아트토이컬쳐 2017’이 5월 3일(수)부터 7일(일)까지 코엑스 전시장에서 개최된다. 레고, 플레이모빌, 해즈브로, 펀코 등의 대형 장난감 회사들에 지쳐 있었다면 이번 행사를 특히 주목해보자. 스티키몬스터랩, 슈퍼픽션, 더로카앱, 초코사이다 등 이름만 들어서는 잘 모르는 국내외 희귀 피겨 제작사의 작품이 대거 전시될 예정이다. 지난해에도 안 사고는 도저히 못 견딜 것 같은 피겨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4월 24일 전까지 예매하는 입장객에게는 상품도 증정할 예정이니 서둘러야 한다. 일찍 서두르는 덕후가 좋은 걸 하나 더 건지기 마련이다.
꿈을 찾아 왔단다 내가 왔단다
청운의 꿈을 안고 도전한 타지 생활의 현실을 만화로 그렸다. <도쿄에 왔지만>은 <혼자 살아보니 괜찮아>를 비롯한 책 여러권이 이미 한국에 소개된 다카기 나오코가, “도쿄에 가면 뭔가 멋진 일이 기다리고
[culture highway] J. J. 에이브럼스의 음성해설만으로도 구매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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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상 모든 중요한 일에는 지름길이 없을까. (심각)
건강해지는 방법은 제대로 먹고, 충분히 자고, 꾸준히 운동하는 것이다.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상대가 원하는 것을 잘 살펴 그대로 해주면 된다(그가 원하는 것이 당신과의 절연이라면 안타까울 따름이지만). 대학 입시 때도 마찬가지였다. 오랜 경구. ‘국영수를 기본으로 예습·복습 철저히.’ 옛 베스트셀러 제목대로,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테드(TED) 강의 <할 일을 미루는 사람들의 심리>를 본 내 기분이 딱 그랬다. 아는 얘기야, 또. 또! 또!!
능률이라고 부를 것이 바닥을 치는 상황이라 <딥 워크>라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부제는 무려 ‘강렬한 몰입, 최고의 성과’다. 이 책은 한때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끈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몰입의 즐거움>의 21세기판 업데이트다. 몰두할 줄 아는 사람은 일을 능률적으로(적은 시간에 최대 효율로)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능률 때문에 고민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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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레고의 달, 통장 잔고 확인하세요
4월 14일, 롯데월드몰 잠실점에 레고 스토어를 오픈한 레고코리아에서 ‘레고 꽃이 되다!라는 아름다운 표어를 내세워 축제를 개최한다. 행사는 4월 21일부터 5월 7일까지 잠실 롯데월드타워 월드파크 일대에서 열리며 시민들의 참여로 만드는 가로 세로 12×8m 크기의 초대형 레고 플라워를 전시한다. 참여하는 방문객에게 선착순으로 한정판 기념품을 증정하며 최고의 창작품도 선정할 계획이라고 하니 뛰어갈 준비를 하자.
위대한 뮤즈
“레일라, 당신은 나를 무릎 꿇게 만들었어요.”(Layla, you’ve got me on my knees) 에릭 클랩턴의 <Layla>, 비틀스의 <Something> 등 팝 역사상 명곡으로 손꼽히는 노래들의 주인공이 한국을 찾는다. 팝스타들의 뮤즈이자 1960년대부터 모델과 사진작가로서 활약한 패티 보이드의 사진전 <Rockin’ Love>가 4월 28일부터 8월 9일까지 성수S
[culture highway] 5월은 레고의 달, 통장 잔고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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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에 사랑에 빠진 남녀가 있다.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밤의 해변에서 둘은 결혼식을 올린다. 부부가 된 후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는 건 여자다. 무명배우인 남편은 아내의 지지와 조언에 힘입어 극본가로 진로를 바꾸고 승승장구한다. 남자는 인생의 반전을 만들어준 아내를 당연히 운명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침묵해온 여자는 생각이 다르다. 두 인간이 걸어온 세계가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소설은 남자와 여자의 생애를 기준으로 두 부분으로 나뉜다. 1부 ‘운명’은 남편 로토의 시점에서 쓰여진 얘기다. 로토는 플로리다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부모와 고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다. 아버지의 죽음 후, 잠시 탈선에 빠지지만 연극에 눈을 뜨며 다시금 생의 의지와 자존감을 되찾는다. 대학에서의 마지막 연극을 올리던 날, 주인공 햄릿을 연기하던 로토는 아내를 만난다. 한편 2부 ‘분노’는 아내 마틸드의 시선에서 진행되며, 1부에서 부부가 마주한 비극의 전모를 드러낸다. 오렐리는 4살 때 부모에게
[도서] 씨네21 추천 도서 <운명과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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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척 외롭게 자랐고, 가물가물한 기억까지 떠올려본다면 모든 성적인 것에 극도로 불안을 느꼈다.” 소설 <눈 이야기>는 16살 소년의 고백으로부터 시작한다. 해변의 외딴 별장에 머물던 소년과 그의 먼 친척 시몬은 둘 사이에 사물 하나를 놓고 그것을 이용해 손 하나 닿지 않고 서로를 극한의 흥분상태로 이끈다. 이후 “밀접하고 의무적인” 애정관계로 묶인 둘은 정신병원, 투우장, 성당을 오가며 금기를 위반하고 성에 탐닉하기 시작한다. 그런가 하면 <하늘의 푸른빛>은 부르주아 청년 트로프만의 방탕한 여정을 따라간다. 그는 유럽 전역을 떠돌며 새로 만난 여성들과 통음하고, 성욕에 매몰돼간다. 두 작품 모두에서 주인공들이 행하는 변태적 성행위와 엽기적인 폭력의 끝엔 죽음이 도사리고 있다.
관능적인 이미지들로 감각을 자극하는 에로티시즘 소설과는 성격이 다르다. 두편에서 묘사된 광기 어린 성적 행위들은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저주의 작가’로 불리던 작가 조르주 바타유
[도서] 씨네21 추천 도서 <눈 이야기>, <하늘의 푸른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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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작가와 무명작가 사이에 ‘유령작가’가 있다.” <고스트라이터즈>는 글로 타인의 미래를 설계하는 ‘유령작가’들의 이야기다. 이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글을 대신 써주는 대필작가와는 다르다. 타고난 신기로 앞날을 예견하는 무당과도 다르다. 유령작가는 대상에 대한 철저한 취재를 바탕으로 앞으로 일어날 일들의 디테일을 제시한다. 4년 전, ‘안 쳐주는’ 문학상으로 등단한 김시영은 유명 소설가 이카루스의 대필작가로 지내고 있다. 어느 날, 마약과 무면허 음주운전으로 나락에 떨어진 연예인 차유나가 재기를 도와달라며 그를 찾아온다. 차유나는 김시영에게 세계 곳곳에서 암약하는 유령작가들의 존재를 일깨워준다.
<고스트라이터즈>는 글이 곧 무기가 되는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소설, 시나리오, 방송 극본, 웹 소설 등 장르는 달라도 글로 먹고사는 이들이 등장해 펜으로 서로의 운명을 좌지우지한다. 판타지적 설정을 기반으로 하지만 이들이 나누는 대화는 문단의 생리를 지극히 사
[도서] 씨네21 추천 도서 <고스트라이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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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머릿속엔 아몬드 두알 크기의 기관이 있다. ‘편도체’라 불리는 이곳은 외부의 자극에 따라 적절한 감정을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 두려움도, 불안도 생존에 있어선 필수적인 감정이다. 윤재는 편도체가 고장난 18살 소년이다. 남들의 눈물, 웃음의 이유를 알지 못한다. 소년에겐 “감정이라는 말도, 공감이라는 말도 그저 막연한 활자에 불과하다”. 윤재의 ‘할매’와 엄마는 아이에게 감정을 가르친다. 희, 노, 애, 락, 애, 오, 욕. 일곱 글자를 집 안 곳곳에 “가훈처럼 혹은 부적처럼” 붙여놓고, 상황에 맞는 감정과 반응을 예습시킨다. 하지만 사회와 그를 이어주는 유일한 두 존재는 윤재의 생일에, 끔찍한 사고로 죽거나 식물인간이 된다. 그에게 남겨진 건 엄마가 운영하던 조그만 헌책방뿐이다.
소문은 경험보다 힘이 세다. 또래 사이에서 윤재는 ‘사이코패스’, 혹은 괴물 같은 아이로 통한다. 애써 들여다봐주는 이 없는 무심한 생활 속에서 그는 또래 소년 이수를 만난다. ‘곤이’ 라는 별
[도서] 씨네21 추천 도서 <아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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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의 꽃이 만개했다. 저마다 다른 장르적 쾌감을 안겨주는 다섯편의 소설이 4월의 북엔즈에 함께 꽂혔다. <아몬드>는 태어날 때부터 감정을 느낄 수 없는 18살 소년의 뭉클한 성장담이다. 몇몇 대목에서 액션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고스트라이터즈>는 펜으로 사람의 운명을 결정짓는 유령작가들의 대결을 그린 판타지 소설이다. <눈 이야기>와 <하늘의 푸른빛>은 ‘사드의 적자’로 통하는 프랑스 철학자, 조르주 바타유의 에로티시즘 소설로 성에 탐닉하는 소년과 청년의 여정을 따라간다. <운명과 분노>는 아내를 운명으로 여긴 남자와 분노를 품고 살아온 그 아내의 비밀을 풀어내는 소설이다.
손원평 작가의 첫 장편 <아몬드>는 공감 불능의 사회에서 감정 또한 배우고 익혀나가는 것임을 말한다. 주인공 소년은 감정 없이 태어난 인간이다. 할머니와 엄마를 잃고 고아가 된 그에게 감정을 알려주는 건 같은 반 친구들과 윗집 어른이다. 편견에
[도서] 씨네21 추천 도서 - 골라 읽는 재미 쏠쏠한 4월의 신간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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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청년이라는 말은 이만저만 오염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일단 계급문제, 노동문제, 젠더문제를 청년이슈로 뭉뚱그려버리는 일이 드물지 않다. 청년문제라고 말해버림으로써 이 모든 것이 ‘지나갈’ 것처럼, 착시효과를 만들어낸다. 아프니까 청춘이고, 청춘이 지나면 아프지 않을 것처럼 말이다.
‘망가진 나라의 청년 생존썰’이라는 부제가 달린 <미운 청년 새끼>는 <CAMPUS CINE21> 기자 김송희와 <월간 잉여> 편집장 최서윤, <계간 홀로> 발행인 이진송이 함께 쓴 대한민국 청년 이야기다. 서문에서, 대학생 10명이 대답한, 스스로를 정의하는 세대 명칭은 이 책이 하려는 이야기를 잘 보여준다. 피곤 세대(사는 게 피곤해서), SNS 세대 같은 말이 있는가 하면, ‘세대’라는 묶음이 불가능하다는 말도 있었다고 한다. 세대론을 통해 ‘청년’으로 불리는 사람들이 가장 후려치게 되는 ‘정치’에 대한 챕터와 통학하는 시기부터 반려동물, 임대주
[도서] 대한민국 청년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