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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나 경찰을 드물게 일 때문에 만나게 되면, 어찌나 말을 잘하는지 신기할 정도다. 수사권 조정처럼 양 조직이 전면으로 대립하는 이슈를 둔 경우는, 검사 말을 듣느냐 경찰 말을 듣느냐에 따라 생각이 매번 바뀐 적도 있는데, 상대에 불리하고 자기쪽에 유리하면서도 극적인 예를 잘들 찾아오는지 놀라울 정도다. 18년차 검사인 김웅의 <검사내전>은 검사가 글을 재미있게 쓴다는 말의 뜻을 알게 해준다. 법의 한계와 사법제도 개혁에 대한 의견을 조심스레 개진하는 4장 ‘법의 본질’을 뺀 250여쪽의 분량은 한국의 거의 모든 유형의 범죄에 대한 검사 입장에서의 경험담이다.
<검사내전>에서 특히 재미있는 부분은 1장 ‘사기 공화국 풍경’이다. 사기 범죄는 밑천 없이 시작할 수 있고, 세금도 내지 않으며, 잘 잡히지도 않고, 잡혀도 대부분 쉽게 풀려난다. 한해 24만건의 사기 사건이 발생하고, 사기범의 재범률은 77%에 이른다. 여기에 대한 김웅의 생각은 (매정하게도) 각자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검사내전>, 검사의 ‘썰’ 푸는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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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내고 있나요? 러브레터 이와이 순지 시네마 콘서트
영화의 명장면과 주요 O.S.T의 라이브 연주를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시네마 콘서트가 열린다. 이와이 순지 영화 <러브레터>와 <4월이야기>를 중심으로 구성된 이번 공연에서는 피아니스트 윤한과 이현진, 기타리스트 김현규가 연주자로 나서 오케스트라와 함께 특유의 맑고 투명한 음악을 들려줄 예정이다. 1부에서는 <4월이야기>, 2부에서는 <러브레터>의 음악을 현장에서 직접 즐길 수 있다. 2월 3일(토) 오후 5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다.
예쁜 것들의 목록, 인덱스숍
인덱스(INDEX)는 커먼그라운드(건대입구역에 있는 그 컨테이너박스몰 맞다) 안에 있는 서점 겸 카페다. 홍대 부근의 서점 ‘땡스북스’와 계간지 <그래픽>, 글자연구소 등의 사람들(이들은 평소에도 자주 이런 공간 및 기획 전시를 한다)이 모여 함께 만든 공간이다. 요즘 독립서적들을 파는 서점이야 흔하지
[culture highway] 잘 지내고 있나요? 러브레터 이와이 순지 시네마 콘서트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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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대학가서 데모하는 놈들이랑 어울리면 큰일난데이.” 깡촌에서 서울로 대학을 가는 아들을 붙잡고 어머니는 몇번이고 당부한다. 데모하는 학생들은 모두 ‘북한의 지령을 받은 빨갱이’라고만 배웠던 영호는 대학에 와서 사람들을 만나고, 공부하며 알게 된다. 진실은 따로 있었다는 것을. <100℃>는 민주화운동사업회에 연재하던 최규석 작가의 만화를 모아 출간한 단행본이다. 2009년 나온 책을 2017년에 개정판으로 다시 내면서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100° C>는 과거를 이해하는 기록으로 기획되었음에도 지난 10년간 현재를 공감하는 작품으로 읽히는 일이 잦았습니다. ‘옛날에 이런 일이 있었네요’보다 ‘요즘 이야기 같아요’라는 감상이 훨씬 많아 슬펐습니다.” 그러니 책이 덜 팔리더라도 본래의 분류대로 현재가 아닌 역사물로 돌아가면 좋겠다고. <100℃ >를 읽으면 6월항쟁을 다룬 영화 <1987>이 떠오르지 않을 도리가 없다. 연희(김태리)
씨네21 추천도서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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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오슬로의 호텔에 방을 잡는다. <팬텀>은 그 남자의 외모를 본 사람들의 반응을 통해 그에 대한 ‘힌트’를 준다. 얼굴 한쪽에 길게 난 상처, 주소지로 적는 홍콩 청킹맨션 같은 단서들이 이어지고, 호텔 직원은 숙박부의 이름을 보고는 “당신이 그 해리 홀레입니까?”라며 전설의 주인공을 맞는다. <팬텀>은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 시리즈’ 아홉 번째 소설이다. 총 11권이 출간된 이 시리즈의 주인공 해리 홀레는 경찰보다는 마약중독자나 마약거래상에 가까워 보인다. 시리즈를 따라온 사람이라면 그가 오슬로로 ‘돌아왔다’는 데서 그의 과거를 떠올릴 수 있을 테고, 이제 처음 만나는 독자라면 “나의 직업은 살인”이라고 말하는 이 남자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지 혼란을 느낄지도. <팬텀>은 오슬로의 마약 범죄를 다룬다. 마약의 반입과 반출에는 민항기 파일럿이 동원된다. 오슬로시의 마약유통 거점이 완전히 바뀌어버려 경찰도 누가 배후의 큰손인지 파악하지 못하는
씨네21 추천도서 <팬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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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이번 생애 내내 이마를 비추고 발목을 물들이는 것은 사람에 대한 그리움일 것이다. 그것은 기억이고, 향수다. 나애는 9살 무렵에 병원집 뒷마당에서 함께 놀았던 상, 도이를, 잠든 나애의 머리맡에서 이마를 짚어주며 전래동화를 자장가처럼 읊조리던 종려 할매를 생각한다. 물론 헤어진 이후로 어른이 된 지금까지 한순간도 잊지 않고 계속 생각하며 산 것은 아니다. “사람이 줄곧 그것을 생각할 수는 없다. 이따금 생각한 것이다. 늘 잊고 살다가 문득문득 생각한 것이다. 평생 그럴 것.”(36쪽)이므로. 지금은 희도와의 다른 생활이 있고, 주변은 다른 사람들로 채워졌다. 그래도 나애는 알고 있다. 우물 속처럼 따뜻하지만 어둡고, 그래도 빛이 있었던 그 시절의 시간들이 지금을 있게 했다는 걸. 그게 몇살이었든 사람은 위로받고 상처받고 충만했던 기억을 온몸에 저장하며 살아간다.
<해변빌라> 이후 3년 만에 나온 전경린 장편소설 <이마를 비추는, 발목을 물들이는>의 이
씨네21 추천도서 <이마를 비추는, 발목을 물들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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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를 돌아보기보다는 다가오는 미래를 바라보고, 앞으로 이뤄나가야 할 것들을 생각하는 나날이다. 아, 내 경우에는 아니지만 다른 분들은 그러신 것 같다는 말이다. 1월이면 으레 ‘올해의 계획’ 같은 것을 야심차게들 세우니 말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새해 계획 안 세운 지가 10년이 넘었다. 어차피 안 지킬 거니까 계획 자체를 안 세운다. 나이를 강제배식받아 좋은 점은 사람이 자기 주제를 잘 알게 된다는 것이다. 1월에 밝은 미래를 기대하며 스스로와의 약속을 하지 않으면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있다. 자신을 덜 싫어할 수 있다. 그리고 인생에서 좋은 일들은 의외로 계획 밖의 우연들 속에서 비롯된다. 그러니 계획을 지키는 것에 실패한 사람이라면 재도전보다는 우연을 관리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을 추천한다. 고질병인 의지박약으로 이번에도 어차피 제3대 국정과제(공부, 다이어트, 돈 모으기)를 배반할 텐데, 그럼 2, 3월에 자신이 얼마나 싫어지겠나. 그러니 1월에도 질척거리며 지난 12월 연말 모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1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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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경험이 당신이라는 인간을 만들었을까. 소설가 캐서린 앤 포터를 만든 경험 중 하나는 그가 29살이던 1918년 미국과 유럽 전역을 휩쓴 스페인 독감에 걸려 죽다 살아난 일이었다. 단편 <창백한 말, 창백한 기수> <웨더롤 할머니가 버림받다>가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쓰인 소설들이다. <창백한 말, 창백한 기수>의 제목은 성경의 요한묵시록 6장8절에서 따온 표현이다. “그러고 보니 푸르스름한 말 한필이 있고 그 위에 탄 사람은 죽음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지옥이 따르고 있었습니다.” 이 시기의 캐서린 앤 포터는 <로키 마운틴 뉴스>에 취직해 기자로 일하다 스페인 독감에 걸렸다. 소설의 여자주인공 미란다처럼. 이 작품을 표제작으로 한 소설집은 1939년에 출간되었으니(1932년 집필 착수), 죽음의 위협으로부터 꽤 멀리 항해한 뒤 그 경험을 반추하며 썼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 소설은 시작하자마자 정신없다,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캐서린 앤 포터>, 명불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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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의 독립영화, 요즘 어떤 이별 하세요?
그냥 흘려보내기 아까운 한국 독립영화들을 독특한 기획 안에서 모아 소개하는 ‘오렌지필름’의 1월 기획전이 열린다. 한겨울에 걸맞은 1월의 주제는 “요즘 어떤 이별 하세요?” 1월 6일(토)에는 오오극장에서 조은지 감독의 <2박3일>, 13일(토)에는 인디스페이스에서 배경헌 감독의 <가까이>를, 20일(토)에는 KU시네마테크에서 오세인 감독의 <사창리>를 상영한다. 영화 상영 후 감독과 관객과의 대화(GV)도 준비되어 있다. 상영 정보는 theorangefilm.com과 인스타그램 @orange_film에서, 예매는 맥스무비에서 가능.
다시, 존 레전드
최근 유독 영화와 인연이 깊던 뮤지션 존 레전드가 4년 만에 다시 내한한다. 3월 15일(목) 오후 8시 올림픽공원 내 올림픽홀에서 진행되는 이번 공연은 앨범 《Darkness and Light》 발매 기념 월드투어의 일환이다. 앨범 수록곡은 물론 <Al
[culture highway] 안녕하세요, 오즈의 배지입니다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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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이 넘쳐흐르되 입은 삼가라.” 특히 화를 가라앉히는 게 중요하다. “화가 난 상태에서 다른 사람의 말을 가로막거나 대답하지 않도록 조심해라. 화를 멀리해라. 자신을 통제해야 한다.” 이것은 4천년 전 이집트 고관 프타호텝이 사회적 우아함의 문제에서 자제심의 중요성을 논한 부분이다. 무용 비평가 사라 카우프먼의 <우아함의 기술>은 우아함이라는 화두를 풀어간다. 자제심 없는 사람이 우아해 보이기란 불가능할 테니 새겨들을 말이다. 그런데 대체로 우아하다는 말은 “느긋하고 균형 잡힌 몸, 매끄럽고 효율적인 움직임, 관심과 연민, 자족적인 침묵”을 뜻한다. 몸과 움직임의 전문가인 무용 비평가가 우아함에 대해 논하는 일이 자연스러운 만큼 작심삼일마저도 되지 못하는 나 같은 일반인에게는 멀고도 먼 단어다.
현대무용 안무가 폴 테일러는 걸음걸이만으로도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골반에서 정직성을 본다!(“걸음걸이를 보고 조지 부시가 어떤 사람인지 알았습니다.”) 우아하게 걸으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우아함의 기술>, 신년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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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적으로 저항하라
일본을 알려면 건담을 봐야 한다? 워크라이프에서 출간한 <건담과 일본>의 저자 다네 기요시는 건담의 탄생 시기와 등장 캐릭터를 보면 대동아공영권을 주창하며 야마토 전함과 제로센을 개발했던 섬나라 일본의 성질을 파악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일단 책 내용이 의심스럽다면 저자의 이름을 믿고 펼쳐보자. 서브컬처 비평잡지 <컨티뉴>의 편집장, 애니메이션 잡지 <오토나 아니메>의 슈퍼바이저를 거쳐 게임과 정치, 역사 등을 한데 아우르는 독특하고 광범위한 주제의 책을 여러 권 쓴 인물이다.
이 공연 실화냐
디 인터넷, 릴 웨인, 허츠 등이 내한한다. 솔과 트립합 장르를 아우르는 밴드 디 인터넷의 공연은 2018년 1월 22일 YES24 라이브홀에서 열린다. 얼리버드 티켓은 판매 개시 10분 만에 매진됐다고 하니 추후 예매도 서둘러야 할 것 같다. 27일에는 <2018 SEOULFULL: TMT MUSIC GROUP> 공연이 고려
[culture highway] 한국영화 속 남성의 역사를 훑는다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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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목소리와 오케스트라의 조합
광고 속의 유려한 그 음악이 오케스트라의 풍성한 하모니로 재현된다면! <스타 오디션-위대한 탄생3>를 통해 등장한 신성 폴킴이 공연계의 강자로 떠올랐다. 지난달에 전석 매진됐던 <유희열 큐레이티드 Hello, 폴킴>에 이어 이번엔 새해맞이 대규모 오케스트라 공연을 꾸몄다. <폴킴 with String Orchestra>에선 광고음악으로 사용되어 유명세를 탄 자작곡 <비>를 포함해 현악은 물론 목관악까지 다양한 편성의 오케스트라를 통해 풍성한 하모니를 선보일 예정이다. 2018년 1월 20일 오후 2시와 7시30분에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총 2회 진행된다. 미취학아동 입장 불가인 점을 참고하자.
‘하녀의 계단을 오르다: 시네아스트 김기영 20주년 기념전’
한국영화사에서도 독보적인 감각을 자랑하는 시네아스트 김기영 감독의 타계 20주년을 맡아 김기영 기념전이 열린다. 한국영상자료원 1층 기획전시실에서
[culture highway] 황정민의 연극, 황정민의 리차드 3세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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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마르트르의 뮤즈, 마리 로랑생
파블로 피카소, 코코 샤넬, 장 콕토, 알베르 카뮈, 기욤 아폴리네르 등 수많은 예술가와 교류하며 영향을 준 마리 로랑생의 작품이 한국을 찾는다. 프랑스 여성 화가 마리 로랑생의 특별전 <마리 로랑생展-색채의 황홀>이 12월 9일부터 2018년 3월 11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는 70여점의 유화와 석판화, 수채화, 사진과 일러스트 등 160여점의 작품이 소개된다. 연극배우 박정자가 오디오 가이드를 녹음했다. 예매는 티켓링크나 1588-7890, 문의는 02-396-3588, www.laurencin.co.kr로 하면 된다. 입장권 8천~1만3천원.
나만 없어 <유물즈>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기한 잡학사전>의 볼거리 중 하나는 잡학박사들이 박물관을 신나게 탐험하는 걸 볼 때다. 소풍 장소로 정해지면 탄식이 새어져나오던 그 지루한 공간이 저토록 볼거리가 많은 곳이었다니. 일찍이 김서울은
[culture highway] 연말연시는 사사로운 영화와 함께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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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E. T. A. 호프만에 대한 사전정보가 없었다면 첫 수록작인 <황금항아리>에서부터 당황할지도 모르겠다. 가여운 대학생이라고 줄곧 불리는 안젤무스는 느닷없이 금색의 뱀의 모습으로 나타난 세르펜티나와 사랑에 빠지고 실체조차 설명되지 않는 존재를 그리다가 급작스럽게 드레스덴의 현실로 돌아와 파울만 교감과 대화를 나눈다. 현실이었다가 돌연 비현실이었다가, 그런데 그 비현실 역시 현실에 영향을 주는 이 기묘한 소설을 읽다 보면 대학생 안젤무스는 결국 이성이 지배하는 시민사회와 낭만적인 예술 사이에서 착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진다. 호프만이 창조한 세계에서 모든 환상과 비현실적인 피조물은 현실에 영향을 주고 또한 받는다. 표제작인 <모래 사나이>의 주인공 역시 대학생이다. 주인공 나타나엘은 각각 현실과 환상을 대표하는 클라라와 올림피아 사이에서 혼돈에 빠진다. 나타나엘은 자신에게 불길한 예감을 온몸으로 느끼면서도 운명에 순응해야만 하는 예민하고 불쌍한
씨네21 추천도서 창비세계문학 <모래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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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시를 읽을까. 항상 시집을 곁에 두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책장 속에 콕 박혀 있던 시집을 꺼내 접어둔 책귀를 펼쳐 꼭꼭 씹어 읽을 때가 있다. 주로 마음이 다쳤을 때다. 다정한 위로가 필요할 때다. 은유적으로 현실을 직시하는 문장을 읽고 싶을 때다. 시인을 읽는 독자는 그렇게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시인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신형철 문학평론가는 “우리의 시인들은 세상의 모든 폭력에 반대한다. (중략) 자주 오해되지만 그런 비폭력적인 언어의 상태가 순한 단어와 예쁜 표현들로 달성되지는 않는다. 그것은 어떤 ‘시선’에서 생겨나는 것이고, 그런 시선을 가능케 하는 어떤 ‘자리’에 설 때 생겨난다. 그럴 때 시인은 발생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렇게 발생한 100명의 시인이 문학동네시인선에서 100권의 시집을 냈다. 문학동네시인선은 시집마다의 개성을 강조하는 컬러풀한 표지, 시 속에서 뽑은 문장형 제목으로 시집에 세련된 서정성을 부여해왔다. 티저 시집의 제목 역시 오병량 시인의 &l
씨네21 추천도서 <너의 아름다움이 온통 글이 될까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