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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4월 20일 화요일. 에릭과 딜런은 사제 폭탄을 짊어지고 학교로 향한다. 목표는 ‘세상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흔적’을 남기는 것. 소년들은 철저히 준비했다. 학교 식당에 사람이 가장 많을 시간, 어디에 설치해야 많은 희생자를 낼지 시간표와 동선을 짰다. 다행히 폭탄은 터지지 않았지만 그들은 무차별 총격을 난사했다. 13명이 사망하고 24명이 부상당했다. 발생 18년이 지났지만 ‘콜럼바인고등학교 총격사건’은 미국 사회에서 여전히 해석 불가한 사건으로 남아 있다. 특이점이 별로 없었던 두 소년이 ‘도대체 왜’ 그런 짓을 저질렀는가에 대한 추측만이 무성했다. ‘그 아이가 왜 그랬을까’를 계속 곱씹어본 책이 지난해 출간된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가해자 아이 중 딜런의 어머니인 수 클리볼드가 썼다)라면 <콜럼바인>은 수만쪽의 문서와 생존자 인터뷰, 현장 답사를 통해 가장 객관적으로 사건 전체를 조망한 치밀한 ‘보고서’다. 사건이 일어난 시각을 시간대별로
씨네21 추천도서 <콜럼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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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전쟁이 한창인 버지니아주,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마사 판즈워스 여자 신학교에 머무르고 있는 어밀리아는 숲에서 심각한 부상을 입은 군인을 발견한다. 그의 이름은 존 맥버니, 첫만남부터 겁먹은 소녀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는 14살이라는 어밀리아에게 대뜸 “키스는 해봤을 나이구나”라며 추파를 던진다. 그에게 친근감을 느낀 어밀리아는 여자들만 머물고 있는 학교로 그를 데려가고, 교장인 마사와 그녀의 동생 해리엇, 학생인 에드위나, 에밀리, 얼리샤와 마리는 존의 등장으로 저마다 마음이 일렁인다. 소피아 코폴라가 영화화한 <매혹당한 사람들>의 원작 소설이다. 1971년 돈 시겔 감독의 작품과 2017년 개봉한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영화, 그리고 원작까지 셋을 비교하고 싶다면 책은 가장 마지막에 접해도 좋겠다. 단절된 여학교라는 공간에 낯선 남자가 나타났을 때 그를 둘러싼 여성들의 질투와 관계 변화가 원작에서는 더욱 솔직하게 묘사되어 있다. 소설에서는 각 인물의 시점을 오가며 사건을
씨네21 추천도서 <매혹당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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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알 것 같지만, 조금도 모르겠다. 매일같이 얼굴을 마주하고 속내를 허물없이 털어놓는 관계라 해도 우리는 타인의 마음에 어느 정도나 가닿을 수 있을까. 이달의 북엔즈에서는 인간 심연에 대한 생생한 묘사가 돋보이는 네권의 책이 꽂혔다. 명절을 비롯한 쉼표가 군데군데 박힌 10월을 앞두고 책장에 미리 꽂아두어도 좋을 책들이다. 여자들만 있던 단절된 공간에 한 남자가 등장함으로써 그들 안에 일어나는 소요를 그린 소설, 잘 쓴 글씨와 편지로 투명하게 마음을 전하는 대필가가 주인공인 소설, 미국에서 세기말에 일어난 충격적인 사건 ‘콜럼바인고교 총기난사사건’ 가해자들의 심연에 가장 객관적으로 접근한 논픽션, 여자를 사람이 아닌 여자로만 존재하게 하는 질문들에 맞서 침묵하지 않을 것을 직설하는 에세이, 분야는 다르지만 모두 실체에 가까이 가보려는 노력들이 돋보이는 책들이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의 리베카 솔닛의 신작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
씨네21 추천도서 - 9월 서가에 꽂힌 네권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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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의 작가로, 배우로 활동했으며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의 조이 목소리 배우, 드라마 <팍스 앤드 레크리에이션> 배우, 그리고 티나 페이와 호흡을 맞춰 오랫동안 동료이자 친구로 여러 코너를 함께해온 에이미 폴러의 에세이. 여성으로서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일한다는 것은 어떤 뜻인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유머러스하게 풀어낸 책이다. 대중에 노출된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 커리어를 어떻게 꾸려가야 할지 오래 고심해온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커리어는 마치 나쁜 남자친구 같아서 적게 신경 쓰고 원하는 것을 흘려보내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말을 꺼내면서 오랫동안 어렵게 일을 따라다닌 시간을 적은 부분은 에이미 폴러의 에세이스트로서의 재능이 빛난다.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예스 플리즈>, NO! 보다 강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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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힌다’는 말이 유일한 구원인 때가 있다. 19세기 미국 남부 조지아주에서 흑인 노예의 자식으로 태어나 농장을 탈출해 밤새 달리고 있다면, 주황색 해가 떠오르는 순간을 사람들이 자신의 부재를 알아차렸다는 경계 신호로 받아들인다면, 떠나온 곳의 누구도 나를 기억하지 않고 완전히 잊어주기를 바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사람도 ‘재산’의 손실을 잊는 법은 없다. 노예로 태어나고 자라 자유를 위해 도망친다는 일의 어려움은 거기에 있다. 심지어 자신이 누군가의 재산이라는 데 완전하게 길들어, 애초에 그 바깥을 알지 못하고, 알지 못하니 꿈꾸지도 못한다. 노예로 나고 자란 코라는 도망치기로 결심한다. 재산을 지켜주는 재능으로 명성을 쌓은 리지웨이가 그녀를 뒤쫓는다.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는 1800년대, 미국에서 노예제도가 폐지되기 전에 남부 노예들이 자유민으로 살 수 있도록 탈출을 도왔던 점조직을 일컫는 말에서 따온 제목으로, 실제 철도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간절한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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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반기 국립극단의 선택
국립극단이 선보이는 무대에는 남다른 신뢰감이 있다. 이번에 국립극단이 선택한 공연은 극단 이와삼의 <미국아버지>다. <햇빛샤워> <환도열차> 등으로 대한민국연극대상, 동아연극상을 수상한 장우재가 연출을 맡았다. 마약에 찌들어 아들의 집에 얹혀사는 아버지. 평범하게 흘러가던 그의 인생은 아들이 이라크전에서 비롯된 테러에 휘말리며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9월 6일부터 25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리며 티켓 가격은 2만~5만원, 예매 문의는 1644-2003 또는 www.ntck.or.kr에서 하면 된다.
행주, 넉살, 우원재 다시 보고 싶어?
행주가 우원재와 넉살을 이기고 <쇼미더머니6>의 우승자가 됐다. 패자는 없었다. 우원재는 결승 무대에서 공개되지 않은 <시차>로 음원차트 1위를 달리고 있고, 넉살은 막이 내려도 오래 남을 호감 이미지와 탄탄한 랩 실력을 제대로 알렸으니 됐다. 이제 대결은
[culture highway] 하반기 국립극단의 선택 <미국아버지>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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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마왕, 신해철을 추억하며
고 신해철의 음악이 그리운 팬들이라면 주목. 그의 음악을 다양한 장르로 재해석하는 콘서트 <신해철의 Jazz Rock Cafe>가 9월 10일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에서 열린다. 재즈와 국악, 새로운 스타일의 록으로 재편된 신해철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오재철 빅밴드가 재즈 파트를 맡고, 남궁연이 소속된 그룹 프로젝트991이 국악 파트를 맡을 예정. 밴드 국카스텐은 그들만의 스타일로 편곡한 신해철의 명곡을 들려줄 계획이다. 12년 전 신해철의 모습이 담긴 단편영화 <거짓말폭탄>도 상영된다. 전석 스탠딩 7만7천원. 인터파크에서 예매할 수 있으며 현대카드로 결제시 20% 할인된다.
원더우먼을 꿈꾸는 여성들의 축제
동시대 여성들의 삶에 대한 고민을 나누는 ‘원더우먼 페스티벌 2017’이 9월 24일 서울숲공원에서 열린다. 6회째를 맞은 올해 행사의 슬로건은 ‘Already Awesome’. 이미 충분히 멋지고 아름다운 자신의
영원한 마왕, 신해철을 추억하며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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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하는 인류학자, 이마무라 쇼헤이 회고전
인간의 깊은 욕망을 거침없이 탐색해왔던 이마무라 쇼헤이의 작품을 상영하는 회고전이 열린다. 9월 6일부터 24일까지 서울극장 내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 이번 상영전에는 데뷔작 <도둑 맞은 욕정>(1958), <복수는 나의 것>(1979), <나리야마 부시코>(1983) 그리고 유작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2001)까지 총 17편의 영화가 상영된다. 또한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장남이자 영화감독인 덴간 다이스케가 강연 및 시네토크에 참석해 아버지의 작품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관람료는 8천원이며 맥스무비, YES24에서 온라인예매를 하거나 6일부터 현장예매를 하면 된다.
극단 산울림, 3년 만의 신작
극단 산울림이 3년 만의 신작 <이방인>을 발표한다. 이번 작품은 산울림의 158번째 정기공연으로, 알베르트 카뮈의 <이방인>을 재해석한 것이다. 임수
[culture highway] 뮤직 너드의 선곡 센스를 영접하라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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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어떤 것들은 ‘발견한다’는 감각보다는 ‘발견된다’는 감각으로 마주하게 된다. 누군가는 예술적 재능을, 학문적 총기를, 또 누군가는 평생을 추구할 아름다움을 그렇게 만난다. 나는 아마도 로잘린 투렉이 연주하는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평생 잊지 못할 텐데, 바흐와 로잘린 투렉의 조합과, 그 음악이 전과 다른 방식으로 나를 ‘건드린’ 어느 오후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 느낌을 말로 설명하고 싶다고 생각해왔고 여전히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노력하면 할수록 음악에는 당할 수가 없다는 한숨이 흘러나온다. 음악을 글로 재현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온다 리쿠의 <꿀벌과 천둥>에는 이런 대사가 있다. “세상 어디를 가도 음악은 통해. 언어의 장벽이 없어. 감동을 공유할 수 있어. 우리는 언어의 장벽이 있으니까, 음악가가 정말 부러워.” 이 말은 참이기도 하고 거짓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음악은 어딜 가도 통하지만, 누구에게나 통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꿀벌과 천둥>, 음악을 상상하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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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의 음악과 함께 피크닉을
잔디밭에 누워 디즈니의 명곡 레퍼토리를 듣는다면? <인어공주> <알라딘> <라이온 킹> 등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수록곡을 라이브 연주로 들을 수 있는 <디즈니 인 콘서트>가 9월 10일 서울 올림픽공원 88잔디마당에서 열린다. 디토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맡는 이번 공연은 남녀노소 모두 즐길 수 있는 야외 공연이다. 올림픽공원의 너른 잔디마당에 돗자리를 펴고, 다과를 나누며 수준 높은 연주를 감상하는 상상만으로 9월이 기다려진다. 잔디밭이 불편한 이들을 위해 지정석인 로열석과 여럿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석도 있다. <겨울왕국> 한국어 버전의 주제곡을 부른 뮤지컬 배우 박혜나가 스페셜 게스트로 공연을 찾는다. 피크닉석 4만원부터 테이블석 24만원까지.
명장의 선율로 귀호강할 시간
2007년, 예순한살의 나이로 베토벤 소나타 전곡 리사이틀을 완수한 피아니스트 백건우. 그가 10년만에 다시 베토벤 소나타
[culture highway] 디즈니의 음악과 함께 피크닉을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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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시집은 그 시집의 시간을 독자들에게도 그대로 살게 한다. 신용목의 이번 시집은 그런 시집이었다. 나는 해가 천천히 지는 여름 동안 그의 시집을 읽었다. 읽는 동안 나는 이 시집이 씌어지던 시인의 시간을 살고 있었다.’ 허수경 시인의 추천사가 꼭 내 마음 같아서 잠시 옮겨 적는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는 2000년 <작가세계> 신인상으로 등단한 신용목 시인의 네 번째 시집이다. 시인은 세 번째 시집 <아무날의 도시>에 이어 삶의 고통을 근거리를 두고 담담하게 관조한다. 그러나 그 관조에는 냉담자의 시선이 아니라 언제든지 달려가 사람을 안을 수 있는 보드라움이 있다. 상황은 분명 어둡지만 시선은 따스하고 거기에는 모두 제각각 성실하고 예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서정시 중에서도 누구보다 서정적인 시인의 시가 동시대에 의미가 있는 것은 그가 ‘아무날의 도시’에서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낮은 지대의 사람들에게 관심을 거
씨네21 추천도서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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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서가라면 출판사의 에디션보다는 자신만의 북리스트를 만드는 것이 더 매력적일지 모르겠다. 사계절1318문고에서 109권의 책 중 10권을 엄선한 에디션을 마주했을 때, 과연 전부 읽을 만할까 의심이 들었다. 이금이 작가의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를 읽다가 정신을 차리니 동이 터 있었다. 한권을 해치우고(?) 다음 권을 읽다 보니 ‘엄선’이라는 말에 수긍이 되었다.
박지리 작가의 <맨홀>, 최상희 작가의 <델 문도>, 김해원 작가의 <추락하는 것은 복근이 없다>, 박상률 작가의 <봄바람>, 그리고 이금이 작가의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까지 총 5권의 한국 소설, 그리고 신시아 라일런트의 <그리운 메이 아줌마>, 로버트 뉴턴펙의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 마이테 카란사의 <독이 서린 말>, 라헐 판 코에이의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 창신강의 <
씨네21 추천도서 <사계절1318문고 20주년 기념 에디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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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근한 옆집 소녀 이미지와 천상의 목소리로 인기를 얻은 컨트리 가수 케일리 타운은 콘서트를 준비하던 중 스토커의 협박에 시달린다. 지속적으로 케일리에게 메일과 편지를 보내는 스토커의 정체는 에드윈 샤프. 그는 케일리가 메일 주소를 바꿔도 귀신같이 알아내, 망상에 사로잡혀 마치 사귀고 있는 연인처럼 연애편지를 보낸다. ‘너를 만나러 갈 거야. 너도 나를 기다리는 것 알아.’
편지의 마지막에는 항상 애정을 담은 XO가 인장처럼 박혀 있다. 미국 드라마 <가십걸>을 본 사람이라면 XOXO가 무슨 뜻인지 쉽게 알 것이다. XO는 편지나 카드의 말미에 쓰는 미국식의 친밀한 표현이며 ‘키스와 포옹을 담는다’는 뜻이다. 한국에서는 덜 알려져 있지만 미국 내에서는 스릴러의 제왕으로 불리는 제프리 디버의 ‘캐스린 댄스’ 시리즈 세 번째 책인 <XO>는 인기 가수를 좇는 스토커와 그와 두뇌싸움을 펼치는 여성 수사관 댄스의 이야기다.
인공 댄스는 행동분석가로 범인의 눈빛, 몸짓, 목소
씨네21 추천도서 <X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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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에서, 입속에서 맴맴 도는 말이 있다. 지금 이 풍경을, 이 마음을, 이 떨림을 뭐라 설명하면 좋을지 어떤 문장으로도 지금의 기분을 완전히 그려낼 수 없다. 보통 사랑에 빠졌을 때, 그리고 여행지에서 넋을 놓을 만큼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했을 때가 그러하다. 어쩌면 여행과 연애의 닮은 점은 그것이다. 그것들은 실재하는 마음의 동요를 글로 담아내기가 어렵다. <사랑보다도 더 사랑한다는 말이 있다면>은 여행지에서 떠올린 사랑의 기억, 연인에 대한 그리움과 기억의 우물에서 끌어올린 연애의 밀어들을 글로 기록한 여행 에세이다.
어떤 여행지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이 떠올랐는지는, 이 책에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너무 아름답고 적요해서 차마 글로 적을 수 없을 것 같았던 풍경과 마음을 어렵게 써내려갔다는 사실. 문장과 어우러지는 여행 사진이 감흥을 더한다. 분명 한번도 본 적 없는 곳의 사진이고, 작가가 찍은 사진인데도 우리가 어디서 한번쯤은 보았을 법한 낯익은 사람
씨네21 추천도서 <사랑보다도 더 사랑한다는 말이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