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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 시리즈는 작가의 사후에 발표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천문학적인 가격에 작품이 팔려나가지만 정작 작가는 그 혜택을 보지 못한 인상파 화가의 작품처럼 시리즈는 큰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저작권 수입이 누구에게 돌아가느냐의 문제로 논란이 빚어지는가 하면, 데이비드 핀처가 연출을 맡은 할리우드판의 시리즈 1편은 비판 속에 사라져 후속작을 약속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그중 가장 큰 아쉬움이라면 <밀레니엄> 시리즈가 작가 스티그 라르손의 의지로 완성되지 못했다는 사실. 시리즈는 스웨덴의 출판사와 작가 다비드 라게르크란츠에 의해 다시 시작되었다. 다비드 라게르크란츠는 이 이야기가 어디서 시작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프롤로그에서 그는 리스베트 살란데르가 잠에서 깨어나 컴퓨터 앞에 앉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 책의 주인공 프란스 발데르는 컴퓨터공학자로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다 고국행 비행기를 탔는데, 자기가 개발한 기술과 관련한 편집증적 불안에
씨네21 추천도서 <밀레니엄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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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북엔즈의 키워드는 여전히 ‘#페미니즘#여성’이다. 영국의 작가 제시 버튼의 소설 <뮤즈>는 남성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 혹은 그림 속 모델로만 대상화되어온 여성이 과거에도 현재에도 독립적인 인물이자 그 자체로 완전히 자유로운 예술가였음을 그려낸다. 30년이라는 시간의 격차를 두고 영국과 에스파냐에 살던 두 여성이 시대를 온몸으로 이겨내며 예술가로 거듭나는 과정이 흥미진진하다. 화가가 주인공이니만큼 색채에 대한 묘사도 이어지는데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와 흡사한 면모가 있다. ‘전에 없을 페미니즘 소설’로 평가받는 <밀레니엄> 시리즈의 4권 <거미줄에 걸린 소녀>도 반가운 책이다. 주인공 리스베트의 자매 카밀라가 본격 등장하며 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데, 이 시리즈의 팬이라면 그를 둘러싼 사건을 꼭 확인해야 할 것이다. <거미줄에 걸린 소녀>에서도 무능하고 폭력적이며 무례한 남성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리스베트와 미
씨네21 추천도서 - 10월, 이달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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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장이었던 추석 연휴가 끝났다. 휴식이 몸과 마음의 건강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배울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고, 끝나버렸다. 엉망이던 원래의 생활로 돌아오는 대신, 더 나은 매일의 리듬을 만들어보고자 <심플한 건강법 333>을 펼쳤다. 독일에서 의사로 일했고 미국에서도 의사면허를 따고 면역생물학 연구를 했으며 이제는 <쥐트도이체 차이퉁>의 과학 전문 수석 편집자인 베르너 바르텐스가 쓴 이 책은 마음과 몸을 건강하게 할 수 있는 팁을 모아둔 것이다. 마법처럼 인생을 바꾸는 말은 하나도 없다. 대체로 알고 있던 ‘기본에 충실한’ 조언들이다. 도움이 되는 곳(피부, 귀, 결혼, 배, 다리, 마음 같은 식)으로 대분류를 한 뒤, 표제문으로 해당 내용을 알리고(우울증의 알람 신호 알아보기), 그 상세한 내용을 1페이지 정도 분량으로 적어놓았다. 마음이 답답하고 두통이 지속될 때 창문 열고 집 청소하는 기분으로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말들을 책에서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심플한 건강법 333>, 오늘은 좀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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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라 쓰고, 삶이라 부른다
셰익스피어의 소설을 각색한 국내 창작 뮤지컬 <햄릿: 얼라이브>가 관객을 만난다. 10년의 준비 기간을 거쳐 탄생한 이번 작품은 고전소설을 현대적 감성으로 풀어내는데 초점을 맞췄다. 탄탄한 스토리와 감각적인 음악, 세련된 프로덕션 디자인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홍광호와 고은성이 주인공 햄릿으로 열연하며, 양준모와 임현수가 클로디어스에 캐스팅됐다. 거트루드 역은 김선영과 문혜원이 맡는다. 11월 23일부터 2018년 1월 28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열린다.
<아틀라스 옵스큐라> 한국어판 출간
<아틀라스 옵스큐라>는 여행 가이드북에 등장하지 않는 전세계의 독특한 명소들을 소개하는 프로젝트다. 이들의 리스트는 사람의 손이 거의 닿지 않은 어느 동굴에서부터 갈릴레오의 손가락을 전시한 박물관, 누구도 먹을 것 같지 않은 음식들을 판매하는 레스토랑을 망라한다. ‘경이롭고 미스터리하고 매혹적이며 신비로운 세상의 모든
[culture highway] <햄릿: 얼라이브> 죽음이라 쓰고, 삶이라 부른다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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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빌리의 노래>를 쓴 J. D. 밴스는 내 친구의 남편과 몹시 비슷한 이력을 갖고 있다. 백인, 미국인. 집안에서 유일한 대졸자로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대학 중 한곳의 로스쿨을 나왔다. 학력만 다른 가족과 다른 게 아니다. 친구의 남편은 그 집안에서 몇 안 되는 전과 기록이 없는 사람이다. 남편 말고도 전과 기록이 없는 삼촌이 한명 더 있는데, 웃지 못할 일은, 그 삼촌이야말로 직업적인 범죄자이며 가장 심각한 위법을 많이 저지르는 데다 가장 매너도 좋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일가친척 다들 이런저런 전과를 갖고 있는데 “사람들은 참 좋다”고 한다. <힐빌리의 노래>로 그 ‘참 좋음’의 뜻을 배웠다.
이 책에 대해 말하는 여러 방법 중 하나는 이것이다. 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이 되었을까? 이번 미국 대선 결과를 분석할 때 유난히 많이 등장했던 단어들- 러스트벨트, 레드넥, 화이트 트레시- 이 왜 중요한지를 알려주는 책이다. 가난한 백인들의 역사를 보여주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힐빌리의 노래>, 그들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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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과 음악의 완벽한 조합
가을을 대표하는 페스티벌로 자리매김한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 2017’이 10월 21∼22일 올림픽공원에서 열린다. 양일간의 라인업은 모두 공개된 상태다. 브로콜리너마저, 데이브레이크, 검정치마, 페퍼톤스, 정준일 등 인디신의 강자들이 총출동해 관객의 감성을 책임진다. 자이언티, 딘, 박재범, 창모 등 힙합 아티스트들의 무대도 만날 수 있으며, 최근 주목받고 있는 신해경, 문문, 위아영 등 루키들의 무대도 기대를 모은다. 인터파크와 예스24에서 예매 가능하다. 자세한 정보는 홈페이지(www.grandmintfestival.com)에서 확인하자.
용감한 자매들의 이야기
한국 땅에서 페미니스트로 살아가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이들의 생생한 증언을 보라. 2007년부터 2016년까지, 한국여성민우회 소식지 <함께가는 여성>에 실린 활동가들의 글을 엮은 신간 <온갖 무례와 오지랖을 뒤로하고 페미니스트로 살아가기>가 출간됐다. 외모, 결혼,
[culture highway] 가을과 음악의 완벽한 조합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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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말할 수 있다.” 영어 ‘I can speak’의 한국어 번역은 그러할 것이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에서는 주인공 나옥분(나문희)이, 자신이 과거 강제동원된 위안부로 겪었던 피해 사실을 미국 의회에서 증언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도 쓰인다. ‘말할 수 있다’는 자신이 겪은 고통을 사회화하겠다는 의지라고, 나는 오랫동안 믿어왔다. 그 말의 첫 번째 청자가 자신이라는 것도 중요하다. 김승섭 보건학자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은 그 ‘말하기’의 중요성을 다룬다. 이 책의 첫 챕터인 ‘말하지 못한 상처, 기억하는 몸’은 특히 모두에게 권하고 싶은데, ‘말하기’의 의미와 중요성을 잘 전하고 있어서다.
김승섭 교수가 한국의 노동자들이 겪는 차별 경험을 연구하기 위해 설문조사를 진행하던 때의 일이다. ‘귀하는 새로운 일자리에 취업할 때 차별을 겪은 적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이 있었다. 답변은 세 항목 중 하나에 체크하는 식이었는데 ‘예, 아니오, 해당사항 없음’이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아픔이 길이 되려면>, 말하기 그리고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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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린치의 모든 것
영화감독들의 영화감독, 데이비드 린치의 작품세계를 아우르는 기획전이 열린다. <데이빗 린치 특별전-ALL ABOUT David Lynch>가 9월 21일부터 전국 10개 CGV아트하우스에서 순회상영된다. 린치의 데뷔작 <이레이저 헤드>부터 최근 미드로 화제가 되고 있는 <트윈 픽스>의 극장판, 칸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린치의 대표작 <멀홀랜드 드라이브>와 데이비드 보위, 마릴린 맨슨 등이 O.S.T에 참여해 화제가 된 <로스트 하이웨이> 등 린치가 연출한 네편의 극영화와 예술가로서 그의 삶을 조명한 신작 다큐멘터리 <데이빗 린치: 아트 라이프>까지 총 다섯편의 영화가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자세한 정보는 CGV 홈페이지 참조.
글자, 신체와 만나다
한국타이포그라피학회가 주관하는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 ‘타이포잔치 2017’이 열린다. 올해 축제는 ‘몸’을 주제로 신체의 움직임과 문자
[culture highway] 데이비드 린치의 모든 것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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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질문에는 일종의 폭력이 내재되어 있다. 질문을 하는 입장이 아닌 받는 입장이 되어서야 그것을 알았다. 인터뷰어로서 답변자에게 질문을 퐁당퐁당 잘도 던지곤 했는데 돌이켜보면 그중 몇은 무례했거나 혹은 질문의 방식이 틀렸던 것 같다. 특히 결혼, 출산 등에 관련한 질문은 대부분 여성을 향한 편견을 품고 있으며 상대에 대한 진심어린 호기심보다는 배려 없는 공격성을 띠고 있기 쉽다. 이를테면 이런 질문들. “왜 연애를 안 하세요?” “결혼은 언제 해요?” “2세 계획은 없으세요?” 연애 중이든 아니든, 혼인 상태이든 아니든, 아이가 있든 없든… 사람들은 끊임없이 타인의 상태에 대해 묻는다. 리베카 솔닛 역시 ‘여성성’을 규정하는 공격성 어린 질문을 자주 받았다. 사람들은 그녀가 이룬 성취와 ‘낳은’ 책에 대해서보다 ‘왜 아이를 낳지 않는지’를 물었고, 출산을 부정하는 삶의 방식이 혹시 유년 시절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에서 비롯되지 않았는지를 추론하기까지 했다. 솔닛은 그런 질문을 하는
씨네21 추천도서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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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아메미야 하토코)는 어릴 적부터 대필가인 할머니에게 혹독한 글쓰기 훈련을 받으며 자란다. 에도시대부터 대필을 가업으로 이어온 아메미야 집안의 후손인 그녀는 가마쿠라에서 ‘츠바키 문구점’을 운영하며 알음알음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대필’을 해준다. 편지 대필은 물론이고 메뉴판, 간판, 축하 및 위로 서한 등 포포의 대필 업무는 다양하다. <달팽이 식당>의 오가와 이토를 기억한다면 <츠바키 문구점>도 이야기 전개 방식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달팽이 식당>이 식당에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음식으로 위로를 전했다면 <츠바키 문구점>은 손편지로 따스한 위안을 준다. 손편지는커녕 손으로 쓰는 것이라고는 카드 영수증 사인밖에 없는 요즘같은 때 포포의 ‘대필업’은 다소 생경하다. 일단 의뢰인의 사연을 충분히 경청한 후 그의 성격과 말씨까지 담아 필체를 만들고 편지지와 먹의 색깔을 고른다. 지난 첫사랑에게 순수하게 안부를 전하고 싶다는 의뢰인의 편지를 대
씨네21 추천도서 <츠바키 문구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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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4월 20일 화요일. 에릭과 딜런은 사제 폭탄을 짊어지고 학교로 향한다. 목표는 ‘세상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흔적’을 남기는 것. 소년들은 철저히 준비했다. 학교 식당에 사람이 가장 많을 시간, 어디에 설치해야 많은 희생자를 낼지 시간표와 동선을 짰다. 다행히 폭탄은 터지지 않았지만 그들은 무차별 총격을 난사했다. 13명이 사망하고 24명이 부상당했다. 발생 18년이 지났지만 ‘콜럼바인고등학교 총격사건’은 미국 사회에서 여전히 해석 불가한 사건으로 남아 있다. 특이점이 별로 없었던 두 소년이 ‘도대체 왜’ 그런 짓을 저질렀는가에 대한 추측만이 무성했다. ‘그 아이가 왜 그랬을까’를 계속 곱씹어본 책이 지난해 출간된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가해자 아이 중 딜런의 어머니인 수 클리볼드가 썼다)라면 <콜럼바인>은 수만쪽의 문서와 생존자 인터뷰, 현장 답사를 통해 가장 객관적으로 사건 전체를 조망한 치밀한 ‘보고서’다. 사건이 일어난 시각을 시간대별로
씨네21 추천도서 <콜럼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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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전쟁이 한창인 버지니아주,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마사 판즈워스 여자 신학교에 머무르고 있는 어밀리아는 숲에서 심각한 부상을 입은 군인을 발견한다. 그의 이름은 존 맥버니, 첫만남부터 겁먹은 소녀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는 14살이라는 어밀리아에게 대뜸 “키스는 해봤을 나이구나”라며 추파를 던진다. 그에게 친근감을 느낀 어밀리아는 여자들만 머물고 있는 학교로 그를 데려가고, 교장인 마사와 그녀의 동생 해리엇, 학생인 에드위나, 에밀리, 얼리샤와 마리는 존의 등장으로 저마다 마음이 일렁인다. 소피아 코폴라가 영화화한 <매혹당한 사람들>의 원작 소설이다. 1971년 돈 시겔 감독의 작품과 2017년 개봉한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영화, 그리고 원작까지 셋을 비교하고 싶다면 책은 가장 마지막에 접해도 좋겠다. 단절된 여학교라는 공간에 낯선 남자가 나타났을 때 그를 둘러싼 여성들의 질투와 관계 변화가 원작에서는 더욱 솔직하게 묘사되어 있다. 소설에서는 각 인물의 시점을 오가며 사건을
씨네21 추천도서 <매혹당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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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알 것 같지만, 조금도 모르겠다. 매일같이 얼굴을 마주하고 속내를 허물없이 털어놓는 관계라 해도 우리는 타인의 마음에 어느 정도나 가닿을 수 있을까. 이달의 북엔즈에서는 인간 심연에 대한 생생한 묘사가 돋보이는 네권의 책이 꽂혔다. 명절을 비롯한 쉼표가 군데군데 박힌 10월을 앞두고 책장에 미리 꽂아두어도 좋을 책들이다. 여자들만 있던 단절된 공간에 한 남자가 등장함으로써 그들 안에 일어나는 소요를 그린 소설, 잘 쓴 글씨와 편지로 투명하게 마음을 전하는 대필가가 주인공인 소설, 미국에서 세기말에 일어난 충격적인 사건 ‘콜럼바인고교 총기난사사건’ 가해자들의 심연에 가장 객관적으로 접근한 논픽션, 여자를 사람이 아닌 여자로만 존재하게 하는 질문들에 맞서 침묵하지 않을 것을 직설하는 에세이, 분야는 다르지만 모두 실체에 가까이 가보려는 노력들이 돋보이는 책들이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의 리베카 솔닛의 신작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
씨네21 추천도서 - 9월 서가에 꽂힌 네권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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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의 작가로, 배우로 활동했으며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의 조이 목소리 배우, 드라마 <팍스 앤드 레크리에이션> 배우, 그리고 티나 페이와 호흡을 맞춰 오랫동안 동료이자 친구로 여러 코너를 함께해온 에이미 폴러의 에세이. 여성으로서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일한다는 것은 어떤 뜻인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유머러스하게 풀어낸 책이다. 대중에 노출된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 커리어를 어떻게 꾸려가야 할지 오래 고심해온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커리어는 마치 나쁜 남자친구 같아서 적게 신경 쓰고 원하는 것을 흘려보내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말을 꺼내면서 오랫동안 어렵게 일을 따라다닌 시간을 적은 부분은 에이미 폴러의 에세이스트로서의 재능이 빛난다.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예스 플리즈>, NO! 보다 강한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