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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절기> <니나 내나> <당신의 부탁>을 쓰고 그린 이동은(글)과 정이용(그림)의 신작 그래픽노블 <요요>. 이동은 감독의 글을 <씨네21> 가장 마지막 페이지에 자리한 ‘디스토피아로부터’ 지면에서 읽어온 독자라면 영화 소식만큼이나 반길 신작 그래픽노블 소식이다. 던지면 제자리로 돌아오는 요요처럼 눈을 뜨면 특정 날짜, 특정 시간을 반복해 살아가는 주인공이 있다. 고시원과 택시 안에서 하루가 시작되면 월요일인데 일요일 같은 세상에 던져진 두 주인공이 등장한다. 희진은 고시학원 문이 닫힌 데 당황하고 경호는 불 꺼진 사무실에 놀란다. 그리고 알게 된다. 지금은 ‘어제’다. 어제가 반복되고 있다. 당황한 경호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전화를 건 희진은 “어제 우리… 만난 것 맞죠?”라고 묻는다. 두 사람은 소개팅을 했고, 두 사람만 ‘정상’이다. 혹은 비정상이거나. 어떻게 살아도 그 자리로 돌아오는 그들은 각자 살아가다가 6개월이 지나
씨네21 추천도서 <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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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에 대해선 쉽게 안다고 말하면서 남들은 나에 대해 조금도 모른다고 여긴다. 타인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저 사람은 저게 다일 거야’라고 판단하면서, 자신에 대해서는 ‘나는 열심히 하지 않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건 또 어떤가. ‘사람에게 좀더 상냥하게 대해야지, 타인을 쉽게 재단하지 말아야지’라고 매번 다짐하면서도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그럴 때마다 책이라도 펼쳐본다. 상처를 주지도, 받지도 않고 남의 마음에 다가서는 데 독서 말고 달리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2월의 <씨네21> 북엔즈는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간과하기 쉬운 타인의 마음에 대해 고민하는 책을 시작으로 문을 연다. 박소란 시인의 시집, <한 사람의 닫힌 문>은 내내 누군가를 가여워한다. 타인을 가여워하는 마음은 동정과는 다르다. 가여워하고 안쓰러워하고 그리워함으로써 우리는 그 사람이 되어볼 수 있다. 영화를 공부하고 싶거나, 영화에 대해 좀더 알고 싶은 초보자를 위한 입문서 <시네 클래스>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2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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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생인 소설가 어슐러 르 귄이 여든을 넘긴 2010년부터 쓴 산문을 묶은 책,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 여든을 넘겨 살아온 세상과 살고 있는 세상, 그리고 후손이 살아갈 세상을 조망한다는 일이 아득하게만 느껴지는 내게 이 책은, 어슐러 르 귄이라는 작가의 소설을 왜 그간 좋아해왔는지를 알게 해주는 글로 가득했다. 첫 번째 글 ‘당신의 여가 시간에’부터가 그렇다. 이는 하버드 대학교로부터 1951학년도 졸업생의 60회 동창회와 관련한 설문을 받은 내용. 당시 그는 하버드와 합병된 래드클리프 대학교를 다녔지만 성별 때문에(여성이라서) 하버드 대학생 대접을 받지는 못했다고 한다. 질문 13번. 당신 가족의 미래 세대가 누릴 삶의 질을 무엇으로 개선할 수 있겠습니까? 그에 대한 두 번째 보기가 ‘미국의 경제 안정과 성장’이었단다. 어슐러 르 귄은 다음과 같이 썼다. “자본주의적 사고가 아니면 생각 없는 자나 할 수 있는 참으로 놀라운 사고의 표본 아닌가. ‘성장’과 ‘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 살기에도 생각하기에도 바쁜 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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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레이디 버드>의 엄마는 차에서 오디오북을 듣는다. 옆자리에 딸을 태우고 오디오북을 듣던 그녀는 청취에 몰입해 갑자기 눈물을 흘린다. 레이디 버드와 엄마가 함께 듣는 책은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다. 한두번 들은 모양새가 아닌데도 엄마는 같은 문장에서 다시 감동한다. 대공황 시대 경제적으로 위태한 소설 속 주인공에 자기 삶을 대입하고 만 것이다. 그녀에게 오디오북은 일상의 BGM이 아니라 집중해서 듣는 독서 행위다. 실직한 남편 몫까지 가계를 책임지고, 야간 근무 후 가사까지 돌보는 고단한 삶에서 엄마가 유일하게 자기 자신을 위해 하는 일이 귀로 듣는 독서다. 책을 읽는 많은 방법 중 가장 편리한 방법이 누군가 읽어주는 것을 귀로 듣는 것이고, 낭독자가 또렷하거나 나긋한 목소리의 배우라면 듣기의 효율은 더욱 올라간다.
한국 단편소설 걸작을 배우들이 나누어 낭독한 <100인의 배우, 우리 문학을 읽다>는 EBS <책 읽어주는 라디오&
씨네21 추천도서 <100인의 배우, 우리 문학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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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있다. 그에게는 유년 시절 각인된 이미지가 하나 있다. 폭력적이었던 그 장면, 그 장면의 의미를 이해하는 여정이 영화 <환송대>의 내용이다. 그 사건이 벌어진 때는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몇년 전. 장소는 오를리공항의 거대한 환송대였다.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고 한 사람의 몸이 쓰러졌다. 그 모습을 경악에 찬 몸짓으로 바라보는 여자가 있었다. 얼마 뒤, 파괴가 시작되었다. 파리는 폐허가 되었다.(이때 등장하는 폐허가 된 도시 사진은 파리가 이미 경험했던 과거의 세계대전에서 가져온 것이리라) 생존자들은 지하에 자리를 잡았고, 주인공은 포로가 되어 그곳에 갇혔는데, 어느 날 그는 시간을 통과하는 실험의 주인공으로 선정된다. 현재를 구하기 위해 그는 시간 속으로 떠나야 한다. 그는 과거 특정한 순간의 이미지에 집착하고 있어서 선정되었고, 고통스러운 과정 끝에 마침내 평화 시기의 장소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환송대 위에서 본 여자를 보게 된다. 1차 실험이 성공하
씨네21 추천도서 <환송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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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인 서인도제도에서는 지배계급이었던 애나는 영국에서 하층계급으로 살아간다. 월터와 사랑에 빠진 애나는 서인도제도에서의 나날을 떠올리곤 한다. 월터에게서 버림받은 뒤 현실과 과거는 더욱 뒤섞인다. 남자에게서 버림받는다는 일은 하층계급의 여자에게는 생존이 걸린 재앙이나 다름없다.
“가끔은 내가 그곳으로 돌아가 있는 듯하고 영국은 하룻밤 꿈처럼 느껴졌다. 어떤 때는 영국이 실제이고 그곳이 꿈이었는데, 나는 결코 그 둘을 제대로 끼워맞추지 못했다.” 이 문장을 진 리스의 소설 <어둠속의 항해>의 두 번째 페이지에서 읽었다. 진 리스가 <제인 에어>에 등장하는 ‘다락방의 미친 여자’, 즉 로체스터씨의 아내였던 버사 메이슨의 전사(前史)를 상상한 소설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를 썼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가 상상한 버사 메이슨은 <어둠속의 항해>의 주인공과도 닮아 보이고 작가 자신과도 무척 닮아 보인다. 실제로 자전적인 소설이라고 알려져 있는 &
씨네21 추천도서 <어둠속의 항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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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작가 중 어느 한명에게 ‘이야기꾼’의 칭호를 내려야 한다면 그것은 단연코 교고쿠 나쓰히코의 차지라고 생각한다. 일본의 기담과 민속학, 종교학을 아우르며 괴이한 사건을 현실에 밀착해 풀어내는 작가다. 교고쿠 나쓰히코의 소설 중 처음 만난 것은 <우부메의 여름>이었다. 책을 읽은 지 10년도 더 되었는데, 지금도 독서 당시 여름의 끈적한 감촉이 기억난다. 더워서 땀이 줄줄 흐르는데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어서 땀을 흘리며 그 길고 긴 이야기를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우부메의 여름>은 내게 괴물을 잉태한 여자의 커다란 배를 펜으로 그린 삽화로 기억되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내 기억에 달라붙어 있던 삽화가 책에는 없었다. 그러니까 책을 읽고 내 멋대로 상상한 그림을 삽화로 기억하고 있었던 거다. 교고쿠는 독자의 기억에 자기가 만들어놓은 묘사를 이미지로 남겨버린다. 교고쿠는 비논리의 대상인 요괴(혹은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낸 귀신)를 확인하는 추리의 과정을 섬세하게
씨네21 추천도서 <후 항설백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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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느끼게 될 감정은 아마도 ‘부러움’일 것이다. 아니, 이렇게나 부지런하다니! 매일 책을 한권씩 읽고 심지어 그걸 매일 기록했어! 이 엄청난 생산력은 무엇인가! 그런데 우습게도 매일 책을 만지거나(저자 서효인과 박혜진은 편집자다), 읽거나 독서일기까지 썼던 저자들의 글에서 자주 언급되는 감정도 ‘부러움’이다. 이들은 명민하고 다정한 문장을 쓴 작가를 애정하거나, 좋은 기획을 한 편집자를 존경한다. 그리고 ‘나도 이런 책을 만들어 끝까지 가보고 싶다’고 다짐한다. 이 얼마나 곡진한 책 사랑인가. 어쩌면 우리는 나보다 조금 나은 누군가를 동경하기 위해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서효인, 박혜진은 민음사에 근무하는 편집자들이다. 이들은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을 만들었다. 이들은 모두 문학 편집자이며, 서효인은 동시에 시인이고, 박혜진은 평론가다. 매일 읽는 것은 아무나 못하는 일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 어려운 일은 매일 읽은 독서를 기록하
씨네21 추천도서 <읽을 것들은 이토록 쌓여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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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되었든 다짐들을 하게 되는 시기다. 그것은 공부나 운동일 수도 있고 건강이나 커리어를 위한 자기 자신과의 약속일 수도 있다. 연초에 하는 다짐들은 필연적으로 ‘미래’적일 수밖에 없는데, 도래한 미래 위에서 또 다른 미래를 걱정한다. <씨네21> 1월의 책꽂이에는 소설과 서평, 오디오북과 사진집 등 여러 종의 책이 꽂혔다. 서효인·박혜진의 독서일기 <읽을 것들은 이토록 쌓여가고>, 교고쿠 나쓰히코의 기담 소설집 <후 항설백물어>, 창비세계문학 66번째 소설 진 리스의 <어둠속의 항해>, 크리스 마커의 영화-소설집 <환송대>, 103명의 배우들이 한국 근현대사 문학을 낭독한 오디오북 <100인의 배우, 우리 문학을 읽다>가 그것이다. 매달 좋은 책들을 뻐근하게 받아들고 서평으로 소개하는 일은 새해에도 계속된다. 이렇게 좋은 책들과 올해의 항해도 시작되었다.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1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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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서부 여행을 갔을 때의 일이다. 버스를 타고 하루 열몇시간씩 이동하는 날이 이어졌다. 창밖의 풍경은 가끔 화성 같았고, 대체로 그곳이 그곳 같았다. 지평선을 원 없이 보던 나날이었다. 가이드는 지루한 낮의 사막을 지나며 밤의 사막에 대해 들려주었다. 그는 별을 보기 위해 인간이 만든 불빛이 없는 높은 곳에 이르러 모든 불을 끄고 차에서 내렸는데, 다음 순간 너무나 두려워서 견딜 수가 없었단다. 하늘이 별로 가득한데, 그 모두가 마치 쏟아져내리는 듯 했다고. 가장 많은 별과 가장 큰 두려움. 그 이야기를 들으며 부러웠던 기억이 난다. 나는 압사당할 공포를 느끼며 별을 본 적이 없다. 내가 밤의 자연에 대해 모르는 건 그 외에도 많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달빛 속을 걷다>는 걷기에 대한 글 다섯편을 엮은 책이다. 첫글이 표제작인데, 밤산책에 대해 썼다. 자연관찰가로 사상가로 유명한, <월든>의 작가답게, 그는 밤의 자연 속을 걷는다. “눈 못지않게 냄새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달빛 속을 걷다> 도시인간풍의 자연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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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문은 닫아걸고 갇혀 지내지만 개인성이 보장되는 공간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적나라하고 노골적인 삶인데 아무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것 같다. 은폐와 폭로의 쾌감은 알면서 말이다.”(<고독할 권리>) 김소연 시인의 산문집 <나를 뺀 세상의 전부>와 이근화 시인의 산문집 <고독할 권리>가 출간됐다. 당연한 노릇이겠으나, 관심사도 정서도 문장의 생김도 시와 산문이 서로 멀지 않다고 생각하며 읽기 시작했는데, 읽다 보니 시와의 비교는 무용하다. 그저 산문으로 이 작가들을 만날 일이다. 김소연 작가가 사계를 따라가며 이런 것과 이렇지 않은 것 사이의 다름과 경계를 탐색하는 글을 쓰며 반짝거린다면 이근화 작가는 다른 장소, 낯선 존재, 예술작품들이라는 타자 사이에서 관계성을 고민한다는 인상을 준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이근화 시인의 딸들과 김소연 시인의 친구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든다. 결국 문장을 빚는 건 사람이다 싶다.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나를 뺀 세상의 전부>, <고독할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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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온 가게에서는 반드시 그 가게의 이름을 딴 커피를 마시는 거예요.” 처음 방문한 카페가 커피를 잘하는 집이면 나도 항상 그렇게 한다. 가게 이름을 딴 블렌드 커피를 마신다. 이른바 ‘시그니처’ 드링크인 셈이다. 최근 한국에는 자기 가게 스타일로 원두를 배합한 블렌드 커피가 메뉴로 있는 경우가 줄었지만 말이다. 요코이 에미의 만화 <카페에서 커피를>에서 죽은 아내가 한 저 말을 떠올리며 커피숍 이름을 딴 커피를 주문하는 백발의 남자가 경험하는 감정들을 따라가다가, 커피 한잔에 담긴 것들을 떠올려보게 되었다.
<카페에서 커피를>은 연작 단편집이다. 한 이야기의 배경에 등장한 인물이 다음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혹은 뒤에 다시 등장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마지막에 이야기가 하나로 뭉쳐지는 식은 아니다. 그저 커피 한잔을 비우듯 이야기는 마무리. 끝. 카페에 가서 마시는 커피만 등장하지도 않는다. 도심부터 농촌까지 놓이는 곳이 바뀌며 수명을 이어가는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카페에서 커피를> 할 얘기가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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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영화’ 역사의 기록
초창기 한국 영화사를 기록한 책 <한국근대영화사>가 출간됐다. 2019년은 한국영화역사 100년이 되는 해다. 그 오랜 기간 가운데 최초의 극장이 설립된 1892년 이후부터 1945년까지는 한국영화 역사의 초석을 다졌던 시기로, 이때 만들어진 영화는 ‘조선영화’라고 불렀다. 이 책은 당시 제작됐던 영화들과 그 제작 과정 등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이제 막 영화가 유입되고 극장이 설립되면서 산업이 형성되어가던 시절의 ‘영화판’은 왕조의 몰락과 일제강점기 등 당대 시대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기념할 만하다. 전 한국영상자료원장 이효인, 현한국영상자료원 선임연구원 정종화, 한상언 박사가 함께 썼다.
소년 만화가 꿈꾸던 대결이 펼쳐진다!
<점프 포스> 한국어판 예약이 1월 17일부터 시작된다. 반다이남코 엔터테인먼트 코리아에서 2월 14일 발매예정인 <점프 포스>는 일본의 <주간 소년점프>의 인기 작품
[culture highway] <영화의 얼굴창조전>, 배우의 얼굴은 어떻게 완성될까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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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적으로 탐구해 실용적 결실을 얻는다.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과 법학자 솔 레브모어가 노화라는 ‘생의 지속’에 대해 대화하는 형식으로 함께 책 <지혜롭게 나이 든다는 것>을 썼다. 키케로의 <나이듦에 관하여>의 형식을 차용하면서 변화시켜 60대에 들어선 두 친구의 대화형식을 의도했는데, 한 주제에 대한 두 사람 각자의 의견을 읽을 수 있다.
<지혜롭게 나이 든다는 것>은 나이듦과 우정, 나이 들어가는 몸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지난날을 돌아보며, 리어왕에게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적절한 은퇴 시기를 생각한다, 중년 이후의 사랑, 노년의 빈곤과 불평등에 관하여,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차례로 논한다. 그리고 맨 마지막의 ‘무엇을 남길 것인가’는 이타성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강조하는데, 앞의 논의들에서도 이타성에 대한 높은 평가를 엿볼 수 있다.
나이듦을 긍정할 수 있는가에 대해 나는 오랫동안 의문을 품어왔는데, 이 책을 보면서 다시 한번 확신하게 됐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지혜롭게 나이 든다는 것> 당신에게는 남길 것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