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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자크 베넥스의 <디바>는 새 장을 연 영화 축에 든다. 이 영화는 과도하다 싶지만 촌스럽지는 않은, 화려한 푸른 색조의 이미지와 이리저리 꼬이는 내러티브가 공존한다. B급 스릴러를 연상시키는 ‘돈가방’ 중심의 내러티브에 오페라 가수의 환상이 구멍을 낸다. 음반취입마저도 거부하는 이 순수한 오페라 가수의 대척점에는 ‘여자를 팔아 마약을 사는’ 파리 암흑가의 지배자가 존재한다. 이 역시 일상적 현실의 자리는 아니다. 한겹 밑바닥이다. 암흑가의 지배자는 경찰서장이기도 한데, 그런 방식으로 현실 밑바닥은 하나로 추하다. 환상으로 통하는 구멍과 추한 밑바닥 사이에 주인공인 우체부 쥘이 낀 채로 존재한다.그가 그 둘을 드나들게 된 것은 ‘카세트’ 때문이다. 녹음된 소리는 주인공으로 하여금 현실에서 환상으로, 다시 밑바닥 현실로 드나들도록 만드는 티켓이다. 오페라 마니아인 이 우체부는 나그라를 통해 몰래 자기가 연모하는 오페라 가수의 목소리를 녹음하여 혼자 즐긴다. 구차한 현실의
이미지의 음악,<디바>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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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네 이발관이 어느덧 7년차가 된 건가 이는 언니네 이발관이라는 이름이 호기심의 대상이던 때로부터 훌쩍 뛰어넘은 시차임을 의미한다. 긴 세월에 비한다면 정규 앨범의 숫자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인디 음악 신의 대표 밴드로 기록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부단한 멤버 교체와 더불어, 인디 신의 침체기 같은 내·외부적 진통도 그들이 뚫고 나온 세월에 포함된다. 그 때문일까. 새로운 라인업(리드기타는 이능룡, 베이스기타는 정무진, 드럼은 전대정)으로 단장하고 발표한 4년 만의 신작 <꿈의 팝송>을 두고 말들이 오간다. 시끌벅적했던 첫 쇼케이스에 이어, 동 날 정도로 불티나게 팔린다는 음반 판매고에 대한 여러 뒷이야기들이 무성하다(진위 여부는 알기 어렵지만).대부분의 밴드들은 통과의례처럼 시간이 흐르면 세련된 사운드를 추구하게 마련이다. 언니네 이발관이라고 예외일까. ‘언니네식 전통’에 따라 주 공격수로 배열된 첫 세곡을 보자. 첫곡 <헤븐(단 한번의 사랑)>과 세
인디밴드 언니네 이발관 새 앨범 <꿈의 팝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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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힘들었던 과거라도 돌아보면 그리워지기 마련이다. 불완전한 인간의 기억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세세한 맥락을 지워버리기 때문이다. 마음의 고통은 무디어지고, 수없이 흘린 눈물이 사라지면 우리는 과거를 추억한다. 오늘 꺼내들어 다시 보는 이상무의 <비둘기 합창>은 지나버린 과거의 초상이다. <비둘기 합창>은 1978년, 70년대의 대표적인 아동잡지 <소년중앙>에 연재된 뒤 1980년 동광출판사에서 단행본 5권으로 출판된 뒤, 딱 22년이 지난 2002년 바다그림판 시리즈로 새 옷을 입었다.만화를 통한 20년 전으로의 여행장르적으로 보면 <비둘기 합창>은 대가족물의 전형적인 구조를 담고 있다. 대가족물은 주로 TV의 일일드라마에서 자주 애용되는 장르로 전체 가족과 연관을 맺은 갈등과 개별 인물들의 소소한 갈등들이 흥미롭게 엇갈리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소프오페라의 갈등구조에 대가족 시트콤의 웃음이 함께 뒤섞인 형태다.TV 미니시리즈로도 각색되
이상무의 <비둘기 합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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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2일 국립중앙도서관 대강당에서는 만화의 날 기념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2002 대한민국 출판만화대상의 수상식도 함께 거행되었는데, 저작상에 <로망스>를 저작한 윤태호, 출판상 부문에는 <비빔툰>을 출판한 문학과 지성사, 공로상에는 만화가 길창덕, 학습만화상에는 아이세움 출판사와 인기상에는 <아색기가>의 양영순과 <열혈강호>의 양재현, 전극진이 공동수상했다. 신인상에는 <꽃>의 박건웅과 <취중진담>의 송채성이 역시 공동수상했다. 저작상, 출판상, 공로상, 학습만화상, 인기상 수상자에게는 문화관광부장관 상패 및 상금 각 500만원이 주어지며, 신인상 수상자에게는 문화관광부장관 상패 및 상금 300만원이 각각 주어진다. 선정된 수상작품은 일정량을 구입하여 해외문화원 및 공공도서관 등에 보급된다. 이번 출판만화대상에서도 확인되는 것은 메이저 만화출판사들의 퇴조와 일반 출판사들의 강세다. 총 8개 부문의 수상작 중
2002 대한민국 출판만화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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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위에 붕 떠 있는 느낌이랄까. 아무리 발버둥쳐도 바닥에 발이 닿지 않는 느낌이랄까.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에 대한 글을 쓰면서, 요즘 들어 자꾸 드는 느낌이다. 많은 부분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장밋빛 청사진만 제시하려는 것은 아닌지, “양치기 소년이 아니냐”는 비판이 결국 사실은 아닌지, 그런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사실, 데모 영상을 볼 수 있는 것만 해도 다행인 현실에서 쓰여지는 글은 본질적으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나는, 우리는, 왜 자칫 공허해질 수 있는 행위를 지속하고 있나. 개인의 기호를 떠나서, 결론은 하나다.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땀방울에 매달려 하루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이 있으니까.<ESP kids>는 디지털드림스튜디오(이하 DDS)가 제작하는 26부작 TV시리즈다. 그동안 이 회사가 만들어온 <런딤> <아크>와 마찬가지로 3D 애니메이션이다. DDS는 그 동안 들인 공에 비해 아직 큰 성과를 내지 못
2099,세기말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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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화 전 육군참모총장이 세상을 떠났을 때 나는 연재 중이던 인터뷰 원고 말미에 다소 뜬금없이, ‘추신’으로 이렇게 썼다. 군 복무 시절 1군사령관일 때 잠깐씩 마주친 그는 표정이 매우 온화했다. 박정희가 사망하고 계엄사령관에 오른 그는 민주화운동 세력에 ‘군부의 희망’으로 비치다가 전두환의 하극상 신군부에 피체, 보충역 2등병으로 강등되고 실형을 살다가 88년 대장 계급을 회복하고 97년 무죄가 확정된 뒤 민주당 상임고문 등을 맡았으나 큰 역할은 하지 못했다. ‘군부의 희망’이 필요하던 시기는 아주 짧았다. 그때 희망이 실현되었다면 5·16에 의해 ‘군사적’으로 왜곡된 한국 현대사가 어느 정도 교정될 수 있었을까, 라고 묻는 것은 부질없지만, 어쩔 수도 없다….세계사에 유례없이 가혹했던 6·25 전쟁을 치르고도 ‘대한민국 군인’이 마음속에서 우러난 존경을 받기 힘들게 된 매우 희한한 남한 상황은 6·25 전쟁의 ‘형식’이 유감스럽게도 민족상잔이었고, 무엇보다 박정희 군사쿠데타
정승화 자서전 <대한민국 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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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다 보면 자꾸 뒤돌아보게 된다. 음악인도 예외는 아니다. ‘히트곡 모음집’ 형태의 음반이나 특정시대의 편집음반이 자주 나오는 것은 꼭 음반사의 이윤동기가 아니더라도 지난 음악을 정리하고픈 음악인의 의사와 무관하지 않다. <Body & Feel>은 어느덧 60대 중반에 접어든 노장 음악인 신중현의 음악인생을 결산하는 기념음반이다.<Body & Feel>(2CD)에 담긴 18곡은 대체로 신중현이 1968년부터 1974년 사이에 만들어 발표(했거나 이때 히트)한 곡들이다. <님아> <커피 한잔> <봄비> <미인> 등은 이 시기 청년들의 ‘애창가요’였고, 신중현은 이른바 ‘솔·사이키 가요’ 열풍을 일으킨 인기 작곡가이자 가수 조련가로서 명성을 날렸다. 어느 정도였냐면, 작곡가와 가수 조련가로서 신중현은 요즘으로 치면 박진영, 서태지, 유영진과 비슷했고, 당시 인기면에서 그가 키운 펄시스터즈, 김추자,
신중현의 히트곡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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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엠 샘>은 기본적으로 이름에 관한 영화다. ‘샘’이라고 너무도 흔하게 이름지어진, 더군다나 ‘장애가 있는’ 사람이라 호명되어 보호소에서 자란 남자가 있다. 그에 의해 ‘루시’라고 너무 구닥다리식으로 이름지어진 딸이 있다. 이 아이는 양부모 밑에서 자라거나 보호소에 맡겨지도록 ‘호명’될 찰라에 있다. 이 영화는 이 두 사람이 이 사회를 어떻게 이름짓는지 보여준다. 이 맥락에서 본다면 이 영화는 제도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는 미국의 복지제도가 일곱살난 딸과 일곱살 정도의 지능을 가진 아버지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다루는지, 다시 말해 그 관계를 어떻게 이름짓는지, 부녀관계라 부를 것인지 말 것인지 심각하고 진지하게 추적해 나가고 있다.그런 동시에 이 영화는 비틀스에 ‘관한’ 영화로 비쳐지기도 한다. 비틀스가 영미 계통의 서양사람 마음속에 어떻게 자리잡아 있는지, 혹은 자리잡아가고 있는지 이 영화는 잘 보여준다. 비틀스 앞에서, 어쩌면 전세계의 모든 사람들은 다 샘
<아이 엠 샘>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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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서 열리는 애니메이션페스티벌 취재를 하다보면 “이런 건 참 괜찮다”고 느끼는 점이 있다. 그중 하나가 영화제 기간 중 어린이를 위한 작품을 모아 따로 상영하는 점이다. 지난해 프랑스 안시페스티벌의 경우 ‘유니세프(유엔아동기금) 프로그램’ 코너가 있었다. 1998년 일본 히로시마페스티벌은 ‘어린이를 위한 애니메이션’, ‘어린이에 의한 애니메이션’(어린이들이 직접 만든 작품)으로까지 세분화해 놓았다. 이런 ‘영양가 높은’ 작품이 상영되는 극장은 아이 손을 잡고 온 부모들로 가득 차게 마련이다. 지난 10월2일부터 6일까지 열린 캐나다 오타와페스티벌도 마찬가지였다. 조직위는 아예 경쟁부문 공모전 중 네 번째 섹션을 어린이용 작품만으로 구성했다.여기엔 두 가지 전제가 깔려 있지 않나 싶다. 첫째 애니메이션이란 어른들을 위한 예술이라는 점, 둘째 그만큼 어린이들을 배려한다는 점이다. “만화영화는 원래 애들이나 보는 것”이라는 인식 아래서는 결코 나올 수 없는 발상인 것이다.몬트리올의 국
어른 애니,어린이 애니 <첫눈을 노래하는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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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쾌걸> 20권 발간<스포츠 투데이>에 인기리에 연재 중인 김진태의 <시민 쾌걸>이 단행본 20권을 발간했다(학산문화사 펴냄). 사회 부조리를 해결하겠다는 열망은 가득하지만 항상 사고만 치고 다니는 비디오가게 주인 조로를 중심으로 다양한 캐릭터들이 개성을 펼쳐 보이고 있는 작품. 시사와 문화의 이슈, 영화와 드라마 패러디, 독특한 SF개그 등 풍부한 소재들에 접근하면서 한국의 토착적인 서민정서를 잘 드러내주는 것이 이 만화의 큰 장점이다. <굿모닝 보스> <보글보글> 등을 통해 국내 개그 만화계의 대표자로 떠오른 김진태는 <시민 쾌걸>의 장기 연재로 자신의 입지를 더욱 단단히 다지고 있다.<청공> 완결하라 히데노리의 청춘 야구만화 <청공>이 전 13권으로 완결 발간되었다. 고교 시절 전국대회에 출전하겠다는 꿈을 키워나가던 한 소년이 여자친구의 폭행사건에 얽혀 인생을 망쳐버리지만, 그가 돌봐주던
<시민 쾌걸>,<청공>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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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 선로에 취객이 떨어졌다. 기차는 달려올 것이고, 그는 죽을 것이다. 누가 그를 구해줄 것인가 많은 생각이 오갈 것이다. 먼저 자신에겐 아무 피해가 없을 것인가를, 나말고 그를 구해낼 사람은 없는가를, 저 사람은 과연 구해낼 가치가 있는가를…. 그러나 그런 판단 이전에 그에게 내달리는 사람이 가끔 있다. 도쿄의 한국인 유학생 이수현씨가 그랬고, 그는 죽었다. 그에게 다시 물어볼 수 있을까 당신이 똑같은 경우에 다시 처하게 된다면, 그를 살리기 위해 달려들 것인가 그런 낯 모르고 가치도 알 수 없는 인간을 위해 자기 목숨을 던질 필요가 있을까 오쿠 히로야의 <간츠>(시공사 펴냄)는 바로 그 물음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현실보다 훨씬 치사하고, 잔인하고, 끈질기게 묻는다.용감한 카토와 어정쩡한 쿠로노가 그 시험장에 들어간 고등학생들이다. 그들은 지하철 선로에 엎어져 있던 노숙자를 구해내려다 열차에 치어 죽는다. 그러나 죽었다고 생각한 그 순간, 정체불명의 방에서 온전한 몸으
오쿠 히로야의 <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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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리만화연대에서는 일반 시민과 만화인이 함께하는 국토순례 <한계령을 넘어 서울로, 만화로>를 개최한다. 강원도 낙산(양양)에서 서울까지 10여일을 함께 걸으며 낮에는 만화가들과 함께 아름다운 우리 산하를 스케치하고, 밤에는 대화의 시간을 갖는다. 일시는 2002년 10월23일(수)에서 11월3일(일)까지 11박12일이며 낙산(양양)에서 출발해 설악 오색, 가리산리, 현리, 상남, 철정리, 상걸리, 춘천, 가평, 새터, 하남을 거쳐 서울로 온다. 구간은 총 3개 구간으로 나누어 1구간은 10월 23일에서 26일까지 서울-낙산(차량이동)에서 현리까지이며, 2구간은 10월27일에서 30일까지 현리에서 춘천까지고, 3구간은 10월31일에서 11월3일까지로 춘천에서 서울로 돌아온다. 각각 구간에서 사인회, 캐리커처, 페이스페인팅 행사가 있다. 참여자는 구간별로 참여할 수 있다. 현재 참여가 예정된 만화가는 이두호, 김형배, 차성진, 백성민, 박재동, 이희재, 오세영, 주완수
우리만화연대 국토순례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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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린의 <불의 검>이 세 번째 옷을 갈아입었다. 두툼하게 단단한 외양으로 무장한 2002년 판본(출판사에서는 ‘애장판’이라고 부른다)을 접하고 내친김에 기왕에 출판된 11권을 다시 읽었다. 돌아보면, <씨네21>의 초창기에 정준영이 쓴 <불의 검>에 대한 평문이 있다. 그때는 격주간 <댕기> 시절에 나온 판본이니 아마 8권으로 출간된 육영재단 판본을 보고 쓴 글이었을 것이다. 97년 1월에는 <불의 검>이 <댕기>의 폐간으로 연재가 중단된다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출판사쪽은 세 번째 판본에 12권 완결본을 포함해 <불의 검>을 모두 완결한다고 했으니 이번 글 뒤로 완결편을 본 뒤 다시 후속글을 쓰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이렇듯 <씨네21> 지면만을 꼽아도 꽤 많은 조명을 받은 <불의 검>은 다시 읽을 때마다 깊이있는 서사의 재미를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다. 서사가 사라진 요즘
풍요로운 서사의 화폭에 사랑을 담아내다, 김혜린의 <불의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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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벡이 돌아왔다고 ‘이달의 앨범’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앞다투어 외지들이 대서특필한다던데 연륜있는 <롤링스톤>도 별 다섯을 아낌없이 줘버렸다던가 아, 그런데 이번 앨범은 <Mutations>처럼 본인 얼굴이 크게 나온 앨범이라고 하던데 그렇다면 어떤 음악인지 안 들어봐도 알겠군….벡이 3년 만에 발표한 <Sea Change>를 두고 이런 식의 대화를 주고받는 이들이라면 그가 1994년 낙오와 게으름을 강령으로 채택한 청년 송가 <Loser>로 단숨에 ‘승자’의 반열에 올랐다는 사실쯤은 정보축에 끼워주지도 않을 것이다. 온갖 음악을 다 꿰어놓고 포스트모던한 패스티시와 ‘믹스 앤 매치’로 집성된 사운드 콜라주를 아무렇지도 않게 풀어놓곤 한다는 그의 천재 신화나, 생부인 블루그래스 뮤지션 데이비드 캠벨을 위시한 예술가 가계도 역시 가십거리쯤 되려나.그렇다면 (물론 틈틈이 새로운 곡들이 홈페이지에서 공개되어 왔으므로 예측가능했지만) 이번 앨범의
벡의 신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