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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엠 샘>은 기본적으로 이름에 관한 영화다. ‘샘’이라고 너무도 흔하게 이름지어진, 더군다나 ‘장애가 있는’ 사람이라 호명되어 보호소에서 자란 남자가 있다. 그에 의해 ‘루시’라고 너무 구닥다리식으로 이름지어진 딸이 있다. 이 아이는 양부모 밑에서 자라거나 보호소에 맡겨지도록 ‘호명’될 찰라에 있다. 이 영화는 이 두 사람이 이 사회를 어떻게 이름짓는지 보여준다. 이 맥락에서 본다면 이 영화는 제도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는 미국의 복지제도가 일곱살난 딸과 일곱살 정도의 지능을 가진 아버지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다루는지, 다시 말해 그 관계를 어떻게 이름짓는지, 부녀관계라 부를 것인지 말 것인지 심각하고 진지하게 추적해 나가고 있다.그런 동시에 이 영화는 비틀스에 ‘관한’ 영화로 비쳐지기도 한다. 비틀스가 영미 계통의 서양사람 마음속에 어떻게 자리잡아 있는지, 혹은 자리잡아가고 있는지 이 영화는 잘 보여준다. 비틀스 앞에서, 어쩌면 전세계의 모든 사람들은 다 샘
<아이 엠 샘>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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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서 열리는 애니메이션페스티벌 취재를 하다보면 “이런 건 참 괜찮다”고 느끼는 점이 있다. 그중 하나가 영화제 기간 중 어린이를 위한 작품을 모아 따로 상영하는 점이다. 지난해 프랑스 안시페스티벌의 경우 ‘유니세프(유엔아동기금) 프로그램’ 코너가 있었다. 1998년 일본 히로시마페스티벌은 ‘어린이를 위한 애니메이션’, ‘어린이에 의한 애니메이션’(어린이들이 직접 만든 작품)으로까지 세분화해 놓았다. 이런 ‘영양가 높은’ 작품이 상영되는 극장은 아이 손을 잡고 온 부모들로 가득 차게 마련이다. 지난 10월2일부터 6일까지 열린 캐나다 오타와페스티벌도 마찬가지였다. 조직위는 아예 경쟁부문 공모전 중 네 번째 섹션을 어린이용 작품만으로 구성했다.여기엔 두 가지 전제가 깔려 있지 않나 싶다. 첫째 애니메이션이란 어른들을 위한 예술이라는 점, 둘째 그만큼 어린이들을 배려한다는 점이다. “만화영화는 원래 애들이나 보는 것”이라는 인식 아래서는 결코 나올 수 없는 발상인 것이다.몬트리올의 국
어른 애니,어린이 애니 <첫눈을 노래하는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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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쾌걸> 20권 발간<스포츠 투데이>에 인기리에 연재 중인 김진태의 <시민 쾌걸>이 단행본 20권을 발간했다(학산문화사 펴냄). 사회 부조리를 해결하겠다는 열망은 가득하지만 항상 사고만 치고 다니는 비디오가게 주인 조로를 중심으로 다양한 캐릭터들이 개성을 펼쳐 보이고 있는 작품. 시사와 문화의 이슈, 영화와 드라마 패러디, 독특한 SF개그 등 풍부한 소재들에 접근하면서 한국의 토착적인 서민정서를 잘 드러내주는 것이 이 만화의 큰 장점이다. <굿모닝 보스> <보글보글> 등을 통해 국내 개그 만화계의 대표자로 떠오른 김진태는 <시민 쾌걸>의 장기 연재로 자신의 입지를 더욱 단단히 다지고 있다.<청공> 완결하라 히데노리의 청춘 야구만화 <청공>이 전 13권으로 완결 발간되었다. 고교 시절 전국대회에 출전하겠다는 꿈을 키워나가던 한 소년이 여자친구의 폭행사건에 얽혀 인생을 망쳐버리지만, 그가 돌봐주던
<시민 쾌걸>,<청공>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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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 선로에 취객이 떨어졌다. 기차는 달려올 것이고, 그는 죽을 것이다. 누가 그를 구해줄 것인가 많은 생각이 오갈 것이다. 먼저 자신에겐 아무 피해가 없을 것인가를, 나말고 그를 구해낼 사람은 없는가를, 저 사람은 과연 구해낼 가치가 있는가를…. 그러나 그런 판단 이전에 그에게 내달리는 사람이 가끔 있다. 도쿄의 한국인 유학생 이수현씨가 그랬고, 그는 죽었다. 그에게 다시 물어볼 수 있을까 당신이 똑같은 경우에 다시 처하게 된다면, 그를 살리기 위해 달려들 것인가 그런 낯 모르고 가치도 알 수 없는 인간을 위해 자기 목숨을 던질 필요가 있을까 오쿠 히로야의 <간츠>(시공사 펴냄)는 바로 그 물음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현실보다 훨씬 치사하고, 잔인하고, 끈질기게 묻는다.용감한 카토와 어정쩡한 쿠로노가 그 시험장에 들어간 고등학생들이다. 그들은 지하철 선로에 엎어져 있던 노숙자를 구해내려다 열차에 치어 죽는다. 그러나 죽었다고 생각한 그 순간, 정체불명의 방에서 온전한 몸으
오쿠 히로야의 <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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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리만화연대에서는 일반 시민과 만화인이 함께하는 국토순례 <한계령을 넘어 서울로, 만화로>를 개최한다. 강원도 낙산(양양)에서 서울까지 10여일을 함께 걸으며 낮에는 만화가들과 함께 아름다운 우리 산하를 스케치하고, 밤에는 대화의 시간을 갖는다. 일시는 2002년 10월23일(수)에서 11월3일(일)까지 11박12일이며 낙산(양양)에서 출발해 설악 오색, 가리산리, 현리, 상남, 철정리, 상걸리, 춘천, 가평, 새터, 하남을 거쳐 서울로 온다. 구간은 총 3개 구간으로 나누어 1구간은 10월 23일에서 26일까지 서울-낙산(차량이동)에서 현리까지이며, 2구간은 10월27일에서 30일까지 현리에서 춘천까지고, 3구간은 10월31일에서 11월3일까지로 춘천에서 서울로 돌아온다. 각각 구간에서 사인회, 캐리커처, 페이스페인팅 행사가 있다. 참여자는 구간별로 참여할 수 있다. 현재 참여가 예정된 만화가는 이두호, 김형배, 차성진, 백성민, 박재동, 이희재, 오세영, 주완수
우리만화연대 국토순례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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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린의 <불의 검>이 세 번째 옷을 갈아입었다. 두툼하게 단단한 외양으로 무장한 2002년 판본(출판사에서는 ‘애장판’이라고 부른다)을 접하고 내친김에 기왕에 출판된 11권을 다시 읽었다. 돌아보면, <씨네21>의 초창기에 정준영이 쓴 <불의 검>에 대한 평문이 있다. 그때는 격주간 <댕기> 시절에 나온 판본이니 아마 8권으로 출간된 육영재단 판본을 보고 쓴 글이었을 것이다. 97년 1월에는 <불의 검>이 <댕기>의 폐간으로 연재가 중단된다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출판사쪽은 세 번째 판본에 12권 완결본을 포함해 <불의 검>을 모두 완결한다고 했으니 이번 글 뒤로 완결편을 본 뒤 다시 후속글을 쓰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이렇듯 <씨네21> 지면만을 꼽아도 꽤 많은 조명을 받은 <불의 검>은 다시 읽을 때마다 깊이있는 서사의 재미를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다. 서사가 사라진 요즘
풍요로운 서사의 화폭에 사랑을 담아내다, 김혜린의 <불의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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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벡이 돌아왔다고 ‘이달의 앨범’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앞다투어 외지들이 대서특필한다던데 연륜있는 <롤링스톤>도 별 다섯을 아낌없이 줘버렸다던가 아, 그런데 이번 앨범은 <Mutations>처럼 본인 얼굴이 크게 나온 앨범이라고 하던데 그렇다면 어떤 음악인지 안 들어봐도 알겠군….벡이 3년 만에 발표한 <Sea Change>를 두고 이런 식의 대화를 주고받는 이들이라면 그가 1994년 낙오와 게으름을 강령으로 채택한 청년 송가 <Loser>로 단숨에 ‘승자’의 반열에 올랐다는 사실쯤은 정보축에 끼워주지도 않을 것이다. 온갖 음악을 다 꿰어놓고 포스트모던한 패스티시와 ‘믹스 앤 매치’로 집성된 사운드 콜라주를 아무렇지도 않게 풀어놓곤 한다는 그의 천재 신화나, 생부인 블루그래스 뮤지션 데이비드 캠벨을 위시한 예술가 가계도 역시 가십거리쯤 되려나.그렇다면 (물론 틈틈이 새로운 곡들이 홈페이지에서 공개되어 왔으므로 예측가능했지만) 이번 앨범의
벡의 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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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MCA야구단>은 흔치 않은 시대극이다. 무협역사물을 제외하면 순정영화나 코미디나 깍두기영화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영화가 당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 속셈은 빤하다. 공감의 장치고 뭐고 필요없이 당대의 관객에게 직접 흥행하겠다는 것. 그런데 이 영화는 과감하게 당대를 떠난다. 이 점에서 우선 장하다는 생각이 든다.음악은 방준석이 맡았다. 지난번에 <후아유>의 음악을 소개하는 자리에서도 방준석은 소개되었다. 아주 잘 나가는 영화음악가 중 한 사람이다. <후아유>에서는 록밴드 출신 뮤지션답게 록적인 사운드를 살리더니 이번에는 시대극이라는 장르적 특성에 맞추어 다양한 음악적 요소들을 사용하고 있다. 사실 음악적으로 이 영화의 배경인 구한말 분위기에 접근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왜냐, 이 시대 자체가 무엇이 포인트인지 갈피가 안 잡히는 시대였으니까.이럴 때 접근법은 세 가지쯤 된다. 하나는 그 시대의 음악적 분위기를 살리는 것.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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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일선은 80년, 전두환 신군부 정권이 폐간시키기 직전 <창작과 비평> ‘마지막호’로 나와 함께 등단한 시인이다. 신경림 전통을 잇는 새로운, 좀더 전투적인 농촌시인이라는 평가를 들었다. 강형철(시인·민족문학작가회의 상임이사)은 그때 아무 생각없이 다음호로 밀렸다가 폐간의 철퇴를 고스란히 당하고 몇년이 지나서야 ‘신작 시집’ 출판물 형태로 등단했다. 단행본 혹은 ‘연간’ 무크지 형식으로 계간 역할을 대신한 ‘신작 시집’은 창비가 복간되기까지 몇 차례 더 나왔고 우수한 시인들을 많이 배출했지만 ‘신작 시집 등단’이란 말은 아무래도 어색하고, 자비 출판 오해도 불러일으키기 십상이니 ‘시대의 부름에 응답’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어쨌거나, 홍일선과 나는 똑같이 턱걸이한, 운좋은 처지였으나 동시에, 그와 비교되는 것은 늘 ‘고초’였다. 당시 ‘민족’ 문단의 농민시 혹은 농촌 정서 선호는 정말 대단한 거라서 그는 모범적이고 교과서적인 시인이었던 반면 서울 출신에 고학력
시지 <시경> 2002 창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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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이 복잡할수록 생각없이 웃고 즐길 수 있는 것을 찾게 된다. 인디펜던스가 제작하는 <에그 콜라>는 ‘콜라’를 소재로 한 요절복통 코믹애니메이션이다. <원더풀 데이즈>의 3D를 담당했던 인디펜던스는 원래 CF 전문 프로덕션. 처음으로 3D 장편애니메이션영화에 도전하는 이곳의 야심은 만만치 않다. “조금 잘 만들어서 팔아보자는 게 아니라 할리우드도 깜짝 놀라게 할 작품을 만들겠다”는 것이 홍성호 감독의 포부다. 그만큼 대규모 자본과 시간을 들이겠다는 뜻이다. 얼마 전에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이 실시한 스타 프로젝트의 지원작으로 선정되는 쾌거를 올리기도 했다.에그 콜라, 번역하면 계란 콜라인데 제목에서부터 상충되는 이미지가 코믹하다. ‘콜라’만큼 전세계적으로 통하는 기호가 없다는 제작진의 생각에서 작품 아이디어가 나왔다. 등장인물은 어설픈 가족 해적단. 항상 불만에 가득 찬 소년 죠가 주인공이다. 할아버지와 두 삼촌의 뒤를 잇는 해적단의 막내인
노른자위를 노린다! <에그 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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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헤드윅>은 원래 성공한 오프-브로드웨이 뮤지컬이었다가 영화화되어 역시 좋은 반응을 얻은 작품이다. 그런 면에서는 <록키 호러 픽쳐쇼>와 많이 닮아 있다. 그러나 영화의 형식은 <헤드윅>이 좀더 로큰롤 공연을 중심으로 하고 있고 이야기도 훨씬 직접적으로 정치적이다.
이 세상에는 정치적 장벽과 성적 장벽이 있다. 하나는 큰 틀이고 몸 바깥에서 존재를 규정하며 다른 하나는 작은 틀이고 몸 안에서 몸들 자체를 구분한다. 그러나 정작 그 둘 모두는 일상적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같을 수 있다. <헤드윅>은 성적 구분의 중요한 장치인 성기를 제거하는 행위가 얼마나 정치적인지 보여준다. 주인공 헤드윅은 그 제거를 통해 정치적 장벽을 상징적으로 넘지만, 벽은 끝없이 존재한다. 법적인 차원의 벽 너머에는 통념의 벽이 존재한다. 그래서 그는 여전히 4인치를 자르고 난 다음의 1인치만 남은, 성난 ‘1인치’로 세상 앞에 서 있다.
그렇다면 그런 사람들
헤드윅, 정치와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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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 어린 소녀들의 눈동자는 공허한 듯 맑다. 희로애락에 연연하지 않는 듯 무표정한 얼굴은 세상과 타인에 대한 호기심이나 긴장감 등 감정의 미세한 떨림을 섬세하게 드러낸다. 대강의 스케치 과정을 생략한 채 곧바로 캔버스에 붓을 대고 그려낸 담백하고 부드러운 선과 맑은 색채, 하얀 여백의 트라이앵글이 만들어낸 맑은 시정은 그대로 보는 이를 어린 날 추억의 한 모퉁이로 데려갈 듯 생생하다.<작은 새가 온 날>과 <이웃에 온 아이>는 일본의 화가 겸 일러스트레이터인 이와사키 치히로의 시화집 가운데 1차분으로 발간된 책. ‘치히로 아트북 시리즈’는 1968년부터 1974년까지 그녀가 직접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 일본의 메이저출판사인 지광사를 통해 1년에 1권씩 발표했던 창작그림책이다. ‘어린이처럼 투명한 수채화의 화가’라는 애칭에 걸맞게 그녀의 작품들은 스케치와 유화 등 서양식 기법과 수묵담채, 서예 등 동양식 기법이 접목해 만들어진 독특한 질감과 색감이 돋보이는
이와사키 치히로 시화집 <작은 새가 온 날> <이웃에 온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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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기자라는 자들이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대체로 주의를 요한다. 입조심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진기자는 괜찮지 않을까 나는 외모가 별로 아니라서 찍히지 않게끔 역시 주의를 해야 하는데, 그것보다는 몸조심을 더 해야 한다. 모두 현장에서 뼈대가(아니 어깨가) 굵은 경우라 술김에서 어영부영 시비걸다가는 얻어맞고도 동정은커녕 미련하다는 핀잔듣기 십상이다. 하여, 신문사를 가는 일이 있으면 빈자리가 있더라도 혹시 사진기자, 특히 사진부장 자리가 아닌가 꼭 확인해보고 앉는 게 좋다.박용수(한글문화연구회 회장)는 그 이름도 전설적인 허바허바사진관 사진사 출신으로 노조운동을 하다 쫓겨난 뒤 70년 말부터 데모와 단식, 그리고 분신자살 현장을 누비며 스스로 옥고도 치르면서 사진을 찍어왔으니 정말 사진기자 중 사진기자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공개)민주화운동 사진 중 50% 이상이 그의 손과 눈을 거쳤다. 청각장애인에 고희가 코앞인데 경찰과 사복형사들의 만류를 어영부영 못 들은 척(사실 못 듣는다
박용수 상 받던 한글날 국립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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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2024년, 우주비행사를 꿈꾸는 한 소녀의 이야기. 과연 어떤 장면이 펼쳐질지 우리의 만화적 상상력을 빌려보자. 이미 두어번 외계의 침공을 받아 황폐화된 지구, 수백층 고층 빌딩 사이에서 튀어나와 곧바로 하늘로 올라가는 비행정, 명왕성을 지나자 은빛 날개를 접고 웜홀을 통해 은하 저편으로 순간이동하는 거대 로봇…. 하지만 이처럼 상식적인 미래에 대한 우리의 추측은 오래지 않아 무너지고 만다. 왜냐하면 이 만화는 미래와 그것이 가져올 눈부신 변화가 아니라, 그때쯤에는 당연히 사라져야 마땅할, 그래서 그곳에 남아 있다는 것이 신기한 과거의 꿈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최근 국내에 번역되어 나오고 있는 <트윈 스피카>(ふたつのスピカ, 세주문화 펴냄)는 신예 만화가 야기누마 고우(柳沼行)가 잡지 <코믹 플래퍼>(Comic Flapper)에 연재하고 있는 작품이다. 야기누마는 데뷔작 ‘2015년에 쏘아올린 폭죽’과 그뒤의 단편들에서 일본 최초의 유인우주탐사로켓 ‘사자
야기누마 고우의 <트윈 스피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