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연말이면 임옥상(화가)은 바쁜 중에도 저명인사와 예술가를 ‘조촐하게’ 평창동 작업실로 초청, 포도주 위주의 망년회를 연다. 누굴 초청해서 술과 음식을 즐기는 파티문화보다는 돈 내고 심적 부담없이 시켜먹는, 마냥 죽치기 술집 분위기를 더 좋아하는 나로서는(왜냐며 술 먹은 것도 부담인데, 어영부영 술안주 시중을 들리거나 아니면 내가 직접 챙겨 먹어야 한다면 얼마나 부담인가. 그래서 나는 집이나 사무실에서 거의 절대로 술을 먹지 않는다) 그것만 해도 신기한데, 그는 자신의 1년 작업에 대한 충실한 보고를 마련하는 것 외에 특별공연을 마련한다.
올해의 특별 초대손님은 이은미(가수), 그리고 특별공연은 시가 800만원짜리 19세기 독일 손풍금 연주였다. 이은미는 모처럼 쉬러 왔으니 유쾌했고, 파이프오르간과 구조가 똑같다는 손풍금 연주는, 놀라웠다. 마치 기계로 소리의 내용과 질을 높이는 데 너무 혈안이 된 나머지 잊어버렸던 아니 지워버렸던 음의 처녀성 그 자체를 내뿜으며, 음악과 세상의 경계를 하염없이 간질러댔던 것. 두루마리 한 뭉치를 넣고 돌리면 노래가 흘러나온다. 저게 무슨 악본가보지 …그랬더니 옆에 앉았던 마혜일(무용가)이 그런다. 이를 테면 실행파일인 셈이죠…. 맞아 그렇군…. 엘비스 프레슬리가 부르는 <노래는 즐겁구나>의 서주가 바로 손풍금 소리였던 것 같다…. 아, 최소한 음악에 관한 한 옛날 사람들이 더 행복했을지도 모르겠네…. 아니 분명, 하늘에 더 가까웠을 거다. 고딕성당처럼 높아서가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 미소로 번졌을 터. ‘처녀성’이므로 질펀할 걱정도 없이….
이윤기(소설가)의 과천 집은 넓고 단아했다. 특히 서재는 치밀하면서도 푸근한 것이 이윤기라는 이름이 뜻하는 박학다식과 창작열, 그리고 영국 신사를 연상시키는 손님 환대 능력을 그대로 형상화해놓은 듯했다. 서울 밖으로 나가본 것도 오랜만이고, 나로서는 매우 피곤한 일이고, 나는 원래 초청자 명단에 없는, 이를 테면 불청객인 셈인데도 어색한 기분은 채 1분도 가지 않았다.
권영길을 찍을 거였는데, 정몽준이 갑자기 배반을 때리는 바람에, 허겁지겁 노무현 찍었네… 권영길 한테 미안해…. 그러면서도 ‘노무현 당선’은, 특히 예술가들에게, 고난을 딛고 일어선, 명작 드라마를 방불케 하는, 그 자체로 다음 세대에게 교훈과 희망을 주는 경사였던 듯하다. 이날은 기타리스트 김광석의 큰기타 작은기타 연주가 특별순서였고, 일품이었다. 김정헌(화가)은 상당한 카바레 춤솜씨를 내비쳤고 직지사에 있다는 스님은 정말 정갈했고, 최열(환경연합 사무총장)은 북한의 ‘굶주림의 핵’이 걱정이었다. 그렇구나.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김정환/ 시인·소설가 maydapoe@thrune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