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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그러나 가슴 뜨끔하게‘만화 같은’이라는 관용어가 있다. 어처구니없는, 허무맹랑한, 유치한, 열혈소년이 나오는, 말도 안 되는 연애가 가능한, 싸구려처럼 보이는, 판타지한, 욕망을 충족시키는 등과 같은 매우 복합적인 의미를 지닌 관용어다. 나는 이 관용어를 싫어했다. 영화잡지를 보다가 ‘만화 같은’이라는 관용어가 나오면 발끈했다.만화는 역사 속에서 가볍지만 진실되게 시대의 모습을 표현한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뒤 온,오프라인상에서 많은 반전 만화들이 나오고 있다. 위 만화는 <딴지일보>에 게재된 양시호의 작품.내가 사랑하는 만화가 왜 너희들에게 ‘만화 같은’이라는 관용어로 활용되어야 하는가. 유사한 용어로 ‘삼천포로 빠지다’는 관용어가 있다. 물론 용법은 ‘만화 같은’과 매우 다르지만. 바보스러운, 주제에서 벗어난 등의 뜻을 갖고 있는 이 관용어에 대해 삼천포 시민들이 무척 반발했다고 한다. 정확한지 모르겠지만 삼천포라는 명칭이 없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만화 같
전쟁을 반대하는 만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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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은, 뭐랄까, 나를 늘 ‘애정=걱정’에 찬 눈으로 바라보는 편이다. 나는 그런 그를 늘 빤히 쳐다보고, 너무 큰, 큰 만큼 여린 그의 눈 안에 들어 있는, 그러니까 그의 걱정의 ‘보호’를 받고 있는 내 모습은 어김없이, 과연, 안쓰럽지만, 그러므로, 나같이 씩씩한(?, 누구는 내가 사막에 홀로 떨어져도 살아나올 놈이라 했다) 사람까지 품어주는 그가 당연히 더 안쓰럽고, 그가 <한국일보> 편집위원(현재는 논설위원)에 출근하고 월급(실업자들에게 ‘월급’이란 단어는 난해한 신화 자체다)까지 받게 되었다는 소식은 내게 그해 가장 반가운 톱 텐 뉴스 중 하나였다.
그가 나를 ‘애정-걱정’하는 대목은 내가 ‘막차 탄 좌파’처럼 보인다는 점과 연관이 있지만 더 구체적으로 생계를 빙자, 너무 많은 글을 쓰고 날린다는 점에 있다(그렇게, 과연, 그는, ‘좌파’ 문학평론가 김철의 표3글처럼, “어떤 ‘좌파들’보다 좌파적이고, 어떤 ‘우파들’보다도 더 “우파적”이다). 기자 주제에…(
걱정하기와 문학하기,고종석 <히스토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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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식의 생각’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치열한 정신의 불가마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그 불가마 속에 일단 들어가면, 운동부족이었던 마음이 소금땀을 흘리고, 사고의 동맥경화를 초래하던 정신의 지방질이 그 적나라한 두께를 드러낸다.한국인에 대한 정신적 이지메가 횡행하던 시절, 16살 재일동포 소년으로 ‘나는 조센징’이라는 커밍아웃을 하고, 진정한 조센징이 되기 위하여 서울 법대로 유학올 때만 해도, 청년 서준식은 현대사의 제물로 예약된 자신의 미래를 내다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조작된 ‘유학생 간첩단’ 사건은 그를 스물세살부터 불혹의 나이까지, 17년 동안 세상의 시야에서 사라지게 만들었다. 벽을 벽으로 느끼지 않았던 맑고 자유로운 눈한테, 군사정권은 7년의 실형과 10년의 보호감호처분을 내려, 오로지 벽만을 쳐다보도록 했던 것이다. 그러나 고문과 구타와 증오의 세월을 이겨낸 그가 바깥세상으로 가지고 나온 것은, 여전히 맑은 눈과 ‘어떤 벽도 인간의 존엄을 가둘 수 없다’는 늙
치열한 정신의 불가마 속으로,<서준식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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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타고올은 고양이의 숲> 출간마스무라 히로시의 메르헨적인 판타지 <아타고올은 고양이의 숲>(대원씨아이 펴냄)이 뒤늦게 국내에 번역되어 나오고 있다. 조용한 주택가의 자동판매기와 담 사이의 좁은 틈으로 밤마다 많은 고양이들이 기어들어간다. 그곳은 밤의 세계, 고양이들이 말하고 노래하고 마법을 부리는 신비의 세계 아타고올이다. 유럽풍의 옷을 입은 소년들이 고양이들과 더불어 이 숲에 나쁜 짓을 벌이는 존재들을 물리치는 등 매일밤 색다른 공간에서 색다른 사건들이 이어져 나온다. <아타고올> 시리즈는 1976년 <만화소년>에 연재가 시작된 작품으로, 일본 만화계에서도 매우 독특한 세계의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풀 어헤드! 코코> 완결 <원피스>와 더불어 소년 해양모험만화 붐을 일으킨 요네하라 히데유키의 <풀 어 헤드! 코코>(시공사 펴냄)가 전 29권으로 완결되었다. <풀 어헤드! 코코>는 ‘팔콘 문명’
[만화가 화제] <아타고올은 고양이의 숲> 출간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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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요네즈 형제의 취업 대혈투서기 2010년 부도 직전의 통신업체 NOT 도모코(NTT 도코모의 패러디)에 근무하던 오이카와 시게루. 말많고 먹성좋고 매너없는 뚱보 남자. 그날 밤도 망신창이가 될 정도로 술에 취해 길거리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뭐 여느 때와 크게 다른 모습 같지도 않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날 아침 깨어난 곳이 신기하게도 10년 전 대학생 시절의 자취방 앞이라는 사실. 그저 우연이거니 해서 방문을 열어보는데, 맙소사, 방 안에 서 있는 건 바로 10년 전의 자신이 아닌가? 지금보다는 조금 날씬하고 젊어 보이지만 여전히 너저분한 행색에 마요네즈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취업 준비생이다. 왠지 과거의 오이카와가 측은해진 미래의 오이카와는 10년 뒤면 부도가 날 회사를 내던지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으라고 권한다. 그리고 두 오이카와의 멍청하고도 맹렬한 취업 전쟁이 시작된다.‘나’를 위한 도라에몽?사상 최악의 취업대란, 실업률 몇년 사이 최고, 20대 청년실업 문제…. 비슷비슷한 단어
로드리게스 이노스케의 <오이카와X2 취업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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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에서 활동한 경력을 갖고 있는 ‘노래하는 dawn’과 인디 신에서 활동하던 ‘기타치는 sorrow’가 만난 것은 지지난해 겨울 홍익대 근처의 어떤 작은 클럽에서다. 그리고 얼마 뒤, 이들은 ‘푸른새벽’이라는 이름으로 밴드를 만들어 음반을 냈다. 발매 레이블은 ‘전통의 인디 레이블 로-파이 카바레 사운드’이다. 오! 부라더스나 볼빨간과 같은 간판스타(!)들의 인상이 강한 이 레이블에서 이름부터 얌전해 보이는 이들이 이런 ‘재미있는’ 뮤지션들과 함께한다는 사실이 언뜻 의아하지만, 이 레이블에 메리 고 라운드나 은희의 노을 같은 ‘진지한’ 뮤지션들 또한 있다는 것을 떠올려보면 의문은 곧 풀린다.홍보 자료는 이들의 음악을 ‘티끌마냥 부유하는 드림 팝’이라 부르고 있다. ‘드림 팝’이라 불리는 스타일은 종종 인공적인 전자음과 어쿠스틱 악기음을 결합시킨 공간감 있는 사운드를 바탕으로, ‘천상의’(ethereal) 느낌을 지닌 여성 보컬이 그 소리들 위를 꿈처럼 떠도는 음악을 들려준다.
정화된 밤,푸른새벽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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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3월26일부터 31일까지 교토시 주재 갤러리 ‘기타노’에서 “반전의지의 교감과 확장”을 기조로 한 고경일의 풍자만화전시회 ‘서울만보전(漫步展)’이 열린다. 현재 상명대학 만화과 교수로 재직 중인 고경일은 이전에도 정신대 문제 등의 내용으로 전시회를 개최해 일본 내에서도 화제를 모았었다. 이번 전시회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미국의 핵 위기에 대응하는 도발적 행위에 대한 냉정한 기록이며, 동시에 풍자만화가 갖는 파급력과 힘을 보여주는 행사가 될 것이라고 주최쪽은 밝히고 있다. 또한 이 행사에서는 박재동 화백을 비롯하여 <부산일보>의 손문상, <경향신문>의 김용민, <내일신문>의 김경수, 전 <중부일보> 화백 윤기헌 등의 작품도 함께 전시될 예정이며, ‘미국과 일본 만화의 보수 우익적 성향과 그것이 미치는 영향’에 대한 강연회도 열릴 예정이다. 부대행사로 즉석에서 캐리커처를 그려서 판매하는 코너와 29일에는 작가와 ‘관람자와의 대화’도 열릴
[만화계 화제] 반전(反戰) 풍자만화전시회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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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풍경, 혹은 그냥 스쳐가는 것들진보하는 작가를 만나는 일은 독자에게 큰 행복이다. ‘변병준의 작은 만화’인 <달려라! 봉구야>를 세번 읽고 내린 결론이다. 먼저 간략한 독후감을 소개한다. 첫 번째 읽고 나서는 심심했다. 초기 단편에서 보여준 유머도 없고, <프린세스 안나>에서 보여준 지독한 자폐감도 없는 그저 착하고 착한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비현실적으로 보였고, 나에게 무덤덤하게 다가왔다. 두 번째 읽고 나서 한컷을 그리기 위한 작가의 부단한 노력이 읽혀졌다. 특히 세밀하게 묘사된 서울 도심의 풍광은 다른 만화에서 그 예를 찾기 힘든 정성과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했다. 거의 모든 페이지에 살아 있는 배경은 몇개의 자료로 그려진 것이 아니라 작가가 직접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선 취재의 결과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세 번째 읽고 나서 나는 이 심심하기 그지없는 만화에서 새로운 재미를 찾아냈다. 그리고 변병준이라는 만화가가 덜어냄, 보여주지 않음, 생략
변병준의 <달려라! 봉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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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죽으면 한 세상이 사라진다는 말이 정말 실감난다. 풍자가 성심을 오히려 심화하는, 치열하게 너그러운 문장으로 이 시대 가장 천대받는 농민 소재에 풍만하면서도 고전적인 품격을 부여한 이문구 소설을 기억한다면 더욱 그렇고, 천라지망 정신으로 삶의 일상을 묘파해내고 필경은 웃음과 울음의 경계를 아름답게 허무는 이문구 산문을 안다면 더욱 그렇고, 문단 선후배 일상의 피와 살을 수습, 녹청으로 유구한 문학 자체의 생애를 조각해내는 이문구 발문을 읽었다면 더욱 그렇고, 인간 이문구를 조금이나마 접했다면 더욱 그렇다. 그는 갔고, 삽시간에 세상은 황량하다.그의 문학에 감동하지 않은 독자 없고 그의 문장을 선망하지 않은 작가 없고 그의 어린 시절을 블랙홀로 만들어버린 6·25전쟁 비극의 참혹과 경악을 공유하지 않는 독자-작가 없고 그의 신세를 지지 않은 친지-후배 없고 그가 쓴 발문을 자기 책 뒤에 달아보는 것이 작가들의 오랜 소망이었고, 오래된 사람들은 대체로 희망을 이루었다.그를
당연한 말 거짓말,소설가 이문구의 죽음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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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돈나 전기 <마돈나 섹슈얼 라이프: 울지마, 울지마, 울지마>
이제 얼굴까지 몰락한 마이클 잭슨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쩐지 가슴이 아프다. 그를 열광적으로 좋아한 기억은 없다. 그럼에도, 한동안 마이클 잭슨은 같은 시대를 걸어간다는 느낌이 있었다. 동시대의 스타라는 존재는 시간이 흐를수록 굳이 팬이 아니라도 연대감 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한데 마돈나 같은 경우는 좀 다르다. 마이클 잭슨과 함께 1980년대 최고의 엔터테이너였던 마돈나는 90년대를 뚫고 21세기에도 변함없는 최고의 스타다. 보이 토이에서 섹스의 화신을 지나왔고 지금은 종교와 가정이라는 새로운 수호신을 거느리고 있다. 마돈나의 위대한 성공과 끊임없는 변신은, 그녀를 올려다보게 만든다. 마를렌 디트리히 같은 여배우를 바라보는 느낌이다. 아니면 마돈나가 그렇게도 숭상한다는 그레이스 켈리나.
<마돈나 섹슈얼 라이프: 울지마, 울지마, 울지마>는 마돈나의 삶과 성공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다이애나비
세상을 지배하고 싶었던 소녀,마돈나 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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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램프 신작 <합법 드러그>최강의 팀 만화가 클램프(CLAMP)의 신작 <합법 드러그>가 번역 출간되기 시작했다(서울문화사 펴냄). <미스터리 극장 에지>와 비슷하게 물건에 깃든 기억을 읽을 수 있는 초능력자 주인공이 수상한 냄새가 잔뜩 풍기는 ‘초록 약국’에서 일하면서 생기는 신비한 사건들이 독자들의 흥미를 끈다. 와 <좋으니까 좋아>의 작화를 담당했던 미쿠 네코이가 이 작품의 그림을 그리고 있어 다소 편안하고 귀여운 느낌을 준다. 아무래도 수상한 점장 등 4인조가 모여든 약국의 풍경은 <서양 골동 양과자점>과 비슷한 재미를 주는데, 클램프와 동인지계 소녀만화의 세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작품.여성만화작가 기획전한국을 대표하는 여성만화가들의 원화, 일러스트레이션, 소품 등이 함께 전시되는 ‘여성만화작가 기획전’이 3월7일부터 4월6일까지 서울애니메이션센터 만화의 집 전시관에서 열린다. 서울애니메이션센터와 한국여성만화인협의회가
[만화가 화제] 클램프 신작 <합법 드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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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파티마, 피에 젖은 파트너지금 우리는 어디쯤 와 있는지, 언제쯤 그 긴 이야기가 끝나는지, 다만 그것만이라도 알 수 있다면…. 그러나 부질없는 희망인가? 수만년에 걸친 별과 기사와 요정과 기계괴물의 이야기를 불과 몇 십년 동안 전해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할까? 나가노 마모루의 <파이브 스타 스토리즈>가 겨우겨우 10권을 냈다. 그래도 기다린 보람이 있었는지, 별다른 해설도 붙지 않고 만화로만 260쪽이 넘는 최대 분량의 권이다. 이것으로 9권에서 시작된 제5화 <더 시발리스>(the Chivalries)가 종결되었다. 오랜 다섯별 이야기 중 가장 슬프고도 아름답고 유머 넘치는 테마, 기사와 파티마의 발라드가 빛나는 화음으로 어우러졌다. 10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제5화는 그야말로 ‘기사와 파티마’의 이야기다. 중심 줄거리는 성단력 2995년에서부터 3010년 마법제국 황제 보스 야스포트의 플로트 템플 내습에 이르기까지의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파이브 스타 스토리즈> 10권,제5화 종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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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으로 부지런하게 혹은 바지런하게 산과 절을 찾아다니는 사람이야 아픈 발바닥과 공기상쾌한 피로감, 그리고 세속의 찌든 때가 휘발하기 직전 땀의 광경 속에 나타나는, 분명 산의 일부이면서 동시에 마음자리 가장 깊은 곳에 집보다 더 안온하게 자리잡은, 다시 동시에 인간-자연 너머 청정 자체가 쉬는 안도의 한숨 같은 광경으로 절을 만나는 게 제격이겠지만 그럴 성격이나 사정이 안 되는 사람들에게는 이 책이 제격이다.더군다나 요새 유행하는 말을 쓰자면 ‘신세대적’으로, 젊게 제격이다. 심지어 ‘절 취향’ 자체를 거부하는 사람조차 이 책을 한번 읽어봄직하다. ‘구세대’ 절책들은 너무 고답적이거나 딱딱하거나 아니면 불교에 대한 맹신(불교는 탈이론적 종교라서 맹신이 정말 무섭다)으로 건물(혹은 불상, 탑 등등) 미학을 대신하거나 그랬었다.이 책은 우선 사진의 내용과 수준과 배치가 정말 오래 절을 다녀본 사람의 발자국을 그대로 닮은 듯 적절하다. 색감이 다소 화려한 듯하지만 절의 시간적 낡음을
걷지 않고 절에 가기,이형권의 <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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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말적 사운드 그대로매시브 어택이 새 앨범을 들고 돌아왔다. <백 번째 창>(100th Window). 지난 앨범 <Mezzanine>을 내놓은 지 5년 만이다. 이들처럼 과작인 밴드가 또 있을까. <Mezzanine> 이후 멤버 교체를 겪기도 했고 밴드 내부에 여러 문제가 있었던 탓도 있긴 하지만, 정작 이들이 그토록 과작인 이유는 더 근본적인 데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이들의 반복적인 리듬을 기본으로 한 전자음악은 언뜻 만들기가 쉬워 보이기지만 실은 굉장한 집중력과 불굴의 실험정신을 요구하는 음악이다. 이 비인간적이고 기계적인 미묘한 노이즈 사운드를 만들기 위해 계속하여 그것을 듣는다는 것 자체가 엄청나게 사람 지치게 만드는 일이다. 이런 음악은 판 한장 만들면 지쳐서 일 년은 귀와 몸과 마음을 쉬어야 한다. 더군다나 지난 앨범 <Mezzanine>의 사운드는 얼마나 세기말적이었나! 영국 브리스톨에서 탄생한 세기말적 사운드의 이른바
매시브 어택의 신보 <100th Wind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