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7. 12. 한영애 콘서트 <Full Moon>
통유리 창 밖으로 내내 조용히 비내리는 오후, 그렇게 낮이 밤보다 편하고 밤이 낮 속에 스며들고 모종의 정서가 고이고 안온한 내 집이 너무도 대견하여 푹 빠지듯, 적셔지듯 한잠 자고 싶은 시간 다소 황망한 소리로 걸려온 전화가 모든 것을 산산조각냈다. 전에 댁으로 찾아뵌 적도 있는데요, 전인권씨 팬클럽 일로, 지금은 한영애 팬클럽인데요, 오늘 한영애씨가 콘서트를 하는데요, 좀 와주십사, 초청장 미리 못 보내드려서 죄송하구요, 전 현경애구요, 한영애가 아니라….
한영애와 두세번 스쳐 지나듯 인사를 했지만 한영애가 직접 그런 전화를 할 리도 없고 더군다나 공연 당일날 목매달 일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일이니 굳이 한영애가 아니라고 부연설명을 할 필요는 없지만, 하도 구분이 다급한지라, 나는 그냥 어버버댄다는 게 그만 가겠다고 약속을 해버린 셈이 되어버렸다.
성균관대 새천년홀은 무대가 깊어 공연장소로 적합해 보였다. 객석의 규모도 경사도 맞춤했다. 공연은?
<누구 없소?>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내 제2의 고향 청량리 588 정서를 응축-폭발시키는 듯하여 경악했었다. 대충 알 듯이, 청량리 588은 오래 전부터 지금까지 유명한 창녀촌이다. <누구 없소?>를 창녀의 노래로 들었다는 소리가 물론 아니라, 창녀촌이야말로 도시 밑바닥 정서의 핵심이며 끝간 데며 절정이라는 것을 그녀의 노래로, 응축-폭발적으로 깨닫게 되었다는 얘기다.
그리고나서 한 10년 뒤 나는 우연히 한영애가 미사리의 어느 카페에서, 놀러왔다가 준비없이 무대로 불려나와 <봄날은 간다>를 부르기 전 한마디 하는 것을 듣고 또 놀랐다. 참, 아름다운 가삽니다마는, 어떻게 여자가 이렇게까지 망가질 수 있을까요…. 그렇다, 그녀는, 여성적 망가짐의 극한을 블루스/록예술의 극한으로 승화-해방시켜온 것으로 보였고, 그래서 그녀가 부르는 ‘흘러간 노래’는 당연하게, 당연한 바로 그만큼 감동적으로 들렸다.
이번 공연은, 흘러간 노래 <선창>의 ‘웃으며 떠나가련다’가 거의 노련한 개구쟁(‘이’자는, 괜히, 빼고 싶다)의 차원을 구사하고, 춤꾼을 동원한 뮤지컬 시도도 새롭고, 2시간 동안 등·퇴장 없이 분장과 가발을 처리하는 게 ‘잘 짜여졌’지만, 더 과감한 것은 공연 앞과 뒤를 유불선 종합의, 그러니까 동학쯤의 대모신(대모신)분위기로 했다는 점이다. 대모신이 조시적일 수는 없는 일. 한영애의, 정말 기로의 공연을 나는 보았다. 이건용(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을 공연장에서 만났는데, 서로 어리둥절이다. 어허 정말, 이런 날도 있는가. 김정환/ 시인 · 소설가 maydapoe@thrune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