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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편애할 때 가장 자유롭다
기자와 대학강사, <씨네21>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해온 남재일이 이 시대 가장 자유로운 사람 열한명을 만난 대담을 모았다. 김훈과 김기덕, 서영은, 이창동, 마루야마 겐지 등이 그가 만난 인물들. 전문과 인터뷰가 한 글을 이루는 경우가 보통이지만, 장정일이나 김기덕은 그 인연 혹은 인물의 특이함 때문에 대상을 따라 글이 흘러가기도 한다. 깊은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저자와 “인간에 대한 편애와 세상에 대한 편견”을 가진 사람들이 만나 주고받는 대화가, 일상적인 언어의 가식을 뛰어넘어, 자유로운 영혼을 전달한다.
승부사 강우석
강우석 감독의 영화경력 10년을 정리한 책이 출판됐다. <승부사 강우석>은 영화기자 오동진이 관찰하고 분석하고 기록한 강우석에 관한 책이고, 그를 중심으로 10년 남짓한 기간 동안 엄청나게 성장한 한국 영화사를 파악한 책이기도 하다. 책 말미에 수록된 강우석과의 인터뷰는 오랫동안 친분을 맺어온 사람만이
<나는 편애할 때 가장 자유롭다> / <승부사 강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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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젊은 작가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그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들은 것은 밤이었다. 잘 아는 만화편집자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그리고 그의 죽음을 전했다. 송채성은 젊은 작가였다. 나이만이 아니라 생각이 젊고, 작품이 젊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젊음이 오늘보다 내일을 기대하게 하는 작가였다.그의 만화에 대한 글을 처음 쓴 것은 <취중진담> 1권이 출간되고 난 뒤 바로 이 지면에서였다. 나는 그 지면에서 “작가 송채성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절제의 미학이다. 만화는 절제의 예술이다. 역설적이지만 버림의 예술이다”고 이야기했었다. 그리고 그뒤, 송채성은 <취중진담> 2, 3권과 <쉘 위 댄스> 그리고 <오후>에 연재된 <미스터 레인보우>를 묶어내며 진보하고 변모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미스터 레인보우>에 와서 넉넉한 유머를 체득하고, 웃음의 이면에서 슬픈 삶의 이야기를 나지막하게 읊조리는 방법을
어느 젊은 작가의 죽음, 고 송채성 작가를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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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앤 캐서린 에머리히 지음| 공보경 옮김 | 집사재 펴냄)는 19세기 초 독일 수녀 앤 캐서린 에머리히가 보았던 환상을 기록한 책이다. 어린 시절부터 고행을 자처했던 독실한 가톨릭 신자 에머리히는 스물아홉살에 수녀가 되었고, 몇년 뒤부터 손과 발에 성흔이, 가슴 위에는 붉은 십자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성흔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혔을 때와 같은 위치에 피흘리는 낙인처럼 새겨지는 상처. 그 때문에 성인 직전의 반열에까지 오른 에머리히는 고통 속에 본 환영을 당대의 작가 클레멘스 브렌티노에게 구술했고, 놀라운 기억력과 소박한 심성으로 태어난 <성모 마리아의 삶> <그리스도의 삶> 그리고 이 책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가 세상에 나왔다.이 책이 새삼스럽게 관심을 받게 된 까닭은 멜 깁슨이 우연히 예전에 읽은 이 책을 다시 발견하고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영감을 얻었다고 고백했기 때문이었다. 멜 깁슨은 이
예수 수난의 세밀한 기록,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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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승달 물고기를 낚은 건 봄의 어느 날이었구나. 하늘 저 멀리 비의 꼬리가 여름의 끝을 잘라가는 것도 보았지. 가을은 나무 속에서 자라난 성냥이 잎들을 불태우며 찾아왔다네. 어느덧 그믐밤, 문어 모양의 눈 집에 앉아 있기만 해도 이렇듯 한해의 추억은 우리의 눈앞을 지나가지. 그것은 시가 아니야. 진짜로 우리에게 벌어지는 일이라구.모든 것이 가능한 메르헨의 세계 <아타고올은 고양이의 숲>(대원씨아이 펴냄)이 국내에 소개된 지도 벌써 1년이 넘었다. 소곤소곤 번져간 소문을 통해 판타지 마니아, 고양이 애호가, 동화세계의 옹호자들이 속속 아타고올의 세계에 빠져들고 있는 듯하다. 국내에서는 최신 시리즈라 할 수 있는 <고양이의 숲>만이 소개되고 있는데, 사실 아타고올은 벌써 30년 가까이 여러 출판사를 통해 다양한 시리즈를 펼쳐내고 있는 거대한 세계다.마스무라 히로시는 1973년 <소년점프>를 통해 데뷔, 초기에는 예술만화잡지로 널리 알려진 <가로>
무지개빛 상상이 뜨는 언덕, 마스무라 히로시의 아타고올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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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살 인생>이희재 만화/ 위기철 원작/ 청년사 펴냄<악동이>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 등 어린 시절의 추억과 향수를 따뜻한 그림체로 표현해낸 만화가 이희재가 위기철의 원작소설 <아홉살 인생>을 만화로 펴냈다. 이 작품은 1993년부터 2년간 <나 어릴 적에>라는 제목으로 잡지에 연재했던 내용을 2000년 3권의 흑백 단행본으로 출간했다가 4년 만에 컬러를 입혀 다시 펴낸 것이다. 아홉살 여민이의 산동네 생활, 동네 어른들과 친구들 이야기가 챕터별로 소개돼 있으며, 부드러운 채색은 바랜 사진첩을 들여다볼 때처럼 추억의 온기를 전한다.<나, 영화인-김홍준의 영화노트>김홍준 지음/ 도서출판 소도 펴냄김홍준의 다양한 경력은 오직 ‘영화인’으로만 묶일 수 있다. 그리고 그가 1992년부터 2002년까지 각종 매체에 기고한 글들을 출간한 <나, 영화인-김홍준의 영화노트>는 다양한 그의 정체성을 반영한다. 영화광 1세
<아홉살 인생>, <나, 영화인-김홍준의 영화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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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과 디지털 기술의 발달은 정치풍자 패러디물의 꽃을 피웠다. 그리고 그 중심에 만화가 자리잡고 있다. 고도로 숙련되어 잘 그려진 만화를 소비하던 독자들은 디지털 툴을 활용해 스스로 만화를 생산하고 있으며, 누군가에 의해 생산된 만화는 자연스럽게 게시판을 통해 복제되어갔다. 대중매체가 등장하며 시작된 근대만화 이래 가장 놀라운 변화다. 독자들은 만화의 미학적 특징과 형식적 특성을 몸으로 채득하고,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새롭고 창의적인 작품들을 생산했다. 지난 3월24일 경찰에 구속된 권세일도 그런 독자의 하나다.탄핵정국이 본격화되기 이전, 그는 김성모 만화를 재해석해 새로운 만화를 만들어내는 요상한 재주를 보여주기도 했지만 그가 보여준 불멸의 히트작은 초등학교 자연시간에 배운 지식을 동원해 한나라당을 풍자한 ‘병렬연결의 특징’이라는 만화였다. 아무리 연결하고 연결해도 빛의 밝기는 변화가 없고, 다른 사람에 의지해 긴 수명을 자랑하고, 한두명쯤 빠져도 빛의 변화가 없다는 그의 일갈은
만화의 기술적, 정치적 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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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파파> <좋아하게 될 사람>내게 <좋은 사람>에서 <최종병기 그녀>로 이어져온 다카하시 신을 뒤적이는 건, 여름날 물청소를 하다 깨진 교실의 유리창을 줍는 마음이다. 거기에는 누가 읽어도 부담없는 담백한 사랑 이야기가 있다. 여느 착한 만화들처럼, 삶에는 서늘한 그림자가 깃들어 있지만 그곳 옆에는 언제나 따뜻한 햇살이 있음을 믿으라고 한다. 하지만 그 옆 살짝 비켜간 곳에는 그 사랑에 대해 ‘이제 그럴 나이가 아냐’라고 말하는 냉담한 현실 인식이 있다. 거기에 반항하며, 내일 가장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할 게 분명한 사랑을 붙들고 있는 바보들도 등장한다. 우리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삼등신의 난폭한 개그도, 우리를 민망하게 만드는 절벽 가슴 소녀의 섹스신도 있다.그가 내놓은 두권의 단편집(시공사 펴냄)이 그 조각난 세계를 가지런히 주워 담아줄지 아니면 더욱 많은 조각들로 우리를 어지럽게 할지 짐작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다카하시 신의 꾸준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연애담, 다카하시 신의 두 단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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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남자가 군대에 다녀오는 우리나라에 이상하게 군대를 소재로 한 만화를 찾기 힘들었다. ‘전쟁’만화가 아니라 ‘군대’만화 말이다. 전쟁만화로 폭을 넓혀도 제대로 된 만화를 찾기 힘들다. 60∼70년대에 활약한 이근철의 여러 작품이나 의인화된 동물들이 등장한 차형의 작품, 그리고 정운경의 <진진돌이> 같은 작품을 제외하면, 전쟁만화는 많지 않다. <남벌>(이현세)을 전쟁만화라 우기고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판타지만화에 가까우니 생략. 병영을 소재로 한 만화로 박호성의 <찌그다시의 병영노래>, 민경태의 <빤빠리 선착순> 정도가 있다. 젊은 나이에 사회와 격리되고, 전혀 낯선 공동체에 들어가 생활한다는 이 흥미로운 소재를 나병재는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상식의 선에서 이야기를 풀어낸다. 여기서 ‘상식의 선’이란 있을 법한 이야기, 철저한 시각적 고증, 밉지 않은 과장, 동의할 수 있는 욕망 등이다.줄거리는 간단하다. 평범하게 살아온 대학생
군대도 사람 사는 곳이란 말이지, 나병재의 <굳(Good)세월아 군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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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시옹, <오디오-비전>(L’audio-vision)우리는 영화를 ‘보러’ 간다고 말하지 ‘들으러’ 간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또한 보다가 놓친 이미지를 아쉬워할지언정 미처 듣지 못하고 무심결에 흘려넘긴 소리 때문에 안타까워하지는 않는다. 분명 영화는 시청각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매체인 것이 사실이지만 이처럼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시각적인 것에 집중하여 기억하게 된다. 또는 무언가를 귀기울여 듣는다고는 해도 대개의 경우 말(parole)에 집중하게 마련이다.1990년에 초판이 나온 <오디오-비전>은 <영화와 소리>에 이어 국내에 두 번째로 소개되는 미셸 시옹의 주저 가운데 하나다.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이 책은 영화가 관객에게 제공하는 청각적-시각적 경험, 특히 시옹이 ‘시청각적 계약’이라고 부르는 바에 대한 현상학적 고찰을 제공하고 있다. 간혹 심리학적 용어들이 눈에 띄기는 하나, 엄격한 인지심리학적 이론에 기반하고 있다기보다는 시옹의 다분히 직
‘영화듣기’를 위한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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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문화의 발전을 위한 제언> : 홍대 클럽데이와 레이브 파티의 본고장 영국의 클럽 비교체험한장의 티켓만으로 대부분의 클럽을 마음껏 들락날락할 수 있다는 클럽데이의 철학은 그야말로 만국의 춤꾼들, 아니 마음껏 놀고 싶은 모든 ‘인류’를 위한 놀랍도록 평등한 아이디어다. 대체 이 철학은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이미 서구의 일렉트로니카-클럽문화는 영화라는 매체의 영향력을 훌쩍 넘어서서 그 독특한 놀이문화의 에너지를 발산하는 중이다. 지구를 반 바퀴 돌아 도달한 서울, 홍익대 앞이라는 변방의 지형도에서 그것은 어떻게 홀로 진화해왔을까. 34회 클럽데이의 파티 현장으로 들어가보자.편집자“만약 니가 오늘 배워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거야. 파티는 끝나지 않을 거라는 것. 마지막 레코드가 회전을 멈출 때까지는 말이지.” -영화 〈groove〉 중-서울 홍익대 앞은 설레고 있었다. 한국의 어떠한 도시나 마찬가지이듯, 난잡한 간판들과 지루해 죽겠다는 표정을 하고
계급도 성별도 옷차림도 벗어버리고 그냥 그루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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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창작 동아리 ‘테두리’ 회지 <청춘호>청강문화산업대학 만화창작과 학생들로 구성된 만화동아리 테두리의 회지 <청춘호>는 일관된 주제를 갖고 있는 매력적인 동인지다. 보통 동인지들이 시간에 쫓겨 미완성된 작품을 수록해 작품집을 읽기가 퍼즐을 푸는 것처럼 난해하기도 하는 데 비해, ‘테두리’는 <청춘호>라는 타이틀로 모아지는 작품을 수록해 독서가 수월하다. <청춘호>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 겪는 경험과 그들의 일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특히 주목할 것은 가장 밝고 명랑하며, 진취적일 것이라고 착각하는 그들이 사실은 하나같이 외롭고, 괴로워하며, 소통부재의 상황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모든 작품들은 하나같이 우울한 색이다.김세중의 〈In the Evening〉은 티켓 다방에 일하는 여성과 몰락하기 이전 피아노에 얽힌 기억을 그린 작품이며, 박영순의 <상실의 시대>는 소통부재의 삶을 풍자하고 있으며, 양정우
은빛 사막에 외로운 객기, <청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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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물고기>다니엘 월러스 지음/ 장영희 옮김/ 동아시아 펴냄팀 버튼 신작영화의 원작소설. 블레어 위치의 고장 앨라배마에 가정을 꾸리고 전국을 돌아다니는세일즈맨 에드워드는 아들에게 들려주는 베드타임 스토리 속에서만큼은 헤라클레스가 부럽지 않은 영웅이다. 세월이 흘러 아들은 죽음의 침상에 누운 아버지와 진지한 대화를 시도하지만, 아버지는 판타지 밖으로 나서기를 거부한다.<우리 대중음악의 큰 별들>임진모 지음 | 민미디어 펴냄신중현, 송창식, 패티김, 한대수, 양희은, 조용필, 이정선, 김창완, 심수봉, 배철수, 김수철, 한영애, 이선희, 주현미, 이승철, 이병우, 장필순, 이상은, 유영석, 안치환, 신승훈, 강산에, 김건모, 이은미, 윤도현. 그 가운데 패티김의 인상적인 한마디. “나와 이미자는 노래를 그토록 수없이 불렀어도 오리지널 곡과 유사하게 부른다는 말을 듣는다. 노래의 생명은 테크닉이 아니라 순수일 것이다. 기교를 부린 노래는 당시는 어필할지 몰라도 나중
<빅 피쉬>의 원작 소설 <큰 물고기>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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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라스베이거스, 1200명의 승객을 태운 호화 유람선 블루 헤븐에 표류자 하나가 올라탄다. 정확히 말하면 둘이다. 그러나 둘 중 하나는 다른 표류자가 11명의 선원을 눈도 깜빡하지 않고 죽여버린 살인귀라는 사실을 알린 뒤에 죽어버린다. 이제 ‘블루 헤븐’은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행성 지구와 같은 존재가 되고, 그 안에 탄 사람들은 단 하나의 힘에 의해 다시는 푸른 하늘을 보지 못할 운명에 처하고 만다.<지뢰진> <철완 소녀>의 다카하시 쓰토무가 어디 가겠는가? 이번에도 사람들을 옴짝달싹 못할 궁지로 몰아넣고 그들이 살아나려고 발버둥치는 모습을 진저리나게 보여준다. 그리고 단계마다 우리의 예상을 뒤엎고 전혀 엉뚱한 상황을 펼쳐 보인다. 유람선에 존재하는 진정한 위험요소는 동양인 살인범이 아니다. 전신 화상으로 일그러진 신체로 소리만 겨우 들을 수 있는 대갑부와 그가 ‘제조’한 악귀 같은 가족들은 이때를 틈타 유람선 안의 동양인들을 대량 학살하는 쾌락의 살
저런 게 세상이면 나가고 싶지 않아, 다카하시 쓰토무의 <블루 헤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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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번역되어 있지는 않은 <영화와 회화>(안젤라 댈리 배치, 텍사스대학 출판부 펴냄, 1996)는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붉은 사막>, 에릭 로메르의 , 미조구치 겐지의 <우타마로를 둘러싼 다섯 여인들> 등의 영화들을 각각 한장(章)씩에 할애해 논의를 해가는 책이다. 물론 영화의 제목에서 기대할 수 있듯이, 그리고 ‘미술은 영화에서 어떻게 활용되는가’라는 부제에서 또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책이 다루는 그 영화들은 모두가 회화적인 원천이 존재하고 그것을 참조한 것들이고 자연히 여기서 저자는 그것들에 대한 논의를 통해 시각적 이미지를 공통분모로 가진 영화와 미술 사이의 상호관계에 집중한다.파스칼 보니체의 <영화와 회화>는 사람들에게 그 제목 때문에라도 혹 앞에서 언급한 <영화와 회화> 같은 유의 책은 아닐까, 하는 선입견부터 심어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원서의 주제목은 ‘데카드라주’(decadrage: ‘탈배치’라고
이미지의 역사로 본 영화 <영화와 회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