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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인간 수컷보다 반려동물이 백번 나을 때가 많다. 함께 사는 인간 수컷은 먹은 그릇을 개수대에 쌓고 제 방으로 쏙 들어가버리기 일쑤인데, 흰 가슴털이 아름다운 동거묘 고랑은 설거지가 끝날 때까지 곁을 지켜준다. 물론, 내가 좋아서가 아니라 물방울 튀기는 가느다란 물줄기들이 신기해서다. 그래도 꿈보다 해몽이다. 모시고 사는 입장에선 골골골 기분 좋은 소리가 들릴 때까지 수도를 틀어 비위맞추기를 계속한다. <인간 수컷은 필요없어>는 러·일 동시통역사이며 번역가, 작가인 요네하라 마리네 포유류 가족 이야기다. 가족 구성은 이렇다. 독신인 작가와 기억을 잊기 시작한 어머니, 어미 잃고 방황하다 구출된 고양이 남매 무리와 도리, 러시아에서 입양한 고양이 자매 쏘냐와 타냐. 여기에 붙임성 좋은 유기견 겐이 합류했다. 동물과 살아본 경험이 있다면 수명이 짧은 이들과의 만남이 언제고 통곡할 일을 만든다는 걸 알겠지만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다. 슬픔이 곳곳에 숨겨져 있지만 그보
남편 따윈 필요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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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이름, 제 삶, 제가 이룰 가족. 모두 이 부족 안에서 온전히 자리잡기를 바랍니다. 제가 용의 비늘을 찾아 돌아왔을 때, 그때부터 저는 이 부족의 온전한 일원으로 받아들여졌다고 생각하고 싶습니다.”(최지혜, <용의 비늘>) 사람과 용 그 어느 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자식. 한국에서 환상문학이 처한 현실도 이와 다르지 않다. 환상문학은 작품의 완성도를 떠나 PC통신이라는 태생적 배경으로 인해 문단과 인터넷 사이에서 표류하는 존재였다. <한국환상문학단편선>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끊임없이 전진해온 한국 환상문학의 현재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색깔과 성격이 다른 아홉편의 수록작을 하나의 범주로 묶기는 불가능하지만, 공통적으로 환상문학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캐릭터를 교묘하게 비틀고, 새로운 이야기 방식을 고민하려는 시도가 돋보였다. 뱀파이어를 사회적 약자로 묘사한 <사육>과 동양 설화의 형식을 빌려 뱀의 혀를 가진 남자의 원한을 얘기하는 <목소리
신묘하도다! 한국의 환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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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헬렌은 누군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음을 느낀다. 단순히 느낌만이 아니었다. 헬렌의 호스트인 브라운 씨가 가르치는 학생 중 하나가 그녀를 보고 들을 수 있었다. 소년 빌리의 몸 안에 제임스라는 남자의 혼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었다. 헬렌은 자신의 존재를 인지하는 인간이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두려움과 설렘이 그녀에게 찾아온다. 제임스를 좋아하게 된 헬렌은 인간으로 함께 있기 위해 영혼이 떠나버린 소녀의 몸으로 들어간다.
죽음 이후에 영혼은 어디로 갈까. 그런 호기심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고스트 인 러브>의 이야기에 솔깃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옛날 <사랑과 영혼>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죽은지 오래 지나 이 인간 저 인간을 떠돌며 지내는 유령들의 사연을 보여주는데 신인인 로라 위트콤은 헬렌과 제임스를 슬프고 아련한 이야기로 끌어들인다. 이 책에서는 퀵과 라이트라는 용어를 써 인간과 이계의 존재 방식을 나누는데, 인간이 인지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존재
유령들의 서늘한 러브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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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로렌 와이스버거가 2005년에 발표한 두 번째 소설이 출간됐다. <누구나 알 권리가 있다>는 홍보회사의 화려하면서 정신없는 일상에 유머 조금, 상상력 조금, 낭만을 듬뿍 넣어 버무린 달짝지근한 칙릿이다. 맨해튼의 투자은행에서 하루 종일 책상을 떠나지 못하던 베트는 홧김에 사직서를 던지고 백수로 돌아간다. 바빠서 쌓여만 갔던 통장잔고, 축적해둔 지방으로 연명하던 베트는 멋진 게이 삼촌 윌의 소개로 홍보회사 대표 켈리와 만나고 취직까지 한다. 그리고 사건은 새 동료들과 친해질 겸 찾아간 클럽에서 일어난다. 모든 여자가 사귀고 싶어 안달하는 남자 필립 웨스턴의 무릎에 앉아 정신 놓을 때까지 술에 취해버리고 사진까지 찍힌 것. 즉시, 베트는 뉴욕 사교계의 유명인사로 떠오른다. 베트가 담당하는 파티는 문전성시를 이루고, 필립과의 애정행각은 고정적으로 가십란을 달군다. 그러나 정작 베트는 필립과 아무 관계도 아니며 섹스 한번 하지 못했다고 주장
뉴요커들의 달짝지근 러브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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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되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소녀들은 ‘냉미남’을 좋아한다. 다정하고 친절한 소년보다는 무뚝뚝하고 무례하지만 잘생긴 소년을(소녀들이 좋아하는 책에는 불퉁스런 미남들 천지다). <트와일라잇>에서도 그렇다. 평범한 ‘소녀1’ 앞에 어느날 숨이 막힐 듯 멋진 소년이 나타난다. 그런데 그 소년은 소녀를 이유없이 차가운 눈길로 쏘아본다. 그런데도 소녀의 마음은 가눌 길 없이 소년쪽으로 기우는데…. 결국 소년은 “착하게 사는 건 포기할 거야”라는 엄청난 선언과 동시에 소녀와 사귀기로 한다. 그런데 그는 진짜 ‘냉’미남이었다. 그의 일족은 뱀파이어였던 것이다. 뱀파이어 이야기 특유의 서늘한 관능미를 사춘기 소년 소녀의 일상에 덧입힌 <트와일라잇> 시리즈는 평범한 소녀가 운명적인(혹은 생사를 건) 사랑에 빠지는 로맨스인 동시에 뱀파이어 일족끼리 벌이는 액션이 더해진 활극이기도 하다. 평범녀 벨라와 냉미남 에드워드의 이야기는 사춘기를 오래전에 지나 보낸 독자에
소녀들이 차가운 미남을 좋아하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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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클럽’이라고 하니 오해할지도 모르겠다. 미리 말해두지만, 20세기 초 조선 청춘 남녀들이 한날한시 한데 모여 생을 저주하고 죽음을 결행했다는 보고서가 아니다. 지은이가 들춰낸 “근대 조선을 울린 충격적 자살사건”들은 제각각이다. 상하이의 무희 이상산의 죽음과 청상과부 윤영애의 죽음은 다르다. 평양 명기 강명화의 자살과 이화여전 문창숙의 자살은 다르다. 그래선지 처음에는 좀 심심하다. 무미건조한 사회면 1단 기사를 읽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들의 개별적 죽음이 근대의 삶을 진술하는 가장 극적인 풍경임을 이내 깨닫게 된다. <경성자살클럽>은 근대 조선 남녀의 연이은 자살이 실은 전근대의 쇠사슬로 말미암은 은밀한 사회적 타살이었음을 차례대로 증명한다. 그리고 이 사회적 타살의 가장 큰 피해자가 여성이었음을 수차례 강조한다. 엘리트 소리 듣던 신여성, 모던 걸들도 구습 앞에서는 스스로 스러진다. “사연 하나하나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지은이가 털어놓듯이, <
사회가 부추긴 근대 조선의 자살사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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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 속에> <노말 시티> <두 사람이다> 등의 작품으로 두터운 팬층을 확보한 순정만화가 강경옥의 신작이다. 강경옥은 황미나, 신일숙, 김혜린, 원수연 등과 함께 1980, 90년대 한국 순정만화의 르네상스를 이끈 1세대 작가로 그림체보다는 섬세한 터치로 그려내는 특유의 서정성이 돋보이는 작가. 심리묘사도 탁월해 미스터리 순정물 <두 사람이다>(1999)는 2007년 동명의 공포영화로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설희>는 그런 ‘강경옥식’ 미덕이 오랜만에 발휘된 작품으로 순정만화 팬이 아니더라도 책장을 놓지 못하게 하는 끈적한 마력이 가득한 만화다. 주인공인 설희는 출생의 비밀을 가진 채 섬에서 살다 무려 21억달러라는 거금을 상속받게 되는 행운의 아가씨다. 이야기는 상속받기 위해 뉴욕에 온 그녀를 둘러싼 주변 사람들의 시기와 질투로 시작된다. 평소에는 물정 모르는 철부지 소녀 같다가도 위기의 순간에는 서늘한 얼음같이 냉정한 그녀의
환영할 만한 순정 대가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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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전체가 환경보호구역으로 설정돼 아무도 살지 못하게 된 시대. 인류는 지구 둘레를 감싸는 토성의 고리를 본 뜬 맨션을 지어 상공 35000m로 거주지를 옮긴다. 빈부에 따라 상층과 하층으로 나뉜 세상에서 나고 자란 미쓰는 중학교를 졸업하자 구조물의 외벽창 닦는 일을 시작하는데, 첫날 파견된 지역이 하필이면 아버지가 추락한 바로 그곳이다. 구김살 없는 척 살아온 미쓰는 아버지가 자신을 버리고 인생을 포기했다는 피해의식과 죄책감을 안고 있었던 것. 하지만 처음 내려다보는 지구의 전경, 성층권의 기압과 풍속을 느끼며 미쓰의 마음은 조금씩 열린다. 이와오카 히사에의 <토성 맨션>은, 단편집 <하얀 구름>에서 보여줬던 사소한 일상 속 따뜻한 감성, 의외의 곳에서 히죽이게 하는 유머가 잔잔하게 살아 있는 SF만화다. 길어야 5등신, 대부분 3등신에 가깝게 그려진 인체와 무심하게 눈코입을 그려넣은 동그란 얼굴은 앙증맞고 귀여워 읽는 내내 마음을 간질인다. 차가운 금속성의
35000m 상공에서 마음을 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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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의 계절에 즈음해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2000년 시드니올림픽 참관기가 번역, 출간됐다. 원제는 <시드니!>. 아마추어 마라토너이기도 한 무라카미 하루키는 잡지 <넘버>의 의뢰를 받아들여 시드니 현지에 올림픽 기간 내내 머무르며 매일 원고지 30매를 송고했다. 프레스카드를 패용한 사람치고 작가의 태도는 매우 느긋하고 시큰둥하다. 호주 역사를 간략히 일별하기도 하고 동물원 구경을 가서 코알라처럼 패기없는 동물이 멸종되지 않은 데에 감탄하기도 한다. 속도위반 딱지를 떼는가 하면 노트북을 도둑맞는 불상사도 겪는다. 일금 10만엔이나 주고 들어간 올림픽 개회식에 대해 지루하고 무의미함을 토로할 때는 “대체 왜 갔지?”라는 질문이 떠오르기도 한다. 무라카미가 열중하는 종목은 평소 취향대로 마라톤을 비롯한 육상과 철인3종, 야구다. 특히 달리는 인간에 대한 관찰과 육상 경기의 심리를 탁월하게 묘파하는 문장은 새로운 시야를 열어준다. 프로리그가 있는 축구, 야구 등 종
올림픽, 앞에서 볼까? 옆에서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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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남자, 한심하다. 기껏해야 아동극에 당나귀 정도로 출연하며 입에 풀칠하는 삼류배우. <남편과 남성들의 상식>이라는 책을 성경처럼 탐독하며, 방 안에 구겨져 포르노 잡지나 뒤적이는 칼 뮐러. 하지만 그에게도 인생 역전의 순간이 찾아온다. 수전노로 유명한 갑부가 여배우와 한번 뒹굴어보겠다는 생각으로 TV미니시리즈를 제작하고, 오로지 예산을 줄일 속셈으로 가장 싼 배우인 그를 캐스팅한 것. 온갖 해프닝을 벌이며 촬영한 첫회가 방영된 뒤, 고명한 비평가가 그의 연기를 극찬하고 나서고 칼 뮐러는 하룻밤 사이 초대형 스타가 되어버린다. <행운아54>는 풍자소설 <개를 위한 스테이크>와 예술비평서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로 이미 국내에 소개됐던 이스라엘 작가 에프라임 키숀의 작품으로, 그가 눈을 감기 두해 전인 2003년에 발표한 유작이다. 일상의 고만고만한 파편들을 그러모아 기막힌 유머로 버무리는 키숀 특유의 감각은 이번 작품에서도 빛을 발한다.
여든의 나이에 쓴 인생역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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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한대 다 피워갈 무렵 다마가와 강둑에 이르렀다. 이제부터 이 둑에서 싸움을 하고 애인을 사귀어 키스를 하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담배를 땅바닥에 던지고 짓밟았다.” 불량학생이 되고자 하는 로망을 가진 시나노가와 히로시는 중학교 3학년 2학기에 전학을 간다. 아는 사람이 없는 동네의 새 학교에서 관계나 생활을 게임에서처럼 리셋하고 히로시가 얻은 것은 꿈에 그리던 불량한 친구들이다. 히로시는 다쓰야를 비롯한 친구들과 어울려 적들과 맞장을 뜨며 중학 생활에서의 마지막 나날을 보낸다. 말썽을 부리면 가정재판소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소년원에 가야 하고, 삶과 죽음의 문제에 닥쳐서 깨달음을 얻는 고등학생 히로시의 이야기보다는 있는 힘을 다해 불량해지겠다는 생각으로 불량함을 갈고닦는 히로시의 이야기가 더 재미있다. 80년대에 십대를 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드래곤볼> <비밥 하이스쿨> 같은 만화들이 소설 곳곳에서 이야기 소재나 비유의 대상으로 등장한다
있는 힘껏 불량해지려는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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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25살. 애인 없음. 최근 1년간 8번 이직. <무중력 증후군>의 화자 노시보의 신상명세다. 휴대폰으로 뉴스를 확인하며 안심을 하는 뉴스홀릭 시보는, 만성피로, 소화불량, 숙취, 다크 서클 등 다양한 현대병을 앓고 있는, 어깨에 놓인 공기마저도 버거운 88만원 세대다. 어느 날 시보의 휴대폰으로 충격적인 뉴스가 배달된다. 달이 2개로 늘어났다는 소식. 청천벽력 같은 뉴스에 지구인들은 술렁인다. 우주적 섹스를 주창하는 무중력자들의 커밍아웃이 이어지고 여자들의 월경주기가 빨라진다. 보름이 되면 기다렸다는 듯 범죄율이 증가하고 중력을 거스르겠다는 무리들의 공중낙하 등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이런 요지경 속에서 시보에게 닥치는 큰 변화는 달구경을 간다는 엄마의 가출이다.
제13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무중력 증후군>은 달이 여섯개까지 늘어나는 가상의 상황에서 세상이 겪음직한 통증을 관찰한 흥미로운 소설이다. “붕 뜬 것 같으면서도 땅에 두발을 딱 붙이고
공기의 무게마저 버거운 88만원 세대의 성장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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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제왕 스티븐 킹이 올해 발표한 최신작. 1999년 심한 교통사고 때문에 죽음에 가까이 갔던 스티븐 킹 자신의 체험을 연상시키는 이야기다. 에드거는 아내와 두딸, 그리고 4천만달러에 육박하는 재산을 가진 꽤 행복한 사내였다. 크레인 사고로 한팔을 잃고 골반이 부서지고 뇌에 손상을 입기 전까지는. 고통 때문에 혼란을 겪던 그는 아내에게 폭언을 퍼부어 이혼당하고 심리치료를 받다가 플로리다의 듀마 키로 요양을 떠난다. 간신히 안식을 찾은 그에게 갑자기 그림을 그리는 재능이 생긴다. 에드거는 친구를 사귀고 그림을 그리는데, 그림이 단지 그림 속에 머무르지 않기 시작한다. 듀마 키에서 갑자기 생겨난 그림 그리는 재능에 숨겨진 비밀은 무엇일까. 스티븐 킹은 <듀마 키>에서 (아마도 그 자신이 겪었을) 끔찍한 고통을 이야기하고, 그 고통을 이겨낼 수 있게 하는 유일한 희망이 된 예술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에드거에게 있어 그림 그리는 재능은 그 자신의 것이 아니었고, 결국 그는 그
스티븐 킹의 죽음에 대한 자전적 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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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낮에 버스가 편의점을 들이받는다. 길을 건너려던 커플을 피해 핸들을 꺾은 운전기사. 버스가 편의점에 꽂히는 순간 자리에 주저앉은 여자. 횡단보도의 신호를 기다리던 이상한 복장의 남자. 버스에 치였으나 다친 곳 없이 살아난 여자. 집에서 사고를 뉴스로 들은 남자. 그리고 이 사고로 죽은 단 한명의 승객. <자전거 사신기>는 버스 사고와 관련된 7명의 이야기를 엮은 옴니버스식 단편 7편이 실린 작품집이다. 일상의 모든 장면은, 수많은 퍼즐조각으로 이뤄진 그림이다. 작가는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사소한 행동들을 단서로, 개연성있는 상상의 가지를 뻗어나갔다. 연애를 끝낼까 망설이던 여자는 사고 뒤 결심하고, 구사일생으로 위기를 탈출한 남자는 라디오가 전해준 사연에 오열한다. 불면증을 앓던 여자는 잠이 들고,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를 만날 생각에 설레던 남자는 숨을 거둔다. <자전거 사신기>를 읽고 나면, 무의식처럼 타고 내리던 플랫폼에서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할지도
운명을 그려내는 정직한 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