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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혼비식 유머 지수 ★★★★
독서에의 유혹 지수 ★★★
“어째서 내게 <미스틱 리버>가 <무죄추정>과 <레드 드래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최고의 작품이라고 말해준 사람이 없었을까? 내가 그런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사귀지 못했기 때문이다. 바로 그거다. 지난 3주 동안, 다섯명가량의 사람들이 앨런 홀링허스트의 <아름다움의 선>이 천재적인 작품이라고 말해주었고, 나도 그럴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 책을 제일 먼저 읽을 생각이다. 하지만 그 옛날 <무죄추정>을 읽다가 그랬듯이, <아름다움의 선>을 읽다가 가로등에 부딪힐 일은 없을 거라고 확신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한국어판 제목에 붙은 ‘런던스타일 책읽기’라는 말과 별 상관없는 책. 읽는 내내 여러 번 웃음을 터뜨렸다. 문화적으로 예민하지만 전반적으로 찌질하게 살아가는 닉 혼비 소설의 남자 주인공 내레이션 같은 이 책은 대체 뭐란 말인가. 이 책은 <빌리버&
[도서] 투덜투덜 독서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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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더우니 달고 시원한 과일차를 마시고 싶다. 코끝을 간질이는 과일향은 생각만 해도 즐겁다. 과일차를 사러 갔다가 위타드의 서머 스트로베리, 블루베리 요거트 같은 달짝지근한 이름을 보고 마시기도 전에 기분부터 좋아졌다. 그런데 가격이 비싸다. 좀 싸게 구할 수 없을까? 홍차에 빠지면서 겪는 다양한 시행착오, 그 과정에서 배워가는 것들을 담은 책이 출간되었다. 정보와 감상의 균형이 잘 잡혀 있고 사진도 적절하게 실려 있다. 이 책을 읽어가면서 궁금해지는 홍차는 또 어찌나 많은지. 하드보일드 소설 같은 홍차라는 랍상소우총에서는 바비큐와 소시지를 굽는 데 쓰는 나무 장작의 진한 훈연향이 난다고 한다. 스모키한 홍차. “홍차에도 레벨테스트가 있다면 랍상소우총은 어퍼 어드밴스드 정도의 단계가 아닐까?” 도전정신을 불러일으키는 설명이다. 한국보다 홍차 문화가 발달한 일본(홍차의 고장 영국보다 훨씬 가깝다는 장점도 있다)의 좋은 홍차 가게들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홍차 캔에 쓰여 있는 ‘크리스
[도서] 눈도 머리도 향긋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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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지수 ★★★★
액션·스릴러 지수 ★★
뱀파이어가 남자친구라면 뭐가 특별할까? <트와일라잇>은 창백한 피부를 가진, 인간의 존재를 초월한 듯한 아름다움을 가진 존재가 뱀파이어이기 때문에 뱀파이어 남자친구가 특별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십대 소녀들이 전세계적으로 열광했다. 하지만 작가의 종교적 성향 때문인지 뱀파이어 남자친구라는 말에서 즉각적으로 연상되는 삽입-흡혈의 이미지는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대신 은근히 감추어졌고, 그래서 애타는 풋사랑이 강조되었다. 그 시리즈에 비교하면 <어두워지면 일어나라>를 위시한 ‘남부 뱀파이어’ 시리즈는 ‘언니들’용이다. 뱀파이어의 피에는 최음제 효과가 있고, 그래서 인간이 그들의 피를 밀거래하기도 한다. 뱀파이어는 인간의 피가 아닌 인공혈액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지만, 되려 인간들이 그들에게 피를 빨리고 싶어한다. ‘송곳니 중독자’들은 뱀파이어에게 물리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다. 그에 따르는 쾌락이 있기 때문이다. 잘생
[도서] 섹시한 뱀파이어 남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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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중반 만화방에서 <2001밤이야기>라는 만화를 빼들었다가 기절하는 줄 알았다. 기대를 뛰어넘는 역작이었다. 과학적 고증없이 오락의 흥취 하나로만 질주하는 당대 소년지풍의 만화가 아니었다. 책은 아서 C. 클라크의 오마주로 시작되더니 무려 4세기에 걸친 인간의 우주 진출을 다양한 각도에서 그려냈다. 멋진 하드 SF였다. 장르 특유의 경이감을 극대화한 훌륭한 문학이었다. 그걸 만화방에서 훔치지 않은 걸 천추의 한으로 생각한 지 어언 15여년. 호시노 유키노부의 <2001밤이야기>가 <2001 SPACE FANTASIA(2001야화)>라는 제대로 된 이름을 달고 총 3권으로 출간됐다(알고보니 90년대 읽었던 책은 해적판이었다). 사실 <2001 SPACE FANTASIA(2001야화)>가 온전하게 창의적인 건 아니다. 호시노 유키노부는 서구 SF문학의 걸작 단편들에서 꽤 많은 영감을 얻었다. 중요한 건 제대로 된 영감을 제대로 표현했다는
[도서] 멋진 하드코어 S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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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 앨런의 단편소설집이 출간되었다. 우디 앨런 영화를 연상시키는, 신경 쇠약 직전의 남자들이 겪는 이야기들이다.
<궂은 날, 영원히 볼 수 있으리>의 화자 ‘나’는 맨해튼 시내에 있는 저택을 구입한다. 부동산 업자는 그에게, 그 집이 스텔스 폭격기보다 훨씬 싼값에 나왔다며 부추겼다. 집을 산 뒤, 집을 개조하려고 보니 개조비용이 타지마할을 보수하고도 남을 정도의 액수로 올라가고 있었다. 서둘러 계약을 한 건축업자는 시간이 지나고 보니 지독하게도 솜씨 없는 인간이었고, 결국 주인공은 샤워도 잠도 제대로 할 수 없는 공간에 추가 비용만 들이게 된다. 딴에는 머리를 쓴다지만 고민의 결과는 악화일로를 걷는다. 우디 앨런의 소설 속 주인공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우디 앨런 자신과 그의 영화 속 페르소나를 지독하게도 닮아 있다. 가끔은 우디 앨런의 목소리로 진행되는 내레이션이 귓가에 울리는 가운데 영화를 보고 있는 듯 기시감이 들 정도다.
<나의 가치와 몸값은
[도서] 우디 앨런표 단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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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의 극영화 수상작과 배우들만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반기(?)를 들었다. <오스카 애니메이션>은 부제 그대로 ‘오스카 수상 애니메이션 속에 숨겨진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제작 기법’에 관한 책이다. 지난 오스카 수상작 가운데 노먼 매클라렌의 <이웃>(1952), 프레데릭 벡의 <나무를 심은 사람>(1987), 타이런 몽고메리의 <퀘스트>(1996) 등 가장 멋진 단편애니메이션 13편을 선정해 제작 기법 분석은 물론, 감독 및 스탭들과의 인터뷰도 꼼꼼하게 실었다. 작품마다 시놉시스와 숏 바이 숏, 창작자에 대한 설명, 그리고 사운드트랙에 이르기까지 치밀한 분석과 더불어 제작 과정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정말 구체적이다.
연속적으로 펼쳐놓은 스틸 컷에는 프레임 번호가 달려 있는데 이에 대해 옮긴이는 “이러한 표시는 애니메이션 창작자와 연구자 모두에게 중요하다. 프레임 번호는 그저 이미지의 순서를 표시하는 게 아니라, 그것들의 지속시간을 가늠할
[도서] 대가의 지혜를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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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득키득 웃음 지수 ★★★★
친구에게 권한다 지수 ★★★☆
<플리즈, 플리즈 미!> <오늘의 커피> <로맨스 워크샵> 같은 기선 작가의 요즘 작품들은 딱 성인 여성을 위한 명랑순정만화다. 이 ‘성인을 위한’이라는 말은 약간 미묘하다. 일단, 전혀 야하지는 않다. 어른만 알 수 있는 대단한 깨달음을 갖춘 것도 아니다. 산전수전 겪어가며 피곤하게 나이드는 여자들을 소소하게 웃기는 재주가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기본 인물 구성에 어머니가 게임방을 운영한다는 설정으로 비튼 <게임방 손님과 어머니> 때만 해도 순정보다는 명랑에 더 무게중심이 강했는데 근작들에서는 연애담쪽에 무게중심이 많이 기운 인상이다.
<오늘의 커피>는 커피에 대해서라면 더없이 진지한 바리스타 나기태와 자판기 커피마저 특별한 맛으로 둔갑시키는 가난한 여자 오난지의 이야기다. 두 사람이 최고의 커피를 향해 다가가는 이야기를 그
[도서] 언니들을 위한 명랑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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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기차 여행기를 드로잉으로 읽는다. 한달여 동안 후쿠오카에서 시작, 도쿄에서 끝나는 여정. 기차 여행에 관심있는 초보 여행자라면 여행 루트나 전반적인 여행 요령을 익히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꽤 재미있게 볼 만한 책이다. 철도 여행을 해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철도 여행의 운치에 대한 감상도 곳곳에서 발견된다. 한달여 동안 일본을 여행하면서 보고 생각한 것들을 드로잉으로 정리했다. 기차여행의 빼놓을 수 없는 묘미라고 할 수 있는 에키벤(기차역에서 파는 도시락)의 경우, 일본 각지의 특산품과 개성을 맛볼 수 있어 인기가 높은데, 인기 있는 에키벤을 모아 소개한 코너가 특히 눈길을 끈다.
특히, 구간별로 독특한 모양의 기차를 타게 되고 지역 특색을 느낄 만한 도시락을 맛보는 일본 철도 여행 특유의 즐거움에 대한 이야기가 읽는 재미를 더한다. 여행정보서라기보다는 드로잉 에세이라고 볼 만한데 여행의 정취를 전하는 데나 정보를 전하는 데나 미흡한 점이 눈에 띈다는 점은 아쉬
[도서] 그림 보고 기차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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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로 유명한 아트 슈피겔만의 만화 잡지 <Raw>에서 작품활동을 시작한 작가 찰스 번즈의 걸작 그래픽 노블. 1970년대 중반 시애틀 근교의 한 고등학교에서 신체가 기묘하게 훼손되는 ‘벌레병’이 퍼진다. 증상은 다양하다. 어떤 소녀는 피부가 계속해서 벗겨지고, 어떤 소년은 쇄골 위에 작은 입이 생겨나고, 어떤 소녀는 꼬리가 자라난다. 그러나 사회는 이들의 변화에 대해 아무런 조처도 취하는 것 같지 않다. 신체가 훼손된 친구들은 숲에 모여서 숨어 살기도 하고, 또 어떤 친구들은 그저 감염 사실을 철저하게 숨긴 채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어떤 의미에서 <블랙홀>의 벌레병은 성인이 된다는 것에 대한 일종의 은유처럼 보인다. 아이들은 환각제와 섹스와 자기혐오로 비틀거리고, 찰스 번즈는 그 모든 고등학생들의 지옥도를 독자의 신경이 끊어질 듯한 예민함으로 차갑게 그려낸다. <블랙홀>은 펼친 자리에서 순식간에 읽히는 그래픽 노블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도서] 고등학생의 지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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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메이드 영화 같은 편집과 진행이 흥미로운 이응준의 신작 소설이다. 남북이 통일된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달의 뒤편으로 가는 자전거 여행> <내 여자친구의 장례식>으로 이응준 작가의 이름을 기억하는 30대라면 깜짝 놀랄 만큼 어둡고 날선 책이다.
2016년 4월. 통일된 한국은 잔뜩 곪아 있다. 갑작스러운 통일만큼이나 깜짝 놀랄 많은 문제들이 통일된 한국을 짓누르고 있어서다. 조선노동당 최고위층의 고운 딸은 창녀가 되었고 조선인민군의 자랑스러운 최정예 전사는 깡패가 되었다. 공화국 군대의 무기 회수와 그 관리가 허술했던 탓에 이제 한국에서 총기사고는 일반적인 일이 되었다. 북한 인민의 주민등록화에 실패, 적없는 ‘대포 인간’이 양산된다. 게다가 한국은 엄청난 통일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전망없는 3등 국가로 망해가고 있는 상황이다. 근미래라고는 하지만 처절한 지옥도 같은 상황 속, 인민군 출신들이 결정한 폭력 조직 내부에서 의문의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도서] 어떤 누아르적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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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보드리야르가 쓰고 유진 리처즈의 사진이 함께 실린 <아메리카>는 미국이라는 나라와 미국이 대표하는 현대성을 읽는 책이다. 뉴욕과 같은 도시를 다루기도 하지만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미국의 사막에 대한 담론이다. 사막은 도시들, 관계들, 매체들이 모두 삭제된 비전을 창출하기 때문에 보드리야르의 관심을 끄는데, 그 비전은 기호들과 인간들의 사막화, 즉 문명의 사업들이 좌초하게 되는 정신적 변경을 구성한다. 유럽인의 눈으로 바라본 미국 도시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중심이 없는 곳이다. 특히 사막과 사막 사이에 있는 도시들에서 문화의 유일한 요소, 유일한 움직이는 요소는 자동차뿐이다.
사막과 그 끝에 있는 도시에 대한 보드리야르의 통찰은 빔 벤더스의 <파리, 텍사스>의 이미지나 이야기와 연결지어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어쩌면 유럽인이 보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정수는 그 사막, 혹은 사막과 사막(정신적인 것이든 실제 지표로 존재하는 장소이건)을 연결짓는 길 위에 있
[도서] 사막에서 발견한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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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베르토 음악을 듣고 싶다 지수 ★★★★★
라틴 음악에 대한 정보 지수 ★★★★
2003년 조앙 질베르토의 도쿄 콘서트. <행복>을 마친 그는 품에 안은 기타 위로 몸을 기대듯, 오른손을 입 언저리에 댄 채로 고개를 숙였다. 몇분이 그렇게 지나고도 그가 좀처럼 일어날 기색이 없자, 관객은 박수를 쳤다. 그는 미동도 없이 앉아 있을 뿐이고 사람들의 박수 소리는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했다. 그는 그렇게 20분여를 앉아 있었다. 그러다 나이 든 외국인이 맨발로 걸어나와 부드럽게 질베르토의 어깨를 감싸안고 그의 몸을 일으켜 세웠다. 환호성. 질베르토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조빔의 곡 <코르코바도>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질베르토는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전혀 느끼지 못한 채로 관객의 박수 소리 하나하나에 마음으로 답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이런 관객을 찾고 있었다.”
작사가이자 EBS 라디오 <세계음악기행>의 주말 DJ인 박창학이 쓴 &l
[도서] 라틴의 영혼을 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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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 밥 먹여주냐.” 예술혼을 불태우겠다며 부모와 대거리를 해본 예술가 지망생들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말이다. 그러나 아트페어가 활발하게 열리고, 예술작품이 경매에서 고가에 낙찰되는 요즘 시대의 지망생들은 댈 만한 핑계도 많다. 데미안 허스트, 백남준, 요시토모 나라… 아버지. 예술은 밥 먹여준답니다.
<왜 예술가는 가난해야 할까>는 부와 명예의 환상으로 뒤덮인 예술계의 가짜 거품을 걷어내는 책이다. 전직 경제학자이자 예술가인 저자 한스 애빙은 당신이 데미안 허스트가 되기란 로또 1등에 당첨될 확률만큼이나 희박하다고 말한다.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지극히 한정된 예술가들만 지원하는 정부와 기업의 후원 시스템, 그리고 예술은 신성한 것이자 평생 추구해야 할 진리라 믿으며 자신의 청춘을 예술계에 투신하는 젊은이들의 맹목성. 즉, 소수의 승자가 독식하는 예술계의 구조는 신화를 좇는 이들과 그 신화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이들의 필요성에 따라 돌아간다는 것이다.
비교대상
[도서] 밥 굶기는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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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궁리에서 ‘잭 런던 걸작선’을 냈다. <강철군화>와 <비포 아담> <버닝 데이라이트> 등 세권의 장편이 먼저 출간되었고, 2011년 초에 전체 일곱권으로 완간될 예정이다. <비포 아담>은 원시시대 인류의 삶을 상상한 작품이며, <강철군화>는 전설의 ‘강철군화’ 혁명가의 일대기로 사회주의 혁명운동을 다룬다. 체제 유지의 도구가 된 사법부나 언론, 노조를 비판하는 이야기는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한 울림을 갖는다.
잭 런던은 그의 작품만큼이나 삶이 유명했다. 1876년생인 그는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육체노동을 하며 소년 시절을 보냈고, 쓰는 글마다 출판사들로부터 수백번 퇴짜를 맞았다. 다양한 일을 전전했던 그는 자신의 경험을 살려 1989년부터 본격적으로 글을 썼고, 1903년 <야성이 부르는 소리>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뒤 마흔살에 죽을 때까지 19편의 장편소설과 200여편의 단편,
[도서] 잭 런던 걸작선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