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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밀실살인입니다!”
탐정이 비장하게 선언한다. 초등학생 때는 밀실 선언이 있을 때마다 손에 땀을 쥐었다. 어느새 닳고 닳은 독자가 된 나는, 이제 탐정의 밀실 선언이 떨어지면 ‘또!’ 하고 생각한다. 워낙 많이 읽다보니 (그나마) 상식적으로 생각 가능한 모든 트릭을 경험했고, 남은 건 비상식적인 돌연변이 결론뿐인데, 그건 성에 안 차기 때문이다. 진짜 웃긴 건… 그래도 읽는다는 것이다! 클리셰와 제대로 놀 줄 아는 영민한 작가를 만나는 일은 언제나 즐겁기 때문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명탐정의 규칙>은 그런 탐정물 클리셰를 ‘놀려먹겠다’고 작정한 책이다. 명목상으로는 미스터리 단편집이지만 화자는 지방 경찰본부 수사1과 경감. 탐정물에서 명탐정 보조역으로 자주 등장하는 유의 인물이다. 그는 하소연부터 시작한다. 조연에게도 고충이 있다. 실수로라도, 탐정보다 먼저 미스터리를 풀면 안된다. 그러니 탐정보다 먼저 미스터리를 푼 뒤 오답만을 제출해야 하는 것이다(100점만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눈오는데 고립이라니 또 밀실살인은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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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시위를 반성하는 사람이 없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준엄한 꾸짖음이 화제다. 대체 무엇이 그로 하여금 저런 말을 해도 된다고 생각하게 만들었을까. 영화 제목 식으로 말하면 이 상황에서 미친놈, 덜된 놈, 이상한 놈은 누구인가? 생각을 해야 한다. 인문사회적 사고의 기본기를 키워주는 책들이 최근 꽤 선을 보였다. 진보를 위한 개론서들이라고 할까. 말을 주고받는 인터뷰 형식이 좋다면 김규항이 말하는 진보 이야기 <가장 왼쪽에서 가장 아래쪽까지>가 있고, 좀더 근본적인 이론적 체력 키우기가 필요하다고 느낀다면 이택광의 <인문좌파를 위한 이론 가이드>가 좋겠다. 오늘의 한국을 여러 관점에서 조망하고 싶은 사람에게 권할 만한 책이 <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다. 2009년 연말 휴머니스트와 오마이뉴스가 공동으로 열었던 민주주의 특강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한홍구, 진중권, 우석훈, 오연호, 박원순 등 총 12명의 강사가 참여했다.
도정일 교수의 여는 말은 왜
[도서] 어떤 세계에 살고 싶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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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I>나 <크리미널 마인드>를 비롯한 범죄물에는 분기탱천해 총을 들고 용의자의 집 문을 박차고 들어가는 경찰이나 FBI가 자주 나온다. 용의자의 집에는 범죄사건을 모은 스크랩이나 해부학, 폭발물 관련 책이 쌓여 있어서 “이런 인간이 제정신일 리 없어” 하는 의심을 더하게 마련이다. 그런 장면을 볼 때면 내 방이 저 사람들에게 수색당할 상황에 처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싶은 근심이 묵직하게 양 어깨에 올라탄다. 책장에는 미스터리 소설과 범죄심리학이니 하는 책들이 너무 많다. 방 안은 어수선한데다가 여기저기 각종 술이 켜켜이 누워 있다. 컴퓨터를 뒤져도 나을 건 없다. 대체 나 같은 사람이 수상하지 않다면 누가 수상하다는 말인가. … 벽지라도 핑크색으로 바꿔볼까.
<스푸크> <봉크>의 메리 로치는 이런 ‘수상해 보이는’ 걸로 따지면 테드 번디급이다. “시체는 우리의 슈퍼히어로”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로치는(이름도 하필 바퀴벌레다) 죽은 상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죽어서 슈퍼히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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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책을 읽었다. 앞에 앉은 사람들이 책 표지 제목을 보더니 다 내 얼굴을 쳐다봤다. 한두명도 아니고. 밤 11시 지하철에서 <술꾼의 품격> 같은 책을 읽는 여자 얼굴이 어지간히 궁금했던 모양이다.
<술꾼의 품격>은 <한겨레> <씨네21> 기자였던 임범의 에세이집이다. 한 가지 장담할 수 있는 사실은 그가 정말 술꾼이며, 이런 책이 대한민국에서 나온다면 최적의 후보로 자신있게 꼽을 만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1년 정도 <씨네21>에서 같이 일한 적도 있지만 그와 밥을 먹은 기억보다 술 마신 기억이 훨씬 많다. 그리고 그 술의 팔할은 폭탄주였다. 그러므로 당신이 이 책 <술꾼의 품격>을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를 금세 알 수 있는 방법은 이 책의 3장 ‘폭탄주’를 읽어보는 것이다. 3장에는 폭탄주라는 말의 기원과 영어 명칭을 논하는 데서 시작하는 ‘보일러메이커와 <흐르는 강물처럼>’, 한국식 폭탄주의 전형
[도서] 타는 목마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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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를 누르는 혼돈의 힘, <캐리비안의 해적>과 럼
<캐리비안의 해적> 1,2,3편(고어 버번스키 감독, 2003, 2006, 2007년)을 보면서 나는 <피터 팬>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피터 팬>의 피터 팬은 어른이 되기를 거부한 채, ‘네버랜드’라는 작은 섬에서 고아 어린이들과 요정들과 어울리면서 해적 후크 선장과 전쟁, 혹은 전쟁놀이를 하며 산다.
여기서 네버랜드를 카리브해 전체로, 나아가 이 세계 바다 전체로 확장하고 해적 선장을 후크 한 명에서 바르보사, 데비 존스, 샤오팽 등으로 늘리면 어떻게 될까. 무대를 그렇게 넓히면, <피터 팬>의 집 없는 고아 어린이들은 <캐리비안…>의 해적선 선원들이 되면 된다. <피터 팬>의 요정들은, 판타지를 강조하면 <캐리비안…>에서 복수를 벼르는 여신 칼립소가 될 것이고, 유희나 쾌락을 강조하면 카리브해 섬 항구의 여자들이 될 것이다. 어느
[신작소개] 영화, 술을 캐스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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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식 SF는 TV드라마 <닥터 후>로 익숙하다. 우주를 종횡무진하며 허허실실 농담을 진담처럼 던지는 스타일. <대수학자>도 그렇다. 첫 농담의 절정은, 가마솥처럼 생긴 인공지능을 둘러싸고 여러 종족들이 모여 우주 전쟁을 논하는 회의장면이다. 인공지능은 말한다. 드웰러 목록을 둘러싸고 전쟁이 일어난다고. 우주는 웜홀로 순간이동해야만 서로 연결된다. 고로 행성계 근처에 웜홀이 있는지 없는지가 중요하다. 마치 KTX가 우리 동네에 생기느냐 마느냐처럼. 그런데 드웰러라는 엄청나게 오래 살고, 믿을 수 없이 똑똑하며, 참을 수 없이 제멋대로인 종족이 전 우주를 연결할 수 있는 200만개의 웜홀 좌표를 안다는 것이다. 세상에, 전 우주의 연결? 수억년 사는 종족?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쏭달쏭한데 화룡점정 개그 한방이 있으니, 바로 인공지능이 가제트 형사가 받는 메시지마냥 일정 시간이 지나면 폭파한다는 사실. “우린 모두 완전히 돌아버린 외계인들과 초강력 무기들과 우라지게
[도서] 영국식 우주 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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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여행자> 요시다 슈이치 지음 노블마인 펴냄
도시민의 외로움을 요시다 슈이치는 늘 섬세하게 짚어낸다. 그에게 아쿠타가와상을 안긴 <파크 라이프> 때부터 그랬다. 국제적인 프랜차이즈 커피숍, 지하철과 같은 대중교통수단, 거절에의 두려움을 안고 손을 내밀었다 실망을 맛보게 만드는 미묘한 거리감. 일상일 뿐이기에 의미 부여를 하지 않고 살아왔던 도시의 편린들을 새로운 느낌으로 마주하게 만든다. 그의 <도시여행자>는 그가 십년에 걸쳐 써온 도시들에 관한 단편집이다. 당연하게도 도쿄를 포함해, 오사카와 상하이, 그리고 서울에 대한 이야기들이 실렸다. 서울에 관한 이야기를 읽다보면 무심코 넘기던 서울의 일상이 새삼스러운 의미를 갖게 된다. 넥타이를 아무렇게나 비닐봉지에 넣어 건네는 동대문의 상인에서 젖은 손으로 음식 값을 받는 식당 아줌마까지. 서울과 도쿄를 가르는 미묘한 정서의 차이가 주는 재미. 무엇을 경험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일상의 도
[도서 단신] <도시여행자>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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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자토페크는 실존했던 체코의 육상 선수다. 1952년 헬싱키올림픽 장거리 5000m와 10000m에서 금메달을 딴 그는, 난생처음 뛰어본 마라톤 종목 참가를 마지막 순간에 결정했고 그마저도 금메달로 끝맺었다. 그의 별명은 ‘체코 기관차’였다. 그가 달리기에 재능을 발견하고 꾸준히 달린 시기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점령기부터 프라하의 봄 이후 소련 치하까지다. 1983년 <체로키>로 메디치상을, 1999년 <나는 떠난다>로 공쿠르상을 받은 장 에슈노즈는 그런 에밀 자토페크의 달리기 인생을 소설로 썼다.
에밀의 이야기는 그가 노동을 시작한 운동화 공장의 고무 제작부에서 시작한다. 운동화 회사는 회사 이름을 노출하기 위한 스포츠팀 후원과 육상 경기 주최에 열을 올렸다. 에밀은 운동이라면 질색이었지만 점령군마저 청년 조직을 중심으로 스포츠 행사 개최에 열을 올렸다. 그런데 정말 운동이 좋아졌다. 온 힘을 다해 뛰니 쉽게 우승자가 되었다. 그렇게 달리기는
[도서] 그는 달렸다, 고로 존재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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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란 작가들에겐 의외로 다루기 난감한 소재일 거다. 애묘인이라면 쉽게 이해하겠지만, 멀리서 힐끔거리면 모를까, 일단 다가가 그 매력에 빠져버리면 대상과의 거리 두기가 심히 어려워져버리니 말이다.
극진히 사랑받든 굶주려 죽어가든, 한국에서 고양이는 이미 보편적인 동물이 된 지 오래다. 도시의 거리 어디에나 편재하는 이 비현실적인 동물은 그럼에도 좀처럼 자신에 대해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현대문학’ 동인인 열한명의 작가들이 써낸 테마 소설집 <캣캣캣>엔 우리가 쉽게 연상하는, 뇌를 갈아버리는 종류의 우유빛깔 사랑스러움은 없다. 오직 ‘고양이’만 보고픈 사람은 한번 더 생각하고 집어들 것. 이 책은 고양이보다는 고양이가 발자국을 찍고 지나간 이 도시의 풍경에 초점을 맞춘다.
다양한 환상의 형식을 빌려 표현되는 그 풍경은 대체로 기이하고 삭막하고 불안하지만, 마냥 어둡지만은 않다. 열한편 모두 재미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간식캔 콤보세트처럼 골라 따보는 즐
[도서] 냥이의 발자국을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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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도시2>를 보았다. 영화가 마음속으로 내리꽂힌 순간은 바로 송두율 선생이 정말 북한과 가까울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고개를 쳐들 때였다. 우리 안의 뿌리 깊은 레드 콤플렉스가 각성한 순간. 송두율 선생뿐 아니라 윤이상 선생도 마찬가지일 거다. 아무리 위대한 예술가라도 ‘간첩’이면 끝. 통영국제음악제는 아직도 윤이상 이름 석자를 내거는 문제로 시끌시끌하단다.
<랩소디 인 베를린>은 윤이상 선생을 향한 레드 콤플렉스를 우회하여, 디아스포라들의 애달픈 운명을 가지고 이야기 그물을 정성껏 짜내려간다. 이근호는 일본 여성 하나코와 함께 그녀의 첫사랑이자 음악가였던 재일 한국인 김상호가 자살한 이유를 추적하게 된다. 김상호는 북한에 갔다는 이유로 한국에서 17년 동안 감옥생활을 했었다. 작가가 윤이상 선생의 “작품과 생애에 혹독히 빚졌으면서도 선생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밝힌 바, 김상호는 그 삶뿐만 아니라 동양적 전위 음악을 추구한 예술관도 윤이상 선생을 닮았다.
[한국 소설 품는 밤] 나의 사랑 그의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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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알트먼의 영화 <고스포드 파크>의 톡 쏘는 고전미를 그리워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놓치지 않으면 좋겠다. 흔히 고전적이라고 할 때의 우아함을 기본으로, 은근한 풍자, 뼈굵은 농담을 곳곳에 숨겨둔 미스터리물이기 때문이다.
<증인이 너무 많다>는 애거서 크리스티와 더불어 영국 미스터리물의 황금기(추리소설이 부르주아의 애호물이었던 시절)를 다진 도로시 세이어스의 ‘귀족 탐정 피터 윔지’ 시리즈다. 이후 무수한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집사 캐릭터의 원형인 번터가 등장하는 시리즈이기도 하다. 피터 윔지 경의 형인 제럴드 덴버 공작이 살인혐의로 체포된다. 피해자는 공작의 여동생 메리의 약혼자 캐스카트. 모든 정황과 관계자들의 증언으로는 공작이 범인이지만 피터는 형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나선다. 문제는 지적이고 말주변 뛰어난 이 피터라는 인물이 때와 장소를 못 가리는 쾌활함과 통찰력으로 다른 사람들의 기분을 망치곤 한다는 사실. 여동생은 그를 ‘밉상’이라고 콕 집어
[도서] 귀여운 밉상 귀족 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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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이야기>의 김태권이 <초한지>와 <삼국지연의>를 10권의 만화 <김태권의 한나라이야기>로 엮어냈다. 첫 두권이 먼저 선을 보였는데, 1권은 <진시황과 이사>, 2권은 <항우와 유방>이다. 그런데 왜 한나라일까. 작가의 말을 빌리면 이렇다. “서양 문명에서 로마제국에 해당하는 것이 동아시아에서는 한나라다. 로마가 서양 역사에서 하나의 전범이듯, 한나라 역시 동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그러했다.” 역사의 큰 줄기를 잡아 이해하기 쉽게 풀어내는 것만이 다는 아니다. 고정관념처럼 굳어진 몇몇 인물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거나 혹은 동양적 성공신화의 모델이 된 사건을 재발견하게 해준다. 예컨대, 폭군으로만 알려진 진시황. 그는 왜 그렇게 욕만 먹었나. 비슷한 업적을 쌓고도 서유럽에서는 영웅이 되고(알렉산드로스 황제), 동아시아에서는 악당이 되는(진시황제) 이유는 무엇일까. 평민 출신도 천자가 될 수 있다는 궁극의 출세
[도서] 유방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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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올 문학상은 없다 싶었는데 하나 더 추가. 문학동네에서 <제1회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을 냈다. “한국 문단의 최전선”에 서 있는 “젊은 감각”을 지닌 작가들의 단편이란다.
장르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김중혁과 배명훈을 찾자. 대상을 받은 김중혁의 <1F/1B>는 상가건물 관리자라는 ‘소외’의 아이콘을 요리조리 굴리는 손맛이 백미다. 건물 관리자들이 비밀 지하벙커로 모여 외부 공격에 맞선다는 장르적 설정도 있고, 지하벙커가 ‘1F’와 ‘1B’ 사이에 존재하는 ‘/’(슬래시) 같은 공간이듯 관리자들 자신도 그런 존재라는 한국문학적 통찰도 있다. 진지한 투로 건네는 썰렁한 농담도. 건물관리자연합 회장이 펴낸 책을 보자. “우리는 손을 뻗어서 형광등의 열기에 맞서 싸운다. 우리는 깜빡이는 형광등보다 외로운 존재들이다.”
배명훈의 <안녕, 인공존재>는 철학적 아이디어 덕분에 이 작품집과 제법 어울리는 본격SF다. 과학자 신수정이 자살한 뒤 ‘나
[한국 소설 품는 밤] 이야기 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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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소년 소녀의 지구는 일기와 편지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어딘가에 일기와 편지에 쓰인 일들이 일어나는 가상우주가 있었다. 그 속에서 우리는 매일 소풍을 가거나 가족과 외식을 했다. 요즘처럼 실시간으로 트위트와 리트위트를 반복하는 시대라면 코웃음칠 펜팔이라는 문화는 어땠나. 매일같이 우리는 묻고 또 물었다. 하우 아 유? 상대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바로 자문자답. 아임 파인 땡큐. 우표 수집을 취미로 갖지 않은 아이가 없었고, 정 할 말이 떨어지면 <펜팔 예문집>에 나온 남의 일상을 베끼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그때 그 일이 좋다 아니다를 말하자는 건 아니다. 다만 가끔은 몹시 그리워진다. 글이 또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나만의 가상현실.
<연애편지의 기술>을 보면 소싯적 편지 한통으로 지구를 정복할 기세였던 지난 세기의 몇몇 순간이 떠오른다. 편지는 소통이라고 배웠는데 사실 대부분은 혼잣말이고 넋두리였다. <연애편지의 기술>에서 편지를 쓰고
[도서] 이 미친 유머감각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