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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조의 첫 정규 앨범 제목은 《Mind Web Wanderer》(2019)다. 장르를 분류하는 음원 사이트에서 그의 음악은 ‘힙합/랩’ 범주에 들어간다. 하지만 직접 음악을 들으면 전자기타와 드럼부터 비트를 찍어낸 전자음의 나열에 이르기까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요즘 힙합과는 거리가 있다. 한국과 미국, 인도에서 삶을 보낸 이 방랑자 같은 음악가에게 ‘원더러’(Wanderer)라는 제목은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어떤 음악이 담겨 있느냐는 뻔한 질문을 에조에게 던지니 재미있는 대답이 왔다. “어떤 종류의 음악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한 작업은 아니에요. 음악을 만들면 계속 내면의 이야기를 듣게 되거든요. 그 안에서 계속 자신과 대화하고, 그 과정에 있는 이야기를 만들었어요.” 감각과 느낌으로 곡을 설명하자면, 나른한 멜로디부터 소음이 가득한 노이즈까지 다양한 연주 위에 조금 낮고 탁한, 때로는 날카로운 에조의 목소리가 ‘읊조린다’는 표현처럼 어우러진다. 때로는 랩이고, 때로는 흥얼거림이
[마감인간의 music] 에조 《Mind Web Wanderer》, 여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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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 이사를 도와주던 날이었다. 그날의 이사는 평소와 좀 달랐다. 지인의 집에는 예술 작품이 많아서 용달 기사님들은 서로 “작품 조심해요!”라고 경고하며 짐을 옮기고 있었다. 나는 골판지를 겹겹이 붙여 만든 작은 가구 하나를 보고 지인에게 “이거 아이디어 좋네. 직접 만들었어요?”라고 물었다. 지인은 미소를 띠면서도 자못 진지하게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디자인한 작품이에요”라고 답했다. 우리 대화를 엿들은 기사님은 말했다. “난 도저히 이해가 안 가요. 그게 어떻게 작품이에요? 아무리 봐도 골판지 붙여놓은 건데.” 작품들 때문에 가뜩이나 긴장하며 짐을 나르는데, 그렇게 작품 아닌 것 같은 작품을 갑자기 만나면 난감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실제로 한 설문조사에 이런 질문이 있다. “현대미술은 초등학생도 그릴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다수의 사람들이 “그렇다”라고 답했다. 그렇다면 예술성이란 무엇일까? 초등학생도 만들 수 있고, 골판지같이 저렴한 재료로 만들 수 있는 작품이라면, 우
예술성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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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 리폼드>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폴 슈레이더의 옛 동료 마틴 스코시즈의 <사일런스>(2016)는 <퍼스트 리폼드>와 훌륭한 동시상영의 짝을 이룰 법하다. 1640년 예수회 신부 세바스티안 로드리게즈(앤드루 가필드)는 박해가 극심한 일본에 도착한다. 숨어 살며 동굴에서 말씀을 전파하지만, 고문으로 느리게 죽어가는 신도들의 비명과 노회한 관리의 회유, 배교한 선배 신부의 논리는 로드리게즈를 시험한다. 그런데 기나긴 간구에도 응답하지 않던 신은, 거꾸로 매달려 죽어가는 신도를 살려주는 대가로 예수의 부조를 밟으라는 명을 받은 신부 곁에서 비로소 침묵을 깬다. “나를 밟아라. 나는 밟히기 위하여 세상에 왔으니.” <사일런스>의 하나님은 승리하는 영광의 신이 아니라 약한 인간을 위해 우는 신이다. 적절하게도 스코시즈는 로드리게즈가 보는 예수 이미지로 엘 그레코의 여위고 창백한 예수 초상을 썼다.
04/12
폴 슈레이더는 비평가로서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신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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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진가신 / 출연 여명, 장만옥 / 제작연도 1996년
내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집에 늘 무협 시리즈 비디오테이프가 있었다. 무협영화를 좋아한 아버지 때문이었다. 7살인 내게도 강호를 누비는 협객들의 영웅적 활약상과 대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주인공들은 멋져보였다. 손가락 하나, 부채 한번 휘두르면 악당들이 턱턱 나가떨어지는 모습이라니!
어느 날부턴가 비디오 가게의 최신 코너는 무협물 대신 홍콩 누아르물이 차지하게 됐다. <지존무상> <첩혈쌍웅> <천장지구> 속 주인공들은 선글라스에 멋진 정장이나 가죽점퍼를 빼입고 비정한 도시를 누볐다. 여전히 의리에 목숨을 걸고,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오토바이에 올라 질주했다. 멋졌다. 폼도 났다. 우정은, 사랑은, 인생은 저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등학생 때 영화 <첨밀밀>이 개봉했다. 그즈음 아마도 첫사랑 비슷한 감정에 눈을 떴던 나는, 좋아하는 남학생에게 함께 보러 가자는 말도 못해 혼
[내 인생의 영화] 박누리 감독의 <첨밀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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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net <쇼미더머니>와 <고등래퍼>를 통틀어 처음으로 드디어 여성이 우승을 차지한 날, 우연히 JTBC <슈퍼밴드>를 보게 되었다. 서로 다른 음악적 재능을 가진 지원자들이 프로듀서들에게 노래, 연주를 들려주고 평가받으며 설레하거나 자부심을 드러내는 모습은 Mnet <슈퍼스타 K>의 좋았던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그런데 스튜디오 안에 여성은 프로듀서 이수현뿐이고 보컬, 드럼, 피아노, 퍼커션 줄줄이 남자만 등장하는 것을 보며 의아했다. (그럴 리 없지만) 밴드를 결성하려는 여성이 이렇게 없나? (절대 그럴 리 없지만) 여성들은 예선에서 다 탈락했나?
“기획 의도는 마룬파이브 같은 글로벌 팝 밴드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초반 시즌은 지향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남성 위주로 갔다”(<연합뉴스>)는 <슈퍼밴드> 김형중 PD의 인터뷰 기사를 보고서야 이 프로그램이 애초에 ‘남성 아티스트’만 지원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
[TVIEW] <슈퍼밴드>, 남자들은 자꾸 나를 어이없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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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1982)에서 핵전쟁 이후 혼돈과 무질서에 휩싸인 미래의 시간은 바로 올해인 2019년이었다. 은퇴한 블레이드 러너였던 데커드(해리슨 포드)는 지구에 잠입한 복제인간 리플리컨트들을 찾는 임무와 함께 강제로 복직하게 되고, 탐문 수사를 위해 찾아간 타이렐사에서 자신이 복제인간임을 모르는 레이첼(숀 영)을 마주하게 된다. 리플 리컨트는 물론 지금도 기술적으로 구현되지 않은 각종 전자기기와 교통수단이 등장하지만, 지금 2019년의 시점에서 영화를 다시 보자면 디테일하게 내다보지 못한, 기술의 발전과 무관한 미래의 모습도 볼 수 있다. 가령 사람들은 여전히 실내에서 담배를 피우고 종이신문을 읽고 있다. 모든 것이 암울하게 바뀌어버린 미래에, 그런 오프라인 종이 매체의 촉감이 괜히 반가웠다고나 할까.
진짜 2019년이 된 올해, 이번호 특집은 ‘5G 시대의 충무로’다. 장영엽, 김성훈 기자가 기획회의 때 5G급 속도로 아이템을 제안했고, 무엇보
[주성철 편집장] 5G 시대의 충무로, 준비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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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M 프로듀서 니키 로메로는 아비치 사후 앨범 논의가 시작될 즈음 의미심장한 발언을 남겼다. “원작자가 인정하지 않은 곡들을 가지고 작업하는 게 도덕적으로 옳은 건지 잘 모르겠다. 내가 아는 아비치는 엄청난 완벽주의자였다. 그가 동의할지 안 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뭔가를 공개한다는 게 좀 찜찜하다.”
그러나 결국 유작은 발표됐다. 4월 10일에 발표된 《SOS》는 아비치의 미발표곡을 동료 뮤지션들이 완성한 버전이다. 생전의 고통을 암시하는 가사와 죽음 이후 첫 신곡이란 화제에 힘입어 나오자마자 차트에서 고공행진 중이다. 스포티파이 글로벌 차트 5위 안에 무난히 안착했다. 6월에는 앨범 단위로 풀린다. 제목은 본명 ‘팀 베릴링’(Tim Bergling)에서 따온 《Tim》이다.
일렉트로닉 음악 매거진 <믹스맥>은 아비치를 “일렉트로닉 뮤직에서 최초로 사후 착취되는 슈퍼스타”라고 표현했다. 커트 코베인, 투팍, 마이클 잭슨 등 장르를 막론한 상업적 이용이 일렉트로닉 신
[마감인간의 music] 아비치 《SOS》, 누가 미완성곡을 꺼내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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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실에서 매년 낙태와 관련해서 토론한다. 이때 참고할 새로운 영화가 나왔는지를 검토해보는데, 그래도 가장 자주 선택하게 되는 영화는 <더 월>(감독 낸시 사보카, 1996)이다. 세편의 옴니버스로 구성된 이 영화는 1952년, 1974년, 1996년 각각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된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문제를 구체화하고 동시에 쟁점을 집약하면서 토론을 하기에 아주 좋은 영화다. <더 월>을 보면 낙태죄가 폐지된다 해서 원치 않는 임신을 둘러싼 어려움들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낙태가 불법인 상태에서는 이 모든 어려움들은 오히려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4개월, 3주… 그리고 2일>(감독 크리스티안 문주, 2007)은 낙태 절대금지 정책으로 악명 높았던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 시절을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오틸리아는 친구 기바타를 돕기 위해 함께 불법낙태시술을 해주는 의사를 찾아간다. 의사는 이미 임신 4개월이
이미 태어난 생명에 대한 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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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와 <퍼스트 리폼드>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하트스톤>은 뒷날 “당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언제 알았나요?”라는 질문을 받은 성인이 떠올리게 될 어느 여름의 이야기다. 10대에 막 들어선 아이들에게 커밍아웃은 아직 지평선 너머의 문제다. 단짝 토르(발더 아이나르손)와 크리스티안(블라에 힌릭손)은 어떤 성 정체성이냐에 앞서 섹슈얼리티 자체를 처음 발견하는 시기다. 구드문드르 아르나르 구드문드손 감독은 성애의 모양새를 미처 갖추지 않은 성적인 체험을, 뺨의 솜털까지 잡아내는 촉각적 촬영으로 표현한다. 2차 성징의 도래를 앞두고 매일 변모하는 거울 속 자신에게 눈을 뗄 수 없는 토르는 장차 이성애자로 성장한다고 해도 지금은 남성의 육체에 매료돼 있다.
04/08
<어스>에 인용되는 예레미야서 11장11절은 우상을 숭배하는 예루살렘 시민들을 향한 계고다. 지하의 테더드들을 혁명으로 이끈 레드(루피타 니옹고)가 해석하는 ‘우상’은 아마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구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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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사라 폴리 / 출연 미셸 윌리엄스, 세스 로건, 루크 커비 / 제작연도 2011년
내가 처음 영화관에 간 건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이 되면서다. 당시 담임선생님은 여름방학 동안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감상문과 영화 티켓을 가져오라는 과제를 내주셨다. 돌이켜보면 내 직업(조명감독)의 시작이 그 과제에서 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진로에 대해 고민을 거듭했지만 당시의 나는 뭘 해야 할지 몰랐고 한참을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영화 <비트>의 유명한 대사처럼 “나에겐 꿈이 없었”다.
수능까지 치르고 나서야 힘들게 선택한 길이 음향제작과 진학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교회를 다녀 조금 다룰 수 있었던 기타와 작은 음향기기는 내가 레코딩엔지니어라는 꿈을 꿀 수 있게 해주었고, 그렇게 시골 소년이었던 나는 대학에 진학하며 서울 근교로 올라왔다. 하지만 1년 동안 열심히 수업을 들었는데도 음향에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휴학을 했고 빨리
[내 인생의 영화] 정해지 조명감독의 <우리도 사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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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노인 같은 이들이 옹색한 탁자에 생선회를 깔고 플라스틱 잔에 소주를 마신다. 매운탕 냄비에는 필시 라면 사리가 익고 있을 것이다. 이곳은 항구도시의 수산물 공판장. 이들은 사채업계 ‘회장님’들이다. <무간도2: 혼돈의 시대>에서 삼합회 중간 보스들이 허름한 훠궈 식당에 모이던 장면을 한국화하면 매운탕이 나오는구나 싶다. 이 자리의 업계 원로들을 말로 작살내는 백경 캐피탈 회장 박후자(김민정)는 굉장하다. “어리고 버르장머리 없으니까 여기서 이러고 있죠. 제가 늙고 버르장머리 없었으면 회장님들 전부 여기 없어요. 어디다 파묻었지.” 존대와 하대를 뒤섞고 단어 끝음절을 길게 빼는 말투가 맹하고 나른한데, 내용은 거침이 없다.
KBS <국민 여러분!>의 주인공은 경찰 김미영(이유영)과 결혼한 사기꾼 양정국(최시원)이지만, 내 관심은 그의 적대자 박후자에게 쏠린다. 최근 방영하는 드라마들을 보면 후계자가 된 아들이 의식 없이 병상에 누워 있는 아버지를 찾아가
[TVIEW] <국민 여러분!>, 악역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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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창간을 선언하면서, <로드쇼>는 영화잡지의 대중성 확보에 노력을 기울이려고 합니다. 일부 전문가들, 혹은 마니아들의 취향보다는 보통 사람들을 위한 영화잡지를 만들겠습니다. 아직은 몇 사람만이 즐기는 컬트무비를 먼저 다루기에 앞서 흔히 명작이라고 불리는 영화들을 소개하고 깊이 있게 분석하는 지면을 늘리겠습니다. 또한 아직은 완성된 작품을 뚜렷하게 보여주지 못하면서 이름만 무성한 ‘포스터 모더니즘’에 대한 논의도 잠시 보류하겠습니다. <로드쇼>는 자폐적 증상으로 충만한 영상에는 결코 현혹되지 않을 것이며, ‘남의 떡으로 제사 지내려는’ 이즘(主義)에 매달리지 않겠습니다. <로드쇼>는 오늘 제2의 창간을 선언하면서 ‘즐길 수 없는 것은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즐길 수 없다’는 명언을 가슴에 새깁니다. 1992년 11월 <로드쇼> 편집부.”
거의 30년 전, 정성일 편집장이 월간 영화잡지 <로드쇼>를 그만둔
[주성철 편집장] 옛날 영화잡지를 보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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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슈퍼돔이 보였다. 뉴올리언스 입성 직전이었다. 미식축구팀 뉴올리언스 세인츠(줄여서 ‘더 세인츠’) 홈구장인 슈퍼돔은 이번 미국 여행에서 반드시 가봐야 할 장소였다. 음악과 깊은 연관을 맺은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때는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이재민들은 지붕이 반 이상 날아간 슈퍼돔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대략 1년 뒤인 2006년 9월 25일, 보수를 끝낸 슈퍼돔이 마침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기념 공연이 빠질 리 없었다. 유투와 그린 데이가 무대에 올라 <The Saints Are Coming>을 불렀다. 1978년 펑크 밴드 스키즈가 발표한 원곡을 커버한 것이었다. 이 곡과 더 세인츠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 그러나 ‘더 세인츠가 돌아온다’라는 제목이 일단 적절했고, 가사 또한 놀랍게도 뉴올리언스의 부활과 딱 맞아떨어지는 내용이었다. 여기에 더해 두 밴드는 곡의 앞부분에 <Hous
[마감인간의 music] 유투 & 그린 데이 , 라이브 버전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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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성은 사회에 적응하는 개인의 능력이나 대인관계의 원만한 정도를 나타내는 말이다. 좁게는 사교성을 의미하기도 하는 이 사회성은 타인과의 관계를 원활하게끔 하는 심적, 물리적 에너지 자체라 때로는 배터리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지닌 사회성 배터리는 소용량이다. 대체로 12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아 집처럼 혼자 있는 공간에서 휴식하며 수시로 배터리를 충전해야 한다. 혼자만의 공간이 없다면 카페에 들러 콘센트를 찾기도 한다. 이 배터리에 태양광 전지 패널이 달린 사람들이 있다. 밖으로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면, 아니 그렇게 해야만 충전이 되는 사람. 우리 사회에선 특히 이런 외향적인 사회성 배터리를 지닌 사람들을 반긴다. 에너지효율등급이 높은 상품이 시장에서 사람들에게 선호되는 것처럼.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업무 중 사회성 배터리가 방전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긴 시간 사용이 필요한 날이거나, 처음 보는 사람을 만날 때나 나와 다른 성향의 사람들을 많이 만나야 하는 날에는
“죄송하지만 오늘 준비된 사회성이 모두 소진되었습니다. 다음에 다시 찾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