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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기만 하면 독설을 퍼부으며 서로를 비웃는 두 남자가 있다. 20년 만에 초임지로 돌아온 일탄경찰서 수사과장 양철곤(성동일)은 과거 일탄시 부녀자 연쇄강간살인사건의 용의자 아들이 경찰이 된 게 무척 못마땅하고, 경장 하무염(윤상현)은 철곤의 강압수사로 아버지가 자살에 이르렀다고 생각하기에 원한이 깊다.
영구미제로 남은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모티브로 삼은 tvN <갑동이>는 가상의 도시 일탄으로 무대를 옮겨, 공소시효 만료 이후를 이야기한다. 진범을 잡지 못하고 좌천되었던 양철곤과 수사과정에서 또다른 피해자가 된 용의자 가족 하무염 외에도 1996년 9차 사건의 생존자인 정신과 수련의 오마리아(김민정)를 비롯한 여러 인물들이 당시 수사관들이 범인을 지칭하던 ‘갑동이’라는 이름을 떨쳐내지 못한 채 살아왔다. 때마침 일탄시의 국립법무병원 치료감호소에선 ‘내가 진짜 갑동이다’라고 쓴 메시지가 발견되고, 갑동이를 알아본 사이코패스 류태오(이준)는 9차에서 멈췄던 갑동이의 범
[유선주의 TVIEW] 지금도 미치도록 잡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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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우린 모두 알고 있다. <시네마 천국>을. 영화로 꿈꾸던 꼬마 토토와 꿈지킴이 알프레도와의 우정, 그리고 그 아름다웠던 키스 장면들.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사위원같은 신부님이 미친 듯이 검열했지만, 끝까지 살아남아 인생의 아름다움에 대해 교훈을 주던, 그 <시네마 천국>. 그러나 우리는 모두 알지 못한다. 시네마지옥이 있다는 것을. 시네마 파라디소의 정반대말, 시네마 인페르노. 지옥이니 아름다울 리 없다. 요상하고, 이상하고, 망측한 영화들이 즐비한 지옥이란 말이다. B무비? 시네마지옥은 B무비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CDF급 망작들을, 한편도 아니고 예닐곱편을 연달아서, 그것도 저녁 7시부터 다음날 새벽 7시까지 밤새도록 달려보는, 정말 버텨야 하는 지옥 같은 영화 상영회다.
얼마나 지옥스러운지 상영목록을 한번 볼까나? 에드 우드 감독의 <외계로부터의 9호 계획>은 예의상 틀었다고 치자. 북한의 <장군의 아들>이라는, 국군들이 대
[곡사의 아수라장] 고통의 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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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쓰기와 강의가 직업인 비정규직 노동자다. 간혹 독자 메일을 받는데 며칠 전 다소 특이한, 정확히 말하면 오타가 섞인 편지를 받았다. “당신의 인생을 함축한 사자성어를 알려드리는” 인터넷 사이트가 있는 모양인데, 어떤 독자가 내 사주를 보내주었다. 표의어인 한자와 표음어인 한글의 차이를 이용한 일종의 유머 같은데, 내 인생은 ‘탐관오리’(探款悟理)로 요약된단다(정성을 다해 이치를 깨달은 삶은 그 자체로 진리입니다).
생판 모르는 사람이 이메일로 내 팔자(?)를 알려줘 재미있었지만 더 재미있는 일은 그다음이다. 그는 “참고사항”이라며 자기 사주도 알려주었다. “절대 음담패설 아님”이라는 양해를 덧붙인 그의 운명은 ‘질외사정’(侄畏思貞, 어리석음을 두려워하고 올바른 것을 생각합니다).
나는 한참 웃었다. “올바른 것을 생각”한다면 사정(思正)이 맞다. 그 사이트의 표기도 ‘正’이다. 내 짐작에 이 독자는 한자 세대가 아닌 데다 편지의 문맥을 보니 성욕 때문에 고민이 많은 청년
[정희진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질외사정(侄畏思/正)을 반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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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집은커녕 슈퍼마켓도 없는 동네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입이 심심할 때는 시커먼 흑임자죽이나 냉동실 구석에 남아 있던 생강엿을 먹으면서 엄마의 요리책을 봤다. 딸기 생크리임 케이크, 피이넛 버터 쿠키, 오렌지 시퐁 파이…. 예스러운 표기의 이름과 레시피를 수도 없이 읽으며 사진 속 예쁜 그릇에 담긴 디저트의 맛을 상상했다. 타르트는 달콤하고 스펀지케이크는 폭신폭신하고 푸딩은 부드럽겠지. 그때마다 입맛을 다시면서 다짐했다. 어른이 되면 베이킹파우더도 사고 바닐라 향료도 사고 오븐도 사서 저걸 다 만들어 먹어봐야지!
그러나 막상 어른이 되고 나니 집에 오븐이 있어도 1년에 한번 열어볼까 말까, 사실은 어떻게 켜는지도 잘 모른다. 그렇다고 단것으로부터 초연해진 건 아니다. 친구들과 밥을 먹고 나면 자리에서 일어남과 동시에 어디 가서 디저트를 먹을지 의논한다. 퇴근할 때 케이크나 쿠키를 사들고 오면 왠지 마음이 든든하다. 냉동실에는 가끔 아이스크림을 숨겨둔다. 그리고 올리브의 <
[최지은의 TVIEW] ‘아빠 숟가락’ 만사형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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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11일 일기에 <노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배우의 매력이 지아장커 영화의 손꼽히는 장점은 아니다. 그의 인물에게서 눈을 떼기 힘들게 만드는 힘은 대개 배우보다 카메라의 시선에서 나온다. 감독의 오랜 파트너 자오타오가 예외지만, 그녀는 종종 지나치게 만사를 꿰뚫어보는 관찰자의 표정을 지어 영화 밖으로 돌출한다. 픽션의 양식에 전례 없이 충실한 <천주정>에서 제일 생동하는 배우는 유흥업소 종업원 역의 조연 리멍(李夢)이다. 그녀는 장면과 메이크업에 따라 표변하는 인상 속에서도, 캐릭터의 견고한 본령인 정직함과 상냥함을 보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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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 조조 영화 나들이는 즐겁다. 휴일 오전 영화관에는 오후 인파가 밀려들기 직전의 아슬아슬한 호젓함이 있다. 관람을 마치고 입장 무렵과 딴판으로 북적이는 로비를 통과하며 느끼는 뿌듯함은 뭐랄까, 한식 새벽에 성묘를 마치고 귀경하며 하염없이 정체된 하행선을 곁눈질하는 우월감과 비슷하다. 전 벌써 한편 봤습니다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뱀도 태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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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와세다대학에서 저널리즘을 가르치는 교수님, 그리고 10여명의 학생들을 학교로 초청하여 토론회를 열었다. 격년으로 중요한 현장을 직접 학생들과 방문한다는 교수님은 역시 언론인 출신이어서 그런지 내뱉는 말만은 소위 ‘야마’가 확실했다. 그가 던진 야마는 다름 아닌 ‘반지성의 시대’. 일본과 한국의 우경화 경향에 대해 그가 내린 진단이다. 좌우의 문제 혹은 진보, 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의 현상은 ‘반지성’이 횡행하는 게 본질이라는 것. 지인의 소개를 통해 열게 된 토론회라서 별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는데, 이 말 한마디가 내 마음을 흔들었다.
사실 ‘지성’이라고 하는 말이 주는 엘리트주의적 어감으로 인해 평소에 잘 사용하지도 않았다. 지성이 주는 위선적 느낌, 잘난 척에 대해 거부감이 많았고, 그래서 솔직한 ‘감성’을 프로그램에 담아내는 데 노력했다. 그런 이유로 내가 만든 <지식채널e>는 ‘감성 지식’이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프로그램을 만들
[김진혁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반정치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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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둘뿐인 공간에서 ‘선생님의 남편이 선생님을 이름으로 부르고 같은 방을 쓴다니 기분이 이상하다’고 서툴게 말을 잇는 스무살 연하의 남자를 바라보는 마흔살 여자의 얼굴. 침착하려 애쓰는 표정 안쪽으로 사랑의 말들을 흡수하는 그 얼굴에 도리어 이쪽이 무언가를 들킨 것처럼 긴장하고 만다. 독학으로 재능을 쌓은 천재 피아니스트 이선재(유아인)나 서한그룹 예술재단 산하 아트센터의 기획실장 오혜원(김희애)처럼 범상치 않은 부류의 사랑에 공감의 숟가락을 얹기 뭣해서, 사바나 초원의 생태계 다큐인 양 거리를 두려 해도 쉽지가 않다. JTBC 드라마 <밀회>를 볼 때면 이런저런 감정 중 유독 수치심에 반응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그도 그럴 것이 이때 카메라는 혜원이 선재를 보는 시점으로 연하남의 수줍은 질투를 화면 가득 서비스하는 대신, 선재를 올려다보는 혜원이 어떻게 반응하고 언제 이성의 끈을 놓는지 측면에서 기록한다. 선재에게 달려들어 키스하고도 “나 지금 너 아주 무섭게 혼내준 거
[유선주의 TVIEW] 숨을 곳 없는 수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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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화의 징후 중 하나는 여위어가는 표정이다. 나이가 들수록 얼굴은 감정의 진폭을 게을리 반영한다. 배우도 사람이니 늙어감에 따라 안면근육이 둔해진다. 다만 그들은 캐릭터에 따라 표정의 스펙트럼을 좁혔다 넓힐 수 있다. 강제로 입양된 아들을 수십년 뒤 찾아나서는 <필로미나의 기적>의 주인공 필로미나는, 낙천적 천성과 신앙으로 끔찍한 슬픔을 쓸어 담으며 살아온 할머니다. 그녀를 연기하는 주디 덴치의 클로즈업은, 특정 표정과 감정이 관련돼 있다는 상식을 깨끗이 뒤엎는다. 배우가 생각을 품는 것만으로도 관객에게 충분히 전달된다는 연기의 설화를 그녀의 필로미나가 증명한다.
3/4
소설가, 만화가, 감독을 가족 친지로 두는 일은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것과 진배없다는 평소 믿음이 사라 폴리 감독의 <우리가 들려줄 이야기>를 보면서 확고해졌다. 우선 픽션일 경우, 극중 캐릭터의 말과 행동에서 내 모습의 일부를 발견한다고 치자. 작가/감독이 아무리 “넌 영감을 줬을 뿐이야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옛날 옛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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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땐 <9시 뉴스>가 정말 싫었다. 저런 재미없는 걸 매일 보는 어른들의 세계가 불쌍했다. 뉴스 따위 몰라도 부채감 없이 마냥 행복했던 내 인생의 파라다이스는 유년기에 끝났다. 별별 사건사고로 시작해 정권의 입맛에 맞춰 조작, 찬양, 고무되는 용비어천가 뉴스로 마감하는 일상. 때로 뉴스를 꺼버리고 귀를 씻어야 삶의 수분이 간신히 조절되는 불행한 시절을 참 오래도 견디는 중이다. 아예 뉴스를 끄고 살면 좋겠지만, 동시대 삶에 대한 ‘그놈의 부채감’ 때문에 그럴 수도 없다. 벌써 여러 해째 지상파 뉴스의 ‘의도적 무뇌충’ 수위가 심해지는 상황에 설상가상 요즘은 식당이나 터미널 등 공공장소에서 <TV조선> 같은 종편을 틀어놓는 곳들이 부쩍 눈에 많이 띈다. 도대체 ‘언론’이라 칭할 수 없는 것들이 ‘언론’의 이름으로 대중 속에 파고드는 속도, 무섭다.
봄이 오는데! 맘껏 아름다워진 꽃나무들을 찾아다니며 사랑고백을 만끽하기에만도 봄 한철은 너무나 짧고 아쉬운데
[김선우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새’ 뉴스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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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이란 묘한 장르다. 보는 사람들은 이야기의 결말을 이미 알고 있고, 조금만 자료를 뒤져보면굵직굵직한 사건마다의 승자와 패자 또한 쉽게 알 수 있다. 등장인물 자체가 스포일러라는 농담은 그래서 나온다. 과거의 어느 시대를 배경으로 가상의 인물들이 한복을 입고 나오는 퓨전사극,혹은 역사적 사실을 조합해 흥미로운 가설을 만들어내는 팩션사극은 좀 다르지만 사료를 바탕으로 한 이른바 ‘정통사극’의 길은 운신의 폭이 좁은 만큼 험난하다. 까다로운 고증을 거치며 역사왜곡을 피해가면서도 지루해선 안 된다. 세상과 드라마 시장과 시청자의 기호는 빠르게 변해가지만 사극이 활용할 수 있는 재료는 과거의 그 시대에 멈춰 있다. 결국 과제는 더욱 까다로워진다. 어떻게 동시대와 호흡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 것인가.
KBS <정도전>은 모처럼 묵직한 무게감과 이야기의 재미를 동시에 갖추고 나온 대하사극이다. 국사 시간에는 “태정태세 문단세”를, 국어시간에는 <하여가>와 <단
[최지은의 TVIEW] 이것이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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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추격전은 마담 D가 구스타브(레이프 파인즈)에게 상속한 16세기 거장 요하네스 반 호이틀의 작품 <사과를 든 소년>으로 말미암아 벌어진다. 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영향을 받은 북유럽 화풍을 따르는 이 초상화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전체가 그렇듯 ‘정교하게 발명된 역사’다. 반 호이틀이라는 그럴싸한 이름은 감독의 작명이고 실제로는 영국 화가 마이클 테일러가 앤더슨의 구체적 의뢰를 받아 실제 모델을 두고 그림을 완성했다. 극중에서 <사과를 든 소년>을 훔친 자리에 걸어두는 얼핏 에곤 실레의 실패작처럼 보이는 그림 역시 ‘실레풍’의 누드를 의뢰받은 현대 화가 리치 펠레그리노의 패러디 그림이다. 모르긴 해도 10년 안에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팀 버튼에게 헌정한 것과 유사한 웨스 앤더슨 전시회가 열릴 거라는 예측에 내가 소장한 앤더슨 영화 DVD를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고양이와 개에 관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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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인디포럼영화제 역사 19년 동안 다른 영화제와 일정이 젓가락처럼 이렇게 딱 붙은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개막일도 같고, 폐막일도 같다. 심지어 서울에서 두 영화제가 동시에 치러진다. 아니나 다를까, 두 영화제 일정이 똑같은 것에 혼란을 느낀 관객의 불만이 서서히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바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두달 전부터 사무국을 통해 웬만하면 일정은 서로 피해주는 게 이쪽의 상도이자 예의라고 거듭 촉구했지만, 어쩔 수 없다는 대답만 빈 접시처럼 돌아왔다. 맙소사, 하나의 은유를 빗대자면, 근근이 벌어먹고 사는 골목 상권에 어느 날 갑자기 자리를 꿰차고 들어오는 대형 마트의 위용이랄까. 규모로 보나 인지도로 보나 급이 다른 두 영화제가 길 하나를 두고 같은 날 좌판을 벌여야 하다니, 동네 슈퍼같은 인디포럼 입장으로선 몹시 곤혹스럽다. 관객층도 적잖이 겹친다. 아찔하다.
물론 영화제 일정이 법으로 규제된 것도 아니고, 사정상 일정을 변경하는 건 흔한 일
[이송희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영화제 상생의 기본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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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선 역할을 하는 단서나 진상을 감추고 일부만 드러내는 트릭을 세간에선 ‘떡밥’이라 부른다. 보는 이의 기대와 호기심을 가불해다 쓴 떡밥은 해명이 정교하지 못하면 자연히 실망을 부른다. 그런데 대체 어쩔 셈인가 걱정스러울 정도로 많은 떡밥을, 그것도 보란 듯이 던지는 드라마가 있다.아이를 잃은 어머니가 시간을 거슬러 운명을 바꾸기 위해 분투하는 이야기. SBS 드라마 <신의 선물-14일>이다.
시사프로그램 작가 김수현(이보영)과 그녀의 딸 샛별(김유빈)은 ‘데스티니’라는 이름의 카페에서 폴라로이드를 찍고, 여주인에게 ‘조만간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잃게 되며, 둘 중 하나가 사라져야 끝나는 운명’이라는 불쾌한 예언을 듣는다. 이를 발단으로 카메라는 이들 가족의 주변 인물과 사건 사고 하나하나에 의미심장하게 머문다. 애인과 다투던 수현의 후배작가, 사형제 폐지 입장을 밝힌 수현의 남편 인권변호사 한지훈(김태우)과 그에게 오물을 던지는 피해자 유가족. 학교 앞 문방구
[유선주의 TVIEW] 떡밥으로 끝나지 말아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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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웨스 앤더슨 감독의 첫 호텔 영화는 아니다. <다즐링 주식회사> 의 프롤로그로 공개된 13분 길이의 소품 <호텔 슈발리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한 코디네이션을 고집하는 앤더슨의 영화로서는 드물게 벌거벗은 감정을 담은 작품이기도 하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과거의 사연을 가진 남녀(제이슨 슈워츠먼, 내털리 포트먼)가 한 호텔에서 계획되지 않은 재회를 한다. 그리고 미처 묻지 못한 것들을 묻는다. 남자였는지 여자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둘 중 한 사람이 이 호텔에서 잊기 힘든 대사를 남겼다. “난 절대 당신의 친구는 되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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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좀 막 다뤄주세요.”
내가 만약 고(故) 다이애나 왕자비라면, 그녀 특유의 눈치 보듯 상대를 올려다보는 사슴 같은 눈망울로 영화 <다이애나>의 올리버 히르비겔 감독에게 청원했을 것 같다. 이 영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죽은 귀족들의 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