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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파딜라 감독의 <로보캅>에는 위장을 메슥거리게 하는 이미지가 등장한다. 중상을 입은 경찰 알렉스 머피(요엘 신나만)가 로봇공학의 힘을 빌려 반인간 반기계로 거듭난 본인의 실체를 첫 대면하는 장면이다. 슈트가 천천히 벗겨지면 내부는 텅 비어 있다. 아니, 얼굴과 뇌, 척수와 폐, 그리고 오른손이 잔재로 남아 있다. 관객은 순간 알렉스가 느끼는 구토감을 공유한다. 신체 호러의 거장 데이비드 크로넨버그가 찬조연출한 듯한 이 장면은, 이물감이나 통증 없이 인간과 천연덕스런 일체를 이루는 첨단 슈트 및 인공지능 로봇에 익숙해진 우리를 뒤흔든다. 기계와의 접합을 위해, 훼손을 면한 신체 일부도 절제했으리라는 짐작이 공포를 더한다. 이 장면은 <아이언맨3>에서 토니 스타크의 몸에 고분고분 날아와 붙는 슈트 조각의 경쾌한 이미지와 대척점에 있다. 아무리 자신의 뇌가 최종통제권을 갖는다고 해도 알렉스는 이 신체에 감금된 가엾은 수인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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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미 애덤스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여배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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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글들이 마음을 찡하게 하는 요즘이다. 첫 번째는 뜻밖에도 법원 판결문이다. 지난 2월 초, 쌍용차 정리해고가 부당했음을 판결한 판사가 읽어 내려간 판결문엔 ‘인내의 시간이 그리 길지 않기를 바란다’는 대목이 있었다. 아, 법정에서 읽히는 판결문이 이렇게도 따뜻할 수 있구나. 이런 시간이 좀더 빨리 왔더라면! 고통 속에 억울하게 숨져간 스물네분의 영정이 떠올라 더욱 가슴 아팠다.
두 번째는 한 시민의 편지글이다. 해고 무효 판결이 내려지긴 했지만 여전히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을 옥죄고 있는 손해배상금 47억원. 대다수 사람들에게 상상조차 어려운 이런 액수의 돈을 해고노동자들에게 배상하라고 하는 어이없는 현실의 바닥에는 무엇이 있나. 노동조합의 쟁의는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이다. 그런데 정당한 권리 행사에 자본은 손해배상 청구나 가압류 압박 등으로 실력행사를 한다. 천박하고 저열한 반윤리적 물신의 횡포. 이 과정에서 노동자 가족과 노조는 끔찍한 고통 속에 유린된다. 이 고통이 너무나
[김선우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나눔의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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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르윈>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미디어 아티스트 출신 스티브 매퀸 감독은 구도의 파괴력을 잘 안다. 때로는 지나치게. 매퀸의 숙고에서 비롯된 <노예 12년>의 몇몇 숏은 극장을 나온 뒤에도 계속 쑥쑥 자라나 가슴을 파고들고 뇌리에 우거진다. 노예가 된 솔로몬(치웨텔 에지오포)은 백인 감독에게 반항했다는 이유로 간신히 발끝만 땅에 닿도록 목이 매달린다. 버둥거리는 그의 등 뒤에서 다른 노예들은 일과를 계속하고 벌레가 울고 바람이 분다. 이것이 노예제도가 존재하는 평화로운 세계의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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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르윈>의 포크 싱어 르윈(오스카 아이작)은 고생스런 여행 끝에 유명 매니저 버드 그로스만(F. 머레이 에이브러햄) 앞에서 실력을 보일 기회를 얻는다. 르윈의 노래를 듣고 난 버드의 평은 명쾌하다. “솔로로는 안 되겠어. 듀엣이었다고? 재결합하게.” 그러나 르윈의 파트너는 자살했으며 르윈에게는 듀엣이건 트리오건 새로운 팀의 일원이 될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인사이드 <인사이드 르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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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새벽은 야만의 밤이었다. 경주 리조트 붕괴사건. 10명 사망에 다친 사람도 100명이 넘는다. 19살 신입생들이 캠퍼스의 봄도 못 보고 비명에 갔다. 눈밭 위에 구르는 운동화 사진, 심장이 저렸다. 무너진 지붕 밑에서 살려달라는 외침과 비명이 들린다고 했다. 어디 나뿐이었겠는가, 사망자가 더 늘지 말기를 기도하며 속보 채널에 귀를 기울였던 게.
하지만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공중파 3사에서는 그 비극의 순간에 올림픽을 중계하고 있었다. 피겨 선수들이 빙글빙글 춤을 추고, 중계진이 들뜬 목소리로 희희낙락했다. 그리고 화면 하단의 속보 자막으로 사망자 숫자가 심드렁하게 지나갔다. 올림픽 기간 “김연아는 대한민국이다”라는 광고 카피를 주야장천 틀어대던 방송국들, 저기 경주에서 생사를 오갔던 어린 학생들은 대한민국이 아니었나 보다. 저들의 목숨은 소치의 빙판보다 덜 반짝거리나 보다.
비극적이게도, 어젯밤 저 공중파 TV야말로 끊임없이 반복되는 한국형 대형참사의 원인을 적나라하게
[이송희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야만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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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됐다. 내 주위에서도 불륜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절대 ‘그럴’ 사람으로 보이지 않던 A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상하게 덤덤한 얼굴을 했던 건 사실 너무 놀랐기 때문이었다. 현실은 의외로 KBS <사랑과 전쟁> 혹은 주말 드라마에 흔히 등장하는 ‘천박한’ 불륜남녀와 닮아 있지 않았다. 평범하고 점잖은 그들에겐 현실의 벽을 불사를 만큼 열렬한 로맨스도 드라마틱한 이별도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관계는 자연스레 알려졌고 힘없이 무너져 흐지부지 끝났다. 처음부터 그들의 관계를 몰랐던 사람이라면 영원히 모르고 지낼 만큼 겉으로는 변한 게 없었지만 가끔 생각한다. 그렇게 상처를 주고받은 사람은 그 뒤 어떻게 살고 있을까. 아무것도 그전과 같을 수는 없을 것 같은데, 그들은 도대체 무엇과 싸우고 어떻게 버티고 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이 혼란스런 주제에 대한 답에 가장 성실하게 접근한 드라마는 <사랑과 전쟁> 첫 시즌을 썼던 하명희 작가의
[최지은의 TVIEW] 서늘한 성찰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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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의 정중앙을 차지하는 꽃꽂이처럼, 영화에도 종종 센터피스 구실을 하는 장면이 있다.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의 오스카(마이클 B. 조던)는 집행유예 중인 청년이다. 너무 늦기 전에 좋은 아빠와 파트너, 아들이 되고 싶어 안달하지만, 남아 있는 나쁜 습관과 사회의 선입견 탓에 진전은 더디다. 영화가 담은 그의 힘든 하루 중 오스카는 길 잃은 온순한 개가 뺑소니 사고를 당하는 광경을 목격한다. 가해자는 자취를 감추고 결백한 피만 아스팔트를 적신다. 죽은 개에게 감정을 이입한 오스카가 가족사진을 응시하는 동안, 지금까지 중립적 기록자의 자세를 유지하던 영화는 잠시 숨을 죽이고 속도를 늦춤으로써 무언의 해석을 개입시킨다. 감독이 보는 인물의 DNA가 축약된 시퀀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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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집을 떠나 독립한 10여년 전 겨울, 나는 좁은 원룸에 입주할 책을 엄선하느라 책장 앞에서 고심을 거듭했다. ‘안데르센 동화전집’ 10권 중에서는 <주석병정>이 수록된 7권과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눈, 눈물, 눈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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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기간입니다. 저도 이제 마흔을 넘겼기에 하계, 동계 포함해서 십수 차례 올림픽 개회식을 봤습니다만 여전히 알쏭달쏭합니다.
저 사람들은 왜 저기서 하얀 천을 들고 뛰어다니는지, 왜 저기서 저렇게 단체로 굴러다니는지 방송국 아나운서나 어느 대학교 교수님의 해설을 들어봐도 여전히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개막식뿐만이 아니라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올림픽을 대하는 언론의 태도입니다. 좀더 세부적으로 말씀드리면 ‘올림픽 선수들에 대한 언론의 태도’입니다. 올림픽이 열릴 때면 TV나 신문이나 가릴 것 없이 모두 뜨겁습니다. 용광로에서 막 꺼낸 듯이 시뻘건 열기가 뿜어져 올라올 듯합니다. 태극전사, 낭자군단, 대첩, 승전보, 부상투혼 등. 단어로만 보며 멀리 적지로 떠난 병사들의 전투소식을 들려주는 듯합니다.
국가대표들이 외국에 나가 시합할 때 마치 전투상황을 중계하듯 종군기자처럼 기사를 쏟아내는 것은 일제강점기 때 들어온 표현이라고 합니다. 내선일체를 고취시
[김남훈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전사’라 부르지 말아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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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 선수의 새 쇼트프로그램 곡목을 듣고 순간 가슴이 서늘해졌다. ‘어릿광대를 보내주오’라는 제목이 혹 어릿광대에 비유한 자신을 떠나게 해달라고 간청하는 뜻이 아닐까 지레짐작했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스티븐 손드하임 작사/작곡의 뮤지컬 넘버 <send in the clowns>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고 확신했던 남자의 마음이 자신과 같지 않음을 알게 된 여배우가 자신의 상황을 타이밍이 어긋나 망쳐진 무대에 비유하고 이를 수습할 어릿광대를 호출하는, 쓸쓸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였다. 뭘 표현할지는 그녀의 몫이지만, 그간 얼음 위에서 보여준 다양한 모습을 회상하며 그제야 염치없이 감탄사를 보탰다. 그리고 기왕이면 다시 금메달을 따는 편이 그녀에게 더 좋은 일이리라 생각했다.
소치동계올림픽으로 은퇴를 앞둔 그녀의 지난 경기 영상이나 다시 봤으면 하던 차, 마침 설 연휴중에 방송된 다큐멘터리 <김연아, 챔피언>(KBS)은 이제껏 그녀를 다뤘던 어떤 다큐보다 담담한
[유선주의 TVIEW] 간증의 브라보는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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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10일, 11일 일기와 사진 설명에 <만찬>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만찬>의 말미에는 거의 숙명처럼 보이는 폭설이 내린다. 관객은 외출한 인철의 가족이 귀가하길 바라면서도 한편으로 돌아오지 않기를 원하는 모순된 입장에 처한다. 그동안 영화는 우리로 하여금 이름도 모르는 형사들의 피로한 얼굴을 쳐다보게 만든다. 그러다 문득 우리는 이 익명의 남자들이 돌아갈 집과 거기 있을 가족을 상상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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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가장 유쾌한 한탕. 제대로 사기치고 화끈하게 즐겨라!”
나는 지금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의 보도자료 표지로도 인쇄된 한국판 포스터의 카피를 보고 있다. 이건 좀 세다. 문구에 힘입어 한국판 포스터의 조던 벨포트는 훨씬 동경할 만한 인물로 보인다. 이 카피는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가 공개된 직후 <LA 위클리>에 항의 글을 투고한 금융사기 피해자 가족들에겐 보여주지 않는 편이 나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초대받지 않은 손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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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이사를 하면서 마음에 걸렸던 것 중 하나가 그동안 밥을 주던 길냥이(길고양이들을 이르는 속칭)들이었다. 4년 전 이사를 가면서부터 나름 열심히 밥을 줬었고 그동안 여러 마리의 고양이들과 이런저런 인연을 맺어왔던 터라 이사를 하면 과연 이 녀석들이 끼니를 어찌 해결할까 싶었다. 남은 사료를 탈탈 털어 큰 통에 담아두고 오긴 했는데 왠지 모르게 짠한 느낌이 들었다.
사실 난 고양이, 특히 길냥이들과는 인연이 없었다. 집에서 키우는 반려동물은 늘 개였고 고양이는 길가다 후다닥 도망가는 뒷모습만 간혹 봤을 뿐이다. 싫어하는 건 아니었지만 개에 비해 붙임성이 없는 고양이에게 굳이 일부러 다가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지금의 아내를 만나고, 아내가 키우던 고양이와 어쩔 수 없이(?) 친해져야하는 상황이 되고서야 고양이에게 관심을 갖게 됐다. 정확히 말하면 아내가 명절에 집에 내려가는 바람에 고양이 밥을 책임져야 했던 때, 늘 본척만척하던 녀석이 갑자기 무릎에 올라앉아 꼬리를
[김진혁의 디스토피아로부터] 길냥이 찰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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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린 식구 없고 부모에게 얹혀사는 직장인의 주말은 대체로 한가롭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게으르다. 주말이 좋은 건 시간에 구애받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일어나는 것도, 밥 먹는 것도, 또 자는 것도 꼭 몇시여야 할 필요가 없다(게다가 씻는 건 생략할 수도 있다). 누군가의 스케줄에 맞추지 않고 내 마음대로 계획 없이 무질서하게 보내는 시간만큼 진정한 휴식의 기회가 또 있을까.
하지만 요즘은 밤 9시55분 전에 모든 일과를 필사적으로 마친다. SBS <세번 결혼하는 여자> 때문이다. 수없이 많은 흥행신화를 썼던 김수현 작가의 신작치고는 눈에 띄는 시청률을 기록 중인 건 아니지만 중반을 지나며 점점 더 긴장감을 높여가는 이야기는 8회 연장 소식에 모처럼 환호했을만큼 흥미롭다. 제목이 가장 큰 스포일러인 드라마답게 주인공 은수(이지아)는 벌써 두번 결혼을 했고 이제 남은 것은 두 번째 결혼이 깨진 뒤 세 번째 결혼으로 향하는 이야기인데, 커다란 줄거리를 대략 짐작하고 있
[최지은의 TVIEW] 욕망이라는 이름의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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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부인과에서 바뀐 아이를 6년 동안 양육해온 두 가정이 처음으로 친자(親子)와 보내는 주말의 시작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아주 간결하게 연출했다. 키운 아들 케이타를 태우고 유다이 가족의 집으로 향하는 자동차의 롱숏은 상대방 집에 친아들 류세이를 태우고 귀가하는 숏과 정확한 대칭을 이룬다. 매우 감정적인 영화의 분기점을 똑같은 거리에서 동일한 구도에 못 박혀 바라봄으로써 영화는 이 고역을 더 쉽게 만드는 방법 따위는 없으며 고스란히 견딜 수밖에 없음을 말하는 듯하다. 이 영화의 제목은 내용을 정확히 요약한다. 아버지란 그냥 주어지는 이름이 아니라 노력해서 ‘되어야’ 하는 존재이며 ‘그렇게’는 그러기까지 피할 수 없는 과정을 가리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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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목이 부러져 입원했다. “발가락을 움직여볼래요?” 수술 뒤 첫 회진에서 담당의사 선생님이 던진 말씀에 <킬 빌>의 브라이드(우마 서먼)에 동일시해보려고도 했으나, 내 한심한 부상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1월엔 역시 실존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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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와서 꾼 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꿈은 무엇입니까?” 장률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풍경>을 본 지 한달이 넘었는데, 새해 벽두에 그 영화의 장면들이 꿈에 나왔다. 꿈을 묻는 영화가 꿈에 나오다니. 꿈에 나는 그 영화의 등장인물이었고 어디론가 하염없이 걷고 있었다. 일터로 가는 것 같았다. 걷고 있는 나와 보조를 맞추면서 더 가까워지지도 멀어지지도 않는 상태로 카메라가 나를 따라왔다. 나는 이주노동자가 아니므로 이 영화에 등장할 이유가 없음을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내가 이주노동자가 아니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인지 갑자기 모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막막함, 불안, 슬픔, 그 속에서도 끝내 유지되는 노동하는 행위의 아름다움, 입김처럼 번지는 따스함, 매우 시적인 긴장감을 유지하며 흔들리는 풍경들, 질문과 발견들… 꿈은 영화처럼 흘러갔고 이윽고 마지막 장면에 이르렀는데, 뜻밖의 장면이 돌출했다. 엔딩에서 카메라가 올려다본 하늘에… 피 묻은 옷들이 떠 있었다
[김선우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자본의 윤리는 불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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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를 보면 남편의 외도상대를 지칭하는 ‘상간녀’와 마주앉아 기싸움을 하는 여자들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남자를 포함한 삼자대면에선 처신이 어눌한 남자의 지리멸렬한 변명을 구경할 수 있지만, 사실 나는 여자끼리 만나는 쪽에 더 흥미가… 당긴다. 각자 그 자리에 없는 이와의 관계를 배후에 두고, 그의 시선이 닿지 않는 장소에서 향후 관계를 가늠하는 예민한 긴장을 극을 통해 엿보는 재미랄까. 이런 만남에는 상대방에게 물을 끼얹거나 머리채를 잡는 식의 TV드라마 클리셰는 물론이고 그것을 우회해 다른 방식으로 인간과 관계를 해석하려는 의지도 포함된다.
기혼남녀의 외도 이후, 각자의 배우자와 가족들이 겪는 감정의 파고를 끈질기게 좇는 SBS 드라마<따뜻한 말 한마디>에도 상간녀와 만나는 모습이 자주 비친다. 5년 전, 남편 김성수(이상우)의 외도로 크게 마음고생을 했던 나은진(한혜진)은 처지가 뒤바뀐 채로 카페에서 유재학(지진희)의 부인 송미경(김지수)을 기다리며 과거를 회상한
[유선주의 TVIEW] 왜 세간을 박살내나 했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