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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배우와 함께 에 밑줄 긋고 주석달기
스크린 위에서 인간미 없는 송강호의 모습은 없다. <공동경비구역 JSA>의 오경필 중사와 〈YMCA야구단>의 이호창 선비 등 영화의 공기 자체가 친숙한 휴머니즘을 쉽게 전달할 수 있을 때는 물론이고 <넘버.3>의 삼류건달 조필, <반칙왕>의 소심한 샐러리맨 임대호 등 유쾌하지만 냉소적인 블랙코미디를 담은 영화에서도 그는 그랬다. <살인의 추억>의 박두만 형사야 말할 것도 없다. 하다못해 보는 이의 입을 바싹 타게 만드는 하드보일드영화 <복수는 나의 것>에서조차 동진의 잔인함엔 이유가 있었다. 그 이유는 딸을 잃은 아버지의 분노라는 또 하나의 인간적인 감정에서 비롯됐다.
<효자동 이발사>의 포스터는 그 표정의 절정을 담고 있다.어쩌면 실제로 이 한컷의 이미지가 자연인 송강호를 일부분 닮은 것인지 모른다. 그가 오래전부터 반복 이야기했던 자신의 취향과 생각들, “사람에
송강호와 <효자동 이발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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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베르트나 뭉크에 의해 널리 알려진 <죽음과 소녀>는 원래 독일의 서정시인 마티아스 클라우디우스에게서 비롯되었다. 병상의 소녀를 ‘달콤한 죽음’으로 유혹하는 신의 대화를 다루는 내용의 시(詩)인 <죽음과 소녀>는 히로스에 료코의 최신작 <연애사진>에서 플래시백과 사진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복합적으로 드러내는 그녀의 배역 시즈루를 떠올리게 한다. 생과 사를 넘나드는 <연애사진> 속의 소녀 시즈루는 전작 <비밀>의 마나미와도 조우한다. 마나미라는 캐릭터도 ‘빙의’라는 특수한 현상을 통해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혹은 이어간다는 착점에서 히로스에가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지속적으로 보여주는 ‘죽음’과 줄다리기하는 ‘소녀’ 캐릭터의 연장선상에 놓인다. <연애사진>의 초반부 마코토(마쓰다 류헤이)와 연애하던 시절의 시즈루가 그러하듯이, 영화 속 ‘죽음’의 줄다리기에서 내려선 현실의 ‘소녀’ 히로스에는 매우 발랄하고 적극적인 배우로
완벽소녀라는 이름의 아이돌, <연애사진>의 히로스에 료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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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훈 감독은 임상수 감독의 <눈물> 연출부 때 전국의 유흥가를 돌며 ‘10대 문제아’ 700명을 만났다. 임 감독의 주의사항은 딱 하나였다. ‘잘 기회가 생겨도 절대로 자지마!’ 여중생과 술마시며 이야기하는 길고 긴 취재를 통해 많은 걸 배웠다. “그들 자신은 잘살려고 하는데 어떤 게 잘사는 건지 알지 못하고 있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걸 배웠다. “영화는 (현실의 인간들을) 만나면서 찍어야 한다는 걸 그때 배웠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사기꾼들을 직접 만나고 취재하는 과정을 거쳐 <범죄의 재구성> 시나리오를 썼고, 감독으로 데뷔했다. 실제와 접선하며 만들었지만 결과는 깔끔한 장르영화. 앞으로도 이 범상치 않은 신인감독의 주 무대는 장르영화가 될 것이다. 물론 “장르를 이용하는 것”이다. <범죄의 재구성>을 보면 아쉬움 때문이 아니라 어떤 기대감 때문에 벌써 그의 차기작이 기다려진다. 아닌 게 아니라 “두 번째 작품에선 배우의 감정만 잘 잡으면
한국의 하워드 혹스가 될 수 있을까? <범죄의 재구성> 감독 최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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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의 류승범은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에서 처연한 눈밭 위로 쓰러지는 안쓰러운 소년이었다. 그로부터 5년. 미워할 수 없던 친근한 루저가 <아라한-장풍대작전>을 통해 본격적인 영웅담의 주인공이 됐다. 5년 전 인터뷰에서 그는 “아직 배우가 내 길인지 확신할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렵다던가. 소년 류승범은 성인이 되었다. 이제는 자신이 배우임을 인정하고 있을까. 그렇다면, 배우가 이루어야 할 학문, 연기와 인생은 어디쯤 가고 있는지가 궁금해진 것은 당연한 순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는 변했다. 당연한 일이다. 그 사이 그에겐 매니저도 생겼고, 그는 세편의 드라마와 일곱편의 영화에 출연했으며, 배우 류승범을 염두에 두고 쓰여진 시나리오도 생겼다.
현재는 미래다
그가 요즘 읽고 있는 책 <현재는 없다>는 과거에 연연하지 않는 그의 인생관을 대변한다. “지금 내가 말하는 순간은 이미 과거다. 동작을 취하면, (
변화충동, <아라한-장풍대작전>의 류승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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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윤식(57)은 지난해 각종 영화상의 남우조연상을 독식했다. <지구를 지켜라!>에서 봉구(신하균)에게 외계인으로 찍혀 갖가지 고문을 당하는 강 사장 역할로 충무로를 깜짝 놀라게 했던 그에 대한 찬사에 이견을 다는 이는 없었다. “너무 늦게 왔다”는 불평이 있었다면 모르겠지만. 그런 그가 <범죄의 재구성>의 김 선생으로 돌아왔다. 이번엔 사기꾼이다. 호주머니에 검찰 신분증을 넣어가지고 다니며 자존심 상하는 것을 못 참는 사기계의 전설. 몇년 동안 와인을 즐기며 잠수 중이었다가 한국은행을 털자는 제안을 받아들이는 인물이다. 소 싸움 하듯 장준환 감독과 캐릭터를 두고 싸웠던 <지구를 지켜라!> 때와 달리 이번 영화에선 최동훈 감독이 드라큘라처럼 자신의 연기를 빨아먹는 것을 수수방관했다고. “백윤식의 영화”라는 단언이 과하지 않을 만큼 그는 이번 영화에서도 그만의 개성을 뿜어낸다. 충무로의 외계인 같은 존재, 백윤식에게 몇 가지 물었다.
<지구…>
이거 ‘맛있게’ 할 수 있겠다 싶었지, <범죄의 재구성>의 백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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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카비젤은 이름도 얼굴도 익숙하지 않은 배우다. 연기를 시작한 지가 10년이 넘었고, <씬 레드 라인> <프리퀀시> 같은 수작에서 주연을 맡기도 했지만, 최근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 출연한 그를 ‘신인배우’로 소개한 저널도 더러 있다. 터무니없는 실수는 아니다. 제임스 카비젤은 ‘셀러브리티’ 같은 단어와는 전혀 친하지 않다. 민주당 지지자와 사이언톨로지 신도가 득세한 할리우드에서, 그는 거의 유일한 공화당 지지자이고 가톨릭이다. 아내에게 충실하고, 신을 믿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그는, 두발을 땅에 딛고, 두팔을 하늘로 쳐들고, 나무처럼 바위처럼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일까. 이제까지 영화에 등장한 그 어떤 예수보다도 그는 ‘진짜’에 가까워 보인다.
“그는 아기처럼 천진난만하고 또 평온하다. 그렇게 순수한 영혼은 이 세상 사람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멜 깁슨이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예수 역으로 제임스 카비젤을 첫손에 꼽은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제임스 카비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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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의 빈틈도 없이 정확하게 몸을 놀려 제가 맡은 역할을 다하고 있는 그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황홀해진다. 매 순간 그는 제 행동 속에 흠뻑 몰두해 있다. (…) 그의 행위는 몸놀림과 일치하고 몸놀림은 식욕과, 식욕은 그의 이미지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 희랍 꽃항아리들의 가장 조화있는 윤곽에도 이같이 철저한 필연성은 없다.”
- 장 그르니에 <고양이 물루> 중에서
좁은 철제 난간 위를 걸어가는 고양이를 보라. 무릇 완벽한 자세는 긴장과 이완의 공존에서 비롯되는 법. 대로 위를 걷는 듯 여유로운 걸음걸이는 온몸의 최말단까지 날을 세운 팽팽한 긴장이 낳은 결과다. 그러나 당신이 만일 고양이에게서 다가갈 수 없는 귀기(鬼氣)만을 느낀다면 그것은 절반으로 전체를 단정짓는 오류이다. 이 종족들의 또 다른 매력은 한나절을 내처 잘 수 있는 천연덕스러운 게으름과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주저없이 다가가 놀아달라며 가르릉거릴 수 있는 뻔뻔한 여유로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 <범죄의 재구성>의 염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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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이 창작자의 인격이라는 말이 들어맞는 때가 있다. 장터 여행을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윤인호 감독과 그의 영화 <아홉살 인생>은 여러모로 ‘닮은꼴’이다. 전작 <바리케이드>와 <마요네즈>도 마찬가지다. 그가 만든 영화들에 대한 공통된 반응은 “영화가 착하다”거나 “시선이 따뜻하다”는 것이다. 소외된 이들, 잊혀진 시간, 가족의 이야기를 즐겨 다루는 윤인호 감독은 함께 일한 이들에게도 고마워하고 미안해하는 일이 유난히 많다. 특히 <아홉살 인생>에서 함께 일한 어린 배우들과 ‘유사가족’이랄 만큼 밀접해진 그는 영화의 흥행보다 아이들의 장래를 더 많이 걱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홉살 인생>의 아이들, 감독의 아홉살 시절, 그리고 영화 이야기를 윤인호 감독에게 청해 듣는다.
영화 끝나고 소감을 물었을 때 아이들한테 미안하다고 했다. 무슨 잘못을 했기에.
거짓말을 많이 한 게 미안하다. 누가 누굴 좋아하고, 그런 일이 많았는
우린 모두 추억의 힘으로 산다, <아홉살 인생>의 윤인호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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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젊고 아름다운 배우의 육체를 바라보는 시선은, 거부할 수 없는 본능에서 튀어 나오는 것이므로 일단 무죄다. 개봉을 기다리는 <허니>에서 힙합 리듬을 타고 움직이는 제시카 알바의 육체는 그야말로 날것 그대로의 싱싱한 아름다움을 마음껏 표출해낸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즐거움은 섹슈얼한 욕망을 넘어서서 태평양 수면으로 튀어오르는 돌고래를 바라보는 순수한 시각적 쾌감과도 같다. 그렇다면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새로운 시대의 <플래시댄스>를 만들고 싶었어요. 사람들이 춤추고 싶어지게 하는 영감을 주고 싶었기 때문에 <허니>를 선택했구요”라고 당차게 이야기하는 이 젊은 배우는 대체 어디에서 왔을까. 아직까지 그는 우리에게 참으로 낯선 존재다.
제시카 알바는 12살부터 배우의 꿈을 키워오며 <크레이지 핸드>나〈25살의 키스> 등의 슬리퍼 히트작들에 출연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명성은 작은 TV 브라운관에서부터 불
허니 허니 스위트 허니, <허니>의 제시카 알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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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뭐 어떡하나. 열심히 할 수밖에 없는 거지 뭐
이번 영화 끝나고 또 다음 영화 준비하고
내년에 5월 세금땜에 아껴쓰고 저축하고
한푼두푼 모아모아 부모님께 집한칸을
간만에 서울에 와서 친구들과 술한잔을
- 양동근 2집 <착하게 살어> 중에서-
-인간 양동근은 좋고 싫은 게 확실하다 정말.
=(단호하게) 맞다!
-그래서 물어보는 거다. 당황스럽겠지만 지금 시국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웃음) 이런 질문 처음 받아보겠지만.
=나는 정치는 잘 모른다. 신경쓰고 싶지도 않고. 뭐 솔직히. 국민으로서는 부실한 자세인 거는 나도 알지만. 근데 별로 관여하고 싶지 않다. 그러니까 그쪽에 있는 사람들은 어디 다 눈먼 사람들 같아서. 물론 그런 것들이 나와 관계가 있으면 음악으로든 얘기하겠지. 나랑 관계도 없는데 이야기하는 건 그런 건 거짓말이다.
-인간 양동근은 장래 계획 같은 거 세우고 그러는 사람인가.
=(단호하게) 아니.
-어. 대체 뭔가. 그
그 친근하고 낯선 페이소스, 양동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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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양동근, 나는 언제나 나인 거지 뭐
연예인이란 게 그리 좋지만은 않아
내가 공인이란 것이 그리 자랑거린 아냐(알어)
여기서든 저기서든
개인일 수 없는 것이
권리보단 의무를
나보다 먼저 팬들을
내 웃음을 선사하고
나의 몸을 부식부식
-양동근 2집 <착하게 살어> 중에서-
-친구들은 많은가.
=다 음악작업 같이 하는 사람들이다. 영화쪽보다는 음악쪽 사람들. 같이 음반작업 스튜디오에서 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힙합의 브러더 후드(brotherhood) 같은 정신.
=음. 그건 무슨 특별한 정신 같은 게 아니다. 그냥 밤새고 작업하고 녹음하다 같이 밥먹고 하다보면 친해지게 되어 있는 거지 뭐. 밖에서 영화찍거나 드라마할 때는 카메라 앞뒤에서 긴장하고 하는 일이 많지 않나. 그런데 음악작업은 그런 게 아니거든. 항상 같이 지내잖아. 같이 일하고 쉴 때는 같이 놀고 그러니까 영화작업 같이 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나한테는 편한 사람들이 되는 거지.
-남자팬이 더 많을
그 친근하고 낯선 페이소스, 양동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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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냥 겉늙은 거지 뭐
진리에 진짜와 가짜로 구분할 수 있는 법.
모두 진짜를 말하니 어쩔 순 없어도 중요한 건 자신을 똑바로 밝히는 것.
그리고 비교된 남을 의식하고 우습게 말한 것 우습게 무지 속에 자신과 대화하는 것.
-양동근 1집의 <선문답> 중에서-
-늑대 좋아하는가.
=늑대? (거울을 쳐다보며) 음. 사실 평소에는 늑대를 좋아할 일이 없지 않나. 늑대를 아무 데서나 그냥 막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마지막 늑대>의 최 형사 역할. 당신과 닮았다. 싫은 것들과는 죽어도 함께하지 않고 조용히 자신의 무리들 안에서만 혼자 노는 늑대 같은 이미지.
=처음 최철권 역할을 받았을 때 생각하길, 일하기 싫어하는 형사니까. 그리고 내가 원래 일하기 싫어하니까. 그냥 그렇게 하면 되겠다 싶었다. 결국 그것도 일이지만. 뭐.
-일하기 싫어하는구나. 예를 들어 이렇게 생면부지의 귀찮은 기자들과 인터뷰하는 일 같은 거.
=전부 다 내가
그 친근하고 낯선 페이소스, 양동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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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살의 양동근. 이 무뚝뚝한 남자가 낯선 상대에 대한 의심을 떨쳐내고 비로소 받아들일 시간은 빨리 오지 않는다. 그 시간이 채 다가오기도 전에 그에 대해 알고 싶은 모든 것을 뽑아내야 하는 건 고된 일이다. 그 허공을 바라보는 듯한 특유의 표정과 느릿느릿한 몸짓과 특히나 그 이마 위 가느다란 신경세포들의 곡선을 이룬 움직임, 그것들을 지면에 생생하게 옮겨놓는 것은 또 얼마나 힘든 일인가. 짧은 답변들 속에 엇박자로 튀어나오는 양동근의 거침없는 생각들과 미묘한 차이로 흔들리는 목소리의 변화.
양동근과 친근해지는 것만큼이나 그를 정의내리는 일은 쉽지 않다. 그는 우물우물 읊조리는 랩으로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가수이기도 하고, 카메라 앞에서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에너지를 분사하는 배우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비로소 그를 이야기하고 정의내리기 시작했던 것은 <네멋대로 해라> 이후 부터였을 것이다. 마니아를 양산하며 그 독특한 팬덤을 형성했던 <네멋대로 해라>는
그 친근하고 낯선 페이소스, 양동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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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4월1일. 새벽 1시. 2년5개월 만에 <정은임의 FM영화음악>(이하 <정영음>)이 우리의 곁을 떠났다. 이후 그의 방송중단을 둘러싼 드라마틱한 추측이 난무했고, PC통신 붐을 타고 그의 복귀를 촉구하는 청취자들의 운동은 끊이지 않았다. 이후 8년 반이 지난 2003년 10월 21일 <정영음>은 돌아왔다. 정은임의 방송재개 소식이 알려지자, 과거의 청취자들이 모여 있던 한 인터넷 카페는 완전히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그로부터 5개월이 흘렀다. 그러나 새벽 3시라는 살인적인 방송시간대, 예전과는 너무나 많이 달라진 영화계, 그리고 10년에 가까운 세월의 어쩔 수 없는 간극 등은 <정영음>이 예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는 없음을 의미했다. 이 모든 것들은 고스란히 정은임과 그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극복해야 할 몫으로 남겨졌다. 이제 프로그램은 초반의 혼란을 극복하고, 각 코너들은 자신의 색깔을 내기 시작했으며, 내부적으로는 시
<정은임의 FM영화음악>의 정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