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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영화제는 이제 루비콘강을 건넜다. 김홍준 감독에 대한 일방적인 해촉을 시작으로, 신임 정홍택 집행위원장의 돌발적인 사퇴, 집행위원장 없이 영화제를 진행하겠다는 이사회의 폭탄선언에 이어 부천시쪽은 드디어 기존 프로그래머 해고라는 마지막 방아쇠를 당겼다. 문화적 무지를 넘어서 행정적 파시즘의 새로운 경지를 보여주는 부천시장과 이사회의 이번 행보에 국내외 영화계는 경악하는 중이다. 한국독립영화협의회와 한국제작가협회의 출품거부로 올해 부천영화제에는 사실상 한국영화가 봉쇄된 상황. 외국의 반발은 한술 더 뜬다. <씨네21> 온라인에 게재된 해외영화인 17명의 성난 편지만으로도 그들의 분노는 쉽게 읽힌다. 이번 사태의 피해자 겸 가장 확실한 목격자들을 지난 주말에 만났다. 지난 2월20일 오후 청년필름 사무실에서 만난 두명의 전 부천영화제 프로그래머 김영덕과 김도혜씨는 예상외로 담담했다. 그들과 어처구니없는 이 사태의 정치적 문제에 초점을 맞춘 인터뷰를 하던 중 문득 이런 생각이
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래머 김영덕, 김도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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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로봇>을 보던 윌 스미스의 네살배기 딸이 불쑥 던진 한마디. “아빠, 이제 지구는 그만 지켜.” 툭하면 외계인이나 로봇과 드잡이를 벌이며, 달리고 넘어지고 치고받는 아빠가 안타깝기도 하고 지루하기도 했을 것이다. 어린 딸의 조언은 시의적절했다. 베벌리힐스를 누비던 힙합 키드는 어느덧 중후함이 어울리는 나이 서른여섯이 되었고, 전환점을 찾고 있었다. 너무 거창하거나 생뚱맞아 보이지 않을 자연스러운 변신이 필요한 시점. <Mr. 히치: 당신을 위한 데이트 코치>는 그때 그를 찾아왔다.
“히치는 카리스마가 있고 여자에 대한 자신감이 넘치는 도시의 완벽남으로, 여자들을 사로잡는 법을 지도한다. 세련되고, 현대적이고, 남자의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로맨틱코미디라는 점에서, 그에게 어울린다.” 윌 스미스의 오랜 동료이자 <Mr. 히치…>의 프로듀서인 제임스 라시터의 증언이다. 하긴 연애의 노하우를 일러주는 윌 스미스에게 ‘너나 잘하셔’라고 응수할 남
“이제 지구는 그만 지키련다”, 의 윌 스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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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반장 누구야?” 2002년 <공공의 적>이 개봉했을 때 관객은 아마도 서로에게 질문을 던졌을 것이다. 강력반에 새로 부임해 수사에 힘을 불어넣고, 감찰반으로부터 부하 직원들을 보호하는 강직한 반장 역을 맡은 배우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만약 그중 연극 공연장을 더러 찾아온 친구가 끼어 있었다면, 답은 쉽게 튀어나왔을 터. 하지만 대학로와 거리를 두고 살아온 ‘보통 관객’으로서는 그가 1980년 연극계에 입문해 <칠수와 만수> <변방에 우짖는 새> <김치국씨 환장하다> <날 보러 와요> <진술> 등 30여편 연극무대의 주인공이었으며, 연극계의 온갖 상을 대부분 품에 안아본 배우 강신일(45)이라는 사실은 알아차리지 못했으리라. <공공의 적> 이후 그는 <광복절특사> <청풍명월> <천년호> <실미도> <썸> 등에 출연하면서 천천히 자신의 존재를
<공공의 적2>의 배우 강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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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미 폭스는 밋밋한 흑인 남자의 얼굴을 지녔다. 덴젤 워싱턴처럼 지적인 미남형도 아니고, 윌 스미스처럼 세련되거나 친근하지도 않다. 크리스 록이나 마틴 로렌스처럼 익살맞은 장난꾸러기 이미지도 아니고, 포레스트 휘태거나 로렌스 피시번처럼 영묘한 카리스마를 풍기지도 않는다. 어느 누구도 아니고, 어느 누구도 될 수 있는 얼굴. 그래서일까. 폭스는 장르와 캐릭터에 자신을 가두지 않고, 자유로운 행보를 보여왔다. 심지어 그의 분신들은 시작과 끝이 확연히 다르다. 필드에 오바이트를 해대는 소심남에서, 감독의 작전을 무시하는 기고만장 벼락 스타로, 다시 팀워크의 교훈을 깨닫고 진정한 팀 플레이어로 거듭나는 쿼터백의 다이내믹한 변화를 보자(<애니 기븐 선데이>). 무하마드 알리의 정신적 지주였다가, 마약의 유혹에 챔피언 벨트를 팔아먹는 파렴치한으로 추락하던 모습도 있었다(<알리>). 악질 킬러에게 끌려다니다, 공모자가 되길 거부하며 몸부림치던 <콜래트럴>의 택시
젊은 레이 찰스의 환생, <레이>의 제이미 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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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한 표정으로 세상을 건너는 여자가 있다. 참혹한 기억을 품고도 그는 식물처럼 덤덤하기만 하다. 거센 세상의 물살에도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는 태도에서 느껴지는 것은 씩씩함이 아니라 포기와 체념이다. 머리 위로 부는 바람에도 눈물이 흐를 것 같은 주제에, 그 무엇을 향해서도 손을 뻗으려 하지 않는 단호함만이 그를 지탱하고 있다. 처음엔 그런 정혜가 안쓰럽다가,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답답함으로 화가 치밀 지경이다. 스스로를 끝없이 감춤으로써 생존을 향한 본능을 불태우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의외로 많을 수 있겠지만, 끝내 눈에 띄지는 않게 마련. 그러니까 이런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장편영화 <여자, 정혜>는 많은 관객과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위험을 처음부터 감수해야 했다. 만든 감독이나, 출연한 배우나 영화 속 정혜처럼 한없이 외로워질 각오를 해야만 한다. 고집스런 신인감독 이윤기의 행보에 기꺼이 동참한 용감한 얼굴이 궁금해진다. 이는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감동적인, 14년만의 외출, <여자, 정혜>의 김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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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가수 겸 배우로 불렸던 임창정이 2003년 8월 10집 앨범을 끝으로 배우에만 몰입한 지 1년 반이 됐다. 그뒤 개봉한 코믹호러 <시실리 2km>엔 임창정의 소속사 먼데이엔터테인먼트가 공동제작사 크레딧에 올랐고, 오는 2월18일 개봉할 <파송송 계란탁>에도 같은 크레딧이 올랐다. 먼데이엔터테인먼트는 내년 개봉을 목표로 단독제작할 영화도 준비 중이다. 임창정은 가수와 배우 겸업 대신 배우와 제작 겸업을 선택했으니, 앞으로 그에게 물어야 할 건 배우로서의 삶과 동시에 제작자로서의 삶이다. 두 번째 공동제작하는 영화에 온통 신경을 곤두세운 탓에 그는 최근 출연확정 소식이 알려진 민규동 감독의 신작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에 대한 이야기도 아꼈다. <파송송 계란탁>을 잘 봐주십사 하고, 기자시사 현장에서 넙죽 큰절까지 올린 임창정. 그래서 이번엔 그토록 겸손하고 소박하고 솔직하기만 한 이미지의 속내도 파보고자 했다. 최근 모 음악프로
공동제작한 영화 <파송송 계란탁> 개봉 기다리는 배우 임창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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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프 비즈킷의 노래처럼 파랗고 빨간 조명이 신호등처럼 번갈아 깜박이는 스튜디오. 로이 오비슨의 <You got it>이 잔잔히 울려퍼진다. 터지는 플래시와 카메라의 드라이브 소리 사이로 음악에 맞춰 가끔씩 엄지와 중지로 딱딱 소리를 내는 한 남자가 있다. 그에게 로이 오비슨은 각별한 기억이다. 떠오르는 태양 아래 <In Dreams>를 흥얼거리던 <젊은 남자>의 이한. 그는 운전대를 잡노라면 언제나 오비슨처럼 검은 선글라스로 욕망의 얼굴을 가렸다. 결국 그는 비행기 사고로 죽은 오비슨을 따르듯 새벽의 하이웨이에서 노란 벤츠의 액셀러레이터를 힘껏 밟으며 파국을 맞이한다. 허무와 욕망이 공존하는 이한은 흡사 <태양의 가득히>의 리플리의 쌍둥이 동생 같다. 이.정.재. 시간당 1300원을 주는 커피숍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하루에 모델료 20만원을 벌 수 있다”는 은인 하용수의 제안에 그는 이한처럼 엔터테인먼트의 세계로 뛰어든다. 1994년 <
제복이 어울리는 도시남자, <태풍>의 이정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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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아누 리브스는 모범생이다. 숙제가 주어지면, 열심히, 최선을 다해 준비하는 모범생. 그래서 그에게선 모범생의 성실함과 모범생의 뻣뻣함이 함께 묻어난다. 확실히 동물적인 감각으로 연기하는 혹은 넘쳐 흐르는 끼를 주위에 전염시키고야 마는 그런 종류의 스타는 아니다. 온갖 농담이 오가는 정킷 현장에서도 영화에 대한 질문이 아니면 대답하지 않는다는 진지함으로 알려진, 배우다. 그에게는 좀체 열어 보이지 않는 갑각류의 껍질이 있는 것만 같다. 그래서일까. 허무함이 약간은 묻어나던 <아이다호>에서건, 넷 시대의 쿨한 아이콘이 되고만 <매트릭스>에서건, 키아누는 키아누로 보인다, 고들 이야기한다. 다만 무소불위의 영웅, 네오보다는 <콘스탄틴>의 위태위태한 퇴마사 콘스탄틴이 그의 가느다란 실루엣과 이방인 같은 외모 속에 감춰진 속살을 언뜻언뜻 보이는 것도 같다. 역시나 검은 양복과 구레나룻으로 온통 가리고 성큼성큼 인터뷰장에 들어선 그의 얼굴이 유난히 상기되어 있
모범생 배우, 퇴마사가 되다, <콘스탄틴>의 키아누 리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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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모스트 훼이모스>의 감독 카메론 크로는 내털리 포트먼을 캐스팅했다면 전혀 다른 영화를 만들게 되었을 거라고 말했다. “포트먼이 출연했다면 그루피족인 페니 레인은 아이 같고 순수해서 모두가 보호하려는 여자였을 거다. 하지만 허드슨이 연기한 페니는 뭔가 과거가 있는 듯하다.” 크로는 결국 포트먼보다 나중에 오디션을 본 허드슨을 캐스팅했다. 조그맣고 앳된 포트먼은 이처럼 언제나 외모 때문에 제약을 받아왔다. <레옹>에 출연한 열두살 때도, 스물셋이 된 지금도, 그녀는 십대 후반에 고정돼 있는 듯하고, 나이 많은 남자들에게 판타지 같은 존재로 머물렀다. 그녀를 욕망하는 <클로저>의 두 남자는 그녀가 얼마나 어린지를 자주 입에 올린다.
포트먼은 <클로저>의 감독인 마이크 니콜스와 연극 <갈매기>를 공연한 적이 있다. 섹스신과 어두운 정조 때문에 <롤리타>와 <아이스 스톰>을 거절했던 포트먼은 이번에는 “누군가
마틸다, 진짜 어른이 된 거니? <클로저>의 내털리 포트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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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사 시네라인-투의 석명홍 대표는 90년대 중반까지 뛰어난 영화 카피라이터로 유명했다. <유주얼 서스펙트>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샤인>처럼 한국에서 흥행하기 쉽지 않았을 영화들이 그의 손을 타고 좀더 많은 관객을 만날 수 있었다. 2500편이라는 전설적인 숫자의 영화를 마케팅했던 그는 지금은 직접 영화를 만드는 제작자다. 출발은 축복을 받은 듯 보였다. 석명홍 대표는 첫 번째 영화 <친구>로 8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고, 흥행을 넘어, 문화적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그가 애정과 야심을 가지고 기획한 영화 <청연>은 끝도 없이 늘어나는 제작비와 촬영기간, 재앙을 예고하는 불길한 소문 끝에 제작사가 바뀌기에 이르렀다. 이제 그가 눈앞에 둔 영화는 <말아톤>. 1년 반 가까운 취재와 시나리오 집필 기간을 거쳐 시작된 <말아톤>은 자폐아가 마라톤을 통해 세상과 교감하는 드라마와 안정된 연출, 배우들
<말아톤> 제작한 시네라인-투 대표 석명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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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 적2>의 주인공은 공공의 적일까, 공공의 적을 잡는 검사일까. <역도산>을 홍보할 때부터 담배를 끊었다는 설경구의 얼굴은 해사해 보였고, 데뷔 이후 최고의 연기를 보였다는 정준호는 내내 얼굴에서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강우석 감독의 뚝심이 두드러지는 <공공의 적2>의 두 배우는 <공공의 적>이 아니라 <공공의 복(福)> 주연배우처럼 보였다.
전편의 공공의 적이 패륜아였다면 이번의 공공의 적은 사학비리와 정경유착으로 범죄 목록과 범위에서 훨씬 더 세고 크다. 범인을 잡는 강철중의 위력도 더 커졌다. 대한민국 검사다. 두 사람의 기싸움은 과연 누구의 승리로 끝날까. 워커힐호텔에서 찍은 결투신을 회상하며 두 사람은 잠시 영화 속에 빠져들었다. “코를 세게 맞아서 부러졌어요. 영화 보다보면 나중에 인중이 뭉개졌잖아요”라며 설경구가 아픈 표정을 짓는다. 몸이 정말 둔해서 액션신은 ‘깡’으로 찍는다며, 잔디밭에 미끄러져 인대 늘어
두 남자의 대단한 도전, <공공의 적2>의 설경구+정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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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테인먼트 위클리>는 지난해 11월, 주드 로의 기사를 쓰면서 이렇게 서두를 뗐다. “주드 로에 관해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그는 빼어나게 재능있는 배우다. 둘째, 그는 빼어나게 잘생긴 남자다.” 그런데, 주드 로가 뉴욕의 바람기 다분한 멋들어진 싱글남자로 분해 자신의 연기력과 외모를 한꺼번에 써먹을 수 있었던 영화 <나를 책임져, 알피>는 미국에서 고작 620만달러의 개봉성적을 냈다. 기사는 이렇게 이어진다. “세 번째로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 두 자질을 합쳐놓는다 해서 할리우드 박스오피스까지 책임질 수 있는 스타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2004년의 주드 로는 할리우드의 다른 어떤 배우들보다 바빴다. 2년간을 말 그대로 쉬지 않고 일하면서 몰두했던 여섯편의 작품이 미국에서 4개월 안에 연달아 개봉했기 때문이다. 9월17일 <월드 오브 투모로우>, 10월15일 데이비드 O. 러셀 감독의 <아이♥허커비>
아름다운 젊은 예술가의 초상, 주드 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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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버스터 키튼, 성룡이 돌아왔다. <뉴 폴리스 스토리>의 그는 예전처럼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웃음을 날리지 않는다. 술에 절어 길바닥에 몸을 누이고 한숨을 내쉬거나 비참하게 짓밟히는 주인공 진국영은 액션스타가 아닌 성격파 배우 성룡의 새로운 발걸음을 예고한다. 그러나 이층버스에 스파이더 맨처럼 달라붙어 홍콩 시내를 누비고, 마천루에 맨몸을 내던지는 애크러배틱한 열정도 식지 않았다. 초등학교를 입학할 나이에 연기에 발을 내디뎌 쉰살이 된 성룡을 주말 오전 서울 한복판에서 만났다. 하늘의 명을 알게 된다는 지천명에 들어선 그가 말하는 영화 그리고 아시아 이야기.
-당신의 첫 번째 영화는 무엇인가? 1962년작 <Big and Little wong tin bar>(1962)로 알려져 있는데.
=아니다. <양산박과 축영태> <정상연>이 먼저다. 이 영화들 역시 옌준 감독이 연출하고 여배우 리리화가 출연한 영화다. 나는
<뉴 폴리스 스토리> 홍보차 내한한 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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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의 두 차례의 위헌판결에 의해 공식 검열기관이던 공연윤리위원회(공륜)는 공연예술진흥협의회(공진협)를 거쳐 영상물등급위원회로 변화했다. 그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의 초대 수장으로 재임하면서 <죽어도 좋아> <킬 빌>의 심의파문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자리를 지켰던 김수용 전 위원장. 그가 신년 벽두에 게임 파트 심의위원의 비리를 근거로 전격 사표를 제출했다. 청와대의 사표 수리와 함께 “자연인으로 돌아온 지 딱 10일 된” 김수용 감독을 1월17일에 만났다. 그가 말하는 영등위, 영화심의 그리고 영원한 화두 ‘표현의 자유’.
-정확히 재임 기간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다.
=5년7개월. 영등위와 집 사이 거리가 5분 정도라서 아낀 휘발유값을 모으면 차 한대 값은 될 것 같다. 그만둔 이유는 알다시피 게임쪽 사람이 구속기소되었다. 죄의 유무는 재판을 받아야 밝혀지겠지만 영등위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는 이미 땅에 떨어졌다. 호사가들은 내
전 영상물등급위원장 김수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