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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의 이 남자, 무척 푸근해 보이는. 모르시는 분이 없을 겝니다. 혹시나 싶어서 그의 주요사항을 읊어봅니다. 이름 송강호. 한국의 대표배우. 서민 또는 소시민 캐릭터의 달인. 개런티를 가장 많이 받는 배우 중 하나. <씨네21> 충무로 파워50에서 배우로는 5년 연속 1위. 그리고 또…. 하여간 이 배우를 쨍쨍한 늦봄에 선유도 공원에서 만났습니다.
대충 감 잡으셨겠지만, 이 양반이 출연한 새 영화가 곧 극장에 내걸립니다. 제목은 <남극일기>랍니다. 남극 대륙엔 도달불능점이란 곳이 있답니다. 전문용어로 ‘상대적 접근 불가능 남극점’이라 불리는 여기는 남극 해변에서 상대적으로 가장 내륙에 위치한 지점이라네요. <남극일기>는 그곳을 정복하려는 탐험대원 6명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래요. 여기서 송강호는 탐험대의 대장 최도형 역할을 맡았습니다. 여기서 잠깐. 송강호가 나오니까 코믹한 영화 아니겠어, 라고 지레 짐작하시는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영화밖엔 난 몰라, <남극일기>의 송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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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씨네 신철 대표가 돌아왔다. 그의 뛰어난 기획력과 마케팅 능력이 빛났던 <엽기적인 그녀>가 관객 500만명을 구가하던 2001년, 방랑자처럼 미국으로 떠난 이후 거의 4년 만에 한국에서 장기체류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미국에서 진행했던 프로젝트는 CG 기술을 통해 이소룡을 실사로 ‘부활’시키는 <드래곤 워리어>. 당시 2003년이면 끝날 것이란 이야기를 남기고 떠났건만, 그의 귀환은 계속 늦어져갔다. 초반에는 할리우드에 혈혈단신으로 날아간 이 자그마한 동양인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느라, 지금은 이소룡의 유가족과의 협의 때문에 LA에서 마치 볼모처럼 스스로에게 붙들려 있었던 것이다. 한때 “국제미아가 된 심정”이기도 했다는 그는 이제 <드래곤 워리어>에 대한 조바심을 달래고 할리우드와 한국에서 제작을 병행할 계획을 세웠다. 일본과 중국시장에 대한 공략도 시작할 것이다. 4년 동안 공력을 모았던 신씨네의 파괴력이 자못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결혼이야
이소룡 부활 프로젝트 <드래곤 워리어> 준비 중인 신씨네 신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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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산업이 아무리 융성한들 늙고 유능한 배우의 눈에 영화판은 언제나 발뻗을 데 없이 좁아터진 골방이다. 이 달인들은, 고작해야 “영화에 과분한 연기”니 “낭비된 배우”니 하는 소리를 찬사랍시고 돌려주는 영화를 줄줄이 찍다가, 이따금 그들의 재능을 예우하는 영화를 만나 숨통을 틔운다. 물론 그때는 구경꾼도 정신이 번쩍 난다. 늘어져라 낮잠만 자던 우두머리 사자가 포효하는 찰나를 운 좋게 목격하는 짜릿함에 비할까. 아버지 역으로 출연한 TV시리즈 <안네 프랑크>에서 로버트 헬름 감독으로부터 “마치 스트라디바리우스(바이올린 명기)를 얻은 기분이었다”는 찬사를 끌어낸 바 있는 노장 벤 킹슬리(62)의 필모그래피도 꽤나 들쭉날쭉하다. 하지만 최근 개봉한 <모래와 안개의 집>은, ‘간디’의 이미지를 박살낸 완벽한 런던 갱 연기를 과시한 <섹시 비스트>(2000) 이후 그가 3년 만에 내지른 사자후다.
이란 왕정기에 장교로 영화(榮華)를 누리다 이슬람 혁명
근본주의 연기파, <모래와 안개의 집>의 벤 킹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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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구 공덕동의 한 빌딩 꼭대기층에 자리한 9046호 방에 먼저 도착한 것은 김상경이었다. 단정한 머리가 인상적인 그는 꿈결같았지만 이제 허망하게 스쳐간 사랑의 그림자를 되새기는 듯 보였다. 그리고 얼마간 초조해 보이기도 했다. 이윽고, 몸매가 드러나는 꽃무늬 드레스를 입은 엄지원이 약간은 도도하고 약간은 무심한 표정으로 들어왔다. “그동안….” 김상경이 말을 꺼낸다. “잘 지냈는지?” 엄지원은 속눈썹이 두드러져 보이게 눈을 내리깐 채 답했다. “… 네.” 약간의 침묵이 흐른 뒤 엄지원이 몸을 확 돌리며 말을 뱉는다. “아니… 그럼… 이만….” 바로 그 순간 김상경의 손이 엄지원의 몸을 꽉 부여안는다. “우리, 잠시, 이러고 있으면 안 될까?”
<화양연화>의 한 장면을 꼭 빼닮은 표지 사진 안에는 이런 사연이 담겨 있을 법하다. 하지만 사정은 영판 달랐다. 김상경은 포마드가 진득한 양조위의 헤어스타일을 만드느라 힘들었다며, “꼴이 이게 뭐냐”며 혼자 웃었고, 엄지원은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백과사전, <극장전>의 김상경 & 엄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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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퍼 러브 휴이트가 이렇게 달콤한 여자인 줄은 몰랐다.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에서 커다란 눈망울로 대차게 비명을 지르던 그가 <하트브레이커스>의 꽃뱀이 되어 나타났을 때 그 섹시하면서도 반항적인 모습이 신선했고, <턱시도>에서 자신만만해 보이지만 겁 많고 마음 약한 소녀를 보여줬을 때 그 이미지도 사랑스러웠다. 그리곤 눈물 그렁그렁한 눈으로, 세상의 모든 연인이여, 후회없이 사랑하라, 호소하던 <이프 온리>의 사만다가 되었다. 분위기가 너무 다운됐다 싶었는지, 이번엔 화사한 로맨틱코미디 <어바웃 러브>를 택했다. 변하는 사랑의 끝자락을 잡은 채로 새로운 사랑을 감지하며, 흥분과 혼란으로 소동을 벌이는 귀여운 푼수 앨리스가 된 그는 다시 ‘딱이다’ 싶은 연기를 보여준다. 작품마다 다른 각을 보여주며 점점 입체적인 배우가 돼가는 제니퍼 러브 휴이트가 <어바웃 러브>의 개봉을 앞두고 <씨네21&
오! 귀여운 여인, <어바웃 러브>의 제니퍼 러브 휴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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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충무로 파워50’에 순위가 처음 매겨진 이래 강우석 감독은 한해도 빠짐없이 ‘넘버원’을 차지했다. 하지만 올해 그 8년의 아성이 흔들렸다. 박동호 CJ엔터테인먼트 대표에게 1위 자리를 넘기고 한 계단 내려앉은 것. 시네마서비스의 모기업이었던 플래너스가 CJ에 넘어간 지난해 이후 그의 입지는 끊임없이 흔들렸다. 1천만 관객이 지지한 <실미도>로 1년을 버텼지만, 자본력의 한계라는 벽은 너무 높았다. 특히 CJ, 오리온, 롯데 등 대기업이 본격적으로 영화산업의 본류를 장악하면서 시네마서비스의 파워는 상대적으로 약화됐다. 하지만 충무로 토착자본에 대한 지지는 예상 외로 강하다. 그가 파워50 집계의 마지막 순간까지 1, 2위를 오르내릴 수 있었던 데는 대기업 자본에 대한 거부반응이 영향을 끼쳤을 거다. 항상 한국 영화산업의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었던 그의 능력에 대한 신뢰 또한 한몫 했으리라. 그와의 인터뷰는 순위집계 막바지에 이뤄졌다. 해마다 이맘때면 “파워 1위는
<씨네21> 집계 파워50, 9년만에 1위 놓친 강우석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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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드 니로, 알 파치노, 잭 니콜슨. 뉴아메리칸 시네마의 시대를 거쳐 살아남은 배우들에게는 아슬아슬한 리비도가 있다. 환갑을 넘은 나이에도 동공은 살짝 맛이 가 있고, 그림자는 의심스러우며, 가련한 뱃살만 감춘다면 등덜미의 섹시함 역시 여전하다. <택시 드라이버>(1976), <이지 라이더>(1969), <대부>(1972)의 기운이 아직은 쇠락하지 않은 탓일 것이다. 그에 반해 더스틴 호프먼의 노년은 조금 초라해 보인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이 훌륭한 성격파 배우는 예전의 아우라를 손에서 놓아버린 듯했다. <졸업>(1967)과 <미드나잇 카우보이>(1969), 샘 페킨파의 <분노의 표적>(1971)을 되새김질하는 것은 오랜 추억을 더듬는 듯 아련했다. 그는 늙었고, 차분했고, 조금 심심했다.
그런 이유로, 지난 10여년간의 더스틴 호프먼은 할리우드의 살아 있는 등신불 취급을 받아왔다. <졸업> 이후
호프먼다운 지극히 호프먼다운, <미트 페어런츠 2>의 더스틴 호프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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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코미디영화의 대표선수가 돌아왔다. 그것도 웃음 한점 없이 조선시대 수사관의 굳은 표정으로. 바특하게 자른 헤어스타일로 성큼성큼 스튜디오에 들어서며, 전 국민이 광고에서 매일 만나는 사람 좋은 미소로 시원스레 인사한다. <신라의 달밤> <라이터를 켜라> <광복절특사> <선생 김봉두> <귀신이 산다>로 내달린 흥행보증수표 차승원. 5타수 5안타라서 여섯 번째 타석 <혈의 누>가 부담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5타수 5홈런이면 부담이겠지. 하지만 사실 1루타, 2루타 혹은 에러로 출루한 경우도 있었다. 흥행은 수치가 전부지만, 내 기준에서 보면 흥행이 아닌 경우도 많았다”고 답한다. 질문을 할 때마다 이거냐 저거냐라고 단순하게 물으면 여지없이 날카롭게 되받아온다. 정확히 자신의 생각을 전하고는 묻는 사람이 무안하지 않도록 씩 웃는다. 화법이나 행동거지에서는 여우라면 이런 여우가 없고, 영화를 대하거나 자신을 평가하는 엄격함
코미디 대표선수의 수상한 귀환, <혈의 누>의 차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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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근영의 얼굴이 달라졌다. 보는 사람을 무장해제시키는 웃음, 호기심으로 빛나는 눈망울 등 특유의 매력은 여전하다. 그러나 <댄서의 순정>의 개봉을 앞두고 만난 그는 더이상 “나는 사랑을 아직 몰라~”라며 막춤을 선보이던 여고생 보은이 아니었다. 이제 그는 전직 최고의 스포츠 댄서와 호흡을 맞추기 위해 위장결혼으로 밀입국을 감행한 당찬 조선족, 갖은 노력 끝에 댄스 실력도 인정받고 사랑도 이뤄내는 스무살의 장채린이다. 자신의 나이에 맞는 배역을 맡아 작품마다 조금씩 성장해왔던 그가, 드디어 성인의 문턱에 다다른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배우 문근영 역시 달라졌다.
<댄서의 순정> 기술시사를 앞둔 그는, 시사회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 이젠 두렵다고 말한다. 첫 영화 <연애소설>에선 자신이 나오는 장면만 나오면 안절부절못했고, <장화, 홍련>에선 영화가 무섭지 않으면 어떡하나, 걱정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처음으로 영화 전체를 책임졌
<댄서의 순정>의 배우 문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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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24일에 크랭크업한 영화 <연애의 목적> 쫑파티 자리에서 박해일은 제작사 싸이더스의 직원에게 인터뷰 하나만 잡아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숨돌릴 새 없이 차기작 <소년, 천국에 가다>를 촬영하게 됐는데, 몰입이 쉽지 않다고, 인터뷰를 씻김굿 삼아 자신의 몸에 물들어 있던 주인공 유림의 얼룩을 지워버리고 싶다는 것이 이유였다.
“지금 젖었어요?” <연애의 목적> 시나리오에 등장하는 첫 대사다. 스물여섯된 고등학교 영어교사 이유림이 스물일곱의 교생실습생 최홍(강혜정)에게 학교 운동장 벤치에 앉아 건네는 말. <연애의 목적>은 맘에 드는 여자 앞에서 ‘한번만 같이 자자’고 애처럼 조르는 남자와 ‘사랑하지도 않는데 그걸 왜?’라고 묻는 여자의 팽팽하고 제법 아찔하며 리드미컬한 연애담이다. 박해일이 연기한 유림은 그가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들과 좀체 묶이지 않는다. 차이는 있지만 전작의 캐릭터들은 공통적으로 그에게서 맑은 얼굴과 깊은 음성
<연애의 목적>의 배우 박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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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틱하고 폭력적인 만화에 탐닉하고 밤이면 사나운 몽상에 뒤척이는 10대 남자애들에게 연필을 쥐어주자. 그리고 환상의 여자 친구를 그려보라고 속삭이자. 몇분 뒤 당신의 손에는 아마도 제시카 알바(24)와 몹시 닮은 소녀의 초상화가 들려 있을 것이다. 그녀는 오목하고 볼록하고 터질 듯하다. 도도한 눈동자, 금세라도 토라질 듯 도톰한 입술, 모카빛 윤기가 흐르는 동그란 어깨, 쿨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경멸로 살짝 이지러진 눈썹. 제시카 알바를 이루는 모든 곡선은, 호르몬을 주체 못하는 소년들의 기도에 대한 천상의 응답이다. 만화가 약속한 판타지를 한치 오차없이 충족시켜줄 것을 요구하는 탐욕스런 10대 마니아들을 상대해야 할 <신 시티>와 <판타스틱 포>의 영화제작자들이 제시카 알바를 ‘최종병기 그녀’로 떠올린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블론드의 야망’(blond ambition). 15년 전 마돈나가 그녀의 투어에 붙였던 타이틀은 제시카 알바의 2005년을
21세기가 원하는 천사의 얼굴, <신 시티>의 제시카 알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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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가늘고 긴 실루엣, 허리께로 물결치는 긴 생머리, 산머루처럼 검게 젖은 눈동자. 이런 식으로 윤소이의 외적인 특징들을 나열해보면, 소설과 만화 속에서 수줍게 고개 숙인 청순가련한 소녀가 겹쳐 떠오른다. 연약하고, 의존적이고, 결정적으로 ‘사랑밖에 난 몰라’ 하는 스타일. 그런데 조금만 들여다보면 알아차릴 수 있는 것들.
윤소이의 표정과 몸짓과 목소리에는 그런 소녀가 없다. 군살없는 날렵한 몸매를 닮은 담백한 웃음과 말씨에는 내숭이나 청승이 들어설 곳이 없다. 긴 팔다리가 그리는 시원시원한 몸의 언어를 듣고 있으면, 뭇 감독들이 그에게 연달아 ‘칼자루’를 쥐어주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아라한 장풍대작전>에서 무림의 고수로 분했던 그는 연초부터 중국에서 무협영화 <무영검>을 찍고 있다. 그 사이에 찍은 <역전의 명수>는 온갖 장르가 망라된 풍자코미디지만, 어리버리한 주인공을 자신의 복수에 끌어들인다는 점에서, 이야기의 주도권은, 칼자루는
그녀를 바라만 봐선 알 수 없는 것들, <역전의 명수>의 윤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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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호진은 운이 좋았다는 말을 자주 했다. 영화를 그만두고 나서 13년 만에 <2009 로스트 메모리즈>를 찍은 그는 4년이 채 못 되는 사이 <이중간첩> <말죽거리 잔혹사> <범죄의 재구성>처럼 인상적인 영화들로 새로운 필모그래피를 채워왔다. 탤런트로 인상이 굳어진 배우에겐 쉽게 일어날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운이라고 하기엔 뭔가 서운하다. 현명하고 고집있게 나이 먹은 남자, 라고 하면 조금은 비슷할까. 느닷없이 스크린에 나타난 천호진은 대의를 위해 생명을 바치는 <2009 로스트 메모리즈>의 후레이센진 리더로, 무뚝뚝하면서도 속깊은 <이중간첩>의 정보부 상사로, 어린 남자는 품을 수 없을 그늘을 내비쳤었다. 그리고 그 그늘은 <주먹이 운다>에서도 제몫을 찾는다. <주먹이 운다>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거리에서 매를 맞으며 돈을 버는 퇴물 복서 태식(최민식)을 그저 바라보는 국숫집 주인 상철
<주먹이 운다>의 배우 천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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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우지와 이구아나에 열광하는 생물학자이자 군인이며 자기 배를 째서 총알을 뺄 정도의 명의인데다가 첼리스트이기까지 한 전쟁터의 로맨티스트(<마스터 앤드 커맨더: 위대한 정복자>), 기숙사 책상을 2층 창문에서 내던지며 자폐아 같은 천재 존 내시에게 프린스턴대학의 낭만을 가르치던 허구의 존재(<뷰티풀 마인드>), 도덕의 전문가인 척하다가 애인을 팔아먹고 급기야는 애인에게 총으로 뒤통수를 맞는 마을의 바보(<도그빌>). 이 세 사람의 공통점은 낯선 캐릭터, 부드러운 연기, 리드미컬한 영국식 영어로 이상한 존재감을 만든다는 것이다. 또 하나를 들자면 이 모두는 같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금발에 조금 길어 보이는 지적인 얼굴이라는 점을 빼면 딱히 알아볼 수 없을 만큼 그의 변신은 매번 유달랐다. 아마 이런 변신술의 선배들을 찾자면 멀게는 로버트 듀발과 존 말코비치, 가깝게는 베니치오 델 토로가 있을 터이다. 약삭빠르거나 이기적이거나 마초적 완력을 쓰
담백한 남자의 영국식 유머, <윔블던>의 폴 베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