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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 호스의 물줄기를 맞으면서도 무지개 속에 선 듯 빛나는 로리타, 감당할 수 없는 사랑의 그늘로 서른두살의 남자를 끌어들이는 <연인>의 소녀, 혹은 차갑게 푸른 눈동자로 채 자라지 못한 육체를 덮어 버리는 <택시 드라이버>의 어린 창녀 아이리스. 이들은 조금만 무게를 가해도 짓눌려 버릴 것처럼 어려 보이지만, 이 아이들 앞에서 부서지는 쪽은 오히려 어른들이다. 스무살도 되지 않은 이 소녀들에게서 어른들이 얻고 싶어했던 것은 무엇일까. 이들의 무엇이 잊고 있던 욕망을 일으켜세우고 다시 한번 갈증 속에 버려지게 했을까. 놓쳐 버린 시간에 대한 향수라고 쉽게 대답할 수도 있다.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던 은밀한 저항의 반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아메리칸 뷰티>는 다소 다른 의미를 담는다.
<아메리칸 뷰티>의 주인공 레스터 버냄을 연기한 케빈 스페이시는 그 답을 짐작하는 듯하다. 장미꽃잎으로 몸을 감싼 미나 수바리(21). 그 꽃잎들이 하나씩
아, 아메리칸, 아메리칸, <아메리칸 뷰티>의 미나 수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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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아카데미가 캐나다를 화나게 했다면, 그건 <사우스 파크>의 주제가 <블레임 캐나다>가 주제가상 후보에 올랐기 때문이 아니다. 전세계에 중계 방송되는 시상식에서 ‘타도, 캐나다’가 울려 퍼진대도 여유롭게 웃어 넘기던 그들이 정작 참기 힘들었던 건, 그들의 ‘국민감독’ 노만 주이슨(Norman Jewison·73)이 홀대받았다는 사실이라고 한다. 그의 영화 <허리케인 카터>는 남우주연상(덴젤 워싱턴) 후보 한 자리만 배당받았고, 그나마도 수상의 영예를 누리지 못했다. 꼭 그 이상의 상복을 누려야 할 영화는 아니지만, 편견에 희생돼 살인자의 누명을 쓴 흑인 복서의 이야기가 전하는 진한 감동만큼은 ‘국보급’이라는 사실을 캐나다 밖에서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캐나다 토론토 출신인 노만 주이슨 감독은 50년대에 영국 <BBC>, 미국 <CBS>, 캐나다 국영 방송사를 거치며, 방송 작가와 드라마 연출가로 활동했는데, 이때 해리 벨
캐나다 국민감독, <허리케인 카터>의 노만 주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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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의 밀밭 빛깔 같은 금발에 190cm 가까운 훤칠한 키, 큰 입으로 시원하게 그리는 미소의 애시튼 커처는 전형적인 ‘미국산’이다. 그의 성공담도 전형적인 아메리칸 드림이다. 커처는 배우로 데뷔 전 시급 12달러를 받으며 식품제조공장의 바닥을 비질했고, 아이오와대학에 다닐 때는 너무 가난해서 매혈(賣血)을 한 적도 있다. 그는 70년대를 배경으로 친구들의 사랑과 우정을 복고적이고 코믹한 방식으로 그려낸 TV시리즈 <70s Show>의 성공적인 데뷔로 스타덤에 올랐고, 그뒤 영화로 활동무대를 넓혔다. 그리고 전세계가 그를 절대 잊을 수 없게 만든 가장 미국적인 사고를 쳤다. <미녀삼총사: 맥시멈 스피드>에서 전신 성형을 하고 근사한 몸매를 드러내며 요란하게 영화계에 복귀한 15살 연상의 데미 무어와 사랑에 빠진 것이다. 무어, 무어의 전남편인 브루스 윌리스, 무어와 윌리스의 세딸들(커처를 ‘다른 아빠’라고 부른다는)과 함께 포즈를 취한 애시튼 커처의 사진은 미국
참을 수밖에 없는 존재의 가벼움, 애시튼 커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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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우성은 편안해 보인다. 파리의 양철 지붕 아래 다락방처럼, 내장재를 그대로 드러낸 스튜디오로 새어들어오는 빛과 나무 바닥이 약간 삐걱거리는 소리가 그를 무장해제시켰을지도 모를 일이다. 찰칵. 카메라 셔터가 내려가는 소리. 그게 있었으면 더 좋았을 테지만, 디지털카메라는 별로 말이 없다.
여전히 <거미숲>과 <알포인트>의 잔상이 아른거린다. 지친 영혼을 가진 남자의 광기어린 눈망울이 또렷이 떠오른다. 그 잔상 앞에서는 뽀글거리는 파마머리 백수가장을 쉽게 떠올릴 수가 없다. <간큰가족>에서 감우성은 북에 두고온 가족을 그리워하는 시한부 아버지를 위해 ‘가짜 통일소동’을 벌이는 큰아들 명석을 연기했다. 백수가장이 노리는 것은 아버지가 ‘통일이 될 때까지는 사용할 수 없다’고 못박아놓은 엄청난 유산이다. 명석의 지휘 아래 간큰가족은 통일신문을 만들고, 통일방송을 만들고, 통일 서커스단을 만든다. <간큰가족>은 궁상맞은 삶에서 벗어나보려는 아
아름다운 무정형의 고집, <간큰가족>의 감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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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경이 세편의 영화에 동시에 캐스팅됐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느라 1년 반을 쉬고 나서, 슬슬 활동을 재개하려 하자 기다렸다는 듯 도처에서 출연 요청이 밀려들었고, 그중에서 고르고 골라 결정한 영화가 모두 세편이다. 일이 이렇게까지 몰리다니, 신은경 없는 동안 충무로에선 어떻게 영화를 만들었는지, 신은경은 일하지 않는 동안 어떻게 참았는지, 궁금해질 정도다. <Mr. 주부 퀴즈왕>에서는 전업주부가 된 남편 한석규와 갈등을 빚는 직업여성 아내로, <6월의 일기>에서는 예고된 살인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강력계 형사로 출연하게 된다. 남편이 대표로 있는 소속사 플레이어에서 제작하는 <오늘의 운세>는 신이 내린 여자가 사랑에 눈뜬다는 내용의 코믹멜로로, “기존 이미지와 달리 사랑스러운 여자” 역할이라서 마음이 동한 작품.
전날 밤 <Mr. 주부 퀴즈왕>의 첫 촬영을 하고, 새벽에 <6월의 일기>의 고사를 지냈다며, 눈도 붙이지
등 3편의 영화에 캐스팅된 신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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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15일,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알베르토 바르베라와 김기덕 감독이 다시 만났다. 알베르토 바르베라는 자신이 집행위원장으로 일하던 2000년 베니스영화제에서 김기덕 감독의 <섬>을 발굴한 인물이다. 대학에서 영화역사를 전공한 영화평론가 출신인 바르베라는 1989년부터 98년까지 토리노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일했으며 1999년부터 2001년까지 3년간은 베니스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지금은 유럽에서 제일 큰 규모인 토리노 영화박물관장으러 재직 중이다. 올해 토리노 영화박물관은 한국영화제(4월15일부터 7일 동안)와 김기덕 감독 특별전을 개최했다. 이 행사를 계기로 바르베라를 만나 유럽에서 김기덕 영화가 인기를 끄는 이유에 대해 물어봤다.
-김기덕 감독의 <섬>을 어떻게 발굴하게 되었는가.
=우연히! 2000년 베니스영화제를 며칠 남겨두지 않은 상태에서 1500여편의 영화를 받았다. 이 영화들을 두달 반 동안 봐야 했다. 나는 5명의 심사위원과 함께
전 베니스영화제 집행위원장 알베르토 바르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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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화로운 드레스가 아닌 무시무시한 문신으로 몸을 감싼 은막의 스타를 떠올려보라. 화려한 보석보다는 흑표범을 액세서리 삼는 것이 훨씬 쉬운 일이라고 말하는 아리따운 여배우는 어떤가. 작품마다 함께 출연하는 남자들과 염문설을 뿌리면서도 입양한 네살배기 아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말하는 당당한 이 여자. 언제나 예측불허로 자신의 욕망을 따르지만, 옳다고 믿는 일을 위해서 망설임 없이 돌진하는 안젤리나 졸리. 이 우아한 비행의 주인공은 추락을 모르는 눈부신 날개를 지녔고, 땅에 발붙인 우리는 스크린 안과 밖을 누비는 그 행보에 어김없이 매혹당하곤 했다.
물론 평범한 우리는, 그 단호한 아름다움에 두려움과 비난, 오해로 응수하기도 한다. “안젤리나의 입은 남편들을 빨아들이기 위해 만들어졌다”, “남자킬러(man-eater) 안젤리나, 부주의한 남편들과 단기 작업에 들어가다”. 신작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에 함께 출연한 브래드 피트와의 염문설로 연일 타
결코 사로잡을 수 없는 야성의 관능, 안젤리나 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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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우는 기본이 삼세번이다. 대학도 삼수해서 들어갔고, 탤런트 시험도 세 번째 붙었다. 운이 잘 따라주는 편은 아니었다. 그래도 지난 몇년은 좀 심했다. 1년 가까이 참여한 <무사>에서 그가 맡은 역관의 캐릭터는 시간문제로 상당 부분이 편집됐고, 그뒤 2년 반 동안 찍고 기다리기를 반복한 영화 <스턴트맨>은 85% 촬영이 진행된 상태에서 제작이 중단됐다. 실은 아직도 공식적으로 ‘중단됐다. 미안하다’는 통보가 없는 채다. 그는 “<다이 하드>풍의 코믹 액션”이라는 이 작품에 쏟아부은 시간과 열정에 속이 많이 상해 있다. “마냥 기다렸죠. 연기 아니면 할 게 없다고, 최면을 걸었어요. 그래도 감사한 건 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일이 끊기진 않았다는 거예요. 남보다 고생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무미건조한 삶이 지겨워서, 영화로 꿈을 꾸기 시작한 거고, 탤런트 시험 붙을 때까지 친 거고, 중요한 역할 맡을 때까지 기다린 거고, 인정받을 때까지 노력하다보니 여기
배우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혈의 누>의 박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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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영화 김미희 대표는 올해 <씨네21>의 파워50 설문조사 결과 41위에 랭크됐다. 2002년 <신라의 달밤>으로 10위에 올랐던 그는 이후 3년 동안 내리막길을 걸었다. 지난해 <아라한 장풍대작전> <여선생 vs 여제자> <발레교습소> 등 한해에 3편이나 되는 영화를 내놓았지만 기대에 걸맞은 성과를 내진 못했고, 급기야 2005년 조사에서 무려 20계단이나 떨어지며 충무로의 관심의 초점에서 멀어진 듯했다. “이번에 안 되면 목매달아 죽을지도 몰라”라고, <혈의 누> 개봉을 앞두고 농담으로 흘려듣기에 과한 발언을 수차례 내놓았던 그가 드디어 원기를 회복했다. 5월4일 개봉한 <혈의 누>는 어두운 시대극이라는 점에서 흥행을 예상하는 이가 많지 않았던 영화. 그러나 <혈의 누>는 본격적인 성수기라고 볼 수 없는 시기인데도 불구하고 평일에도 8만명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개봉 6일 만에 전국 100만명
관객 100만명 넘은 <혈의 누> 제작한 좋은영화사 김미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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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 소비노(33)는 금발의 백치미인이 유난히 잘 어울리는 배우다. <마이티 아프로디테>에서도 그랬지만 <노마진 앤 마릴린>에서도 ‘백치미인’ 마릴린 먼로가 그에게 딱이었다. 국내에 지각 개봉한 이 영화에서 그는 마릴린 먼로 특유의 걸음걸이와 어투, 헤픈 미소를 고스란히 재현했으며 텅 빈 얼굴로 자신에게 주어진 가혹한 운명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스파이크 리의 <썸머 오브 샘>의 다이아나 또한, 백치는 아니지만 남편의 외도를 쉽게 눈치채지 못할 만큼 어리숙하고 미련한 여자다. <마이티 아프로디테>의 백치미도 일품이었다. 삐딱거리는 걸음새하며 높은 톤의 목소리와 억양, 번잡스런 옷차림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창녀의 이미지 그대로였다. 하지만 이건 미라 소비노가 만들어낸 이미지들일 뿐이다. 미라 소비노는 대단한 노력과 정교한 연기로 백치의 이미지를 뽑어냈다. <마이티 아프로디테>에서 날아가는 듯한 어투를 얻기
창녀에서 성녀까지, <마이티 아프로디테>의 미라 소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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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저수지를 찾는 낚시꾼들에게 커피와 실지렁이를 팔 듯 몸을 내주는 <섬>의 희진. 그녀의 얇은 갈색치마는 사내들의 배설물에 젖기 일쑤고, 헝클어진 머리카락에선 비린내가 요동한다. 하지만 일시적으로 섬에 정주해서 그녀를 약탈하는 이들은 유약하기 그지없다. 죽기 위해 섬을 찾은 현식도 섬을 지배하는 그녀 앞에서 이내 칭얼대고 결국 뒷걸음질친다. 한치의 오차나 조금의 머뭇거림 없이 자신의 욕망의 관자놀이를 겨누는 그녀 앞에서 그들은 무력하다. 찌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곧바로 먹이를 쳐올리는 그녀의 민첩함은 위협적이다. 푸른 바다 흰 포말 위에서 태어나지도, 아름답기 그지없는 키프로스 섬에서 노닐지도 않지만, 희진 아니 서정(28)은 본능적인 직관과 대담한 의지로 <섬>을 관장하는 여신이다.
깊게 팬 관능적인 여신의 가슴선 뒤로 기다란 삶의 상처를 달고 다니는 희진 역을 맡아 연기한 서정은 잘 알려진 배우는 아니다. 그래서 ‘운좋게’ 거리에서 픽업된 풋내기
충무로의 섬, 독립영화의 대지, <섬>의 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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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풍경은 큰 변화가 없다. 번화가엔 높은 굽의 구두에 카우보이 모자, 헐렁한 루즈삭스를 신은 여고생들이 여전히 거리를 누빈다. 번잡한 시내를 벗어나 호텔 회견장에 들어서니 연애만화 같은 한쌍이 기다리고 있었다.
<4월 이야기>의 이와이 순지 (38) 감독과 배우 마쓰 다카코(松たか子, 22). 배우, 감독이 아니라 오누이 같기도 하고, 진짜 ‘연인’처럼 꼭 어울리는 분위기라 해야 할까. 이와이 순지 감독은 약간 몽롱한 눈동자에 느린 말투로 인터뷰에 응했다. 질문을 던지는 상대방의 시선을 물끄러미 응시하면서. 최근엔 극장용 영화보다 뮤직비디오에 치중하는 느낌이다. 일본을 방문하고 있을 당시 공중파 TV에선 감독이 인기 그룹 Glay의 뮤직비디오를 작업하게 되었다는 소식이 연예계 뉴스로 다뤄지고 있었다. 마쓰 다카코 역시 승승장구. 지난해에 <선보고 결혼하기>라는 드라마에 출연했는데 방송사에서 연기상을 받는 등 부산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짧은 시간에
<4월 이야기>의 감독 이와이 순지와 배우 마쓰 다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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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눈깜짝할 사이 여인이 된다. 킬러 레옹을 “애인”이라고 단호히 말하던 새치름한 소녀 마틸다가 어느새 한 행성을 다스리는 여왕의 위엄을 갖추었다. 11살에 킬러 견습생으로 연기의 문을 두드린 내털리 포트먼(17)은 올 최고의 화제작 <스타워즈>에서 무역연합의 침략에 맞서 나부 행성을 지키려는 여왕 아미달라로 또 한뼘 자란 모습을 보여준다. 가부키 배우처럼 하얗게 얼굴을 덮은 분장 속에 마틸다의 도발적인 눈빛을 숨겨놓고 말이다.
아미달라 여왕은 독특한 가부키풍 의상과 분장으로 <스타워즈>의 캐릭터 중에서도 단연 인기를 끌었다. 14살짜리지만 한 행성을 책임지는 여왕이 되기 위해서 포트먼은 “늘 두통을 앓는” 것처럼 무거운 머리장식을 해야 했고, “캐서린 헵번이나 로렌 바콜처럼 당당한 어조를 연습”하며 목소리를 낮췄다. 포트먼의 아미달라는 제다이의 도움만 기다리는 게 아니라 직접 총을 들고 적군 교란에 나서는 꽤 당찬 인물. “여왕이 젊은 여성이라는 사실이
눈깜짝할 사이 여인이 된, <스타워즈>의 내털리 포트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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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떨리는 가슴>을 20시간 동안 촬영한 뒤 잠깐 눈을 붙이고 나온 길이라고 했다. 예의 그 밝고 환한 얼굴을 기대했는데 조금 어두웠다. <질투는 나의 힘>을 찍고 난 뒤의 웃음 가득한 얼굴이 아니다. 피곤한 탓인지 새침해 보인다. <질투는 나의 힘> 때보다 더 젊어 보인다고 했더니, 짧고 명확해서 대꾸하기조차 어려운 답이 돌아온다. 메이크업 했잖아요. 야무지고 똑 부러지는 말투지만 거기엔 경쾌한 리듬과 동그란 원을 그리며 퍼지는 화사함이 있다. 마치 그의 얼굴처럼 말이다. 몇 마디 말을 주고받자 이내 얼굴엔 웃음이 번져나온다. 눈은 더욱 커지고, 입가엔 보조개가 팬 그이의 웃음엔 놀라운 기어전환의 마력이 있다. 일찌감치 찾아온 초여름 더위가 이 웃음으로, 기어이 싱그러운 봄의 한때로 되돌아간다. <질투…>의 원상이가 되거나 윤식이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는 뇌종양을 앓는 아들의 엄마로 나온 신작 <안녕, 형아>와 자신의
<안녕, 형아>의 배우 배종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