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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창간 10주년 특집 표지 ‘화양연화’ 편을 찍던 날, 김상경은 답답한 표정이었다. “<극장전> 속 동수란 인물은 그러니까… 이렇게 이상한 놈이고 저렇게 야시꾸리한 친구거든요. 근데 영화를 보지 못했으니 이해가 안 되죠?” 그리고 시사회에서 영화를 본 뒤 김상경이 느낀 답답함이 머릿속에서 뎅, 공명음을 울렸다. “아마 홍상수 감독님의 영화, 아니 한국영화를 통틀어도 가장 이상한 캐릭터일 것”이라는 김상경의 이야기가 과장이 아니었음을 알게 됐을 때 그와 다시 한번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다. <극장전>이란 영화에 관해, 동수란 캐릭터에 관해, 김상경이란 인간에 관해. 어떤 질문에도 속내를 확 뒤집어 보이며 거침없이 대답한 김상경과의 2시간 동안의 대화를 풀어놓는다.
-칸영화제에 다녀온 느낌은 어떤가.
=그쪽 미디어 관계자들이 나를 보고 기분이 안 좋냐, 왜 이리 담담하냐 하고 묻더라. 누군가는 상경씨는 너무 여유로워 보이고 홍상수 감독님은 권태로
<극장전>의 배우 김상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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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한아름에 끌어안기에는 언제나 넘치고, 한곳에 머무르기에는 너무 숨가쁘게 약동하는 무엇이다. 그 영화가 올 봄에는 부산, 부천에 이어 ‘온고을’ 전주에 또 하나의 축제 마당을 열고 우리를 청한다. 달포 앞으로 다가온 제1회 전주국제영화제는 과연 어디쯤 서서 관객에게 어떤 첫 만남을 제안하고 있을까. 상영작 및 초청 인사 발표 기자회견을 하루 앞둔 3월21일 아침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원장실을 찾아 최민(56) 조직위원장으로부터 대안 영화제를 표방한 전주국제영화제의 자화상과 약속, 근심과 희망에 대해 들어보았다.
-부산과 부천에 이어 세 번째 국제적 영화제를 탄생시키면서 출발점에 관한 고민이 컸을 것 같다.
=전주영화제의 타당성을 둘러싼 이야기가 많았다. 큰 비용 들여 기존의 국제영화제들과 서로 잡아먹는 결과를 빚는 것 아니냐는 말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에겐 다른 나라에서 찾아볼 수 없는 열광적인 젊은 관객층이 있다. 영화 전문 주간지가 5년 넘게 건재한다는 사실도 그들
4월28일 개막하는 제1회 전주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 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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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배우가 로버트 드 니로일 필요는 없다. 드 니로처럼 한 순간 눈빛에 삶의 깊이까지 녹여내지는 못하더라도, 딱 두시간 동안 관객을 즐겁게 해주는 것으로 충분할 수 있으니까. 어쩌면 그것이 배우의 가장 평범하면서도 소중한 미덕일지 모른다. 가벼운 TV시트콤을 주로 거쳐왔지만, 매튜 페리(30)는 그 미덕에 충실한 배우다. 페리의 연기를 지켜보면서 마음속 가장 밑바닥의 기억까지 흔들어놓는 전율을 느끼는 관객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페리에겐 스쳐가는 일상의 세세한 감정을 포착해 웃음으로 내어놓는 능력이 있다. 17명을 살해한 마피아 조직원 지미 튤립(브루스 윌리스)이 옆집에 이사 오고, 돈만 아는 아내는 보험금을 타기 위해 자신을 없애려 하고, 그 와중에 지미 튤립의 아내와 사랑에 빠져버린 치과의사 오즈. 그 난감한 상황에서도 페리는 처량한 표정으로 견딜 수 없는 웃음을 자아낸다. 아담 샌들러처럼 한없이 불쌍해 보이다가도, 톰 행크스처럼 대책없이 느긋하기도 한, 페리는 입장료가 아깝지
“내 재능은 로맨틱 코미디인걸”, <프렌즈>의 매튜 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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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와 여자가 벤치에 앉아 있다. 남자가 무엇인가 물었고 여자는 귓가의 머리를 쓸어올리며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남자를 본다. <인터뷰>의 메인 이미지로 선택된 사진에서 배경이 되는 파리 센강의 풍경은 식별할 수 없을 만큼 희미하다. 마치 ‘여기가 파리라는 사실은 잊어도 된다. 이 아름다운 남녀에게 시선을 고정하라’고 주문하는 것 같다. 시선과 실루엣 만으로 이국의 풍광을 압도하는 그들은 심은하와 이정재다. 모름지기 배우라면 존재만으로 스펙터클이 되는 게 당연하지만 둘의 조화가 이루는 시각적 쾌감에는 남다른 데가 있다. 사람들은 그들의 만남에서 더하거나 뺄 것 없는, 구질구질한 삶 저 너머에 있을 것 같은 낭만적 신화를 예감한다. 영화제목이나 내용을 몰라도 그런 이미지가 노크할 때 무의식의 문은 쉽사리 빗장을 연다. 영화의 성패는 두고볼 일지만 둘의 사진이 담긴 포스터에 눈길이 오래 머무는 건 당연하다.
심은하
보통 빛은 어둠에서 돋보이지만 그녀의 환함은 맑고 투
그들, 삶 저 너머의 낭만적 신화, <인터뷰>의 심은하·이정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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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평범했다. 하루에 여러 번 길에서 마주치고 스쳐 지나갈 법한,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은 외모. 첫인상이 그렇다는 얘기를 조심스레 건넸다. 튀지 않는 것은 뭐든 평가절하당하는 개성시대니 만큼, 불쾌하게 해석될 여지는 충분했다. “그렇죠.” 김유석의 얼굴에 여린 미소가 떴다. “그 평범함 속에 에너지가 있어요. 조금씩 조금씩 보여주려고요. 한석규 선배나 설경구씨, 다 그런 배우들 아닌가요.” 그는 이제껏 그 평범함 속에 묻어둔 비범한 에너지를 발휘할 기회를 꼭 두번 만났다. 나른하고 권태로운 일상에 날아든 여대생에게서 욕망의 출구를 찾으려던 <강원도의 힘>의 앳된 경찰이었다가, <섬>에선 사랑하는 여자를 죽이고 도망쳐 들어온 저수지에서 또다른 여자를 만나 치명적인 사랑에 빠졌다. 그리고보니, 극단적인 양면성을 지닌 가련한 인간상, 외면할 수 없는 우리의 본질을 담아낸 연기에, 그가 말하는 평범함의 미덕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유학파 배우’라고도 부른다. “
평범함의 힘, <강원도의 힘> <섬>의 김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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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 호스의 물줄기를 맞으면서도 무지개 속에 선 듯 빛나는 로리타, 감당할 수 없는 사랑의 그늘로 서른두살의 남자를 끌어들이는 <연인>의 소녀, 혹은 차갑게 푸른 눈동자로 채 자라지 못한 육체를 덮어 버리는 <택시 드라이버>의 어린 창녀 아이리스. 이들은 조금만 무게를 가해도 짓눌려 버릴 것처럼 어려 보이지만, 이 아이들 앞에서 부서지는 쪽은 오히려 어른들이다. 스무살도 되지 않은 이 소녀들에게서 어른들이 얻고 싶어했던 것은 무엇일까. 이들의 무엇이 잊고 있던 욕망을 일으켜세우고 다시 한번 갈증 속에 버려지게 했을까. 놓쳐 버린 시간에 대한 향수라고 쉽게 대답할 수도 있다.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던 은밀한 저항의 반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아메리칸 뷰티>는 다소 다른 의미를 담는다.
<아메리칸 뷰티>의 주인공 레스터 버냄을 연기한 케빈 스페이시는 그 답을 짐작하는 듯하다. 장미꽃잎으로 몸을 감싼 미나 수바리(21). 그 꽃잎들이 하나씩
아, 아메리칸, 아메리칸, <아메리칸 뷰티>의 미나 수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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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아카데미가 캐나다를 화나게 했다면, 그건 <사우스 파크>의 주제가 <블레임 캐나다>가 주제가상 후보에 올랐기 때문이 아니다. 전세계에 중계 방송되는 시상식에서 ‘타도, 캐나다’가 울려 퍼진대도 여유롭게 웃어 넘기던 그들이 정작 참기 힘들었던 건, 그들의 ‘국민감독’ 노만 주이슨(Norman Jewison·73)이 홀대받았다는 사실이라고 한다. 그의 영화 <허리케인 카터>는 남우주연상(덴젤 워싱턴) 후보 한 자리만 배당받았고, 그나마도 수상의 영예를 누리지 못했다. 꼭 그 이상의 상복을 누려야 할 영화는 아니지만, 편견에 희생돼 살인자의 누명을 쓴 흑인 복서의 이야기가 전하는 진한 감동만큼은 ‘국보급’이라는 사실을 캐나다 밖에서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캐나다 토론토 출신인 노만 주이슨 감독은 50년대에 영국 <BBC>, 미국 <CBS>, 캐나다 국영 방송사를 거치며, 방송 작가와 드라마 연출가로 활동했는데, 이때 해리 벨
캐나다 국민감독, <허리케인 카터>의 노만 주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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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의 밀밭 빛깔 같은 금발에 190cm 가까운 훤칠한 키, 큰 입으로 시원하게 그리는 미소의 애시튼 커처는 전형적인 ‘미국산’이다. 그의 성공담도 전형적인 아메리칸 드림이다. 커처는 배우로 데뷔 전 시급 12달러를 받으며 식품제조공장의 바닥을 비질했고, 아이오와대학에 다닐 때는 너무 가난해서 매혈(賣血)을 한 적도 있다. 그는 70년대를 배경으로 친구들의 사랑과 우정을 복고적이고 코믹한 방식으로 그려낸 TV시리즈 <70s Show>의 성공적인 데뷔로 스타덤에 올랐고, 그뒤 영화로 활동무대를 넓혔다. 그리고 전세계가 그를 절대 잊을 수 없게 만든 가장 미국적인 사고를 쳤다. <미녀삼총사: 맥시멈 스피드>에서 전신 성형을 하고 근사한 몸매를 드러내며 요란하게 영화계에 복귀한 15살 연상의 데미 무어와 사랑에 빠진 것이다. 무어, 무어의 전남편인 브루스 윌리스, 무어와 윌리스의 세딸들(커처를 ‘다른 아빠’라고 부른다는)과 함께 포즈를 취한 애시튼 커처의 사진은 미국
참을 수밖에 없는 존재의 가벼움, 애시튼 커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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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우성은 편안해 보인다. 파리의 양철 지붕 아래 다락방처럼, 내장재를 그대로 드러낸 스튜디오로 새어들어오는 빛과 나무 바닥이 약간 삐걱거리는 소리가 그를 무장해제시켰을지도 모를 일이다. 찰칵. 카메라 셔터가 내려가는 소리. 그게 있었으면 더 좋았을 테지만, 디지털카메라는 별로 말이 없다.
여전히 <거미숲>과 <알포인트>의 잔상이 아른거린다. 지친 영혼을 가진 남자의 광기어린 눈망울이 또렷이 떠오른다. 그 잔상 앞에서는 뽀글거리는 파마머리 백수가장을 쉽게 떠올릴 수가 없다. <간큰가족>에서 감우성은 북에 두고온 가족을 그리워하는 시한부 아버지를 위해 ‘가짜 통일소동’을 벌이는 큰아들 명석을 연기했다. 백수가장이 노리는 것은 아버지가 ‘통일이 될 때까지는 사용할 수 없다’고 못박아놓은 엄청난 유산이다. 명석의 지휘 아래 간큰가족은 통일신문을 만들고, 통일방송을 만들고, 통일 서커스단을 만든다. <간큰가족>은 궁상맞은 삶에서 벗어나보려는 아
아름다운 무정형의 고집, <간큰가족>의 감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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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경이 세편의 영화에 동시에 캐스팅됐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느라 1년 반을 쉬고 나서, 슬슬 활동을 재개하려 하자 기다렸다는 듯 도처에서 출연 요청이 밀려들었고, 그중에서 고르고 골라 결정한 영화가 모두 세편이다. 일이 이렇게까지 몰리다니, 신은경 없는 동안 충무로에선 어떻게 영화를 만들었는지, 신은경은 일하지 않는 동안 어떻게 참았는지, 궁금해질 정도다. <Mr. 주부 퀴즈왕>에서는 전업주부가 된 남편 한석규와 갈등을 빚는 직업여성 아내로, <6월의 일기>에서는 예고된 살인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강력계 형사로 출연하게 된다. 남편이 대표로 있는 소속사 플레이어에서 제작하는 <오늘의 운세>는 신이 내린 여자가 사랑에 눈뜬다는 내용의 코믹멜로로, “기존 이미지와 달리 사랑스러운 여자” 역할이라서 마음이 동한 작품.
전날 밤 <Mr. 주부 퀴즈왕>의 첫 촬영을 하고, 새벽에 <6월의 일기>의 고사를 지냈다며, 눈도 붙이지
등 3편의 영화에 캐스팅된 신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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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15일,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알베르토 바르베라와 김기덕 감독이 다시 만났다. 알베르토 바르베라는 자신이 집행위원장으로 일하던 2000년 베니스영화제에서 김기덕 감독의 <섬>을 발굴한 인물이다. 대학에서 영화역사를 전공한 영화평론가 출신인 바르베라는 1989년부터 98년까지 토리노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일했으며 1999년부터 2001년까지 3년간은 베니스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지금은 유럽에서 제일 큰 규모인 토리노 영화박물관장으러 재직 중이다. 올해 토리노 영화박물관은 한국영화제(4월15일부터 7일 동안)와 김기덕 감독 특별전을 개최했다. 이 행사를 계기로 바르베라를 만나 유럽에서 김기덕 영화가 인기를 끄는 이유에 대해 물어봤다.
-김기덕 감독의 <섬>을 어떻게 발굴하게 되었는가.
=우연히! 2000년 베니스영화제를 며칠 남겨두지 않은 상태에서 1500여편의 영화를 받았다. 이 영화들을 두달 반 동안 봐야 했다. 나는 5명의 심사위원과 함께
전 베니스영화제 집행위원장 알베르토 바르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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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화로운 드레스가 아닌 무시무시한 문신으로 몸을 감싼 은막의 스타를 떠올려보라. 화려한 보석보다는 흑표범을 액세서리 삼는 것이 훨씬 쉬운 일이라고 말하는 아리따운 여배우는 어떤가. 작품마다 함께 출연하는 남자들과 염문설을 뿌리면서도 입양한 네살배기 아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말하는 당당한 이 여자. 언제나 예측불허로 자신의 욕망을 따르지만, 옳다고 믿는 일을 위해서 망설임 없이 돌진하는 안젤리나 졸리. 이 우아한 비행의 주인공은 추락을 모르는 눈부신 날개를 지녔고, 땅에 발붙인 우리는 스크린 안과 밖을 누비는 그 행보에 어김없이 매혹당하곤 했다.
물론 평범한 우리는, 그 단호한 아름다움에 두려움과 비난, 오해로 응수하기도 한다. “안젤리나의 입은 남편들을 빨아들이기 위해 만들어졌다”, “남자킬러(man-eater) 안젤리나, 부주의한 남편들과 단기 작업에 들어가다”. 신작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에 함께 출연한 브래드 피트와의 염문설로 연일 타
결코 사로잡을 수 없는 야성의 관능, 안젤리나 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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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우는 기본이 삼세번이다. 대학도 삼수해서 들어갔고, 탤런트 시험도 세 번째 붙었다. 운이 잘 따라주는 편은 아니었다. 그래도 지난 몇년은 좀 심했다. 1년 가까이 참여한 <무사>에서 그가 맡은 역관의 캐릭터는 시간문제로 상당 부분이 편집됐고, 그뒤 2년 반 동안 찍고 기다리기를 반복한 영화 <스턴트맨>은 85% 촬영이 진행된 상태에서 제작이 중단됐다. 실은 아직도 공식적으로 ‘중단됐다. 미안하다’는 통보가 없는 채다. 그는 “<다이 하드>풍의 코믹 액션”이라는 이 작품에 쏟아부은 시간과 열정에 속이 많이 상해 있다. “마냥 기다렸죠. 연기 아니면 할 게 없다고, 최면을 걸었어요. 그래도 감사한 건 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일이 끊기진 않았다는 거예요. 남보다 고생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무미건조한 삶이 지겨워서, 영화로 꿈을 꾸기 시작한 거고, 탤런트 시험 붙을 때까지 친 거고, 중요한 역할 맡을 때까지 기다린 거고, 인정받을 때까지 노력하다보니 여기
배우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혈의 누>의 박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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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영화 김미희 대표는 올해 <씨네21>의 파워50 설문조사 결과 41위에 랭크됐다. 2002년 <신라의 달밤>으로 10위에 올랐던 그는 이후 3년 동안 내리막길을 걸었다. 지난해 <아라한 장풍대작전> <여선생 vs 여제자> <발레교습소> 등 한해에 3편이나 되는 영화를 내놓았지만 기대에 걸맞은 성과를 내진 못했고, 급기야 2005년 조사에서 무려 20계단이나 떨어지며 충무로의 관심의 초점에서 멀어진 듯했다. “이번에 안 되면 목매달아 죽을지도 몰라”라고, <혈의 누> 개봉을 앞두고 농담으로 흘려듣기에 과한 발언을 수차례 내놓았던 그가 드디어 원기를 회복했다. 5월4일 개봉한 <혈의 누>는 어두운 시대극이라는 점에서 흥행을 예상하는 이가 많지 않았던 영화. 그러나 <혈의 누>는 본격적인 성수기라고 볼 수 없는 시기인데도 불구하고 평일에도 8만명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개봉 6일 만에 전국 100만명
관객 100만명 넘은 <혈의 누> 제작한 좋은영화사 김미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