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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소녀의 시간이 다시 흐르기를 기다려왔다. 신세경이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한 순간부터 말이다. 한국 TV역사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그 악명 높은 명장면을 마지막으로, 신세경은 잠시 멈췄다. 유상헌 감독의 <어쿠스틱>(2010)에서 잠시 모습을 드러낸 것을 제외하면 이상할 정도로 신세경은 모습을 숨기는 듯했다. 물론 그녀의 시간이 정말로 멈췄던 건 아니다. 신세경은 1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이현승 감독의 11년 만의 복귀작 <푸른 소금>을 찍고 있었다.
<푸른 소금>의 신세경은 여전사다. 일단 외양은 그렇다. 스모키 메이크업으로 진하게 장식한 눈매, 면도칼로 슥슥 잘라낸 듯한 머리카락, 세상의 모든 총알도 막아낼 것처럼 단단한 가죽 재킷, 항상 타고 다니는 제 몸집의 세배는 될 것 같은 오토바이, 전직 사격 선수이자 현직 암살자. 우리가 당연히 기대하는 것은 작은 몸집으로 바이크를 몰고 뛰어다니며 장총으로 정확하게 타
[신세경] 멈추었던 여배우의 시간이 다시 흐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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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소금>의 송강호는 경계에 서 있는 남자다. 자신을 미행하는 괴한들을 공격하기 위해 순식간에 소주병을 맞부딪혀 깨트리는 짐승 같은 본능, 떠나간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그 집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소년 같은 심성이 한 몸에 있다. 힘든 세상사에 지친 그는 계속 그 고향집에 머무르고 싶지만 옛 조직의 동료들은 자꾸만 그의 옷소매를 붙든다. 고향 동네에 조그만 식당이라도 하나 차려 조용히 살고 싶은 그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그의 몸에서 결코 피 냄새가 지워지지 않을 거란 것을 알기 때문이다. 송강호가 연기하는 ‘두헌’ 자신도 그것을 안다.
오랜 세월 풍파를 견디며 육체에 새겨진 본능과 기질은 결코 육체라는 집을 떠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다. 방파제 난간에 걸터앉아 하루 종일 먼 바다만 본다. 그곳에 있으면 뭐가 보여서 보는 게 아니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본다. 그렇게 그는 바다를 보는 게 아니라 사실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는 것이다.
[송강호] 능란한 절제미, 그 연기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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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경이가 초반에는 적응하기 힘들어하는 것 같더니 나중에는 현장을 떠날 생각을 않더라.”(송강호) “송강호 선배와 함께 연기한다는 것만으로도 배우로서 한참 성장하는 기분이죠.”(신세경) 한국영화계를 대표하는 아저씨와 소녀. 어쩌면 식상한 조합처럼 느껴질 수 있는 만남이 흥미로워 보이는 것은 바로 송강호와 신세경의 만남이기 때문이다. 최근 송강호는 <박쥐>의 김옥빈, <의형제>의 강동원을 비롯해 현재 촬영 중인 <하울링>의 이나영에 이르기까지 풋풋한 후배들과 멋진 호흡을 이루고 있다. 마치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어 보이는 이 배우에게 후배들과의 만남은 색다른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한편,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의 기억을 말 그대로 ‘뚫고’ 나오려는 ‘영화배우’ 신세경으로서는 송강호라는 대선배와의 파트너십이 그 자체로 치명적인 매혹이다. 그렇게 두 사람의 필모그래피가 멋지게 교차하는 지점이 바로 <푸른 소금>이다.
[송강호, 신세경] 남자, 소녀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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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정려원을 인터뷰한 적 있다. <B형 남자친구>로 데뷔했을 때였다. 가수 려원을 버리고, 배우 정려원을 택한 그녀의 선택을 쾌조의 스타트였다고 말하긴 어렵다. 기자시사회가 끝난 뒤 동료들과 함께 축하 인사를 나누는 대신 정려원은 곧장 헬스장에 가서 1시간40분을 말없이 뛰었다고 했다. 그 까닭을 자세히 설명하진 않았지만 자신의 출연장면이 대거 편집됐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음을 모르진 않았다. 하지만 속상함을 드러내는 무덤덤한 말투에 놀랐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때 정려원은 이렇게 말했다. “숨은그림찾기죠. 저도 제 얼굴 찾느라 진땀 뺐어요.” 인터뷰 말미엔 하고 싶은 거 해야 늙어도 후회하지 않는다는 조언 겸 다짐까지 정려원은 덧붙였다. 그게 그냥 내뱉은 약속은 아니었다. 술 마시면 헐크로 변하는 여대생(<두 얼굴의 여친>), 봉두난발 머리하고 방 안에서 별 헤는 소녀(<김씨표류기>), 사람 잡아먹는다는 빨갱이 앞에서도 큰소리치는 아가씨(<
[정려원] 저, 성장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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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챔프>에서 말가면 쓰고 나오던데 재밌게 촬영했나요.
=말가면 쓰면 제가 얼굴이 작아서 콧구멍으로 밖을 봤어요. 그게 웃겼던 것 같아요.
-말가면 쓰고 우는 장면도 있던데.
=제가 영화에서 우는 신이 다섯신 있거든요. 그 장면이 되게 어려워요. 말가면 쓰고 아빠(차태현) 시력 검사하고 울고, 그 다음에 유오성 삼촌한테 아빠 말 타지 못하게 해달라고 빌면서 울고, 계속 울어요.
-우는 연기할 때 힘들지는 않았어요.
=(갑자기 자리를 옮겨 기자 옆에 앉으며 질문지를 본다) 나도 볼래요. 아, 이거요? 얘기해줄게요. 우는 연기 힘들지 않았어요. 제가 좋아하니까. (다음 질문에 대답을 먼저 한다) 같이 연기한 삼촌들한테 특별히 예쁨을 많이 받은 건 없었어요.
-음… 그럼 아까 말한 우는 연기할 때 감독님이 특별히 어떻게 하라고 한 건 없었나요.
=그냥 딱 한마디 해주셨죠. “너는 이걸 할 수 있다. 용기를 내봐라.”
-말은 무섭지 않았어요.
=아니요. 안 무서웠어
[who are you] 김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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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로필만 빛난다?
1995년 / <젊은이의 양지>
방송사에 견학 왔다 해도 의심받지 않을 만한 앳된 외모의 청년이 KBS에 출근도장을 찍기 시작했다. 1995년 처음으로 열린 KBS 슈퍼탤런트 공채에서 은상을 수상한 신인배우 차태현이다. 드라마 <젊은이의 양지>에서 전도연에게 애틋한 마음을 품은 부잣집 도련님으로 잠시 등장한 그는, “나이가 너무 어려 보인다”는 지적에 드라마 중도 하차의 아픔을 겪기도 했다. 여러 인터뷰를 통해 배우로서의 당찬 포부를 밝혔지만, 아직까진 KBS 효과담당자였던 아버지와 애니메이션 <영심이>의 ‘영심이’(성우)였던 어머니를 뒀다는 가족 프로필이 더 주목 받았던 시절.
2. 코믹 콤비 출동!
1999년 / <해바라기>
“수염이라도 길러야 하는 건가 진지하게 고민했다.” 지금은 미덕으로 칭송 받는 ‘동안’은 10년 전만 해도 신인배우의 앞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이었다. <젊은이의 양지> 이후
[차태현] 차태현을 울리고 웃긴 일곱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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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연기가 그냥 묻어나요, 저도 나이를 먹었나봐요
요즘 제가 이런저런 방송 프로그램에 자주 모습을 비치는 건, 9월8일 개봉하는 영화 <챔프> 때문이에요. <각설탕>의 마지막 장면에 스치듯 등장하는 ‘우박이’를 기억하시나요? 이환경 감독의 첫 영화 <각설탕>이 천둥이의 영화였다면, 차기작 <챔프>는 우박이의 영화죠. 저는 한때 유망한 기수였으나 우박이와 한날 한시에 교통사고를 당해 아내를 잃고 시력도 점차 잃어가는 이승호를 연기합니다. 우박이는 절름발이 말이라는 장애를 딛고 부산 최고의 경주마로 명성을 떨쳤던 ‘루나’를 모델로 삼았어요. 우리는 각자 절망적인 상황을 이겨내고 최고의 기수와 경주마가 되기 위해 함께 달려요. 이 여정에는 제가 끔찍하게 사랑하는 딸 예승이(김수정)와 우리를 믿고 지지해주는 윤 조교사(유오성)님이 함께하죠.
처음엔 <챔프>의 시나리오가 제게 왔다는 게 신기했어요. 말을 타본 적도 없고 승마장은커녕
[차태현] 이 배우의 인생 공식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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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남자는 오랫동안 우리 곁에 있었다. 이웃집 오빠 같은 수더분함으로, 대학 동기 같은 친근함으로, 한 여자만 바라보는 천진한 이미지로. 배우 차태현이 연기자로서의 행보를 시작한 지도 벌써 16년이 지났다.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는 피터팬 같은 이미지로 남을 거라 생각했는데, <챔프>를 통해 지켜본 그는 이제 온갖 역경을 딛고 사랑하는 딸을 위해 질주하는 ‘아버지’ 기수의 역할도 무리없이 소화해낸다. 국민적으로 사랑받는 연기자로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멈추지 않고 성장하는 이 배우에 대한 정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차태현에게 묻고, 그가 답했다. <과속스캔들>의 라디오 DJ 남현수가 그랬듯, 때로는 유쾌하고 때로는 진지하게 풀어놓는 차태현의 연기와 인생 공식을 들어보시라.
지난 주말, 모두들 TV는 잘 보셨나요? <런닝맨>(8월21일 방영)에서 제 옷차림이 좀 괴상하긴 했죠. 치렁치렁한 롱스커트에 밀짚모자를 쓰고, 짙은 아이라인까지…. 그렇게 튀
[차태현] 이 배우의 인생 공식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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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범 PD는 <한겨레> 기자 출신이다. 1989년에 입사해 2006년까지 기자로 일했다. 90년대 말부터 영화기자로 일했고, 중간에 <씨네21> 취재팀장을 맡기도 했다. 그가 쓴 영화에 대한 글은 좀 독특했다. 정곡을 찌를 때도 촌스럽게 덤벼들지 않았고, 에둘러 가면서도 사소한 변별점을 포착해냈다. 그때 이미 애주가로서도 명성이 자자했는데, 그가 아니었다면 폭탄주의 황금비율이나 소맥의 맛이 <씨네21>에 전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 그는 술 못 마시는 여자 후배들을 위해서 양주잔에 미니 폭탄주를 제조하는 재능을 발휘하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프로듀서 하겠다고 영화판으로 떠난 지 5년이 됐다. 영화인이 되겠다고 떠났지만, 어찌된 일인지 술꾼으로 더 유명해졌다. 술 칼럼을 쓰고, 술에 관한 책을 내고, 급기야 술에 관한 다큐멘터리까지 만들었다. 9월1일 개봉하는 <술에 대하여>는 그가 직접 구성하고 연출한 방송다큐멘터리다. 방영되지 못한 3
[임범] “<생활의 발견>의 소주, 가장 기억에 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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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아무리 일생일대의 명연기를 펼친다 해도 절대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쥐는 일 따위 허락되지 않은 사람. 앤디 서키스는 아마도 영화 역사상 가장 ‘낮은 데로 임하는’ 배우일 것이다. ‘디지털 배우’의 등장이 과거 토키영화의 등장만큼이나 혁명적인 일이라면 앤디 서키스는 그 첫머리에 놓여야 할 인물이다. 이처럼 따로 소개를 하고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다면 과연 그 누가 그의 존재를 알아챌까. ‘모션캡처 연기의 달인’이라는 칭호는 거창하기만 할 뿐 그의 감춰진 존재감을 드러내기엔 역부족이다. 사악함을 감춘 주눅든 눈빛과 앙상한 몸, 그리고 구부정한 허리의 골룸이 없는 <반지의 제왕>을 상상할 수 있을까, 킹콩 역할을 위해 르완다까지 가서 고릴라의 행동양식과 습성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체득한 그의 열정은 또 어떤가. 그리고 서늘한 표정만으로도 인간을 압도하는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이하 <혹성탈출>)의 ‘시저’의 ‘미친 존재감’은 단연 올해 여러 시상식의 연기
[앤디 서키스] 그에게 오스카를 수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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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뭄바이 태생이다. 대니 보일의 <슬럼독 밀리어네어>에 출연하기 전에는 모델로 활동했다.
=뭄바이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모델 생활을 아주 열심히 한 건 아니었다. TV 여행쇼에 출연하다가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라티카 역할을 만났다. 그 이후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런데 이름도 그렇고, 얼핏 보면 인도 사람처럼 안 보인다.
=사람에 따라 인도인, 아랍인, 스페인계라고 생각하더라. <슬럼독 밀리어네어>에 출연하기 전에 인도에서 영화 오디션을 많이 봤는데 다 떨어졌다. 어떤 사람은 “너무 인도 여자 같지 않다”고 말하기도 했다. (웃음) 얼마 전 이스탄불에 휴가 갔을 때 포르투갈 관광객을 우연히 만났다. 핀토라는 성이 포로투갈에서 아주 흔한 성이라고 하더라.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이하 <혹성탈출>)에서는 영장류 동물학자로 나온다.
=<혹성탈출>은 생각하는 블록버스터 같다. 영화에는 아주 많은 이슈가
[who are you] 프리다 핀토 Freida Pin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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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에서 유준상을 만났다. 유준상이 연기한 영화 <북촌방향>의 주인공 성준이 걸어다녔던 그 길을 좇아서 촬영지를 선택했고 차례로 돌아다녔다. 사람 많은 휴일이라 시선도 많고 복잡함도 더했지만 유준상은 흔쾌히 즐겼다. 재동삼거리에서, 정독도서관 옆길에서, 한옥집 사이에서, 층층계단 사이에서 그는 즐거워했다. “영화 속 장소를 이렇게 다시 돌아다니다니. 기분이 정말 좋네요.” 북촌의 이 남자는 <북촌방향>을 정말 흥이 나서 찍었던 것 같다.
홍상수 감독과 인연이 닿지 않았다 해도 유준상은 주목할 만한 배우였을 것이다. 그가 홍상수 영화 이외의 작품들에서 이룬 현재의 성취가 그 점을 말해준다. <나의 결혼원정기>에서 자타가 공인할 만한 유쾌하고 정감있는 양식적 인물을 살아냈고 <이끼>처럼 장르적 연기가 발동되어야 하는 순간에는 그에 걸맞게 넓은 스펙트럼을 오가며 활동력을 입증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에서는 세심한 감정을
[유준상] 행복하다, 나를 발견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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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역사학이라고?” 줄리아 로버츠가 웃음을 터뜨렸다. <로맨틱 크라운>의 홍보차 만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시 대학에 들어간다면 역사학을 전공하고 싶다는 톰 행크스의 말을 전해들은 다음의 이야기다. “톰에게 역사 공부가 더 필요할까? 그의 머리 뚜껑을 열면 역사책으로 가득 차 있을 텐데!” 그녀의 말이 맞다. 톰 행크스만큼 역사에 박학다식한 배우도 드물 것이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자. 주연을 맡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프로듀서로 참여한 <퍼시픽> <밴드 오브 브라더스>는 20세기 미국이 참전했던 가장 큰 전쟁들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그가 세운 제작사 플레이톤은 미국 대통령 존 애덤스와 존 F. 케네디의 암살사건을 드라마로 제작했다. 어디 그뿐인가. 톰 행크스는 <다빈치 코드>와 <천사와 악마>에도 출연했다. 종교기호학 교수 로버트 랭던이 세계 역사를 좌지우지했던 비밀조직의 음모를 파헤치는 바로 그
[톰 행크스] 좋은 사람의 성실한 승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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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알아보나.
=글쎄. 쥬얼리 멤버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고. 그라비아 모델 하은정씨와 헷갈려하기도 한다. 친구한테 “넌 언제 이런 화보 찍었냐”는 말을 들은 적 있다.
-<이웃집 좀비>에서 좀비였다. 이번엔 에일리언이다.
=감독한테 제발 사람 좀 만들어달라고 간청한다. 지금 촬영 중인 <영건 인 더 타임>에선 소원처럼 사람이 됐다. 물론 이번에도 죽는다.
-영화집단 키노망고스틴의 대표 배우다.
=오디션 보러 다닐 때 캐스팅 디렉터하는 오빠 소개로 단편 <크리스마스를 베다2>를 찍었고, 지금까지 같이 했다. 요령 피우지 않는 성실한 사람들이고, 나보다 더 나를 케어해주는 사람들이라 즐겁다.
-영국에서 공연예술학을 전공했다.
=연극영화과에 떨어진 뒤 잡지모델 알바하고 드라마 단역하다 연극이 멋져 보여서 대학로에 갔는데 울타리가 너무 높았다. 극단들이 대개 같은 대학 출신들로 짜여져 있으니까. 그 무렵에 세미 뮤지컬 <블러드 브러더
[who are you] 하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