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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룩거림도 아니다. 저벅거림도 아니다. 사진 촬영을 마친 장서희가 자리에서 일어나 고단한 발걸음을 옮기는데, 그 뒷모습을 담아낼 단어를 쉬이 정하지 못하겠다. 근육 없이 마른 다리가 겨우 하이힐을 들어 옮기듯 느린 속도로 움직였다. 그 영상을 멈추면 몸은 중력의 법칙에, 삶은 풍화작용에 내맡긴 여자의 실루엣이 드러날 것이었다. 이제 그녀의 나이 마흔, 반 접어 딱 스물이었다. 그 곱절의 세월을 생각하며 그녀의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의아한 기분이 든 건 고개를 들어 그녀의 얼굴을 마주하며 막 녹음기 버튼을 눌렀을 때다. 생의 그늘이 조금도 드리워져 있지 않은 낯빛이었다. 관리를 잘한 얼굴이라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굴곡에 닳은 사람이라면 아무리 꼭꼭 숨겨도 주름 사이에 남아 있어야 할 찌꺼기가 보이지 않았다. 드물게 깜빡이는 눈에서는 당장의 피곤도 감지되지 않았다. 아마도 그녀는 눈썹과 발가락, 상체와 하체, 머리와 꼬리를 따로 놀릴 줄 아는 배우일 것이다. 그 인상이 드라마의
[장서희] 독기 대신 여유 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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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 장혁의 아역 똘복을 맡았는데 드라마 <타짜>에서도 장혁의 아역이었다. 묘한 인연이다.
=장혁 형이랑 두 작품을 같이 해서 약간 친한데 <뿌리깊은 나무>에 형이 출연한다는 소리를 들어서 더 반가웠다. 하지만 서로 촬영 스케줄이 달라서 얼굴을 볼 수 없을 줄 알았다. 다행히 똘복에서 채윤으로 성장하는 장면이 있어서 장혁 형을 만날 수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건데도 형이 촬영장에서 액션 지도도 해주고 좋은 말을 많이 해줬다.
-데뷔작이 <새드무비>다. 9살에 처음 배우 활동을 시작했는데 연기는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
=연기하는 모습이 멋있고 재밌어 보였다. 그래서 막연히 엄마한테 연예인하고 싶다고 했다. 의외로 흔쾌히 승낙해주셔서 연기를 시작하게 된 건데 운이 좋아서 첫 시작부터 <새드무비>에서 좋은 선배들과 영화를 찍을 수 있었다.
-최근작인 <자이언트> <무사 백동수>
[who are you] 여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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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불행한 남자를 보라. 헨리 카빌은 할리우드에서 가장 운 나쁜 배우였다. 심지어 영국 영화지 <엠파이어>가 “할리우드에서 가장 불운한 배우”라고 명명했을 정도다. 그가 얼마나 운이 나쁜가 하면… 잠깐. 그가 운이 좋건 나쁘건 간에 대체 헨리 카빌이라는 배우가 어떤 작자냐고? 그는 11월10일 개봉하는 타셈 싱 감독의 그리스 신화 블록버스터 <신들의 전쟁>의 주연이자, 잭 스나이더가 촬영 중인 새로운 ‘슈퍼맨’ 영화 <맨 오브 스틸>에서 슈퍼맨 역할을 맡은 배우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더럽게 운이 좋은 신인배우 아니냐고? 물론 그렇다. 헨리 카빌은 지금 할리우드의 가장 뜨거운 햇감자다. 하지만 그가 얼마나 운이 좋은지 알기 위해서는 그가 얼마나 불운한 배우였는지를 먼저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만약 헨리 카빌의 팬이라면 손수건을 준비하시라.
영국 출신인 헨리 카빌은 케빈 레이놀스가 연출한 2002년작 <몬테 크리스토>로 데뷔했다. 에드몽
[헨리 카빌] 불운을 극복한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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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세가 또 한번 큰 웃음을 안겨준다. <커플즈>의 흥신소 직원 ‘복남’은 ‘친구의 친구를 사랑한’ 운명의 장난에 빠진 남자다. 흥신소 직원의 역할에 충실하면 할수록 그 여자의 비밀을 더 많이 알게 되니 그 또한 괴로운 노릇. 어쨌건 그는 <부당거래>에서 주양 변호사(류승범)를 ‘쌍스러운’ 사람으로 만든 기자, <쩨쩨한 로맨스>에서 친구의 창작의 비밀을 캐내려는 안 풀리는 만화가, 그리고 <퀵>의 퀵서비스 메신저 등으로 출연하며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시작했다. 물론 이미 양익준과 함께 독립영화계의 오랜 스타배우 중 하나다. 그런 존재감은 장편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에 목소리 연기로 참여한 것으로 이어진다. <돼지의 왕>에서 한참 세월이 흘러 오랜 비밀을 터트리고야 마는 남자 ‘경민’도 매력적인 캐릭터다. 공교롭게도 두 영화는 같은 날 개봉이다. 살다보니 이런 날도 생겼다. 그렇게 오정세는 우리에게 한발 더 가까이 다가왔
[오정세] ‘배우 오정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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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지원이 늦게 왔다. 그녀가 주연으로 출연한 <더 킥>의 관련 일정이 연일 줄을 잇는 중이고 개봉 직전까지는 매일 밤과 아침이 피곤하기만 할 것이니 비교적 오전에 잡힌 인터뷰 시각에 몇분 늦는 건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니 탓하자고 시작한 말이 아니다. 놀라워서다. 늦게 온 예지원은 뛰어다녔다. 날씨가 추워졌는데 바깥에서 찍어도 되겠냐는 사진기자의 조심스런 물음에는 무조건 예스. 어디서 찍나? 여긴가? 아님 저긴가? 이리로 뛰고 저리로 뛴다. 늦게 왔으니 미안하다는 표식인데, 바로 그 순간에 그녀만의 활기가 엿보인다. 전직 태권도 국가대표, 방콕에 사는 태권도 사범의 아내이자 아이들의 엄마, 뒤후리기의 일인자. 그런 에너지 넘치는 역할에 그녀가 얼마나 제격으로 보였을지 이해가 된다. 아침의 찬 공기를 가르며 날아다니는 예지원을 보자니 그녀가 올려 찬 하이킥의 품새가 역시나 궁금하다. ‘예지원의 하이킥을 이해하기 위한 여섯 가지 품새’를 모았다.
방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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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지원] 예지원의 하이킥을 이해하기 위한 여섯 가지 품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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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액션배우다.
=너무 좋다. 촬영 내내 푹 빠져 있었다. 10년 넘게 태권도를 해왔지만 드디어 카메라 안에서 펼치는 액션의 매력을 알게 됐다.
-태권도를 다양하게 응용했다.
=태권도와 춤을 결합한 액션에 자부심을 느낀다. 1년 동안 춤을 배운 보람이 있었다. 두 번째 오디션에서 춘 춤은 태권도에 무에타이까지 섞어 만든 거였다.
-태권도와 무에타이, 직접 몸으로 부딪혀보니 어떻게 다르던가.
=현지 스턴트맨들이 전?현직 무에타이 선수들이라 직접 가르쳐줬는데 뼈가 단단해야 한다며 두꺼운 나무로 정강이를 밀어주고 그랬다. 진짜 아팠다. (웃음) 그에 비하면 태권도는 좀더 부드럽다.
-오랜 운동으로 통증에 내성이 생겼다고 해도 부상에 대한 두려움은 어쩔 수 없었을 것 같다.
=워낙 겁이 없다. 앰뷸런스가 항상 대기 중이어서 안심되기도 했고.
-태양과 비슷한 성격인가.
=태양은 처음부터 내 실제 성격을 반영해 만든 캐릭터다. 한 가지, 아버지와의 관계는 실제와 다르다. 근데
[who are you] 나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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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춤> DVD를 가방에 싸가지고 다니면서라도 보여주고 싶다. 잘 만들어서가 아니라 이런 이야기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알리고 싶다.” 인터뷰 도중 송일곤 감독은 그간 자신이, 아니 저예산영화가 외면받아왔고 설 자리가 없었다고 말했다. <오직 그대만>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관객, ‘영화를 보는 사람들’의 정체를 찾기 위한 그의 시도이자 선택이다. 눈이 멀어가는 여자와 그 여자를 위해 헌신하는 한 남자. 운명적인 사고로 엮인 이 둘의 이야기는 어쩔 수 없이 우리가 열광했던 홍콩영화와 <러브 어페어> 같은 할리우드 멜로드라마, 그리고 한국적 신파드라마를 떠오르게 한다. 만남과 헤어짐, 역경과 슬픔 등 이 영화의 모든 것이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하지만 그게 <꽃섬>과 <깃> <마법사들>을 만든 송일곤 감독의 것이라면, 그건 어디까지나 의외다. 의외로 그는 다른 시도를 하지 않는 정공법으로 정공법의 영화에 다가선다.
[송일곤] “영화제보다 많은 사람들이 감동받는 영화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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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할리우드는 애타게 줄리아 로버츠를 찾고 있는가. 지금 할리우드에 부족한 게 하나 있다면 웃음 하나로 세상을 평정할 줄 아는 여배우다. 오드리 헵번으로부터 시작해 90년대 줄리아 로버츠와 멕 라이언이 완성한 ‘아메리칸 스위트하트’(American Sweetheart)의 계보를 이어줄 여배우 말이다. 니콜 키드먼과 샤를리즈 테론이 얼굴에 보형물을 붙이고 오스카를 휩쓸자 모든 할리우드 여배우들은 어떻게 하면 외모를 망가뜨려가며 성격파 배우가 되어 오스카를 받을 것인가에만 정신이 팔린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배우에게 꼭 오스카가 필요한가? 그냥 활짝 웃는 것만으로도 허술한 영화를 고전으로 만들 여배우는 대체 어디로 사라져버린 걸까.
그렇다면 지금 현재 아메리칸 스위트하트의 가장 강력한 후보는? 5년 전이었다면 린제이 로한이 가장 강력한 후보였겠지만 그녀는 이미 매컬리 컬킨과 같은 카테고리에 묶인 지 오래고, 지금으로서 딱 떠오르는 이름은 아만다 시프리드다. 아이러니하게도 린제이
[아만다 시프리드] 미국의 새로운 ‘국민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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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스타가 배우로 변신하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질문은 이제 좀 구식이다. 성공한 가수 출신 배우들의 리스트를 늘어놔보면 알 수 있다. <황금 팔을 가진 사나이>로 오스카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던 프랭크 시내트라는 너무 고전적인 대답이라고? 그렇다면 디바이자 오스카를 수상한 여배우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 셰어는 어떤가. 그것 또한 너무 고전적인 답변이라면 힙합 뮤지션에서 할리우드 거물이 된 윌 스미스를 한번 떠올려보시라. 팝스타 출신 배우들에 대한 편견은 이제 좀 거둘 때가 됐다. 제발 마돈나의 경우는 잊어버리자는 소리다.
지금 할리우드에서 윌 스미스의 뒤를 이을 만한 가수 출신 배우를 단 한명만 꼽는다면 그건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되어야만 할 것이다. 그는 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반 사이 인기의 절정을 누렸던 보이밴드 엔싱크(Nsync) 출신이다. 메인 보컬이자 얼굴마담이었던 팀버레이크는 10대 초반 엔싱크의 노래를 줄줄 외우던 소녀팬들이 대
[저스틴 팀버레이크] 21세기의 프랭크 시내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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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젊음을 누리고 싶은가. <가타카>의 앤드루 니콜이 감독한 SF스릴러 <인 타임>은 25살부터 노화를 멈추고 시간을 거래하는 게 가능해진 미래가 배경이다. 주인공 윌 살라스는 100년의 시간을 강탈하고 살인을 저질렀다는 죄로 도망길에 오르고, 부잣집 여자 실비아가 그의 인질로 붙잡혀 LA 시내를 함께 질주한다. 주연배우가 누구인지를 묻기 전에 먼저 이 질문부터 해보자. 만약 당신의 육체적 나이를 25살에 멈춰 세워 살아갈 수 있다면 누구의 모습으로 살고 싶은가? 할리우드의 대답은 저스틴 팀버레이크와 아만다 시프리드다.
[저스틴 팀버레이크, 아만다 시프리드] American Sweethe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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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진짜 기대하셔도 좋아요.” 이윤지의 한마디 한마디에는 여유와 자신감이 넘쳤다. 그동안 자기를 수식했던 말들이 ‘성실한’ 혹은 ‘똑똑한’이었다면 지금까지의 이윤지를 깨는 모습이 두렵지 않다는 얘기였다. 실제로 이윤지가 사극을 포함해 수많은 드라마를 거치며 보여줬던 밝고 건강한 ‘엄친딸’ 이미지는 <드림하이>의 매서운 무용선생 시경진 역할을 통해 큰 껍질을 벗었다. 그사이 연극 <프루프>를 통해 광기의 천재수학자 역할에도 도전했고, 엠넷의 페이크 다큐 프로그램 <UV신드롬>에도 출연해 능청스런 연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커플즈>에서는 옛 남자친구가 선물한 다이아 반지가 사실은 큐빅이었음을 뒤늦게 알게 되는 애처로운 여자이기도 하다. 물론 예능인으로서 특수대학원이 아닌 일반대학원에 다니는 부지런한 학생의 모습도 거기에 겹쳐진다. 그렇게 이윤지는 계속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조바심이 났다. 물론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이윤지] 허술하지만 귀엽게, 딱 나 자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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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작 단 한편으로, 헨리 호퍼는 지금 할리우드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기대주다. 리버 피닉스와 맷 데이먼을 이을 소년이라는 데에야 그를 주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구스 반 산트의 <레스트리스>에서 그는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고, 자신 역시 3개월간 임사상태에 빠졌던 경험을 가진 소년 에녹을 연기한다. 죽음에 가장 가까이 갔던 그는 그 트라우마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해 고통받는다. 구스 반 산트 영화의 청년들이 스케이트보드를 타거나 총을 쏘며 반항을 구체화하는 동안 그가 하는 일은 이렇다. 남의 장례식에 몰래 참석해 조문을 하거나 환상 속에 존재하는 가미카제 친구와 대화하기. 어느 날 우연히 말기암 선고를 받은 애너벨(미아 와시코스카)을 만나면서 꽁꽁 닫혀 있던 문을 열고 생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미아 와시코스카가 밝고 청량한 젊음의 색을 발현한다면 잔뜩 웅크리고 있는 헨리의 젊음은 연약해서 지켜줘야 할 것 같은 동그란 형체를 띠고 있다. 마치 애너벨이 그 작은 원에 채색
[who are you] 헨리 호퍼 Henry Hop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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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한 여자만을 위해 자신의 모든 걸 걸 수 있는 남자. 지금은 사라진 신파극의 전형성 안에서 소지섭은 자신의 남성성을 찾는다. 감정의 격랑, 표출하는 연기로 여성 팬들을 사로잡았던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차무혁을 떠올린다면 오산이다. 이미 그는 과거에서 한참 벗어나, 그만의 새로운 캐릭터를 정립해냈다. <오직 그대만>의 철민은 차곡차곡 쌓아올린 감정을 조심스레 내놓는, 그래서 더할 나위 없이 멋있는 연인이다.
캐릭터가 배우 본연의 모습과 접점을 가지는 수치를 계산한다면, 배우 소지섭은 가장 상위권에 속할 것이다. 정해진 시간에 정확히 스튜디오로 들어와 의상을 입고, 촬영을 하고, 그리고 인터뷰를 하기까지. 그가 보여준 모습은 한치 낭비가 없다. 허튼 농담도, 부연설명도 없다. 소지섭의 용어는 단호하고 빠르고 정확하다. <영화는 영화다>를 함께한 장훈 감독의 말에 따르자면 ‘말 없고 속 깊은 남자’, 곧 오랫동안 가까이 친구로 두고 싶은 남자
[소지섭] 속 깊은 순정마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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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호는 산악자전거 타는 게 취미라고 했다. “한계령을 넘어보는 게 꿈입니다. 안개가 자욱한 한계령 길을 혼자서 넘어가는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다. 고개를 푹 숙이고 페달을 밟고 있는 그 모습에 반해 그때부터 자전거를 타게 됐습니다.” 이런 상상을 해봤다. 김상호가 자전거를 타고 한계령을 넘어가고 있다. 그가 봤던 그 사람처럼 말이다. 누군가 지나가다가 ‘힘내라’고 말을 건다. 그러면 그는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상황 속에서도 특유의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네에~ 고맙습니다” 하고 다시 고개를 숙인다.
이 상상을 그의 연기 인생에 대입해보면 어떨까. 지금 배우 김상호는 묵묵히 페달을 밟고 있다. 극단 청우의 배우로서 <남자충동> <인류 최초의 키스>로 연기력을 인정받은 김상호는 실질적인 영화 데뷔작인 <범죄의 재구성>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그때 그사람들> <너는 내 운명> <타짜> <연애, 그 참을
[김상호] 자전거 탄 광대, 정상을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