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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해를 품은 달> <보고 싶다>로 여진구는 아역 배우에 대한 편견을 깨부수었다. 어설프게 어른 흉내를 내지도 않았고, 억지로 귀여움을 짜내지도 않았다. 여진구는 그저 연기에 빠진 소년이었다. 장준환 감독의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이하 <화이>)에선 더 큰 도전을 감행한다. 범죄자 집단에 의해 길러지는 소년 화이가 그가 맡은 몫. 여진구는 액션부터 감정까지 어느 것 하나 만만한 게 없었던 이번 영화에서 아이와 어른, 선과 악의 경계에 선 소년을 믿음직스럽게 연기한다. 9월의 어느 일요일, 무시무시한 소년을 만났다.
1년 반 만에 다시 만난 여진구는 미세하게 변해 있었다. 키는 5cm쯤 더 자랐고, 목소리는 바리톤에서 베이스로 조금 더 깊어졌다. 니트 사이로 근육의 윤곽도 드러났다. 열심히 몸을 가꾼 결과인가 싶었는데 “조금만 움직여도 근육이 잘 붙는 체질”이라 따로 운동을 하진 않는다고 했다. 아역 배우라 부르기는 망설여지고
[여진구] 이젠 더 이상 소년이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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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세게 나갔으면….” 9월6일 제7회 대단한 단편영화제(주최 KT&G 상상마당) 개막식 뒤풀이 자리에서 만난 남궁선 감독은 개막작으로 상영한 자신의 작품 <남자들>(2013)을 두고 아쉬움부터 털어놓았다. “인물들의 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복잡한 문제들을 더 보여줬으면 좋았을 것 같다. 하지만 남자나 여자 캐릭터를 나쁘게 묘사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남자들>은 이성 관계에서 벌어질 수 있는 매혹과 곤혹스러움을 경쾌하게 오가는 연애담이다. <남자들>을 비롯해 <세상의 끝>(2007), <최악의 친구들>(2009), <태평양>(2010), <아편굴 처녀가 들려준 이야기>(2011) 등 그가 만든 단편영화들이 올해 대단한 단편영화제 감독 특별전에서 상영됐다.
-그간 만든 단편 작업을 관객에게 선보이는 기분이 어떤가.
=상영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부끄러웠다. 멋
[flash on] 끝까지 밀어붙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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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 앨런으로부터 전염된 것일까. <블루 재스민>은 케이트 블란쳇이 가장 말을 많이 하는 영화로 기억될 것 같다. 우디 앨런 개인으로서도 <블루 재스민>은 <스쿠프>(2006)의 영국,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2008)의 스페인, <미드나잇 인 파리>(2011)의 프랑스, <로마 위드 러브> (2012)의 이탈리아 등 기나긴 유럽 투어를 끝낸 작품이기도 하다. 그렇게 <블루 재스민>은 두 사람 모두에게 어딘가 특별한 영화처럼 느껴진다. 더군다나 <블루 재스민>은 정말 오랜만의 ‘원톱’ 주인공이 등장하는 우디 앨런 영화라 할 수 있다. 유럽 투어 당시 우디 앨런 영화의 여러 인물들은 각자의 서로 다른 에피소드를 가지고 뭔가 ‘원격 조종’ 당하는 느낌이 강했다면, <블루 재스민>은 심지어 우디 앨런이 그녀에게 전적으로 의지한 것 같은 느낌마저 준다. 그렇게 케이트 블란쳇은 <블루 재
[케이트 블란쳇] 다이내믹 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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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ography
<관상>(2013)
<불꽃처럼 나비처럼>(2008)
<궁녀>(2007)
<왕의 남자>(2005)
<효자동 이발사>(2004)
<관상>은 개성 강한 배우들의 격전장이다. 속세를 떠나 있다 한양으로 가는 관상가 내경(송강호)과 처남 팽헌(조정석), 옷매무새만으로 내경을 한양으로 유혹한 것이나 다름없는 기생 연홍(김혜수), 그리고 주도권을 쥐고 대립하는 김종서(백윤식)와 수양대군(이정재)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개성은 ‘관상’과 ‘의상’으로 드러난다. <왕의 남자>(2005)를 시작으로 <궁녀>(2007), <불꽃처럼 나비처럼>(2008) 등 역시 개성 강한 사극들을 작업해왔던 심현섭 의상실장은 캐릭터들 제각각의 매력을 조화롭게 조율한 장본인 중 하나다. “김혜수나 이정재는 실제로도 최고의 패셔니스타들이어서 자기가 입을 의상에 대한 눈높이도 상당한 배우들이다. 6개월 내
[STAFF 37.5] 김혜수의 눈높이를 맞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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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프로젝트>가 좌초 위기에 빠졌다. 개봉 이틀 만인 9월6일 멀티플렉스 체인인 메가박스가 상영 중단 통보를 해왔다. 심의를 통과한 영화가 극장쪽의 강제적 요구로 내려진 초유의 사태다. 9월9일 오전, 영화계 각 단체들은 상영 중단 사태의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고, 영화인대책위원회도 발족했다. 기자회견 다음날인 10일 오전, 제작사인 아우라픽쳐스 사무실에서 <천안함 프로젝트>의 제작자 정지영 감독과 연출을 한 백승우 감독을 만났다. 그 시각, 메가박스는 상영 중단을 번복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고, 아이러니하게도 상영 중단에 대한 관심에 힘입은 영화는 다양성영화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9월12일 현재 영화인진상규명위원회는 메가박스와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에 면담을 요청한 상태다. <천안함 프로젝트>는 누적관객수 7361명으로 현재 7개 극장에서 상영 중이며 예술영화관으로 상영관 확대를 모색 중이다. 침몰 위기에 빠
[정지영, 백승우] 금기천국, 후진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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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네가 웃겨야 돼. 네가 웃겨야 영화가 살아.” 설경구가 문소리에게 해줬다는 이 얘기는 정확한 예언이 됐다. <스파이>는 첩보영화의 외피를 두른 코미디영화다. 그리고 그 웃음폭탄의 8할은 문소리가 투척한다. <스파이>에서 문소리는 자신의 남편이 능력 좋은 스파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출장이 잦은 남편에게 쉼 없이 잔소리를 늘어 놓는 안영희를 연기한다. 남편 철수가 국가의 중차대한 일을 처리하려 할 때마다 공교롭게도 자꾸만 철수의 레이더망에 잡히며 그의 집중을 흩뜨리는 영희는 자칫 민폐 캐릭터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영희는 문소리라는 배우를 만나 귀여움을 입는다. 고음역대에서 쉽게 갈라지는 목소리를 지닌 문소리가 애교를 섞지 않은 담백한 부산 사투리로 철수를 닦달하는 모습도 밉지 않다. 또한 그 목소리는 신기하게도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으며 영화 전체의 분위기마저 띄운다.
그런데 문소리가 이렇게 코미디 연기를 잘하는 배우였던가. 아니, 코미디
[문소리] 제대로 웃겨주신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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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일은 안 하면 된다. 안 해도 산다.” 무리없는 삶을 지향하는 설경구와 달리 <스파이>의 철수의 현실은 무리 막급이다. “월급쟁이 스파이” 철수에게 제임스 본드 같은 폼생폼사 스파이가 웬 말. 주어진 임무 완수하랴, 잘생긴 이중 스파이로부터 마누라 사수하랴. 그에게는 숨 돌릴 틈도 사치다. “피로도가 아주 높은 캐릭터다. 한시름 놓으려 하면 마누라가 딴 남자한테 한눈팔고 있고, 한시름 놓으려 하면 마누라가 납치됐다 그러고. 아무것도 모르는 영희(문소리)는 잘생긴 라이언(대니얼 헤니)이랑 연애도 하고 피로도 풀고 마지막에는 자기가 스파이인 줄 알고 스릴도 만끽하는데, 그런 상황을 빤히 다 보고 있는 철수 입장에서는 진짜 똥줄 탄다니까.”
팍팍한 철수의 삶에 숨통을 틔워주는 게 20년차 배우 설경구의 여유만만 생활연기다. 헤니의 라이언이 ‘아줌마’들의 환상을 담당한다면 그의 철수는 아줌마들의 현실을 보전한다. “<박하사탕>에서도 방금 전까지 물고문, 전
[설경구] 신경쇠약 직전의 스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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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따로따로 해? 무슨 비밀 얘기라도 하려고?” 한발 빨리 인터뷰를 시작한 설경구를 찾아와 문소리가 톡 쏘아붙인다. “어, 비밀이야. 여기 커튼 칠 거야.” 문소리의 뒷모습에 설경구도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응수한다. 한수 한수 주고받는 모습에서 15년차 커플의 진정한 내공이 절로 묻어난다. <박하사탕> <오아시스> 이후 11년 만에 본격 권태기 부부로 재결합한 설경구와 문소리, 그들다운 모습이다. “첩보영화의 탈을 쓴 코미디영화.” <스파이>에서 설경구는 “마누라 살리기”에 정신이 없는 “월급쟁이 스파이” 철수로, 문소리는 미워도 다시 한번 “남편 살리기”에 얼떨결에 도전하게 되는 초보 스파이 영희로 분한다. 아직 여름이 한창이던 8월 중순 마포구 서교동의 한 스튜디오에서, 그들만의 스파이 부부로 살아남는 법에 대해 들었다.
[스파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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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예술과 구원에 대한 영화네.” 지난해 <러시안 소설>을 미리 본 부산국제영화제 관계자들은 신연식 감독에게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로맨스 장르의 외피를 두른 상업영화 <페어러브>를 제외하면, 신연식 감독의 작품(<피아노 레슨> <좋은 배우>)은 대개 예술 장르의 테두리 안에 위치한 사람들을 조명하며 삶과 예술에 대한 성찰을 풀어놓곤 했다. <러시안 소설> 역시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으나 27년 뒤 위대한 작가가 되어버린 한 소설가의 삶을 통해 예술의 본질을 탐구하는 영화다. “안 그런 시나리오도 많이 가지고 있는데, 여태까지 나온 영화들이 본의 아니게 영화 때려칠 생각을 하고 만든 작품이라 그런가보다. (웃음)” 그러나 막다른 골목에서 예상치 못한 힘을 발휘하는 것이 신연식 감독의 저력인 것 같다. 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뒤 신 감독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자신의 스타일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여 완성한 <러시안 소설>은
[신연식] 눈 딱 감고 못된 짓을 해야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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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에 이어 <슈퍼배드2>에서도 태연과 서현이 마고와 에디스의 목소리 연기를 맡았다. 잔소리를 늘어놓으며 동생들을 살뜰히 챙기던 맏이 마고는 어느덧 첫사랑에 가슴 아파하는 사춘기를 맞이했고, 에디스는 온갖 운동과 무술을 섭렵한 말괄량이로 자라 있었다. 태연과 서현은 한마디를 물으면 서로 주거니받거니하며 열 마디 수다보따리를 풀어놓기 일쑤였다. 시간이 지났어도 왈가닥인 슈퍼배드 자매들처럼, 3년 만에 <씨네21> 지면으로 다시 만난 태연과 서현도 여전히 해맑고 천진한 소녀들이었다.
-1편에 이어 2편에도 참여한다.
=서현_‘다음 시리즈도 우리가 해야지!’ 생각했는데 다시 불러주셔서 정말 좋았다. 에디스는 더욱 개구쟁이가 됐더라.
태연_캐릭터는 변함없는데 목소리가 달라지면 관객이 싫어하지 않겠나. 마고는 사랑에도 빠지고, 더 성숙해졌다.
-마고의 첫사랑인 안토니오 같은 남자는 어떤가.
=태연_내 이상형과는 좀 먼데. (웃음) 덜 느끼했으면 좋겠다. 안토니오는
[flash on] 숨어 있는 목소리도 찾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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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주식회사>(2001)의 10여년 만의 속편이자 프리퀄인 <몬스터 대학교>의 댄 스캔론 감독과 코리 라이 프로듀서가 한국을 찾았다. <몬스터 주식회사>가 만들어지던 해 픽사에 입사해 스토리보드 아티스트로 일하기 시작한 댄 스캔론은 <카>(2006) 등에 참여해 실력을 뽐낸 픽사의 기대주 중 하나다. 1993년 픽사의 광고 프로듀서로 입사한 코리 라이는 애니메이션 파트로 자리를 옮긴 뒤 <토이 스토리2>(1999), <인크레더블>(2004) 등에 부프로듀서로 참여하며 픽사의 현재를 만든 숨은 실세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니까 <몬스터 대학교>는 두 사람 모두 감독과 프로듀서로서 애타게 기다려온 입봉작이다.
-주인공 마이크가 꿈에 그리던 몬스터 대학교에 입학하던 순간은, 당신이 픽사에 입사하던 그때와 같은 심정이 아닐까.
=댄 스캔론_2001년 픽사에 첫 출근하던 날이 바로 <몬스터 주식회사>
[flash on] 실패의 순간에 선 두 친구의 성장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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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포터> 시리즈의 일등공신인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이 <퍼시 잭슨과 번개도둑>(2010)을 <해리 포터>만큼 성공시키지 못한 건 사실이다(각축전을 뚫고 ‘넥스트 해리 포터’의 영광을 가로챈 건 제니퍼 로렌스를 발굴한 <헝거게임> 시리즈였다). 하지만 적어도 12살 해리 포터의 모험 대신, 퍼시 잭슨을 17살로 설정한 건 결과적으로 그 역을 연기한 로건 레먼에겐 참 다행이다 싶다. 굳이 관객에게 자신의 성장기를 고스란히 노출시키면서 일거수일투족 간섭을 받아야 했던 대니얼 래드클래프와 달리, 그는 이미 제법 큰 소년으로 출발했고, 그 기세를 몰아 속편 <퍼시 잭슨과 괴물의 바다>(2013)까지 출연했으니 말이다. 제작사인 폭스로서도 좀 뜸을 들인 속편 결정이었는지라, 레먼 역시 갑작스런 결정에 적응해야 했다. “속편 제작은 전혀 기대를 못했다. 1편 이후 시간도 많이 지났고. 제안이 오자마자 바로 오케이를 했는데, 워낙 빨리 진행
[로건 레먼] 도약보다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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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ography
<국제시장>(2014), <스파이>(2013), <댄싱퀸>(2012), <퀵>(2011), <거북이 달린다>(2009), <백야행: 하얀 어둠 속을 걷다>(2009)
고층 호텔의 안과 밖, 그리고 헬리콥터에 이르기까지 <스파이>는 난이도 높은 ‘현대물’ 액션 연출의 첨단을 보여준다. 촬영 도중 감독과 일부 스탭이 바뀌는 우여곡절 속에서 <스파이>의 중심을 잡았던 핵심인물 중 하나로 최동헌 무술감독을 꼽는 이들도 많다. 철수(설경구)가 13층 높이 건물의 난간에 매달릴 때 설경구 대신 와이어를 차고 매달리기도 했다. “오랜만에 높이 매달려보니까 다리가 후들거리더라. (웃음) 그래도 여전히 뭔가 해냈을 때, 배우나 스탭들이 내지르는 환호만큼 뿌듯한 게 없다. 예나 지금이나 그런 맛에 부딪히고 떨어지고 몸에 불을 지른다”는 게 그의 얘기다.
일산에 자리한 ‘트리플A’(All
[STAFF 37.5] 얼굴 없는 사람들 아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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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일들이 반복되면서 또 어떤 차이를 가지는 이 인생이라는 게 뭔지는 끝내 알 수 없겠지만, 제 손으로 두 그림을 붙여놓고 보고 싶었습니다.”
<우리 선희>의 문수(이선균)를 보며 불현듯 <옥희의 영화>의 마지막 대사가 생각났다. 파리의 북한 유학생으로 분했던 <밤과낮>부터 영화과 대학원생으로 출연하는 <우리 선희>까지, 홍상수 감독의 다섯 영화에 출연한 이선균의 비슷하면서도 다른 모습을 따로 떼어 붙여놓고 보고 싶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들 영화에서 이선균은 대개 지식인이었으며 어떤 여인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의 모습은 비슷한 역할을 맡은 적이 있는 김태우, 김상경 등의 배우들과는 또 다르다. <옥희의 영화> 속 한 장면. 구애를 퍼붓는 진구(이선균)에게 옥희(정유미)는 “난 네가 착해서 좋아. 믿을 수가 있어”라고 말하는데, 그 말은 이선균이 진구를 연기하기 때문에 비로소 진심처럼 들린다. 젖먹
[이선균] 때때로 진심 때때로 의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