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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인>을 보는 동안 희한한 동시상영을 관람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송강호가 연기한 송우석 변호사가 단무지를 가져오지 않은 중국집 배달 소년에게 “까묵었으면 까묵었다고 이야기해라” 하며 나무젓가락을 가를 때, 돈 주고 사람 써놓고도 누구보다 많은 이삿짐을 나를 때, 그리고 법정에서 “인정해라, 인정하란 말이다!” 하고 고문경관을 향해 품위고 나발이고 고성을 내지를 때 관객의 뇌리에는 ‘노무현’이라는 또 한편의 필름이 돌아간다. 분리하기 불가능한 두 ‘영화’의 중첩은 관객을 울리는 한편 <변호인>에 대한 영화적 판단을 망설이게 한다. 역사가 세워놓은 이중의 스크린. 그것은 1996년 데뷔 이래 한국영화의 등줄기를 고스란히 등반해온 송강호라는 배우에게도 전에 없던 여행이었을 것이다. 아프고 어두운 사건을 다루지만 <변호인>은 역설적으로 인간 노무현이 가장 반짝였던 시절의 재연이다. 뒷날 “내 이름은 더럽혀졌다. 이제 노무현은 정의나 진보와 같은 아름다
[송강호] “기념할 만한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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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라 했던가. 이 문장대로라면 세계 최초로 스스로 동성애자임을 밝히고 성공회 서품을 받은 진 로빈슨 주교에게 누가 함부로 돌을 던질 수 있을까. 그러나 현실은 하느님과 파트너를 향한 그의 사랑을 죄라 말하고, 살해 위협은 그의 일상이 된다. 그런 주교를 4년간 카메라에 담아온 이가 있다. 지난해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한 다큐멘터리 <로빈슨 주교의 두 가지 사랑>의 매키 알스톤 감독이다. 성적 소수자, 사회적 약자에 대한 그의 시선을 두고 국내외를 막론하고 지지와 비난이 엇갈린다. 사랑과 사람에 대해서라면 할 말이 많아 보이는 그에게 영화의 국내 개봉에 맞춰 질문을 건네봤다, 세상의 편견과 편견의 저편에 대해서.
-<The Truth Shall Set You Free>부터 <로빈슨 주교의 두 가지 사랑>(이하 <로빈슨>)까지 오랫동안 로빈슨 주교를 카메라에 담아왔다.
=사회 평등을 위해 일한
[flash on] 말하지 않으면 바뀌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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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 코미디’를 가장한 ‘로맨틱 성장영화’라고 할까. <노팅힐> <러브 액츄얼리>의 리처드 커티스 감독이 워킹타이틀과 오랜만에 작업한 신작 <어바웃 타임>이 12월5일 개봉했다. 지난 8월8일, 런던의 만다린 호텔에서는 영국 내 영화 개봉에 맞춰 <어바웃 타임>의 기자 간담회가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리처드 커티스 감독을 비롯해 레이첼 맥애덤스와 빌 나이가 참석했다. 유럽 전역에서 모인 기자들의 상당수는 행사 하루 전 관람한 영화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았다. 특히 커티스 감독이 인터뷰 장소에 입장했을 때에는 참석했던 기자들이 모두 입을 모아 “영화를 잘 봤다”는 인사를 전하는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커티스 감독은 간담회에 참여한 모든 기자들과 차례차례 악수를 하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감독 은퇴 소식을 들은 뒤 이 작품을 감상하게 되어서인지 영화가 어쩐지 더 당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럴
[flash on] 패밀리와 로맨스의 변증법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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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영화
2014 <그래스 스테인즈> <다크 플레이시즈> <더 포저>
2013 <조>
2012 <머드>
2011 <트리 오브 라이프>
“누구도 그가 ‘연기’를 하고 있다고 여기지 않았다.” <머드>를 같이 찍으며 타이 셰리던을 지켜본 매튜 매커너헤이의 말이다. “자연스럽다”는 평가는 아역 배우들이 흔히 듣는 상찬이다. 하지만 흔한 아역 배우들은 스펀지처럼 ‘연기’를 체득해 상업영화로 이주한다. 셰리던은 달랐다. 텍사스주와 오클라호마주에 사는 소년 1만명 가운데 테렌스 맬릭 감독의 최종 선택을 받아 <트리 오브 라이프>로 데뷔한 10살짜리는 자연스러운 배우라기보다 자연 그대로의 배우였다. 주변 환경에 유기적으로 조응하는 재능을 가졌고, 진짜에 가까운 가짜가 아니라 진짜 그대로의 감정으로 보는 사람을 움직였다. “마지막에 타이가 흘리는 눈물은 매번 나를 감동시킨다. 그건 진짜였다.” 그
[who are you] 타이 셰리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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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너무 예뻐도 문제야. 얼굴 믿고 유머나 인격을 안 가꾸거든.” <어바웃 타임>에서 결혼을 약속한 남자친구 팀(돔놀 글리슨)의 고향집을 찾아간 메리(레이첼 맥애덤스)는 미래의 시어머니(린제이 던컨)로부터 지나치게 솔직한 합격점을 받는다(참고로 시어머니는 남자인 앤디 워홀을 닮았다는 평가를 받는 비주얼의 소유자다). 당연히 메리는 그런 얘기가 전혀 기분 나쁘지 않다. 얼핏 냉소적으로 보이는 어머니로부터 끌어낸 최고의 칭찬임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이는 어쩌면 지금껏 화려한 외모보다는 밝고 명랑한 매력을 뽐내온, 이제는 어느덧 30대 중반(1978년생)을 넘어서고 있는 레이첼 맥애덤스의 건전하고 건강한 이미지를 꿰뚫고 있는 평가인지도 모르겠다.
리처드 커티스 감독은 “레이첼은 출연한 영화마다 항상 충만한 사랑과 편안한 감정으로 관객을 ‘녹아내리게’ 만드는 배우”라고 했고, 워킹타이틀의 공동대표이자 제작자인 팀 베번은 “언제나 옆집 소녀 같은 멋진 느낌을 준다. 아름다
[레이첼 맥애덤스] 언제나 충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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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ography
미술감독
<열한시>(2013)
<스카우트>(2007)
아트디렉터
<소년은 울지 않는다>(2007)
미술팀
<웰컴 투 동막골>(2005)
<태극기 휘날리며>(2004)
<라이터를 켜라>(2002)
<서프라이즈>(2002)
영화는 태생적으로 시각의 예술이다. 보는 것이 가장 우선시되는 매체다. 활자로 되어 있는 시나리오를 영상화하는 것은 감독의 일이지만 그보다 앞서 감독의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들에 상상력과 기술력을 더해 시각화하는 작업이 바로 미술감독이 맡은 일이다. “풀어서 말하자면 영화를 찍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사람이다.” 이민아 미술감독은 자신이 맡은 역할과 함께 쉽게 혼동할 수 있는 호칭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크레딧에 올라가는 미술감독의 정식 명칭은 프로덕션 디자이너다. 프로덕션 디자이너를 도와 디자인을 물리적인 피사체로 구현하는 사람을 아트디렉터라고 부르는데 미술
[STAFF 37.5] 존재하지 않는 시공간 창조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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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제가 머리도 못 감았다고 했죠? 오늘은 목욕탕 갔다 왔어요!” 지난 11월14일, <위 캔 두 댓!> 더빙 현장에서 만났던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이은경 대표는 녹음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느라 제대로 씻지도 못했다고 하소연했다. 말이 하소연이지 오히려 그는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더빙 작업이 즐거워 어쩔 줄 모르는 것 같았다. 11월26일 인터뷰를 위해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사무실에서 다시 만난 이은경 대표는 시원스러운 입매에 특유의 미소를 걸고 기자를 맞이했다. 비좁지만 이곳저곳이 훤하게 뚫려 고개만 돌려도 서로의 눈이 마주치는 사무실에선 서글서글한 인상의 직원들이 분주하게, 하지만 환하게 웃으며 일하고 있었다. 영화제를 앞두고 모두 조금씩 들뜬 듯했다. 개막을 앞두고 동분서주하는 이은경 대표의 시간을 잠시 빌렸다.
-기사가 나갈 때쯤이면 영화제는 이미 끝났겠다.
=장애가 있어 평소에 영화를 잘 못 보시는 분들만 오는 건 의미가 없는 것 같고, 비장애인들과의 벽을
[이은경] 부탁하지 않고 당당하게 말하는 연습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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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 체이싱, 총격 신, 수중 낙하 신, 익스트림 암벽 액션, 북한군의 주체격술까지. 이전까지 없었던 터프한 남성의 세계가 공유의 카테고리에 진입했다. <용의자>는 한때 북한의 특수정예요원이었다가 지금은 가족의 복수를 위해 살아가는 귀순자이자, 우연히 국가기밀을 손에 넣고 쫓기는 신세가 된 지동철의 진퇴양난을 그린 액션 대작이다. 맷 데이먼과 대니얼 크레이그, 그리고 톰 크루즈가 연상되지만, 공유가 찾아낸 캐릭터에는 또 다른 사연이 존재한다. <도가니> 이후 2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공유를 만났다.
원신연 감독이 공유를 설득한 비결이 사뭇 궁금하다. <용의자>를 정통 액션영화로 분류한다면, 사실 공유는 그러한 범주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배우다. 그가 액션 장르에도 능할 거라는 믿음 혹은 기대가 없어서는 아니다. 그보다 멜로 장르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배우이기 때문이다. 애초 공유의 행적이 남달랐다. 공유는 제대한 남자 배우들이 흔히 택할 법한 ‘강
[공유] 허기에 찬 재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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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이 다문화가정 아이들과 함께하는 ‘안녕?! 오케스트라’의 음악 선생님이 되어 나타났다. 군기 잡는 호랑이 선생님은 가라. 어떻게 된 게 아이들보다 더 낯을 가리고 아이들의 장난에 어쩔 줄 몰라 한다. 그런 아이들에게 ‘조용히 해’, ‘집중해’라는 말 대신, 조용히 다잡는 비올라 연주로 모든 것을 말해주는 선생님. 옆에서 지켜본 사람들은 그를 ‘천사’라고 말한다. ‘안녕?! 오케스트라’는 지난해 3월 결성된 어린이 오케스트라단이다. 지난해 9월부터 총 4회에 걸쳐 이들의 이야기가 동명의 TV다큐멘터리로 방영된 바 있으며, 이를 재구성해 편집한 내용이 다큐멘터리영화로 탄생했다. 리처드 용재 오닐에게서 ‘안녕?! 오케스트라’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들어봤다.
-TV다큐멘터리 방영 이후 1년여가 지났다. 아이들의 근황은.
=아이들 대부분이 다큐멘터리 방영 뒤에도 잘 지내고 있다. 이 프로젝트 자체가 가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어 스스로도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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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ash on] 아이들과 항상 웃고 즐기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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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영화
2013 <영 앤 뷰티풀>
2012 <밤과 낮>
2011 <내 몫의 파이>
미스터리야말로 관객과 영화를 잇는 다리라고, 언젠가 프랑수아 오종은 말한 적이 있다. 명확하게 규정할 수 없는 사건과 인물을 통해 인간의 숨겨진 욕망을 들여다보길 좋아하는 그의 취향을 고려했을 때, 미스터리한 기운을 내뿜는 일련의 여배우들이 오종의 필모그래피를 함께했다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니다. 뤼디빈 사니에르, 발레리아 브루니 테데스키, 그리고 샬롯 램플링. 오종이 사랑하는 이 신비한 여인들의 리스트에 마린 바크스라는 이름이 새롭게 추가됐다. 프랑수아 오종의 신작 <영 앤 뷰티풀>에서 마린 바크스는 비밀스럽게 매춘부로 활동하는 사춘기 소녀 이자벨을 연기한다. 모델로 활동한 경험이 있는 바크스는 “내 몸을 상품화하는 데 익숙하기 때문에” 10대 매춘부를 연기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하지만 오종이 그녀를 선택한 데에는 그 이상의 이유가 있는
[who are you] 마린 바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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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잘생긴 남자가 누군지 모르는구나.” 때는 1996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브래드 피트를 놓고 한참 의미 없는 격론을 벌일 때 누군가가 불쑥 내뱉었다. <타임 투 킬>이란 영화에 나오는 배우인데 정말 잘생겼다는 말에 모두 모여 함께 사진을 찾아본 사람들은 모두 그가 잘생겼다는 것에 흔쾌히 동의했다. 그러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토론을 이어나갔다. 레오와 피트 중 누가 잘생겼는지.
이른바 전형적인 얼굴이 있다. 사람 얼굴만큼 복잡다단한 것도 없지만 사람 얼굴만큼 단순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도 없다. 매튜 매커너헤이는 누가 봐도 전형적으로 ‘잘생긴’ 얼굴이다. 훤칠한 이마, 오똑한 콧날, 가지런한 치아를 드러내는 시원한 미소, 시리도록 맑고 푸른 눈, 자연스럽게 내려오는 금발 곱슬머리까지. 왠지 캘리포니아 해변에서 서핑보드를 들고 뛰어야만 할 것 같은 건강미 넘치는 미남자, 굳이 분류하자면 섹시 가이에 속하는 얼굴이다.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외모가
[매튜 매커너헤이] 속 깊은 섹시 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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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1월21일 <올드보이>가 개봉했다. 복수, 폭력 그리고 근친상간이라는 문제적 딱지를 붙인 이 영화는 대한민국 스릴러의 새로운 표상이 되었으며, 300만명이 넘는 관객의 호응을 얻으며 ‘박찬욱 팬덤’을 형성했다. 그로부터 정확히 10년 뒤 <올드보이>가 재개봉한다(마침 한주 뒤인 11월27일에는 미국에서 스파이크 리 감독이 연출한 리메이크 버전도 개봉한다). 이번에 재개봉하는 버전은 DCP(Digital Cinema Package)를 거친, 보다 감독의 의도에 가까운 영화다. 박찬욱 감독은 이번 작업에 대해 “박력 있는 남성의 세계를 그린 지 꽤 오래됐는데 기분 전환이 되더라”라고 전하면서 기회가 있다면 <공동경비구역 JSA>(2000)나 <복수는 나의 것>(2002)도 디지털 리마스터링 작업을 하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재개봉 버전은 오리지널과 어떤 차이가 있나.
=사운드는 못 만졌고 이미지만 손을 댔다. 기술적 한계
[박찬욱] 제작자의 믿음, 관객의 호응이 <올드보이>를 가능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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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지 않는 아내를 기다리는 남편. “빨리 (아내를 범죄로 이끈) 그놈을 잡아야 우리 마누라의 혐의가 없어지잖아요. 그 자식이 꼬드겨서 순진한 마누라가 덤터기를 썼는데 아 씨발, 검찰이 그런 것도 몰라!”라고 윽박지르던 종배(고수)는 “여기가 너희 집 안방이야? 마약 나르다 걸린 마누라 데리고 사는 주제에 어디 공공기관에 와서 행패질이야!”라는 수사관의 반격에 이내 후회막급이라는 표정으로 목소리가 잦아든다. 당장이라도 경찰서를 뒤집어엎을 것처럼 난동을 부리던 그는 “죄송합니다. 오해 마시고요, 제가 하도 답답해서요. 정말 죄송합니다. 네, 기다리겠습니다”라며 90도로 고개를 푹 꺾는다. 참 지질하다. 머나먼 타국의 아내와 힘들게 첫 통화를 하게 됐을 때도 ‘괜찮아?’라는 따스한 말 대신 “그러니까 왜 나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간 거야?”라고 따져 묻기부터 한다. 자신이 친구 보증을 잘못 서서 가세가 기울어 아내가 그런 위험천만한 선택을 했건만 아내 탓만 한다. 역시 지질하다. 이제껏
[고수] 고통을 삼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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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이라 부르는 소리가 그리 끔찍하게 들릴 줄은 몰랐다. 비행기 한번 타본 적 없고 외국어 한마디 못하는 정연(전도연)은 졸지에 프랑스 공항에서 미아가 된다. “마담! 마담!” 그렇게 정연은 (수사관의 표현을 빌리자면) ‘마약청정지역’인 대한민국에 마약을 운반하다 걸린 ‘마약 아줌마’가 된다. 하지만 전도연이 생각하기에 그 마약 아줌마는 그저 평범한 한국 사람이다. “남자일 수도, 여자일 수도 있는 그저 우리 ‘이웃’의 모습이다. 정연을 연기하며 특정한 누군가의 모습을 떠올리진 않았다. <집으로 가는 길>은 지난 몇년간 읽어본 중에 가장 흡입력 있는 시나리오였다. 나였어도 그런 선택을 할지도 모를, 평범한 그 누군가의 이야기. ‘내가 이렇게 쉽게 출연 결정을 내려도 되나? 좀더 고민해봐야 하는 거 아냐?(웃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망설임 없이 선택한 영화였다.”
실제 현실의 전도연도 한 아이의 엄마다. 그래서인지 유독 기억에 남는 장면은 아이와 함께 문방구에 가
[전도연] 아이를 그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