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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한국영화감독조합 사단법인 조합장으로 만났던 이준익 감독은 복귀작이자 아동 성폭행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소원>에 대해 말을 아끼며 “뚜벅뚜벅 걸어서 마지막 장면까지 가봐야겠다”고 전했다. 그 길이 어떤 모양일지, 그 길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무언가를 감추고 싶어서가 아니라 자신도 한치 앞을 모르겠으니 직접 가본 뒤에 이야기하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 같았다. 그의 전공분야인 질펀한 시대극도, 소재만 보고 예상할 수 있는 스릴러나 법정드라마도 아닐 것이라는 귀띔만 했다. 그리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 10월 초, 그가 따뜻한 공기를 한껏 머금은 영화 <소원>을 들고 돌아왔다. 그를 몇번이라도 만나본 사람이라면, 상처입은 소녀의 마음이 치유되는 과정에 집중한 이 영화의 온기가 이준익이라는 사람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쉽게 짐작할 것이다. 그를 만나러 길을 나선 월요일 오후, 주말 동안 흐렸다가 갠 날씨도 더없이 푸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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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익] 꿈의 공장에서 빚어낸 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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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번 국내 영화산업의 기술적 도약을 꿈꾸어볼 수 있게 됐다. 오는 10월25일 개원을 앞둔 대전액션영상센터에서 말이다. 이효정 대전문화산업진흥원장이 “국내 영상산업의 첨단 클러스터”로 청사진을 그려 설계한 대전액션영상센터는 액션스쿨, 모션캡처 촬영 스튜디오, 수중촬영장, 액션연구실 등 액션연출에 필요한 각종 시설을 고루 갖췄다. 대전액션스쿨은 정두홍 무술감독이 총지휘로 나서고, 6개월 과정의 수강료는 무료이며, 모집은 10월16일까지다. “청운의 꿈을 품은 차기 액션배우들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고 말하며 이효정 원장은 사람 좋게 웃었다.
-사단법인 한국방송연기자협회의 이사장을 거쳐 2011년엔 대전문화산업진흥원장에 취임했다.
=연출을 전공해 배우로, 제작자로 34년의 삶을 꾸려왔다. 마음 한켠에선 늘 제작 시스템의 선진화를 꿈꿨다. 어떤 산업이 영속성을 갖기 위해서는 전근대적인 관행들을 개선해 나가야 한다. 업계에 있는 사람들이 현실인식을 정확히 하고, 우리가 가진 체력으로
[flash on] 액션배우 지망생들은 여기여기 모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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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크 질렌홀이 연기한 <프리즈너스>의 로키 형사는 화를 참는 인물이다. 영화는 로키의 캐릭터에 대해 많은 설명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가 소년원 출신이라는 것과 목까지 올라온 커다란 문신을 통해 그리 평탄하지 않은 인생을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다. 그 나머지를 채우는 것은 오로지 제이크 질렌홀의 몫. 그는 그 여백을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는 눈빛으로 채운다. 상대역인 휴 잭맨이 딸을 잃은 아버지 역을 맡아 시종일관 강렬한 분노를 발산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두 배우가 좁은 차 안에 앉아 거칠게 서로의 책임을 따져 묻는 장면을 생각해보자. 술에 취한 채 욕을 섞어가며 무섭게 소리를 지르는 휴 잭맨과 달리 제이크 질렌홀은 계속해서 화를 삼킨다. 사건의 피해자가 분노할 때 아직 범인을 잡지 못한 형사가 할 수 있는 일은 기껏해야 음주운전을 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뿐이다. 마음에 들지 않던 상대와 마침내 한 공간에서 마주한 상황이니 강한 적대감을 드러내는 연기를
[제이크 질렌홀] 감추어야 드러나는 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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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민수 감독-노희경 작가가 콤비를 이룬 <거짓말>(1998) 같은 드라마를 글로 배워 만들 수 있을까? 글쎄다. <바보 같은 사랑>(2000), <인순이는 예쁘다>(2007), <그들이 사는 세상>(2008) 같은 표민수 감독의 드라마는 삼각관계, 불륜 같은 뻔한 설정에 한번도 보지 못한 인간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시청률이 바닥이어도, 표민수표 드라마에 열렬히 환호하는 마니아층이 형성됐다. 표민수 감독이 데뷔작 <거짓말> 이후 15년간, 노희경 작가와 콤비를 이룬 마니아 드라마부터 한류 붐을 탄 <풀하우스>(2004), 블록버스터 <아이리스2>(2013)를 연출하면서 얻은 노하우를 한권의 책 <드라마 어떻게 만들 것인가>(씨네21북스 펴냄)에 집대성했다. 이 책에는 작품의 테마를 잡고, 캐릭터를 형성하고, 작가와 협력하고, 촬영하고 믹싱을 하는 드라마 제작 과정의 전 분야에 걸쳐 표민수 감독이 생
[trans x cross] 한권으로 보는 표민수 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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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가을 극장가의 진정한 승자는 바로 이정재다. 검은 갑옷을 입은 조선의 마키아벨리는 스크린 속에 부는 피바람을 잊게 할 정도로 관객을 매혹시켰나보다. “역모가 아니면 왕위에 오르지 못할” 2인자 수양의 콤플렉스와 종잡을 수 없는 잔혹함은 <관상>이 지닌 이야기의 결을 보다 풍성하게 만든다. 여기, 영화판을 뒤흔드는 악당이 등장했다. <신세계>와 <관상>으로 2013년 가장 주목할 만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이정재를 만났다.
역모의 상. 영화 <관상>에서 친족을 배신하고 피를 부르는, 이리를 닮은 자의 얼굴을 보기 위해 우리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마침내 등장한 수양대군의 모습은 한 시간의 기다림을 보상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시뻘건 피가 뚝뚝 떨어지는 사냥감을 어깨에 둘러멘 부하들과 함께 자신만의 작은 왕국으로 걸어들어오는 검은 갑옷의 남자. 수양은 세상을 기어코 제 발 아래 두겠다는 야심이 흘러넘치는 오만한 왕족이다. 배우 이정재
[이정재] 그의 욕망에 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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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섬주섬. 지갑을 한참 뒤적이던 조영각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서로 전혀 다른 색깔이 묻어나는 명함 두장을 더 내밀었다. 연상호 감독이 이끌고 있는 ‘다다쇼 프로덕션’, 다른 한장은 장형윤 감독의 보금자리인 ‘지금이 아니면 안돼 프로덕션’의 것이었다. “요즘 정신이 하나도 없다”는 그의 표정은 그러나 피로보다는 적량의 아드레날린을 분출 중이었다. 연상호 감독의 <사이비>가 곧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이고, 장형윤 감독의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도 내년 1월이면 인고의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 <사이비>가 마을에 생긴 교회에 아내와 딸을 빼앗긴 아버지의 싸움이 골자인 사회드라마라면,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는 얼룩소로 변한 청년과 소녀의 모습을 한 인공위성의 사랑을 다룬 판타지멜로다. 이렇게 각기 다른 개성으로 완전무장한 독립장편애니메이션을 동시에 2편이나 프로듀싱하고 여기에 내년 40주년을 앞두고 발돋움판 마련에 한창인 서울독립영화제
[조영각] 독립영화가 재밌냐고? 와이 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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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숭이> DVD를 요청하려 제작사인 이닥픽처스에 전화를 걸었더니 박상훈 감독이 직접 수화기를 들었다. 박상훈 감독은 곧 DVD를 전달하겠다고 했고, 30여분 뒤 직접 DVD를 들고 <씨네21> 사무실을 찾았다. 인터뷰 당일엔 자신이 작성한 보도자료를 들고 30분이나 일찍 약속 장소에 나와 있었다. 각본, 촬영, 헌팅, 연출은 물론이고 배급과 마케팅까지 손수 관장하고 있는 박상훈 감독은 <벌거숭이>를 세상에 내놓을 수 있어 진심으로 행복한 듯 보였다. 아내와 아들을 제 손으로 저세상에 보낸 한 가장이 절망이라는 이름의 뫼비우스 띠에 갇혀 처절하게 몸부림 치는 이야기인 <벌거숭이>.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스스로 벌거숭이가 된 박상훈 감독을 만났다.
-존속살인을 저지른 박일래라는 인물을 따라가는 영화다. 어떻게 구상한 이야기인가.
=4년쯤 전 개인적으로 힘든 일을 겪고서 광인처럼 살다가 무작정 시골에 내려갔다. 시골에서 ‘마을 영화’도
[flash on] 창작의 텃밭을 잘 가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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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더글러스가 연기한 가장 강력하고 힘 있는 인물 중 하나가 <월 스트리트>(1987)의 주인공 고든 게코다. “탐욕은 좋은 것”이라는 매혹적인 말로 이 영화를 보았던 당대의 출세 지향적 젊은 관객을 무한정 자극했던 월 스트리트 금융가의 악덕 증권 브로커, 그러나 끝내 영화 속 자신은 파멸을 면치 못했던 인물. 더글러스는 이 인상 깊은 악역을 통해 생애 처음으로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손에 쥐었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화려한 때였다.
20년쯤 지나 속편에 해당하는 <월 스트리트: 머니 네버 슬립스>(2010)가 제작되었을 때 더글러스는 동일 인물로 다시 출연한다. 감옥에서 출소한 고든은 자신의 파란만장했던 삶을 밑천으로 강연하고 책을 팔며 산다. 강당에 학생들을 앉혀놓고 월 스트리트의 병폐에 관해 이것저것 짚어가던 고든은 연설의 마무리가 필요한 시점에 이르자 비장의 비유 하나를 꺼내든다. “그런 건 암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싸워서 이겨내야 할 질병 같은
[마이클 더글러스] 탐욕의 화신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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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 장르 막론하고, 활동 경력 막론하고, 모든 남자 연예인을 ‘멘붕’으로 만들 수 있는 마법의 주문이 있었다. 바로 “오빠! 나 몰라?” <무한도전> ‘여름예능캠프’편에서 맹승지는 이름대로 맹한 매력으로 이 주문을 연신 외쳐대며, 어떤 수료생보다 뛰어난 성적으로 여름예능캠프를 졸업했다. 그리고 현재는 <코미디에 빠지다>의 한 코너 ‘맹스타’에서 맹스타로, <섹션TV 연예통신>의 고정 리포터로 맹활동 중이다. 연휴가 끝난 뒤 월요일 아침, MBC 일산드림센터에서 만난 그녀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데도 “바쁘니까 안 좋은 일도 금방금방 잊혀져서 좋다”며 샐쭉이 웃었다. 명절 후유증도, 월요병도 개의치 않는 그녀의 맹맹한 목소리가 유쾌했다.
-인터뷰를 늘 이렇게 점심시간에 하나.
=막내니까. 8월부터 지금까지 거의 매일 이렇게 오전이나 점심시간에 인터뷰를 했던 것 같다.
-본명은 김예슬이고, 맹승지는 엄마가 작명소에서 지어온 이름이라고.
=처음에는
[trans x cross] 내 장점은 긍정적이고 무식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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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ography
<남자가 사랑할 때>(2013), <몬스터>(2013),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2013), <우리 선희>(2013), <마이 라띠마>(2012), <분노의 윤리학>(2012),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2012), <음치 클리닉>(2012), <이웃사람>(2012), <아부의 왕>(2012), <다른나라에서>(2011), <북촌방향>(2011), <헤드>(2010), <위험한 상견례>(2010), <심장이 뛴다>(2010), <돌이킬 수 없는>(2010), <부산>(2009), <이태원 살인사건>(2009), <짝패>(2006)
영화 촬영 현장에는 영화 카메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현장 사진을 찍는 스틸 카메라와 메이킹을 촬영하는 비디오 카메라까지
[STAFF 37.5] 시간을 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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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영화
2013 <배우는 배우다>
2012 <러시안 소설>
연극
2012 <미남선발대회>
경성환은 데뷔작 <러시안 소설>에서 자신의 본명 그대로인 ‘성환’을 연기한다. 이야기의 흐름에서 한발 물러나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다른 인물들을 바라보는 역할이다. “알잖아요. 그 오빠 진지한 거.” 그를 묘사하는 대사처럼 사뭇 진지한 자세로 인터뷰에 임하는 모습은 마치 영화 속의 성환과도 같았다. “처음으로 맡은 배역이 자신을 모델로 했다는 사실은 분명 부담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이 과정은 다른 인물을 연기해야 하는 배우로서는 큰 자양분이 되었을 것이다. 그는 “나를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남을 더 잘 알게 된 것 같다”며 조심스러운 만족을 표했다.
경성환은 늦깎이 배우다. 법학을 전공했던 그가 연기자로서의 길을 걷게 된 계기는 교통사고라고. “사람이 이렇게 한순간에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더라. 몸에 맞지 않는 옷(법학)은
[who are you] 경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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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해를 품은 달> <보고 싶다>로 여진구는 아역 배우에 대한 편견을 깨부수었다. 어설프게 어른 흉내를 내지도 않았고, 억지로 귀여움을 짜내지도 않았다. 여진구는 그저 연기에 빠진 소년이었다. 장준환 감독의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이하 <화이>)에선 더 큰 도전을 감행한다. 범죄자 집단에 의해 길러지는 소년 화이가 그가 맡은 몫. 여진구는 액션부터 감정까지 어느 것 하나 만만한 게 없었던 이번 영화에서 아이와 어른, 선과 악의 경계에 선 소년을 믿음직스럽게 연기한다. 9월의 어느 일요일, 무시무시한 소년을 만났다.
1년 반 만에 다시 만난 여진구는 미세하게 변해 있었다. 키는 5cm쯤 더 자랐고, 목소리는 바리톤에서 베이스로 조금 더 깊어졌다. 니트 사이로 근육의 윤곽도 드러났다. 열심히 몸을 가꾼 결과인가 싶었는데 “조금만 움직여도 근육이 잘 붙는 체질”이라 따로 운동을 하진 않는다고 했다. 아역 배우라 부르기는 망설여지고
[여진구] 이젠 더 이상 소년이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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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세게 나갔으면….” 9월6일 제7회 대단한 단편영화제(주최 KT&G 상상마당) 개막식 뒤풀이 자리에서 만난 남궁선 감독은 개막작으로 상영한 자신의 작품 <남자들>(2013)을 두고 아쉬움부터 털어놓았다. “인물들의 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복잡한 문제들을 더 보여줬으면 좋았을 것 같다. 하지만 남자나 여자 캐릭터를 나쁘게 묘사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남자들>은 이성 관계에서 벌어질 수 있는 매혹과 곤혹스러움을 경쾌하게 오가는 연애담이다. <남자들>을 비롯해 <세상의 끝>(2007), <최악의 친구들>(2009), <태평양>(2010), <아편굴 처녀가 들려준 이야기>(2011) 등 그가 만든 단편영화들이 올해 대단한 단편영화제 감독 특별전에서 상영됐다.
-그간 만든 단편 작업을 관객에게 선보이는 기분이 어떤가.
=상영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부끄러웠다. 멋
[flash on] 끝까지 밀어붙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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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 앨런으로부터 전염된 것일까. <블루 재스민>은 케이트 블란쳇이 가장 말을 많이 하는 영화로 기억될 것 같다. 우디 앨런 개인으로서도 <블루 재스민>은 <스쿠프>(2006)의 영국,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2008)의 스페인, <미드나잇 인 파리>(2011)의 프랑스, <로마 위드 러브> (2012)의 이탈리아 등 기나긴 유럽 투어를 끝낸 작품이기도 하다. 그렇게 <블루 재스민>은 두 사람 모두에게 어딘가 특별한 영화처럼 느껴진다. 더군다나 <블루 재스민>은 정말 오랜만의 ‘원톱’ 주인공이 등장하는 우디 앨런 영화라 할 수 있다. 유럽 투어 당시 우디 앨런 영화의 여러 인물들은 각자의 서로 다른 에피소드를 가지고 뭔가 ‘원격 조종’ 당하는 느낌이 강했다면, <블루 재스민>은 심지어 우디 앨런이 그녀에게 전적으로 의지한 것 같은 느낌마저 준다. 그렇게 케이트 블란쳇은 <블루 재
[케이트 블란쳇] 다이내믹 엔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