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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인물이 가진 연약함에 집중하는 게 재밌다.” 이 말은 클라이브 오언이 <블러드타이즈>(감독 기욤 카네, 2012)의 작업을 마친 뒤 가진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런데 클라이브 오언이 평소 갖고 있던 이미지를 생각해보면 이 말은 약간 의외이다. 왜냐하면 그는 대부분 굳센 의지를 가진 강인한 인물, 또는 적어도 그렇게 보이는 인물들을 연기해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인물들을 연기하는 클라이브 오언은 다양한 감정과 표정을 우리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잠깐 눈을 감고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클라이브 오언의 이미지를 떠올려보면 그의 무표정하고 무뚝뚝해 보이는 얼굴이 가장 먼저 그려질 것이다. 1964년 영국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연기를 꿈꿨던 이 배우는 지금껏 연기한 주요 배역들에서 활짝 웃는 얼굴을 보인 적이 거의 없으며, 마찬가지로 가벼운 인물을 연기한 적도 거의 없다. 그는 특유의 바위 같은 표정과 함께 무겁고 진지한 인물들을 도맡아 연기하며 자신의 연기 경력을
[클라이브 오언] 무표정한, 복잡미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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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내가 이런 레퍼런스 무비까지 만들지 않았겠나.” 수월하게 투자받은 건 아닐 것 같다는 질문에 <몬스터>의 황인호 감독이 선뜻 보여준 건 자신의 휴대폰에 담긴 동영상 편집 클립이었다. <웰컴 투 동막골> <아저씨> <괴물> <황해> <밀양> 등의 장면이 편집되어 있고 거기에 짧은 설명들이 붙어 있는, 자신이 <몬스터>에서 그리려는 캐릭터나 장면 컨셉을 투자자들이 잘 알고 있는 영화를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동시에 구미가 당길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프레젠테이션용 동영상 자료다. 이것이 영화 <몬스터>의 태생을 말해주는 적절한 일화일 거다. 별도의 변칙적인 설득 과정이 반드시 요구될 만큼 <몬스터>의 지향이 별스러웠다는 사실. 우리는 그 별스러움에 이끌려 호기심이 일기 시작했다. <몬스터>를 만든 몬스터는 누구인가 만나보고 싶어진 것이다.
-원래는 시나리오
[황인호] 내 시나리오는 내가 책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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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이번이 벌써 세 번째면 인연도 보통 인연은 아니다. 뮤지컬 배우 차지연과 뮤지컬 <서편제>의 만남을 두고 하는 말이다. 차지연은 2010년 <서편제>가 처음 뮤지컬로 만들어졌을 때부터 눈먼 소리꾼 송화를 연기했다. 세 번째 송화를 대하는 그녀의 태도는 각별하고 남달라 보인다. 전과 달리 그녀는 과감한 캐릭터 해석을 시도했고 그 결과 이번 송화는 확실히 강해졌다고 한다. <아이다>의 아이다, <카르멘>의 카르멘처럼 기운 세고 거친 운명의 여성들을 꾸준히 맡아왔던 그녀인지라 송화의 이런 변화가 자연스럽게 느껴질 정도다. 데뷔 8년차 배우에게서 좀처럼 나올 수 없는 공력이자 배우 차지연만의 에너지다.
-어떻게 <서편제>를 세번씩이나 하게 된 건가.
=힘들지 않은 작품이 어디 있겠냐마는 <서편제>는 정말이지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작품이다. 어린 송화부터 60, 70대 소리꾼 송화까지 한 사
[trans x cross] 에너지는 아껴 써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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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좋은 사람이라 선택된 줄 알았어요.” 가족에게마저 혹독한 심판의 잣대를 들이미는 아버지에게 실망한 아들이 쏘아붙이자 돌아오는 대답은 다음과 같다. “그분이 나를 선택한 것은 내가 그 일을 완수할 수 있기 때문이야.” 대런 애로노프스키의 <노아>에서, 창조주의 대리자인 노아는 가혹한 수행자다. 아름답고 선한 존재들만 살아남은 새로운 낙원을 열기 위해, 그는 무시무시한 집요함으로 타락한 세계의 완전한 종말을 이끈다. 하지만 그의 추진력을 막아서는 건 언제나 ‘인간적인’ 마음이다. 대홍수에 휩쓸린 생명체들이 울부짖고 애원하며 죽어가는 소리가 메아리치는 방주 속에 앉아, 노아가 경험하는 건 ‘생지옥’이다. 그의 완고한 모습에 사랑하는 아내마저 저주를 퍼붓는다. “당신이 좋아하는 모두가 당신을 증오할 거예요. 그게 ‘정의’예요.” 신인류 최초의 슈퍼히어로가 감내해야 할 정신적 고통은 그가 지은 방주만큼이나 거대하고 깊다.
노아를 연기하는 러셀 크로는 언젠가 “<
[러셀 크로] 불완전한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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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차이무를 이끄는 민복기(오른쪽) 대표가 영화를 만든다? 혼자도 아니고 <마지막 늑대> <강적>에 배우로 출연하며 알게 된 박진순(왼쪽) 감독과의 공동연출이다. 당시 조감독이었던 박진순 감독은 그 뒤 자신의 영화에 꾸준히 민복기 대표를 단역으로 캐스팅했고, 두 사람은 돈독한 인연을 쌓았다. 민복기 대표가 연출한 동명의 연극이 원작인 <씨, 베토벤>은 여고 동창인 세 친구의 수다만으로 이뤄졌다. 영화는 카메라를 통해 배우들을 관찰하기만 한다. 편집도 최대한 줄이고 사고나 실수까지 끌어안고서 극을 그대로 스크린에 옮겨왔다. “의도하지 않은 의도들이 반가웠던” 영화인 <씨, 베토벤>은 사실 민복기 대표의 영화감독 도전기, 박진순 감독의 연출 데뷔 도전기다.
-공동연출을 하기로 마음먹기까지는.
=박진순_처음 준비한 영화가 잘 안 됐을 때 선배님의 연극 <씨, 베토벤>을 보러 갔는데 세 여자의 수다를 한참 듣고 오니 마음이 편하고
[flash on] 실수와 우연이 만나 활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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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자레드 레토의 사진을 찾다가 어떤 이상함을 느끼고 ‘자레드 레토 파파라치’를 검색해보았다. 출연한 영화마다 모습이 워낙 달라서 이 배우의 평소 모습이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재미있는 결과가 나왔다. 누가 진짜 자레드 레토인지 잠깐 헷갈릴 정도로 다양한 사람들의 사진이 떴다. 그리고 그 사진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나서야 헷갈릴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거기 있는 사람은 모두 자레드 레토였다. 머리가 짧든 길든, 수염이 있든 없든, 머리색이 까맣든 금발이든(또는 핑크색이든), 말쑥하게 입었든 거지처럼 입었든, 차분하게 있든 날뛰고 있든 그들은 모두 같은 사람이었다.
물론 자레드 레토는 출연하는 작품마다 다양한 캐릭터로 변신하는 것으로 이미 유명하다. 그는 18kg을 감량하고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을 찍었으며 그 전작에서는 30kg을 찌워 <챕터 27>에 출연했고, 또 그전에는 자신이 직접 연출하고 출연한 록밴드 ‘30 Seconds to
[자레드 레토] 변화무쌍한 창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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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영화
2010 <오빠가 돌아왔다> <대한민국 1%> <무법자>
2007 <7월 32일>
드라마
2012 <대왕의 꿈>
2010 <야차>
첫 주연작에 타이틀 롤까지 맡았다. “가제는 <불량가족>이었다. 은근히 ‘소설 원제가 더 낫지 않냐’고 압박(?)을 넣었다. (웃음)” 기타치며 노래하는 모습이 주는 풋풋함에 ‘영락없는 신인배우구나’ 했더니 데뷔 7년차란다. 연기를 전공한 것까지 더하면 경력이 10년이 훌쩍 넘는다. 꿈이 없던 김민기에게 “연기는 처음으로 눈이 번쩍 뜨이는 신세계”였다. 연극학과를 다니면서는 “무대 연기만이 ‘진짜 연기’라고 생각”해 열심히 연극만 팠다. 패기 넘치던 연극학도는 이제 “카메라 앞이건 무대 위에서건 순간순간이 너무 소중”하다는 걸 절실히 깨달은 ‘진짜’ 배우로 돌아왔다. <오빠가 돌아왔다>의 백태봉 역은 “오디션 보러갔다가 2시간 동안 감독님과
[who are you] 김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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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년 역사를 자랑하는 서울극장의 분위기는 다른 극장들과 사뭇 다르다. 근사한 중절모를 쓴 장년층 관객과 스마트폰으로 극장 곳곳을 찍어 SNS에 업로드하기 바쁜 젊은 관객이 같은 풍경에 담긴다. 과거와 현재의 중간쯤에 위치한 것 같은 서울극장에 최근 새로운 지킴이가 들어왔다. 이광희 기획실장이다. 수입/배급사 프리비젼에서 일하다 이제 막 서울극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예전엔 ‘이 영화 틀림없이 잘될 거니까 일단 믿어달라’고 하는 입장이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영화를 선별해야 관객이 만족할 수 있을지를 먼저 고민한다.”
“멀티플렉스 홍수 시대에 개인 극장이 살아남을 방법”을 고민한 결과 이광희 실장이 내린 답은 “정성”이다. “대형 영화관에서는 거대 자본을 동원해 편리하게 관객과 접점을 만든다면 우리는 한명의 관객이라도 좀더 따뜻하게 맞이할 수 있는 ‘정성’을 준비하면 되지 않을까. 개인 극장의 이점은 기민한 대처와 민첩한 반응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덕분에 다양한 시도를 빠르게 진행하
[STAFF 37.5] 정성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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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의 봄이 오는 길목. 노영석 감독은 준비하던 시나리오를 마무리하기 위해 지방의 외진 휴양림 펜션에 잠시 들어가기로 한다. 그러다 휴양림 인근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덜컥 한 사내를 만난다. 교도소에서 나온 지 며칠 안 됐다고 자신을 소개하는 동네 토박이. 그는 지나친 친밀함을 드러내는 동시에 그걸 거절하면 언제 돌변할지 모를 거라는 위협적인 인상도 함께 전한다. 감독은 그날 밤 술이라도 한잔하자며 그가 숙소로 불쑥 찾아오면 어쩌나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한편으론 짜릿한 창작에의 자극을 받은 나머지 공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다. 원래 쓰려던 시나리오는 뒷전으로 미룬 채 그 남자의 정체를 상상하며 한편의 시놉시스를 쓰고 있다. 외지에서 만난 감당할 수 없이 친절하고 또한 위협적인 한 남자. 그가 노영석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조난자들>을 추진시켰다.
-이 영화의 동기가 된 그 남자와의 만남을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준다면.
=휴양림이 있는 마을 정류장에서부터 나를 자꾸
[노영석] 참 친절한데 불편하고 수상쩍은 사람… 의심은 내 경험에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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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주인공과 소설가를 일치시켜 상상하는 일은 열렬한 독자의 즐거운 망상이자 대개 끝이 비극적인 드라마다. 소설가의 프로필 사진은 그가 쓴 이야기보다 더 큰 허구의 산물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큰 성공을 거둔 스릴러 소설 <스노우맨>을 쓴 노르웨이의 소설가 요 네스뵈와 그가 창조한 시리즈의 주인공 해리 홀레에 대해서라면 다시 한번 희망을 걸어봐도 좋다. 경찰 해리 홀레는 이야기가 거듭될수록 부상을 입으며 비극의 핵심이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섹시한 캐릭터이다. 그리고 작가 요 네스뵈는 축구 선수, 경제학자, 저널리스트, 록밴드 멤버이자 싱어송라이터, 소설가라는 직업을 거쳤고 유튜브에서 그의 밴드 디 데레(di derre, ‘그 녀석들’이라는 노르웨이어)의 열광적인 공연 실황을 만날 수 있다. 록스타-소설가인 셈이다. 또한 프로필 사진과 실물이 크게 다르지 않다, 주인공 해리보다 키는 좀 작지만.
-여러 도시를 여행하고, 그 경험을 작품에 반영하기를 즐기는 것
[trans x cross] 추운 나라에서 온 ‘록스타-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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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에 갔던 김고은이 씩씩거리며 스튜디오에 들어왔다. “아니, 문을 잠그는 게 어딨는지 몰라 안 잠갔는데 갑자기 어떤 남자가 들어오는 거예요. 놀라서 꺅 하고 소리를 질렀지 뭐예요.” 자신이 얼마나 놀랐는지 손짓, 발짓 모두 동원해 설명하는 김고은은 여배우라기보다 동네마다 한명씩 있는, 유별난 여동생에 가까워 보였다. <몬스터>에서 그가 연기한 복순처럼 말이다. “제 몸짓이 복순이 닮았다고요? 이게 다 복순이 때문인가봐요. 흐흐. 그러잖아도 복순이를 연기하고 나서 주변 사람들에게 정신줄 놓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촬영장에서 이상한 춤을 추니까 스탭 언니들이 여배우가 그러면 안 된다고 그러고. 현장에서는 제가 아니었거든요.”
그가 한동안 몰입해 있었던 복순은 배가 고프면 밥을 먹어야 하고, 졸리면 잠을 자야 하는, 본능에 충실한 캐릭터다(동생의 복수를 하러 가다가도 배고프다고 칭얼댄다). 시장에서 장사하지 말라고 무력을 행사하는 용역 업체 직원을 상대로 “아저씨,
[김고은] 이상한 본능의 앨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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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말하자면 내추럴 본. 난 오히려 태수에게 인간다운 면모가 많다고 느꼈다. 하루에도 수십번 변하는 게 사람 감정이지 않나. 그냥 태수라는 인간에겐 살인도 가능한 일이었을 뿐이다.” <몬스터>를 본 관객이 새로이 알게 될 점이라면 이민기도 웃지 않는 연기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몬스터>에서 이민기는 황인호 감독이 “절대악”이라고 표현한 캐릭터 태수를 연기한다. 실제 모습이 어떻든 스크린 속의 그는 대개 철없고 쉽게 흥분하지만 마음 씀씀이만은 기특해서 미워하기 힘든 인물이었다. 그래서인지 시간이 흘렀어도 나이 들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고 언제든 남동생 혹은 연하 남자친구 역할이 기막히게 잘 어울렸다. 그의 큰 눈도 마냥 강아지 같아 보였을 뿐이다. <몬스터>에서 피 칠갑한 채로 난리를 부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몬스터>에서 이민기는 그에게 한번도 기대한 적 없었던 또는 기대할 수 없었던 역할로 거듭났다.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어린아이의
[이민기] 내 눈에 비친 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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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같은 남자와 이 남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괴물이 된 여자가 맞붙는다. <몬스터>(감독 황인호)의 태수(이민기)와 복순(김고은)이 그들이다. 복순의 유일한 낙은 하나뿐인 가족인 여동생을 뒷바라지하는 것. 어느 날, 소중한 동생이 영문도 모른 채 살인마 태수로부터 죽임을 당한다. 폭력과 피와 거리가 먼 삶을 살아가던 복순은 난생처음 식칼을 허리춤에 차고 동생의 복수를 결심한다. 쫓고 쫓기는 영화 속 관계와 달리 스튜디오에 들어온 이민기와 김고은의 모습은 남매 같았다. 사진기자가 포즈를 요구할 때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자세를 도와주며 챙겼다. 다음 장부터 이민기와 김고은의 무시무시한 스릴러영화 도전기가 펼쳐진다.
[몬스터] 복수는 나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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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9일 영국 <ITV>에서 <브리튼스 갓 탤런트>(&t;BGT<)라는 이름의 전 국민 오디션 프로그램이 첫방송됐다. 재주꾼과 괴짜들 사이에서 평범하고 소심해 보이는 한 휴대폰 판매원이 오페라를 준비했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아무도 몇초 뒤에 일어날 일을 예상하지 못했다. 그가 첫 음절을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귀를 기울였고, 그가 높은 음에 도달했을 때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이후 그는 우승을 거머쥐었고, 평범한 사람들의 희망, 기적의 사나이 폴 포츠가 됐다. 그는 그 뒤 석장의 앨범을 발표했으며, 7년이 지난 지금도 전세계를 돌며 오페라 가수로서 활동 중이다. <원챈스>는 폴 포츠의 첫 앨범의 이름이자 그의 자서전 제목이며, 그의 삶을 모델로 한 영화 제목이다. 영화 <원챈스>의 개봉에 맞춰 11번째로 한국을 방문한 폴 포츠를 만났다.
-오디션 우승 뒤 전세계 투어 중이다.
=<BGT>에서 우승한 2007년에는
[flash on] 동전 던지기로 바뀐 운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