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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지… 내, 약속 잘 지켰지요?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요?” 암, 잘 살았지. 잘 살았다마다. 아버지만 살아 계셨어도 우리 장남 장하다며 어깨 툭툭 두드려주셨을 거다. 열두살엔 한국전쟁으로 피난길에 오르고, 스물여섯엔 서독에 가 광부로 일하며 외화를 벌었다. 갱도에 갇혀 죽다 살아났고, 고국으로 돌아와 처자식 데리고 이제 좀 살 만하다 싶었는데 이번엔 베트남에 파견 가란다. 어쩌랴. 고모가 눈물로 지켜낸 가게를 내놓기 싫은 마음에, 철없는 막내동생 시집가겠다는 성화에 서른 넘어 어렵사리 붙은 대학 합격증도 치워버리고 목숨 걸고 베트남 정글로 날아갔다. 목숨줄 대신 다리 한짝 잃은 것이 차라리 다행이라면 다행. 젊어서 한 고생이 슬슬 복으로 돌아오는지 마흔 고개를 넘겨서는 피난길에 잃어버린 여동생도 찾고, 자식들 모두 시집, 장가보내 토끼 같은 손자, 손녀까지 얻었다. 대체 누구의 삶이기에 이토록 파란만장하냐고? ‘그때 그 시절’은 다 그랬다. 특별할 것 없는 그냥 ‘아부지’들의
[황정민] 우리 아버지들처럼, 하루하루 배우의 역사를 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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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 헥터의 ‘행복 찾아 삼만리’를 유쾌하고 따스하게 풀어놓은 영화 <꾸뻬씨의 행복여행>은 프랑수아 를로르의 동명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프랑수아 를로르는 프랑스 파리의 정신과 의사이자,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 <꾸뻬씨의 행복여행> <꾸뻬씨의 시간여행> 등 ‘꾸뻬씨’ 시리즈로 유명해진 작가다. 그에게 가장 최근 행복을 느낀 순간이 언제냐고 물었더니 “바로 몇분 전, 11개월 된 아들과 놀면서 행복을 느꼈다”는 답이 돌아왔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고 말하는 프랑수아 를로르와 책, 영화, 행복에 관한 이야기를 서면으로 나눴다.
-책과 영화의 차이 중 하나는 꾸뻬가 여행을 떠나는 결정적 동기인 것 같다. 소설 속 꾸뻬는 행복을 적극적으로 찾고 싶어 떠나지만 영화 속 헥터는 불행한 삶과 현실의 매너리즘을 타계하고 싶어 떠난다.
=차이를 잘 짚었다. 꾸뻬는 이타적인 자극에 의해 행복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자신의 환자들을
[flash on] 행복에 대한 지나친 몰두가 행복을 방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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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문을 연 미국 최대 영화 정보 사이트 로튼 토마토의 공동 창립자 패트릭 리가 한국을 방문했다. 로튼 토마토는 전문 비평가와 일반 유저들의 영화 리뷰를 두루 모아 한눈에 살펴볼 수 있게 만든 사이트다. 특히 ‘영화가 얼마나 신선한가’에 따라 ‘토마토 지수’를 매기는 재미난 평점 시스템으로 유명하다. 패트릭 리를 만나 로튼 토마토의 창립의 순간을 되짚어봤다. 비록 그가 로튼 토마토를 떠난 지 10년이 지났지만 언제나 ‘신선한’ 아이디어로 승부를 보겠다는 그에게 들어볼 이야기는 충분히 많았다.
-대학 동기들과 재미삼아 시작한 로튼 토마토가 돈이 되는 사업이 될 거라고 예상했나.
=사이트를 연 지 1년 정도 지났을 때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로튼 토마토에 접속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로튼 토마토가 당시 가장 ‘핫’한 영화 사이트로 뽑히는가 하면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 사이트 중 하나라고 말해 화제가 됐다. <벅스 라이프>(1998) 개
[flash on] 이제는 중국에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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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데 ‘호’ 해주기, 음식 떠먹여주기, 직접 만든 꽃다발 선물하기. 이 애정행각은 진모영 감독의 다큐멘터리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2014)에서 결혼 76년차 노부부의 주된 일상이다. 우연히 끼어든 죽음도 그 일상의 한 부분을 차지한다. “노부부의 일상을 통해 위대한 사랑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진모영 감독은 이 영화가 단순한 노인영화는 아니라고 강조한다. 소수자들을 위한 방송다큐멘터리를 찍어온 그는 고 이성규 감독의 극영화 <시바, 인생을 던져>(2013)의 프로듀서로 영화계에 입문했다. 그의 장편 연출 데뷔작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올해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관객상 수상작이다.
-영화를 어떻게 구상하게 됐나.
=독특한 인물을 찾던 중에 KBS <인간극장> ‘백발의 연인’편이 눈에 들어왔다. 방송을 보다보니 두분의 사연이 정말 굉장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게 부부로 산다는 게 무엇인지에 대한 큰
[flash on] 사랑의 힘으로 해내는 작지만 큰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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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환 감독은 미국의 어느 유력 매체의 기자가 자신에게 했던 우스꽝스러운 질문을 전하며 인터뷰의 말문을 열었다. “그 기자가 어눌한 한국말로 이러더라, 한국 교회, 왜 이렇게 또라이예요? 외국인들이 한국적인 풍광이라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붉은 십자가다. 외국은 그렇지 않다. 십자가가 그렇게 많은 곳은 무덤뿐이다. 내게는 그러니까 한국 기독교가 무덤이 된 것처럼 보인다.” 김재환 감독의 신작 <쿼바디스>는 그 수많은 십자가들을 향한 냉철한 자성의 목소리이며, <트루맛쇼> <MB의 추억>에 이은 통렬한 풍자화다.
-<쿼바디스>는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자주 방영해주던 영화의 제목이라 낯익다. 제목을 패러디하려는 의도였나.
=1951년 <쿼바디스>를 물론 염두에 두었다. 그런데 더 중요한 맥락이 있다. 나는 나의 전작들을 ‘역지사지 프로젝트’라고 부른다. <트루맛쇼>에서는 미디어가 하는 행태 그대로를 빌려와 미디어
[김재환] 목사 믿는 환자인가, 예수 믿는 신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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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물리학도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남자와 프랑스어와 스페인어를 공부하고 있다고 응수하는 여자. 신을 믿지 않는 남자와 영국 국교회를 믿는 여자. 커피잔 속에 스며들어가는 우유의 움직임을 보며 우주의 시작을 고민하는 남자와 누군가가 쓴 글을 보며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여자.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의 두 주인공, 스티븐 호킹(에디 레드메인)과 제인 와일드(펠리시티 존스)가 사랑에 빠질 확률은 화성과 금성이 충돌하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수많은 불가능의 확률을 뚫고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순간, 새로운 우주가 열린다.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은 이 두 연인이 만들어낸 사랑의 우주에 대한 영화다. 그리고 스티븐 호킹을 연기하는 영국 배우 에디 레드메인은 이 거대한 우주의 한축이다. 케임브리지의 전도유망한 천재 물리학도였던 호킹은 어느 날 갑자기 교정에서 쓰러진 뒤 루게릭병에 걸려 앞으로 살날이 2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청천벽력 같은 선고를
[에디 레드메인] <사랑에 대한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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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모그래피
영화
2014 <빅매치> <역린>
2013 <더 테러 라이브> <관상> <은밀하게 위대하게> <노브레싱>
2012 <광해, 왕이 된 남자>
드라마
2014 <정도전>
2013 <구암 허준> <기황후>
2012 <대왕의 꿈>
“운전 장면이 그렇게 많았다는 건 기술 시사 때 처음 알았다. (웃음)” <빅매치>에서 하드 드라이버 수경(보아) 대역을 맡은 이명규는 “웬만한 장면은 배우가 다 소화했다”라며 자신의 공보다 보아의 운전 실력을 더 치켜세웠다. 보아의 대역으로 그가 참여한 건 단 두 장면. 대로변에 세워진 안전 콘을 자동차 옆면으로 긁으면서 지나가는, 디테일한 기술을 필요로 하는 장면이었다. 가장 공들인 다른 장면은 ‘통편집’됐다. “전륜 차로 후륜 차처럼 드리프트(차체를 틀면서 슬라이드하는기술)해 한번에 지하주차장으로 후진하는 장면이었
[STAFF 37.5] 액션? 체구가 다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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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와 감동. 대구에서 태어나 30년을 살다 서울 생활을 했고 결혼해서 구미에 정착한 40대 만화가 김수박이 생각하는 만화의 핵심이다. 그는 용산참사를 다룬 <내가 살던 용산>에 참여했고 삼성 반도체 공장 백혈병 문제를 다룬 <삼성에 없는 단 한 가지: 사람 냄새>(이하 <사람 냄새>) 등을 그린 작가다. “이 작품(<사람 냄새>)에도 재미가 있어요. 르포 형식으로 그렸지만….” 맞다. 얼핏 보면 재미없는 수업을 하는 선생님처럼 생긴 그가 웃을 때는 영락없는 개구쟁이의 눈빛이 되는 것처럼 그의 만화는 진지하다가도 웃기다. 코끝이 찡해지는 감동도 있다. 신작 <메이드 인 경상도>도 이런 만화의 핵심에 부합하는 작품이다. 지역감정을 다루고 있지만 그 안에는 작가 본인의 기억에 의지한 1980년대를 사는 김갑효(작가의 본명은 김효갑)라는 아이를 통한 재미와 감동이 있다. 물론 웃고 울다 보면 독자들의 마음에는 하나의 물음이 생길 것이다
[trans × cross] 새까맣게 몰라서, 새파랗게 질렸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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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빈말이 아니었다. 인터뷰 당일에도 박신혜는 새벽부터 드라마 <피노키오> 촬영을 했고 오후에는 영화 <상의원>의 제작보고회 무대에 올랐다. 드라마 촬영이 시작된 9월 중순 이후로는 단 하루도 쉬지 않고 거침없이 달려오고 있다. 그래도 기분만큼은 더없이 좋아 보인다. 지난해 말 드라마 <상속자들>로 흥행 홈런을 치며 아시아권 스타로 발돋움했고 올해는 싱글 앨범 ≪팔베개≫ ≪My Dear (꽃)≫을 내며 아시아 투어 콘서트까지 다녀왔다. 박신혜는 크리스마스이브에 개봉하는 <상의원>에서 고독한 왕비로 등장해 처연한 여인의 모습을 그릴 예정이고, <피노키오>에서는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가상의 증후군인 ‘피노키오 증후군’을 앓는 기자를 연기한다. 드라마와 영화를 넘나들면서, 한국과 아시아 곳곳을 오가며 스타로 성장해가는 그녀의 행보가 새로운 일은 아니지만 눈에 띄는 것은 분명하다. 영화의 개봉을 앞두고 박신혜
[박신혜] 정말 내가 궁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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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서트 실황만을 담았던 인피니트의 첫 영화 <인피니트 콘서트 세컨드 인베이전 에볼루션 더 무비 3D>와는 다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GROW: 인피니트의 리얼 청춘 라이프>(이하 <GROW>)는 인피니트라는 이름 아래 숨겨진 일곱 청년의 자연스러운 성장기를 기록한 영화다. 월드투어 중 있었던 17개의 크고 작은 사건들을 통해 성규, 동우, 호야, 엘, 성열, 우현, 성종의 맨 얼굴을 만날 수 있다. 드라마 촬영 일정으로 시간을 내지 못한 성열과 우현을 제외한 다른 다섯멤버들이 짬을 내 자신들의 ‘맨 얼굴’에 대한 이야기를 좀더 들려줬다. 수업이 끝난 쉬는 시간, 잠깐 우르르 모여 반 친구들과 수다를 나누던 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우는 얼굴, 웃는 얼굴, 맨 얼굴까지 가감 없이 나오는 영화다.
=성규_우리끼리 그랬다. 너무 많은 모습을 보여줘 헐벗은 느낌이라고.
호야_우리의 생생한 모습이 많이 담겨서 창피하기도 하다.
성종_영화를 보고 나니
[flash on] 우리꺼 하자, 주저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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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모그래피
2014 <봄> 촬영감독, <두근두근 내 인생> B카메라
2013 <감시자들> C카메라
2012 <광해, 왕이 된 남자> C카메라
2011 <완득이> <그대를 사랑합니다> 촬영B팀
2010 <시> <내 깡패 같은 애인> 촬영B팀, <악마를 보았다> 촬영C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에 ‘봄철의 곰’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큰 덩치의 푸근한 첫인상과 달리(?) 알면 알수록 로맨티시스트인 김정원 촬영감독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자연스레 그 이미지가 떠올랐다. 물론 <봄>의 촬영현장은 낭만과는 거리가 멀었다. 의외의 복병은 장마였다. “비온 날이 더 많은데 정작 영화에 비오는 장면은 없어요. 낮에 저녁 신을 찍느라 암막 커튼을 치면 스팀이 따로 없더라고요. (웃음)” 하지만 실제 영상은 봄볕에 곱게 말린 이불처럼 눅눅한 기운 하나 없이 산뜻하고 청초
[STAFF 37.5] 장마와 싸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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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연히 삶 안에 있는데도 특정한 계기 없이는 잘 감지되지 않는 삶의 진리들이 있으니 그것을 들여다보자고 이창재 감독은 다큐멘터리로 자주 청한다. <사이에서>(2006)는 삶이 껴안고 있는 무속을, <길 위에서>(2012)는 비구니들의 삶으로서의 수행을 그렸다. 그리고 <목숨>에서는 삶의 끝을 만진다. <목숨>은 죽음에 임박한 이들이 생의 마지막 나날을 보내는 곳, 호스피스 병동, 그곳의 사람들을 기록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고 들었다.
=시작은 8년쯤 전이었다. 무속인을 주인공으로 <사이에서>를 찍고 있을 때였다. 무속인에게 30대쯤 되어 보이는 손님이 찾아왔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무속인이 점괘는 설명을 제대로 안 해주고 이상한 이야기만 해주더라. “무조건 즐겁고 신나게 생활하라”고 말이다. 손님이 떠난 뒤 물었더니 이렇게 답해주더라. “저 사람은 지금 덤으로 사는 인생이다. 사실은 이미 명이 끝나 있는 운세다. 몇 개
[이창재] 생의 마지막을 기록하는 일은 기어이 풀어야 할 숙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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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고의 변방에서, 고독하지만 꿋꿋하게, 누구보다 아름다운 방식으로 반도네온 연주를 들려주고 있는 여전사. 반도네온 연주자 고상지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다. 정재형, 김동률 등 음악에 관해서라면 절대 타협하지 않는 유명 뮤지션들의 음반에 세션으로 참여해왔던 그녀에게 올해는 특별한 한해였다. 아홉곡의 자작곡이 수록된 첫 정규 앨범 ≪Maycgre 1.0≫을 발매했고, 10월엔 첫 단독 콘서트를 열었으며, 오는 12월4일부터 ‘일본의 아스토르 피아졸라’라는 평가를 받는 유명 반도네온 연주자 료타 고마쓰의 일본 투어에 그녀는 한국 출신 반도네온 연주자로서 처음으로 참여한다. 수많은 ‘처음’으로 점철된 한해였지만, 고상지에겐 순간의 기쁨을 곱씹는 것보다 자신이 만들고 싶은 음악에 대한 몰입이 더 중요해 보였다. 애니메이션과 롤플레잉 게임의 열렬한 팬이며, 호전적이고 똑 부러지는 애니메이션 여주인공들을 사랑한다는 고상지의 취향과 그녀의 음악은 서로 닮아 있었다.
-일본 투어를 준비 중이
[trans × cross] 로봇 합체 장면을 보면 두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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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남자는 100%다. 태도도, 외모도, 자기 일에 대한 열정도. 이 말에 딴죽을 걸고 싶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언제 어디서나 흐트러짐 없는 자기 세계를 구축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이정재는 100%의 남자다. <빅매치>는 그런 이정재를 만날 수 있는 영화다. <빅매치>에 오락영화, 액션영화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도 있지만 굳이 ‘이정재의’ <빅매치>라고 표현하고 싶은 이유도 액션과 코미디를 완벽히 자기 것으로 소화해버린 이정재의 놀라운 연기 때문이다. 이정재는 <도둑들> <신세계> <관상>에서 연이어 호연을 펼쳤고, 세 영화 모두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러면서 그는 데뷔 20주년이었던2013년을 화려하게 보냈다. 지난해 영상자료원에선 이정재 특별전이 열렸고, 올해는 뉴욕아시안영화제에서 이정재 특별전이 열렸다. “운 좋게 계속해서 영화를 찍다보니 그런 의미 있는 행사를 마련해준 것 같은데 막상 연
[이정재] 완성된 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