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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마드 기름을 발라 쫙 올려붙인 머리에 새빨간 가죽 재킷, 청춘의 상징인 청바지에 매서운 눈빛까지. <국제시장>에서 오달수가 제임스 딘 복장을 하고 등장하는 장면에선 그 상상하지 못한 자태에 객석에서 폭소와 경탄이 동시에 터져나왔다. 류성희 미술감독의 아이디어에서 태어난 컨셉으로 오달수가 연기한 달구 캐릭터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덕수(황정민)의 죽마고우 달구는 나름 1960년대 국제시장의 얼리어댑터이자 이슈메이커다. 누구보다 빠르게 청바지에 가죽 재킷을 걸치고 나타난 달구는 시사에 밝고 유행에 민감한 영화광. 단박에 눈길을 끄는 주인공 덕수의 곁에서 달구는 당대의 문화적 코드를 온몸으로 표현하며 은근하게 시대상의 변화를 드러낸다. “강력한 개인사를 가진 덕수와 달리 달구는 말랑말랑하게 완급 조절을 하고 있죠. 덕수가 굵직한 드라마를 끌어간다면 달구는 외관을 통해 그때의 공기를 디테일하게 표현하고 있어요.”
파독 광부 일을 제안하는 등 달구는 덕수에게 매번 새로운 소식
[오달수] <국제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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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25일 국내개봉을 앞둔 <맵 투 더 스타>는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21번째 장편영화이자, 그가 미국에서 촬영하는 첫 영화다. 야간 버스를 타고 할리우드에 입성한 소녀(미아 바시코프스카)는 작가 혹은 배우 지망생인 리무진 운전기사(로버트 패틴슨)에게 스타들의 집을 지도에 표시한 스타맵을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 묻는다. 아닌 게 아니라 이들을 포함하여 한물간 여배우(줄리언 무어), 최연소 약물중독 셀러브리티, 처세술 혹은 자기계발서 저자이자 강연자인 그의 아버지(존 쿠색) 등 과잉된 욕망 속에서 길을 잃은 등장인물 모두는 자신만의 지도가 필요하다. 할리우드에 첫발을 내딛었다는 면에서 소녀와 다르지 않은 크로넨버그는 별들이 그리는 추락의 궤적을 서늘한 차분함으로 그려냈다. 그가 지닌 빛나는 지도를 엿보고 싶어, 눈 오는 토론토로 화상 대화를 청했다.
-시나리오를 쓴 브루스 와그너와는 첫 작업이다. 원래 친분이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이번에 함께 작업하게 된 계기는.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그게 할리우드 현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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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알았어. 일단 전진.” 업무 전화인 듯하지만 누구와의 통화인지는 모르겠다. 이석준은 일단 ‘고’ 하는 것으로 통화를 마쳤다. 2004년 4월에 시작한 소극장토크쇼 <뮤지컬 이야기쇼 이석준과 함께>(이하 <뮤지컬 이야기쇼>)도 이렇게 지난 10년을 버텨왔구나 짐작된다. <뮤지컬 이야기쇼>는 월 2회, 공연계 휴일인 월요일에 열린다. 이석준이 “아는 사람은 아는” 양질의 대학로 창작공연을 배우들과 함께 소개하고 그 비하인드와 음악을 들려주는 형식이다. 어렵다, 어렵다 하는 대학로 연극계에서 대형스타 없이 10년을 지속해온 것만 봐도 보통 내공이 아니다. 2011년 6월부터 시즌2를 시작해 현재 71회 공연을 앞두고 있다. 매회 다른 배우들이 출연료 없이 참여하며 티켓 판매 수익금 전액은 사회복지 NGO 단체 ‘함께하는 사랑밭’에 기부한다. 10주년을 맞은 <뮤지컬 이야기쇼>는 과감한 프로젝트를 하나 궁리 중이다. <배우수업>
[trans x cross] 관객의 가려운 곳 긁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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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다”고, “그렇다”고 상대방의 말에 맞장구부터 쳐주는 남자. 더 많이 말하기보다 더 오래 듣는 쪽에 서 있는 사람. 그가 바로 고수다. 배우로서 고수가 걸어온 길도 그와 똑 닮았다. 소란스럽지 않게 작품에 임하면서 쉼 없이 꾸준히 자신의 보폭을 유지해왔다. 속독으로 더 많은 걸 탐하는 다독가보다는 마음에 드는 책 하나를 오래도록 정독하는 애서가와 같은 배우. 그런 그가 이번에 꺼내든 작품은 <상의원>이다. 그가 맡은 이공진은 조선에서 최고의 디자이너로 불리지만 정작 그 자신은 그 모든 수식어로부터 자유롭고자 하는 사람이다. 얼핏 보면 공진은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거침없이 말하는 호방한 남정네 같다. 그런데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공진만큼 사랑하는 사람의 말에 귀를 세우는 사람도 없다. 그러고 보니 고수와 공진, 둘 사이에 묘한 교집합이 그려진다. 그럴듯한 조합이다.
우당탕탕. 웬 날짐승 같은 사내가 지체 높은 양반들이 모여 있는 술자리로 겁 없이 뛰어든다. 예의니
[고수] 자유롭게, 거침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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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는 <섬광 혹은 소멸>이라는 제목으로 동시대 창의적인 아티스트필름 및 비디오들이 내년 1월31일까지 대거 상영된다. 한편 이곳에서는 <논픽션의 기술들>이라는 제목으로 동시대 주목할 만한 주요 다큐들이 이미 상영되기도 했다. 한편 이곳에서는 얼마 전 아세안필름페스티벌이 열리기도 했다. 우리가 미처 잘 알지 못했던 이곳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영화관으로, 서울에 숨어 있는 좋은 영화관이다. 최근에야 이곳에 대해 잘 알게 된 우리는 전주영화제, 세네프영화제 등의 프로그래머를 지냈고 영화 <딱정벌레>의 감독이기도 했으며, 지금은 영화관의 모든 일을 담당하는 김은희 학예사를 만나서 그간의 일과 앞으로의 일에 대해 물었다.
-지금 하고 있는 행사부터 물어보자. <섬광 혹은 소멸>전의 특별한 점이 있나.
=예컨대 이번에 했던 포럼 제목이 ‘이미지의 막다른 길: 전시와 상영 사이에서’였다.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와 전시된 영상 설치 사이에는
[flash on] 주목! 미술관 속 영화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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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2015 <마돈나> <연애담>
2014 <남매> <철원기행> <나의 사랑 나의 신부> <영도> <발광하는 현대사>
2013 <만신>
2012 <충심, 소소> <뜨개질>
2011 <초대>
2010 <시선>
웹드라마
2014 <모모살롱> <미생 프리퀄>
“다른 배우들은 말 잘하죠? 워낙 말을 못해서 감독님들은 제가 GV(관객과의 대화) 서는 걸 안 좋아하세요. 영화의 여운을 깬다나…. (웃음) 블랙홀이에요. 블랙홀.” 맞다. 이상희는 블랙홀같다. 보면 일단 정신없이 빠져들게 되는 여자다. “첫 인터뷰라 긴장이 된다”며 스튜디오로 들어오자마자 악 소리를 질러 주변을 당황시키고, 인터뷰를 끝내고는 속시원한 표정으로 “이것도 인연인데 허그 한번 하시죠”라며 털털하게 끌어안기까지. 그 매력에 감독들도 이상희에게 푹 빠진 것일 터다.
[who are you] 이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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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드라마에서 김윤진은 늘 혼자였다. 그녀의 곁엔 언제나 기댈 누군가가 없었다. 남편과 이혼했거나(<세븐 데이즈>(2007)), 남편을 살해한 죄로 교도소에 수감돼 아이를 낳았거나(<하모니>(2010)), 죽어가는 딸을 살리기 위해 홀로 고군분투했다(<심장이 뛴다>(2010)). 내년 여름 시즌 방영될 미드 <미스트리스> 시즌3에서 그가 맡은 카렌 역시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을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싱글 여성이다. 작품 속에서 강인한 여성을 연달아 연기했던 그가 윤제균 감독의 신작 <국제시장>(12월17일 개봉)에서 덕수(황정민)의 아내이자 대가족의 맏며느리인 영자를 연기했다. 윤제균 감독으로부터 출연 제안을 받았을 때 “이걸 왜 내게”라는 반응을 보였던 김윤진이 기어코 영자라는 옷을 입기로 결심한 이유는 무엇일까.
-언론 시사가 끝난 뒤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왜 울었나.
=영화를 처음 봤다. 큰 울림이 있었다. 마음이
[김윤진] 누군가의 여자, 신나는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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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캣의 여왕.’ 한국 재즈 마니아들 사이에서 재즈 보컬리스트 말로는 그렇게 통한다. 목소리로 즉흥연주를 하는 스캣에 있어서 그녀는 단연 독보적이다. 음색은 또 어떤가. 여러 겹 포개진 결들 사이사이를 오가며 단련된 그녀의 탁성은 부드럽게 이어가는 음이 아니라 굽이굽이 넘어가는 소리를 낸다. 그게 더 깊은 비감을 자아낸다. 지난달 발매한 6집 ≪겨울, 그리고 봄≫은 그런 말로의 목소리를 더없이 잘 살려낸 멜로디의 모음이다. 무려 7년간 공을 들인 앨범이기도 하다. 그사이 말로는 재즈곡에 맞는 한국어 가사란 무엇인가를 놓고 고심했고 보다 묵직한 이야기로 시선을 돌렸다. 아홉살 아들을 둔 엄마로서 세월호 사고를 지켜보며 느낀 괴로움을 곡으로 만든 것도 그래서다. 아이들이 자라는 세상에 음악이 점점 사라지는 게 안타까워 아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에 직접 찾아가 합창부를 만들 정도의 행동파 뮤지션이기도 하다. 음악이, 재즈가 없는 세상은 말로의 세계가 아니므로 그녀의 노래는 끝이 없다. 계속되
[trans × cross] 세상의 이명(耳鳴)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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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예사롭지 않던 소년은 어느새 남자의 모습으로 성큼 다가와 있었다. 데뷔작 <화이트 크리스마스>(2011)와 <신사의 품격>(2012), <학교 2013>(2012), <상속자들>(2013) 등 일련의 TV드라마에서 김우빈은 방황하는 소년이었다. 상처를 어떻게 보듬어야 할지 몰라 과격하게 부딪치기만 하는 어린 짐승 같았다. 김우빈의 영화 데뷔작은 곽경택 감독의 <친구2>(2013)다. 10여년의 시간을 훌쩍 뛰어넘은 김우빈은 순식간에 스물여덟의 어른 남자가 되어 나타났고, <친구2>를 딛고서야 비로소 성인 배우로 안착했다. 포마드왁스로 깔끔하게 올린 헤어, 매끈한 몸에 딱 맞는 슬림슈트, 그리고 여유만만한 미소로 완성되는 “까리함”이 이젠 김우빈의 트레이드마크로 새겨졌다. 광고주들은 그의 매력을 앞다퉈 찍고 싶어 했다. “당신 남자친구는 나보다 멋있어질 수 있어. 데리고 와.” 모 뷰티브랜드 광고에서 그가 건네는 멘
[김우빈] 근사함 넘어 믿음직스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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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용근 감독이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그들의 손에 총 대신 꽃을>을 펴냈다. 그는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작한 옴니버스 인권영화 <어떤 시선>에서 양심적 병역 거부에 관한 이야기로 단편 <얼음강>을 만들었다. 그때 미처 못다 한 이야기가 이번 책으로 묶였다. 서문에서도 밝혔듯, 이 책은 평소 인권과 평화 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두지는 않았던 감독 자신이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을 만나면서 겪게 된 생각의 변화를 기록한 것이다. 전세계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로 인한 수감자 중 한국인의 비중이 92.5%로 가장 높은 상황에서, 병역이야말로 가장 민감한 이슈인 한국 사회에서 그가 전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양심적 병역 거부라는 주제로 영화에 이어 책까지 냈다.
=<얼음강>이 개봉한 뒤 출판사에서 먼저 제안을 해왔다. 나도 40분짜리 단편영화에 채 담지 못한 내용들이 있어서 아쉬웠던 터라 수락했다. 올해 3월부
[flash on] 사회가 개인의 삶의 기준을 존중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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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톱 여배우에게 고용된 한 젊은 어시스턴트의 숙명을 생각해본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부스스한 머리, 그리고 뿔테 안경. 쉴 새 없이 울려대는 여러 대의 휴대폰을 돌려가며 받을 때에는 단호함이 필요하다. 수많은 업무를 동시에 처리하는 것도 일이지만, 그녀의 가장 우선순위 업무는 저 멀리서 언제 자신을 호출할지 모르는 스타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영화의 한 장면이고, 그 역할을 연기하는 여배우가 평소 수많은 스탭들을 대동하고 화려한 행사 장소에 나타나는 실제 톱스타라면 이야기는 더 흥미로워진다.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에서 톱 여배우의 어시스턴트 발렌틴을 연기하는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모습을 지켜보는 건 그래서 재미있다. 사례 하나. 극중에서 발렌틴이 ‘모시는’ 톱스타 마리아 앤더스(줄리엣 비노쉬)는 자신의 상대 배역으로 캐스팅된 젊은 할리우드 여배우 조앤(크로 모레츠)이 영 신경 쓰인다. 그런 그녀에게 던지는 발렌틴의 한마디란 이렇다. “검색해보셨
[크리스틴 스튜어트]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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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2014 <국제시장>
“미국 로스안젤레스 연결해보겠습니다.” 흥남 철수 때 생이별한 막내동생 막순이가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듣고 울먹거리는 덕수(황정민)를 뒤로한 채 <이산가족찾기> 사회자 김동건 아나운서는 특유의 영어 발음으로 덤덤하게 진행한다. “감정의 굴곡없이 한 호흡으로 내뱉는 말투며, 마이크 온•오프 버튼을 잡고 턱 아래에 댄 채 말하는 자세”는 김동건 아나운서를 똑 닮았다.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 디자이너 앙드레 김, 가수 남진, 씨름선수 이만기와 함께 영화 속 실존인물 중 하나인 김동건 아나운서는 드라마가 고조되는 이산가족찾기 장면에서 관객을 덕수의 감정으로 안내하는 중요한 역할이다. 여기서 중책을 맡은 배우는 황인준(38). “부천 물매 극단에서 연극 <날 보러와요>를 시작으로 15년 동안 무대 연기만 해오다가 <국제시장>으로 첫 영화출연”한 늦깎이 신인배우다. “김동건 아나운서의 길고 날카로운 눈매를 강조하기
[who are you] 황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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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어디서 ‘잽’이 날아올지 모르는, 예측 불허의 악당. 배우 김희원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다. 윤태호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미생>에서, 김희원이 연기하는 박 과장은 단 네편의 에피소드만으로도 장그래(임시완)와 오 과장(이성민)의 영업3팀을 한바탕 뒤흔드는 강렬한 존재감을 선사한다. 영화 <카트>의 악덕 편의점 업주도, <아저씨>의 장기밀매 조직원도 마찬가지다. 위협적인 외양이나 ‘센’ 액션을 선보이지 않음에도, 김희원은 종종 보통 사람의 모습으로 보는 이들의 마음을 들끓게 하는 불편함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배우처럼 느껴진다. 연극 무대에서 커리어를 시작해 이제는 영화와 드라마로 그 스펙트럼을 넓혀가고 있는 이 ‘신스틸러’를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었다.
-드라마 <미생>에 출연한 뒤, 주위 반응이 좀 달라졌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무래도 예전에는 <아저씨>의 만석으로 나를 기억해주
[김희원] ‘사람 냄새’가 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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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어서 오래된 식당, 그것을 우리는 노포라 부른다.” 요리도 하고 글도 쓰는 박찬일 셰프가 18곳의 노포를 소개한 책 <백년식당>을 냈다. “마치 화석 같다. 화석을 보면 지층이 어떻게 축적됐고 지구에 어떤 생물이 살았는지 알 수 있는 것처럼, 노포에는 우리의 근현대사가 그대로 담겨 있다.” 박찬일의 이 말은 <백년식당>이 단순히 노포 ‘기행’이 아님을 짐작하게 해준다. 서울의 평양냉면집, 부산의 돼지국밥집, 대구의 추어탕집, 제주의 순대국밥집 등을 돌며 박찬일은 한결같은 맛으로 꿋꿋이 식당을 지켜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그들의 역사를 정리하고 기록한다. 그 기록이 꽤 뭉클하다. 올해 6월 말, 서교동 문학과지성사 사옥지하 1층에 차린 그의 이탈리아식 선술집 ‘로칸다 몽로’에서 박찬일 셰프를 만났다.
-레스토랑이 아닌 술집을 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술을 좋아하니까 술집을 하면 되지 않겠나 싶었다. 로칸다는 싸구려 음식과 술을 파는 이탈리
[trans × cross] 노포에서 한술 뜨면 우리가 곧 역사의 참여자